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조 비서가 건넨 쇼핑백을 받았다. 안에 빨간 반지 케이스가 두 개 있었는데 전태윤은 그중 하나를 꺼냈다.눈치 빠른 소정남은 어르신이 간직했던 좋은 물건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잘 보이게 하려고 아주 물심양면으로 돕고 있었다.소정남은 이토록 혼사를 걱정해주는 할머니가 있는 전태윤이 부러웠다. 게다가 할머니는 전씨 가문의 가장 높은 어른이라 다들 할머니를 공경했다. 할머니가 전태윤과 하예정의 초고속 결혼을 진행한 걸 막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소정남도 이런 할머니가 있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그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다.“나도 그만 가서 일 볼게.”이 자리에 계속 있었다간 샘만 더 날 것 같았다. 어떤 건 부럽다고 다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소정남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 비서와 함께 대표 사무실을 나섰다.전태윤은 할머니가 보낸 다이아몬드 반지 두 개를 보며 휴대 전화를 꺼내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할머니, 이 다이아몬드 반지는 제가 돈으로 살게요. 우리 결혼반지인데 할머니한테서 공짜로 가질 순 없어요.”그러자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마음대로 해. 내 손주니까 싸게 줄게. 반지 하나당 200원씩, 총 400원 주면 돼.”“할머니!”전태윤은 어찌할 방법이 없다는 듯이 말했다.“예정이가 가격을 알았으면 길거리에서 대충 산 줄로 알겠어요.”할머니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알았어. 그럼 네가 알아서 줘. 네가 주는 대로 받을게.”손자가 주는 돈을 나중에 증조할머니가 된 후에 상을 주는 형식으로 하예정에게 다시 주면 된다. 돈은 여전히 그들 부부의 것이나 다름없었다.“고마워요, 할머니.”“이건 또 무슨 뜻일까?”“무슨 뜻이라니요? 그냥 고맙다고요.”할머니는 만족스러운 듯 흐뭇하게 전화를 끊었다. 기분이 좋을 땐 뭘 하든 화이팅이 넘쳤고 시간도 특히 더 빨리 지나갔다. 방금 점심을 먹은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사이에 저녁 시간이 되었다.주형인은 저녁 약속까지 미루고 홀로 운전하여 본가로 왔다.
주경진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할지 대충 눈치챘다. 딱 봐도 하예진과의 이혼 얘기를 하려는 듯싶었다.김은희는 수저를 가져온 후 밥그릇에 밥도 떠주었다.“미리 얘기하지 않아서 네 밥 안 했어. 한 그릇 남은 걸 원래는 개한테 주려고 했는데. 이거 먹고 배 안 부르면 국수도 한 그릇 만들어줄게.”“한 그릇이면 돼.”집안에 들어와서부터 김은희는 주형인에게 수저도 가져다주고 밥도 떠주었다. 주형인은 어머니의 이런 보살핌을 당연하게 여겼다.저녁을 배불리 먹은 후 주형인은 노란 서류 봉투를 아버지에게 건넸다.“이게 뭐야?”주경진은 의아한 얼굴로 서류 봉투를 받고는 안에서 서류와 사진을 꺼냈다. 김은희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짝 다가왔다. 내용을 훑어보던 부부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형인아, 너 뒷돈을 이렇게나 많이 챙겼어?”김은희는 아들에게 이렇게나 많은 돈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주경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들에게 물었다.“예진이가 준 거야?”주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걔는 어떡할 거래?”“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예진이는 정확히 알고 있어. 이 증거로 이혼 소송을 제기하면 나중에 재산 분할할 때 절반 나눠줘야 해.”주경진의 낯빛이 말이 아니게 어두웠다. 아들에게 정확히 얼마 있는지는 잘 알지 못했지만 진작부터 하예진 몰래 돈을 모으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절반이나 줘야 한다고?”김은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거의 2억 가까이 되잖아?”“아마 2억이 넘을 거야.”재산을 나눠줄 생각에 김은희는 마음이 쓰라렸다.“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4천만 준다고 할걸.”그러고는 아들의 등짝을 탁 쳤다.“이런 엄청난 일을 왜 우리한테 얘기 안 했어? 너한테 그 많은 돈이 있었다는 걸 알았더라면 예진이한테 4천만 원을 주겠다고 했을 텐데. 그러면 손해도 적잖아.”“엄마, 소용없어. 예진이 절대 손해 볼 사람이 아니야. 걔가 예전에 무슨 일 했었는지 잊었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도 더 독한 여자야.”부모님이 그 증거들을 다 확인한
