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이 있는 몸으로 아직 해외에 있는 수현이 떠올라 윤아의 입가에 웃음이 조금 사라졌다.“자, 다른 건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하루 종일 비행기 탔더니 배고프지? 음식 거의 다 됐을 거야. 이따가 아무 생각 말고 밥이나 꼭꼭 씹어먹어. 나머지 일은 내일 얘기하자꾸나.”외국에서 먹었던 것과 달리 저녁은 푸짐하고도 익숙한 냄새를 풍겼다. 가장 중요한 것은...음식의 맛이 뜻밖에도 윤아에게 아주 익숙한 맛이었다...윤아는 고개를 들고 이선희와 진태범을 바라봤다. 비록 마음의 응어리가 풀리긴 했지만 서로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길어 윤아는 조금 쑥스러워하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버님, 어머님, 혹시 집안의 주방장이 아직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에요?”이선희는 윤아를 다정하게 바라봤다. “주방장이 진씨 가문에 오래 일한 것도 있고 우리도 맛에 익숙해져서 안 바꿨어. 왜? 익숙한 맛이 느껴져?”“네, 엄청 익숙한 맛이네요.”음식도 익숙하고, 집안의 장식품조차도 변한 것이 없어 5년 전과 거의 똑같게 느껴졌다.굳이 다른 점을 꼽자면 아마... 밥상에 꼬맹이 두 명이 더 생긴 것이다.두 꼬맹이는 진태범과 이선희 사이에 앉아있었다. 두 사람은 윤아의 질문에 대답한 후 다시 아이들에게 반찬을 집어주기 시작했다. “자자. 윤이야, 이거 네가 좋아하는 거지? 많이 먹거라.”“훈이야. 이것도 먹어.”아이들은 이미 윤아가 돌볼 필요가 없었다. 윤아는 자기 밥만 잘 먹으면 됐다. 저녁 식사 후, 이선희는 윤아에게 말했다. “방은 원래 너랑 현이가 쓰던 방이야. 도우미가 매일 청소하고 이불도 모두 새것으로 바꿨으니까 바로 그 방을 쓰면 된단다.”“네.”“참, 너랑 상의할 일이 있단다.”이선희는 쑥스러운 듯 윤아를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어머님, 무슨 일이세요?”“그게 말이다, 너희들이 오늘 하루 종일 피곤했잖니. 그래서 오늘 밤이라도... 윤이랑 훈이를 우리가 데리고 잤으면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물론 네 의견이 더 중요하단다. 네가 싫으면.
진씨 집안이 남성에서 수원으로 거처를 옮기려 한다는 사실에 윤아는 경악했다.동시에 그녀는 수현을 더더욱 리스펙하게 되었다.하지만 그녀도 수현의 어머니가 결정했을 때 미리 물었었다.“진 씨네 뿌리는 남성이잖아요. 수원으로 이사 가면 혹시...”“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니. 나와 네 아버지 모두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니 신경 쓰이는 건 너희 아이들뿐이야. 지금 우리는 손자가 둘이나 더 생겼으니 기쁜 마음으로 너희들을 제일 먼저 배려할 거야. 하물며 우리 부부는 어디서 살든 상관이 없단다. 그쪽이 여기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아니냐. 네 회사도 거기에 있는 거 아니니? 모르는 거 있으면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열심히 하고 싶은 일 하렴. 아이는 전혀 걱정하지 말고, 나와 네 아버지가 물심양면으로 잘 보살피마.”그 말을 끝으로 선희는 아이들을 방으로 데려가랴, 친아버지와 이사에 관한 일을 상의하랴 바쁜 탓에 더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윤아는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 이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의 회사는 지금 막 시작한 단계라지만 그럭저럭 성과를 내고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진 씨 가문에 비하면 여전히 볼품없다.하지만 지금 그들은 그녀가 볼품없는 회사 하나를 붙잡고 있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을뿐더러 그녀를 따라 수원까지 함께 가준다고 하고 있다.‘정말 이제는 회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지신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윤아는 재빨리 익숙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멈춰 섰을 때, 그녀는 계속 딴생각을 하며 걸어도 몸이 자연스레 방을 찾아갔음을 알아채고 새삼 놀랐다. 5년이나 흘렀는데 몸은 아직도 이 집이 익숙한 모양이다. 방문을 열자 낯익은 풍경이 보였다.그녀는 멍하니 걸어 들어가 5년 동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실내장식을 바라보았다. 침대 위의 이불만 새것으로 교체했고 다른 것들은 크게는 커튼, 작게는 탁자 위의 장식품까지도 모두 교체하지 않았다.그때와 달라진게 없는 낯익은 방의 모습에 윤아는 왠지 5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그러나 곧 수현의 눈빛이 변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뒷배경을 본 모양이다. “집이야?”