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시간도 늦었고 경계를 늦춘 틈에 해치워야죠.”“그래요. 빨리 돌아와요.”“여보, 올라가서 먼저 쉬고 있어요. 나 기다리지 말고.”짧은 인사를 끝으로 그는 집을 나섰다. 선희는 멀어져가는 태범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녀는 그저 수현과 윤아가 모두 무사히 돌아와 이 걱정이 가시길 바랄 뿐이다.선희는 이만 돌아가 자려고 했으나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생각 끝에 그녀는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태범이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그가 기다리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선희는 아들과 윤아의 소식을 빨리 알고 싶어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렇게 선희는 떨리는 마음으로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마침 민재 쪽도 급한 일을 마쳤다.그들이 수현을 데려왔을 때 그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였다. 원래 윤아의 행방에 관해 물으려 했으나 부하들이 그를 말렸다.“이선우라는 사람이 윤아 님을 좋아하니 윤아 님은 아마 무사할 겁니다. 지금 대표님이야말로 목숨이 위험한 상태이니 문제가 생기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윤아 님은 대표님을 구하려고 그곳으로 갔는데 이제 와서 그냥 가자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비서님.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이선우 그 자식은 윤아 님 좋아하고 대표님과는 원수지간이에요. 윤아 님도 그걸 알고 간 거고요. 그리고 보시다시피 그쪽에선 저희 대표님께 인정사정없습니다. 아직도 의식불명이잖습니까. 이미 저쪽에서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되었는지 누가 알아요. 서둘러 돌아가지 않아 그사이에 대표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윤아 님의 노력도 모두 물거품이지 않습니까?”민재는 조금씩 설득을 당했지만당했지만 그래도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수현만 데려가고 윤아를 방치할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들었다.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녀는 비행기에 오른 직후부터 그들과 연락이 끊겼고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후 겨우 얻어낸 정보가 병원에 갔다는 소식이었다.윤아가 병원에 있을 때 민재는 원래 그녀와 만날
초인종 소리에 민재는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그러나 문을 열어주러 나가다 말고 걸음을 멈추는 민재. 생각해 보니 지금은 깊은 밤이고 이 집은 그가 혼자 사는 집이다. 이 시간에 이곳을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민재는 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그는 문 쪽으로 다가가지 않고 서재로 돌아가 감시카메라를 확인했다.털이 쭈뼛 서서 복도를 확인한 민재는 문 앞의 누군가를 보고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수현의 아버지.민재는 너무 놀라 심장이 벌렁댔다.‘이 야심한 밤에 왜 찾아오신 거지?’게다가 그의 뒤에는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두 명의 남자가 함께 따라왔다.어쩐지 그 통화 이후로 계속 불안하다 했더니 너무 허접한 거짓말이라 바로 들통이 난 모양이다.이제 집 앞까지 찾아왔으니 이를 어쩐담.기다리다 지쳤는지 태범이 짜증스럽게 초인종을 몇 번 더 눌렀다. 기세를 보아 문을 열어주기 전까진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늦은 밤에 계속 시끄럽게 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민재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는 선 채로 잠시 주춤하더니 이내 수현과 윤아를 엮어 적당한 핑계를 생각해 낸 후 문열었다.다.그러고는 마치 미리 감시카메라를 확인하지 않은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태범을 맞이했다.“회장님. 이 밤에 여긴 어쩐 일로?”민재는 금방 잠에서 깬 것처럼 퉁명스럽게 하품도 한 번 해주면서 말을 건넸다.태범은 그런 민재를 날카롭게 쏘아보더니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말했다.“데려가.”그의 명령에 옆에 있던 남정네들이 다가오더니 민재의 양팔을 붙잡고 포박했다.졸린 척을 하려던 민재는 정신이 번쩍 들어 서둘러 말했다.“회장님. 무슨 일입니까? 왜 이러세요?”“모르는 척 하지 말고 말하게나. 도대체 무슨 일인가?”“아니 회장님.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물으시면 무슨 말씀이신지.”태범은 수현과 윤아의 일을 물으러 온 것이다. 그리고 이딴 실랑이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민재가 말할 생각보이자 태범이 손을 휘적였다. 손을 휘적였다.“말할 수 없다 이건가?
