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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임나연은 마치 조각상처럼 제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임나연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보육원, 입양, 재벌 딸...’

임씨 가문 사모님의 말들이 그녀의 귓가에 맴돌면서 마지막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아버렸다.

임나연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늘 자랑스럽게 여겼던 임씨 가문 딸이라는 신분이 사실은 무엇보다도 보잘것없었다. 그녀는 가면을 쓴 재벌 집 딸이었고 가면 속에는 만신창이인 얼굴뿐이었다.

...

임나연은 넋이 나간 채로 마당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웅장하고 화려한 성 같은 임씨 저택에 그녀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긴 복도를 돌아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 독채 하나가 있었는데 주변에 산이 있고 물이 흐르고 있어 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녀는 문 앞에 서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대문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아... 아가씨?”

그때 한 도우미가 문을 열러 나왔다가 그녀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여긴 어쩐 일로 왔어요?”

“동생은요?”

“쉬고 있어요.”

“들어가서 좀 볼게요.”

도우미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임나연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의 인테리어가 아주 정교했고 장식품 하나하나 전부 다 귀한 것이었다. 이곳의 주인이야말로 임씨 부부의 친딸이었다.

임나연이 안방 문을 열자 널찍하고 예쁜 방안에 세상에서 가장 선진적인 의료기계들이 가득 차 있었다.

창백한 얼굴에 삐쩍 마른 소녀가 휠체어에 앉아있었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옆에서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소녀는 임나연을 보자마자 살짝 멈칫했다. 예쁘고 커다란 두 눈에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졌다.

“언니.”

소녀가 임나연을 불렀다.

마음속의 분노가 임나연의 이성을 집어삼킨 바람에 웃음이 나질 않았지만 억지로 쥐어짜며 걱정하는 척 다가갔다.

“요즘 몸은 좀 나아졌어?”

“네.”

임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임나연은 돌아서서 의사와 간호사에게 말했다.

“다들 잠깐 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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