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그런 얘기 한 적 없어요. 할아버지가 하신 거예요.”하 영감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너 지금 어디야?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가게 문 안 열었어? 다른 사람은 진작 돈 벌었겠다.”“태윤 씨, 할아버지가 가게 문 언제 여냐고 내 걱정하세요. 해가 서쪽에서 뜬 건 아니죠? 얼른 발코니 가서 봐봐요, 해가 서쪽에서 뜨나. 서쪽에서 뜨면 기이한 광경을 찍어서 남겨야죠.”하 영감이 굳은 얼굴로 욕설을 퍼부었다.“하예정, 말 돌리지 마, 할아버지가 얘기하고 있잖아. 나 지금 네 삼촌, 외숙모들이랑 가게 문 앞에 있어. 당장 와서 문 열어! 우리 아직 아침도 못 먹었으니까 올 때 아침도 사 와.”“근처에 조식 식당이 많아요. 식당 가서 드시기 싫으면 그냥 굶으세요.”그녀는 그들에게 아침까지 사다 바칠 마음이 없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힘이 남아돌아서 더 욕하려고?하 영감은 하예정의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계속 욕하려는데 하지문이 휴대 전화를 낚아채고 다정하게 말했다.“예정아, 나 둘째 사촌오빠야. 우리 지금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얼른 와. 너한테 할 얘기 있어.”“아침 다 먹고 갈게.”“그래. 기다릴게.”하지문은 용건만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친정집 친척들이 또 찾아왔어?”전태윤은 하예정이 휴대 전화를 내려놓는 걸 보고 어두운 목소리로 물었다. 전태윤이 뒤에서 몰래 복수한 탓에 일도 뜻대로 풀리지 않을 텐데 감히 또 찾아온다고?소정남의 말대로 빈털터리가 된 그들이 더는 두려울 게 없어서 하예정에게 뻔뻔스럽게 돈을 요구하는 건가?“네, 아무래도 온 가족이 총출동해서 가게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나한테 할머니 병원비를 감당하라고 하는데 그건 절대 불가능해요. 저들이 머릿수로 밀어붙여도 난 두렵지 않아요.”할머니에게 효심이 가득한 손자가 그렇게나 많은데 할머니의 예쁨도 받지 못한 손녀가 병원비를 낸다는 게 말이 되는가?그녀의 사촌오빠들은 하예정 자매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보내
하예정은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하늘이 무섭지도 않아요? 그러다 벌 받아요.’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곧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그 사람들이 널 찾아온 목적이 뭐든 같이 가. 싸움이 일어나면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잖아.”전씨 할머니는 하예정과 함께 가겠다고 고집했다. 하예정은 자신이 싸움을 꽤 잘한다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은 친척들과 가게 앞에서 정말 싸우기라도 한다면 혼자서는 당해내기 힘들 거로 생각하여 더는 할머니를 말리지 않았다.언니에게서 할머니가 엄청 대단하고 만만한 분이 아니라는 얘기를 들었었다.셋이 국수를 뚝딱 비우고 하예정이 설거지하려 하자 할머니가 손자에게 눈치를 주었다. 전태윤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정의 손에서 그릇을 받고는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예정아, 태윤이한테 뭐든지 다 해주지 마.”할머니가 하예정에게 가르쳤다.“쟤한테 집안일도 좀 시켜. 이 집은 너희 두 사람 것이고 부부가 함께 꾸려나가야지. 쟤가 밖에서 일하느라 힘들겠지만 너도 출근하잖아. 넌 안 힘들어? 집에서 손가락 까딱 안 하게 하지 말고 집안일도 시키면서 부려 먹어. 그래야 네가 덜 힘들지.”“할머니, 태윤 씨 지금도 잘하고 있어요. 가끔 집안일도 도와줘요.”퇴근하고 집에 와서 손가락 까딱 안 하는 건 그녀의 쓰레기 같은 형부였다. 무슨 일이든 다 언니에게 맡겼고 손발이 멀쩡하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냐고 한마디 하면 종일 출근하느라 힘들다면서 집에서는 쉬고 싶다고 당당하게 얘기했었다.그리고 맨날 집에서 애만 보는 게 얼마나 쉬운데 집안일까지 도와달라고 한다고 언니를 게으른 여자라고 욕하기도 했다...인간쓰레기만도 못한 남자를 이젠 욕하기도 귀찮을 지경이었다. 그녀의 언니는 이젠 그에게서 벗어나 서현주에게 그대로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서현주 같은 여자를 만난 주형인이 과연 집안일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될까?“쟤네 몇몇 형제들한테 내가 어릴 적부터 자립 능력을 가르쳐서 뭐든지 다 잘해. 쟤가 밖에서 힘들게 일한다고 네가
