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압적으로 아들을 단속하여 더이상 하예정을 찾아가 집착하지 못하게 했다.김진우는 지금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아픔에서 벗어나면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상처를 낫게 해주는 가장 좋은 약이니까.“대체 무슨 일인데?”김종헌은 평소 업무가 바빠 아들이 하예정을 좋아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심미란도 본인이 충분히 아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김진우가 좀처럼 마음을 접지 못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당신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김종헌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다 큰 성인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게 뭐? 남들은 열몇 살부터 연애한다는데 진우는 줄곧 아무 말도 없어서 괜히 애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야? 집안 조건이 별로인가 봐?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말리는 이유가 없겠는데.”심미란이 방금 한 말에 김종헌은 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지금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썩 내키지 않았다.심미란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당신도 아는 여자애예요. 심지어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어요.”김종헌이 물었다.“내가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다고? 진우는 평소에 효진이랑 자주 함께 있는데... 그 자식 설마 제 사촌 누나를 좋아한 건 아니지? 망할 놈, 공부했다는 녀석이 근친결혼은 안 된다는 걸 몰라?”“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진우는 효진이를 좋아한 게 아니라 효진의 절친 예정이를 좋아해요.”김종헌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심미란은 계속 말을 이었다.“예정이가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직 싱글이라고 해도 진우랑은 안 어울려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고 예정이는 또 어떤 출신인데요? 걔한테 이경혜라는 이모가 있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이모 조카 사이일 뿐 아무 소용 없어요.”이경혜도 친딸이 있으니까.“게다가 예정이는 진우를 안 좋아해요. 줄곧 남동생으로 여겼는데 진우가 저를 짝사랑한다는 걸
전태윤은 곧게 호텔 맨 위층의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몇 분 후, 김종헌 부부도 그제야 경호팀의 안내 하에 노크하고 방에 들어갔다.전태윤은 그들에게 앉으라고 청했다.“고마워요, 대표님.”부부는 고마움을 표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후에도 둘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전태윤이 왜 갑자기 만나자고 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전태윤은 이 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김 대표, 오늘 여기로 불러온 이유는 댁 아드님을 잘 단속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더는 우리 와이프한테 집착하지 말라고 해주세요.”김종헌 부부는 돌연 낯빛이 어두워졌다.심미란은 말까지 더듬었다.“대표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우리 진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걔가 무슨 엄두로 대표님 아내분을 집착하겠어요?”전씨 사모님의 신분은 타이틀만으로도 위압감이 넘치는데 누가 감히 그녀를 넘본다는 말인가?김종헌도 말했다.“맞아요. 우리 진우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걔는 절대 그럴 리가... 저기요 대표님, 실례지만 아내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전태윤의 기혼 사실은 상류층 사람들과 전씨 그룹 직원들만 알고 있다.다만 상류층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김종헌은 일단 제 아들 진우가 전씨 그룹 사모님을 집착할 배짱이 없다고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진우가 좋아하는 사람은 하예정이었다. 김종헌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심미란도 뒤늦게 반응하며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의 아내란 말인가?이럴 수가!전태윤은 특별한 날에 하예정에게 제 신분을 솔직하게 밝히기로 계획하고 있어 김종헌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무방했다.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심미란 씨가 우리 아내 예정이랑 아주 잘 아는 사이죠.”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이었다!심미란의 낯빛이 확 돌
