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으로 돌아온 임정수는 겉옷을 벗어 바닥에 냅다 던져버렸다. 도우미들은 그저 그의 눈치만 살필 뿐 숨소리도 내지 못했다.임씨 가문 사모님도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들어오더니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한참이 지나서야 분노와 억울함이 섞인 말투로 말했다.“내가 이 나이 먹도록 오늘 같은 굴욕을 당한 건 처음이에요!”임정수는 그녀를 힐끗 째려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임씨 가문 사모님도 재벌가 딸이다. 20년 전에 위풍당당하게 시집가던 그녀가, 나머지 3대 가문도 비할 수 없는 성대한 결혼식을 치른 그녀가 이젠 강서연에게 굽신거리며 사과하는 신세가 돼버렸다.“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래요?”임씨 가문 사모님이 눈물을 왈칵 쏟았다.“내가 한 잘못이라곤...”“그만해!”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린 임정수가 두 눈을 부릅떴다. 임나연 앞에서는 최대한 그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게 나았다.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문 앞을 서성이는 임나연을 본 임정수의 표정이 다시금 굳어졌다.“무슨 낯짝으로 거기 서 있어?”임정수가 싸늘하게 호통쳤다.“오늘 일은 다 너 때문이야! 강서연을 처리하고 싶으면 좀 제대로 된 방법을 써야지. 그리고 우리 임씨 가문이 자선 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대로 남 부끄러울 것 없이 떳떳하게 살아왔어. 절대 이런 방법으로 남을 해치진 않는다고! 임나연!”임정수는 어찌나 화가 났는지 얼굴 근육마저 떨렸다.“너 우리 임씨 가문의 체면에 아주 똥칠했어!”임나연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마음속의 원한이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최씨 가문과의 혼약은 아무래도 포기해야 할 것 같아...”임정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아빠, 그건 안 돼요.”임나연이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제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반드시...”“방법은 무슨 방법!”순간 분노가 폭발한 임정수는 옆에 놓인 도자기를 들어 그대로 바닥에 던져버렸다.“쨍그랑!”도자기가
임나연은 마치 조각상처럼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임나연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보육원, 입양, 재벌 딸...’임씨 가문 사모님의 말들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면서 마지막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아버렸다.임나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자랑스럽게 여겼던 임씨 가문 딸이라는 신분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보잘것없었다. 그녀는 가면을 쓴 재벌 집 딸이었고 가면 속에는 만신창이인 얼굴뿐이었다....임나연은 넋이 나간 채로 마당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 같은 임씨 저택에 그녀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녀는 긴 복도를 돌아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독채 하나가 있었는데 주변에 산이 있고 물이 흐르고 있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그녀는 문 앞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대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 아가씨?”그때 한 도우미가 문을 열러 나왔다가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동생은요?”“쉬고 있어요.”“들어가서 좀 볼게요.”도우미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임나연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건물의 인테리어가 아주 정교했고 장식품 하나하나 전부 다 귀한 것이었다. 이곳의 주인이야말로 임씨 부부의 친딸이었다.임나연이 안방 문을 열자 널찍하고 예쁜 방안에 세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의료기계들이 가득 차 있었다.창백한 얼굴에 삐쩍 마른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옆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소녀는 임나연을 보자마자 살짝 멈칫했다. 예쁘고 커다란 두 눈에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언니.”소녀가 임나연을 불렀다.마음속의 분노가 임나연의 이성을 집어삼킨 바람에 웃음이 나질 않았지만 억지로 쥐어짜며 걱정하는 척 다가갔다.“요즘 몸은 좀 나아졌어?”“네.”임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나연은 돌아서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말했다.“다들 잠깐 나가 있어요.
