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정은 거절하고 싶었지만, 임나연은 냅다 그녀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어찌나 세게 잡아당겼는지 두피가 다 벗겨질 지경이었다. 임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임나연을 보며 힘겹게 말했다.“언니, 이러지 말아요...”“왜? 싫어?”임나연의 표정이 흉악스럽게 변했고 머리채를 더 세게 잡아당겼다.“너만 없었으면 엄마 아빠는 모든 사랑을 나한테만 줬을 거야. 난 너보다 건강하고 예쁜 데다가 능력까지 있는데... 왜 난 너의 대체품이어야 하는 건데! 임수정, 이게 다 너 때문이야!”임나연은 그녀를 잡고 미친 듯이 흔들었다.“넌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해! 임씨 가문의 딸은 나야, 나라고! 천한 년, 왜 아직도 안 죽어!”“이러지 말아요!”임수정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는 그녀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그동안 쭉 참아왔던 임나연은 임수정에게 화풀이했다. 임수정은 임나연이 한 짓을 사람들에게 까발리고 싶었지만, 임나연은 입을 함부로 놀렸다간 다시는 부모님을 만날 수 없을 거라고 협박했다.“수정아, 지금 엄마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는 건 나라서 나한테 아무런 경계심이 없어. 그러니까 엄마 아빠를 죽이는 건 개미 새끼 두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보다도 더 쉬워!”임수정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 밖에 나갈 수 없어 세상과 단절된 지 오래였다. 하여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임수정은 곧이곧대로 믿을 거라는 걸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임수정은 이를 꽉 깨물고 묵묵히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부모님을 잃을까 두려웠고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가족을 잃을까 두려웠다.임나연은 매번 그녀를 괴롭힌 후 예쁘게 단장까지 해주었다. 그러면서 절대 도우미들에게 샤워를 도와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그녀는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만 학대를 가했다. 누군가 상처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아무 이유나 대서 넘어갈 수 있었다.그리고 부모님이 그녀를 보려 할 때면 몸이 좋지 않다거나 다른 핑계를 대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다. 하여 그녀가 지금까지 무슨 일을
‘둘만의 시간이라...’강서연의 두 볼이 발그스름해졌다. 이 얘기를 전에 최연준에게 한 적이 있었다.최연준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훤히 드러난 어깨를 감싸 안았다...이른 아침, 최연준이 먼저 눈을 떴다. 강서연이 아직 자고 있어 살금살금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박경실이 미리 준비한 국을 데웠다.박경실은 요 며칠 매일 몸에 좋은 국을 끓여주었고 강서연은 하루에도 여러 번 마셨다. 하지만 아무리 몸보신해도 저녁에는 여전히 쉽게 지쳤다.최연준은 가볍게 웃으며 주방으로 향했다. 갑자기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는데 마당을 향해 있는 주방 창가에 뚱뚱한 고양이 한 마리가 햇볕을 쬐며 여유롭게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이 뚱냥이는 에덴에 자주 나타나는 단골이었다.처음 봤을 때는 삐쩍 마르고 가여운 길고양이였었다. 게다가 젖도 떼지 못한 어린 고양이라 살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그 후 강서연은 마당에 집까지 지어주며 정성껏 보살폈다. 그녀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고양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고 밥도 잘 먹었다.가끔 강서연이 외출할 때 꼬리를 흔들며 뛰어와서는 그녀의 발밑에서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최연준은 예전부터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강서연이 좋아하기 때문에 고양이가 집 근처에서 마음대로 다니도록 내버려 두었다.“야, 너 또 왔어?”그는 커튼을 열며 뚱냥이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를 본 뚱냥이는 기지개도 멈추고 도도한 표정을 짓더니 옆으로 휙 숨어버렸다.최연준은 어이가 없어 눈을 희번덕거렸다.‘싫으면 됐어!’최연준이 국을 들고 나가려던 그때 뚱냥이는 창가에서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그를 떠보는 듯했다. 들어오고 싶었지만, 최연준인 걸 보고는 또다시 망설였다...최연준은 고양이가 배가 고파서 이런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주방에 딱히 먹을 것이 없어 국 한 그릇을 떠다가 창가 위에 올려놓았다.만약 평소였더라면 절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늘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기에 망정이지...최연준이 웃으