윤아는 그의 뒤를 훑어보다가 왠지 모르게 조금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실 자신이 이렇게 빨리 그를 용서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달갑지 않은 마음이 줄곧 있긴 했다. 비록 두 사람 사이에는 오해가 있었지만 그래도 그에게 받았던 마음의 상처는 그대로니. 윤아는 그와 함께 있고 싶은 건 맞지만 이렇게 빨리 그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말없이 시선만 떨구는 윤아를 보자 수현의 눈빛이 약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바꾸고 화제를 돌렸다.“훈이랑 윤이는 자?”다른 이야기를 들은 윤아는 그제야 다시 눈을 떴다.“아마 잠들었을 거야. 밤에 같이...”윤아는 또다시 말을 멈추었고 덩달아 멈칫하던 수현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훈이랑 윤이 지금 혹시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있는 거야?’윤아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어, 어른들이 좋아하시더라.”자꾸만 말을 잇지 못하는 윤아의 모습에 분위기가 이상해진 탓인지 이야기가 끝난 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한참 뒤에야 수현은 자신의 얇은 입술을 오므리고 스크린 너머의 윤아를 바라보며 속삭였다. “진 비서 일은 걱정하지 마. 오늘은 아직 아무 소식이 없지만 계속 조사해볼게. 소식이 있으면 바로 너한테 알려줄 거야.”윤아는 그를 향해 웃었다.“응.”수현은 아직 외출복 차림인 그녀를 보고 물었다.“아직 안 씻었어?”“응. 씻으러 가려고 하는데 네 전화가 왔어.”“내가 방해한 건가?”“아니야.”윤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잠깐 영상통화 하는 건데 뭐. 늦게 씻어도 괜찮아.”어차피 지금은 잘 시간도 아니었다.비록 온종일 비행기를 타서 좀 피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영상통화 한 통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현은 화면 너머로 윤아의 매끈한 피부와 오밀조밀한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자세히 보니 윤아의 눈에 피로감이 언뜻 비쳤다.‘내가 계속 붙잡고 있으면..
세수를 마친 윤아는 침대에 누웠다.이불이 하도 푹신푹신해 거의 이불 속에 몸이 통째로 빠져들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윤아는 원래 그녀가 5년 전의 일을 거의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를 떠나고 초반에는 국내에서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특히 그녀와 수현 사이의 사소한 일들이 떠올라 잠 못 이룬 밤이 많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옛 추억은 서서히 잊혀졌다.나중에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살았다.그렇게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이 침대에 누우니 수현과의 추억이 또다시 머릿속에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두 사람 사이의 추억이 어느새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붙잡을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다.그도 그럴 것이 이 침대는 윤아가 수현과 사랑을 나눈 곳이었다.그렇게 얼마나 생각했을까, 윤아는 어느새 지쳐 잠자리에 들었다.다음 날, 윤아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훈이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떴다.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아침 10시가 되었다.“엄마. 오늘 엄청 많이 잤어요.”서훈은 그녀를 보며 감탄하듯 말했다.윤아는 약간 헝클어진 긴 머리를 정돈하며 말했다.“나도 모르게 늦잠을 잤네. 어젯밤 알람 맞추는 것도 까먹고 잠들었나 봐.”“엄마, 할머니가 요리사한테 맛있는 거 많이 해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안 일어나서 먼저 먹었어요. 엄마 지금 배고프죠? 먹을 걸 좀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괜찮아.”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밥 한 끼 먹는데 방까지 가져다주는 건 조금 부담스러웠다.“우리 아들 먼저 내려가. 엄마 옷 갈아입고 갈게.”“네.”서훈이 떠난 뒤 윤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자신이 이렇게 깊은 잠에 빠질 줄은 정말 몰랐다. 예전의 낯익은 곳으로 돌아와서 그런가. 예전에는 이렇게 잠을 자는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계단을 내려간 뒤 윤아가 아침 식사를 하자 하윤은 바로 옆에 앉아 선희의 품에 안겼다. 윤아는 손목에 예쁜 팔찌를 차고 있는 하윤을 보며 물었다.“무슨 팔찌니?”“할머니가 윤이한테 주신 거예요.”
