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님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차는 도로와 연결되지 않은 위치에 멈춰 섰다. 행인들의 시선이 그 차에 쏠렸다. 가끔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차가 시골에 나타난 게 신기한 듯 보였다.“이 시골에 요즘 고급 세단이 자주 보이네?”“명인 댁 사람들이라던데. 저번에 온 건 딸이래. 딸이 손자를 데리고 놀러 왔나 보더라고. 아이고, 애들이 얼마나 뽀얗고 말캉한지, 시내에서 자란 애들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니까.”“그러게. 그날 그 명인 댁 마당 지나가다가 봤어. 애들 좋으라고 나무에 그네까지 만들었더라고.”행인들이 지나가며 토론했다.명인 댁의 팔자가 좋다느니, 복이 많다느니, 딸을 잘 낳았다느니, 손자도 대단해서 유명인이라느니, 정말 이것저것 끝도 없이 말했다.그러다 또 명인 댁도 대단한 사람인데 나이가 많아서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노년 생활을 즐기러 왔다고도 했다.자신이 사는 동네가 산 좋고 물 좋다는 말에 동네 주민들이 우쭐대며 동네 자랑을 하기 시작했다.수현은 창문을 조금 내리고 그 토론을 조용히 들었다.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위해 그네를 만들어줬다는 말에 수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두 아이가 조부모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는 생각에 기뻤다.하긴 총명하고 똘똘한 아이들이었기에 직계 가족이 아니라 친척들, 외부인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어 했다.사람은 결국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동물이다.사색에 잠겨 있는데 품속에서 자고 있던 윤아가 살짝 움직였다. 고개를 숙여보니 윤아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났다.수현의 품에서 눈을 뜬 윤아는 한 몇초 있다가 고개를 들어 수현을 올려다봤다.“나 잠들었어?”“응.”수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윤아의 볼을 어루만지며 살짝 헝클어진 윤아의 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윤아도 그제야 차가 멈춰 섰음을 알아채고는 얼른 창밖을 바라봤고 시야에 들어온 풍경에 눈이 번쩍 뜨였다.“도착한 거야?”그런 윤아의 모습에 수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응, 도착했어.”“왜 깨우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다고?수현이 갑자기 던진 질문에 윤아는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생각에 잠겼다.찾고 싶긴 했다. 잃어버린 물건이니 누구든 찾고 싶었을 것이다.하지만 여러 일을 겪고 나니 기억을 찾든 찾지 않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찾지 못한다 해도 그녀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여전히 신경 쓰고 있다. 수현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심한 부상을 당했음에도 깨어나자마자 바로 그녀를 구하러 왔다.기억은 그녀에게도 중요했지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았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입을 열었다.“기억을 찾는 건 그냥 하늘에 맡기자. 억지로 찾으려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잖아.”이를 들은 수현이 멈칫했다. 아마 윤아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냥 찾고 싶다 아니다로만 대답할 줄 알았다.한참 고민하던 수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우리 심공주는 여전히 심공주야.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절대 부담 갖지 마.”수현의 말에 윤아가 웃음을 터트렸다.“내가 부담을 왜 가져? 힘들게.”이미 그곳에서 벗어났고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있고 곧 귀여운 두 녀석도 만나러 가는데 부담 가질만한 게 없었다.그리고 기억이라는 건 윤아가 찾고 싶다고 해서 바로 찾아지는 게 아니니 조급해해도 소용이 없다.그냥 현 상태에 만족하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돌아오겠지.수현은 윤아의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게 맞아.”두 사람은 이내 정원 앞에 도착했다.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수현은 기억을 더듬어 벨을 누르려 했지만 윤아가 이를 말렸다.“잠, 잠깐만.”수현이 윤아를 바라봤다.“왜?”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자기 팔을 잡고 있는 윤아의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음을 발견했다. 수현이 멈칫하더니 물었다.“무서워?”“...”윤아는 입을 앙다물고 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무, 무서운 게 아니라, 조금 떨려서 그래요.”만약 누군가 윤아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면 윤아는 자신
