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하지만 사람들도 그저 구경하려는 것일 뿐 강유빈 때문에 최씨 가문 큰 사모님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어리석진 않았다. 게다가 강유빈은 자기가 뿌린 씨를 자기가 거두고 있을 뿐이었다.“강유빈 씨 화가 많이 났네요?”은미연은 그녀를 내려다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 술로 화 좀 가라앉혀요!”강유빈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얼굴을 쓱 닦자, 화장이 전부 번지고 말았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옆에 있던 케이크를 집었다. 그런데 던지기도 전에 마침 도착한 경호원에게 잡히고 말았다.은미연은 천천히 그녀 앞으로 다가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날카롭게 째려보았다.“앞으로 또 한 번 뒤에서 수군거리다가 내 귀에 들리기라도 한다면 술 한 잔 뿌리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 혀를 확 뽑아버릴 수도 있으니까 명심해요!”...은미연은 강서연과 함께 메이크업을 수정하러 대기실로 갔다.“저 여자를 언제부터 혼쭐 내주고 싶었어요!”은미연이 레드 립스틱을 바르자 더욱 생기가 돌았다.“최지한은 어디 가서 저런 여자를 찾았대요? 최씨 가문 자제들은 정말 점점 형편없어지는 것 같아요. 저 강유빈도 문제예요. 최지한의 마음에 들었으면 해원 별장에 얌전히 있기나 할 것이지, 괜히 나와서 내 심기를 건드려서는...”그러더니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강서연을 쳐다보았다.“서연 씨, 내가 이렇게 말해도 괜찮죠?”강서연은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방긋 웃었다.“그럼요!”“내가 괜한 생각 했네요.”은미연도 따라 웃었다.“서연 씨가 감정을 중요시한다는 거 알아요. 그래서 아까 강유빈한테 함부로 해서 마음이 아파할까 봐 걱정했어요.”“감정을 중요시하는 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죠.”강서연이 덤덤하게 말했다.“저한테 잘해주는 사람이라면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보답할 거예요. 하지만 해하려는 사람이라면 제가 마음 아파할 이유가 없죠.”“좋아요, 그런 마인드라면 됐어요!”은미연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그녀도 김자옥처럼 좋고 싫음이 분명한
화들짝 놀란 임나연이 고개를 돌렸다.“아, 매니저님.”그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큰 사모님께서 액세서리를 놓고 왔다면서 저더러 가져다 달라고 해서요. 그런데 저한테 카드 키가 없어요.”“괜찮아요. 저한테 카드 키가 있어요.”호텔 매니저는 다정하게 웃으며 카드 키를 꺼내 방문을 열어주었다.강서연이 박경실에게 눈짓하며 잠깐 옷장 안에 숨어있으라고 하자 박경실이 냉큼 움직였다.비록 나이가 있지만 움직임이 민첩하고 체구도 아담하여 큰 옷장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그녀가 옷장 속에 숨자마자 아니나 다를까 임나연이 들어왔다.주변을 살피던 임나연은 강서연이 혼자 서 있는 걸 보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임나연 씨.”강서연이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나연 씨도 쉬러 왔어요?”임나연이 덤덤하게 대답했다.“네.”“하지만 여긴 은 대표님의 전용 룸이에요.”강서연은 겁먹지도 비굴하지도 않았다.“여기서 쉬려면 대표님께 먼저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그러자 임나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강서연을 노려보았다.조금 전 강유빈은 ‘졸부’라는 단어로 은미연에게 치욕을 안겨주려 했었다. 하지만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되레 호텔에서 쫓겨나고 말았다.‘못난 것 같으니라고!’그 바람에 스스로 자기 따귀를 때리는 계획을 강유빈이 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 앞에서 강서연이 망신당하는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자 임나연은 기분이 언짢아졌다.“은 대표님의 전용 룸?”임나연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마치 자기 방인 듯 물 한 잔을 따랐다.“서연 씨도 여기 있잖아요.”“우린 들어온 방식이 다르잖아요.”강서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저는 대표님이랑 함께 들어온 거고 나연 씨는...”강서연은 그녀가 들고 있는 여분의 카드 키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임나연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아직 화를 낼 때가 아니야.’방안에 CCTV도 없고 또 은미연의 전용 룸이라 조금이라도 시끄럽게 군다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달려올 게 뻔했다.