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테이블 닦는 것을 멈추고 걸레를 들고 나오더니 아들을 안고 차에서 내리는 여동생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았다.“엄마.”주우빈은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아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 하예정은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아무리 예뻐해줘도 엄마랑 더 친하네.”“그야 당연하지. 너랑 제부도 아이를 좋아하니, 하나 낳는 것도 고려해 보는 건 어때? ”하예진은 농담 조로 말하면서 동생의 안색을 살폈는데, 동생이 웃기만 하고 말을 받지 않자 아직 두 부부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제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야?”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여동생과 함께 가게로 돌아가며 관심 조로 물었다.언니가 묻자, 하예정은 서둘러 차로 돌아가 서류 봉투를 꺼내 가져왔다. 여기 전태윤의 전 재산이 들어 있다.가게에 들어선 하예정은 인테리어 기사들이 안에 없는 것을 보고 언니에게 물었다.“벌써 끝났어?”“응, 방금 끝났어. 우선 청소부터 하려고, 하면서 더 손댈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없으면 내일 임금 계산해 주겠다고 했어.”하예진은 아들을 내려놓고 가게에서 놀게 한 후 여동생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테이블은 몇 번이나 닦아 빛이 날 정도였다.“언니, 지금 기운이 넘치지?”“그럼,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열심히 노력할 거야. 언니의 목표는 이 가게를 관성 곳곳에 여는 거야.”“꼭 그렇게 될 거야.”하예정은 언니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나에게 주려 했던 건데 내가 거절하자 자기 대신 보관해 달라고 했어. 태윤 씨는 아직도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하예진이 이게 뭐냐고 물으면서 서류 봉투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내보았는데, 부동산 증명서, 가게와 차 키, 그리고 전씨 그룹의 주식 양도서도 보였다. 전씨 그룹의 주식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제부가 너한테 이걸 다 주겠다던?”하예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많은 부자는 결혼 전에 혼전
“서로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줘.”하예진은 동생의 손등을 툭툭 치더니 물품들을 다시 서류 봉투에 담아 넣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은 언니의 월세방에 놓지 마. 이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정성은 발렌시아 아파트보다 못할 거야. 이것들을 너와 제부의 집으로 가져가서 금고에 안전하게 넣어놔. 제부의 전 재산인데...”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 물건들을 보관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 집이 더 안전해.”“그래.”“점심은 여기서 같이 먹을래?”“성씨 집에 가서 이모를 찾고 싶어, 아마도 이모 집에서 밥을 먹게 될 것 같아.”“이모는 왜? 이모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친이모이자 성씨 사모님 이경혜는 관성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자매는 이모를 찾은 후 한 번도 자신이 성씨 사모님의 조카딸이라고 입 밖에 낸 적이 없을 뿐더러 이모의 도움도 전부 사양했다.이경혜의 존재는 자매에게 있어 친척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지, 그녀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변화도 주지 않았다.하예진의 전 시어머니는 찾아올 때마다 멍청한 그녀가 성씨 사모님에게 손을 내밀 줄도 모른다고 한다. 그 돈으로 더 큰 사업에 투자하여도 되는데 말이다.투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성씨 그룹에 취직하여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좋은 길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주형인에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한다.하예진은 전 시어머니의 말을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모를 통해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서... 지난번에 소현 언니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려 하는데 나한테 관심이 있냐고 물었어. 그래서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소현 언니를 따라 그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어.”현재 그녀와 전태윤은 이혼이 불가능했다. 전태윤이 손을 놓지 않는 한 아예 떠날 수가 없었다.이혼할 수 없으니, 용감하게 맞설 수밖에.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식단도 잘 조절해서 고단백, 고지방의 음식은 되도록 피하고 있다.지금 그녀의 체중은 이미 75킬로까지 줄었는데 그녀의 목표는 50킬로이니 25킬로를 더 빼야 한다. 계속 견지하면 꼭 표준적인 몸매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몇십 킬로를 감량한 후 그녀는 훨씬 보기 좋아졌다.달리기를 마치고 가게에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전남편이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주형인은 차를 가게 문 앞에 세워 놓았는데, 가게 문이 잠겨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에 기대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이따금 두 모금씩 들이켰다.하예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전남편이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보기 싫었다.아들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우습기 그지없었다.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주형인은 매일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왔는데, 부부는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고, 그도 그녀와 교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예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모두 가정에 관한 사소한 일들 뿐이었고, 주형인이 보기에 그런 하찮은 이야기들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식이나 프로젝트 등은 이미 직장을 떠난 지 오래된 그녀가 조언을 해줄 수 없는 화제였기에 그는 항상 그들 부부가 공통의 화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녀를 보기 귀찮다고 말했다.