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문득 계급 차이의 실질을 깨달았다.만약 하예정이 출근하지 않으면 그녀는 곧 이혼 전의 하예진처럼 살아갈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전태윤에게 손 내밀어야 하고 줄지 말지는 그의 기분에 달려있다. 이건 마치 은덕을 베푸는 셈이다. 어쩌면 전태윤은 돈 줄 때 그녀가 벌지도 못하면서 써대기만 한다고 푸념할지도 모른다.하예정이 만약 전태윤의 엄마처럼 재벌 가문에서 태어나 재벌가로 시집갔다면 출근하지 않아도 넉넉한 혼수가 뒷받침해주어 수익을 얻게 하고 시종일관 경제적 독립을 유지하게 해준다.전태윤의 엄마가 시집갈 때 전태윤의 아빠도 전씨 일가의 도련님이었다. 전태윤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는 제 딸이 시댁에서 괴롭힘을 당할까 봐 혼수를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는데 집, 차, 상가, 작은 회사 등등 없는 게 없었다.외할아버지가 혼수로 딸아이에게 줬던 작은 회사는 몇십 년이 지난 후 전태윤의 엄마가 진작 대기업으로 성장시켜 연 수입이 백억을 넘는다.전태윤은 드디어 깨달았다. 하예정이 원하는 독립이 무엇인지, 그에게 적응하고 그의 삶에 스며들 수 있도록 시간을 달라고 한 게 대체 무슨 뜻인지 드디어 알 것 같았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알아서 내 몸 잘 챙길 테니까 태윤 씨도 건강 챙겨요.”전태윤은 그녀의 이런 미소를 못 본 지 너무 오래됐다.그는 하예정의 웃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저도 몰래 손 내밀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며 뜨거운 눈길로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말했다.“예정아, 너의 미소가 햇살처럼 내 맘을 비춰서 차가웠던 내 가슴을 녹이고 있어.”엘리베이터 안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거침없이 팔을 벌려 그녀와 우빈을 품에 끌어안았다. 우빈은 중간에 끼여 머리가 전태윤의 가슴에 짓눌렸다. 전태윤은 재빨리 그녀의 빨간 입술에 키스했다.입술이 닿은 순간 전태윤은 저도 몰래 한숨이 새어 나왔다.그녀에게 키스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지만 더 깊게 빠져들기도 전에 우빈이가 분위기를 깼다.아이는 부부 사이에 끼여 너무 불편한 나머지 마구 몸부림쳤고
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차 앞으로 가서 차 키로 문을 열고 아이를 안전의자에 앉혔다. 그녀는 고개 돌려 뒤에 서 있는 전태윤에게 말했다.“먼저 갈게요.”전태윤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겨우 대답했다.“그래.”그는 하예정의 차 앞부분을 보더니 또다시 차를 바꾸라고 했다.하예정은 이미 차에 앉아 시동을 걸고 도어를 내리고는 그에게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준 첫차에요.”전태윤의 눈빛이 한없이 짙어졌다.그녀는 곧장 출발했고 전태윤은 제자리에 서서 멀어져가는 그녀의 차를 배웅했다.강일구는 경호팀을 거느리고 멀리 서 있을 뿐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도련님과 사모님이 더이상 다투진 않지만 부부 사이가 왠지 멀어지고 삭막해진 것 같았다. 예전 같은 알콩달콩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하예정의 차가 종적을 감춘 후에야 전태윤이 손짓하며 경호원들을 불러왔다.“회사로 돌아가.”그가 나지막이 말하자 강일구가 기사더러 얼른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 전태윤은 롤스로이스에 앉아 경호 차량의 보호를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회사로 돌아갔다.한편 하예정은 곧게 언니네 토스트 가게로 갔다.하예진의 토스트 가게는 인테리어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필요한 물건도 거의 다 사놓았다. 그녀는 식탁과 의자를 내려놓고 깨끗이 청소하면서 개업 날짜만 기다렸다.자영업자들은 개업 날짜를 신중하게 고른다.가게 이름은 ‘하루 토스트’이다. 전혀 우아하지 않고 친근한 이름으로 정했다.이 거리에는 이미 수많은 패스트푸드 가게와 토스트 가게가 있다.하예진이 인테리어 할 때 이 거리의 음식점 주인들이 그녀가 무슨 가게를 열지, 자신들과 경쟁 상대가 되는 건 아닌지 모두 지켜보았다.또 일부 사람들은 진작 그녀를 찾아와 여쭤보았고 그녀도 토스트 가게라고 숨김없이 말해주었다.그 뒤로 토스트 가게 사장님들은 틈만 나면 하예진의 가게로 찾아와 지금 장사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이 거리에 토스트 가게만 반 이상 차지해서 경쟁이 매우 크다고 푸념했다.그때마다 하예진은 가볍게 웃을 뿐 아무 말도