“전 대표님, 진우는 이미 오랫동안 예정이를 안 찾아갔어요.”심미란이 말했다.“예정이가 대표님 아내분인 줄 전혀 몰랐어요. 다만 몇 개월 전에 이미 결혼한 사실은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진우가 집착한 건 엄연한 잘못이에요. 저도 그래서 진우더러 예정의 서점도 찾아가지 말고 전화도 하지 말라고 강하게 단속했어요.”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았다.“오늘 밤에 댁 아드님이 또 새로운 번호로 제 와이프한테 전화했어요. 나도 알아요. 진우 씨랑 예정이가 십여 년간 알고 지내서 내가 예정이랑 알고 지낸 시간보다 길다는 것을. 다만 예정이는 날 선택했고 이젠 내 아내예요. 더이상 딴 사람들이 우리 예정이를 넘보는 걸 용납할 수 없어요. 예정이도 단호하게 거절했고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고 딱 잘라서 말했어요. 진우 씨를 늘 동생으로만 봐왔다고 얘기했는데 진우 씨는 여전히 갖은 수법으로 예정이를 집착했죠. 난 예정이 믿어요. 하지만 진우 씨가 계속 예정이한테 집착하는 건 더이상 지켜볼 수 없어요.”김종헌이 재빨리 그에게 맹세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대표님. 제가 돌아가서 반드시 아들 교육 단단히 하겠습니다. 대표님 아내분을 집착하는 일은 더이상 없을 겁니다. 진우 걔가 아마 예정이가 대표님 아내분인 걸 몰라서 그럴 겁니다. 만약 알았더라면 절대 예정이를 건드릴 엄두도 못 낼 거예요.”전태윤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나랑 예정이는 혼인 신고한 지도 3개월이 지났어요. 우린 비록 비밀 결혼을 했지만 예정이는 효진 씨한테 결혼 사실을 숨기지 않았어요. 김진우 씨도 예정이가 유부녀란 걸 진작 알았을 텐데 전에는 고백하지 않다가 하필 예정이가 결혼한 후에 고백하다니, 이건 분명 잘못된 길에 들어선 겁니다. 예정이가 내 와이프가 아니면 김진우 씨가 계속 집착해도 되나요? 제삼자가 되어 남의 결혼생활을 기어코 파탄 내도 된다는 말씀입니까?”김종헌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다 진우 잘못이에요. 그리고 제가 자식 교육을 그르친 탓입니다. 전 대표님, 정말 죄송해요.”전태윤은
“여보, 내일 다시 얘기해요.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요. 당신 이러다가 우리 딸 깬다고요.”심미란은 남편이 더는 문을 걷어차지 못 하게 말렸다.“진우가 기분이 나빠서 방에서 술을 좀 마신 것 같아요. 애가 취해서 문 두드리는 소리도 못 듣잖아요.”김진우는 요즘 방에서 만취할 정도로 술 마시기가 일쑤였다. 그의 방엔 작은 바가 있는데 아빠가 평소 아끼는 술을 전부 제 방으로 옮겨왔다.우울한 기분을 술로 달래고 다음 날 회사에서 넋이 나간 채로 있다 보니 최근에 업무상에 실수가 남발한다.김종헌은 화가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아내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방에 돌아간 후 심미란이 물었다.“여보, 전 대표가 우리한테 예정이가 아내라고 말했는데 우리가 대신 비밀로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직 예정이랑 본인의 관계를 대외적으로 완전히 공개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그녀의 조카는 하예정과 절친이지만 전태윤의 진짜 신분을 모른다.김종헌은 방안의 소파에 앉아 한참 침묵한 후 대답했다.“예정이랑 전 대표가 비밀 결혼했다고 했잖아. 전 대표가 아직 완전히 공개하지 않았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어도 일단 외부에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 괜히 또 우릴 찾아와 번거롭게 할지도 모르잖아. 그럼 그렇지, 전씨 그룹에서 다짜고짜 협력을 중단할 리가 없는데. 내가 전씨 그룹과 협력하려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공들였다고. 협력을 성사한 후에도 늘 방심하지 않았어. 우리 제품에 차질이 생길까 봐 일말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단 말이야. 가끔 연회에서 전 대표를 마주쳐도 일부러 찾아가 아부하지 않았어. 심기를 건드릴 일은 더더욱 없었고. 전 대표가 차갑고 냉정한 분이어도 아무 이유 없이 우릴 난처하게 굴진 않아. 이치에 맞게 행동하시거든. 모든 게 진우 때문이었어. 그 자식 진작 예정이를 좋아했지? 예정이가 초고속 결혼하기 전에는 고백할 생각도 없다가 결혼하고 나니 고백하고 집착해? 그게 대체 무슨 소용이라고?”“어휴.”심미란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게요. 무슨 소용이라고.