지금 이혼한 후, 그녀는 스스로 그를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는 오히려 자주 그녀 앞에 나타나고 있다.“도대체 어디 간 거야?”주형인은 하예진이 돌아온 것을 보고 몸을 곧게 펴더니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문도 잠그고 장사를 어떻게 해? 내 돈이나 다 탕진하지 마, 사업이란 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사람마다 모두 사장질하게?”“뭐가 당신 돈이라는 거야? 내가 쓰는 것은 모두 내 돈이야.”하예진도 그에 맞추어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또 무슨 일로 왔어? 지금 이때 당신은 회사에 출근해 있을 시간 아니야? 주형인! 우리는 이미 이혼했으니, 제발 와서 내 평온한 생활 좀 방해하지 마. 당신 와이프가
하예진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새어 나왔다.“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내가 당신 일자리를 잃게 했어? 당신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런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을 거 아냐. 이건 당신이 스스로 직장을 잃은 것이지 어느 누구도 원망할 자격이 없어.”그녀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나도 너무 후회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고, 당신과 일찍 이혼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나도 평생 당신과 이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주형인은 하예진을 노려봤다.“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전태윤이 손을 쓰는 한 마찬가지로 직장을 잃을 거야! 우린 그래도 한때 부부였는데... 어쩜 그렇게 모질게 나올 수 있어?”이혼할 때, 그는 그녀에게 이혼 후 다시는 그 증거들을 가지고 그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그녀는 본인이 다시는 그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본인에 하예정 부부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분명히 고의로 그런 것이다.“당신 전태윤이 전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지? 그의 신분으로 충분히 날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태윤 씨의 정체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같이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가정주부가 그 사람 정체를 무슨 수로 안다고. 내가 모질다고 그러는데,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는 거야? 이혼은 우리 둘의 일인데 난 당연히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약속할 수 있지 예정이와 태윤 씨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어떻게 장담하겠어?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와 누나가 영원히 날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보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주서인을 언급하자 주형인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누나랑 형부가 설 전에 직장을 잃은 것도 전태윤이 한 짓이지? 분명 전태윤이 한 짓일 거야, 당신을 위해 화풀이를 하려고!”“제부가 날 대신해 화풀이를 해주는 게 무슨 문제야? 화나? 그럼, 태윤 씨한테 가서 따져봐!”“...”그가 어찌 감히 전태윤을 찾아가 따지겠는가?그는 전씨
주형인은 오래전부터 뚱뚱해서 추한 하예진에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몇십 킬로를 감량해 예전보다 훨씬 예뻐진 그녀를 보며 말을 다시 삼켰다.살이 찌기 전의 하예진은 매우 아름다웠고 모든 면에서 서현주 못지않았다.“현주는 조금 민감해서 그래. 우리는 아무래도 부부였고... 우리가 연락이 오가면 현주가 오해하고 의심하기 마련이야. 당신이 이해해.”만약 하예진이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두 여자가 자신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마음속은 은근히 기뻐 났다.비록 상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하예진은 오래전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여기까지 생각한 주형인은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비록 그가 먼저 그녀를 배신했지만, 그녀가 그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자, 그는 또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이혼 후 자신과 서현주의 생활이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하예진은 비참하고 순탄치 않은 생활을 보내길 바랐다.하지만 현실은 하예진이 자신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예진아, 난 지금 일자리를 잃었어. 전태윤이 손을 쓴 탓에 새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아, 아니, 구할 수 없을 거야. 어쨌든 우린 몇 년 동안 부부생활을 해왔고 우리 사이에 우빈이도 있는데... 날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 가게에 투자하는 데 얼마를 썼어? 몇백만? 기껏해야 몇천만 정도일 거야. 우리가 이혼할 때, 내가 당신에게 나눠준 돈은 2억을 넘는데 그 나머지 돈, 먼저 나에게 빌려줘 봐. 나와 현주는 지금 결혼식 날짜를 고르고 있는데, 날짜를 고르고 나면 결혼식을 올려야 해, 모든 것이 다 돈이 필요한데 지금 내 손에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그러니 돈 좀 빌려줘. 이제 새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면 바로 갚을게. 우빈이를 봐서라도 꼭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마.”하예진은 몸을 돌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물 한 통을 받아오더니 그 물통을 주형인 앞에 놓고 말했다.“허리를 굽혀 물속 좀 봐봐.”“뭘 보라고...?”