임나연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하지만 임나연은 그녀를 꽉 잡고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급해진 강서연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밀어버리려 했다.두 사람이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그때 임나연의 두 눈에 싸늘함이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를 꽉 깨물고 강서연을 놓아주더니 갑자기 자기 뺨을 마구 후려갈기기 시작했다.임나연이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강서연은 순간 멍해졌다. 임나연의 두 볼이 벌겋게 부어올랐고 또 미친 듯이 문 앞으로 다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밖에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강서연이 절 죽이려 해요!”그녀는 소리치며 달려 나가 비상벨을 눌렀다. 그러자 호텔 매니저와 종업원, 그리고 경비원까지 삽시간에 우르르 몰려들었다.연회장에 있던 사람들도 벨 소리를 듣고 위층으로 달려왔다.임나연은 일부러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당황한 연기를 하며 문 앞에 서 있었다. 최연준도 인파 속에 있는 걸 확인한 그녀는 냅다 울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달려갔다.“연준 씨... 아까 난 그저 서연 씨랑 얘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인데... 갑자기 다짜고짜 날 때리더라고요!”최연준은 무뚝뚝한 얼굴로 그녀를 확 밀쳤다. 그녀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싸늘함 뿐이었다.임나연의 얼굴에 손자국이 선명했고 두 볼이 벌겋게 부어있었다.손님들은 그녀의 초라한 모습에 저마다 이러쿵저러쿵 수군거리면서 시선을 강서연에게 옮겼다.지금, 이 순간 최연준은 강서연이 가장 걱정되었다. 그는 인파를 뚫고 강서연의 곁으로 다가가 커다란 손으로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감싸 안았다.강서연은 그를 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히죽 웃었다.“당신이 때리지 않았다는 거 알아.”최연준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하지만 일이... 조금 복잡하게 됐어.”순간 멈칫한 강서연이 고개를 들어보니 몇몇 어르신들이 임나연을 위로하고 있었다. 딱 봐도 임씨 가문의 사람인 것 같았다.그들은 오만한 기세로 진지하게 최연준을 쳐다보았다.“연준아.”그중 한 어르신이 입을 열었다.“지금 옆에 있는 저 아가씨랑 무슨 관계인
모든 이의 시선이 강서연에게 쏠렸다.최연준은 걱정스럽게 그녀를 쳐다보다가 몰래 방한서에게 준비하라고 했다.“임씨 가문 사람들만 남기고 원하는 게 뭔지 물어봐. 이 일 크게 번지게 해서는 안 돼. 최소한 할아버지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않게 해야 해.”“하지만 도련님.”방한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딱 봐도 임나연 씨가 서연 씨를 모함하려는 거잖아요.”최연준이 이를 꽉 깨물었다.“일이 이미 터졌으니 일단 잠재우고... 나중에 다시 해결해야지!”“알겠습니다.”방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어르신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는 조롱 섞인 얼굴로 강서연을 쳐다보았다.“그럼, 서연 씨는 어떻게 알아서 할 건데요?”“먼저 아저씨한테 물어볼 게 있어요.”강서연이 덤덤하게 웃었다.“만약 제가 때린 게 아니라면 임씨 가문에서는 저한테 어떻게 하실 건가요?”“사실이 눈앞에 떡하니 놓여있는데도 발뺌하려고요?”임정수가 버럭 화를 냈다.그는 임씨 가문의 실세나 다름없었다. 수년간 사업을 해왔고 그의 형인 임건마저도 그의 눈치를 보며 고분고분 따라야 했다.임정수는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눈앞의 이 젊은 여자는 남다른 분위기를 풍겼고 그의 앞에서도 전혀 겁먹은 기색이라곤 없었다.임정수는 실눈을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나연이는 이 여자의 상대가 아니야.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이 여자를 연준이 옆에서 쫓아내야겠네!’임정수는 이 일이 임나연이 스스로 벌인 자작극이라는 걸 대충 짐작했다. 하지만 임씨 가문의 이익을 위하여 일을 크게 벌이는 수밖에 없었다.이 일이 최재원의 귀에 들어가 최재원이 직접 나서서 강서연을 내쫓는다면 두 가문의 혼약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하하, 뭘 어떻게 해요?”임정수가 싸늘하게 웃었다.“당신처럼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는 여자는 참 많이 봤어요. 당신이 연준 도련님한테 빌붙어서 우리 나연이를 눈엣가시로 여겼으니 당연히 전력을 기울여서 나연이를 괴롭