“그건 애들끼리 싸우다가 일어난 예상치 못한 사고야. 우빈이 우리한테 맡기면 정말로 잘 챙길게. 다시는 괴롭힘 당하지 않게 할게.”김은희는 마음이 아렸다.“형인아, 이혼하지 마. 엄마 감당 못 하겠어.”아이들의 싸움이 손자의 양육권 문제까지 영향을 미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혼 소송을 벌이는 집안을 본 적이 없었다. 지인 중에 이혼한 사람이 있긴 했지만 모두 여자가 짐을 챙기고 나갔고 집과 차, 그리고 아이까지 전부 남자가 차지했다.“애들끼리 싸운 건 맞지만 우빈이가 우리랑 함께 있으면 우빈이 성장에 불리하다는 것도 보여줬잖아.”주형인은 인내심 있게 부모님을 설득했다.“엄마, 나 이젠 예진이를 사랑하지 않아. 예진이도 나한테 완전히 마음이 떠났고. 억지로 붙잡고 있어봤자 서로에게 고통만 줄뿐이야. 게다가 예진이도 이대로 대충 사는 거 바라지 않아. 아무튼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은 피하지 못해. 나도 이미 마음을 정했고 엄마 아빠한테 알려주려 온 거야.”서현주의 말대로 이건 그와 하예진의 일이기에 당사자들이 결정하고 부모에게는 통보만 하면 되었다.김은희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기세로 남편을 툭툭 쳤다.“여보, 당신이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안 되겠어요, 서인이한테 전화해서 형인이 설득 좀 하라고 해야겠어요.”그녀가 딸에게 전화하려던 그때 남편이 말렸다.“서인이한테 얘기해봤자 일만 더 복잡해져.”주경진이 언짢은 기색으로 아들에게 물었다.“이혼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어? 저 사진들이 그렇게나 너한테 불리해?”그는 누구보다 자기 아들을 잘 알고 있었다. 협박을 받은 게 아니라면 아들은 절대 하예진의 말대로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아빠, 예진이가 이 증거들을 우리 대표님한테 주기라도 하면 난 끝장이야. 결혼 생활을 끝내고 내 앞날을 지키는 게 더 낫지 않겠어?”입을 꾹 다문 주경진과 달리 김은희는 옆에서 욕설을 퍼부었다.“예진이 너무 한 거 아니야? 네 앞날을 망쳐서 걔한테 뭐가 좋을 게 있다고. 우리한테 당한 거
김은희는 이혼 합의서를 다시 여러 번 확인했다. 하예진에게 줘야 하는 액수를 볼 때마다 너무도 아까웠다.“절반 나눈다고 해도 이 액수는 아니지 않아?”“집과 차는 예진이가 포기했어도 따로 위자료를 줘야 해. 그것까지 합하면 그 금액이 맞아.”김은희가 말했다.“그럼 집 인테리어 비용은?”주형인이 답했다.“그건 포함하지 않았어. 예진이한테 인테리어 비용은 안 돌려준다고 했거든.”김은희도 마음이 살짝 편해진 눈치였다.“인테리어 비용만 몇천만 원이 들었는데 너한테 돌려달라고 하지 않은 걸 보면 우리도 그리 밑지는 건 아니네.”그래도 아까보단 덜 아까웠다.“형인아, 그나저나 예진이는 이 증거들을 어떻게 모았대?”주경진은 며느리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다.“혹시 예진이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는 거 아니야?”“물어봤었는데 대답하지 않더라고. 대체 누가 도와줬는지 나도 몰라. 이 정도로 찾아내는 사람이라면 절대 만만한 사람이 아닐 거야. 나한테도 위험한 인물이라서 어쩔 수 없이 타협했어.”김은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혹시 하예정네 부부가 도와준 거 아닐까?”“우빈이한테 일이 생겼을 때까지만 해도 예진이는 이 증거들을 갖고 있지 않았어. 그 말인즉슨 고작 며칠 사이에 이 증거들을 모았다는 뜻이야. 처제 시댁에 사람은 많지만 다 일반인이라 그럴만한 능력이 안 돼. 엄마, 걱정하지 마. 우리가 예진이 요구만 들어주면 아무 문제 없어. 예진이도 이혼 후에 나한테 복수 같은 거 안 하기로 약속했어.”주경진과 김은희는 또다시 침묵했다. 주형인은 시간을 확인하더니 부모님에게 말했다.“아빠, 엄마, 내일 출근해야 해서 이만 갈게. 오후에 휴가 내서 이혼 절차 밟으러 가야 해.”부모님이 여전히 아무 말이 없자 주형인은 잠깐 앉아있다가 집을 나섰다.주형인이 나간 후 김은희가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그냥 이대로 이혼하게 놔둘 거예요? 이혼 안 시키면 안 돼요?”이혼하지 않으면 돈도 나눠줄 필요 없고 손자도 여전히 그들의 손자이며 아들과 며느