“설 후에 H시의 계열사로 보내서 몇 년간 일하면서 경험 쌓게 해야겠어. 예정이를 철저하게 내려놓고 좀 더 성숙해진 후에 다시 데려올 거야. 그리고 또 2년 좌우 단련해서 대임을 맡을 수 있으면 그땐 바로 김씨 그룹을 전수할 생각이야. 만약 헤어나오지 못하고 대임을 맡을 수 없다면 우리 김씨 그룹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상속자를 바꾸는 수밖에 없어.”김종헌은 제 아들이 김씨 그룹의 후계자가 되길 엄청 바라고 있지만 전제는 아들이 대임을 맡을 그릇이 돼야 한다. 만약 김진우가 앞날보다 사랑을 더 중시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조카 중에서 새로운 후계자를 물색해야만 한다.심미란의 낯빛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입술을 앙다물다가 말을 꺼냈다.“정월 초나흘에 바로 보내요. 그리고 용돈도 전부 끊어요. 거기서 출근하거든 버는 만큼 쓰게 해야죠. 애가 안일한 삶에 너무 적응한 것 같아요. 예정이가 전씨 그룹 사모님이란 사실도 정월 초사흘에 진우한테 알려줍시다. 그럼 마음 접고 H시에 갈 거예요.”김종헌은 아내의 제안이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H시의 계열사에서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해야겠어. 그쪽 담당자한테 잘 돌봐달라고 하면 별일 없을 거야. 하지만 더는 안일한 삶을 살 수도 없겠지. 은행카드 전부 정지시키고 H시에 가면 다시 은행카드를 발급받아 월급으로 살아남게 해야겠어.”그들 부부는 김진우가 하예정을 향한 사랑을 전부 내려놓고 김씨 그룹의 중임을 맡을 후계자가 되길 바라며 독하게 마음먹었다.김진우는 부모님이 그를 저 멀리 H시로 보낼 거란 계획을 전혀 몰랐고 하예정도 아무것도 모른 채 깊게 잠들었다.옆에 핫팩처럼 따뜻한 물체가 있어 품에 꼭 끌어안고 단잠에 빠졌다.꿈에서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는 건지 그녀는 가끔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하예정은 전태윤이 옆에 누워있는 걸 발견하곤 한 손으로 머리를 지탱하며 곤히 잠든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다만 머릿속에 감도는 건 꿈에서 본 맛있는 음식이었다.그녀는 꿈에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을
하예정이 아침을 다 차렸지만 전태윤은 여전히 침실에서 나오지 않았다.그녀는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는 남편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 내밀어 그의 콧구멍에 살짝 갖다 대고 이마도 짚어보았다. 전태윤은 열이 나는 것도 아니고 숨도 잘 쉬고 있었다.“설마 오늘 아침에 돌아온 거 아니야? 왜 이렇게 깨질 않아?”하예정은 구시렁댔지만 그를 깨우지 않았다. 그녀는 부부의 옷을 정리하며 그가 깨나길 기다렸다. 이따가 아침 먹고 곧바로 출발하면 된다.“띠리링...”하예진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언니.”“제부랑 이미 출발했어?”“아니, 태윤 씨 아직 자고 있어. 이따가 깨나서 아침 먹고 출발하려고. 무슨 일이야 언니?”하예진이 대답했다.“그럼 집에서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 너희 부부한테 설 용돈 준비했는데 까먹고 못 줬네.”“괜찮아 언니, 밖에 비 오고 바람 불어서 엄청 추워. 차도 없고 숙희 아주머니도 없는데 우빈이 데리고 나왔다가 애가 감기 걸리면 어떡해? 진짜 주고 싶으면 설날 아침에 나랑 태윤 씨 언니한테 전화해서 설 인사할 때, 그때 주면 돼. 그냥 인사 치레잖아.”관성에서 설을 쇨 때 용돈 주는 건 한해의 좋은 시작을 의미한다. 액수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서 보통 2천 원에서 4천 원 사이로 돈 봉투에 담아 준다. 가까운 사이여도 2만 원에서 4만 원 정도로 준다. 관성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 대부분 이 금액으로 주고 있다. 세뱃돈 액수는 늘 그렇듯 많은 편이 아니다.하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그래 그럼.”“언니, 진짜 우리랑 함께 안 갈 거야?”“응, 난 우빈이랑 함께 보내면 돼. 이젠 대가족을 위해 음식을 차릴 필요도 없고 시중들 필요가 없어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 토스트 가게도 개업하지 않아서 이참에 우빈이 데리고 관성에서 실컷 놀아야겠어.”주형인에게 시집간 이후로 그녀는 거의 여행 가본 적이 없다.매일 남편과 아들 주변을 맴돌고 명절 때에는 남편을 따라 시댁에 가서 시댁 식구들의 하루 세끼를 차려야 했다.매년