지금, 이 순간 그는 마치 쥐덫에 걸린 쥐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강서연은 몰래 옷장을 힐끗거렸다. 옷장 문이 비스듬히 열려있었고 박경실은 아직도 옷장 안에서 꿈쩍도 하질 않았다.그 모습에 강서연은 피식 웃었다.원래는 박경실더러 나오라고 할 생각이었지만 인제 보니 그녀가 직접 나설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강서연이 신고 번호를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던 그때 임정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요!”주변의 분위기가 쥐 죽은 듯이 고요해졌다.임정수는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 나와 최연준과 강서연을 쳐다보았다.“이 일로... 경찰까지 부를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어쨌거나 우리 임씨 가문이랑 최씨 가문과 연관된 일이잖아.”“그 말은 옳지 않은 것 같은데요, 아저씨.”최연준의 눈빛이 싸늘해졌다.“두 가문의 체면과 직결된 일이니까 더더욱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되죠!”“그러니까 말이에요.”강서연이 웃으며 말했다.“아까 신고하겠다고 난리를 친 것도 아저씨고, 이젠 신고하지 말라는 것도 아저씨예요. 대체 아저씨가 무슨 생각인 건지 정말 모르겠네요.”임정수는 그녀를 노려보며 매섭게 말했다.“이 일은 회장님께 얘기만 하면 돼요. 그럼 회장님께서 알아서 하실 거예요.”“할아버지는 경찰도 아니고 연세도 많으신데 뭘 알아서 하신다는 거죠?”최연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혹시 뭔가 켕기는 게 있어서 신고하지 말라는 거예요?”“최연준 너...”임정수는 최연준의 성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앞에서조차 이토록 시건방을 떨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그때 임나연이 눈알을 굴리더니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쓱쓱 닦았다. 그러면 지문이 쉽게 나오지 않을 테니까...“아빠, 엄마, 그만 해요!”임나연이 훌쩍이며 말했다.“원래는 좋은 마음으로 큰 사모님 생신을 축하드리러 왔는데 이런 모함이나 당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여기서 그만 망신당하고
“아주머니...”감동한 강서연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박경실은 그런 그녀를 보며 히죽 웃었다.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할머니라 두려울 것도 없었다. 설령 권력 앞에서도, 명망이 높은 임씨 가문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없었고 강서연을 위해 끝까지 싸우려 했다.강서연과 최연준이 없었더라면 어찌 지금처럼 편히 살 수 있었겠는가?인간은 은혜를 갚을 줄 알아야 한다.“하하, 웃기고 있네!”임씨 가문 사모님은 지금까지 이런 굴욕을 당해본 적이 없었다. 임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세력이 대등하지만 최씨 가문 하인에게조차 꼼짝하지 못하는 이 상황이 어이없기만 했다.“다친 건 우리 나연이고 망신을 당한 것도 우리 임씨 가문이야. 그런데도 지금 공갈 협박하는 거야? 뭐가 녹화됐는지도 모르는 동영상 가지고 술수를 부리지 마. 우리가 그리 쉽게 속을 것 같아? 자신 있으면 틀어서 사람들한테 보여줘 봐!”뇌를 거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내뱉고야 마는 임씨 가문 사모님이었다. 임정수는 그런 그녀를 말릴 틈도 없었다.주변 사람들도 대체 무엇을 촬영했는지 궁금한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박경실은 씩 웃고는 마른기침을 두어 번 했다.“동영상은 당연히 보여줄 겁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이 증인이 되어주세요. 만약 서연 씨가 결백하다면 임씨 가문은 제대로 된 설명을 해야 할 겁니다. 이 정도 요구는 너무한 거 아니죠?”“네, 당연히 그래야죠!”인파 속에서 강서연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박경실의 이 방법이 아주 대단하다고 몰래 감탄했다. 그가 동영상을 틀자 화면에 임나연의 모습이 나타났다.그녀는 먼저 강서연의 앞길을 가로막더니 다짜고짜 자신의 양쪽 뺨을 후려갈겼다. 따귀 소리가 어찌나 찰진지 영상으로만 봐도 세게 때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렇게 모든 진실이 드러났다.손님들은 키득키득 웃기 시작했고 어떤 이는 휴대 전화까지 꺼내 임나연이 자기 뺨을 후려갈기는 영상을 촬영했다. 자기 뺨을 때리는 사람을 본 적
강서연이 덤덤하게 말했다.“보상은 됐어요. 임씨 가문의 돈 따위 필요 없고 먹칠한 제 명성만 다시 돌려놓으면 돼요!”그녀의 말에 임정수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강서연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아저씨와 아주머니, 그리고 나연 씨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저한테 진심으로 사과했으면 좋겠어요!”“말도 안 돼요!”임씨 가문 사모님이 가장 먼저 펄쩍 뛰었다. 그런데 임정수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는 이내 다시 얌전해졌다.임정수는 최연준을 보며 웃어른인 신분으로 그를 제압하려 했다.“연준아, 너도 동의해?”최연준은 웃으며 강서연을 품에 끌어안았다.