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 앞에서 그는 늘 카리스마 넘치고 진지하며 차가운 얼굴이었지만 강서연 앞에서는 질투를 밥 먹듯이 하는 소년으로 변했다.나석진의 눈빛이 복잡미묘해졌다.“지난번에는 카드 게임만 한판 하고 제대로 인사도 못 했네요!”최연준은 그를 차갑게 쳐다보았다. 나석진은 그의 뜻을 알아채고 먼저 악수를 청했다.“도련님, 안녕하세요. 전 나석진입니다. 회사에 저에 관한 자료가 자세하게 있을 거예요.”최연준은 그와 악수하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최연준입니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제2 주주고요.”“알아요.”나석진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전 김 대표님께서 직접 데려와 계약했어요...”“허!”최연준이 코웃음을 쳤다.“문나 씨도 그렇게 얘기하던데,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보셨죠?”나석진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물론 나 배우님과 문나 씨는 천지 차이죠. 두 사람을 함께 비교해서는 안 되죠.”나석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지금 약을 올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사실 최연준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계속 약을 올렸다.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최연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었다.“고양이가 참 귀엽네요.”나석진이 화제를 돌렸다.“무슨 품종이에요?”최연준은 그제야 고양이도 함께 데려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그건 모르겠고 뚱냥이라고 불러요.”그는 소개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강서연을 와락 끌어안으며 의기양양했다.“저랑 서연이가 함께 키우고 있어요.”그는 ‘함께’ 라는 단어에 힘을 실었다.나석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뚱냥이를 만지려 했다. 그런데 뚱냥이는 고개를 옆으로 피하며 싸늘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나석진의 손이 멋쩍게 허공에 머물렀다.최연준은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평소 그를 별로 반기지도 않던 뚱냥이가 중요한 순간에는 그래도 그의 편을 드는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감동이 밀려왔다.‘오늘 저녁에 생선 통조림 줘야겠다.’“연준 씨.”강서연이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오늘 회사 안 나가도 돼요? 왜 뚱냥이
그날 저녁 임씨 가문.임정수네 부부는 서재에서 연합 병원 프로젝트를 따낼 방법을 상의하고 있었고 임나연은 옆에 앉아 주의 깊게 들었다.임씨 가문 사모님은 그녀에게 별로 알려주고 싶지 않아 일찍 들어가서 쉬라고 했다.몇 년 전부터 그녀는 임나연을 경계하기 시작했고 임씨 가문의 중요한 업무를 그녀에게 맡기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임정수는 별로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친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키웠는데 정이 하나도 들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게다가 임나연이 사업적으로도 그를 잘 도와주었다.“어디서 들려온 소문인지는 모르겠는데.”임정수가 목소리를 낮췄다.“윤정재가 4대 가문 중에서 우리 임씨 가문을 가장 눈여겨 보고 있고 우리랑 손을 잡으려 한대.”임씨 가문 사모님이 눈살을 찌푸렸다.처음에는 거론할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했었지만 소문이 퍼지면 퍼질수록 점점 진짜처럼 변해갔다. 그런데 소문과 달리 윤정재는 임씨 가문과 실질적으로 만난 적이 없었다.“아빠, 정말 그런 소문이 돌아요?”임나연이 우쭐거리며 물었다.“응.”임정수는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너 뭐 아는 거라도 있어?”“그건 아닌데.”임나연이 가볍게 웃었다.“이 서교 땅 프로젝트가 최씨 가문에서 주요하게 밀고 있는 프로젝트잖아요. 저도 요즘 계속 알아보면서 연합 병원에 관한 기획안을 만들고 있었어요. 최상 그룹의 뜻은 이 땅이 최상 그룹의 것이니까 병원 프로젝트의 이윤을 적당한 선에서 양도하겠다는 뜻이더라고요. 어차피 그 땅에 지으니까요. 아빠, 이건 제가 최상 그룹 측과 몇 번 미팅한 결과인데 쉽지 않아요!”임정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최씨 가문은 진짜 참여하지 않는 모양이다. 땅과 프로젝트 모두 차지하려는 건 아닐 것이다. 최씨 가문은 줄곧 다 함께 돈을 버는 걸 지향했었다.“만약 최상 그룹이 경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 소문이 진짜일지도 몰라.”“설마 그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죠?”임씨 가문 사모님이 싸늘하게 웃었다.“최