“얼른 가서 씻어요. 아침 다 차려놨으니 씻고 나와서 밥 먹고 출발해요. 거리가 멀다면서요, 우리 일찍 출발해요.”“뽀뽀해줘.”“왜 내가 해줘야 해요? 태윤 씨가 해주면 안 돼요?”전태윤은 웃으며 그녀를 돌려세우고 머리를 살짝 숙여 그녀의 빨간 입술을 탐했다.다만 하예정이 작은 손으로 그의 입술을 가로막았다.“씻고 나와서 뽀뽀해요.”하예정은 말하면서 그를 밀쳐내고는 뒤돌아서서 캐리어 지퍼를 잠갔다.전태윤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아내에게 더럽다고 미움을 받았다.“씻을 때 수염도 깎아요. 볼 찌를라.”하예정은 캐리어를 끌고 문밖을 나섰다.그녀는 꽃에 물을 주고 반려동물 세 마리까지 전부 챙겼다.반려동물들도 잠시 후 언니네 집으로 보내서 며칠 동안 언니에게 맡기기로 했다.“여보, 나 왔어.”전태윤은 다 씻고 수염도 깔끔하게 깎은 후 방에 돌아와 사랑하는 아내를 불렀다.“얼른 와, 내가 뽀뽀하게.”하예정은 주방에서 다 만든 음식을 들고 나왔다.전태윤은 그녀에게 바짝 다가갔다. 그녀는 치킨 두 마리가 담긴 그릇을 전태윤에게 건넸다. 전태윤은 그릇을 건네받고 재빨리 그녀 볼에 입 맞추고 나서야 흡족한 듯 식탁 앞에 마주 앉았다.“오늘은 웬일로 치킨?”하예정이 자리에 앉으며 가볍게 웃었다.“어젯밤에 누가 나한테 밥 사주는 꿈을 꿨거든요. 꿈에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밤새 먹다가 나중에 닭다리 두 개가 남아서 태윤 씨한테 먹이려고 포장하고 싶었는데 도통 잡히질 않는 거예요. 깨고 보니 꿈이더라고요. 그래도 태윤 씨한테 치킨 먹이고 싶어서 사 왔어요.”전태윤은 실소를 터트렸다.‘먹보가 따로 없다니까. 꿈에서조차 먹을 생각이잖아.’“난 닭날개를 좋아해서 저 두 개는 내 거예요. 여보, 일회용 장갑 줄래요? 장갑 끼고 먹으면 손 안 더럽혀서 편해요.”전태윤이 미소를 지었다.“네, 당신 남편께서 달갑게 서비스해드릴게요.”그는 하예정을 도와 일회용 장갑을 가져왔다.“어젯밤엔 대체 어디 갔다 왔어요? 나 처음엔 악몽 꾸고 잠에서 깼는데
하예정은 치킨을 먹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내가 태윤 씨한테 뭐 하나만 숨겨도 가족으로 여기지 않는다며 버럭 화내더니 정작 태윤 씨 좀 봐봐요. 소 이사님이 술 마시러 가자고 불러도 나한테 숨기고, 그래서 악몽까지 꾼 거잖아요.”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다 내 잘못이야. 다음에 소 이사가 또 불러내면 그땐 같이 가. 네가 대신 내 술을 막아주면 그 사람들도 뭐라 하지 못할 거야.”“그럼 다들 태윤 씨가 아내를 무서워하는 팔불출이라고 생각하겠죠.”“그러라고 하지 뭐. 자기들은 솔로라서 팔불출이 되고 싶어도 자격 없으면서.”하예정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그녀는 남편이 건강을 해치는 일만 안 하면 더 간섭하지 않는다.배불리 먹은 후 하예정은 다시 한번 짐 정리를 체크하며 빠트린 게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문밖을 나섰다.그들은 우선 반려동물 세 마리와 차 키까지 하예진에게 갖다 주었다.하예진은 동생 부부를 보더니 그제야 준비했던 용돈을 건넸다.전태윤은 직접 운전하여 아내와 함께 본가로 설 쇠러 갔다.전씨 고택은 조상들이 남겨주신 거라 고전적인 느낌이 물씬 난다고 진작 전해 들었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보니 그녀는 여전히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건 조선 시대에서도 잘 산다는 대갓집 기준의 으리으리한 집이었다.고층 건물 없이 오로지 옛스러운 인테리어로 되어있었고 담장도 매우 높게 쌓아 올렸다. 사방에 CCTV를 설치해 안전 시스템이 매우 철저하게 되어있었다.저택 안에는 정자와 누각이 있었고 굽이굽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가산과 연못이 한눈에 들어왔다. 저택 안에 들어온 순간 마치 시공간을 초월하여 조선 시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태윤 씨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엄연한 도련님이었을 거예요.”전태윤은 아내와 함께 자가의 옛 저택을 거닐며 익숙한 환경을 감상했다. 그는 하예정의 말에 저도 몰래 웃음이 새어 나왔다.“내가 만약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널 만나지 못했을 거야.”그는 지금도 엄연한 도련님이다.전태윤을 협조하기 위해 전
소지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참, 제가 두 박스의 물건을 배송했는데 받으셨나요? 제가 배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오늘 받아보실 수 있다고 하던데.”소지훈은 관성의 특산품을 많이 샀다. 그중 정수호 부부의 영양제도 들어있었다.물론 수신자는 정윤하의 이름으로 적어놓았다.정윤하는 그의 운명적인 여신이기 때문에 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그리고 먼 곳에서 왔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정윤하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택배가 있으면 아마 집에 배송될 거에요. 우리 엄마가 종일 집에 있으니까 택배를 받으실 거예요. 지훈 씨, 무슨 물건을 보냈어요? 너무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관성의 특산품들이에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가서 준비한 특산품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가 좀 더 사서 이틀 전에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럼 오늘 제가 도착하면 택배도 도착할 수 있잖아요.”“저의 부모님은 윤하 씨가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저를 호되게 꾸지람하셨어요. 감사할 줄 모른다면서요. 은혜는 항상 몇 배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저에게 보답했는걸요. 지난번에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시합에 갔을 때 제가 돈 한 푼도 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나가서 재미있는 것도 놀게 해줬잖아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전 대표님 결혼식에 데려간 것도 모두 저에 대한 보답이세요.”“그래도 부족하죠. 보답은 많이 해야 해요.”몸으로 보답을 허락해 주면 더 좋지만 말이다.“지훈 씨 부모님들 너무 놓은 분들이시네요.”정윤하는 소균성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 열정적이고 자상한 느낌을 받아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소균성 부부의 소질은 매우 좋고 말씨도 매우 부드러웠다. 최민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본 정윤하는 최민주가 그녀를
