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면 수현이 제일 많이 연락하는 사람이 윤아인데 그런 그녀에게도 연락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는 연락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이런 걸 알면서도 윤아는 묻고 싶었다.대답을 들은 지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선희는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는 걸 눈치챘다. 선희도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윤아가 자라는 걸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이 정도는 앞뒤 상황을 떠올려보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윤아야, 수현이 이틀 동안 연락을 안 해서 걱정이야?”선희를 대할 때는 모두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윤아도 아무런 부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웬만하면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안 할 것 같진 않아서요.”“그렇긴 하지.”그녀의 말을 들은 후 선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얼마나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던 거야?”윤아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과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대해 그가 답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간단히 말했다.“어제부터 지금까지라고 볼 수 있겠네. 시간이 꽤 오래된 것 같지만 해외와 국내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해. 수현이 바쁜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도 국내는 아직 밤이니까 네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던 걸 수도 있잖니? 아직 시간이 이르니 좀 더 기다려볼까?”분명히 윤아를 위로하는 말이었고, 일리 있는 말이었다.그러나 지금까지도 매섭게 뛰는 그녀의 눈꺼풀은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했다.윤아는 매우 불안했지만 수현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전화해 봤니?”윤아가 아직도 걱정스러운 모습보이자 선희가 물었다. 물었다.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여기까지 듣고 선희는 점차 뭔가를 깨달았다.“그가 외국에서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거니?”원래 윤아는 그녀가 수현이 외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수현이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그럼 이걸 말 해도 되는 건가?’‘괜히 걱정
돈을 안 주면 막 나가는 놈들이다.그래도 이런 사건이 그리 빈번하지 않은 것은 부자들이 모두 자신의 아이를 잘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지만 만약 방심하여 범죄자에게 시간과 공간을 준다면 끔찍한 일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었다. 그들은 돈이 부족하지도 않고 오직 아이 걱정만 있는 아주 좋은 타깃이니까.그러니 경호원들이 그들을 따라오는 것을 보고도 선희는 놀라지 않았다.“네, 알겠어요.”그녀에게 승낙한 후 윤아는 돌아섰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서 사복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갔다. 원래 바로 떠날 계획이었으나 사용인이 그녀를 불러내어 아침을 먹게 하였다.윤아는 앉아서 아침을 건성으로 먹으며 핸드폰을 뒤적거렸다.그녀는 입맛이 없어 겨우 몇 입 먹고 민재의 전화를 받았다.민재의 전화를 본 윤아는 심장 박동이 빨라지더니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무슨 소식 있어요?”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윤아 님. 조급해 하지 마세요. 아직 대표님 연락은 없지만 분명 괜찮을 거예요.”민재가 수현의 소식을 전해줄 줄 알았던 윤아는 상대방의 말을 듣고는 눈빛이 어두워졌다.“무슨 말씀이세요? 아직도 진수현이랑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그쪽 사람들은요? 그때 우리가 갔을 때 그 사람 주변에 사람이 많았잖아요? 아무래도 연락 한 통은 해야 하지 않겠어요?”“네, 연락이 왔는데...”민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근데 뭐요?”그녀의 목소리는 자신도 모르게 몇 점씩 올라가며 욱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언성이 높아진 것은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초조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자신의 말투가 잘못되었음을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말을 뱉은 후였다.윤아는 잠시 멈칫하더니 말했다.“미안해요, 제가 좀 급해서요. 연락해 봤는데 어떻게 됐는데요?”“그쪽 사람들 말로는 어제 대표님이 외출했고 별장에는 두 사람만 남아 소식을 전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분들이 나가고 나서 계속 연락이 안 되고 전화를 했는데도 연결이 안 되는 상태예요.”‘연결이 안 돼
