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준은 잠시 멈칫했다.“나는 무슨 수를 쓰든 여기에 남을 것이야.”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강서연은 웃었다. 이 대답은 그녀가 이미 예상했다.이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나오는 행동이다. 최연준이 다쳤어도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병실 밖에 남았을 것이다.그러나 인지석은 한참 애틋하고 감동적인 고백을 한 후 성큼성큼 떠나 버렸다.마치 조금 전의 모든 것들이 연기 같았다.최연준은 강서연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마음이 조여지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다.“내가 진작부터 알아봤어. 인지석 이 사람은 믿으면 안 돼! 연희가 계속 이 감정에 깊이 빠져들면 장차 큰 손해를 볼 것이야!”최연준은 몹시 화가 났다.“성급하지 마세요.”강서연은 그를 살살 달랬다.“보아하니 은 대표님께서는 아직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것 같아요.”“알게 되더라도 크게 캐묻지 않을 거야.”최연준은 얼굴이 어두워졌다.“은 대표님은 자유연애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아이가 가문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것을 가장 싫어해. 하지만 인지석과 연희는 어울리지 않아서 절대로 같이 있으면 안 돼.”“연준 씨.”강서연은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제가 걱정하는 건... 인지석이 연희 씨에게 진심이 아니라 이용하려는 마음이 있는 거예요.”최연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제가 잘못 생각하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미리 준비해야 해요. 연희 씨가 손해 보지 않게 우리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강서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최연준은 이전에 강주에서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다.구현수가 도망친 이후로 그는 모든 길목의 CCTV를 찾아봤는데 번호판이 없는 그 검은 차는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때 최연준은 CCTV에서 모호하게 찍힌 기사를 의심했다. 그 사람은 검은 모자를 쓰고 얼굴은 반쪽만 드러냈는데 창백하고 말라 보였다. 만약 인지석의 코 윗부분을 다 가리고 보면 그 반쪽 얼굴과 매칭이 된다.그러나 그는 감히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사람을 보내
강서연은 신경 쓰지 않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갑자기 익명의 메시지가 하나 더 들어왔다.「보고 싶어.」강서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덩굴처럼 마음속에서 자라나는 것 같았다.그녀는 한참 동안 머리가 텅 빈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숨을 깊게 빨아들였지만 뭔가 가슴에 막힌 듯 괴로웠다.조금 전에 온 문자와 같이 잘못 보낸 것이라고 그녀는 자신을 위로했다.강서연은 갑자기 등 뒤에서 한기가 느껴져 외투를 두르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집으로 갔다....최상 그룹, 꼭대기 층.최연준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발아래 번화한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깊은 눈동자에는 차가운 한기가 서렸다.“도련님.” 방한서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서 낮은 목소리로 보고했다.“신 의사님의 거처를 준비해 드렸습니다. 오늘 의학연구센터로 출근할 겁니다.”“응.”최연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신 의사님은 외과 의사이지만 정신과나 심리학 쪽에서도 연구 성과가 있어 의학센터 쪽에서는 평소에도 진료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오후에 오성에 도착하자마자 연희 아가씨를 만났는데 아가씨의 기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방한서의 보고를 다 듣고 나서야 최연준은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천천히 풀었다.“다행이다.”그는 돌아서 방한서를 보고 말했다.“서연이는 연희가 백화점에서 쓰러진 것이 인지석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어.”“하지만...”방한서는 여전히 의문이 많다.“저희가 이미 CCTV를 확인해 보았는데, 그때 인지석은 아가씨 곁에 없었어요.”최연준은 한참 동안 생각을 하고 조용히 말했다.“아마도 두 사람이 평소에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을 것 같아...”“도련님 뜻은?”“만약 그들 두 사람이 정말로 연애하고 있다면, 핸드폰에 틀림없이 서로 주고받은 문자가 있을 거야.”최연준은 표정이 어두웠다.“연희는 절대로 핸드폰을 보여주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해서든 인지석의 핸드폰을 구해와야 해!”“네. 알겠습니다.”방