이런 상황에 태범에게 붙잡혀가면 수현은 어떡하냔 말이다.민재는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달리 할수있는 일이 없었다.‘대표님, 제가 괜히 걱정 끼쳐드리려는 게 아니라 회장님 내외분께서 정말이지 너무 지나치게 감이 좋으셔서 숨길 수가 없어요.’그는 마음속으로 수현에게 용서를 빈 후 최근 있었던 일은 모조리 태범에게 얘기해줬다.그의 말을 들은 태범은 급격히 표정이 굳더니 순식간에 어두운 기운을 뿜어냈다.“이런 큰일이 생길 때까지 말도 안 하고 뭐 했어!민재는 웃고 넘겨보려 했다.“사모님까지 걱정 끼쳐드릴까 봐 그랬죠. 그리고 원래는 대표님 깨어나신 이후에 대표님 지시대로 할 생각이었습니다. 대표님은 절대로 걱정 끼쳐드릴 얘기는 하지 않으시니까 저도...”“그래서 지금 어디 있는가?”“저와 함께 가시죠. 일단은 진정하시고요.”하지만 태범은 지금까지 그에게 이런 큰일을 숨기고 있었던 일이 분해 민재와 더는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도대체 일이 이렇게 되도록 숨기는 그들의 심리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걱정할까 봐?’‘그럼 진짜로 무슨 일이라도 나야 그때 가서 통보할 작정인가?’‘이미 일이 끝난 뒤에 알게 되면 걱정도 근심도 없을거라 생각하는 건가?’그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다.인재는 불편함에 몸 둘 바를 몰라 했지만 혼이 날 걸 알면서도 그래도 말을 보탰다.“제가 정말 일부러 말씀 안 드린 게 아니거든요. 회장님께서도 이 일을 곧바로 사모님께 말씀드릴 겁니까?”그 말에 태범이 잠시 멈칫했다.그가 대답이 없자 민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그렇다니까요? 회장님도 사모님께 말씀드리기 싫으시잖아요. 이게 다 사랑이고 배려인 거죠. 걱정 할까 봐 말 못 하겠고 그런 거잖아요. 저도 똑같습니다. 대표님이 회장님 얼마나 근심하시는데 괜한 소리 했다가 깨어나절 탓할까봐 그런 거죠.”이 냉소를 터뜨렸다.“그러니까 탓하지 말아달라, 이 말인가?”“아뇨, 아뇨. 제가 어찌 감히. 전 그저 해명을 좀 하려고 했을 뿐
“윤아는?”태범이 조심스레 물었다.그 말에 민재는 면목이 없었다.“윤아 님은... 못 돌아오셨어요.”“?”태범이 민재를 쳐다보며 물었다.“못 돌아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그의 눈빛에 민재는 압도당하는 듯한 위압감을 느꼈다. 그가 쳐다볼 때면 심지어 벼락에 맞은 듯 몸을 굳어버리기까지 했다.“그게... 윤아 님은 아직 해외에 계십니다.”이렇게 된 이상 더 감출 것도 없었다. 민재는 그동안 윤아에게 있었던 일을 그에게 전부 말해주었다. 태범은 수현의 일로도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윤아의 일까지 들으니 심장이 철렁했다.둘이 같이 있을 줄 알았다. 얼마나 다쳤든 이제 병원에 왔으니 치료를 받으면 모두 다 괜찮아질 거라 믿었다.그런데 지금 돌아온 사람은 수현 한 명뿐이고이고 윤아는 돌아오지 못했다는 거 아닌가?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태범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애써 진정했다. 아직 몸이 멀쩡해서 다행이지, 지금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면 아마 쇼크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회장님. 진정하세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지금 흥분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한시라도 빨리 해결 방법부터 찾아봐요.”그 말에 태범이 그를 힐끗 보며 말했다.“무슨 방법이라도 있나?”민재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아직 생각 중입니다.”그러나 돌아오는 건 태범의 냉소였다.“해결 방안도 없이 지금까지 숨기고 있었던 거군.”“...”‘됐어, 그냥 혼나지 뭐.’“네, 다 제 잘못입니다. 이제 어떡하면 좋죠?”태범은 아직 혼수상태인 수현을 보며 입술을 앙다물었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다친 거지? 두 쪽 다 사람을 썼을 텐데. 게다가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좀 했어서 어디 가서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는 아이였는데 말이야.”민재는 고개를 저었다.“저도 그 현장에 없었어서 잘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그쪽 꼼수에 넘어간 것 같습니다.”그 말에 태범은 입을 다물었다.그의 아들이 어떤 사람인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의 비상한 머리 못지않게