“서인이 요즘 회사 일이 잘 안 풀린다는데요? 회사에서 줄곧 잘나갔잖아요. 대체 무슨 일이죠?”김은희는 입으로 중얼거리면서 바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서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나도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자꾸만 일부러 내 흠을 잡는 것 같고 종일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엄마, 형인이 이혼하겠다면 그냥 이혼하게 놔둬. 어차피 엄마 아들 훌륭하잖아, 재혼 못 할 걱정은 없어.”“예진이가 어디서 증거를 모았는지 네 동생한테 엄청 불리해. 협박까지 당해서 네 동생이 하는 수 없이 걔 모든 조건을 들어주기로 했어. 이혼하면 2억 원 넘게 줘야 하고 우빈이 양육권도 예진이한테 넘어갈 뿐만 아니라 매달 우빈이 양육비를 60만 원씩 줘야 해.”“형인이한테 돈이 그렇게나 많았어?”주서인마저 처음 듣는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형인이가 예전부터 재산을 빼돌린 증거를 예진이가 갖고 있어. 됐어, 너 기분도 안 좋고 일도 잘 안 풀리는데 같이 안 가도 돼. 내일 아침 나랑 네 아빠 예진이네 자매를 찾아가서 얘기해볼게.”주서인이 말했다.“엄마, 차라리 하예정을 찾아가. 하예정을 설득하면 동서를 설득한 거나 마찬가지야.”“엄마도 그렇게 생각해.”두 모녀는 한참 동안 통화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퇴근 후 하예정은 먼저 언니네 집에 가서 주씨 가문을 나온 후 머무를 곳을 상의했다. 역시 그녀의 예상대로 하예진은 동생네 집에서 지내지 않으려 했다.“형인 씨가 돈만 많이 주면 너희 집에서 안 살아도 돼. 일단 월세를 구한 다음 집 보러 다니다가 대출해서 작은 집을 살 거야. 그리고 노씨 그룹에서 계속 일할 수 있으면 하고 정 안 되면 사직해서 나머지 돈으로 조식 식당 같은 거 차릴 생각이야.”하예정은 그녀를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언니, 만약 돈이 부족하면 나한테 말해. 급한 돈은 내가 빌려줄게.”“걱정하지 마. 부족하면 너한테 빌려달라고 할게.”하예정은 언니 품에 안겨있는 조카를 어루만졌다.“이모.”“이모가
휴대 전화도 침대에 떨어진 걸 보니 기다리긴 했지만 자면서 기다리는 격이 돼버렸다.기대에 부풀었던 그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할머니에게서 산 다이아몬드 반지를 오늘 저녁에 하예정에게 끼워줄 생각이었지만 그녀는 깊이 잠들어버렸다.전태윤은 침대 옆에 앉아 하예정의 얼굴을 어루만졌다.“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자네.”그러고는 상체를 숙여 하예정의 볼에 입맞춤했다가 입술에도 키스한 후 그녀의 휴대 전화를 침대 머리맡 서랍장 위에 올려놓았다.비록 아내가 잠이 들긴 했지만 그의 방에서 기다린 것이라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이튿날 아침 잠에서 깬 하예정은 문득 눈앞에 나타난 꽃다발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꽃다발 뒤에는 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있었다.하예정은 두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눈앞의 남자가 전태윤인 걸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나 앉더니 생긋 웃었다.“왔어요?”“여보, 굿모닝.”‘굿모닝?’“벌써 날이 밝았어요? 날 밝을 때까지 야근한 거예요?”“아니, 어젯밤에 들어왔어. 날 기다리겠다고 하더니 먼저 쿨쿨 자더라?”하예정은 민망한 웃음을 지으며 예쁜 꽃다발을 받았다.“꽃가게가 참 일찍 오픈하네요?”“내가 사고 싶으면 언제든지 살 수 있어.”그녀가 꽃다발을 받자 전태윤은 상체를 숙이고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을 그윽하게 쳐다보면서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모닝 키스라도 해줘야 하지 않아?”그녀에게 선물한 꽃은 본가의 양 집사에게 전화하여 본가의 정원에서 가장 예쁜 꽃을 잘라서 포장하여 전용차로 보내달라고 한 것이었다.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꽃다발을 받은 하예정은 전태윤의 정성과 낭만적인 모습에 감동하여 모닝 키스를 아낌없이 해주었다.“예정아.”“하고 싶은 얘기 있으면 해요.”하예정은 예쁜 꽃을 마음껏 감상했다.“어느 꽃가게에서 샀어요? 참 예쁘게도 피었네요. 내가 발코니에서 기르는 것보다 훨씬 더 예뻐요.”“내가 특별히 꽃밭을 가꾸는 분한테 연락해서 주문한 꽃다발이야. 그분이 전용차로 가져다주셨어. 이른 시간이라
