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승재는 윤도훈이 실종된 줄 알고 율이를 죽이려고 했다.윤도훈이 없는 틈을 타서.이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용서해서는 안 되는 악랄한 짓이다.“허승재, 내가 널 너무 봐줬지? 죽여야 마땅한 놈이었는데.”“이 모든 건 당신 손자가 자초한 일이니 너무 날 탓하지 말아 주시죠.”윤도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전에 진철의 간곡한 부탁으로 윤도훈은 한 번 눈감아줬었다.그때 그는 만약 또다시 허승재를 만나게 된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했었다.하지만 이번에 직접 허승재를 찾아가서 처리할 생각이다.진철이 아무리 부탁해도 허안강이 아무리 고개를 조아려도 ‘선물’을 쏟아부어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윤도훈을 막으려는 자는 그의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허승재뿐만 아니라 현숙애와 조현인 역시 처리해야 한다.은혜를 원수로 갚는 인간쓰레기를 더 이상 남겨둘 이유도 없다.만약 그들이 아니었다면 윤도훈은 귀패문과 엮기게 되지 않았을 것이고 목숨까지 위협당하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이진희와 율이까지 목숨을 잃을 뻔했으니 말이다.지금의 윤도훈은 극과 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이진희와 율이를 마주할 때 그는 더없이 부드럽고 적을 마주할 때 그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차갑다.주선미, 허승재, 현숙애 그리고 조현인.하나씩 깨끗하게 처리해 버리고 말 것이다....제황원으로 돌아온 윤도훈은 일단 유이연부터 살려내고 상처까지 치료해 주었다.좀 지나자 유이연이 깨어나기 시작했다.놀라움이 채 가시지 않은 모습과 더불어 살짝 난처해하는 얼굴로 윤도훈에게 사직서를 냈다.지난번 초인명과 초인웅이 제황원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귀대성이 윤도훈을 찾아왔을 때도 유이연은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사직하겠다는 유이연의 말에 윤도훈은 이해한다며 승낙해 주었다.그리고 보상금으로 유이연에게 2000만원도 주었다.이윽고 그는 이진희이 지낼 수 있게끔 다른 객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모든 준비를 끝내고 나와보니 이진희와 율이가 거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율이는 껌딱
날카로운 이진희의 눈빛에는 기대와 복잡한 감성도 서려 있다.답이라도 기다리고 있는 듯 윤도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윤도훈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멍하기만 했다.“뭐?”그러자 이진희는 조롱하며 웃었다.“그동안 뭐 하고 다녔는지 몰라요? 나한테 해명하고 싶은 것 없어요?”결혼식 아침 이진희는 그 사진들을 보고 가슴이 미어졌었다.윤도훈에 대한 실망도 분노도 극을 향해 달려가고 말이다.그동안 나쁜 놈한테 놀아난 느낌이 들어 슬프고 분했다.바람둥이 같은 놈이 한 명도 아니고 여러 명과 사이가 깊어 보이니 말이다.그러나 오늘 밤에 있었던 일로 주선미가 엉겹결의 했던 말에 이진희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그때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선미는 말을 하다 말았는데, 눈치가 빠르고 총명한 이진희는 이미 그 사소한 이상함을 캐치하고 있었다.자기가 그 사진을 봤다는 것에 대해 주선미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사진들은 결코 그렇게 단순한 일만은 아닌 것 같았다.의심이 피어오르면서 마음이 흔들리고 심지어 일말의 희망과 기대까지 품게 되었다.두 눈으로 본 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쩌면 윤도훈이 마땅한 해명을 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그때 전우헌이 자기를 배신 했을 때도 아무런 미련이 남지 않았었다.사실을 알고 난 뒤 이진희는 그저 역겹고 짜증이 나기만 했었다.하지만 같은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윤도훈에 대해서는 기대를 품고 있다.이진희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마주하며 윤도훈은 가슴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머뭇거리다가 결국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뭘 해명하라고 하는 건지.”“그래요? 그럼, 됐어요.”마지막으로 남은 희망마저 꺼지는 순간이었다.이진희는 비아냥거리며 말하고서 시선을 옮겼다.이진희도 더 이상 윤도훈을 붙잡고 꼬치꼬치 캐묻고 싶지 않았다.할 말이 없다는 사람을 붙잡고 뭐라도 알아내려고 달라붙는 그 모습은 너무 비굴해 보인다.마음이 복잡한 윤도훈은 이진희를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이제