더 긴장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가만히 있으면 점점 더 긴장하게 된다.수현이 물었다.“진짜? 그럼 벨 누른다?”“응, 그래... 눌러.”이렇게 말하면서도 윤아는 조금씩 물러났다. 그러다 수현의 뒤로 완전히 숨어버렸다.이런 윤아의 행동에 수현의 웃음이 짙어졌다.“준비됐다면서 왜 아직도 내 뒤에 숨어 있어?”수현의 말투에서 장난기를 느낀 윤아가 짜증을 냈다.“내가 이러는 게 너는 웃기지?”수현의 웃음은 점점 짙어졌지만 인정은 하지 않았다.“아니야.”“나 다 들었는데.”“뭘 들었다는 거야?”“나 놀리는 거.”“그래? 내가 아까 웃었어?”“마음속으로.”“마음속으로 웃는 것까지 들려?”“...”“진수현!”“응, 왜 불러 자기야?”뻔히 알면서 묻는 모습에 윤아는 수현의 허리를 힘껏 꼬집었다. 윤아는 수현을 혼내주려고 한 행동이었지만 꼬집고 나니 수현의 몸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이를 발견하지 못한 윤아는 꼬집고 나서 바로 손을 뺐다.수현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그 자리에 서서 입을 앙다문 채 혼자 감내했다. 도끼로 자기 발등을 찍는다는 게 이런 느낌인 것 같았다.그리고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수현은 윤아의 작은 행동으로도 쉽게 설레고 후끈 달아올랐다.다행히 지금 겨울이라 수현은 입고 있는 옷이 꽤 두꺼웠다.수현은 마른기침으로 난처함을 가리고는 뭔가 말하려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엄마!”그냥 들어도 기쁨에 차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였다. 수현은 단번에 하윤과 서훈의 목소리임을 알아챘다.하지만 수현은 일단 먼저 윤아의 반응을 살폈다.아니나 다를까 윤아는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마치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수현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니 두 아이는 마치 로켓처럼 윤아에게로 달려오더니 윤아의 다리에 매달렸다.“엄마!”두 녀석은 마치 까치처럼 윤아 옆에서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수현은 윤아가 아까보다 더 굳어있음을 발견했다.한참
오랜만에 윤아를 보는 두 녀석은 할머니와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와 같이 있으면서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마음에 맞는 친구도 찾았지만 그들에게는 엄마가 제일 중요했다.윤아를 많이 보고 싶어 하던 녀석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품속에 뛰어들어 비비적거리며 떨어지기 싫어했다.뒤따라오던 이선희와 이명인도 윤아와 수현이 갑자기 여기에 나타날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윤아야, 수현아, 너희들이 어쩐 일이야, 말도 없이?”소리를 들은 윤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중 한 분은 머리가 이미 희끗희끗했지만 몸매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개량 한복에 하얀 카디건을 걸친 모습이 영락없는 돈 있는 할머니였다.옆에 서 있는 분은 훨씬 젊었다. 나이가 중년이었고 옷차림이 트렌디했다. 같이 선 두 사람은 스타일이 매우 달랐지만 생김새는 비슷했다.오기 전 윤아가 기억을 잃은 탓에 수현은 간단하게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과 같이 있으니 그들이 누군지 대략 알 수 이을 것 같았다.“어머님, 할머님.”몸은 굳어 있었지만 윤아는 그들의 신분에 맞게 인사를 건넸다.할머님이라고 불린 이명인은 아이고 하는 탄식과 함께 얼른 윤아를 맞으러 나왔다.“몇 년 전에 한번 보고 지금 다시 보는데 벌써 엄마가 되었네. 이렇게 떡두꺼비 같은 귀여운 아이들도 낳고. 어여 일어나.”이명인은 윤아를 부축해 일어났다. 아직 몸이 허한 윤아는 일어나면서 휘청거렸고 옆에 섰던 수현이 잽싸게 윤아의 허리를 감싸며 넘어지지 않게 잡아줬다.옆에 있던 이선희가 이 모습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말랐어?”윤아의 팔목을 잡은 이명인은 그제야 윤아의 팔목에 거의 살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자신을 관심하는 할머님의 선의를 느낀 윤아는 마음이 따듯해졌다.“할머님, 요즘 다이어트한다고 설쳤더니 이렇게 살이 빠졌네요.”“다이어트?”이명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너는 이렇게 말라서 무슨 다이어트야?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다이어트할 생각은 말렴. 이따가 삼계탕 좀