배경원은 웃으며 청첩장 두 장을 꺼내 임정수 부부의 손에 정중히 건넸다.“어머님이 여시는 음악회예요. 아저씨 아줌마께서 꼭 참석하셔야 해요!”임씨 가문 사모님께서 정교한 초대장을 넘기며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배씨 가문 사모님은 사모님들 사이에서 소문난 재녀다. 금기 서화에 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종목이 전문가 수준에 이르렀다.“제 기억이 맞는다면, 작년에 사모님께서 그림 전시회를 열었었죠!”임씨 가문 사모님께서 웃으며 말했다.“올해는 음악회를 여신다니, 정말 대단하군요!”“아닙니다!”배경원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수룩하게 웃었다.“어머니께서는 그냥 집에서 장난삼아서 하는 거예요. 아저씨 아줌마께서 시간 되신다면 꼭 참석해 주세요!”“당연하죠!”“이번에 어머니께서 바다 음악회를 하고 싶어해요. 우리 집의 개인소유 바닷가에서 주최하려고 하는데 어른들은 유람선을 타고, 우리 같은 젊은이들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놀 계획이에요.”“참으로 좋은 아이디어네요!”임정수는 웃으며 말했다. “배씨 가문 사모님께 전해주세요. 저희는 꼭 제시간에 맞춰서 도착할게요!”배경원은 임무를 완수하고 임씨 부부와 작별을 고했고, 두 사람은 그를 현관의 긴 복도까지 데려다주었다. 마침 몇 명의 집사들이 막 씻은 옷을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집사들은 배경원을 보고 인사를 했고 공교롭게도 같은 시각 배경원도 그들을 돌아보았다.집사들이 손에 들고 있는 옷도 봐버렸다.그중에는 남색 재킷이 있었는데 옷깃에 나비 모양의 자수가 있다...배경원은 잠깐 멈칫했다.이건... 그의 외투가 아닌가? 경매 날, 배경원은 수정이라는 소녀를 만났고 두 사람이 정원에서 산책하고 있을 때 그가 벗어서 그녀에게 덮어준 그 재킷이다.“경원 조카?”임정수는 그가 생각에 잠기는 것을 보고 몇 번 불렀다.배경원은 다시 생각을 접고 억지로 웃었다.집사들은 이미 지나갔는데 옷 한 벌 때문에 다시 불러 세우는 것도 이상했다.하지만 배경원이 입는 옷은 전부다 커스터마이징이다.그리고 그 옷
“회장님... 반쯤 브리핑하셨는데 다시 돌아가시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어.”윤정재는 손사래를 쳤다.어차피 나왔고 지금도 한가하니 차라리 동물병원에 가보겠다.진용수는 곧 그를 데리고 근처의 유명한 동물병원으로 갔다.차가 문 앞에 도착하자마자 윤정재는 강서연이 뚱냥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들어가는 것을 봤다.윤정재도 따라 들어갈 생각이었으나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진용수더러 가까운 펫숍에 가서 샴고양이를 사 오라고 했다. 동물병원에 들어갈 때 손에 무엇이라도 안고 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너무 이상할 것이다.진용수는 즉시 움직였다.윤정재는 남양에서 신분이 귀하여 어디를 가든지 감히 막을 자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고양이 한 마리에 의지해서 동물병원에 들어가야 한다니.그는 생각만 해도 자신의 처지가 웃겼다.강서연이 뚱냥이를 안고 줄을 서 있는 동안, 윤정재는 그녀와 멀지 않은 곳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잠시 후 그녀의 옆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그는 다시 조금씩 그녀 곁으로 옮겼다.윤정재는 조용히 강서연을 훑어보았다.딸은 피부가 하얗고 눈매가 고운데, 특히 그 앙증맞은 코와 붉은 입술이 젊은 시절의 윤문희를 빼닮았다.강서연은 카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딱 맞게 예쁜 쇄골이 드러났다.품에 안긴 뚱냥이는 얌전히 강서연의 품에 안겨있고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자 편안한 듯 눈을 감았다.윤정재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오성에 온 지 오래되었는데, 이것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딸을 가까이서 보는 것이다.“야옹!”뚱냥이가 갑자기 머리를 흔들었다.강서연은 잠깐 멈칫했다. 뚱냥이는 옆에 있는 고양이에게 관심이 많은 듯한 모습을 보였고, 그쪽 고양이도 발바닥을 내밀어 서로 기웃거리며 장난을 쳤다.강서연은 웃으며 고양이를 따라 그 고양이 주인을 보았다.“아저씨.”그녀의 목소리는 달콤했다.“둘이 잘 맞는가 봐요!”윤정재는 멍하니 그녀를 보며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아저씨?”“네...”윤정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러네요. 잘 맞
윤정재는 뜸을 들였다. 목구멍은 뭔가에 막힌 듯했고 눈빛은 점점 슬퍼졌다.강서연은 자신이 말실수를 한 줄 알고 자책하며 말을 돌렸다.“아저씨 고양이는 정신이 멀쩡해서 아파 보이지 않는데요!”“그게...”윤정재는 정신을 가다듬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얘도 요 며칠 몸이 안 좋아 보여서 아무래도 검사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그런데 이 줄이 너무 기네요.”강서연이 탄식했다.동물병원은 크지도 않고 고양이와 강아지들은 통제가 어려운 데다가 말도 못 하고 아프면 짖기만 한다.그래서 경험이 있는 수의사도 진단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아직 아가씨 순서가 아닌데 제가 고양이를 한번 봐줄까요?”윤정재는 웃으며 말했다.강서연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혹시 수의사세요?”“저는 의사예요.”“아저씨.”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사람도 볼 수 있고 동물도 볼 줄 아는 거예요?”윤정재는 강서연과 가까워질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억지로 말했다.“의학적인 이론은 모두 하나를 보고 열을 안다고 문제없을 거예요!”강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신석훈은 다르게 말했다. 술업에는 전공이 있다고 특히 의학은 정밀도가 상당히 높아서 더 자세히 나눈다고 했다.