강서연은 별다른 수가 없어 작은 손으로 그의 목을 감싸 안고 입술에 진한 키스를 남겼다.비록 너무 만족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웃으며 그녀를 놓아주었다.“아침 할 필요 없어요.”강서연이 다정하게 말했다.“지금쯤이면 경실 아주머니가 장 다 보고 올 시간이에요. 보니까 아주 능숙하게 아침상을 뚝딱 차리더라고요. 아참, 아주머니가 아침밥 먹기 전에 이 국을 마시라고 했어요.”그러고는 손을 내밀어 국을 마시려 했다. 그런데 최연준은 뭔가가 뇌리에 스쳤는지 국을 옆으로 내려놓았다.강서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왜... 왜 그래요?”“아, 아니야.”최연준은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났다.“국이 식었어. 마시지 마.”“아주머니가 데워놓지 않았어요?”“서연아.”최연준이 멈칫하다가 말을 이었다.“당분간은 이런 국 마시지 마. 그리고 경실 아주머니 연세도 많으신데 집안일에 밥까지 하기에는 너무 힘들 거야.”강서연이 두 눈을 깜빡였다. 그의 진지한 모습에 그녀는 어리둥절하기만 했다.“앞으로 집에서 식사할 땐 호텔에 연락해서 가져오라고 할게.”화들짝 놀란 강서연은 그에게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그냥 가만히 있었다.최연준은 그녀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한 후 그녀와 함께 명황세가로 가서 조식을 먹었다.그는 자신의 의심병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양이가 국을 마시지 않았다고 해서 뭘 설명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지금까지 박경실은 강서연을 살뜰히 챙겼고 그 모습을 최연준도 쭉 봐왔었다. 사실 그도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세심한 것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연준 씨, 왜 그래요?”최연준이 고개를 들어보니 강서연이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안색이 안 좋은데 어디 아파요?”최연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오늘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어요.”강서연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히죽 웃으며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이따가 내가 출근해야 해서 기분이 안 좋아졌어요?”최연준
강서연은 혀를 날름 내밀고는 눈웃음을 지었다.그녀는 그를 뒤로한 채 홀로 길거리에 나섰다. 어진 엔터테인먼트와 가까워 골목 하나만 지나면 되었다. 그녀는 종종걸음으로 회사에 출근했다.최연준이 건물 밑에 잠깐 서 있던 그때 방한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도련님, 김 대표님의 일 처리 스타일을 아직도 모르세요? 부하직원이 사적인 감정 때문에 일에 영향 주는 걸 가장 싫어하세요. 회사에 대표님과 서연 씨의 관계를 공개한다면 성가신 일이 아주 많이 생길 겁니다!”최연준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성가신 일?”“예를 들어... 김 대표님이 관리하는 연예인들도 따라서 연애를 한다든가... 그러면 어찌 일에 몰두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최연준의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그러니까 내 와이프랑 모르는 사이인 척하란 말이야?”방한서가 웃으며 말했다.“아무튼... 이건 김 대표님의 지시예요.”최연준은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 싶었다!그런데 그가 어진 엔터테인먼트의 대문에 발을 들인 순간 프런트 직원이 그를 막아섰다.새 회사라 김자옥은 원래 있던 직원을 싹 다 갈아치웠다. 하여 지금 이 회사의 직원 중에 하 매니저 말고는 그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누굴 찾으러 오셨나요? 예약하셨나요?”“강 비서님이요? 강 비서님 바빠서 그쪽을 만날 시간이 없어요. 일 방해하지 말고 당장 나가주시겠어요? 안 그러면 경비원 부를 겁니다!”“자기 분수를 알아야지. 우리 강 비서님은 얼굴이 예쁘고 마음도 착할 뿐만 아니라 업무 능력도 뛰어나서 비서님을 따라다니는 남자가 아주 줄을 섰어요. 저런... 똥차를 타고 다니는 남자는 비서님을 만날 자격도 없어요.”‘똥차? 저 차가 바로 당신들이 말하는 강 비서가 사준 거야! 그것도 나한테만!”...강서연은 퇴근 후 에덴으로 돌아갔다.오늘 프런트 직원에게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직원의 얘기를 듣고 그 사람이 바로 최연준일 거라고 예상했다.하지
강서연은 불안감이 밀려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고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그런데 그때 누군가 전화를 걸어왔다. 순간 움찔한 그녀는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 휴대 전화 너머로 낮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보세요? 서연 씨? 저 신석훈입니다.”“아, 네.”그녀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신 의사님이군요.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신석훈은 잠깐 멈칫하다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지금 연구소로 올 수 있어요? 제가 일하는 곳 말이에요. 오늘 진료가 있어서 심리상담과에 있어요.”강서연은 최연희와 관련된 일이라는 예감이 바로 들었다. 하여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연구소로 달려갔다.그녀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신석훈은 인사말을 몇 마디 주고받은 후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요 며칠 연희랑 꾸준하게 심리 상담을 했거든요.”신석훈은 상담 결과를 그녀에게 건넸다. 