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수현의 기다란 뒷모습을 메인 구도로 잡고 있어 수현의 눈빛과 옆모습도 담겨 있었다. 그 눈빛이 향한 곳엔 윤아가 아이들을 안고 있었다.“어때? 내가 너희 네 식구 분위기 있게 잘 찍지 않았어?”수현은 이선희의 말에 대꾸하는 대신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사진 보내주세요.”사진을 받은 수현은 그 사진을 바로 잠금화면으로 설정하고는 수십번이나 반복해서 열어봤다.그 모습을 본 이선희는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진씨 집안의 제일 뚜렷한 유전자가 바로 순정남이었고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면서 예외는 없었다. 와이프를 무척이나 잘해주는 건 물론이고 일편단심이었다. 한번 점 찍어둔 사람이면 평생 그 한 사람뿐이었다.아들이 자기 와이프한테는 잘해주면서 엄마인 자신은 나 몰라라 한다고 질투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결국 남편이 부실해서 그렇다. 남편이 잘해준다면 왜 아들에게서 위안을 찾겠느냔 말이다.이선희를 놓고 봐도 그렇다. 수현이 윤아에게 얼마나 잘해주든 전혀 눈꼴신 적이 없었고 아들을 잘못 키웠네 하는 생각이 든 적도 없었다.진태범이 충분히 잘해주니까 이선희도 젊은이들의 입장에 서서 고민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이다.“자, 와서들 앉아.”이명인이 주방에서 물건을 한 아름 갖고 나오자 수현이 얼른 긴 다리로 성큼성큼 그쪽으로 걸어가 도왔다.윤아도 자리에서 일어나 도우려고 했지만 수현이 움직이자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테이블엔 이내 여러 가지 주전부리들로 가득 찼다. 시장에서 사 온 것도 있었고 직접 재배한 과일도 있었다. 그리고 이명인이 틈틈이 직접 만든 떡과 디저트들도 보였다.“자, 얼른 먹어. 많이 먹어. 너 너무 말랐어.”이명인은 여러 가지 먹거리들로 윤아를 맞이해줬다.윤아가 웃으며 이를 받아왔다. 육류나 비린내가 나는 음식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정말 참지 못하고 바로 구역질했을 수도 있다.윤아는 달짝지근한 떡을 한입 베어 물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명인이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수현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윤아의 손에 들린 떡을 뺏어 먹은 것도 모자라 이런 말까지 하자 윤아뿐만 아니라 이명인과 이선희도 낯 간지러워 표정이 부자연스러워졌다.한편으로는 사랑에 빠진 수현이 어른들도 있는데 이 정도로 닭살 돋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다.하지만 이내 이선희는 이상함을 눈치챘다.수현이 비록 교묘하게 덮으려고 하긴 했지만 결국은 윤아의 손에 들린 떡을 해결하기 위해서였고 윤아도 조금씩 베어 무는 걸 봐서는 아마 더는 먹기가 힘들어 그랬을 것이다.이를 알아챈 이선희는 마른기침하더니 이명인에게 이렇게 말했다.“엄마, 젊은이들이 죽고 못 사는 거 그만 보고 우리는 밖에 나가서 앉아 있어요.”이명인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하고 그저 손주와 손주며느리의 사이가 돈독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고는 이에 응했다. 나가면서 하윤과 서훈이를 챙겨 나가는 것도 잊지 않았다.하윤이는 나가기 싫어했지만 이명인이 안아 올리자 할머니가 힘든 게 싫어서인지 그제야 같이 나가겠다고 했다.그들이 나가자 방엔 거의 밀착 상태로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과 테이블을 가득 채운 과일과 주전부리들만 남았다.분위기가 조용해지자 후끈 달아올랐던 윤아의 얼굴도 점점 내려갔다.윤아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수현이 잡은 손을 빼내려 했다.하지만 수현은 윤아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윤아는 그런 수현을 힐끔 쳐다봤다. 수현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수현은 윤아가 자신을 바라보자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쑥스러워?”어렵게 내려갔던 홍조가 수현의 말에 다시 윤아의 얼굴에 찾아들었다.“너 예전에도 어른들 앞에서 이랬었나?”기억을 잃어서 그런지 윤아는 전에 수현과 어떤 모드로 지냈는지 몰랐다.하지만 아까 수현이 보인 행동은 이미 윤아의 인식을 벗어난 행동이었다.윤아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같이 있으면 친밀한 스킨십을 할 수밖에 없다는 걸 말이다. 아까 둘이 방에 있을 때도 하마터면 키스할 뻔했고 윤아도 딱히 거부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끄러워하지 마. 우리 이것보다 더 한 짓도 했었어.”“...”윤아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정말?”