강서연이 어리둥절해하며 두 눈을 깜빡였다.최연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방으로 돌아와 서랍에서 서류 몇 개를 꺼냈다. 서류를 본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움찔했다.“이건 서교 땅 기획도이고.”최연준은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녀에게 설명했다.“이건 다 프로젝트 협력안이야.”그가 마지막 페이지를 펼쳐 보이자, 강서연의 사인이 떡하니 있었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최연준을 쳐다보았다. 최연준은 그녀 앞에 웅크리고 앉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지난번 연회의 대기실에서 그녀에게 서류 몇 장에 사인하라던 때가 떠올랐다. 자신과 함께 맞서 싸우고 리스크를 부담하자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었다...그때 그녀는 최연준을 철석같이 믿었기에 사인한 서류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망설임 없이 사인했었다.“사실 리스크를 함께 부담하자는 거 아니야.”최연준이 부드럽게 말했다.“프로젝트 리스크는 내가 다 평가해 봤어. 당신한테 사인하라고 한 건... 이 프로젝트가 당신 것이기 때문이야. 난 그저 당신 밑에서 일하는 부하니까 당연히 대표의 사인을 받아야지.”“뭐라고요?”강서연은 머릿속이 하얘졌다. 최연준의 따뜻한 눈웃음 속에는 온통 그녀의 모습뿐이었다.“이 땅뿐만이 아니야.”최연준이 계속 말했다.“이 몇몇 회사들.”그러고는 다른 서류를 꺼내 그녀에게 일일이 보여주었다.강서연은 가슴이 쿵쾅거렸다. 서류에 큼지막하게 적힌 자신의 이름을 보며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고 이 모든 게 마치 꿈만 같았다.‘동명, 레이안, 웨스턴... 이게 다 연준 씨 회사 아니었어?’“이젠 다 당신 거야.”최연준은 그녀를 묵묵히 쳐다보았다. 강서연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고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당신 뒤에 아무도 없는 게 아니야. 내가 말했잖아, 당신은 내가 있다고.”강서연은 고개를 숙인 채 한참 동안 입을 꾹 다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결국 이 한마디만 내뱉었다.“미안해요...”최연준은 그
에덴 밖에 서 있던 마이바흐의 불빛이 깜빡였다.조금 전 윤정재는 최연준이 강서연을 쫓아 나오는 걸 보았다. 그러다가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잠시 후, 거실의 불이 꺼졌다.진용수는 고개를 돌려 윤정재를 보며 웃었다.“회장님, 아무래도 화해했나 봐요.”“그래.”윤정재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저 자식 사람을 달래는 건 선수인가 보네!”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씩 웃으며 은침을 다시 거두어들였다.“용수야, 그만 가자.”“네.”진용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회장님, 다음엔 뭘 할까요?”윤정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이번에 오성에 와서 꽤 오래 있을 계획이었다.첫 번째는 연합 병원 프로젝트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곳을 떠나기 점점 아쉬워서였다.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그의 마음속 영원히 아물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회장님.”진용수는 그의 생각을 단번에 눈치챘다.“윤문희 씨가 지금 살고 계시는 주소를 알아냈어요. 알려...”“싫어.”윤정재가 어두운 목소리로 그의 말을 가로챘다.미치게 보고 싶지만 또 그녀를 만나는 게 두려웠다.이십여 년 동안 그는 윤제 그룹을 휘황찬란하게 발전시켰다. 이미 돌아가신 그의 아버지, 주주, 그리고 약 사 먹을 돈도 없는 가여운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이의 앞에서 떳떳하게 다닐 수 있었지만... 그가 유일하게 미안한 사람이 바로 윤문희였다.그때 윤문희가 남양을 떠난 후 윤정재는 여전히 그녀를 놓지 못했다. 그녀를 찾았을 때 윤문희는 자신이 강명원의 여자가 되었다고 했었다.윤문희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몰래 그녀를 보러 강주로 갔었다. 그런데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행복하게 지내지 못했다.윤문희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었다. 하지만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해본 결과 강서연은 그의 친딸이었다. 하여 지금까지 매달 윤문희의 계좌에 돈을 입금했다.강서연과 윤찬이 무럭무럭 성장할 수 있