주형인은 차를 몰고 도망가는 내내 끊임없이 하예진을 나쁜 년이라고 욕하면서 그의 서현주는 하예진과 달리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다고 곱씹었다. 그는 이혼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지금 세를 들어 사는 집 아래에 도착하자 익숙한 차 한 대가 보였는데 주형인은 머리가 아파 났다.그 차는 누나의 차였다. 누나가 또 찾아온 것이다.짜증이 나서 머리를 긁적였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와 서현주가 직업을 잃은 것은 전태윤이 손을 쓴 것이 분명하다.‘누나와 형부가 직업을 잃은 것도 전태윤 때문이 아닐까?'진짜 그런 거라면 주형인이 누나네 부부를 힘들게 한 셈이다.가까이 다가간 주형인의 귀에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서현주는 주형인과 함께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들 부부는 함께 회사를 떠났지만, 돌아오는 도중 주형인은 그녀를 먼저 차에서 내리게 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바람을 쐬러 가고 싶다고 하면서.똑같이 기분이 별로였던 서현주는 이해한다는 듯 택시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주형인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을 뿐이 아니라 수입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셋방으로 돌아온 후 형님이 임정한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담담하게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들어가자마자 엉망진창으로 된 방을 보았다. 그녀의 화장품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립스틱도 부러져 있었으며 화장대에는 각종 스킨케어가 가득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벽, 바닥, 이불에도 립스틱이 가득 발라져 빨갛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어머니!”서현주가 소리를 지르자, 김은희는 얼른 다가와 물었다.“왜 그래?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면서 말이야. 나 아직 그 정도로 귀 멀지 않았어.”“어머니, 제 방 좀 보세요. 정한이가 이렇게 만든 거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정한이는 장난이 너무 심해 걔가 오면 저와 형인 씨 방에 들여보내지 말라고
임수찬은 건축 자재 장사를 하고 싶어했다. 가게를 사들이고 다시 장식하고 장사를 시작하려면 어찌하여도 몇천만 원이 필요했다. 주서인은 수입이 없는 지금 적금을 남편의 장사에 쓰는 것이 아까웠고 사업이 잘 안돼 손해를 볼까 봐 걱정도 되었다.하지만 어떻게라도 한번 해보게 하고 싶었다. 만약에 장사가 잘되면 큰 회사의 사모님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바람이 있었다.가족의 뒷바라지에 익숙해진 주서인은 자연스럽게 부모님과 동생에게 도움을 청했다.“난 하예진이 아니에요!”서현주는 멘붕이 온 듯이 소리쳤다.“당신들 하예진을 그렇게 좋아하면 하예진을 찾아가든가요. 하예진은 당신들을 상대하지도 않을 걸요!”그녀가 지금 가장 싫어하는 것은 주씨 집안 가족이 때때로 그녀와 하예진을 비교하는 것이다.예전에는 항상 그녀 앞에서 하예진의 이런 곳이 마음에 안들고 저런 곳이 마음에 안 든다며 욕을 하곤 했다.이혼한 후에 그녀가 집에 들어가자 다시 하예진이 좋다고 말하기 시작한다.“형님! 형님 아들이 내 방을 이렇게 만들었으니, 형님은 나를 도와 깨끗이 정리해야 할 거예요. 정한이가 망가뜨린 내 화장품과 스킨케어도 가격대로 배상해야 해요!”주서인도 화가 나서 대꾸했다.“내가 이렇게 만든 것도 아닌데 왜 내가 널 도와서 치워야 하는 거야? 그, 그래, 정한이가 이렇게 만든 거니까 정한이한테 도와달라고 해. 이런건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거야. 정한이에게 찾아가서 따져. 네 스킨케어와 화장품은 다 내 동생이 너에게 사준 것 아니야? 네 돈을 쓴 것도 아닌데,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배상하라고 하는 거야? 네가 샀다는 증명을 보여주면 배상해 줄게.”서현주는 화가 나서 베개를 잡아서는 주서인을 향해 내리쳤다.“주형인은 내 남편이에요. 내 남편이 나에게 준 물건은 내 물건인 것과 마찬가지예요. 당신은 가격대로 배상해야 할 거예요. 배상하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있는 한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올 생각 하지 마요! 실력이 있으면 어디 어머니를 데리고 가서 당신을 도와 아이를 보게 해요
“갓 시집온 데다가 결혼식도 안 했는데 벌써 날 이렇게 괴롭혀요. 형님은 좋은 척마저도 안 하셔요.”그녀는 주형인과 하예진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때 주씨 집안의 가족들은 모두 좋은 사람인 척하며 하예진 자매를 친딸처럼 아꼈다고 들었다.결혼 후 하예진이 임신하여 아이를 낳자, 아이가 생기면 떠나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인지 주씨 집안의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서현주는 주씨 집안 사람들의 연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가 이렇게 되자, 주씨 집안 사람들은 더 이상 연기를 하지도 않는다.서현주가 주형인을 정말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시집오지도 않았을 것이다.시댁 사람들의 쓰레기 같은 성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서현주는 그들을 혼내줄 자신이 있는지라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그저 주형인의 마음만 사로잡고 그의 지갑을 잘 지킬 수만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서현주는 주형인에게 하소연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주형인은 서럽게 우는 와이프를 보고 마음이 아파 났다. 그는 집안의 상황을 한번 둘러보고 역시 화가 치밀어 한 손으로 서현주의 어깨를 감싸 안고 주서인에게 따졌다.“누나, 왜 정한이를 잘 보지 않은 거야? 정한이가 뭘 했는지 봐봐. 오히려 현주를 비난하는 건 또 뭐야? 누나라면 화내지 않을 수 있겠어?”주서인은 당당하다는 듯 반박했다.“정한이는 아직 어린애잖아. 철이 안 든 거야.”“정한이가 철이 없다고 해도 누나까지 철이 없는 건 아니잖아? 정한이가 내 방에 들어와서 파괴하는 것을 보고도 막아야 한다는 걸 몰라?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너! 난 네 친누나야. 어떻게 네 친누나한테 이럴 수 있어? 정한이가 언제 네 방에 들어갔는지 나도 몰랐어. 엄마를 도와 함께 요리하고 있었는데 인기척이 없길래 그저 정한이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려니 했는데 네 방을 어지럽힐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게 왜 방문을 잠그지 않았어? 자신이 제대로 문을 잠그지 않은 잘못이지 정한이를 탓하는 건 또 뭐야? 내가 엄마를