하지만 지금 두 사람을 보니 깨달았다. 상황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각하다는 걸 말이다.이선희의 질문에 수현이 잠깐 침묵하더니 결국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이 일은 이미 다 해결됐어요. 경과는 묻지 마세요.”이선희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묻지 말라는 게 무슨 말이야. 다 해결됐다면 더 걱정할 것도 없겠네. 무슨 문제가 남아 있는지 말해 봐.”“아는 게 많을수록 근심도 많아져요.”수현이 말했다.“지금은 괜찮아졌다며?”이선희가 물었다.하지만 수현은 입을 앙다문 채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이에 이선희는 뭔가 생각 난 듯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네 아빠는?”“처리할 일이 남아 있어서 같이 오지는 않았어요.”아버지가 이수철에게 연락하는 바람에 지금 사태가 커지고 있다.이를 들은 이선희의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물었다.“네 아빠는 괜찮은 거니?”“엄마는 아빠와 그렇게 오래 지냈으면서 아빠가 어떤 성격인지 몰라요?”“하긴, 그럼 네 아빠가 계속 처리하게 놔두면 되는 거지?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 다쳤어?”수현은 대꾸하지 않고 묵인했다.“그럼 윤아는? 윤아는 어떻게 된 거야? 왜 저렇게 야위었어?”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저렇게 살이 빠졌는지, 참 못된 짓이라고 이선희는 생각했다.수현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윤아는 아침에 밥을 먹을 때 한 번에 조금씩 많이 씹어서 넘기긴 했지만 먹는 양이 적었다.그때 수현은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이선희에게 말했다.“이따 할머니가 삼계탕 끓인다고 할 때 엄마가 간섭할 수 있으면 일단 끓이지 말라고 하세요.”“음...”이선희는 왜 그러는지 너무 물어보고 싶지만 아들의 굳건한 옆모습을 보며 도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이선희는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들 무사히 여기 있으니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다 지나간 일이다. 나머지는 진태범이 해결하면 된다. 아들이 얘기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노인네들이 걱정하는 게 싫어서일 것이다.그런 노력을 안다면 더 꼬치꼬치
이명인이 가서 이것저것 가져오는 틈을 타 하윤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뭐 하러 갔었어요? 왜 이번에는 이렇게 오래 있다가 온 거예요? 오빠랑 윤이 다 엄마 너무 보고 싶었는데.”윤아는 하윤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물었다.“하윤아?”하윤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윤아는 하윤의 옆에 앉아 있는 남자애를 바라봤다.서훈은 윤아와 시선을 마주하더니 엄마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이렇게 말했다.“엄마, 훈이도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요.”윤이의 이름을 안 윤아는 마침 다른 아이를 평소에 어떻게 부르는지 알아내려고 하던 참이었다.바로 묻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았다.아이들이 나이가 어려 모르는 게 많다고는 하지만 그만큼 내면도 민감했다.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데 엄마가 되어서 아이의 이름을 바로 물으면 아이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아이들은 윤아가 기억을 잃었다는 생각은 못 해도 엄마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어떻게 자기 새끼의 이름을 까먹을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서훈이 이 정도로 철이 들었을 줄은 몰랐다.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여 서훈의 볼에 뽀뽀했다.“훈이 참 착하지.”옆에 있던 하윤이는 오빠는 뽀뽀해 주면서 자기는 안아만 주자 대뜸 뾰로통한 표정으로 윤아를 덮쳤다.“엄마 왜 오빠만 뽀뽀해 줘, 나도 뽀뽀해 줘.”윤아는 웃으며 하윤이를 안고 보들보들한 볼에 뽀뽀했다.뽀뽀하고 나니 하윤이의 성격이 겉보기랑 똑같다는 걸 알아챘다.외모도 귀엽게 생겼는데 성격도 애교가 많았다.아들도 생긴 것과 비슷했다.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고 내색을 잘 안 했다.서훈도 엄마가 조금 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서훈이 아무리 총명하다 해도 아이였기에 윤아가 애써 숨기고 있으니 도대체 어디가 변했는지 발견하지 못했다.단 하나, 엄마가 많이 야위었다는 건 알아챘다.서훈은 그런 윤아가 너무 마음 아파 먼저 윤아의 손을 잡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엄마, 앞으로 밥 잘 먹어야