그녀는 모든 화살이 강서연에게 쏠리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강서연을 지킨다면 귀찮은 일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예를 들어 지금처럼 문나는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몰랐다...잠깐 생각하던 그녀는 뭔가 깨달은 듯했다.‘이게 다 나연 씨 탓이야!’“다른 일 없으면 그만 나가봐.”김자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앞으로 다가가더니 어깨를 툭툭 쳤다. 몸을 부들부들 떠는 문나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문나 씨.”김자옥이 웃으며 말했다.“사람은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 이 점을 놓고 봐도 문나 씨랑 임나연은 많이 배워야 해!”문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무서운 그녀 앞에서 티를 낼 수도 없었다.그녀는 대표 사무실 밖의 테이블을 쳐다보았다. 강서연이 마침 자리에 없었다.“왜? 강 비서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김자옥의 위엄있는 목소리에 문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아닙니다, 아니에요...”“그래, 그럼 가서 일이나 해. 문나 씨가 요즘 출연해야 하는 예능이 몇 개 있어. 매니저한테 얘기해 놓았으니까 출연하지 말지는 문나 씨가 알아서 결정해.”문나는 당연히 거절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예능들은 전부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이라 한물간 연예인도 출연하지 않았다.그런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건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하지만 김자옥이 원하는 게 바로 이거였다.연예인 하나가 내리막길을 걷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에는 연예인이 부족하지 않으니까.그리고 회사가 입을 손해도 두렵지 않았다. 김자옥은 그깟 돈이 부족한 게 아니니까.하지만 그녀의 며느리를 괴롭히는 자라면 팬덤이 얼마나 크든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돈으로 강서연을 괴롭힌 사람을 처리하는 건 전혀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다.문나는 잿빛이 된 얼굴로 사무실을 나섰다. 김자옥이 코웃음을 치고는 계속 일에 몰두하려던 그때 휴대 전화가 갑자기 울렸다.“여보세요? 아들.”최연준은 오늘 회사에 나가지 않
강서연은 웃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최연준 씨요.”사실 그녀가 뭐라 대답할지 나석진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진짜로 솔직하게 대답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최연준이 그녀 마음속에서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 서슴없이 대답할 리가 없다.박철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는 어색함을 깨려고 웃음을 터뜨렸다.“저기... 석진 씨, 먼저 저기 앉아서 대본 좀 보고 있어요. 곽 감독님이 오시면 맨 먼저 대본 리딩하게 할게요. 강 비서님도 쉬고 계세요. 석진 씨가 먹을 것 좀 가져오라고 해서 가져왔거든요. 드셔보세요...”그들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마침 햇살이 내리쬐어 분위기를 더 따스하게 만들어 주었고 창밖에는 가을날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박철이 차를 내리자 방안에 고소한 차 향기가 가득 퍼졌다.나석진은 가방 안에서 정교한 간식 상자를 꺼냈다.짙은 색의 나무 상자였는데 그 위에 정교하고 복잡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순간 움찔한 강서연은 잘못 본 건 아닌지 의심마저 들었다.엄마가 그녀에게 준 상자에도 이것과 비슷한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예뻐요?”나석진이 가볍게 웃었다.“남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무늬예요.”“그렇군요.”강서연은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전 성남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성남이랑 남양이 아주 가까워서 문화와 음식 면에서 남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그러고는 작은 접시를 꺼내 디저트를 담고 그녀에게 건넸다.“먹어봐요!”강서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접시에 담긴 디저트는 앙증맞고 정교했다. 초록색의 옥같이 반투명한 색상에 마치 공예품처럼 예뻤다.“이건...”강서연은 놀라면서도 기뻤다. 이건 어릴 적에 어머니가 그녀에게 해줬던 디저트였다.“이게 뭔지 알아요?”나석진이 다정하게 물었다.“녹옥떡이라고 하는데 남양에만 있는 음식이에요.”“남양에만 있다고요?”강서연은 잠깐 멈칫했다. 지난번에 어머니와 함께 서화전에 갔을 때 어머니가 스카프 하
