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그가 전씨 그룹에서 차지한 지분과 주식 양도서 및 은행카드와 그의 명의로 된 모든 부동산, 상가 등 증명 서류를 정리해서 봉투에 넣었다. 무릇 그의 개인재산은 남김없이 봉투에 담아두었다.“내가 주식을 양도해도 넌 회사를 신경 안 써도 돼. 전씨 그룹은 내가 계속 운영하고 벌어들인 수입은 전부 네 거야. 난 그저 널 위해 일하는 직원일 뿐이야. 네가 얼마나 원하던, 재산을 얼마만큼 소유한 여자 갑부가 되고 싶던 내가 분발해서 꼭 네가 원하는 목표를 이뤄줄게. 너만 허락한다면 바로 나랑 함께 수속 밟으러 가자. 이 재산들 모두 네 명의로 이체할 거야. 난 요만큼도 남기지 않아. 매달 내게 용돈만 주면 돼. 애초에 네가 내 돈을 노릴까 봐 경계했지만 이젠 내가 선뜻 전 재산을 넘겨줄게. 이렇게 해서라도 너에 대한 내 믿음을 인정받고 싶고 또한 실제 행동으로 네게 사과하고 싶어. 맹세할게. 애초의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아.”하예정은 그의 부동산 서류들을 더 보지 않고 싹 다 봉투에 넣고는 그를 빤히 쳐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예정아, 뭐라고 말 좀 해봐. 된다, 안 된다 대답이라도 해줘. 응?”그녀의 침묵에 전태윤은 너무 불안했다.그녀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뭘 어떻게 하려는지 알 길이 없었다.하예정은 서류 봉투를 그에게 돌려주며 말했다.“태윤 씨, 난 이런 제안 못 받아들이겠어요.”전태윤이 발끈하며 그녀의 손을 확 잡아채고 초조하게 물었다.“예정아, 내가 어떻게 해줄까? 말만 해. 네가 원하는 건 최선을 다해서 이뤄줄게. 우리 둘의 경제적 차이가 너무 크다고 했지? 그럼 내가 소유한 전 재산을 네 명의로 돌리면 네가 부자고 난 빈털터리야. 내가 열세에 처하는데 이래도 안심이 안 돼?”그는 진짜 전 재산을 털어 그녀에게 주려고 했다.“태윤 씨, 난 당신한테 증정받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단지 태윤 씨한테 기대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요. 알아들어요? 태윤 씨의 증정품이 되어 사사건건 태윤 씨한테 기대고 싶지 않아요.”감정이 깊
그는 하예정이 거절할 줄 알고 그녀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뜸 협박에 나섰다.“이 봉투 안 가지면 창문 밖으로 던져버릴 거야. 우리 집 세대주가 너인데 네가 집안 재산을 신경 쓰지 않으면 나도 신경 쓸 필요 없지! 난 오직 너만 신경 써.”하예정은 말문이 막혔다.일주일 만에 만나자고 약속을 잡으니 그녀는 전태윤이 드디어 그녀를 이해하고 욱한 성질도 고쳤을 줄 알았는데 지금 그의 협박을 들으면서 속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더니 전태윤이 타고난 성격이 이런 걸 그녀는 혹시라도 본인이 예외라 그를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다.그는 변하지 않았고 그녀도 더는 바꾸게 하고 싶지 않았다. 둘은 끊임없는 마찰로 서로를 갉아먹을 뿐이다.하예정은 그를 한참 쳐다보다가 다시 서류 봉투를 들고 안에서 블랙카드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남자가 돼서 그것도 대표님이란 분이 블랙카드도 없이 어딜 나다니겠어요? 누가 알아봐 주겠냐고요? 이 카드는 태윤 씨 가져요. 나머지는 내가 일단 당신 위해 보관해둘게요.”안 그러면 그는 진짜 봉투째로 밖에 내던질 것이다.전태윤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다.하예정은 감히 내기할 엄두가 안 났다.전태윤도 그녀의 태도에 곧장 블랙카드를 받으며 말했다.“생활용 카드에 이미 많은 돈을 넣었으니 사고 싶은 거 있으면 다 사. 절대 너 자신을 서운하게 대하진 마. 처형한테도 집을 또 살지 여쭤봐 봐. 둘이 함께 집 보러 다녀. 계속 월세방에서 지내면 내 집이 없다는 기분이 들어. 처형이 돈 모자라면 빌려줄지 그냥 줄지 네가 알아서 해. 아무튼 처형과 우빈이 모자에게 제집 마련을 해줘야 해.”일주일간 마음을 식히면서 전태윤은 전 재산을 하예정에게 돌리면서 그녀에게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처형을 도울 생각까지 했다. 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결정이다. 왜냐하면 하예정이 제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바로 언니 하예진과 조카 우빈이니까.“언니는 가게에 돈을 투자해서 잠시 집 살 생각이 없어요.”하예정도 언니에게 말해보았다
“그럼 나랑 함께 우리 집들을 보러 갈래?”전태윤이 말한 집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결혼 전에 산 것을 의미한다.그가 산 집은 대부분 앞뒤 정원이 달린 별장이다.고층은 단 하나인데 장차 아이가 학교 다니는 걸 대비해서 사놓았다. 그 집을 살 때 전태윤은 솔로였지만 집안 어르신들이 평생 그를 독신으로 살게 할 리는 없으니 결혼하고 애 낳고 학구열에 뛰어들어 아이를 더 나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미리 학교 근처들에 집을 몇 채 사놓았다.그의 아이가 어느 학교에 다니던 근처에 모두 집이 마련돼있으니 시름 놓고 공부만 하면 된다.“회사일 안 바빠요?”“너와 함께하는 일이면 안 바빠.”하예정이 말했다.“집 보러 가도 주말에 가요. 태윤 씨도 출근 안 하고 나도 가게 안 나가니 그때 다시 봐요.”