임수정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임나연은 냅다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두피가 다 벗겨질 지경이었다. 임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임나연을 보며 힘겹게 말했다.“언니, 이러지 말아요...”“왜? 싫어?”임나연의 표정이 흉악스럽게 변했고 머리채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너만 없었으면 엄마 아빠는 모든 사랑을 나한테만 줬을 거야. 난 너보다 건강하고 예쁜 데다가 능력까지 있는데... 왜 난 너의 대체품이어야 하는 건데! 임수정, 이게 다 너 때문이야!”임나연은 그녀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넌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임씨 가문의 딸은 나야, 나라고! 천한 년, 왜 아직도 안 죽어!”“이러지 말아요!”임수정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그녀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그동안 쭉 참아왔던 임나연은 임수정에게 화풀이했다. 임수정은 임나연이 한 짓을 사람들에게 까발리고 싶었지만, 임나연은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다시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협박했다.“수정아, 지금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건 나라서 나한테 아무런 경계심이 없어. 그러니까 엄마 아빠를 죽이는 건 개미 새끼 두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쉬워!”임수정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밖에 나갈 수 없어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였다. 하여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임수정은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임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묵묵히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부모님을 잃을까 두려웠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을까 두려웠다.임나연은 매번 그녀를 괴롭힌 후 예쁘게 단장까지 해주었다. 그러면서 절대 도우미들에게 샤워를 도와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만 학대를 가했다. 누군가 상처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아무 이유나 대서 넘어갈 수 있었다.그리고 부모님이 그녀를 보려 할 때면 몸이 좋지 않다거나 다른 핑계를 대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하여 그녀가 지금까지 무슨 일을
‘둘만의 시간이라...’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이 얘기를 전에 최연준에게 한 적이 있었다.최연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훤히 드러난 어깨를 감싸 안았다...이른 아침, 최연준이 먼저 눈을 떴다. 강서연이 아직 자고 있어 살금살금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박경실이 미리 준비한 국을 데웠다.박경실은 요 며칠 매일 몸에 좋은 국을 끓여주었고 강서연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셨다. 하지만 아무리 몸보신해도 저녁에는 여전히 쉽게 지쳤다.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갑자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마당을 향해 있는 주방 창가에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햇볕을 쬐며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이 뚱냥이는 에덴에 자주 나타나는 단골이었다.처음 봤을 때는 삐쩍 마르고 가여운 길고양이였었다. 게다가 젖도 떼지 못한 어린 고양이라 살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그 후 강서연은 마당에 집까지 지어주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고양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고 밥도 잘 먹었다.가끔 강서연이 외출할 때 꼬리를 흔들며 뛰어와서는 그녀의 발밑에서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최연준은 예전부터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강서연이 좋아하기 때문에 고양이가 집 근처에서 마음대로 다니도록 내버려 두었다.“야, 너 또 왔어?”그는 커튼을 열며 뚱냥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를 본 뚱냥이는 기지개도 멈추고 도도한 표정을 짓더니 옆으로 휙 숨어버렸다.최연준은 어이가 없어 눈을 희번덕거렸다.‘싫으면 됐어!’최연준이 국을 들고 나가려던 그때 뚱냥이는 창가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그를 떠보는 듯했다. 들어오고 싶었지만, 최연준인 걸 보고는 또다시 망설였다...최연준은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이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방에 딱히 먹을 것이 없어 국 한 그릇을 떠다가 창가 위에 올려놓았다.만약 평소였더라면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기에 망정이지...최연준이 웃으
강서연은 별다른 수가 없어 작은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입술에 진한 키스를 남겼다.비록 너무 만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었다.“아침 할 필요 없어요.”강서연이 다정하게 말했다.“지금쯤이면 경실 아주머니가 장 다 보고 올 시간이에요. 보니까 아주 능숙하게 아침상을 뚝딱 차리더라고요. 아참, 아주머니가 아침밥 먹기 전에 이 국을 마시라고 했어요.”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국을 마시려 했다. 그런데 최연준은 뭔가가 뇌리에 스쳤는지 국을 옆으로 내려놓았다.강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왜... 왜 그래요?”“아, 아니야.”최연준은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났다.“국이 식었어. 마시지 마.”“아주머니가 데워놓지 않았어요?”“서연아.”최연준이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당분간은 이런 국 마시지 마. 그리고 경실 아주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집안일에 밥까지 하기에는 너무 힘들 거야.”강서연이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진지한 모습에 그녀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앞으로 집에서 식사할 땐 호텔에 연락해서 가져오라고 할게.”화들짝 놀란 강서연은 그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최연준은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 후 그녀와 함께 명황세가로 가서 조식을 먹었다.그는 자신의 의심병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국을 마시지 않았다고 해서 뭘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지금까지 박경실은 강서연을 살뜰히 챙겼고 그 모습을 최연준도 쭉 봐왔었다. 사실 그도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세심한 것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연준 씨, 왜 그래요?”최연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서연이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요?”최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오늘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어요.”강서연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히죽 웃으며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이따가 내가 출근해야 해서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최연준