결과를 확인한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우울증’이라는 세 글자가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녀의 가슴팍에 꽂혔다.“이게 대체...”그녀가 놀란 얼굴로 쳐다보자, 신석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여러 검사를 한 후에 종합적으로 내린 진단이에요.”“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아직은 가벼운 우울증이에요. 치료만 잘한다면 완치는 문제없을 겁니다.”신석훈이 안타까워했다.“상담하면서 보니까 연희가 자신감이 없는 게 외부 스트레스 때문이더라고요. 아무래도 누군가가 계속 연희한테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이 지경이 된 것 같아요.”강서연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인지석이 틀림없어! 그런데 대체 왜 연희 양한테 이러는 거지?’“아직은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았어요.”신석훈이 말을 이었다.“지금 매일 나랑 얘기하게끔 노력하고 있거든요. 완전히 입을 다문 것만 아니면 분명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오늘은 이 얘기 하려고 서연 씨를 부른 거예요. 서연 씨랑 연준 씨는 걱정하지 말아요. 연희가 저랑 있으면 아무 문제 없을 겁니다.”“네.”강서연은 고
강서연의 표정이 흔들리더니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에, 집에서 불쾌한 일이 있고 난 뒤로 그녀도 인지석의 소식을 오랫동안 듣지 못했다.“오성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강서연이 솔직하게 대답했다.“하지만 그 사람은 최상 빌라의 집사라서 매일 할 일이 산더미일 텐데 함부로 자리를 비울 리가 있을까요?”“아...”신석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연희가 요 며칠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오성을 떠난 줄 알았어요.”“석훈 씨!”강서연이 다급하게 말했다.“그 사람이 나타난다고 해도 절대 연희 양과 만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저랑 연준 씨 모두 연희 양이 그 사람과 연락을 끊길 바라고 있어요. 그 사람은 너무 위험해요!”신석훈은 잠깐 고뇌에 빠졌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조수가 헐레벌떡 뛰어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연희 양이 깼어요. 그런데 정신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요...”신석훈은 재빨리 상담실로 달려갔다.강서연도 계단을 성큼성큼 뛰어 올라가는 신석훈의 뒤를 따랐다. 그가 들어가자, 최연희는 바로 안정을 되찾았고 한시름을 놓은 듯했다.신석훈은 그녀에게 간단한 검사를 진행하고 별문제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얘기를 나누었다.그의 웃음은 마치 겨울의 햇볕처럼 따스했고 먹구름도 완전히 없앨 수 있을 것만 같았다.밖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강서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석훈이 문을 살며시 닫고 나왔다. 강서연이 아직 있는 걸 보고는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괜찮아졌어요.”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아까 상담받다가 요 며칠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소파에서 잠들었더라고요. 깨어나 보니까 주변 환경이 낯설어서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아요.”강서연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연희 양의 정신 상태가 이렇게나 많이 안 좋아요?”“많이 안 좋은 건 아니에요.”신석훈이 어깨를 들썩였다.“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참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한테 나중에 의대에
“환자는 식중독인데 다행히도 증상이 아주 약합니다. 이미 약을 먹였으니 이번 주에 푹 쉬면 금방 나을 겁니다.”강서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식중독이라고요?”“다 내 잘못이야.”최연준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서연아... 아침에 그 국물을 마시지 말라고 한 것도 아주머니가 국에 약을 탔다고 의심해서야.”강서연은 등골이 오싹해졌다.그러나 그녀는 최연준이 이유 없이 남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더욱이 그에게 충실한 집사에게 누명을 씌우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원래 그 국물을 당신한테 가져다주려고 했는데 그때 뚱냥이가 창턱에 뛰어올라 먹을 것을 찾고 있는 거야. 그래서 국물 한 그릇 떠서 줬는데 이상하게도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피하는 거야. 그때부터 국물에 뭔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의심이 들었어.”강서연은 그제야 최연준이 왜 그때 마음이 심란했는지, 왜 이상한 말을 했는지, 앞으로 박경실이 만든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는지 알게 됐다...최연준은 계속해서 말했다.“오후에 집에 돌아와 보니 아주머니가 집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때 이미 아주머니를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주머니가 실수하는 것을 기다렸어. 