윤아는 쳐놓은 호칭을 모두 지우고 다시 입력했다.“우리는 오늘 수원으로 출발할 거야.”‘이러면 조금 자연스러워 보이겠지.’그녀는 두 번 관찰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소식을 보냈다.소식이 발송된 지 오래되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윤아는 수현이 오랫동안 답장을 하지 않자 대수롭지 않게 여겨 휴대전화를 치웠다.시차 때문에 연락이 쉽지 않아 윤아는 수현이 답장을 하지 않아도 자고 있거나 바쁘겠거니 했다.아무 때든 시간 될 때 답장이 올 것이다.수원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고, 거리는 네온사인이 번쩍였고, 곳곳에 고층건물이 있었다.선희는 이런 건축물이 이미 익숙했지만 이번에 수원에 와서 윤아가 심리적 압박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괜히 더 호들갑을 떨었다.“수원의 건물도 난청보다 나쁘지 않아. 방금 일기예보를 확인해봤는데 살기 좋은 곳인 것 같네. 앞으로 여기서 오래 있고 싶으면 수현도 본사를 이쪽으로 옮기라고 해.”그녀의 말 속에는 온통 윤아를 향한 마음이었다.윤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그건 수현 씨 마음이죠.”“쟤 마음 아니고 우리 마음이야.”선희는 윤아의 가냘픈 손목을 잡으며 약속이라도 하듯 말했다.“널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사를 하겠다고 할 거야. 싫다고 그러면 내가 도와줄게.”‘날 위해 이사를?’왜서인진 모르겠지만 윤아는 그녀의 말이 제법 신뢰가 갔다. 그리고 최근 수현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기도 했다.다만 회사를 옮기는 건 작은 일이 아니다. 어쨌든 진 씨 그룹의 직원 대부분은 현지 거주자이기 때문에 만약 정말로 회사를 옮긴다면 수현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심각한 피해를 보게 될 거다. “나중에 보죠.”“그래, 나중에 보자. 어차피 돌아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야.”선희는 배려심에 굳이 그가 왜 해외에 남아 있는지 묻지 않았지만 윤아는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일은 분명히 다 해결되었지만 그녀의 이기심 때문에 수현이 해외에 머무는 것이지 않은가.게다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고 말이다.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자 윤아는 곧바로 연락처에서 수현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나 막상 전화를 걸려니 조금 머뭇거려졌다. 그녀는 2초 뒤 아직 걸지 않은 전화를 다시 눌렀다.그가 자신의 메시지에 답장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지금 바쁜 상태이거나 답장이 불편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괜히 전화했다가 방해라도 하면...’‘됐어. 안전을 위해서 당분간 먼저 전화 걸지 말고 기다리자. 일이 끝나면 바로 답장할 거야.’이런 생각에 윤아는 핸드폰을 가까이 두고 어딜 가나 들고 다녔다. 그 정도는 점점 심해져 이젠 세수를 할 때도 옆 테이블에 올려놓고 수시로 살폈다.하지만 여전히 수현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자 윤아는 마음이 불편해 샤워할 때도 핸드폰을 들고 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나 문자가 오진 않았는지 수시로 살피고 핸드폰이 울리면 곧바로 달려들어 확인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기다리는 사람의 소식이 아님을 발견하고는 낙담하여 내려놓았다.그렇게 윤아는 샤워를 한 시간이나 했다.그녀는 방에 서서 착잡하게 머리를 닦으며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가 머리를 말리고 누울 때까지 하얀 천장을 쳐다봤다.그러다 문득 그를 너무 의식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윤아.‘그냥 답장이 없을 뿐이잖아? 내가 이렇게 넋을 잃을 정도로 긴장했다고?’‘이런 식으로 어떻게 그를 시험한다고.’ 윤아는 몸을 뒤척이며 검은 핸드폰 화면을 보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그녀는 자기 생각을 통제할 수 없었다.한참을 기다리던 윤아는 참다못해 민재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민재의 목소리는 잠결에 잠에서 깬 것이 분명해 보였다.“윤, 윤아 님. 무슨 일이세요?”그제야 시간을 확인한 윤아는 이 잠깐 사이에 벌써 12시가 넘었다는 것을 알았다.하긴, 그녀들이 수원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미 늦은 시간이었으니.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늦은 시간에 전화드려서 죄송해요.”“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원래 진수현 대표님 사람입니다.