그녀는 전태윤의 업무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았다.전태윤은 떠보듯이 그녀에게 물었고 이젠 해답을 들었으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예정은 그가 예전에 산 집들을 함께 보러 가기로 했으니 여전히 그를 남편으로 대하고 가족으로 여기고 있다.비록 지금도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말이다.“그래, 그럼 토요일 아침에 처형네 집으로 데리러 갈게. 처형한테 내 아침밥도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려.”“알았어요. 태윤 씨 오는데 언니가 설마 굶기겠어요?”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에게 말했다.“나 이만 갈게요. 태윤 씨 계속 볼일 봐요.”전태윤도 잇따라 일어나며 기대에 찬 눈길로 그녀에게 물었다.“우리 함께 밥 먹을까?”시계를 들여다봤지만 고작 오전 열 시라 점심때가 되려면 아직 두 시간이나 더 남았다.물론 그가 원하면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아니요, 난 일단 우빈이를 언니네로 데려가야 해요. 태윤 씨 몸 봐가면서 일해요.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술도 적게 마셔요. 허튼소리 할라.”전태윤은 어안이 벙벙했다.누가 배신한 걸까? 술 취해서 홧김에 한 말을 대체 누가 그녀에게 알려준 걸까?실은 아무도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예전에 전태윤이 질투에 눈이 멀어
전태윤은 문득 계급 차이의 실질을 깨달았다.만약 하예정이 출근하지 않으면 그녀는 곧 이혼 전의 하예진처럼 살아갈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태윤에게 손 내밀어야 하고 줄지 말지는 그의 기분에 달려있다. 이건 마치 은덕을 베푸는 셈이다. 어쩌면 전태윤은 돈 줄 때 그녀가 벌지도 못하면서 써대기만 한다고 푸념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이 만약 전태윤의 엄마처럼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재벌가로 시집갔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넉넉한 혼수가 뒷받침해주어 수익을 얻게 하고 시종일관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게 해준다.전태윤의 엄마가 시집갈 때 전태윤의 아빠도 전씨 일가의 도련님이었다. 전태윤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제 딸이 시댁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혼수를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는데 집, 차, 상가, 작은 회사 등등 없는 게 없었다.외할아버지가 혼수로 딸아이에게 줬던 작은 회사는 몇십 년이 지난 후 전태윤의 엄마가 진작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연 수입이 백억을 넘는다.전태윤은 드디어 깨달았다. 하예정이 원하는 독립이 무엇인지, 그에게 적응하고 그의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한 게 대체 무슨 뜻인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내 몸 잘 챙길 테니까 태윤 씨도 건강 챙겨요.”전태윤은 그녀의 이런 미소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다.그는 하예정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 몰래 손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길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예정아, 너의 미소가 햇살처럼 내 맘을 비춰서 차가웠던 내 가슴을 녹이고 있어.”엘리베이터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거침없이 팔을 벌려 그녀와 우빈을 품에 끌어안았다. 우빈은 중간에 끼여 머리가 전태윤의 가슴에 짓눌렸다. 전태윤은 재빨리 그녀의 빨간 입술에 키스했다.입술이 닿은 순간 전태윤은 저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지만 더 깊게 빠져들기도 전에 우빈이가 분위기를 깼다.아이는 부부 사이에 끼여 너무 불편한 나머지 마구 몸부림쳤고
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차 앞으로 가서 차 키로 문을 열고 아이를 안전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고개 돌려 뒤에 서 있는 전태윤에게 말했다.“먼저 갈게요.”전태윤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겨우 대답했다.“그래.”그는 하예정의 차 앞부분을 보더니 또다시 차를 바꾸라고 했다.하예정은 이미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 도어를 내리고는 그에게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준 첫차에요.”전태윤의 눈빛이 한없이 짙어졌다.그녀는 곧장 출발했고 전태윤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그녀의 차를 배웅했다.