그래서 국물을 왜 안 먹었냐고 물었을 때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거짓말을 했어. 그런데 아주머니가 그릇을 집어 들고 먹어 보는 거야.”강서연은 듣는 내내 간담이 서늘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만약 정말 아주머니가 넣은 약이라면, 그녀는 독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었을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아주머니도 몰랐던 것이다! 누가 자유롭게 집을 드나들면서 이런 더러운 것들을 주방에 가져올 수 있지?강서연은 이를 생각하자 소름이 끼치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어... 어떤 독이에요?”최연준은 그녀를 가볍게 껴안았고 그녀의 몸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만성 독약입니다. 약에는 중독성이 강한 성분이 있어 장기간 복용할 경우 중추신경계와 심혈관계를 손상할 수 있습니다.” 의사가 설명해 줬다.“환자분은 예전에 혈
“뭐라고?”최연준은 실눈을 뜨고 잠시 생각하다가 냉소했다.“아마도 죄가 들통날까 봐 도망간 거겠지.”강서연은 그를 바라보았다.공교롭게도, 조금 전에 그녀도 인지석이라고 의심했다.인지석과 최연희을 제외하고는 에덴에는 다른 손님을 접대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방 비서.”최연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물어봤다.“인지석의 행방을 알아냈어?”방한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지석의 비행기표는 강주로 가는 것입니다.”보아하니 강주 쪽에 뭔가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는 것 같았다.“우선 집안의 인씨 성을 가진 집사들을 모두 감시해 봐. 그리고 즉시 사람을 보내 인지석의 강주 행방을 추적해 내!”최연준의 목소리는 뚜렷하고 차가웠다.“알겠습니다!”“인지석이 그렇게 쉽게 빌라에서 휴가를 얻어 도망칠 수 있다는 것은 배후에 그를 지지하고 있는 세력이 분명히 있다는 뜻이야!”최연준의 눈빛은 싸늘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초보적인 계획이 있었다.인지석은 그저 미끼일 뿐, 최연준은 그를 이용해서 배후에 있는 사람을 낚아내려 한다!그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최연준은 이미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다.최연준은 말없이 옆에 있던 강서연을 돌아봤다.그는 한숨을 내쉬며 그녀를 품에 안고는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이런 생활이 너무 무섭지?”강서연은 말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고, 한 쌍의 까만 눈동자에는 복잡함이 스치고 지나갔다.“당신이 내 세상에 들어오려고 노력한다고 말했잖아. 내 세상이 이 모양이야. 언제든지 남에게 당할 수 있어.”최연준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단것을 먹지 않았어. 왜 그런지 알아? 내가 아홉 살 때 생일 케이크에 수은이 들어 있었는데... 그 생일이 내게 트라우마로 남겨져 있어. 그래서 그 이후로 단것을 먹지 않게 됐어.”강서연은 그를 보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부귀영화와 권문세가, 이것들은 모두 남한테 보여 주는 것이다.그 속에는 이미 상처투성이와 거친 파도고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
병원 응급실 밖.배경원은 의자에 주저앉아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충혈된 눈으로 응급실 문을 응시하며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한때 당당했던 그의 어깨는 지금 축 처져 있었다. 뒷모습만으로도 절망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배경원은 주먹을 단단히 쥐었지만, 온몸은 떨리고 있었다.적막이 흐르는 복도는 불길한 정적마저 감돌았다.결국,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 나와 눈물이 조용히 뺨을 적셨다.“경원아!”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배경원이 고개를 들자, 최연준과 강서연이 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질 뻔한 배경원을 최연준이 재빨리 부축했다.강서연은 응급실 문을 바라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치료는 연희 씨와 신석훈 씨의 제자들이 맡고 있어요. 모두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수정 씨는 평소 건강을 잘 관리하셨으니 금방 회복될 겁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야?”최연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갑자기 병세가 심각해진 거야? 그리고 윤아는...”배경원은 떨리는 손으로 최연준의 팔을 붙잡으며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셋째 형님, 제발 윤아를 찾아주세요. 딸은 사라지고 아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어요. 둘 다 잃으면 저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그런 바보 같은 말 하지 마세요. 둘 다 무사할 겁니다.”강서연이 단호히 말했다.“윤아는 우리 집안의 며느리예요. 누가 윤아를 해치려 한다면 최씨 가문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어요. 그 결과가 어떤 건지 모를 리도 없고요. 그리고...”강서연은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듯 말을 이어가려다 복도 끝에서 배현진이 소피아와 함께 급히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는 말을 삼키고 배현진을 노려보았다.“연준 아저씨, 서연 이모...”배현진은 어딘가 죄책감이 깃든 목소리로 말했다. 배현진은 배경원에게 다가가 팔을 살며시 부축하며 조심스레 말했다.“아버지...”그 순간, 배경원이 배현진의 뺨을 내려쳤다.배경원은 분노로 가득 찬 눈빛으로 배현진을 노려보며