외부인 앞에서 그는 늘 카리스마 넘치고 진지하며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강서연 앞에서는 질투를 밥 먹듯이 하는 소년으로 변했다.나석진의 눈빛이 복잡미묘해졌다.“지난번에는 카드 게임만 한판 하고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요!”최연준은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나석진은 그의 뜻을 알아채고 먼저 악수를 청했다.“도련님, 안녕하세요. 전 나석진입니다. 회사에 저에 관한 자료가 자세하게 있을 거예요.”최연준은 그와 악수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최연준입니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제2 주주고요.”“알아요.”나석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전 김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와 계약했어요...”“허!”최연준이 코웃음을 쳤다.“문나 씨도 그렇게 얘기하던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보셨죠?”나석진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나 배우님과 문나 씨는 천지 차이죠. 두 사람을 함께 비교해서는 안 되죠.”나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금 약을 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사실 최연준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약을 올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연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고양이가 참 귀엽네요.”나석진이 화제를 돌렸다.“무슨 품종이에요?”최연준은 그제야 고양이도 함께 데려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그건 모르겠고 뚱냥이라고 불러요.”그는 소개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강서연을 와락 끌어안으며 의기양양했다.“저랑 서연이가 함께 키우고 있어요.”그는 ‘함께’ 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나석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뚱냥이를 만지려 했다. 그런데 뚱냥이는 고개를 옆으로 피하며 싸늘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나석진의 손이 멋쩍게 허공에 머물렀다.최연준은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평소 그를 별로 반기지도 않던 뚱냥이가 중요한 순간에는 그래도 그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감동이 밀려왔다.‘오늘 저녁에 생선 통조림 줘야겠다.’“연준 씨.”강서연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오늘 회사 안 나가도 돼요? 왜 뚱냥이
그날 저녁 임씨 가문.임정수네 부부는 서재에서 연합 병원 프로젝트를 따낼 방법을 상의하고 있었고 임나연은 옆에 앉아 주의 깊게 들었다.임씨 가문 사모님은 그녀에게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 일찍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몇 년 전부터 그녀는 임나연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임씨 가문의 중요한 업무를 그녀에게 맡기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임정수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키웠는데 정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임나연이 사업적으로도 그를 잘 도와주었다.“어디서 들려온 소문인지는 모르겠는데.”임정수가 목소리를 낮췄다.“윤정재가 4대 가문 중에서 우리 임씨 가문을 가장 눈여겨 보고 있고 우리랑 손을 잡으려 한대.”임씨 가문 사모님이 눈살을 찌푸렸다.처음에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소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점점 진짜처럼 변해갔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윤정재는 임씨 가문과 실질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아빠, 정말 그런 소문이 돌아요?”임나연이 우쭐거리며 물었다.“응.”임정수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뭐 아는 거라도 있어?”“그건 아닌데.”임나연이 가볍게 웃었다.“이 서교 땅 프로젝트가 최씨 가문에서 주요하게 밀고 있는 프로젝트잖아요. 저도 요즘 계속 알아보면서 연합 병원에 관한 기획안을 만들고 있었어요. 최상 그룹의 뜻은 이 땅이 최상 그룹의 것이니까 병원 프로젝트의 이윤을 적당한 선에서 양도하겠다는 뜻이더라고요. 어차피 그 땅에 지으니까요. 아빠, 이건 제가 최상 그룹 측과 몇 번 미팅한 결과인데 쉽지 않아요!”임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씨 가문은 진짜 참여하지 않는 모양이다. 땅과 프로젝트 모두 차지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최씨 가문은 줄곧 다 함께 돈을 버는 걸 지향했었다.“만약 최상 그룹이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몰라.”“설마 그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임씨 가문 사모님이 싸늘하게 웃었다.“최