그녀는 테이블 닦는 것을 멈추고 걸레를 들고 나오더니 아들을 안고 차에서 내리는 여동생을 미소 지으며 지켜보았다.“엄마.”주우빈은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아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 하예정은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아무리 예뻐해줘도 엄마랑 더 친하네.”“그야 당연하지. 너랑 제부도 아이를 좋아하니, 하나 낳는 것도 고려해 보는 건 어때? ”하예진은 농담 조로 말하면서 동생의 안색을 살폈는데, 동생이 웃기만 하고 말을 받지 않자 아직 두 부부의 갈등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눈치챘다.“제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부른 거야?”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여동생과 함께 가게로 돌아가며 관심 조로 물었다.언니가 묻자, 하예정은 서둘러 차로 돌아가 서류 봉투를 꺼내 가져왔다. 여기 전태윤의 전 재산이 들어 있다.가게에 들어선 하예정은 인테리어 기사들이 안에 없는 것을 보고 언니에게 물었다.“벌써 끝났어?”“응, 방금 끝났어. 우선 청소부터 하려고, 하면서 더 손댈 곳이 있는지 확인하고, 만약 없으면 내일 임금 계산해 주겠다고 했어.”하예진은 아들을 내려놓고 가게에서 놀게 한 후 여동생에게 물 한 잔을 따라주고 한 테이블에 앉았다.테이블은 몇 번이나 닦아 빛이 날 정도였다.“언니, 지금 기운이 넘치지?”“그럼,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열심히 노력할 거야. 언니의 목표는 이 가게를 관성 곳곳에 여는 거야.”“꼭 그렇게 될 거야.”하예정은 언니에게 서류 봉투를 건네주며 말했다.“이건 태윤 씨가 나에게 주려 했던 건데 내가 거절하자 자기 대신 보관해 달라고 했어. 태윤 씨는 아직도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하예진이 이게 뭐냐고 물으면서 서류 봉투에 들어있던 물건을 꺼내보았는데, 부동산 증명서, 가게와 차 키, 그리고 전씨 그룹의 주식 양도서도 보였다. 전씨 그룹의 주식은 매우 가치가 있는 것이다.“제부가 너한테 이걸 다 주겠다던?”하예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많은 부자는 결혼 전에 혼전
“서로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줘.”하예진은 동생의 손등을 툭툭 치더니 물품들을 다시 서류 봉투에 담아 넣었다.“이렇게 중요한 물건은 언니의 월세방에 놓지 마. 이 건물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안정성은 발렌시아 아파트보다 못할 거야. 이것들을 너와 제부의 집으로 가져가서 금고에 안전하게 넣어놔. 제부의 전 재산인데...”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할머니께 전화를 걸어 이 물건들을 보관해 달라고 해야겠어. 그 집이 더 안전해.”“그래.”“점심은 여기서 같이 먹을래?”“성씨 집에 가서 이모를 찾고 싶어, 아마도 이모 집에서 밥을 먹게 될 것 같아.”“이모는 왜? 이모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친이모이자 성씨 사모님 이경혜는 관성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있다. 자매는 이모를 찾은 후 한 번도 자신이 성씨 사모님의 조카딸이라고 입 밖에 낸 적이 없을 뿐더러 이모의 도움도 전부 사양했다.이경혜의 존재는 자매에게 있어 친척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지, 그녀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도, 변화도 주지 않았다.하예진의 전 시어머니는 찾아올 때마다 멍청한 그녀가 성씨 사모님에게 손을 내밀 줄도 모른다고 한다. 그 돈으로 더 큰 사업에 투자하여도 되는데 말이다.투자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성씨 그룹에 취직하여 월급을 많이 받는 것도 좋은 길이라고 하면서 심지어 주형인에게도 괜찮은 일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한다.하예진은 전 시어머니의 말을 항상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모를 통해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지, 잘 어울릴 수 있는지 한번 보고 싶었서... 지난번에 소현 언니가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려 하는데 나한테 관심이 있냐고 물었어. 그래서 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소현 언니를 따라 그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로 했어.”현재 그녀와 전태윤은 이혼이 불가능했다. 전태윤이 손을 놓지 않는 한 아예 떠날 수가 없었다.이혼할 수 없으니, 용감하게 맞설 수밖에.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녀는 반드시
