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심윤아는 일어나서 약간 감기 기운 때문에 서랍에서 감기약을 꺼내고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랐다.감기약을 입에 넣자마자 심윤아는 무슨 생각이 나서인지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욕실로 달려가 삼키려고 했던 감기약을 뱉어냈다.그녀는 세면대 옆에 엎드려 가글을 하며 방금 삼킨 쓴맛을 모두 토해냈다.“왜 그래? 어디 불편해?”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문 앞에서 들려오자, 심윤아는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고 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눈이 마주치는 순간, 심윤아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아니야, 약을 잘못 먹어서 그래.”말을 마치자, 그녀는 손을 뻗어 입가의 물기를 닦고 욕실에서 나갔다.진수현은 몸을 돌려 조금 전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진수현은 심윤아가 어젯밤 집에 돌아왔을 때부터 어딘가 평소와 다른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아침밥을 먹고 나서 부부가 함께 외출했다. 진수현은 안색이 창백한 심윤아를 힐끗 보고는 말했다.“내 차 타는 게 어때?”심윤아는 어젯밤 비를 맞은 탓에 자고 일어난 후,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막 고개를 끄덕이려 하자, 진수현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진수현은 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확인했고 소영에게서 전화인 것을 보고 잠시 자리를 피해 전화를 받으려 했다. 하지만 고개를 든 순간, 심윤아는 이미 가버리고 없었다.두 사람은 부부지만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는 편이어서 심윤아는 평소에도 진수현의 통화를 엿듣는 습관이 없었다.두 사람 모두 그런 식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지내왔다.하지만 오늘 진수현은 급급하게 자리를 피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찔렸다.그러나 그 느낌은 오래가지 않았고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심윤아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그를 훑어보았다. 진수현의 표정에서 심윤아는 그에게 전화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챌 수 있었다.심윤아를 대할 때는 없었던 온화한 표정이었다. 심윤아는 심호흡하고 부러움을
“정말 괜찮아요. 어제 부탁했던 일은 다 했나요?”몇 마디 말도 없이 다시 업무에 관련된 이야기로 넘어오자, 임연수는 어찌할 도리가 없어 정리한 자료를 가져다준 다음, 서둘러 심윤아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었다.“윤아 님, 병원에 가기 싫으시면 따뜻한 물이라도 많이 마셔요.”임연수는 애당초 심윤아가 불러들인 그녀의 어시스턴트로서, 평상시에 열과 성을 다하여 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일 외에는 어떠한 사적인 왕래도 없었다.그 때문에 심윤아는 임연수가 자기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많이 쓸 줄은 몰랐다.심윤아는 금세 마음이 따뜻해졌고 따뜻한 물을 몇 모금 마셨다.으스스 추위를 타고 있던 심윤아는 따뜻한 물을 조금 마신 후에 심윤아는 마침내 편안해졌다. 그러나 임연수는 여전히 그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윤아 님, 오늘 업무 보고는 제가 할까요? 사무실에서 좀 쉬세요.”심윤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다만 컨디션이 좀 저조할 뿐이라, 심윤아는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리고 싶지 않았다.만약 자잘한 일에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고 자기 일을 대신하도록 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는 스스로가 게을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습관이 되면 앞으로 그녀가 불편할 때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싶기도 했다.심윤아는 수중에 있는 자료를 다 정리한 후에 일어나서 진수현의 사무실로 갔다.그녀의 사무실은 진수현의 사무실 사이엔 거리가 좀 있었다. 평소 같으면 별것 아닌 거리였지만, 오늘은 감기 기운 탓인지 더 멀게 느껴졌다. 심윤아는 피곤한 기색으로 걸어갔다.“똑똑.”“들어와.”차갑고 허스키한 남자의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들려오고 나서야 심윤아는 문을 밀었다.문을 열어젖힌 후, 심윤아는 사무실에 한 점의 그림자가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하얀 원피스가 강소영의 가녀린 허리라인을 그대로 드러냈고,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몸쪽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때 통유리창으로 들어온 햇살은 강소영을 더욱 아름답게 비추었다.상대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