“어차피 오래 기다려야 되잖아요!”윤정재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먼저 봐줄게요. 저에게는 조상 대대로 전해온 비법이 있거든요!”강서연은 입술을 깨물었다.그녀는 의심스럽게 뚱냥이를 내려놓았다.윤정재는 딸과 조금이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생애 처음으로 고양이에게 맥을 짚어줬다.그러나 윤정재도 맥박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짚는지 모른다.윤정재가 이리저리 만져서 뚱냥이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났다. 뚱냥이는 소리를 지르며 그의 손등을 심하게 긁었다!“앗!”강서연은 깜짝 놀랐다.“뚱냥아, 너 뭐 하는 거야!”윤정재의 손등에 붉은 자국이 몇 개 생기더니 순식간에 부어올랐다.강서연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연거푸 사과를 했다.“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제가 단속을 잘못했어요...”
거대한 유람선 한 척이 배씨 가문의 프라이빗 오션에서 운항하고 있다.잔잔한 거문고 소리가 온 해변에 퍼져 갈매기까지 따라서 춤을 춘다.윤정재도 초대 손님에 포함되어 있다.그는 뱃머리에 서서 천천히 샴페인을 음미하고 있었는데, 배씨 가문이 왜 그를 초대했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모두 다 연합병원 프로젝트를 위한 것이다.그는 샴페인을 한 모금에 다 마시고 돌아서서 유람선으로 돌아가 휴식실로 들어갔다.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아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지막하고 우스꽝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윤 회장님, 그 샴고양이는 안 데려오셨어요?”윤정재는 눈을 부릅떴다.최연준은 바로 그의 앞에 서서 냉랭한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윤 회장님, 그동안 잘 지내셨죠!”최연준은 차갑게 보며 말했다.윤정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셋째 도련님.”그는 몸을 일으켜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은 마주 서 있었고, 최연준의 눈빛은 독기를 품어 있었다. 최연준은 갑자기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가 윤정재를 벽 쪽으로 몰아세웠다.그날 그가 제때 동물병원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이 늙은 여우가 강서연에게 무슨 짓을 할지는 상상이 안 간다.“윤정재 씨.”최연준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그새를 참지 못하고 제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대요?”“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예요?”윤정재는 눈살을 찌푸렸다.“저한테는 모르는 척하지 마세요!”최연준은 한 글자씩 강조했다.“그 고양이는 당신 것이 아니죠?”윤정재는 그를 한 번 쳐다보고 떠나려고 하는데, 최연준은 갑자기 그의 멱살을 움켜잡고 데저트 이글을 그의 허리춤에 갖다 댔다!“도대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서연이에게 접근하는 거예요?”“제가 아무 목적도 없다고 하면 믿어 줄 거예요?”최연준은 증오의 눈초리로 그를 노려보았다. 탕 소리와 함께 권총은 이미 장전되어 있었다.“당신이 또다시 서연이한테 접근하면 영원히 남양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에요!”최연준은 흉악스럽게 말했다.“제가 다가가지 않으면 남양으
최연준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보았다.“제가 가든지 말든지, 회장님께서 왜 그리 서두르세요?”“아니...”“윤 회장님께서 너무 많이 관여하는 것 같네요!”최연준은 강력하게 말하고 짙은 눈동자에는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그러나 의외로 윤정재는 침묵했고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에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애절함이 스쳤다.“그래요. 제가 신경 쓸 일이 아니죠.”윤정재는 혼잣말을 하고,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내가 뭐라고...”최연준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늙은 여우가 뭘 하려는 거지? 그가 무슨 짓을 하든 서연이에게 접근만 안 하면 돼.’최연준은 몸을 돌려 휴게실을 성큼성큼 떠났다.갑판에는 음악회가 이미 끝나 사람들이 삼삼오오 술잔을 들고 분위기가 떠들썩했다.강서연은 혼자 뱃머리에 서서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형수님, 어떻게 혼자 여기 있어요!”배경원이 웃으며 달려와서 와인 한 잔을 건넸다.“연준 형이랑 같이 안 왔어요?”“방금 전화했는데 금방 온대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갑자기 최연준이 그녀에게 배경원이 연애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강서연은 호기심에 누구냐고 물었다.배경원이 쑥스럽게 대답했다.“이것도 알고 있어요?”강서연은 웃으며 대답했다.“어떤 여자가 경원 씨를 설레게 했는지 궁금해서요.”“사실, 저도 그녀가 누군지 몰라요.”“네?”강서연이 깜짝 놀랐다.“저는 그녀의 이름만 알 뿐, 심지어 성도 몰라요.”배경원은 입꼬리를 치켜 올렸다.“어쩌면 그녀는 저의 아름다운 꿈이었는지도 몰라요... 꿈에서 깨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죠.”배경원이 이렇게 진지하고 슬퍼하는 모습은 보기 드물었다.강서연은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막 무슨 말을 하려는데 나지막한 기침 소리가 들렸다.최연준은 안색이 조금 어두웠고, 활보하며 다가와서 강서연의 가녀린 허리를 감싸 안고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왔다.배경원이 아무
