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하지명과 하지문이 할아버지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왔고 나머지 친척들은 밖에서 대기했다.“네 남편이야?”하 영감은 전태윤을 한참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왠지 하예정의 남편이 하예진의 남편보다 훨씬 더 나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두 손녀를 시집보내면서 예물을 일전 한 푼도 받지 못하고 남 좋은 노릇만 했다는 생각에 불만도 생겼다. 만약 셋째 아들이 저승에서 알았더라면 아마 화가 나서 살아 돌아올지도 모른다.하예정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직 생전이라 예물은 당연히 두 사람의 몫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예진 자매는 일전 한 푼도 그들에게 주지 않았다.“할아버지 손자사위예요. 어때요? 잘생겼죠?”하예정은 전태윤 옆으로 다가가 한 손을 전태윤의 어깨에 걸치면서 일부러 할아버지에게 물었다.“우리 부부 참 잘 어울리죠?”하 영감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한참 후에 전씨 할머니에게 물었다.“그쪽은 누구시죠?”“사돈.”‘남자 쪽 가족이구나.’하 영감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두어 모금 피운 뒤 말을 이었다.“예정이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우리한테 얘기하지 않아서 사돈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어요. 오늘 처음 뵙네요.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면서요? 그럼 사돈댁에서 우리 예정이한테 예물을 얼마 정도 줄 계획인가요? 집이랑 자동차는 이미 다 준비했겠죠? 예정이 부모가 일찍 돌아가긴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직 살아있어요. 예전에 서로 얼굴을 붉힌 일이 있어도 내가 쟤 할아비란 사실은 변함이 없어요. 그러니까 예정이한테 주는 예물은 우리한테 주는 게 당연해요.”대부분의 재벌 집 할머니라면 하 영감처럼 만나자마자 돈 얘기부터 꺼내면 당장 얼굴을 붉히고 자리를 박차고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다.“사돈댁, 예물은 당연히 드려야지요. 하지만 예물은 예정이한테 줄 겁니다. 예정이가 예물을 어떻게 쓰는지는 예정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우린 그냥 가만히 있는 게 좋겠어요.”그 말인즉슨 예물을
하예정은 바로 문을 가리키며 차갑게 쏘아붙였다.“할아버지, 저희 가게 문 바로 저기 있어요. 일어나서 당장 나가주세요! 우리 언니 일은 당신들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리고 주형인네 가족들이 여러 번 찾아왔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당사자들이 다 알 거예요. 진심으로 사과하기는커녕 종일 나더러 당신들과 화해하라고요? 잘못한 게 대체 누구인데요?”하 영감은 그녀가 전혀 말을 들으려 하지 않자 씩씩거리며 전태윤에게 말했다.“이보게, 젊은이, 그쪽도 보다시피 예정이는 친정 식구들이 뒷받침해주는 걸 원치 않아. 그러니까 마음껏 괴롭혀. 우린 절대 그쪽을 찾아와서 따져 묻지 않을 테니까.”전태윤은 하 영감을 밖에 내던지고 싶었다.이런 할아버지는 그도 처음 겪었다.아무리 제 손녀가 싫어도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말을 내뱉을 수가 있을까?전태윤이 싸늘하게 말했다.“난 아내를 예뻐하고 사랑해주기 위해 결혼했지, 절대 괴롭히려고 집에 데려온 건 아니에요. 아내를 괴롭히는 남자는 인간도 아니죠! 본인들이 직접 알아서 나가실래요 아니면 내가 빗자루를 들고 문밖에 내쫓을까요?”하예정도 할아버지의 말에 울화가 치밀었다.이 인간들은 늘 그녀와 화해한다면서 정작 하는 짓과 내뱉는 말투는 일말의 뉘우침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도 모든 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여길 뿐이다. 다만 그녀의 뒤를 봐주는 버팀목이 있다고 여기면서 요즘 본인들이 당한 재수 없는 일들을 전부 그녀 배후의 지시자가 벌인 거라고 죄를 뒤집어씌우려 한다.하여 이렇게 번마다 뻔뻔스럽게 찾아오고 있다.하예정이 말했다시피 그들 사이의 모순은 인스타에서 시작했으니 인스타로 끝내야 한다. 그들이 인스타로 공개 사과를 하고 하예진 자매에게 뒤집어씌운 누명을 깨끗이 씻어준다면 그녀도 달갑게 화해할 것이다.이렇게 쉬운 요구도 못 들어주는데 하예정이 대체 왜 한 걸음 물러서야 하는 걸까?하지문이 재빨리 말했다.“예정아, 할아버지가 연세가 있어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듣기 거북한 말을 내뱉은 거야. 절대 마음에 담아