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아저씨 싸움 실력이 너무 좋기 때문에 경호원이 필요 없다고 봐요. 그날 밤은 제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제가 그날 밤 아저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아저씨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나쁜 사람들은 해결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빨리 참견해서 오히려 아저씨 실력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진 거죠. 저도 아저씨의 실력을 볼 기회가 줄어든 거죠.”그러자 소지훈은 재빨리 말했다.“제가 무술 할 줄 아는 건 맞지만 윤하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날 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저 혼자서는 분명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윤하 씨만큼 대단하지 않아요.”“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지만 저는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은 몸집이 커서 다른 사람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정도뿐이지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단지 몇몇 건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실력이에요.”“만약 전업적인 사람들을 만난다면 전혀 상대되지 않을걸요. 게다가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윤하 씨와 같은 진정한 고수가 필요해요.”소지훈은 자기 경호원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었다.어차피 소지훈의 부하들이 곁에 없기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해도 부하들이 변명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모두 소지훈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감히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소지훈은 운명적인 여신에게 구애하기 위해 그의 경호원들을 정윤하에게 매를 맞고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했다.그들은 지금은 회복해서 퇴원했지만, 앞으로는 정윤하가 알아볼까 봐 그녀를 피해 다녀야 했다.정윤하가 말했다.“관성의 안전 상황은 이미 매우 좋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사고는 조사해 보셨어요? 누군가 일부러 아저씨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린 것 같아요.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경호원이 필요 없는데 경호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소지훈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어르신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잔소리도 많아요. 아버지들도 다 똑같으니 저의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의 아버지를 보면 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실까 봐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숨어다녀요.”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소지훈은 차를 운전하려고 했는데 정윤하가 직접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하 씨가 운전하려고요?”“네,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가 길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 차가 평범한 차라서 아저씨가 차를 몰 때 습관이 안 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차 기술도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소지훈은 차를 에돌아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저는 어떠한 차도 다 몰아봤어요. 