최연준은 윤정재를 한번 노려보고 무의식적으로 강서연을 감싸 안았다.“연준 씨.”강서연은 그를 한번 보고, 또 윤정재를 쳐다봤다.“아저씨와 아는 사이예요?”“아는 사이예요.”윤정재가 대답했다.“모르는데.”최연준도 따라서 대답했다.“...”강서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 최연준의 안색은 안 좋았고 윤정재는 웃는 것 같기도, 웃지 않는 것 같기도 한 표정을 지어서 두 사람이 껄끄러운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였다.그러나 배씨 가문의 음악회에서 일을 크게 벌여서는 안 된다.강서연은 가볍게 최연준과 깍지를 끼고 부드럽게 그를 바라봤다.그녀의 미소는 최연준의 마음을 순간적으로 안정시켜 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이분은 남양 의학회 회장이자 윤제 의약의 수장이야.”최연준은 간단하게 소개했다.강서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최근에 남양이라는 단어를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지 그녀의 마음속에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솟구쳤다.“배씨 가문에서 회장님과 협업하고 싶다고 해서 음악회에 초대했어.”최연준은 조용히 말했다.강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정재를 보며 예의 바르게 웃었다.“같이 요트에 가자.”최연준이 귓속말을 했다.“안 돼요.”윤정재는 단호하게 그들을 막았다.최연준이 그를 힐끗 보았다.“정말 안전하지 않아요!”윤정재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저기 보세요. 저 요트는 크지도 않아, 풍랑이 오면 버티지 못할 거예요! 게다가 젊은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그 위에서 술도 마시면서 춤추는 게 보기도 안 좋아요!”강서연은 입을 막고 가볍게 웃었고 최연준은 얼굴에 경멸의 빛을 띠었다.“만약 두 분이 꼭 올라가야 한다면 저도 따라갈 거예요.”윤정재가 말했다.최연준은 그를 노려보며 거의 발작할 뻔했다.“저희를 왜 따라와요?”최연준은 화를 내며 말했다.강서연은 그의 성질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그를 잡아당겼다.“연준 씨, 괜찮아요.”강서연은 최연준을 옆으로 끌고 가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동물병원에서 이 아저씨를 만났는데, 아저씨
“어떻게 소피아라는 걸 확신하죠?”배윤아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부모님이 회사의 핵심 자료를 제게 모두 맡기셨어요. 그런데 그걸 받은 지 이틀 만에 공격을 당했죠. 이게 단순한 우연일까요?”임지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그 자료들은 어디 있어요?”“아마 소피아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 자료들은 너무 중요해서 항상 제 곁에 두고 다녔거든요. 하지만 그날 제가 기절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가방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만...”“다만 뭐요?”“법인 도장은 가방 안에 없었어요.”배윤아는 미소를 지으며 약간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법인 도장은 본사가 모든 자원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이에요. 엄마가 제게 주자마자 저는 바로 군성이에게 맡겼어요. 지금 법인 도장은 최씨 가문에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어요.”“그렇다면 소피아가 자료를 손에 넣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겠군요?”배윤아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똑똑하네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배씨 가문 사람들도 다 무능하진 않나 보네요.”“임 선생님...”배윤아는 고개를 약간 숙이며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오빠가 송윤지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임 선생님이 우리 가문에 복수하려고 저를 납치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선생님은 그런 수준 낮은 사람이 아니니까요.”임지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확실히 똑똑한 사람이네요.”그러나 배윤아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졌다.“그런데... 정말 우리 오빠에게 복수하고 있는 건가요?”임지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임지강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족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주세요.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실 거예요.”“이미 군성이에게 연락을 했어요.”배윤아가 말했다.“군성이에게 조용히 아빠에게 알려 드리라고 했어요. 엄마는 충격을 받으시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제 상황을 오빠에겐 비밀로 해야 해요. 오빠와 소피아는 제가 조 회장님에게 잡혀 있고 선생님이 일부러 복수를 위해 조 회장님을