노차빈은 혀를 내두르고 있다.수찬도 옆에서 놀라워 마지못하며 맞장구를 쳤다.“그러게 말입니다. 정공으로 들어가지 않은 게 다행이지 아니면 우리도 맞아 죽었을 수 있습니다.”그동안 윤도훈을 죽이겠다고 내내 머리를 쥐어짰었던 두 사람.인제와 생각해 보니 두려움이 밀려들었다.“회장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런 놈을 우리가 어떻게 죽입니까?”옆에 있는 다른 수하가 걱정한 기색이 역력한 채 물었다.그 말에 노차빈은 바로 수하를 때려 버렸다.“죽이긴 뭘 죽여! 다 같이 죽자는 거야? 그만둬.”그러면서 헛기침을 하더니 제법 진지한 모습으로 덧붙였다.“물론, 그놈이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야. 살인도 일종의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윤도훈 그자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난 얼마든지 그를 죽일 수 있어. 다만 지난번 나랑 수찬이가 중독되었을 때 우릴 살려준 은혜에 가만히 있는 것뿐이지. 킬러라고 한들 은혜와 원수는 똑바로 정리해야 하지 않겠어? 맞지?”그러자 수찬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맞아요. 역시 회장님.”“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죽이지 않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 한 번 살려 둡시다.”수하들이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때 차수빈은 또다시 헛기침을 하더니 말투까지 달라졌다.다크 웹에서 업무를 맡고 있는 수하에게 물었다.“바이러스, 최근 들어온 거 있어?”별명이 ‘바이러스’인 수하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망설이는 모습이다.“있긴 하나 암살이 아닙니다. 물건 배달하는 일인데 우린 뒤에서 지켜주기만 하면 됩니다. 요즘에 새 업무도 없고 해서 일단 하겠다고 했습니다.”이에 차수빈은 벌컥 화를 냈다.“뭐? 우리가 뭐 하는 조직인 지 몰라? 우린 킬러지 경호원이 아니라고. 우리가 무슨 배달원이야? 값 떨어지게 뭐 하는 짓이야?”“그러게 말입니다. 맡을 걸 맡아야지 뭐 하는 겁니까? 최고로 잘나가던 고용병 조직 ‘파이어’의 에이스들인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합니까? 우리가 아니라 배달원이 해야하는 게
한편, 윤병우는 현숙애한테서 귀대성이 죽은 소식을 듣게 된다.듣자마자 그는 곧바로 허승재에게 알렸다.“뭐라고? 귀대성이 죽었다고?”“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게 가능해? 그럼, 윤도훈은 멀쩡하다는 거야?”허승재는 더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네. 윤도훈은 멀쩡하다고 해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상해요. 그놈은 분명 폐인이 되었었고 귀대성 또한 잠시 뒷일을 처리할 수 있게끔 시간을 준 거라고 했단 말이에요. 근데 불과 며칠 만에 귀대성을 죽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윤도훈, 정말이지 너무 강한 것 같아요.”윤병우는 혀를 내둘렀다.그러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더니 덧붙였다.“저 도운시에 있고 싶지 않아요. 무섭단 말이에요. 윤도훈 딸을 죽이려고 했으니 절대 저 가만히 두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든 저 찾아내서 죽일 거 같아요.”“미친놈. 고작 그 정도로 그러고 싶어? 윤도훈이 그렇게 무서워?”허승재는 이를 갈았다.윤병우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있다.‘그럼, 안 무서워?’‘난 엄청 무서운데.’‘윤도훈, 보통 놈이 아니라고.’귀대성의 실력은 다들 생방송을 통해 이미 확인했다.저격수도 죽일 수 없는 괴물을 윤도훈이 죽였다니.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수를 쓰레기처럼 옥상에서 던졌으니.윤도훈은 폐인이 되지 않았을뿐더러 전보다 더욱 강해졌다.그런 사람의 딸을 납치해 와 죽이려고 했으니, 윤병우는 차마 더는 생각할 용기가 없었다.“인제 그만 좀 피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현숙애도 조현인도 얼마나 낭패하게 도망갔는지 몰라요. 얼마나 두려웠으면 현씨 가문으로 도망쳤겠어요. 도련님도 이번엔 좀 피해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진심으로.”“그놈이 미친 듯이 복수할 것 같아서 그래요. 어쩌면 허씨 가문에도 피바람이 불어올지 모르고요.”“당장 꺼져!”허승재는 욕을 하고서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러고는 핸드폰을 바닥에 확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다.“병신들! 어쩌면 하나같이 다 똑같이 못난 거야!”허승재 또한 이러한 결과를 맞이하게