예전에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자전거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도 다 타봤어요. 지금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저의 체면 때문에 몰고 다니는 것뿐이죠.”소지훈은 저번에 정윤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차가 아직도 차 대출을 갚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그는 진짜 신분을 말했기 때문에 더는 정윤하를 속이기 어려웠다.정윤하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는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니 외출할 때는 반드시 좋은 차를 운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도 외출할 때 좋은 차를 운전하시거든요. 그러나 평소에는 2000만 원대 되는 차를 몰고 다니세요. 제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차는 2400만 원밖에 안 돼요. 물론 제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 더 비싼 차를 구매할 수 없지만요.”정윤하의 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합 도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여 번 돈으로 차를 샀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지난번에 학생들을 데리고 관성에 가서 무술 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윤하는 사비를 털어 관성 호텔에 주숙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은 선물도 많이 샀다.하여 얼마 되지 않은 적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정윤하는 지금 다시 저축하여 몇 년 후에 집을 한 채 사서 대출하
정윤하가 웃으며 캐리어를 들어주려고 하자 소지훈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내 캐리어에는 옷 몇 벌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아요. 도와줄 필요 없어요. 게다가 저도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어떻게 윤하 씨를 제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있겠어요?”“멀리서 오셨으니 손님이시잖아요. 소시지 두 개도 남겼는데 아저씨께서 매운 거 싫어하시니 제가 안 매운 거 남겨놨어요. 제 소시지는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는데 엄청 매워요.”소지훈은 그녀가 건네준 소시지 두 개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건네받아 하나를 꺼내 한입 물었다.정윤하는 그녀가 산 다른 간식들을 모두 소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소지훈이 그 봉지를 받을 때 정윤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다 먹지 않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소지훈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소지훈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정윤하는 그를 대신해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의 캐리어를 끌도록 놔두었다.정윤하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었고 소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정윤하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를 다 먹자 소지훈이 또 다른 간식을 건네주었다.주차장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그 간식들을 다 먹었다.정윤하는 입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지훈을 도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정말 잘 먹었어요. 평소에는 우리 엄마가 밖에서 파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거든요. 위생적이지 못하다면서요. 아주 가끔 먹어도 자꾸 잔소리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간식들이 정말 맛있거든요.”“가끔 한두 번은 괜찮아요. 자주 먹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로 좋아하면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드세요. 그러면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잖아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제 요리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께서 그런 간식들을 맛있게 잘하세요. 그런데 간식들을 해주기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