배경원은 웃으며 청첩장 두 장을 꺼내 임정수 부부의 손에 정중히 건넸다.“어머님이 여시는 음악회예요. 아저씨 아줌마께서 꼭 참석하셔야 해요!”임씨 가문 사모님께서 정교한 초대장을 넘기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배씨 가문 사모님은 사모님들 사이에서 소문난 재녀다. 금기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이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제 기억이 맞는다면, 작년에 사모님께서 그림 전시회를 열었었죠!”임씨 가문 사모님께서 웃으며 말했다.“올해는 음악회를 여신다니, 정말 대단하군요!”“아닙니다!”배경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룩하게 웃었다.“어머니께서는 그냥 집에서 장난삼아서 하는 거예요. 아저씨 아줌마께서 시간 되신다면 꼭 참석해 주세요!”“당연하죠!”“이번에 어머니께서 바다 음악회를 하고 싶어해요. 우리 집의 개인소유 바닷가에서 주최하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유람선을 타고,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놀 계획이에요.”“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네요!”임정수는 웃으며 말했다. “배씨 가문 사모님께 전해주세요. 저희는 꼭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할게요!”배경원은 임무를 완수하고 임씨 부부와 작별을 고했고, 두 사람은 그를 현관의 긴 복도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침 몇 명의 집사들이 막 씻은 옷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집사들은 배경원을 보고 인사를 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배경원도 그들을 돌아보았다.집사들이 손에 들고 있는 옷도 봐버렸다.그중에는 남색 재킷이 있었는데 옷깃에 나비 모양의 자수가 있다...배경원은 잠깐 멈칫했다.이건... 그의 외투가 아닌가? 경매 날, 배경원은 수정이라는 소녀를 만났고 두 사람이 정원에서 산책하고 있을 때 그가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준 그 재킷이다.“경원 조카?”임정수는 그가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몇 번 불렀다.배경원은 다시 생각을 접고 억지로 웃었다.집사들은 이미 지나갔는데 옷 한 벌 때문에 다시 불러 세우는 것도 이상했다.하지만 배경원이 입는 옷은 전부다 커스터마이징이다.그리고 그 옷
“회장님... 반쯤 브리핑하셨는데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어.”윤정재는 손사래를 쳤다.어차피 나왔고 지금도 한가하니 차라리 동물병원에 가보겠다.진용수는 곧 그를 데리고 근처의 유명한 동물병원으로 갔다.차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윤정재는 강서연이 뚱냥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들어가는 것을 봤다.윤정재도 따라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진용수더러 가까운 펫숍에 가서 샴고양이를 사 오라고 했다. 동물병원에 들어갈 때 손에 무엇이라도 안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너무 이상할 것이다.진용수는 즉시 움직였다.윤정재는 남양에서 신분이 귀하여 어디를 가든지 감히 막을 자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에 의지해서 동물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니.그는 생각만 해도 자신의 처지가 웃겼다.강서연이 뚱냥이를 안고 줄을 서 있는 동안, 윤정재는 그녀와 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잠시 후 그녀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조금씩 그녀 곁으로 옮겼다.윤정재는 조용히 강서연을 훑어보았다.딸은 피부가 하얗고 눈매가 고운데, 특히 그 앙증맞은 코와 붉은 입술이 젊은 시절의 윤문희를 빼닮았다.강서연은 카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딱 맞게 예쁜 쇄골이 드러났다.품에 안긴 뚱냥이는 얌전히 강서연의 품에 안겨있고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자 편안한 듯 눈을 감았다.윤정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오성에 온 지 오래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딸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다.“야옹!”뚱냥이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었다.강서연은 잠깐 멈칫했다. 뚱냥이는 옆에 있는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은 듯한 모습을 보였고, 그쪽 고양이도 발바닥을 내밀어 서로 기웃거리며 장난을 쳤다.강서연은 웃으며 고양이를 따라 그 고양이 주인을 보았다.“아저씨.”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다.“둘이 잘 맞는가 봐요!”윤정재는 멍하니 그녀를 보며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아저씨?”“네...”윤정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러네요. 잘 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