율이는 입에 막대 사탕을 물고 있다.사탕의 단맛을 즐기며 호기심이 잔뜩 묻은 두 눈으로 주위를 살피고 있다.윤도훈은 이진희도 데리고 오려고 했으나 이진희는 그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았다.겉으로 보기에는 그래 보였다.어젯밤의 일을 겪고 나서 두 사람은 다시 묘해지기 시작했다.서로 도도한 모습을 보이며 넘지 못할 벽이 있는 것 같다.또 어쩌면 보이지 않는 줄로 서로를 당기고 있을 지도 모른다.그 줄은 율이일 수도 있고 다른 물건 일 수도 있다.오늘 아침, 윤도훈이든 이진희든 그 누구도 이혼에 대해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잠시 이혼을 놓아둔 것 같다.“누추한 곳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회견실로 들어서자 고민기가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고태형은 신분은 신분인지라 일어서지는 않고 윤도훈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이윽고 보다 자상한 모습으로 율이를 바라보았다.“네가 율이구나. 너무 귀엽네.”“안녕하세요. 할아버지.”율이는 예의 바르게 고태형에게 인사를 건넸다.고씨 가문의 다른 장로들도 윤도훈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그러던 그때 고민기는 어느 한 청년에게 눈짓을 했다.“원명아, 어서 인사드려.”이 청년은 바로 그때 차 사고로 죽을 뻔했던 고원명이다.고원명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윤도훈에게 허리를 굽혔다.“형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그러자 윤도훈은 손을 흔들었다.“아닙니다. 공짜로 구해 준 것도 아닙니다.”한바탕 인사치레를 끝내고 윤도훈은 율이를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이때 고민기와 고태형은 머뭇거리며 문밖을 바라보았다.그러면서 떠 보는 뉘앙스로 물었다.“그 선배분은 같이 오시지 않았나요? 두 분만 오셨나요?”고태형도 귀대성을 해결한 그 고수가 무척이나 궁금한 얼굴이다.고씨 가문은 시종일관으로 윤도훈에게 ‘선배’가 있다고 여기고 있다.배후에 있는 가문에서 고수를 보내 이번 위기를 해결한 것이라고.그러자 윤도훈은 미소를 머금고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선배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딸이랑 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시선을 멈출 법한 미모의 소유자.이진희와 같은 절세미인을 곁에 둔 윤도훈이라 할지라도 저도 모르게 눈앞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다만 안색이 그리 좋지만은 않다.차갑고 도도한 것이 누가 빚이라도 진 것처럼.거만한 모습과 더불어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태까지 보였다.“할아버지, 아버지.”고향기는 나오자마자 고태형과 고민기를 불렀다.“그래. 앉거라.”고태형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윤도훈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쪽에 앉으라고.이때 고민기는 웃으며 윤도훈에게 소개해 주었다.“제 딸인데, 이름은 고향기예요. 나이도 비슷한 것 같은데 얘기 나눠보시죠.”말하면서 그는 고향기에게 고개를 돌렸다.“어서 술 따라드리지 않고 뭐 하는 것이냐.”고향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마지못해 술병을 들어 윤도훈의 술잔에 따르기 시작했다.윤도훈은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초급 후기 고수? 나랑 같은 경지?’윤도훈이 자기를 쳐다보고 있음을 느끼고 고향기는 순간 얼굴이 더더욱 차가워졌다.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아빠, 저 예쁜 이모 기분 나빠 보여요.”율이가 고개를 내밀고 고향기를 보더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른처럼.그렇게 고민기는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면서 함께 밥을 먹더니 급하게 말머리를 돌리기 시작했다.“실례가 안 된다면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그러자 윤도훈은 의혹이 가득한 눈으로 고민기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얼마든지 물어보시죠.”“윤 선생님과 같은 실력과 배경을 지니신 분이 왜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갔는지 궁금합니다. 이씨 가문은 도운시에서 명성이 자자한 건 맞으나 큰 역할은 없거든요.”이에 윤도훈은 웃으며 대답했다.“우리 마누라가 하도 예뻐서요. 그리고 데릴사위도 마음에 들고요.”그러한 대답에 다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하나 같이 이상한 눈빛으로 윤도훈을 보고 있다.‘데릴사위가 마음에 들어?’‘그래. 사람마다 취미가 다를 수 있지.’“이진희 씨요? 허허.”이때