중요한 일?‘왜 나한텐 한마디도 하지 않고?’하지만 윤아는 곧 마음이 놓였다. ‘어쩐지 답장이 없더라니, 정말 바빴구나.’‘괜히 문자를 보내서 귀찮게 한 건 아니겠지?’ ‘윤아 님. 걱정 마세요. 대표님은 아무 일 없을 거예요. 시간도 늦었는데 일찍 쉬시겠어요?”윤아는 그의 말에도 걱정되는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하지만 시간도 늦었는데 괜한 사람을 붙잡고 귀찮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그래요. 비서님도 일찍 쉬세요.”“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주세요. 대표님 쪽 소식은 제가 알게 되는 대로 바로 전달 드리죠.”“고마워요.”전화를 끊은 뒤 윤아는 핸드폰을 쥔 채 다시 몸을 뒤척이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는 마음이 뒤숭숭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그렇다고 그녀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결국 윤아는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잠자리에 들었다.다음날, 그녀는 핸드폰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깼다.잠에서 깬 후에야 그녀는 자신이 설정한 알람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엊그제 너무 늦게 깨서 좀 일찍 알람을 맞춰놨는데 알람 소리가 너무 컸는지 아니면 진동 소리를 너무 오래 들어서 그런지 일어나서도 눈꺼풀이 계속 미친 듯이 뛰었다.심장박동도 정상이 아니었다.알람을 끈 후, 윤아는 벽에 기대어 감정을 추스르고 오랫동안 숨을 돌렸다. 그제야 심장 박동은 조금 나아졌지만 눈꺼풀은 여전히 떨렸다.그녀는 줄곧 미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어서 무슨 눈꺼풀이 떨리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한다는 것을 줄곧 믿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그녀의 마음속에는 강렬한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다시 핸드폰을 보니 두 사람의 대화창은 여전히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만 머물러 있었고 이후로는 별다른 메시지가 없었다.‘어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지났는데, 아무리 바쁜 일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바쁘다고?’‘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윤아는 이불을 들추고 점퍼를 한 벌 집어 입고 밖으로 나갔다.선희
다시 생각해 보면 수현이 제일 많이 연락하는 사람이 윤아인데 그런 그녀에게도 연락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는 연락이 되었을 리가 없었다.하지만 이런 걸 알면서도 윤아는 묻고 싶었다.대답을 들은 지금, 실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선희는 그녀가 눈을 내리깔고 있는 모습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겼다는 걸 눈치챘다. 선희도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윤아가 자라는 걸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니 이 정도는 앞뒤 상황을 떠올려보면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었다.“윤아야, 수현이 이틀 동안 연락을 안 해서 걱정이야?”선희를 대할 때는 모두 같은 여자라서 그런지 윤아도 아무런 부담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웬만하면 이렇게 오랫동안 답장을 안 할 것 같진 않아서요.”“그렇긴 하지.”그녀의 말을 들은 후 선희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얼마나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됐던 거야?”윤아는 연락이 닿지 않았던 시간과 자신이 보낸 메시지에 대해 그가 답장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간단히 말했다.“어제부터 지금까지라고 볼 수 있겠네. 시간이 꽤 오래된 것 같지만 해외와 국내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럴 만도 해. 수현이 바쁜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도 국내는 아직 밤이니까 네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던 걸 수도 있잖니? 아직 시간이 이르니 좀 더 기다려볼까?”분명히 윤아를 위로하는 말이었고, 일리 있는 말이었다.그러나 지금까지도 매섭게 뛰는 그녀의 눈꺼풀은 무언가를 예고하는 듯했다.윤아는 매우 불안했지만 수현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전화해 봤니?”윤아가 아직도 걱정스러운 모습보이자 선희가 물었다. 물었다.윤아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여기까지 듣고 선희는 점차 뭔가를 깨달았다.“그가 외국에서 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거니?”원래 윤아는 그녀가 수현이 외국에서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물어볼 줄은 몰랐다. 보아하니 수현이 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그럼 이걸 말 해도 되는 건가?’‘괜히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