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희는 멀리서도 윤아와 두 아이를 한눈에 알아봤다. 윤아의 옆에는 똑같게 생긴 쌍둥이 남매가 있었다.민재가 이선희에게 전화했을 때 그녀는 깜짝 놀랐다.“아이? 수현와 윤아의 아이말인가?”“네, 사모님.”“정말... 윤아에게 수현이와의 아이가 있다고? 아이가 몇 살이지?”민재가 이선희에게 두 아이가 이미 다섯 살이고 쌍둥이 남매라고 말했을 때, 이선희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예전에 아무도 맘에 들어 하지 않던 수현의 모습과 진씨 가문과 연을 끊고 싶어 하던 윤아의 모습에 이선희는 이번 생에 수현은 다시는 짝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손자를 안을 기회는 더욱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이선희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겨우겨우 손자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며 자신을 설득했다. 어차피 그의 아들이 살아있으니 아이는 그녀가 걱정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수현이도 걱정하지 않는데 내가 뭘 걱정해?’그런데 서프라이즈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늘 손자가 없다고 걱정했는데, 한 번에 두 명이나 생겼다. 멀리서 보니 그 두 아이의 외모가 곱상하여 유난히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아이의 얼굴은 수현과 유난히 닮았다.전에 전화 왔을 때 통화를 엿들은 도우미가 이선희가 떠날 때 말했었다. “사모님, 윤아 아가씨가 떠난 지 5년이 되지 않았어요? 어떻게 저희 도련님의 아이를 낳을 수 있어요? 함정이 있는 게 아닐까요? 아이가 진짜 도련님의 핏줄이 맞을까요?”비록 아직 윤아와 두 아이를 보지 못했지만 도우미의 말에 이선희는 순식간에 안색이 변하며 나무랐다. “진씨 가문에선 당신을 청소하라고 고용한 것이지 혀를 함부로 놀리라고 한 것이 아니에요.”이선희가 화내는 모습에 놀란 도우미는 목을 움츠렸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저도 도련님이 사기를 당하실까 봐 걱정돼서 말한 거예요. 악의는 없습니다.”“수현이보다 똑똑해요? 수현이가 자신이 속고 있는지 아닌지 모를까 봐요? 도우미가 우리
그럼에도 이선희는 당시 부부였던 윤아와 수현을 재촉하지 않았다. 어른으로서 젊은이들의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예전에 젊었을 때 그녀가 수현을 임신한 것도 의외였다. 원래 남편과 둘만의 시간을 좀 더 보내고 싶었다. 게다가 김선월도 재촉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단둘이 오붓한 나날을 보냈었다.그리고 그렇게... 임신했다.이선희는 자신도 그랬기 때문에 당연히 윤아와 수현을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나중에 두 사람이 이혼하고 윤아가 멀리 도망갈 줄이야.그 후 사람들은 손자를 이용해 이선희를 더 약올렸다. 그때마다 이선희 그저 미소만 지으며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서 두 회사의 협력을 중단했다. 그러자 상대는 겁먹고 그날 밤에 찾아와 잘못했다며 용서해달라고 빌었다.그 후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았고 이선희도 기대하지 않았다.지금은...윤아 일행이 점점 가까워지자 이선희는 몸을 쭈그리고 앉았다.윤아는 멀리서 이선희와 진태범을 발견했다. 몇 년이 지나도 이선희는 여전히 아름다웠다.멀찌감치 윤아를 향해 웃더니 이내 앞에 주저앉아 두 팔을 벌리고 마중하는 이선희를 보고 윤아가 말했다. “윤이, 훈이야, 얼른 인사해. 할머니와 할아버지야.”두 녀석은 비행기에서 말한 대로 윤아가 소개하자 얼른 공손하게 두 사람을 불렀다. “할아버지, 할머니 안녕하세요.”아직 낯선 탓에 아이들은 두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이선희는 전혀 불쾌한 기색이 없었다. 심지어 두 아이가 애교섞인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이선희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다. “그래. 그래.”이선희는 연거푸 두 번 대답하고 나서 감격하여 두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옆에서 이선희에 비해 담담한 모습을 보이던 진태범도 지금은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천천히 두 아이의 눈높이를 맞췄다.윤아는 두 사람이 어린아이들 앞에서 유치하게 이것저것 묻는 것을 옆에서 지켜봤다.두 사람은 아이들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몇 살인지, 학교에 다니