임수정은 갑작스러운 기침을 하며 침대 옆 경보 벨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 손은 소피아에 의해 단호히 막혔다.“사모님, 제 말을 듣는 게 좋으실 겁니다.”소피아는 부드럽지만 섬뜩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제가 만든 음식이 그렇게 형편없지도 않고 독을 넣을 만큼 제가 어리석지도 않아요. 안심하세요. 이 모든 재료는 사모님의 건강을 생각하며 준비한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진심으로 사모님을 돌보고 싶어서예요.”임수정은 가슴을 움켜쥔 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임수정의 눈엔 불신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요즘 배경원은 외출이 잦아졌고 이유를 묻자, 회사 일 때문이라며 안심하라는 대답뿐이었다.그럼에도 임수정의 마음속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점점 커져만 갔다.깊게 숨을 들이마신 임수정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겉으론 소피아의 말을 따르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 잘 생각하셨어요.”소피아는 임수정에게 쿠션을 건네며 은은하게 웃었다.“우리 결국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될 사이잖아요. 지금부터 제 존재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흥! 내 아들이 눈이 먼 게 분명해.”임수정은 비웃음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같은 사람에게 속을 수 있는지...”“저를 깔보지 마세요. 저는 이혼하고 아이도 데리고 있지만, 현진 씨를 향한 제 진심은 변하지 않아요. 저는 현진 씨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누구와는 달리 겉으론 순수한 척하면서 남자를 유혹하는 짓은 안 한다는 건 알아주셨으면 해요.”“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임수정은 언성을 높이며 노려보았다.소피아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사모님, 제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사모님의 그 옛날 며느리가 될 뻔했던 그 사람이에요.”“헛소리하지 마!”임수정은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그 일은 우리 배씨 가문이 송윤지에게 잘못한 일이야. 그 애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사모님,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 없는 법이에요.”소피아는 태연한
“너와 상관없다고?”임우정은 다급하게 외쳤다.“네 형부가 이미 윤아의 통화 기록을 조사했어. 윤아가 실종되기 전에 조 회장이랑 통화했던 게 드러났다고! 지강아, 너와 조 회장이 어떤 관계인지 나한테도 숨길 작정이었어?”임지강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 사건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머릿속에서 실타래처럼 엉켜 있었다.“그래요. 저와 조 회장이 가까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와 배윤아 사이엔 원한이라곤 없잖아요... 누나, 왜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지강아!”임우정의 목소리가 더욱 절박해졌다.“너, 송윤지 일 때문에 배현진을 미워하는 건 알아.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윤아한테까지 증오를 전가하면 안 되잖아!”“누나, 정신 좀 차리세요!”임지강의 목소리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둠이 깃든 그의 얼굴은 단호함을 더했다.“무슨 근거로 저를 의심하시는 건데요?”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임지강의 강경한 태도에 임우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한참 후, 임우정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렇다면... 배씨 가문을 좀 도와줄 순 없겠니?”임지강은 코웃음을 치며 전화를 끊었다.수화기를 내려놓고 고개를 돌리자 맑고 투명한 송윤지의 눈빛과 마주쳤다.“배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요양원 병실 문 앞.소피아의 하이힐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리며 퍼져 나갔다. 소피아의 손엔 보온 도시락이 들려 있었고 문 앞을 지키는 경호원들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제가 사모님께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안으로 들여보내 주세요.”경호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말없이 서 있었다.“이건 도련님께서 지시하신 거예요.”소피아는 휴대전화를 꺼내 그들에게 일부러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실래요? 아시다시피 사모님 건강이 좋지 않으세요. 세 끼 제대로 챙겨 드시지 못하면 여러분들이 책임지실 겁니까?”경호원들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 결국 길을 내주었다.“이제야 말이 통하네.”소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앞으로