“저는 제 아내의 말을 따르겠습니다.”임정수는 숨을 깊게 들이쉬면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려 애를 썼다.은미연이 사람들 앞에서 최씨 가문의 며느리라고 얘기한 것도 모자라 방금 최연준도 강서연을 그의 아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임씨 가문의 체면 따위 안중에도 없다는 뜻이었다.“연준아.”임정수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난 그래도 네 아버지랑 동갑이고 같은 지위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는 거니...”“웃어른이 잘못을 저질렀으면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가 그래요?”최연준이 목소리를 높였다.임정수는 뭐라 얘기하고 싶었지만 최씨 가문의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걸 보고는 다시 삼켰다.아무래도 오늘은 빠져나가기 그른 것 같다.그는 고개를 들고 강서연을 쳐다보았다.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고개를 숙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허리를 90도로 굽혀 정중히 사과했다.“미안해요.”강서연은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었다.임씨 가문 사모님과 임나연도 같은 방식으로 강서연에게 사과했다. 세 사람은 마치 물에 빠진 개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명황세가를 도망치듯 떠났다.호텔 밖.육경섭은 나무에 기대어 나른하게 하품을 하고는 옆에서 거의 잠들려는 방한서를 쿡쿡 찔렀다.“저기 한서 씨, 우리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해?”방한서는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호텔 쪽을 보니 별문제 없어
별장으로 돌아온 임정수는 겉옷을 벗어 바닥에 냅다 던져버렸다. 도우미들은 그저 그의 눈치만 살필 뿐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임씨 가문 사모님도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들어오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분노와 억울함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내가 이 나이 먹도록 오늘 같은 굴욕을 당한 건 처음이에요!”임정수는 그녀를 힐끗 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씨 가문 사모님도 재벌가 딸이다. 20년 전에 위풍당당하게 시집가던 그녀가, 나머지 3대 가문도 비할 수 없는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그녀가 이젠 강서연에게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신세가 돼버렸다.“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임씨 가문 사모님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내가 한 잘못이라곤...”“그만해!”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임정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임나연 앞에서는 최대한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나았다.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이는 임나연을 본 임정수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무슨 낯짝으로 거기 서 있어?”임정수가 싸늘하게 호통쳤다.“오늘 일은 다 너 때문이야! 강서연을 처리하고 싶으면 좀 제대로 된 방법을 써야지. 그리고 우리 임씨 가문이 자선 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대로 남 부끄러울 것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어. 절대 이런 방법으로 남을 해치진 않는다고! 임나연!”임정수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얼굴 근육마저 떨렸다.“너 우리 임씨 가문의 체면에 아주 똥칠했어!”임나연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의 원한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최씨 가문과의 혼약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임정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아빠, 그건 안 돼요.”임나연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제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반드시...”“방법은 무슨 방법!”순간 분노가 폭발한 임정수는 옆에 놓인 도자기를 들어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쨍그랑!”도자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