“나는 딸일 것 같아.”임우정은 배를 만지며 말했다.“아기가 너무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다른 사람들은 임신 초기에 온갖 반응을 보이고 토하고 어지러워하는데 나는 전혀 반응이 없어서 잘 먹고 잘 자고 있어!”“언니...”강서연은 웃으며 말했다.“배려심이 많은 건 아기가 아니라 경섭 씨 아니에요?”그녀는 부엌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육경섭은 주방에서 임산부 식단을 만들고 있었다. 균형 잡힌 레시피에 비주얼도 갖추었고 예쁜 그릇에 토핑까지 해서 그야말로 임산부 식단 포맷이다.부엌에 기대어 있던 최연준마저도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자신이 강서연에게 만들어줬던 아침 식사를 떠올렸다... 탄 토스트, 탄 계란, 시리얼이 없는 시리얼죽...그는 자신이 평생 노력해도 육경섭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왜 멍하니 서 있어요?”육경섭은 손을 닦고 자신의 걸작을 감상하다가 작은 문제를 발견했다.“안 돼... 우정이는 당근 냄새를 맡으면 속이 쓰리다고 해서 당근 조각들을 모두 골라내야 해!”그리고 그는 젓가락을 들고 조금씩 고르기 시작했다.최연준은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저를 숭배할 필요는 없어요.”육경섭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알려줄게요... 제가 이렇게 시중을 들었는데도 우정이는 하루 종일 나를 못마땅해요.”“왜요?”“호르몬 때문이겠죠.”육경섭은 어깨를 으쓱했다.“괜찮아요. 제가 선택한 마누라는 무릎 꿇어서라도 끝까지 모셔야죠!”“네, 정신력이 대단하시네요.”“제 생명보다 소중한 사람인데 당연히 지켜야죠!”최연준은 웃으며 목청을 가다듬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제가 할 말이 있어요.”“뭔데요?”“나석진, 계약 못 할 것 같아요.”육경섭은 갑자기 멘탈이 나갔고 칼을 들어 그를 베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몇 초 후, 주방에서 핑퐁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강서연과 임우정이 들었다...“최연준! 최연준!”육경섭은 국자를 들고 그를 때리려고 했다.“내가
최연준은 나석진의 배경에는 관심이 없었다.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들고 있던 주걱을 테이블 위에 털썩 내던지고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 안은 채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까만 눈동자에는 알 수 없는 분위기가 감돌았다.육경섭은 계속해서 말했다.“듣기로는 성남 사람인데 그쪽 가문과 남양의 군사 세력이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해요. 그 사람의 성과는 개인의 노력과 떼어놓을 수 없지만 그 뒤의 세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빨리 성공할 수 없었을 거예요!”최연준은 그를 힐끗 보고 침묵하다가 한마디 했다.“이게 무슨 배경이라고...”육경섭은 멀리서도 질투의 감정을 느꼈다.“단지 알려줬을 뿐이에요.”육경섭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적을 알아야 승산이 있어요! 만약 그 사람을 상대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내가 그 사람의 배경을 알아서 뭐 하게요?”최연준은 냉소했다.“오성에서는 내가 왕이에요!”“왕이라고요? 그럼, 도련님께서 담배 한 갑을 사 올 수 있어요?”“...”“소소한 요구를 만족시켜 줄 수 있습니까?”“육경섭!”최연준은 얼굴빛이 굳어졌고 이를 갈며 큰소리쳤다.육경섭은 억지로 웃음을 참으며 그에게 손사래를 치고 계속해서 감자채 썰기에 바빴다.‘담배 한 갑도 아까워한 게 누군데? 담배 살 돈도 없다고 비웃은 게 누군데? 다 이유가 있는 법이야!’“육경섭 씨, 칼에 손 조심하세요!”...보름 후.검은 롤스로이스가 명황세가의 문 앞에 멈췄다.오늘 밤 이곳에는 유명 인사들이 총출동했고 전부 지위가 있는 분들이다. 강서연은 유리창 너머로 한 번 보기만 해도 이런 고급 연회의 포스와 위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최연준과 손깍지를 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좀 불안해졌다.남자는 그녀의 약간 차가운 손끝을 느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자리가 처음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은 대표님도 전에 본 적이 있잖아. 그분은 아주 친절한 사람이야.”“알아요.”강서연은 심호흡을 한번 했다.“그래