강일구는 경호팀을 거느리고 멀리 서 있을 뿐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도련님과 사모님이 더이상 다투진 않지만 부부 사이가 왠지 멀어지고 삭막해진 것 같았다. 예전 같은 알콩달콩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하예정의 차가 종적을 감춘 후에야 전태윤이 손짓하며 경호원들을 불러왔다.“회사로 돌아가.”그가 나지막이 말하자 강일구가 기사더러 얼른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전태윤은 롤스로이스에 앉아 경호 차량의 보호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회사로 돌아갔다.한편 하예정은 곧게 언니네 토스트 가게로 갔다.하예진의 토스트 가게는 인테리어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필요한 물건도 거의 다 사놓았다. 그녀는 식탁과 의자를 내려놓고 깨끗이 청소하면서 개업 날짜만 기다렸다.자영업자들은 개업 날짜를 신중하게 고른다.가게 이름은 ‘하루 토스트’이다. 전혀 우아하지 않고 친근한 이름으로 정했다.이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패스트푸드 가게와 토스트 가게가 있다.하예진이 인테리어 할 때 이 거리의 음식점 주인들이 그녀가 무슨 가게를 열지, 자신들과 경쟁 상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두 지켜보았다.또 일부 사람들은 진작 그녀를 찾아와 여쭤보았고 그녀도 토스트 가게라고 숨김없이 말해주었다.그 뒤로 토스트 가게 사장님들은 틈만 나면 하예진의 가게로 찾아와 지금 장사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이 거리에 토스트 가게만 반 이상 차지해서 경쟁이 매우 크다고 푸념했다.그때마다 하예진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그녀는 테이블 닦는 것을 멈추고 걸레를 들고 나오더니 아들을 안고 차에서 내리는 여동생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았다.“엄마.”주우빈은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아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 하예정은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아무리 예뻐해줘도 엄마랑 더 친하네.”“그야 당연하지. 너랑 제부도 아이를 좋아하니, 하나 낳는 것도 고려해 보는 건 어때? ”하예진은 농담 조로 말하면서 동생의 안색을 살폈는데, 동생이 웃기만 하고 말을 받지 않자 아직 두 부부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제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야?”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여동생과 함께 가게로 돌아가며 관심 조로 물었다.언니가 묻자, 하예정은 서둘러 차로 돌아가 서류 봉투를 꺼내 가져왔다. 여기 전태윤의 전 재산이 들어 있다.가게에 들어선 하예정은 인테리어 기사들이 안에 없는 것을 보고 언니에게 물었다.“벌써 끝났어?”“응, 방금 끝났어. 우선 청소부터 하려고, 하면서 더 손댈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없으면 내일 임금 계산해 주겠다고 했어.”하예진은 아들을 내려놓고 가게에서 놀게 한 후 여동생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테이블은 몇 번이나 닦아 빛이 날 정도였다.“언니, 지금 기운이 넘치지?”“그럼,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열심히 노력할 거야. 언니의 목표는 이 가게를 관성 곳곳에 여는 거야.”“꼭 그렇게 될 거야.”하예정은 언니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나에게 주려 했던 건데 내가 거절하자 자기 대신 보관해 달라고 했어. 태윤 씨는 아직도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하예진이 이게 뭐냐고 물으면서 서류 봉투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내보았는데, 부동산 증명서, 가게와 차 키, 그리고 전씨 그룹의 주식 양도서도 보였다. 전씨 그룹의 주식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제부가 너한테 이걸 다 주겠다던?”하예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많은 부자는 결혼 전에 혼전