전태윤은 주방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전부 다 들었다. 할머니가 하예정을 편애하는 건 이미 진작 익숙해졌다. 할머니는 손녀가 생기길 무척이나 바라셨지만 결국 손자가 아홉이나 생겼다.할머니는 하예정을 보자마자 첫눈에 마음에 들어 하예정을 손녀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 손녀를 다른 사람에게 시집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생각을 바꾸었다. 할머니는 하예정을 자신의 손자며느리로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그러면 평생 전씨 가문의 사람이 될 테니까.전태윤은 설거지를 마친 후 싱크대 주변도 빛이 날 정도로 깨끗하게 닦았다. 그다음 세정제로 행주를 말끔하게 빨고는 손까지 씻고 주방에서 나왔다.하예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양복 외투와 넥타이를 가져다주었다. 비록 아직 넥타이를 맬 줄은 모르지만 그녀의 적극적인 모습에 전태윤도 흐뭇했다.설거지하면 미인의 사랑을 누릴 수 있으니 꽤 괜찮은 것 같다.할머니도 하예정의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전태윤에게 적당한 보상을 주면 전태윤도 앞으로 그녀 말만 들을 것이다.부부라면 서로 아껴주고 희생해야만 영원히 함께할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다른 한쪽은 누리기만 한다면 헌신한 쪽이 언젠가는 마음이 식어가게 돼 있다.30분 후, 가게에 도착해보니 가게 문이 열려있었다. 심효진이 먼저 와서 가게 문을 열었는데 하씨 가문 사람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하 영감은 하지명에게 가게로 들어가서 의자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 하 영감만 의자에 앉아있었고 다른 이들은 문 앞에 서 있거나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그들의 얼굴에 저마다 짜증이 잔뜩 섞여 있었다.하지문은 하예정을 기다리며 담배를 몇 대나 피웠는지 모른다.전씨 가문 도련님에게 익명의 편지를 보낸 후 그는 자신이 전씨 그룹에 입사할 줄 알고 자신만만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전씨 그룹은커녕 다른 작은 회사도 그를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업자가 된 하지문 말고도 가족들이 하던 일도 전부 영향을 받
“하예정.”하지명과 하지문이 할아버지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고 나머지 친척들은 밖에서 대기했다.“네 남편이야?”하 영감은 전태윤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왠지 하예정의 남편이 하예진의 남편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두 손녀를 시집보내면서 예물을 일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남 좋은 노릇만 했다는 생각에 불만도 생겼다. 만약 셋째 아들이 저승에서 알았더라면 아마 화가 나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하예정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직 생전이라 예물은 당연히 두 사람의 몫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예진 자매는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할아버지 손자사위예요. 어때요? 잘생겼죠?”하예정은 전태윤 옆으로 다가가 한 손을 전태윤의 어깨에 걸치면서 일부러 할아버지에게 물었다.“우리 부부 참 잘 어울리죠?”하 영감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참 후에 전씨 할머니에게 물었다.“그쪽은 누구시죠?”“사돈.”‘남자 쪽 가족이구나.’하 영감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어 모금 피운 뒤 말을 이었다.“예정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우리한테 얘기하지 않아서 사돈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어요. 오늘 처음 뵙네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면서요? 그럼 사돈댁에서 우리 예정이한테 예물을 얼마 정도 줄 계획인가요? 집이랑 자동차는 이미 다 준비했겠죠? 예정이 부모가 일찍 돌아가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어요. 예전에 서로 얼굴을 붉힌 일이 있어도 내가 쟤 할아비란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정이한테 주는 예물은 우리한테 주는 게 당연해요.”대부분의 재벌 집 할머니라면 하 영감처럼 만나자마자 돈 얘기부터 꺼내면 당장 얼굴을 붉히고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돈댁, 예물은 당연히 드려야지요. 하지만 예물은 예정이한테 줄 겁니다. 예정이가 예물을 어떻게 쓰는지는 예정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우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겠어요.”그 말인즉슨 예물을