송씨 가문의 어르신 송국호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하지만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현과 전호영은 이미 한 쌍의 커플로 되었다. 그들이 동성애자일지라도 두 가문의 어르신들 모두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뭔 소용 있으랴!그 또한 두 사람의 자유였다.고현이 여자 분장하든 전호영이 여자로 분장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다.“전 대표님. 고 대표님.”별장 주인의 성씨는 송 씨로서 이름은 국호였다 그는 팔순이 넘었지만 정정하시고 강성 업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송씨 가문은 업계에서도 명망이 꽤 높은 가문이다. 따라서 송씨 가문의 연회에 고현도 체면을 세워 주어 참석했다.“어르신.”두 사람 모두 예의 바르게 송국호에게 안부를 물었다.송국호는 웃으며 맞이했다.“고 대표님. 전 대표님.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는 두 사람을 별장 안으로 초대하면서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송국호만큼 좋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고현을 가끔씩 힐끗 쳐다보았다.그들은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남성 옷을 입은 것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고현은 도도하지만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 도도한 모습 때문에 그녀의 특유한 부드러움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여자로 변장하니, 마치 고현의 본래 모습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고현이 여자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현이 여자로 변장했지만, 그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사람을 매혹하는 것도 여전했다.전호영은 고현의 손을 잡고 송국호의 안내로 화려한 별장 안으로 향했다.정원에 서 있던 사람들 전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전호영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이때 어떤 재벌가 딸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저분이 정말 고 대표님이라고요? 내 눈이 멀어진 게 아니죠? 여자로 분장하시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고현이 남자로 분장하는 것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인상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은 고현은 분명 남자인데 전호영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으니 전호영을 위해 여자로 분장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면, 다들 그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지 않겠는가?그들이 8년을 따라다니던 대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눈이 먼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경호원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고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고현은 자신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들 그녀가 전호영을 위해 여자 분장을 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아마도 머리를 길러야 할 것 같다고 여겼다.그녀의 긴 머리가 허리에 닿을 때면 사람들은 분명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아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긴 머리를 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휴. 어차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고현은 늘 여의치 않았다.어쨌든 그녀가 여자라는 진실을 말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의 몫이었다.연회가 열리는 별장에 도착하자 별장의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별장의 대문도 활짝 열려있었다.그리고 사람들이 별장 정문 앞에서 손님들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었다.별장 안에는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러 오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현마저 체면을 살려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면 오늘 저녁 연회가 엄청나게 크고 호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모두 강성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며 연회를 주최한 주인도 강성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그런 신분이 아니라면 고현도 체면을 새우 주지 않을 것이다.고현이 자주 타던 그 마이바흐 차는 강성 상류사회 사람들도 익숙히 잘 알고 있다.고현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입구에 있는 사람이 급히 마중 나와 운전 기사에게 별장 안에 주차 공간이 있으니