사진은 수현의 기다란 뒷모습을 메인 구도로 잡고 있어 수현의 눈빛과 옆모습도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이 향한 곳엔 윤아가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어때? 내가 너희 네 식구 분위기 있게 잘 찍지 않았어?”수현은 이선희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사진 보내주세요.”사진을 받은 수현은 그 사진을 바로 잠금화면으로 설정하고는 수십번이나 반복해서 열어봤다.그 모습을 본 이선희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진씨 집안의 제일 뚜렷한 유전자가 바로 순정남이었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예외는 없었다. 와이프를 무척이나 잘해주는 건 물론이고 일편단심이었다. 한번 점 찍어둔 사람이면 평생 그 한 사람뿐이었다.아들이 자기 와이프한테는 잘해주면서 엄마인 자신은 나 몰라라 한다고 질투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결국 남편이 부실해서 그렇다. 남편이 잘해준다면 왜 아들에게서 위안을 찾겠느냔 말이다.이선희를 놓고 봐도 그렇다. 수현이 윤아에게 얼마나 잘해주든 전혀 눈꼴신 적이 없었고 아들을 잘못 키웠네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진태범이 충분히 잘해주니까 이선희도 젊은이들의 입장에 서서 고민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이다.“자, 와서들 앉아.”이명인이 주방에서 물건을 한 아름 갖고 나오자 수현이 얼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가 도왔다.윤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우려고 했지만 수현이 움직이자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테이블엔 이내 여러 가지 주전부리들로 가득 찼다. 시장에서 사 온 것도 있었고 직접 재배한 과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명인이 틈틈이 직접 만든 떡과 디저트들도 보였다.“자, 얼른 먹어. 많이 먹어. 너 너무 말랐어.”이명인은 여러 가지 먹거리들로 윤아를 맞이해줬다.윤아가 웃으며 이를 받아왔다. 육류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말 참지 못하고 바로 구역질했을 수도 있다.윤아는 달짝지근한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명인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수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윤아의 손에 들린 떡을 뺏어 먹은 것도 모자라 이런 말까지 하자 윤아뿐만 아니라 이명인과 이선희도 낯 간지러워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한편으로는 사랑에 빠진 수현이 어른들도 있는데 이 정도로 닭살 돋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내 이선희는 이상함을 눈치챘다.수현이 비록 교묘하게 덮으려고 하긴 했지만 결국은 윤아의 손에 들린 떡을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윤아도 조금씩 베어 무는 걸 봐서는 아마 더는 먹기가 힘들어 그랬을 것이다.이를 알아챈 이선희는 마른기침하더니 이명인에게 이렇게 말했다.“엄마, 젊은이들이 죽고 못 사는 거 그만 보고 우리는 밖에 나가서 앉아 있어요.”이명인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손주와 손주며느리의 사이가 돈독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는 이에 응했다. 나가면서 하윤과 서훈이를 챙겨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하윤이는 나가기 싫어했지만 이명인이 안아 올리자 할머니가 힘든 게 싫어서인지 그제야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그들이 나가자 방엔 거의 밀착 상태로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과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과일과 주전부리들만 남았다.분위기가 조용해지자 후끈 달아올랐던 윤아의 얼굴도 점점 내려갔다.윤아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수현이 잡은 손을 빼내려 했다.하지만 수현은 윤아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윤아는 그런 수현을 힐끔 쳐다봤다. 수현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수현은 윤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쑥스러워?”어렵게 내려갔던 홍조가 수현의 말에 다시 윤아의 얼굴에 찾아들었다.“너 예전에도 어른들 앞에서 이랬었나?”기억을 잃어서 그런지 윤아는 전에 수현과 어떤 모드로 지냈는지 몰랐다.하지만 아까 수현이 보인 행동은 이미 윤아의 인식을 벗어난 행동이었다.윤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 친밀한 스킨십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아까 둘이 방에 있을 때도 하마터면 키스할 뻔했고 윤아도 딱히 거부하지 않았고 오히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