강서연은 혀를 날름 내밀고는 눈웃음을 지었다.그녀는 그를 뒤로한 채 홀로 길거리에 나섰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와 가까워 골목 하나만 지나면 되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최연준이 건물 밑에 잠깐 서 있던 그때 방한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도련님, 김 대표님의 일 처리 스타일을 아직도 모르세요? 부하직원이 사적인 감정 때문에 일에 영향 주는 걸 가장 싫어하세요. 회사에 대표님과 서연 씨의 관계를 공개한다면 성가신 일이 아주 많이 생길 겁니다!”최연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성가신 일?”“예를 들어... 김 대표님이 관리하는 연예인들도 따라서 연애를 한다든가... 그러면 어찌 일에 몰두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최연준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그러니까 내 와이프랑 모르는 사이인 척하란 말이야?”방한서가 웃으며 말했다.“아무튼... 이건 김 대표님의 지시예요.”최연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 싶었다!그런데 그가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대문에 발을 들인 순간 프런트 직원이 그를 막아섰다.새 회사라 김자옥은 원래 있던 직원을 싹 다 갈아치웠다. 하여 지금 이 회사의 직원 중에 하 매니저 말고는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누굴 찾으러 오셨나요? 예약하셨나요?”“강 비서님이요? 강 비서님 바빠서 그쪽을 만날 시간이 없어요. 일 방해하지 말고 당장 나가주시겠어요? 안 그러면 경비원 부를 겁니다!”“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강 비서님은 얼굴이 예쁘고 마음도 착할 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도 뛰어나서 비서님을 따라다니는 남자가 아주 줄을 섰어요. 저런... 똥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는 비서님을 만날 자격도 없어요.”‘똥차? 저 차가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강 비서가 사준 거야! 그것도 나한테만!”...강서연은 퇴근 후 에덴으로 돌아갔다.오늘 프런트 직원에게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직원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이 바로 최연준일 거라고 예상했다.하지
강서연은 불안감이 밀려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그런데 그때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순간 움찔한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휴대 전화 너머로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서연 씨? 저 신석훈입니다.”“아, 네.”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신 의사님이군요.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신석훈은 잠깐 멈칫하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지금 연구소로 올 수 있어요? 제가 일하는 곳 말이에요. 오늘 진료가 있어서 심리상담과에 있어요.”강서연은 최연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예감이 바로 들었다. 하여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연구소로 달려갔다.그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신석훈은 인사말을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요 며칠 연희랑 꾸준하게 심리 상담을 했거든요.”신석훈은 상담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 결과를 확인한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우울증’이라는 세 글자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슴팍에 꽂혔다.“이게 대체...”그녀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신석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여러 검사를 한 후에 종합적으로 내린 진단이에요.”“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아직은 가벼운 우울증이에요. 치료만 잘한다면 완치는 문제없을 겁니다.”신석훈이 안타까워했다.“상담하면서 보니까 연희가 자신감이 없는 게 외부 스트레스 때문이더라고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계속 연희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된 것 같아요.”강서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인지석이 틀림없어! 그런데 대체 왜 연희 양한테 이러는 거지?’“아직은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았어요.”신석훈이 말을 이었다.“지금 매일 나랑 얘기하게끔 노력하고 있거든요. 완전히 입을 다문 것만 아니면 분명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 얘기 하려고 서연 씨를 부른 거예요. 서연 씨랑 연준 씨는 걱정하지 말아요. 연희가 저랑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네.”강서연은 고
강서연의 표정이 흔들리더니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에, 집에서 불쾌한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녀도 인지석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오성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강서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 사람은 최상 빌라의 집사라서 매일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함부로 자리를 비울 리가 있을까요?”“아...”신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연희가 요 며칠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오성을 떠난 줄 알았어요.”“석훈 씨!”강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절대 연희 양과 만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랑 연준 씨 모두 연희 양이 그 사람과 연락을 끊길 바라고 있어요. 그 사람은 너무 위험해요!”신석훈은 잠깐 고뇌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조수가 헐레벌떡 뛰어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연희 양이 깼어요. 그런데 정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신석훈은 재빨리 상담실로 달려갔다.강서연도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는 신석훈의 뒤를 따랐다. 그가 들어가자, 최연희는 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한시름을 놓은 듯했다.신석훈은 그녀에게 간단한 검사를 진행하고 별문제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그의 웃음은 마치 겨울의 햇볕처럼 따스했고 먹구름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만 같았다.밖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석훈이 문을 살며시 닫고 나왔다. 강서연이 아직 있는 걸 보고는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괜찮아졌어요.”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상담받다가 요 며칠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소파에서 잠들었더라고요. 깨어나 보니까 주변 환경이 낯설어서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요.”강서연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연희 양의 정신 상태가 이렇게나 많이 안 좋아요?”“많이 안 좋은 건 아니에요.”신석훈이 어깨를 들썩였다.“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참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한테 나중에 의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