집에 돌아온 후에도 이선희는 윤아에게 아주 친절했다. 윤아의 손을 맞잡고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였다.윤아도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지,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서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두 아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라고 부르지만 윤아는 어머님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어쨌든... 벌써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으니깐.눈빛이나 표정을 통해 윤아의 생각을 눈치챈 이선희는 손을 뻗어 윤아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며시 넘긴 후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야, 그동안 밖에서 고생했어.”이선희의 한마디에 윤아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이선희가 어떤 말을 할지 상상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말과 마음속에 있는 털어놓을 수 없는 수많은 억울함에 윤아는 마음이 괴로웠다.윤아는 어릴 때부터 늘 자신에게 엄마가 있기를 바랐다. 지금 이선희한테 예전에는 없었던 가족 같은 친근감이 있었다. 윤아가 눈시울을 붉히자 이선희도 괴로운 마음에 손을 뻗어 윤아의 얼굴을 만졌다. “아가야, 괜찮아. 돌아왔으면 됐어. 예전에 현이가 너를 힘들게 했지? 앞으로 어머니가 잘해 줄게.”어머니?윤아는 이미 눈앞이 흐릿해져 이선희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어렴풋이 안쓰러운 표정을 한 이선희가 보였다.문득 이선희가 자신을 가리키는 호칭에 윤아는 어리둥절했다.‘방금 자신을 어머니라고 한 거야?’‘그러면... 앞으로도 계속 어머님이라고 불러도 돼?’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나직하게 말했다.“저는... 5년이 지났으니 어머님이 저를 미워하실 줄 알았어요.”“아가야, 그럴리가 있겠니? 넌 내가 너 어릴 때부터 봐온 아이야.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도 알고 있잖니. 네가 떠났을 때 나도 한동안 많이 자책했었어. 너희 둘 사이의 문제를 어머니라는 내가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제때 해결해 주지 못한 건 내 잘못이지.”“아니에요.”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눈에 맺혔던 눈물이 순간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뚝뚝 떨어져 하얀 얼굴을 더 청초하게 만들었다. “어머님과는
부상이 있는 몸으로 아직 해외에 있는 수현이 떠올라 윤아의 입가에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자, 다른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하루 종일 비행기 탔더니 배고프지? 음식 거의 다 됐을 거야. 이따가 아무 생각 말고 밥이나 꼭꼭 씹어먹어. 나머지 일은 내일 얘기하자꾸나.”외국에서 먹었던 것과 달리 저녁은 푸짐하고도 익숙한 냄새를 풍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음식의 맛이 뜻밖에도 윤아에게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윤아는 고개를 들고 이선희와 진태범을 바라봤다. 비록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긴 했지만 서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길어 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버님, 어머님, 혹시 집안의 주방장이 아직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에요?”이선희는 윤아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주방장이 진씨 가문에 오래 일한 것도 있고 우리도 맛에 익숙해져서 안 바꿨어. 왜? 익숙한 맛이 느껴져?”“네, 엄청 익숙한 맛이네요.”음식도 익숙하고, 집안의 장식품조차도 변한 것이 없어 5년 전과 거의 똑같게 느껴졌다.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아마... 밥상에 꼬맹이 두 명이 더 생긴 것이다.두 꼬맹이는 진태범과 이선희 사이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윤아의 질문에 대답한 후 다시 아이들에게 반찬을 집어주기 시작했다. “자자. 윤이야,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지? 많이 먹거라.”“훈이야. 이것도 먹어.”아이들은 이미 윤아가 돌볼 필요가 없었다. 윤아는 자기 밥만 잘 먹으면 됐다. 저녁 식사 후, 이선희는 윤아에게 말했다. “방은 원래 너랑 현이가 쓰던 방이야. 도우미가 매일 청소하고 이불도 모두 새것으로 바꿨으니까 바로 그 방을 쓰면 된단다.”“네.”“참, 너랑 상의할 일이 있단다.”이선희는 쑥스러운 듯 윤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어머님, 무슨 일이세요?”“그게 말이다, 너희들이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잖니. 그래서 오늘 밤이라도... 윤이랑 훈이를 우리가 데리고 잤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물론 네 의견이 더 중요하단다. 네가 싫으면.