“근데 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말이 끝나기 바쁘게 수현은 윤아를 자기 다리 위로 끌어당기더니 윤아의 손으로 윤아의 턱을 잡았다. 순간 수현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를 덮쳤다. 그렇게 수현은 윤아의 입술에 키스했다.“읍.”윤아는 수현이 그저 장난에만 그칠 줄 알았는데 진심이었다.머릿속에서 뭔가 터지는 듯한 느낌에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그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오랫동안 참아왔던 욕구가 이 키스로 한순간 풀리는 것 같았다.오는 길뿐만이 아니라 그녀가 곁에 없는 모든 순간이었다.수현은 이런 생각에 윤아를 점점 더 꽉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에게 녹아들게 하려는 것처럼 말이다.사실은 그저 윤아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는데 그녀와 살갗이 닿는 순간 뭔가에 쑥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놓아주기가 싫었고 그만하기 아쉬웠다. 그저 이렇게 계속 그녀를 공략하고 그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윤아는 수현이 여기서 이럴 줄 몰랐다. 키스가 점점 깊어지면서 윤아도 점점 떨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수현의 옷깃을 잡던 윤아는 끝내 수현을 밀쳐냈다.안간힘을 써서야 수현을 밀어낸 윤아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이, 이러지 마. 그러다 누가 보면 어떡해.”두 사람의 집도 아니고 방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렇게 밀쳐진 수현은 넋을 잃은 채 멍해서 윤아를 바라봤다. 눈동자는 아직도 욕구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수현도 윤아처럼 가빠진 숨을 골랐다. 아니 윤아보다 더 숨 가빠하고 있었다.“들어올 사람 없어. 녀석들 데리고 나간 것도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려고 그러는 거야.”설명을 듣고 난 윤아는 귀부터 목까지 다 빨개졌다.“그, 그래도 안 돼.”녀석들을 데리고 나가긴 했지만 두 사람이 여기서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눈치챌 것이다.“뭐가 안 된다는 거야?”
수현의 큰 손이 윤아의 허리를 놓아주고 나서도 윤아는 한참을 멍해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정말 말한 대로 한다고? 이렇게 끝난다고?귓불에 아직 수현이 촉촉함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간질거렸고 마음도 덩달아 찌릿찌릿해 자기도 모르게 귓불을 살짝 만졌다.하지만 윤아는 손을 올리다 말고 다시 내렸다.안 돼, 만지면 안 돼.만지면 고약한 수현이 또 놀릴 게 뻔했다.윤아는 귓불을 만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마음을 진정시켰다.“왠지 실망한 표정이다?”수현이 또 예고 없이 다가와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하다 말아서 실망한 건가?”“아니거든!”윤아가 쏘아붙였다.이렇게 부정한 윤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혼자 여기 앉아 있어.”윤아는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뜨려고 했다.그때 수현이 윤아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됐어. 화내지 마. 아까는 그냥 장난 좀 친 거야.”“이거 놔.”윤아는 자기 손을 빼려고 했다.수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알았어. 난 그냥 네가 그 떡을 처치하기가 곤란해 보이길래.”수현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윤아가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뭐라고?”“먹기 힘들어했잖아. 그래서 내가 대신 먹어준 건데.”수현의 말에 윤아가 당황했다. 혹시 수현이 뭔가 알아챈 건가? 윤아가 자기도 모르게 반박했다.“먹기 힘들어하긴 뭐가?”“응?”수현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힘들지 않다는 애가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먹었던 거야?”“나 원래 꼭꼭 씹어먹는 거 좋아하거든.”윤아가 반박했다.“그래, 그럼 내가 다른 건 먹기 싫은데 딱 네 손에 든 거 먹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치자.”수현도 윤아와 입씨름하기는 싫었다. 윤아가 숨기고 싶은 일이 있다면 수현도 계속 캐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아니나 다를까 수현이 이렇게 인정하고 나니 윤아도 입을 꾹 닫았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한참이 지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윤아가 고개를 들어 수현