“서로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줘.”하예진은 동생의 손등을 툭툭 치더니 물품들을 다시 서류 봉투에 담아 넣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은 언니의 월세방에 놓지 마. 이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정성은 발렌시아 아파트보다 못할 거야. 이것들을 너와 제부의 집으로 가져가서 금고에 안전하게 넣어놔. 제부의 전 재산인데...”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 물건들을 보관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 집이 더 안전해.”“그래.”“점심은 여기서 같이 먹을래?”“성씨 집에 가서 이모를 찾고 싶어, 아마도 이모 집에서 밥을 먹게 될 것 같아.”“이모는 왜? 이모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친이모이자 성씨 사모님 이경혜는 관성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자매는 이모를 찾은 후 한 번도 자신이 성씨 사모님의 조카딸이라고 입 밖에 낸 적이 없을 뿐더러 이모의 도움도 전부 사양했다.이경혜의 존재는 자매에게 있어 친척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지, 그녀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변화도 주지 않았다.하예진의 전 시어머니는 찾아올 때마다 멍청한 그녀가 성씨 사모님에게 손을 내밀 줄도 모른다고 한다. 그 돈으로 더 큰 사업에 투자하여도 되는데 말이다.투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성씨 그룹에 취직하여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좋은 길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주형인에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한다.하예진은 전 시어머니의 말을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모를 통해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서... 지난번에 소현 언니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려 하는데 나한테 관심이 있냐고 물었어. 그래서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소현 언니를 따라 그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어.”현재 그녀와 전태윤은 이혼이 불가능했다. 전태윤이 손을 놓지 않는 한 아예 떠날 수가 없었다.이혼할 수 없으니, 용감하게 맞설 수밖에.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식단도 잘 조절해서 고단백, 고지방의 음식은 되도록 피하고 있다.지금 그녀의 체중은 이미 75킬로까지 줄었는데 그녀의 목표는 50킬로이니 25킬로를 더 빼야 한다. 계속 견지하면 꼭 표준적인 몸매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몇십 킬로를 감량한 후 그녀는 훨씬 보기 좋아졌다.달리기를 마치고 가게에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전남편이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주형인은 차를 가게 문 앞에 세워 놓았는데, 가게 문이 잠겨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에 기대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이따금 두 모금씩 들이켰다.하예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전남편이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보기 싫었다.아들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우습기 그지없었다.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주형인은 매일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왔는데, 부부는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고, 그도 그녀와 교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예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모두 가정에 관한 사소한 일들 뿐이었고, 주형인이 보기에 그런 하찮은 이야기들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식이나 프로젝트 등은 이미 직장을 떠난 지 오래된 그녀가 조언을 해줄 수 없는 화제였기에 그는 항상 그들 부부가 공통의 화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녀를 보기 귀찮다고 말했다.지금 이혼한 후, 그녀는 스스로 그를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는 오히려 자주 그녀 앞에 나타나고 있다.“도대체 어디 간 거야?”주형인은 하예진이 돌아온 것을 보고 몸을 곧게 펴더니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문도 잠그고 장사를 어떻게 해? 내 돈이나 다 탕진하지 마, 사업이란 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사람마다 모두 사장질하게?”“뭐가 당신 돈이라는 거야? 내가 쓰는 것은 모두 내 돈이야.”하예진도 그에 맞추어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또 무슨 일로 왔어? 지금 이때 당신은 회사에 출근해 있을 시간 아니야? 주형인! 우리는 이미 이혼했으니, 제발 와서 내 평온한 생활 좀 방해하지 마. 당신 와이프가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