강서연은 목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강유빈이 골든 드레스를 입고 사람들 사이를 활보하는 것을 봤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임나연이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이런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최씨 가문의 큰 사모님이면 어때서? 그래봤자 졸부일 뿐이잖아! 오성에서 은씨 집안이 돼지 사료 파는 거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하하하...”은미연은 이쪽의 소리를 듣고 얼굴빛이 금세 바뀌었다. 적지 않은 하객들도 이런 말을 듣고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여러 대가족에 비해 은씨 집안은 그리 깊은 가족역사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은씨 집안은 돈이 많아서 농산업 외에도 땅을 사서 건물을 짓는 것은 일도 아니다.상류사회에서는 감히 은씨 집안을 무시하는 사람이 없고, 졸부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더더욱 없다.강서연은 그쪽을 바라봤는데 강유빈의 의기양양한 표정은 마치 호구 같았다.그녀는 강유빈이 또 남에게 이용당했다고 단정했다.강서연은 그녀의 행동에 대해 창피했다. 강유빈과 혈연관계는 없지만 20년 넘게 강씨 집안과 같이 지내왔다.“은 대표님...”강서연은 미안해했다.“듣지 마세요. 이 사람은...”“이 사람이 서연 씨 언니죠?”은미연은 태연자약했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유빈이 다가와 과장된 몸짓으로 강서연에게 손을 흔들었다.“어이구, 내 동생! 너도 여기 있었구나?”강서연은 어쩔 수 없이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주위에는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이 두 자매가 무슨 수단을 썼는지 모르겠지만, 최씨 가문의 두 도련님을 다 꼬시다니!”“최씨 가문에 시집갈 수 있을지는 또 별개의 문제죠.”“큰 사모님께서 방금 그 강씨 아가씨를 대하는 태도가 심상치 않은 건 셋째 도련님의 체면을 봐서 그런 거고... 이제 저 여자와 이 강씨 아가씨의 관계를 알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불만이 있지 않을까요?”강서연은 마음이 조급해서 은미연의 손에서 손을 빼내려 했지만, 은미연은 그녀의 손을 더 꽉 쥐었다.은미연은 그녀를 보며 부드럽게 웃었고, 눈빛에는
주변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사람들도 그저 구경하려는 것일 뿐 강유빈 때문에 최씨 가문 큰 사모님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게다가 강유빈은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두고 있을 뿐이었다.“강유빈 씨 화가 많이 났네요?”은미연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 술로 화 좀 가라앉혀요!”강유빈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얼굴을 쓱 닦자, 화장이 전부 번지고 말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옆에 있던 케이크를 집었다. 그런데 던지기도 전에 마침 도착한 경호원에게 잡히고 말았다.은미연은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날카롭게 째려보았다.“앞으로 또 한 번 뒤에서 수군거리다가 내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술 한 잔 뿌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 혀를 확 뽑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명심해요!”...은미연은 강서연과 함께 메이크업을 수정하러 대기실로 갔다.“저 여자를 언제부터 혼쭐 내주고 싶었어요!”은미연이 레드 립스틱을 바르자 더욱 생기가 돌았다.“최지한은 어디 가서 저런 여자를 찾았대요? 최씨 가문 자제들은 정말 점점 형편없어지는 것 같아요. 저 강유빈도 문제예요. 최지한의 마음에 들었으면 해원 별장에 얌전히 있기나 할 것이지, 괜히 나와서 내 심기를 건드려서는...”그러더니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강서연을 쳐다보았다.“서연 씨, 내가 이렇게 말해도 괜찮죠?”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방긋 웃었다.“그럼요!”“내가 괜한 생각 했네요.”은미연도 따라 웃었다.“서연 씨가 감정을 중요시한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까 강유빈한테 함부로 해서 마음이 아파할까 봐 걱정했어요.”“감정을 중요시하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죠.”강서연이 덤덤하게 말했다.“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보답할 거예요. 하지만 해하려는 사람이라면 제가 마음 아파할 이유가 없죠.”“좋아요, 그런 마인드라면 됐어요!”은미연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그녀도 김자옥처럼 좋고 싫음이 분명한