송윤지는 겨우 한 모금을 마시고 사레가 들어 술을 뱉을 뻔했다. 마신 술이 얼굴에 스며든 듯 송윤지의 뽀얀 볼은 어느새 매혹적인 와인빛으로 물들었다.임지강은 그런 송윤지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임지강은 송윤지에게 다가가 가볍게 등을 두드리며 입가에 묻은 술자국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임 대표님...”송윤지는 조심스럽게 임지강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임지강은 말없이 송윤지의 손을 잡아 통유리창 앞까지 데려갔다.송윤지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임지강을 바라보았다. 임지강이 손뼉을 두 번 치자 깊고 짙은 밤하늘에 수많은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잘게 부서진 불빛들이 반짝거렸다.불꽃은 색과 모양을 끊임없이 바꾸며 꿈같은 광경을 만들어냈다.송윤지는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며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마음에 들어요?”임지강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가 송윤지의 귀에 스며들었다.“잠깐 눈 좀 감아 봐요.”“네?”임지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제가 별을 따다 줄게요.”마지막 불꽃이 빛의 궤적을 남기며 밤하늘로 사라지고 다시 평온한 고요가 찾아왔다.송윤지는 미소를 지으며 임지강의 말을 따라 눈을 감았다. 그러자 따뜻하면서도 약간 서늘한 남자의 손길이 송윤지의 손을 잡더니 손바닥 위에 무언가가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송윤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손에는 정말로 ‘별’이 있었다.“이건...”그것은 목걸이였다. 펜던트는 별 모양으로 깎아낸 다이아몬드로, 완벽하게 다듬어져 찬란한 빛이 퍼지고 있었다.“제가 해줄게요.”임지강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안 돼요. 이건 너무 비싼 거라서 제가...”“받아줘요.”임지강의 눈빛은 따스하고도 단호했다.“그리고... 사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송윤지는 고개를 숙였다. 귀 끝까지 붉어진 송윤지의 얼굴은 마치 열이 오른 듯했다.임지강은 미소를 지으며 송윤지의 귓가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살짝 정리해 주었다.“사실,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윤지 씨 좋아
소피아는 약속한 시간에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창가에 앉아 있는 낚시 모자를 쓴 중년 여성을 발견했다.소피아는 조용히 걸어가 밝게 미소 지으며 인사했다.“안녕하세요. 혹시... 허운주 선생님이신가요?”허운주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다.소피아는 직원에게 뜨거운 우유 한 잔을 주문하고 허운주 앞에 놓인 진한 커피를 치우며 부드럽게 말했다.“허 선생님, 이 나이에 이렇게 진한 커피는 드시면 안 돼요. 건강을 꼭 챙기셔야죠.”“고맙습니다...”허운주는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절 찾아오신 이유가 뭘까요?”허운주는 천천히 눈을 들어 소피아를 바라봤다.소문에 따르면, 소피아는 현재 배현진의 연인이며 이혼 후에 아이를 키우면서도 배현진의 마음을 단단히 붙잡고 있는 사람이었다.허운주는 소피아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고 소피아가 도움을 준다면 송윤지 같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건 쉬운 일이라고 확신했다.“제가...”허운주는 입술을 핥으며 머뭇거렸다.“어떻게 말씀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네요.”소피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곧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허 선생님은 현진 씨의 선생님이시잖아요. 그 특별한 인연은 현진 씨도 평생 기억할 거고 저 또한 마찬가지예요. 저희는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있어요. 그러니 무슨 일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저는 국제 유치원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하게 됐어요.”허운주는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깊이 찡그렸다.소피아는 놀란 듯했지만, 최근 일어난 상황을 대략 알고는 있었다. 우수 교사 선발에서 허운주가 송윤지에게 패했다는 소식은 소피아에게도 전해졌다. 자존심 강한 허운주로서는 그 일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소피라는 눈을 굴리며 허운주를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하고 있었다.“허 선생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소피아는 부드럽게 허운주의 손등을 토닥이며 말했다.“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시고 속상한 일 있으면 다 털어놓으세요. 제가 도울 수 있