핸드폰을 접은 윤아는 더 이상 음식을 먹을 기분이 아니었다.원래 그녀는 나갈 계획이었으나 지금은 그의 상황도 이미 알고 있으니 나갈 필요가 없어졌다.“윤아 님?”그녀가 전화를 걸었을 때 심기가 불편해 보여서 사용인들이 옆에서 감히 말도 하지 못했는데 전화를 끊고 나서도 계속 아무것도 먹지 않자 조심스럽게 물었다.“음식이 식겠어요.”그 말에 윤아는 눈앞의 음식을 내려다보다가 입술을 움직였다. 그녀는 못 먹겠다며 사용인에게 대신 음식을 받아 가라고 했다.하지만 결국 음식을 몇 입 삼킨 뒤 자리를 떴다.평소에 항상 두 아이에게 음식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안 되지 않은가.위층으로 올라간 후, 윤아는 방으로 돌아가 수현의 번호를 눌렀다.비록 민재가 자신이 걸었던 전화는 불통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단념하지 않았다.뚜뚜--전화가 두 번 울린 후 저절로 끊겼고 상대방의 전화 종료 알림도 없이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다.통화 중 소리가 떨어지면서 윤아는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마침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하더니 한적한 실내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윤아는 수현의 전화인 줄 알고 서둘러 핸드폰을 보았지만 발신자 표시를 보고 낙담했다.“여보세요.”“대표님. 목소리가 왜 이렇게 우울해요?”며칠 만에 민우의 목소리가 윤아의 귀에 들렸다.지금은 수현 말고 누가 전화해도 힘이 안 나서 그 질문에도 윤아는 여전히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무슨 일이죠?”“제가 전화를 하는 이유야 뻔하죠. 대표님, 회사에 안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저번에 전화했는데 받지도 않으시고. 이 비서님한테 물어보지 않았다면 대표님이 해외에 갔었다는 것도 몰랐을 거예요.”‘회사... 맞지, 나 회사가 있었지.’지난번에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간 뒤로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그녀는 회사에 한 번도 가지 않았다.“미안해요. 제가 요즘... 일이 좀 많아서요.”윤아는 그에게 진실
그는 연속해서 윤아를 몇 번 부른 후에야 비로소 그녀의 정신을 끌어당겼다.정신을 차린 윤아는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우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미안해요. 잠깐 딴생각을 하느라.”“대표님. 대표님 일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지금 잠깐 시간 내서 이 계약서 좀 봐주세요. 다 보고 나서 딴생각 마저 하는 건 어때요?”윤아는 창백한 입술을 오므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이번에는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계약서를 읽고 사인을 했다.그러고는 계약서를 민우에게 건네며 말했다.“그동안 고생했어요.”“고생은요. 제가 임원인 걸 어떡해요?”민우는 빙긋 웃으며 원래 계약서를 안고 떠나려다 또 가십거리를 참지 못했다.“대표님. 사랑싸움인가요?”하지만 그의 가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윤아는 계약서를 건네준 뒤 다시 생각에 잠겼다.민우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됐어요. 가는 길에 사고 안 나게 조심하세요.”말을 마친 그는 돌아서 나가려다 문 앞에서 예닐곱 명의 검은 양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건장한 사내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분들은?”제일 윗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를 서늘하게 한 번 보더니 윤아 회사 임원임을 눈치채고는 정중하게 말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윤아 님 경호원입니다.”“...”한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오더니 그새 경호원들이 이렇게 많이 생긴 건가. 비록 윤아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하지는 않았지만 민우는 똑똑한 사람이라 실제 상황에 따라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보아하니 그동안 바쁜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난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경호원이 그녀의 곁을 따라다닐 일이 뭐가 있겠는가.‘어쩐지 계약서를 볼 때 어딘가 불안해 보이더니.’이 생각에 민우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알아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물어봐도 괜히 마음만 더욱 혼란스럽게 할 테니 더 생각하지 않고 곧 계약서를 들고 떠났다.민우가 떠난 뒤 문을 두드리고 들어온