심윤아는 좀 난감했다.“그냥 비 좀 맞았을 뿐이야.”말이 끝나자, 그녀는 앞으로 나와 어제 자 업무 보고서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이것은 어제 자 업무 보고서야. 다른 일도 있어서 이만 가볼게.”“두 사람 옛이야기도 나누고 좋은 시간 보내세요.”심윤아가 강소영을 바라보자, 강소영은 곧 웃음을 지었다.심윤아는 나갔으나 진수현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져 있었다.“수현 씨?”강소영이 그의 이름을 부르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진수현의 이런 모습을 보고 강소영은 마음속으로 이유를 알 수 없는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내가 보기에 윤아 씨의 컨디션이 확실히 좋지 않아 보이거든, 비록 지금은 수현 씨의 비서로 일하고 있지만, 파산하기 전에는 어쨌든 심씨 가문의 큰 아가씨였잖아, 너무 매몰차게 굴지 마.”‘매몰차게 굴어? 누가? 내가?’진수현은 마음속으로 허탈하게 웃었다.‘어느 누가 감히 심윤아를 가혹하게 할 수 있다고, 참!’그러나 진수현은 이런 생각들을 꺼내지 않았고 다만 대답만 재깍 했다.“응.”심윤아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는 참지 못하고 책상에 엎드렸다. 현기증이 더 심해졌다.조금 뒤 심윤아는 임연수의 목소리를 들었다.“윤아 님, 급한 거 아니면 돌아가서 쉬세요.”심윤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하며 작은 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아유, 나 눈 좀 붙일게.”말을 마치고 심윤아는 깊은 잠에 빠졌다.심윤아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녀는 열여덟 살의 나이로 돌아갔다. 그날은 심윤아와 진수현의 성년식 파티였다. 양가의 성년식은 함께 거행되었는데, 당시 심윤아는 자기가 좋아하는 남색의 미니스커트를 입었고 일부러 웨이브 파마를 하고 손톱까지 받고, 그날이 가기 전에 진수현에게 고백하려고 했다.그녀는 아주 오랫동안 진수현을 찾아다녔고, 마침내 작은 정원에서 진수현을 찾았다.그녀는 치맛자락을 들고 걸어가려 할 때 진수현의 친구 몇
그러나 이 일에 대해서 심윤아는 제대로 알고 있지 못했다.그해 그녀도 물에 빠졌었다. 그녀는 고열에 시달리고 나서도 큰 병에 걸렸었다. 의식이 돌아온 뒤로 많은 기억을 잃었고 자기가 어쩌다 물에 빠졌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그리고 친구들은 그녀가 장난치다가 실수로 물에 빠졌다고 했다.하지만 심윤아는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잊었다고 느끼지만, 아쉽게도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후로 나이가 들고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당시의 기억들은 더 철저하게 잊혀갔다.심윤아는 진수현이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을 이렇게까지 마음에 담아둘 줄은 몰랐다.‘차라리 진수현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린 사람이 나였더라면 좋았을 텐데...’지금, 이 순간 심윤아는 꿈과 현실을 분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다.가슴은 큰 바위에 눌린 것처럼 답답하고 괴로웠고, 두통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왜 그때 진수현을 구하기 위해 강가에 뛰어내린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을까?‘만약에... 만약에...’갑자기 눈앞에 진수현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윤아야, 아이는 지워.”곧이어 그의 곁에 강소영이 나타났고 그녀는 진수현의 곁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윤아 씨, 아이를 지우지 않으려는 게 설마 우리 관계를 망치려는 건 아니겠지?”관계를 망치려 한다는 소리를 들은 진수현의 눈빛은 더욱 차가워졌다. 그는 몇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심윤아의 턱을 움켜쥐고 말했다.“말 들어, 그렇지 않으면 나도 강압적으로 아이를 지우라고 할 수밖에 없으니까.”진수현은 심윤아의 턱을 쥐어뜯을 정도로 손에 힘을 줬다.심윤아는 몸부림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이미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리고 문득 창밖으로 뒤로 밀려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방금... 꿈이었나? 어떻게 그렇게 생생할 수가 있을까...’심윤아가 한숨을 내쉬었다.“윤아 씨, 깼어요?”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왔다. 심윤아가 고개를 들자, 강소영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눈에 들