하예정은 바로 문을 가리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할아버지, 저희 가게 문 바로 저기 있어요. 일어나서 당장 나가주세요! 우리 언니 일은 당신들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리고 주형인네 가족들이 여러 번 찾아왔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당사자들이 다 알 거예요. 진심으로 사과하기는커녕 종일 나더러 당신들과 화해하라고요? 잘못한 게 대체 누구인데요?”하 영감은 그녀가 전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씩씩거리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이보게, 젊은이, 그쪽도 보다시피 예정이는 친정 식구들이 뒷받침해주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까 마음껏 괴롭혀. 우린 절대 그쪽을 찾아와서 따져 묻지 않을 테니까.”전태윤은 하 영감을 밖에 내던지고 싶었다.이런 할아버지는 그도 처음 겪었다.아무리 제 손녀가 싫어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내뱉을 수가 있을까?전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난 아내를 예뻐하고 사랑해주기 위해 결혼했지, 절대 괴롭히려고 집에 데려온 건 아니에요. 아내를 괴롭히는 남자는 인간도 아니죠! 본인들이 직접 알아서 나가실래요 아니면 내가 빗자루를 들고 문밖에 내쫓을까요?”하예정도 할아버지의 말에 울화가 치밀었다.이 인간들은 늘 그녀와 화해한다면서 정작 하는 짓과 내뱉는 말투는 일말의 뉘우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모든 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여길 뿐이다. 다만 그녀의 뒤를 봐주는 버팀목이 있다고 여기면서 요즘 본인들이 당한 재수 없는 일들을 전부 그녀 배후의 지시자가 벌인 거라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하여 이렇게 번마다 뻔뻔스럽게 찾아오고 있다.하예정이 말했다시피 그들 사이의 모순은 인스타에서 시작했으니 인스타로 끝내야 한다. 그들이 인스타로 공개 사과를 하고 하예진 자매에게 뒤집어씌운 누명을 깨끗이 씻어준다면 그녀도 달갑게 화해할 것이다.이렇게 쉬운 요구도 못 들어주는데 하예정이 대체 왜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 걸까?하지문이 재빨리 말했다.“예정아, 할아버지가 연세가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듣기 거북한 말을 내뱉은 거야. 절대 마음에 담아
“저 사람들이 왜 주형인을 편들어주지?”심효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주씨 집안에서 저들에게 무슨 혜택을 주었나?”하예정이 쓴웃음을 지었다.“우리 언니랑 주형인이 이혼 합의서를 새로 썼는데 합의 이혼하면 주형인이 언니에게 2억 원 좌우 줘야 하거든. 그 집 어르신들이 돈 아까워서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가 사정한 것 같아.”어찌 됐든 좀 전에 온 한 무리 사람들은 명의상에서 하예진 자매의 친척이니까.“주형인 부모가 할아버지한테 돈을 얼마나 줬을까? 넙죽 받기만 할 뿐 절대 지시대로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평소에 우리 언니를 괴롭힐 땐 누구보다 교활했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정말 돈이 급했나 봐.”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러지나 말 것이지!“태윤 씨, 괜찮아요. 그만 출근해요.”친척들이 떠난 후 하예정은 남편더러 얼른 출근하라고 다그쳤다.그녀를 따라왔지만 딱히 도와준 게 없었다. 아내가 워낙 전투력이 강하다 보니 일반적인 상황에선 그의 도움이 필요 없다.전태윤은 아내의 다그침 속에 답답한 마음을 끌어안고 자리를 떠났다.회사로 돌아간 그는 강일구에게 전화했다.강일구가 전화를 받자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했다.“일구야, 오후에 애들 불러서 철거 도구를 챙기고 광명 아파트로 보내. 예진 씨 이사하는 거 도와주고 그 집 모조리 허물어버려.”강일구가 깍듯하게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넌, 가지 마. 와이프가 네 얼굴 알아.”강일구가 말했다.“대표님, 저는 대리기사라서... 다른 일당도 뛸 수 있어요. 집 허무는 건 제가 또 아주 잘합니다.”그렇게 시끌벅적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강일구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전태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와이프가 의심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둘러댈 수 있다면 같이 가.”강일구가 바로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도련님. 저도 이젠 핑계를 두어 번 둘러댔더니 나름 경험이 생겼어요. 사모님이 의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전태윤은 침묵하다가 음침하게 말했다.“핑계를 여러 번