그렇게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고 선우는 윤아와 수현의 곁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태범도 점점 그 아이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어릴 때 함께 놀던 친구도 어른이 되어서는 각자 일이 바빠 자연스레 멀어지기 마련이다. 모두 다른 걱정거리를 짊어지고 사는 어른들에게 소년 시절의 그 천진난만함은 없으니까.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흐릿해지는 그런 관계일 줄 알았다. 그런데... 이런 일로 흘러가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여기까지 생각한 태범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그때의 그 관계가 이런 비극으로 끝을 보게 되다니.태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이 일은 내가 생각해 보지. 윤아와 마지막으로 만난 게 언제지?”민재는 그날 공항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히 얘기했다. 얼추 상황을 전해 들은 태범은 마음속에 판단이 섰다.그의 표정을 본 민재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참, 말씀드릴 일이 하나 더 있는데요.”“말해봐.”“그 거래를 할 때 윤아 님이 신고는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그래서 대표님도 경찰엔 알리지 않고 사적으로 해결하시려 한 거였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은.”“멍청한 것.”태범이 이를 악물었다.“이 멍청한 것들!”“저도 윤아 님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이선우 대표가 저희 대표님께는 안 그래도 윤아 님한테만은 지극정성이었거든요. 도움도 많이 주던 사람이라 측은지심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요.”하지만 태범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장사꾼이다. 장사꾼들에게는 이익을 제외하고는 오직 가족뿐이다.지금은 가족이 다쳤으니 더더욱 두고 볼 수만은 없때문에 민재가 그런 말을 말을 할 때도 태범은 대꾸를 하지 않았다..민재도 그의 낌새를 눈치채고 조심스레 물었다.“그러니 신고는 안 하는 게 좋겠죠?”“흥.”말도 안 된다는 듯이 그를 쳐다봤다.“ 그를 쳐다봤다.“일이 다 너희 뜻대로 흘러갈 줄 알았겠지? 그랬다면 지금 이 지경이 됐을까?”민재는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뭐라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범은 선희의 전화를 받았다.“어떻게 됐어요? 간 지 꽤 오래됐는데 이 비서는 찾았어요? 뭐 좀 알아냈어요?”태범은 말이 없었다.그 순간 차에서 민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일을 알게 된 후에 그녀에게 말할 수 있겠냐던.그때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다.그리고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자 그는 정말 그녀에게 이 일을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너무 큰 일이라 괜히 말했다가 마음 졸이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싫었다.생각만 해도 너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태범은 수현과 민재가 입 다물고 있었던 이유도 조금 짐작이 가는듯했다.‘어휴.’여기까지 생각한 태범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는 고심 끝에 이 일을 선희에게 얘기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전부 말하는 대신 조금만 덜어내기로 했다.“일이 좀 생겨서 내가 가서 처리해야 할 것 같아요. 나 없는 동안... 몸조심하고요.”그러나 선희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무슨 일이길래 당신이 직접 며칠씩이나 시간을 내서 처리한다는 거예요? 무슨 일인데요?”어느새 그녀의 말투에 조급함이 묻어났다.“여보, 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봐요. 일이 좀 까다롭긴 하지만 내가 잘 처리할 수 있으니 해결되면 그때 얘기해줄게요. 네?”그러나 선희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인데 못 알려주는 거예요? 많이 심각한거예요?”“지금 당장 가서 처리해야 해서 당신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이 대답은 오히려 받아들일 수 있었다.정말 급한 일이라면 그 일을 처리하느라 자기에게 설명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좋아요. 먼저 가서 처리하고 와요. 하지만 약속해요. 급한 일을 처리하고 나면 나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말해준다고. 나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봐야겠어요.”“그래요.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전화를 끊은 후 태범은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침내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생각했다. 당시 이민재 그 녀석이 전화를 끊