진씨 집안이 남성에서 수원으로 거처를 옮기려 한다는 사실에 윤아는 경악했다.동시에 그녀는 수현을 더더욱 리스펙하게 되었다.하지만 그녀도 수현의 어머니가 결정했을 때 미리 물었었다.“진 씨네 뿌리는 남성이잖아요. 수원으로 이사 가면 혹시...”“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나와 네 아버지 모두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니 신경 쓰이는 건 너희 아이들뿐이야. 지금 우리는 손자가 둘이나 더 생겼으니 기쁜 마음으로 너희들을 제일 먼저 배려할 거야. 하물며 우리 부부는 어디서 살든 상관이 없단다. 그쪽이 여기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아니냐. 네 회사도 거기에 있는 거 아니니? 모르는 거 있으면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일 하렴. 아이는 전혀 걱정하지 말고, 나와 네 아버지가 물심양면으로 잘 보살피마.”그 말을 끝으로 선희는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가랴, 친아버지와 이사에 관한 일을 상의하랴 바쁜 탓에 더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윤아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지금 막 시작한 단계라지만 그럭저럭 성과를 내고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진 씨 가문에 비하면 여전히 볼품없다.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녀가 볼품없는 회사 하나를 붙잡고 있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을뿐더러 그녀를 따라 수원까지 함께 가준다고 하고 있다.‘정말 이제는 회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지신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윤아는 재빨리 익숙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멈춰 섰을 때, 그녀는 계속 딴생각을 하며 걸어도 몸이 자연스레 방을 찾아갔음을 알아채고 새삼 놀랐다. 5년이나 흘렀는데 몸은 아직도 이 집이 익숙한 모양이다. 방문을 열자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그녀는 멍하니 걸어 들어가 5년 동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실내장식을 바라보았다. 침대 위의 이불만 새것으로 교체했고 다른 것들은 크게는 커튼, 작게는 탁자 위의 장식품까지도 모두 교체하지 않았다.그때와 달라진게 없는 낯익은 방의 모습에 윤아는 왠지 5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그러나 곧 수현의 눈빛이 변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뒷배경을 본 모양이다. “집이야?”윤아는 그의 뒤를 훑어보다가 왠지 모르게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실 자신이 이렇게 빨리 그를 용서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달갑지 않은 마음이 줄곧 있긴 했다. 비록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니. 윤아는 그와 함께 있고 싶은 건 맞지만 이렇게 빨리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말없이 시선만 떨구는 윤아를 보자 수현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바꾸고 화제를 돌렸다.“훈이랑 윤이는 자?”다른 이야기를 들은 윤아는 그제야 다시 눈을 떴다.“아마 잠들었을 거야. 밤에 같이...”윤아는 또다시 말을 멈추었고 덩달아 멈칫하던 수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훈이랑 윤이 지금 혹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거야?’윤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어, 어른들이 좋아하시더라.”자꾸만 말을 잇지 못하는 윤아의 모습에 분위기가 이상해진 탓인지 이야기가 끝난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에야 수현은 자신의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스크린 너머의 윤아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진 비서 일은 걱정하지 마. 오늘은 아직 아무 소식이 없지만 계속 조사해볼게. 소식이 있으면 바로 너한테 알려줄 거야.”윤아는 그를 향해 웃었다.“응.”수현은 아직 외출복 차림인 그녀를 보고 물었다.“아직 안 씻었어?”“응. 씻으러 가려고 하는데 네 전화가 왔어.”“내가 방해한 건가?”“아니야.”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잠깐 영상통화 하는 건데 뭐. 늦게 씻어도 괜찮아.”어차피 지금은 잘 시간도 아니었다.비록 온종일 비행기를 타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상통화 한 통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현은 화면 너머로 윤아의 매끈한 피부와 오밀조밀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니 윤아의 눈에 피로감이 언뜻 비쳤다.‘내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세수를 마친 윤아는 침대에 누웠다.