하예정은 잠든 조카를 안으며 언니에게 물었다.“언니, 밥은 먹었어?”“아직이야. 우빈이 밥 먹이고 바로 왔어. 내 물건들도 거의 다 정리했어. 이혼 절차만 마무리되면 예정이 네가 차를 몰고 와서 짐 옮기는 거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오전에 집도 다 찾아놨어. 너희 집이랑 가깝고 교통도 엄청 편리해. 아직 위생 청결이 덜 된 상태라 내가 이혼 절차 밟고 천천히 정리하려고.”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혼이다.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말게끔 얼른 마무리해야 한다.“언니 그럼 우리 가게에서 밥 먹고 좀 쉬다가 나랑 같이 은행 가서 주형인 기다리자.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줄게. 주형인이 언니 계좌로 돈을 보내면 나 그때 다시 돌아올게.”하예진이 거절하려 하자 어르신이 말했다.“예진아, 그냥 예정이 말대로 해. 너 혼자 보내면 우리 모두 마음이 안 놓여. 그 집 인간들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누가 알아?”어르신이 말을 이었다.“예정아, 네 언니가 재산분할을 마치거든 직접 운전해서 가정법원으로 가. 주형인 그 인간은 끝까지 경계심을 놓지 말아야 해. 어떤 사람들은 악랄하기 그지없어 이혼 지경에 다다르면 또 무슨 극단적인 일을 꾸밀지 몰라. 네가 몸 좀 쓰잖니. 함께 가면 너도 마음 놓이고 우리도 한시름 놓을 것 같아.”“알겠어요, 할머니.”하예정도 줄곧 언니와 함께하려 했지만 언니가 거절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이때 마침 할머니가 입을 여시니 하예진은 어르신을 공경하며 더는 거부하지 않고 할머니의 뜻을 따랐다.하예정은 우선 조카를 접이식 의자에 앉혔다. 이 의자는 펼치면 침대로 간주되고 접으면 의자가 된다.심효진과 숙희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다 만든 음식을 들고 나왔다.“실례합니다.”이때 불쑥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제 막 식사를 하려던 사람들은 문 앞에 시선이 쏠렸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관성 호텔 매니저였다.권 매니저는 포장된 음식 몇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하예정에게 가볍게 미소 지었다.“예정 씨, 이렇
어르신은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효진이 이 계집애가 지금 성씨 가문의 사납기로 소문난 소현이를 불러오려고 해?’성소현이 가면 전씨 할머니는 함께 따라가서 재미난 구경을 못 한다.게다가 전태윤이 보낸 사람이라면 그의 경호팀일 게 뻔한데 한때 그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성소현이 경호원들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그녀는 하예정과 달리 전에 봤던 사람들은 바로 알아본다.그때가 되면 굉장히 수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다행히 하예정이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렸다.“이런 난폭한 일엔 소현 씨 부를 필요 없어. 소현 씨는 부잣집 딸이라 이런 광경을 본 적 없을 거야. 괜히 사람 놀라게 하지 말자.”성소현이 들었으면 기가 차서 뒷목을 잡을 게 뻔하다.‘나 성소현이 못 겪어본 게 뭔데? 난 생각보다 엄청 용감하단 말이야!’다만 아쉽게도 사촌 여동생이 한사코 그녀를 이 구경거리에서 배제했다.“열댓 명이면 충분할 거야.”하예정은 절친의 사촌들까지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신속하게 움직여야 해. 너무 느리면 오늘 밤사이로 모든 걸 허물 수 없어. 예정아,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너 아직도 나랑 틀을 차려? 지금 바로 사촌 오빠한테 전화할게. 그 오빠가 공사 현장 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 밑에 있는 일꾼들이 꽤 프로패셔널할 거야.”하예정도 나름 일리 있어 보여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들의 대화를 들은 하예진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그녀는 남편을 잘못 만나 제때 이 관계를 마무리하고 쓰레기 같은 그 집안에서 나왔지만 주변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이 또한 행운스러운 일이었다.“효진아, 고마워.”하예진이 감사의 뜻을 표했다.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예진 언니, 언니의 일은 제 일이나 다름없어요. 저랑 예정이는 쓰레기 같은 그 집안 사람들을 오랫동안 참아왔어요.”전에는 하예진이 주형인과 계속 살아가려 했기에 하예정도 꾹 참았지만 이젠 이혼이 코앞이니 더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밥 먹자, 다들 일단 밥부터 먹어. 태윤이가 음식도 보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