“설마...”“소피아!”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이름을 입에 올린 뒤,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정말 소피아일 줄이야.”임지강이 담배를 꺼내 들었다. 조 회장이 눈짓을 하자 부하가 공손히 불을 붙였다.방 안은 금세 니코틴 냄새로 가득 찼고 임지강은 잠시 침묵하며 담배 재를 털어냈다.“아마... 조 회장님도 지금 저와 같은 처지겠죠. 배씨 가문의 딸을 납치했다는 누명을 쓰게 됐으니 말이에요.”“그러게 말이야.”조 회장은 차갑게 웃었다.“겉으로는 온갖 아부를 떨면서도 뒤에서는 이런 음모를 꾸미고 내가 배윤아를 납치했다고 소문까지 퍼뜨리고 있더군.”“회장님과 제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의심의 화살을 제게도 돌리겠죠.”임지강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연루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겁니다. 저 때문에 저의 매형까지 연루되면, 배씨 가문과 육씨 가문의 사이도 틀어질 거고요.”“그 여자는 이런 식으로 우리 모두를 자기 손바닥 위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조 회장님 생각은 어떻습니까?”“웃기지 말라 그래.”조 회장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임지강은 조 회장의 꽉 쥐어진 주먹을 발견했다. 그의 손등에는 화가 잔뜩 난 핏줄이 도드라져 있었다.“조 회장님.”임지강은 잠시 침묵한 뒤 부드럽게 말했다.“운산시 광산의 가격을 조작하도록 제가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 두 광산은 이제 그렇게 가치 있는 자산이 아닙니다.”“알고 있어.”조 회장은 임지강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이 일은 원래 자네 복수를 위해 시작한 일이야. 자네의 화가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내 수고도 헛된 게 아니야. 하지만 문제는...”조 회장은 손짓으로 방 안을 가리켰다.그때 방 안에서 배윤아가 몸을 뒤척이며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임지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배윤아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조 회장은 잠시 망
임지강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차가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그를 철저히 파산시키고 싶습니다.”“배씨 가문 전체를 함께 무너뜨리겠다는 뜻인가?”조 회장이 묻자, 임지강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솔직히 말하면, 예전의 저라면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지금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건가?”조 회장이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던 임지강은 그런 자비를 베풀 인물이 아닌데?”임지강도 미소를 지었다.그 웃음 뒤로 누군가의 맑은 눈빛과 깨끗한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이번 일은 송윤지가 부탁해서 오게 된 것이었다.송윤지는 배윤아의 실종 소식을 듣고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비록 배현진과 부부의 연을 맺지 못했지만, 배윤아와는 과거에 친하게 지냈던 사이였기에 친구로서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임지강 자신도 이곳에 올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송윤지의 부탁 때문이고 또 하나는 배윤아의 납치 사건이 왜 갑자기 자신에게 덮어씌워졌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임지강은 배윤아와 거의 만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실상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조 회장님, 전 자비를 베푸는 게 아닙니다.”임지강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단지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이미 많은데 한낱 파리 한 마리와 얽혀서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입니다. 그 녀석에게 적당히 벌을 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저는 배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배씨 가문을 완전히 망가뜨릴 필요는 없습니다.”“흠...”조 회장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1조라... 적지 않은 금액이지. 배현진은 은행에서 전 재산을 담보로 대출받았다고 하더군. 이 일이 발각되면 한동안 꽤 고생하겠지.”“조 회장님, 사실 오늘 제가 온 이유는 다른 목적도 있어서입니다.”임지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약간 굽히며 공손히 말했다. 그러나 조 회장은 손짓으로 그를 제지하며 미소를 지었다.