화들짝 놀란 임나연이 고개를 돌렸다.“아, 매니저님.”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액세서리를 놓고 왔다면서 저더러 가져다 달라고 해서요. 그런데 저한테 카드 키가 없어요.”“괜찮아요. 저한테 카드 키가 있어요.”호텔 매니저는 다정하게 웃으며 카드 키를 꺼내 방문을 열어주었다.강서연이 박경실에게 눈짓하며 잠깐 옷장 안에 숨어있으라고 하자 박경실이 냉큼 움직였다.비록 나이가 있지만 움직임이 민첩하고 체구도 아담하여 큰 옷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그녀가 옷장 속에 숨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임나연이 들어왔다.주변을 살피던 임나연은 강서연이 혼자 서 있는 걸 보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임나연 씨.”강서연이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나연 씨도 쉬러 왔어요?”임나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하지만 여긴 은 대표님의 전용 룸이에요.”강서연은 겁먹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여기서 쉬려면 대표님께 먼저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러자 임나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강서연을 노려보았다.조금 전 강유빈은 ‘졸부’라는 단어로 은미연에게 치욕을 안겨주려 했었다. 하지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호텔에서 쫓겨나고 말았다.‘못난 것 같으니라고!’그 바람에 스스로 자기 따귀를 때리는 계획을 강유빈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강서연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임나연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은 대표님의 전용 룸?”임나연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마치 자기 방인 듯 물 한 잔을 따랐다.“서연 씨도 여기 있잖아요.”“우린 들어온 방식이 다르잖아요.”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대표님이랑 함께 들어온 거고 나연 씨는...”강서연은 그녀가 들고 있는 여분의 카드 키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임나연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아직 화를 낼 때가 아니야.’방안에 CCTV도 없고 또 은미연의 전용 룸이라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군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올 게 뻔했다.임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하지만 임나연은 그녀를 꽉 잡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급해진 강서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밀어버리려 했다.두 사람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 임나연의 두 눈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강서연을 놓아주더니 갑자기 자기 뺨을 마구 후려갈기기 시작했다.임나연이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서연은 순간 멍해졌다. 임나연의 두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또 미친 듯이 문 앞으로 다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밖에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강서연이 절 죽이려 해요!”그녀는 소리치며 달려 나가 비상벨을 눌렀다. 그러자 호텔 매니저와 종업원, 그리고 경비원까지 삽시간에 우르르 몰려들었다.연회장에 있던 사람들도 벨 소리를 듣고 위층으로 달려왔다.임나연은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당황한 연기를 하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최연준도 인파 속에 있는 걸 확인한 그녀는 냅다 울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달려갔다.“연준 씨... 아까 난 그저 서연 씨랑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다짜고짜 날 때리더라고요!”최연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확 밀쳤다. 그녀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싸늘함 뿐이었다.임나연의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했고 두 볼이 벌겋게 부어있었다.손님들은 그녀의 초라한 모습에 저마다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면서 시선을 강서연에게 옮겼다.지금, 이 순간 최연준은 강서연이 가장 걱정되었다. 그는 인파를 뚫고 강서연의 곁으로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았다.강서연은 그를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히죽 웃었다.“당신이 때리지 않았다는 거 알아.”최연준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하지만 일이... 조금 복잡하게 됐어.”순간 멈칫한 강서연이 고개를 들어보니 몇몇 어르신들이 임나연을 위로하고 있었다. 딱 봐도 임씨 가문의 사람인 것 같았다.그들은 오만한 기세로 진지하게 최연준을 쳐다보았다.“연준아.”그중 한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지금 옆에 있는 저 아가씨랑 무슨 관계인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