선희는 일어나 두 녀석의 방으로 향했다.두 꼬마가 자신의 작은 이불을 끌어안고 쿨쿨 자고, 심지어 자리까지 바꾸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애를 태우던 선희는 마음이 많이 따뜻해졌다.‘정말 귀엽네. 이 녀석들.’그녀는 새삼 윤아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두 명의 아이가 이렇게 잘 자랄 수 있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말이다. 이 두 아이를 혼자 5년 동안 키우며 힘든 상황이 분명 많았을 텐데 그래도 아이들을 이렇게 잘 가르쳤다니.선희는 두 아이를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서훈의 눈매는 또렷하고 화려한 게 마치마치 어린 시절의 진야가 보이는 것 같았다정말 너무 닮아서 한 틀에 새겨진 것 같았다.수현이 어렸을 때 그녀의 어머니도 수현이 귀엽게 생겼다며 자주 안아주던 것을 떠올렸다.그때의 수현과 똑 닮은 서훈을 보고도 좋아하실지 모르겠다.그런 생각을 하면서 선희는 자신과 어머니도 오래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살지 않았고 심지어 이 도시에도 살지 않았다. 두 부부는 은퇴 후 도시 오염이 심각하다고 싫어했고 시골에 정원과 마당이 있는 넓은 층을 사서 노후를 보냈다. 마당에서는 각종 화초와 나무를 기르고 한쪽 구석에 야채와 과일, 참외를 조금 심었다. 부부는 해가 진 어느 날의 밤처럼 그렇게 평온하게 지낸다.선희는 일찍이 부모님을 한 번 뵈러 갔다가 두 사람이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보고 굳이 더 찾아가 방해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부부는 수현의 결혼에 관해 자주 물어댔고 그가 이혼한 후에는 오랫동안 그 일로 한숨을 쉬기도 했다.그 후 선희는 집에는 거의 내려가지 않았다.그러다 오늘 갑자기 두 아이를 데리고 시골로 그들을 찾아가고 싶어진 것이다. 어쨌든 윤아와 수현도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그녀는 잠시 학교에 휴가를 내고 가서 일주일 동안 놀고 오면 좋겠다 싶었다.마음을 굳힌 후 선희는 기운차게 일어나 옷을 챙겼다.다음날, 훈이와 윤이가 막 일어나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선희가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그럼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아침 먹고 할머니랑 같이 가자.”힘없이 있던 하윤은 기운이 다 나서 욕실로 가 이를 닦았다.서훈도 하윤의 뒤를 따라갔다.화장실에는 선희가 미리 준비해 둔 칫솔과 칫솔 컵이 있었고 치약까지 이미 짜놓았다.그러자 하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훈과 눈을 마주쳤고 들어오는 선희를 향해고개를 젖혔다.“할머니, 엄마가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고 했으니까 앞으로 양치질하고 세수할 때 치약 짜주는 거 안 도와줘도 돼요.”선희는 고사리 같은 두 아이의 손을 보고 조금이나마 더 잘해주고 싶어서 치약을 짜준 거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보게 된 아이들인데 애지중지할 만도 하지.그런 생각을 할 줄은...“할머니가 잘못했네. 역시 너희 엄마 말이 맞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지.”“그래도 오늘은 도와준 거 감사해요.”서훈은 또 말을 바꿨다.그러자 하윤도 말했다.“할머니 감사합니다!”선희는 이 두 녀석이 너무 귀여워 심장이 녹아내릴 것 같았다.세수를 마치고 두 사람을 데리고 아침 식사를 한 뒤 선희는 하인에게서 차가 준비돼 있고 필요한 물건도 다 옮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두 녀석을 데리고 떠났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떠났고 그들이 간 후에 하인들은 집에 남아 멀어져 가는 차를 보고 있었다.“다들 나갔으니 좀 쉬엄쉬엄 일할 수 있겠네요?”“쉿! 이런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사모님이 우리에게 주는 월급이 얼만데. 받는 만큼 일을 해야지. 네가 다른 곳에 가서 이것보다 몇 배 더 한다고 해도 월급의 절반도 못 받을 거야.”집주인이 다 떠나면 조금 게으름을 피우려던 하인은 그 말을 듣고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는 게으른 꾀를 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차가 큰길에 올라서서 나갔을 때 맞은편에서 검은색 대형 승합차 한 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선희는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그렇게 두 차는 서로를 스쳐 지나갔다.한편, 선희는 차에 앉아 자신이 특별히 가지고 온 사탕을 펼쳤다.“오늘 시골에 가야 하는데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