식단도 잘 조절해서 고단백, 고지방의 음식은 되도록 피하고 있다.지금 그녀의 체중은 이미 75킬로까지 줄었는데 그녀의 목표는 50킬로이니 25킬로를 더 빼야 한다. 계속 견지하면 꼭 표준적인 몸매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몇십 킬로를 감량한 후 그녀는 훨씬 보기 좋아졌다.달리기를 마치고 가게에 돌아왔을 때 뜻밖에도 전남편이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주형인은 차를 가게 문 앞에 세워 놓았는데, 가게 문이 잠겨있어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차에 기대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이따금 두 모금씩 들이켰다.하예진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전남편이 그녀 앞에 나타나는 것이 보기 싫었다.아들을 보러 온 것도 아니고, 우습기 그지없었다.아직 이혼하지 않았을 때, 주형인은 매일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왔는데, 부부는 대화할 기회조차 없었고, 그도 그녀와 교류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하예진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모두 가정에 관한 사소한 일들 뿐이었고, 주형인이 보기에 그런 하찮은 이야기들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그가 이야기하고 싶은 주식이나 프로젝트 등은 이미 직장을 떠난 지 오래된 그녀가 조언을 해줄 수 없는 화제였기에 그는 항상 그들 부부가 공통의 화제가 없다고 하면서 그녀를 보기 귀찮다고 말했다.지금 이혼한 후, 그녀는 스스로 그를 찾아간 적이 한 번도 없지만, 그는 오히려 자주 그녀 앞에 나타나고 있다.“도대체 어디 간 거야?”주형인은 하예진이 돌아온 것을 보고 몸을 곧게 펴더니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문도 잠그고 장사를 어떻게 해? 내 돈이나 다 탕진하지 마, 사업이란 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사람마다 모두 사장질하게?”“뭐가 당신 돈이라는 거야? 내가 쓰는 것은 모두 내 돈이야.”하예진도 그에 맞추어 차가운 표정으로 답했다.“또 무슨 일로 왔어? 지금 이때 당신은 회사에 출근해 있을 시간 아니야? 주형인! 우리는 이미 이혼했으니, 제발 와서 내 평온한 생활 좀 방해하지 마. 당신 와이프가
하예진은 화가 나다 못해 웃음이 새어 나왔다.“입은 비뚤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내가 당신 일자리를 잃게 했어? 당신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그런 증거를 남기지도 않았을 거 아냐. 이건 당신이 스스로 직장을 잃은 것이지 어느 누구도 원망할 자격이 없어.”그녀는 차갑게 말을 이었다.“나도 너무 후회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하고, 당신과 일찍 이혼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돼. 나도 평생 당신과 이혼한 것을 후회하지 않아!”주형인은 하예진을 노려봤다.“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더라도, 전태윤이 손을 쓰는 한 마찬가지로 직장을 잃을 거야! 우린 그래도 한때 부부였는데... 어쩜 그렇게 모질게 나올 수 있어?”이혼할 때, 그는 그녀에게 이혼 후 다시는 그 증거들을 가지고 그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했다. 그녀는 본인이 다시는 그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본인에 하예정 부부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분명히 고의로 그런 것이다.“당신 전태윤이 전씨 가문 도련님이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지? 그의 신분으로 충분히 날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거지?”“태윤 씨의 정체를 내가 어떻게 알겠어? 나같이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가정주부가 그 사람 정체를 무슨 수로 안다고. 내가 모질다고 그러는데, 내가 도대체 뭘 어쨌다는 거야? 이혼은 우리 둘의 일인데 난 당연히 내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만 약속할 수 있지 예정이와 태윤 씨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내가 어떻게 장담하겠어? 당신도 당신의 어머니와 누나가 영원히 날 귀찮게 하지 않을 거라고 보증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주서인을 언급하자 주형인은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누나랑 형부가 설 전에 직장을 잃은 것도 전태윤이 한 짓이지? 분명 전태윤이 한 짓일 거야, 당신을 위해 화풀이를 하려고!”“제부가 날 대신해 화풀이를 해주는 게 무슨 문제야? 화나? 그럼, 태윤 씨한테 가서 따져봐!”“...”그가 어찌 감히 전태윤을 찾아가 따지겠는가?그는 전씨