“그래... 알았어.”윤아의 착각인지 몰라도 수현이 자신을 돕고 있는 건 맞지만 자꾸만 이상하게 희롱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방에서 한참을 진정하고 나서야 난처한 기분은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고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거실에서 나오니 밖엔 커다란 정원이 펼쳐졌다.정원엔 큰 나무도 심겨 있었고 과수원과 텃밭도 보였다. 주방은 과수원 옆에 지어져 있었다. 두 어르신이 여기서 노년 생활을 즐기기엔 딱 맞는 것 같았다.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옆에 있는 텃밭에서 신선한 야채들을 따다가 해 먹으면 되니 유기농과 친환경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었다.윤아가 나갔을 땐 마침 이명인이 두 녀석을 데리고 텃밭에서 야채를 따고 있었다.하윤은 자그마한 엉덩이를 내밀고 허리를 숙인 채 야채 하나를 뽑고 있었고 서훈은 옆에서 이를 도왔다. 두 녀석은 그렇게 분주히 돌아치고 있었다.이 광경을 본 윤아는 마치 구름 위를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엄마!”두 녀석은 윤아를 보자마자 얼른 그녀를 그쪽으로 불렀고 윤아도 그쪽으로 걸어가 쪼그리고 앉았다.“이거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도 도울게요.”이명인이 윤아를 힐끔 쳐다보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다. 그 가느다란 팔다리로 뭘 하겠다고 그러니. 얼른 안에 들어가서 쉬면서 뭐 좀 먹고 있어. 여기는 나랑 선희만 있으면 돼. 조금 있다 너희 할아버지 돌아오면 할아버지가 밥하고 우리는 기다리면 된다.”이렇게 말하더니 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이명인은 그녀를 텃밭 밖으로 밀어냈다. 윤아가 텃밭에서 나오는데 그쪽으로 걸어오는 이선희를 만났다.이선희가 웃으며 말했다.“안에 들어가서 쉬어. 여기는 우리가 있으면 돼.”윤아는 난처해서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이선희가 이렇게 말했다.“사실 엄마는 아이들이랑 있을 시간을 더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노인네가 녀석들을 무척이나 좋아하거든. 녀석들이 여기 오래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서 시간만 나면 녀석들이랑 같이
이 말을 하던 두 사람은 멈칫했다.수현이 자기도 모르게 윤아를 바라봤다.윤아도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한참 동안 지나서야 이렇게 반응했다.“회사? 내가 회사가 있어?”이를 들은 수현은 윤아가 기억을 찾은 줄 알았지만 이는 윤아가 무의식중에 한 말이었다.윤아의 회사만 생각하면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을 때였다.하나님, 만약 그녀의 기억을 되찾게 해주신다면 먼저 다른 기억을 찾아주시고 일단 이건 뒤로 미뤄주세요.이것만 떠올리고 다른 건 떠올리지 못한다면 윤아는 수현에게 안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될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얼른 입을 열었다.“회사 일은 내가 대신 처리해 주면 되지. 너는 놀러 오고 싶으면 놀러 와. 부담 가지지 말고.”“네가 나를 돕는다고?”윤아가 눈을 깜빡이더니 말했다.“근데 너도 해야 할 일이 있는 거 아니야?”“응, 내가 두 개 다 돌보면서 내 와이프 좀 보살피겠다는데 뭐 문제 되나?”수현은 이렇게 말하며 윤아의 허리를 잡더니 다른 데로 향했다. 수현은 혹시나 윤아가 애초에 자신이 그녀를 괴롭히던 기억들은 떠오르고 잘해줬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아 두 사람의 사이에 영향 줄까 봐 무서웠다.아니나 다를까 윤아의 생각은 수현의 말에 흐트러졌고 더는 회사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전에 자신이 잘 몰랐던 일에 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예를 들면 두 사람은 언제 결혼했는지, 또 언제 만났는지 같은 질문이었다.수현에게 유리한 질문이 들어오자 수현도 매우 흔쾌히 대답해 주었다. 윤아는 수현의 대답을 듣고 나니 이해가 되었다.“우리가 소꿉친구였다고?”“응.”수현이 윤아의 뒤통수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넌 어릴 때부터 내 뒤를 따라다니기 좋아했지.”“?”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나?”“어허, 기억이 없다고 이렇게 부정하면 되나? 지금 너한테 나 좋아하는지 물어보면 설마 안 좋아한다고 대답할 건 아니지?”“그걸 질문이라고? 그리고 다른 얘기잖아.”윤아가 반