윤도훈이 어마어마한 세력을 등에 업고 있음을 고태형은 확신했다.어쩌면 상고 윤씨 가문보다 더더욱 강한 세력일 지도 모른다면서.고향기와 윤도훈이 혼인 관계를 맺게 된다면 이는 고씨 가문에게 있어서 더할 나위없이 좋은 일이다.마침 ‘데일 사위’가 좋다는 윤도훈의 말을 듣고 고태형은 그러한 생각이 더욱 깊어졌다.고향기와 윤도훈을 한 쌍으로 맺으려는 것.도운시에서 고씨 가문은 상류 계층에 속하지만, 고대 무림 세가에서는 바닥이나 바름없다.이대로 변함없이 쭉 가게 된다면 고대 무림 연합회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이는 배일에 싸인 윤도훈의 배후 세력에 고민기와 고태형이 혹 간 이유이기도 하다.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향기는 표정이 잔뜩 상기되었다.윤도훈 역시 식은땀을 흘리더니 곧 정색하며 또박또박 운을 떼기 시작했다.“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들어간 이유는 오직 ‘진희’ 하나 만을 위해서예요. 저에게 있어서 고씨 가문도 이씨 가문도 다 똑같거든요. 진희를 좋아해서 데릴사위로 들어간 것이지 그로 인해 무엇인가 얻으려고 들어간 것이 아니에요. 하물며 저와 고향기 씨는 완전히 초면인데, 외람되지만 좀 실수하신 것 같네요.” ‘송장헌인줄... 왜 다 나랑 결혼했으면 하는 거지?’‘이 놈의 매력이 문제야.’진지하기 그지없는 윤도훈의 말에 고민기와 고태형은 멋쩍기 그지없어 어안이 벙벙해졌다.어느 한 재벌 2세가 그랬듯이, 그는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상대가 자기보다 돈이 많은지 아닌지 따지지 않는다고 했다.왜냐하면 아무리 많아 봤자 자기만큼 없을 테니.윤도훈도 이와 같은 상황이라고 보면 된다.자신만으로도 그 역량이 충분하니 굳이 다른 가문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그 말인즉슨, 고씨 가문이 이씨 가문보다 대단하다고 한들 윤도훈에게 똑같다는 것이다.“그렇게 생각하셨다면 사과드릴게요. 향기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친구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고민기는 헛기침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풀려고 했다.“당연하죠.
고향기의 말에 고민기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윤도훈을 바라보며 멋쩍어했다.“고향기! 그렇게 함부로 말하면 못 쓴다!”엄격한 모습으로 고태형은 고향기를 단단히 꾸짖었다.고민기 역시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서 윤도훈에게 사과하느라 바빴다.“죄송합니다. 하도 집에서 오냐오냐 키워서 딸아이가 좀 버릇이 없어요. 하지만 절대 그런 뜻이 아니니 마음에 두지 마세요.”“괜찮아요. 그게 뭐든 상관없거든요.”윤도훈은 개의치 않아 하며 손을 흔들었다.잠잠해지는 것 같자, 고향기는 피식 웃더니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틀린 말한 거 아닌데요. 제가 뭐 잘못 얘기했어요? 할아버지, 아버지, 겨우 생각해내셨다는 게 이 사람한테 시집보내는 거였어요? 집안 세력만 믿고 부귀영화를 누리는 도련님한테 시집가고 싶은 생각 전혀 없거든요. 좋은 수련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겨우 초급 중기 밖에 안 되는 남자? 저 그럴 생각 없어요. 물론 그런 사람은 제 서방님이 될 자격도 못 되고요. 제가 원하는 서방님은 그 어떠한 세력과 배경이 없어도 자신만의 힘으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이에요. 집안에만 의지한 채 홀로 밖에 나서면 바보처럼 맞고 다니는 그런 사람 말고요.”“고향기, 당장 입 다물어!”얼굴이 한껏 어두워진 고민기는 결국 고향기에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고태형 역시 테이블을 ‘탁’치면서 소리쳤다.“고향기, 그만 가봐.”이때 율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잔뜩 화난 모습으로 반박했다.“아니에요! 우리 아빠 바보 아니에요!”흥분한 그들과 달리 윤도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기만 했다.“고향기 씨, 왜 이렇게까지 흥분하시는 거죠? 말도 너무 날카롭게 하시고 말이에요. 제가 뭐 어쩌자고 한 것도 아닌데, 거참 억울하네요.”“고향기, 당장 사과드려! 그리고 네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반성해.”고민기가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그들에게 있어서 윤도훈의 배경은 고씨 가문보다 훨씬 더 강하다.그러므로 무조건 윤도훈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고향기가 행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