병원에 가면 틀림없이 임신 사실을 들키게 될 테니, 심윤아는 병원에 갈 수 없었다.우스꽝스럽게도 심윤아는 아이의 존재를 끝까지 숨기고 싶었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자존심이라도 지키고 싶었다.심윤아는 진수현에게 가짜 결혼을 승낙하던 순간에 이미 소위 말하는 자존심 따위는 개나 줘버려야 한다는 현실을 깨달았었다.사랑하는 사람인 진수현 앞에서 그녀가 무슨 자존심을 내세울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이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그동안 내려놨던 자존심과는 또 다른 문제였다.심윤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아무리 자존심을 내려놓은 지 오래됐다고 해도 존엄까지 잃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내리락 할 순 없었다.진수현은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눈살을 한껏 찌푸리더니 갑자기 핸들을 꺾어 갓길에 차를 세웠다.심윤아는 진수현의 돌발행동을 보고 당장 차에서 내리라는 줄로 알고 손을 뻗어 차 문을 열려고 했다.“딸깍!”순간 차 문이 잠겼고 진수현은 백미러를 통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병원에 안 가려는 이유가 도대체 뭐야?”어젯밤 비를 맞고 돌아온 이후로 진수현은 심윤아의 행동이 수상하게 느껴졌다.심윤아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정말 아파 죽을 정도라면, 내가 병원에 가려고 했을 거야.”진수현은 실눈을 뜨고 말을 잇지 않았다. 그러자 강소영이 끼어들었다.“수현 씨, 나 때문인 거 같아. 난... 여기서 먼저 내릴게. 윤아 씨를 모시고 병원에 다녀와.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윤아 씨 상태가 아주 위태로워 보여.”말을 마치고 강소영은 몸을 진수현 쪽으로 기울이며 차 문의 잠금 스위치를 누르려고 했다. 그러자 진수현이 그녀의 손목을 잡으며 제지했다. 그렇게 심윤아는 두 사람의 살결이 맞닿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진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심윤아를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강소영을 보고 말했다.“딴소리하지 마, 네 탓 아니야.”강소영은 진수현의 손에 잡힌 자기 팔목을 쳐다보며 수줍게 웃었다
심윤아는 눈을 내리깔고 생각했다. 강소영은 외모가 예쁘장하게 생겼을 뿐만 아니라, 인성도 매우 훌륭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녀가 진수현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심윤아는 자기가 진수현이었어도 강소영을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강소영은 친구를 만난 후, 바로 다가가서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 남자는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심윤아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며 걸어왔다.“안녕하세요, 소영이의 친구시죠? 제 이름은 고현민입니다.”심윤아도 고현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열이 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고현민은 손등을 심윤아의 이마에 대보며 나직하게 물었다.갑작스러운 접근에 심윤아는 무의식적으로 옆으로 비켜섰고, 그녀의 반응에 고현민은 웃으며 속삭였다.“열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는 겁니다.”그러고 나서 고현민은 말을 잇지 않고 온도계를 내밀었다.“체온부터 측정해 봅시다.”심윤아는 체온계를 건네받았다.뒤이어 진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체온계 사용법은 알아?”심윤아는 어이가 없었고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어떻게 체온계조차 쓸 줄 모른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다만 머리가 어지러운 탓에 심윤아는 동작이 느릿느릿했다. 고현민은 체온을 측정하고 잠시 기다려 보자고 했다.강소영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 기회를 틈타 고현민에 진수현을 소개하였다.“수현 씨, 이 친구가 바로 내가 전에도 몇 번 언급했던 고현민이야. 의학 방면에서 거둔 성과가 대단하지만, 자유를 추구하고 누구 밑에서 일할 성격이 아니라, 귀국한 후에 소소한 클리닉을 차리게 된 거야. 그리고 현민아, 인사해, 수현 씨야, 내...”그녀는 잠시 뜸을 들인 후에야 수줍게 말했다“내 친구야.”‘친구?”친구라는 호칭에 고현민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무심코 심윤아의 얼굴에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진수현을 보고 인사했다.“안녕하세요, 저는 고현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한참 후에야 진수현은 손을 들어 상대방과 가볍게