점심 때가 되자 이명인의 남편 차문섭, 수현의 외조부, 녀석들의 증조부가 돌아왔다.손에는 생선 두 마리가 들려 있었고 점심에 녀석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선보여주겠다고 했다.이명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윤아와 수현이 왔다는 걸 안 차문섭은 얼른 방으로 들어와 두 사람과 조우했다.차문섭은 온화한 사람이었다. 두 사람과 잠시 대화를 나누다 이러다 밥때를 놓치겠다며 밥하러 갔다.그러더니 이내 부뚜막에 불을 지폈다.윤아는 문가에 서서 차문섭이 주방으로 향하는 걸 지켜봤다. 이명인은 옆에서 차문섭의 요리를 거들었다.평소에도 쭉 이렇게 지내온 것 같았다.“좋아?”수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윤아가 반응하기도 전에 수현이 말을 이어갔다.“좋으면 앞으로 우리도 늙으면 이렇게 살자.”윤아는 수현이 노후 얘기를 꺼낼 줄은 몰랐지만 얼른 머릿속에 이를 그려보며 물었다.“할아버님 할머님처럼?”“응,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아니면 네가 원하는 것 뭐든지.”윤아가 이렇게 말했다.“그건 좀 어렵지 않을까? 너 밥 할 줄 알아?”이 문제에 수현은 말문이 막혔다.그렇게 수현이 말이 없어지자 윤아가 고개를 들어 이렇게 물었다.“왜 말이 없어? 요리할 줄 몰라?”한참을 더 침묵하던 수현이 이렇게 말했다.“지금은 모르지만 앞으로도 모른다는 법이 있나. 앞으로 나이 들어 노후 생활 즐길 때가 되면 그때부터 배우면 되지. 10첩 반상은 아니더라도 간단한 거부터 배우면 너 배불리 먹이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은데.”이를 들은 윤아는 자기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졌다.“꼭 네가 요리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그럼 네가 하려고?”대충 그 장면을 그려본 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돼. 네가 하게 놔둘 순 없어. 그냥 내가 할게.”가녀린 몸으로 주방에서 분주히 돌아치면서 하얗고 가느다란 손목으로 설거지하고 칼을 들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 되는 수현이었다.다른 남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수현은 윤아가 그러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윤아는 수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수현의 핸드폰이 때아니게 울렸다.이선희는 수현의 핸드폰이 울리자 이렇게 물었다.“왜 밥 먹을 때까지 핸드폰을 들고 다녀? 그러면 무음으로 설정이라도 하든가?”핸드폰이 울렸으니 수현도 꺼내볼 수밖에 없었다.누군지 확인한 수현의 미소가 옅어졌다.“전화 좀 받고 올게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전화 받은 사람은 내버려두고 우리끼리 일단 먹어요.”이선희가 남은 사람들에게 말했다.윤아는 계속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수현을 따라 나간 지 오래였다. 전화를 확인한 수현의 얼굴이 살짝 굳는 걸 보니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았다.걱정이 되어서 그런지 더 먹을 생각도 사라져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천천히 드세요. 저도 나가볼게요.”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멈칫하더니 웃으며 말했다.“그래, 너도 가보렴.”윤아는 그들을 향해 웃어 보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자리에 남은 사람들은 윤아가 자리를 떠나자 웃음을 터트렸다.“요즘 젊은이들은 말이야. 정말 한시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는군.”“그러게요. 아직 뜨겁다는 거죠. 그래야 오래 가니까.”“하긴.”남은 사람들은 이 말에 다시 웃기 시작했다.윤아는 살금살금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왔다. 정원 바로 밖에서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나가보니 수현은 꽤 먼 곳까지 걸어나가 전화를 받고 있었다.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윤아는 수현의 뒷모습만 볼 수 있었고 뭐라고 말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윤아는 살금살금 그쪽으로 걸어갔다.가까이 다가가니 수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저번에 이미 말해줬잖아요. 다시 말해줘요?”“하지만 대표님, 윤아 님이 전에...”“그건 전이죠.”수현의 목소리는 차갑다 못해 전혀 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저번에 신고하지 않은 걸로 이미 우리가 해줄 건 다 해줬어.”이렇게 말한 수현은 코웃음을 쳤다.“기회를 줬는데도 내 사람을 다치게 했으니 더 토론할 여지는 없는 거지.”수현은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