결국 윤아는 책상으로 돌아갔다. 창문은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고 현관에도 경호원이 있었다.만약 이때 카메라가 이 사무실을 비추고 있다면 아마 무슨 깡패 두목인 줄 알 것이다.그녀는 일할 기분이 나지 않아 핸드폰만 수시로 만지작거리며 사소한 소식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일을 할 상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급한 업무를 보기도 했다. 그 와중에 민재의 탑승 소식을 접하기도 했다.그가 비행기에 탑승한 후에는 다시 연락하기가 어려워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오후 내내 조용하던 핸드폰이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에 울렸다.소리가 들리자 윤아는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지만 낯선 해외에서 걸걸려 온 전화였다.‘뭐지?’별생각 없이 윤아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사실 마음속으로는 그녀에게 전화한 사람이 수현이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자기는 지금 무사하고 아무 일 없이 돌아왔다고, 당분간은 이 번호로 연락할 거라고 말이다.그러나 윤아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역시. 이 번호로 다시 바꿨구나.”그녀의 귀에 들려온 건 온화하면서도 약간은 서늘한 목소리였다.이 소리...윤아는 갑자기 몸에 소름이 돋았다.“내가 새로 준 번호는 마음에 안 들었나 봐, 윤아야.”그의 목소리는 서늘했고 핸드폰을 타고 윤아의 온몸을 소름 끼치게 파고드는 것 같았다.“그 번호가 별로였어? 뒷자리 숫자가 마음에 안들었나? 내가 새로 바꿔줄까?”선우가 다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나서야 윤아는 자기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거야? 이런 얘기가 재미있어?”옆에서 지켜주던 사람이 그녀의 표정을 보고 순식간에 그녀를 에워쌌다.“허...”핸드폰 너머로 희끗희끗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좋아. 우리 윤아가 재미가 없다면 조금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해볼까?”윤아는 숨이 턱 막히고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무슨 소리야?”“지루하다며. 화제를 좀 바꿔볼게.”윤아가 숨을 죽이고 입을 열지 않
“뭘 그만하라는 거야? 내가 진작에 그랬으면 귀국하지 않았을 텐데. 어쩌면 애초에 널 귀국시킨 게 잘못일지도 몰라. 적어도 해외에 있을 때는 날 받아주지 않아도 다른 사람 곁에 있지는 않았으니까.”그의 말에 윤아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말했다.“진수현 거기 있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제 내 말을 들어줄 인내심도 없는 거야?”“난...”“궁금하면 직접 와서 볼래?”윤아는 숨이 턱 막혔다.“네가 내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을 거야.”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예전엔 아무 일도 없었어. 꼭 이렇게 모든 걸 망쳤어야 했니?”“허.”선우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랬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운데 왜 귀국한다고 했어?”윤아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제 엉망이 되어버린 선우와 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여기로 와. 그때 거기서 기다릴게.”말을 마친 후, 선우가 전화를 끊으려고 하자 윤아가 서둘러 말했다.“잠깐만. 아직 진수현이 어떻게 됐는지 말 안 했어. 그 사람 지금 어디 있는 거야?”“윤아야. 널 보기 전에는 아무 말도 안 할 거야.”이번에는 선우가 전화를 끊었고 윤아는 핸드폰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들으며 멍하니 있다가 뒤늦게 방금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이번엔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여러 번을 시도해도 여전히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옆에 있던 경호원은 다급해하는 윤아를 보며 물었다.“윤아 님, 무슨 일 있으면 조급해하지 말고 저희에게 말씀해 주세요.”윤아는 급히 방금 일어난 일을 알려주며 번호를 건넸다.번호를 받은 후, 그는 바로 전화를 걸어 기술자가 그 번호를 확실히 알아보도록 지시했다.윤아는 기다리는 동안 수현에게 다시 몇 번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몇 분 후, 경호원이 말했다.“윤아 님. 이 번호는 그쪽에 있는 구식 공중전화였습니다.”‘공중전화?’‘거기에도 구식 공중전화가 있단 말이야?’윤아는 조금 의심스러웠다.심란한 마음에 눈을