진미리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전화기가 꺼져도 찾아올 수 있잖아요. 우리가 낳은 사람이 원래 딸이잖아요.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미리는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꺼버렸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는 강성 상류층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고현의 경호원들과 고씨 가문의 노동자들도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씨 가문의 집사는 수없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삼켜버렸다.경호원들도 멍한 정신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후,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하지만 경호원들이 전호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불만인 것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 전호영이 고현을 비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현에게 여자 행세를 시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호영 이 나쁜 놈이 고현을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고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고현과 전호영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느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 경호원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경호원들은 고현은 이미 전호영에게 속아 넘어가 진정한 게이로 되었다고 여겼다.너무 아쉬웠다!고현처럼 훌륭한 회사 대표가 전씨 가문의 전호영에 의해 삐뚤어졌으니 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 일인가!전호영은 신사처럼 고현을 위해 차 문을 열어 그녀가 차에 올라타도록 부축했다. 고현이 부축하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전호영은 부축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경호원들은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정말 전호영을 한바탕 때리고 싶었다.도도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고현은 전호영으로 인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도록 망가지고 있었다.그나저나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으니 경국지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고현은 성격이 냉담했기에 여자로 변장하면 고귀하고 도도하게 보였다.그녀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경호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호영 씨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호영
고현은 전호영의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들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우리 출발해요.”“경호원들과 함께 가시겠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건데요?”분명히 그녀는 고현이지만 오늘 밤 여자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이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야만 경호원들의 낯익은 얼굴을 통해서라도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고 꽃에 물을 주고 있던 고진호 부부는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현이 여전히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딸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자 진미리는 결국 한숨을 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발을 그렇게 많이 샀는데 하나도 착용하지 않는다니... 휴.”진미리는 다시 고현의 발을 보았다. 고현의 치맛자락이 좀 길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걸을 때 무슨 신발을 신고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현이 여전히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열었다가도 바로 삼켜버렸다.어쨌든 연회에 참석할 사람은 고현일 텐데, 다른 사람이 비웃어도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미래의 사위도 개의치 않은데 진미리가 아무리 걱정해도 뭔 소용 있으랴!진미리는 못 본 척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저씨, 아주머니.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녀는 더는 사람들이 전호영이 동성애자라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이 싫었다.그녀는 그를 위해 치마를 입으려 했다!전호영은 드디어 고현이 그를 위해 여자의 신분을 드러내게 되는 날을 기다려 왔다.전호영이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그는 헤벌쭉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그래, 다녀와.”고진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