조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배현진은 병원 복도에 있는 긴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었다.“그럴 리가 없어...”한참 동안 앉아 있던 배현진은 갑자기 고개를 들며 말했다.“연준 아저씨와 서연 이모는 소피아와 함께 지낸 적이 없잖아요. 소피아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피아는 절대 저를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이 녀석아,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고집을 부릴 거야.”최연준이 엄하게 꾸짖었다.배경원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손을 잡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절망이 서려 있었다.“그만해요, 셋째 형님...”배경원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수정이가 응급실에 있는데, 이 아이와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냥 없는 아들이라고 생각하려 합니다.”“아버지!”“꺼져버려!”배경원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눈빛 너머에는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깊은 허무가 스며 있었다.배현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돌아섰다. 떠나기 전, 그는 다시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윤아를 반드시 무사히 데려올게요. 엄마도 무사할 거예요. 우리 가족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해질 거예요.”배경원은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잠시 후, 응급실의 불이 꺼졌다. 배경원은 화살처럼 뛰어가며 아내의 이름을 크게 외쳤다.의사가 땀으로 흠뻑 젖은 마스크를 벗으며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배 선생님, 사모님께서는 일단 생명에는 지장이 없습니다.”“뭐라고요?”강서연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일단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건, 앞으로 위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요?”“다들 진정하세요.”의사는 부드럽게 설명했다.“사모님의 상태가 많이 복잡합니다. 곧바로 특수 병동으로 옮길 예정이라 당분간 면회는 어려울 겁니다. 이번 주가 아주 중요한 시기이긴 하지만, 제 판단으로는 이 고비를 무사히 넘기실 가능성이 큽니다.”세 사람은 안도의 숨을 쉬며 그나마
“아내라고?”강서연이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현진이와 정식으로 결혼한 적 있니? 다른 사람과 약혼한 상태에서 끼어든 건 너잖아. 명분도 없는 관계에 ‘아내’라는 말을 쓰다니, 웃음거리밖에 안 될 거야.”“최 사모님...”“갑자기 생각난 건데.”강서연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수정 씨가 쓰러졌을 때 네가 침대 옆에 있었던 거 맞지?”“아, 네.”소피아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현진 씨를 대신해 효도하러 갔던 거예요. 하지만 어머님 건강이 그렇게 나쁘실 줄은 몰랐습니다.”“수정 씨가 쓰러지기 직전에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말해보렴.”소피아는 순간 멈칫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말할 수 없는 이유라도 있니?”강서연은 한 발짝 다가가며 소피아를 몰아붙였다.“수정 씨는 평소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던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쉽게 쓰러질 리 없지. 분명 큰 충격이 있었을 거야. 쓰러지기 직전 병실에 너 혼자 있었다며?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서연 이모,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배현진은 소피아를 자신의 뒤로 끌어당기며 소피아에게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복도를 따라 빠르게 사라졌다.소피아가 사라지자, 배현진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서연 이모, 소피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배현진!”강서연은 배경원이 아들을 두 번이나 때린 이유를 이제야 완벽히 이해한 듯,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너 어떻게 이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니? 네 엄마는 지금 저 안에 누워 있어.”“정말로 소피아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배현진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핥으며 설명했다.“서연 이모, 사실 소피아도 자책하고 있어요. 그날 소피아도 윤아의 안전을 걱정하다가 엄마 앞에서 그만 실수로 말을 흘리고 만 거예요. 그래서...”“뭐라고?”최연준이 눈을 부릅뜨며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배현진, 네 엄마 쓰러졌을 때 넌 방에 없었잖아.”“소피아가 제게 그렇게 말했어요.”“너...”최연준은 순간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