회의실은 단숨에 고요 속에 잠겼다. 강렬한 존재감의 인물이 문턱을 넘어서자, 방 안은 서늘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가득 찼다.원장은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 단숨에 그의 곁으로 다가가 어깨를 툭 치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왜 이제야 온 거야?”임지강의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러나 그의 시선이 허운주에게 닿는 순간, 그 미소는 천천히 사라지고 대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이 자리 잡았다.“으흠!”원장은 자세를 가다듬으며 목소리를 높였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한 소식을 전하려고 합니다.”원장은 한 장의 서류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유치원의 공식 도장과 함께 임지강의 힘찬 서명이 선명히 찍혀 있었다.“임 대표님께서 우리 유치원에 10억을 투자해 주셨고 국제 유치원의 최대 주주가 되셨습니다. 유아 교육을 위해 아낌없이 지원해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임 대표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송윤지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얼굴에 붉은 기운이 번지자 뜨거운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입가에 번진 미소는 감추기 어려웠다.임지강은 잔잔한 미소를 띤 채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제가 이 유치원의 주주가 된 이상, 앞으로 제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국제 유치원의 이익을 위해서일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허운주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래서 오늘, 교사 팀을 정비하려고 합니다.”허운주는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나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이곳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임지강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자신의 가치관조차 바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아이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겠습니까?”허운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가요?”“여기 있는 사람 중
원장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졌다.“허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오늘 표 집계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투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조작이라니, 그 말은 제가 개입했다는 뜻인가요?”“원장님, 제가 어떻게 감히 원장님을 의심하겠습니까?”허운주는 억지 미소를 띠며 비꼬듯 말했다.“하지만 표 차이가 이렇게 크게 나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설령 원장님께서 관여하지 않으셨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무슨 일을 꾸몄을 가능성은 충분하지 않겠습니까?”“허 선생님...”원장은 화나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 막무가내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익숙하지 않았다.“허 선생님, 하신 말씀에 대해 책임지셔야 합니다.”송윤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윤지는 허운주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저는 단 한 번도 허 선생님께 폐를 끼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우수 교사 선발 역시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제가 정말 무슨 일을 꾸몄다면, 이렇게 공개적으로 표를 집계했겠습니까?”허운주는 송윤지를 노려보며 속으로 분노를 억눌렀다.평소 조용하고 소극적인 송윤지를 쉽게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의 송윤지는 논리 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의 도발에도 굴하지 않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송윤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고 문밖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임지강의 입가에는 따뜻한 미소가 번졌다.임지강은 회의실 밖에서 모든 상황을 눈여겨보고 있었다.특히 송윤지의 표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결과가 발표되었을 때, 임지강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은 것처럼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곁에 있던 부하 직원조차 그의 변화를 놀라워하며 말했다.“송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전 모습과는 완전히 달라요.”임지강은 미소를 지었다. 송윤지는 변하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자신과 함께 있을 때는 너무 조심스러워 본래의 자신을 숨겼을 뿐이었다.