이불이 하도 푹신푹신해 거의 이불 속에 몸이 통째로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윤아는 원래 그녀가 5년 전의 일을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떠나고 초반에는 국내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특히 그녀와 수현 사이의 사소한 일들이 떠올라 잠 못 이룬 밤이 많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옛 추억은 서서히 잊혀졌다.나중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침대에 누우니 수현과의 추억이 또다시 머릿속에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두 사람 사이의 추억이 어느새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붙잡을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그도 그럴 것이 이 침대는 윤아가 수현과 사랑을 나눈 곳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생각했을까, 윤아는 어느새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윤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훈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아침 10시가 되었다.“엄마. 오늘 엄청 많이 잤어요.”서훈은 그녀를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윤아는 약간 헝클어진 긴 머리를 정돈하며 말했다.“나도 모르게 늦잠을 잤네. 어젯밤 알람 맞추는 것도 까먹고 잠들었나 봐.”“엄마, 할머니가 요리사한테 맛있는 거 많이 해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일어나서 먼저 먹었어요. 엄마 지금 배고프죠? 먹을 걸 좀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괜찮아.”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밥 한 끼 먹는데 방까지 가져다주는 건 조금 부담스러웠다.“우리 아들 먼저 내려가. 엄마 옷 갈아입고 갈게.”“네.”서훈이 떠난 뒤 윤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질 줄은 정말 몰랐다. 예전의 낯익은 곳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예전에는 이렇게 잠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계단을 내려간 뒤 윤아가 아침 식사를 하자 하윤은 바로 옆에 앉아 선희의 품에 안겼다. 윤아는 손목에 예쁜 팔찌를 차고 있는 하윤을 보며 물었다.“무슨 팔찌니?”“할머니가 윤이한테 주신 거예요.”
윤아는 쳐놓은 호칭을 모두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우리는 오늘 수원으로 출발할 거야.”‘이러면 조금 자연스러워 보이겠지.’그녀는 두 번 관찰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식을 보냈다.소식이 발송된 지 오래되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윤아는 수현이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여겨 휴대전화를 치웠다.시차 때문에 연락이 쉽지 않아 윤아는 수현이 답장을 하지 않아도 자고 있거나 바쁘겠거니 했다.아무 때든 시간 될 때 답장이 올 것이다.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고, 거리는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곳곳에 고층건물이 있었다.선희는 이런 건축물이 이미 익숙했지만 이번에 수원에 와서 윤아가 심리적 압박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더 호들갑을 떨었다.“수원의 건물도 난청보다 나쁘지 않아. 방금 일기예보를 확인해봤는데 살기 좋은 곳인 것 같네. 앞으로 여기서 오래 있고 싶으면 수현도 본사를 이쪽으로 옮기라고 해.”그녀의 말 속에는 온통 윤아를 향한 마음이었다.윤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수현 씨 마음이죠.”“쟤 마음 아니고 우리 마음이야.”선희는 윤아의 가냘픈 손목을 잡으며 약속이라도 하듯 말했다.“널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사를 하겠다고 할 거야. 싫다고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날 위해 이사를?’왜서인진 모르겠지만 윤아는 그녀의 말이 제법 신뢰가 갔다. 그리고 최근 수현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했다.다만 회사를 옮기는 건 작은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진 씨 그룹의 직원 대부분은 현지 거주자이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회사를 옮긴다면 수현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거다. “나중에 보죠.”“그래, 나중에 보자. 어차피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선희는 배려심에 굳이 그가 왜 해외에 남아 있는지 묻지 않았지만 윤아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일은 분명히 다 해결되었지만 그녀의 이기심 때문에 수현이 해외에 머무는 것이지 않은가.게다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