“예정아.”하예정이 그에게 반지를 끼워줄 때 전태윤이 매력적인 중저음으로 말했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절대 헤어지지 말고 이혼 얘기 꺼내지도 말자, 응?”하예정은 두 반지가 그들에게 참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그가 보는 눈이 있다고 속으로 칭찬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고르지 않아도 그녀에게 어울리는 걸 골랐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그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이건 약속할 수 없어요. 만약 태윤 씨가 주형인처럼 인간쓰레기만도 못한 짓을 저질러도 이혼 얘기 못 꺼내요? 바람피운 남자는 한시라도 빨리 차버리는 게 나아요. 남겨둬봤자 역겹기만 하니까.”전태윤은 나중에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하예정이 떠나지 않게 하려고 그녀의 약속을 받아내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이 그녀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렇게나 감동적인 상황에서도 그녀는 냉철한 판단을 했다. 역시 전태윤이 사랑한 여자는 달랐다.“그럼 내가 바람피우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무슨 일이 있든 절대 이혼 얘기 꺼내면 안 돼. 우리 평생 부부로 함께 지내자.”전태윤은 절대 바람을 피울 남자가 아니다. 그의 성격에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평생 그 여자만을 사랑할 것이다.바로 이것 때문에 그는 더욱 두려웠다. 나중에 그녀가 그의 정체를 알게 된 후 가차 없이 차버릴까 봐.“나한테 무슨 미안한 짓을 했어요?”하예정이 되물었다.“오늘 참 이상해요. 아침부터 꽃을 선물하지 않나, 결혼반지도 주지 않나... 비록 내가 다이아몬드를 감별할 줄은 몰라도 이 반지가 엄청 비싸다는 건 알아요. 평소랑 너무 다르니까 의심하게 되잖아요. 나한테 무슨 미안한 짓을 했죠? 그래서 지금 이런 이벤트로 날 감동하게 해서 대충 넘어갈 심산인 거죠?”전태윤은 입을 꾹 다문 채 그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참 상상력도 풍부하단 말이야. 큰마음 먹고 낭만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더니 음모론이나 제기하고.”“내 예측이 틀렸어요?”그의 표정이 전혀 흔들림이 없자
“그건 아직 모르겠어. 일만 처리하면 바로 올 거야.”“그럼 출장 가는 날에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 짐도 챙겨주고 공항까지 바래다줄게요.”그의 방에 그녀의 옷이 없어 하예정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씻고 옷을 갈아입으려 했다. 그녀가 방을 나서려 하자 전태윤은 손을 내밀어 잡더니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의 아리따운 얼굴을 바라보았다.“고작 그뿐이야?”그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하예정은 눈만 깜빡였다.‘그러면 뭘 더 바라는데요? 출장 가는 도시까지 바래다줄 수는 없잖아요.’“가족이 함께 따라가도 돼요?”전태윤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공항까지 바래다주면 안 돼요?”전태윤은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하예정은 그의 손을 내려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요즘 말 좀 잘하나 싶더니 또다시 원래대로 돌아온 거예요? 자꾸 나한테 맞춰보라고 하지 말아요. 나 머리가 나빠서 모른단 말이에요. 방에 가서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아침은 이따가 나가서 먹을래요, 아니면 직접 해 먹을래요?”하예정이 밖으로 나가며 물었다.“네가 알아서 해.”삐진 듯한 그의 말투에 하예정은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그의 눈치를 살핀 후에야 방문을 열고 나갔다.전씨 할머니와 마주친 하예정은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인사했다.“할머니, 굿모닝이에요.”“그래, 굿모닝.”할머니는 손자의 방에서 나오는 하예정을 흐뭇하게 쳐다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고 해도 한 침대에서 자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발전이었다.그들은 집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하예정은 할머니와 전태윤에게 간단하게 국수를 만들어주었다.“따르릉.”하예정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언니의 전화인 줄 알고 휴대 전화를 꺼내 보았는데 낯선 번호였다. 그녀의 낯빛이 순식간이 어두워졌다. 요즘 걸려오는 낯선 전화는 대부분 그녀 본가의 친척들이었다.지난번에 성소현이 나서서 한마디 한 후에 한동안은 잠잠했다. 그런데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전화한 것일까?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던 하예정이 전화를 끊어버리자 곧바로 또 울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