“임 대표님, 허 선생님에 대해서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지난번에 내가 해외 시장을 축소하라고 했지만, 당신 아들은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임수정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결국 문제는 그 여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거야... 그 여자는 현진이를 부추겨 또 다른 일을 꾸밀 거고 현진이는 분명히 그 여자의 말을 들을 거야.”“그러니까 그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임수정은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윤아야, 네가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회사들을 꽉 잡고 있어야 해! 너 혼자 힘들면 군성이랑 의논해도 되고 군형이나 소유의 도움을 받아도 돼. 네가 동의하지 않는 한, 네 오빠는 너한테서 단 한 푼도 가져갈 수 없어. 이해했지?”“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꼭 잡았다.“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이 모든 재산은 우리 조상들이 쌓아온 거야. 절대 우리 세대에서 무너져선 안 된다!”“네, 저 이해했어요.”배윤아는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말했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오빠가 하루빨리 제정신을 차려서 우리가 예전처럼 가족으로 지낼 수 있으면 좋겠어요...”임수정은 힘없이 눈을 감았다. 기침하며 숨을 고르는 임수정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했다.그러나 그 순간, 문밖에서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소피아가 복도 모퉁이에 숨어 임수정의 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벽을 짚고 있던 소피아는 주먹을 꽉 쥐었고 마치 벽을 뚫을 듯 힘을 주고 있었다.방 안에서 나눈 대화는 모두 소피아의 귀에 생생히 들렸다.오늘 소피아가 임수정을 찾아온 건, 회사 본사에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을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만약 가능하다면 은행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졌다.지금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재산 전부가 이 어린 소녀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여보세요, 소피아!”그때, 배현진이 전화를 걸어왔다.“지금 엄마 집에 있어? 나 일이 아직 안 끝나서 조금 있다가 가려고. 엄마한테 전해줘.”“그럴 필요 없어.”소피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임수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배경원은 막 씻은 딸기를 가져왔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딸기의 끝부분을 잘라 임수정의 입에 넣어주었다.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도, 두 사람의 애정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는 여전히 처음과 같았다. 그들의 관계는 많은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배윤아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에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엄마를 위해 영양제를 가져왔을 뿐 아니라 새로 그린 그림도 품에 안고 있었다.“엄마, 아빠, 저랑 군성이가 이번에 현실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를 하나 출간하려고 해요. 내용은 한 부부가 젊었을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거예요... 사실 주인공 부부가 바로 엄마, 아빠예요! 보세요, 이렇게 그렸는데 괜찮죠?”임수정과 배경원은 딸이 그린 그림을 보며 얼굴에 자부심이 가득했다.부부는 원래 대부분의 기대를 아들에게 걸고 있었다. 이는 남녀 차별 때문이 아니라 배윤아의 성격이 어릴 적부터 세상일에 무심하고 경쟁을 피하는 편이었기 때문이었다. 가문의 계승자로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딸이 오히려 아들보다 더 믿음직스럽다.“윤아야.”임수정은 딸의 손을 잡으며 눈빛에 깊은 의미를 담아 말했다.“엄마가 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게 있어.”“뭔데요?”배윤아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임수정은 베개 밑에서 갈색 서류봉투를 꺼냈다. 그 안에는 배씨 가문과 임씨 가문의 핵심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이것뿐만 아니라, 본사의 도장도 있어.”배경원은 도장까지 꺼내 배윤아에게 건넸다. 배윤아는 깜짝 놀라 귀중한 물건들을 손에 들고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아빠, 엄마, 이건 도대체...”“우리도 이제 나이가 들었고 몸 상태도 좋지 않아. 요양원에 머무는 동안은 회사로 돌아가 직접 관리할 수도 없을 거야.”배경원은 평소 장난스러웠던 모습을 거두고 진지한 얼굴로 배윤아를 바라보았다.“윤아야, 엄마, 아빠는 이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기로 했다. 네가 책임을 져야 해.”배윤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