주형인은 오래전부터 뚱뚱해서 추한 하예진에게 관심이 없어졌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몇십 킬로를 감량해 예전보다 훨씬 예뻐진 그녀를 보며 말을 다시 삼켰다.살이 찌기 전의 하예진은 매우 아름다웠고 모든 면에서 서현주 못지않았다.“현주는 조금 민감해서 그래. 우리는 아무래도 부부였고... 우리가 연락이 오가면 현주가 오해하고 의심하기 마련이야. 당신이 이해해.”만약 하예진이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면...두 여자가 자신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의 마음속은 은근히 기뻐 났다.비록 상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하예진은 오래전부터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여기까지 생각한 주형인은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비록 그가 먼저 그녀를 배신했지만, 그녀가 그에 대한 감정을 내려놓자, 그는 또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는 이혼 후 자신과 서현주의 생활이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바랐고, 하예진은 비참하고 순탄치 않은 생활을 보내길 바랐다.하지만 현실은 하예진이 자신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것이다.“예진아, 난 지금 일자리를 잃었어. 전태윤이 손을 쓴 탓에 새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가 않아, 아니, 구할 수 없을 거야. 어쨌든 우린 몇 년 동안 부부생활을 해왔고 우리 사이에 우빈이도 있는데... 날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 가게에 투자하는 데 얼마를 썼어? 몇백만? 기껏해야 몇천만 정도일 거야. 우리가 이혼할 때, 내가 당신에게 나눠준 돈은 2억을 넘는데 그 나머지 돈, 먼저 나에게 빌려줘 봐. 나와 현주는 지금 결혼식 날짜를 고르고 있는데, 날짜를 고르고 나면 결혼식을 올려야 해, 모든 것이 다 돈이 필요한데 지금 내 손에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그러니 돈 좀 빌려줘. 이제 새 일자리를 구해서 돈을 벌면 바로 갚을게. 우빈이를 봐서라도 꼭 갚을 테니 걱정하지 마.”하예진은 몸을 돌려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 물 한 통을 받아오더니 그 물통을 주형인 앞에 놓고 말했다.“허리를 굽혀 물속 좀 봐봐.”“뭘 보라고...?”
주형인은 차를 몰고 도망가는 내내 끊임없이 하예진을 나쁜 년이라고 욕하면서 그의 서현주는 하예진과 달리 온화하고 이해심이 많다고 곱씹었다. 그는 이혼한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지금 세를 들어 사는 집 아래에 도착하자 익숙한 차 한 대가 보였는데 주형인은 머리가 아파 났다.그 차는 누나의 차였다. 누나가 또 찾아온 것이다.짜증이 나서 머리를 긁적였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그와 서현주가 직업을 잃은 것은 전태윤이 손을 쓴 것이 분명하다.‘누나와 형부가 직업을 잃은 것도 전태윤 때문이 아닐까?'진짜 그런 거라면 주형인이 누나네 부부를 힘들게 한 셈이다.가까이 다가간 주형인의 귀에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렸다.서현주는 주형인과 함께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들 부부는 함께 회사를 떠났지만, 돌아오는 도중 주형인은 그녀를 먼저 차에서 내리게 하면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 혼자 바람을 쐬러 가고 싶다고 하면서.똑같이 기분이 별로였던 서현주는 이해한다는 듯 택시를 타고 먼저 집으로 돌아갔다.그녀는 주형인의 비서로 일하면서 그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을 뿐이 아니라 수입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갑자기 직장을 잃게 되니 욕이 저절로 나왔다.셋방으로 돌아온 후 형님이 임정한을 데리고 온 것을 보고 담담하게 인사를 하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하지만 들어가자마자 엉망진창으로 된 방을 보았다. 그녀의 화장품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립스틱도 부러져 있었으며 화장대에는 각종 스킨케어가 가득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벽, 바닥, 이불에도 립스틱이 가득 발라져 빨갛게 물들어져 있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어쩔 줄 몰랐다.“어머니!”서현주가 소리를 지르자, 김은희는 얼른 다가와 물었다.“왜 그래? 그렇게 큰 소리로 부르면서 말이야. 나 아직 그 정도로 귀 멀지 않았어.”“어머니, 제 방 좀 보세요. 정한이가 이렇게 만든 거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정한이는 장난이 너무 심해 걔가 오면 저와 형인 씨 방에 들여보내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