‘뭐? 억지 부린다고 한 거야?’심윤아는 흠칫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네가 좋아하는 소영 씨보다 이해심이 많을 수는 없겠지.”무심코 한 마디가 그렇게 툭 튀어나왔다.순간, 진수현은 어리둥절했고 심윤아도 화들짝 놀랐다.‘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한 거지?’심윤아가 자기 자신이 잘못 말한 것을 후회하고 있을 때, 진수현이 그녀의 턱을 치켜들며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진수현은 그윽한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매부리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심윤아를 쳐다봤다.“너 지금 질투하는 거야?”심윤아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거야?”하지만 심윤아는 손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솜방망이 같은 주먹에 진수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진수현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아주 솜방망이가 따로 없네.”“제대로 맞아 볼래?”심윤아는 발끈하고 나서 뻗었던 손을 거둬들이려 했다. 그러다 결국 뒤로 넘어져 소파에 파묻혔다. 일어나려고 아등바등했지만 기운이 없었다.진수현은 그 자리에 서서 착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몇 번 쳐다보고 나서 한마디 했다.“기다려 봐.”그러고 나서 화장실로 가서 물이 담긴 플라스틱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나와 그녀 옆에 있는 의자에 놓았다.진수현은 수건을 찬물에 적셔 심윤아를 닦아주기 시작했다.“뭐 하는 거야?”그가 수건을 들고 가까이 다가오자, 심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피했다.진수현은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렸다“가만히 좀 있어.”심윤아는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지만 수건이 그녀의 피부에 닿자, 가뭄에 내린 단비 같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밀려와 다시 그녀는 거절할 수 없었다.그녀는 물리적인 방법으로라도 최대한 빨리 체온을 내려야 했다.‘어차피 물리적으로 체온을 낮추는 것뿐이야...’심윤아는 잠깐의 생각 끝에 더는 진수현을 밀어내지 않았다.진수현은 심윤아의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 주고, 이어서 발그레 해진 뺨을
진수현은 그녀에게 물수건을 건네줄 수밖에 없었다.“현민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 알려줬으니까, 여기는 나에게 맡겨도 돼. 안심해. 내가 윤아 씨를 잘 돌볼 테니까.”진수현은 구석에 누워 시체처럼 움직이지 않는 심윤아를 한 번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응.”그러고 나서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자, 방안은 조용해졌다. 잠시 후 강소영은 다시 수건을 찬물에 적시고 심윤아 쪽으로 걸어왔다.“윤아 씨, 제가 닦아드려도 되죠?”심윤아는 온몸에 힘이 풀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간병인을 불러주세요. 소영 씨에게 너무 번거롭게 해드리고 싶지 않아요.”심윤아가 제안하자, 강소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귀찮기는요, 간병인보다 제가 더 정성껏 보살펴 드릴게요. 물론 윤아 씨가 괜찮다고 한다면요.”강소영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니 심윤아도 더 밀어낼 수 없었다. 심윤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심윤아가 승낙하자 강소영은 가까이 다가와 그녀의 옷 단추를 풀어 주었다.어색함을 피하려고 심윤아는 눈을 감았다. 덕분에 강소영이 그녀의 단추를 풀어 줄 때 그녀를 훑어보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강소영은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었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만약 그녀가 방금 잘못 본 게 아니었다면 진수현은 젖은 수건을 들고 그녀의 몸을 닦아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의 옷깃까지 잡아당기고 손을 넣으려 했으니 말이다.‘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 설마 내가 출국해 있던 사이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기라도 했을까?’강소영은 눈썹을 살며시 치켜올렸고 조바심이 났다.심윤아의 옷 단추를 풀어보지 않았다면 강소영은 심윤아의 몸매가 이렇게 글래머러스 한지 몰랐을 것이다. 반듯하게 누워 있었지만, 가슴은 풍만했다. 그리고 그녀의 피부색은 약간의 핑크빛을 띠고 있었다. 여자인 강소영이 봐도 혹할 정도로 일품이었다.강소영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나직하게 말했다.“사실 요 몇 년 동안 아주 고마웠어요.”심윤아는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