“그건 안심하셔도 됩니다. 저를 고용할 때 대표님께서 이미 일 년 치 비용을 전부 선불하셨습니다.”1년?이 숫자를 들었을 때 윤아는 깜짝 놀랐다.그 긴 시간을 미리 앞당겨 결제했다니.“그러니 저희는 앞으로 일 년 동안 윤아 님의 신변을 보호할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윤아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돈으로 움직인다 이거죠?”그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만약 내가 그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면 나와 함께 출국해 줄 수 있나요?”그 말에 경호원은 잠시 멈칫했다.“걱정 마세요. 진수현만 돈 많은 거 아니니까. 저도 충분히 돈 드릴 수 있어요. 못 믿겠으면 저도 선불로 드리죠.”“그건...”“설마 당신들 보호 가능 범위가 국내 한정은 아니죠?”“그건 아닙니다. 외국도 가능하긴 한데 다만... 저희는 대표님께 윤아 님의 안전을 지켜드리겠다 약속을 해서요. 그러니 저희는...”“네.”윤아가 입을 열었다“저를 보호한다는 게 제 자유를 제한한다는 건 아닐 텐데요. 설마 진수현이 당신들 비용을 지불하면서 그런 요구를 했습니까?”그 질문에 경호원들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과연, 그들은 윤아가 어딜 가든 막을 수 없다. 그저 그녀가 어딜 가든 따라다니는 수밖에.“음. 윤아 님, 윤아 님이 가시겠다면 저희도 막진 않을 겁니다. 다만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일 거란걸 어떻게 확신하냐는 겁니다. 만약 대표님께서는 별일 없고 그저 윤아 님을 꾀어내려 하는 거라면서요.”그 생각은 윤아도 선우와의 통화를 마친 후 가장 먼저 들었던 거긴 하다.‘날 속이는 거면 어떡하지?’하지만... 선우와 알고 지낸 세월도 짧지 않았다. 지난 5년 동안 그와 함께 지내면서 그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선우가 전화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분명 일이 모두 그녀의 상상대로 되었음을 설명한다.물론 자신이 그녀를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이런 말을 하며 그녀를 자극했을 수도 있다.윤아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그러자 경호원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숨긴다고 숨겨도 선희는 알아차렸다. 저녁을 먹은 후, 두 아이가 수현의 아버지를 따라 서재로 들어가고 나서야 선희는 윤아에게 속삭였다.“어떻게 됐니? 수현이랑은 연락이 됐니?”윤아는 잠시 동안 그녀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왜 그래? 무슨 걱정이 있어서 말을 못 하는 거야? 윤아야, 내가 비록 네 엄마는 아니지만 네가 원한다면 나를 엄마처럼 대해도 좋아. 무슨 말이든 나한테 해. 네가 떠날 때, 나는 네 얼굴을 한 번 더 볼 겨를조차 없었고 심지어 너희들 일도 모르고 있었어. 만약 내가 알았다면 나도 네게 말했을 거야. 너와 수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네가 설령 그를 원하지 않더라도 나만큼은 영원히 엄마처럼 생각해도 좋아.”그녀의 말에 윤아는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감사합니다, 어머니.”어렸을 때 그녀는 줄곧 다른 사람에게 엄마가 있는 것을 부러워했다. 왜 자기한테만 엄마가 없을까 의문을 품기도, 그녀를 사랑해 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기도 했다. 그녀에게 예쁜 치마를 사주고, 손수 입혀주고, 밤에 그녀를 껴안고 자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녀가 깨어났을 때 그녀에게 부드러운 아침 키스를 해줄 수 있는 엄마 말이다.설령 그딴 건 없다고 해도 그저 엄마라는 존재를 갈망했다.그러다... 그녀의 그런 감정은 수현의 할머니를 자연스레 향했다. 엄마 같은 어른이 그녀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였다.“어르신은 이미 돌아가셨어. 돌아가시기 전에도 늘 너를 생각하고 계셨단다. 마지막까지 너한테 못 해준 걸 아쉬워하셨어. 만약 애초에 너와 수현의 사이를 많이 풀어줬더라면 둘은 이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야.”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윤아의 눈가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그녀 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되지만, 할머니 얘기는 조금 힘들었다.자신의 고집 때문에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지 못한 것을 윤아는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죄송해요. 그때...”“됐어.”선희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다 지나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