“저 사람들이 왜 주형인을 편들어주지?”심효진이 의아한 듯 물었다.“주씨 집안에서 저들에게 무슨 혜택을 주었나?”하예정이 쓴웃음을 지었다.“우리 언니랑 주형인이 이혼 합의서를 새로 썼는데 합의 이혼하면 주형인이 언니에게 2억 원 좌우 줘야 하거든. 그 집 어르신들이 돈 아까워서 우리 할아버지를 찾아가 사정한 것 같아.”어찌 됐든 좀 전에 온 한 무리 사람들은 명의상에서 하예진 자매의 친척이니까.“주형인 부모가 할아버지한테 돈을 얼마나 줬을까? 넙죽 받기만 할 뿐 절대 지시대로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평소에 우리 언니를 괴롭힐 땐 누구보다 교활했어. 여기까지 찾아온 걸 보니 정말 돈이 급했나 봐.”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그러지나 말 것이지!“태윤 씨, 괜찮아요. 그만 출근해요.”친척들이 떠난 후 하예정은 남편더러 얼른 출근하라고 다그쳤다.그녀를 따라왔지만 딱히 도와준 게 없었다. 아내가 워낙 전투력이 강하다 보니 일반적인 상황에선 그의 도움이 필요 없다.전태윤은 아내의 다그침 속에 답답한 마음을 끌어안고 자리를 떠났다.회사로 돌아간 그는 강일구에게 전화했다.강일구가 전화를 받자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했다.“일구야, 오후에 애들 불러서 철거 도구를 챙기고 광명 아파트로 보내. 예진 씨 이사하는 거 도와주고 그 집 모조리 허물어버려.”강일구가 깍듯하게 대답했다.“네, 알겠습니다.”“넌, 가지 마. 와이프가 네 얼굴 알아.”강일구가 말했다.“대표님, 저는 대리기사라서... 다른 일당도 뛸 수 있어요. 집 허무는 건 제가 또 아주 잘합니다.”그렇게 시끌벅적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하니 강일구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전태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와이프가 의심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둘러댈 수 있다면 같이 가.”강일구가 바로 대답했다.“걱정 마세요, 도련님. 저도 이젠 핑계를 두어 번 둘러댔더니 나름 경험이 생겼어요. 사모님이 의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전태윤은 침묵하다가 음침하게 말했다.“핑계를 여러 번
하예정은 잠든 조카를 안으며 언니에게 물었다.“언니, 밥은 먹었어?”“아직이야. 우빈이 밥 먹이고 바로 왔어. 내 물건들도 거의 다 정리했어. 이혼 절차만 마무리되면 예정이 네가 차를 몰고 와서 짐 옮기는 거 도와줘야 할 것 같아. 오전에 집도 다 찾아놨어. 너희 집이랑 가깝고 교통도 엄청 편리해. 아직 위생 청결이 덜 된 상태라 내가 이혼 절차 밟고 천천히 정리하려고.”지금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이혼이다.또 다른 문제가 생기지 말게끔 얼른 마무리해야 한다.“언니 그럼 우리 가게에서 밥 먹고 좀 쉬다가 나랑 같이 은행 가서 주형인 기다리자. 내가 운전해서 데려다줄게. 주형인이 언니 계좌로 돈을 보내면 나 그때 다시 돌아올게.”하예진이 거절하려 하자 어르신이 말했다.“예진아, 그냥 예정이 말대로 해. 너 혼자 보내면 우리 모두 마음이 안 놓여. 그 집 인간들 파렴치하기 짝이 없어 또 무슨 수작을 부릴지 누가 알아?”어르신이 말을 이었다.“예정아, 네 언니가 재산분할을 마치거든 직접 운전해서 가정법원으로 가. 주형인 그 인간은 끝까지 경계심을 놓지 말아야 해. 어떤 사람들은 악랄하기 그지없어 이혼 지경에 다다르면 또 무슨 극단적인 일을 꾸밀지 몰라. 네가 몸 좀 쓰잖니. 함께 가면 너도 마음 놓이고 우리도 한시름 놓을 것 같아.”“알겠어요, 할머니.”하예정도 줄곧 언니와 함께하려 했지만 언니가 거절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다. 이때 마침 할머니가 입을 여시니 하예진은 어르신을 공경하며 더는 거부하지 않고 할머니의 뜻을 따랐다.하예정은 우선 조카를 접이식 의자에 앉혔다. 이 의자는 펼치면 침대로 간주되고 접으면 의자가 된다.심효진과 숙희 아주머니는 주방에서 다 만든 음식을 들고 나왔다.“실례합니다.”이때 불쑥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이제 막 식사를 하려던 사람들은 문 앞에 시선이 쏠렸는데 상대는 다름 아닌 관성 호텔 매니저였다.권 매니저는 포장된 음식 몇 개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하예정에게 가볍게 미소 지었다.“예정 씨, 이렇
어르신은 하마터면 사레들릴 뻔했다.‘효진이 이 계집애가 지금 성씨 가문의 사납기로 소문난 소현이를 불러오려고 해?’성소현이 가면 전씨 할머니는 함께 따라가서 재미난 구경을 못 한다.게다가 전태윤이 보낸 사람이라면 그의 경호팀일 게 뻔한데 한때 그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던 성소현이 경호원들을 못 알아볼 리가 없다. 그녀는 하예정과 달리 전에 봤던 사람들은 바로 알아본다.그때가 되면 굉장히 수습하기 어려워질 것이다.다행히 하예정이 할머니를 안심시켜드렸다.“이런 난폭한 일엔 소현 씨 부를 필요 없어. 소현 씨는 부잣집 딸이라 이런 광경을 본 적 없을 거야. 괜히 사람 놀라게 하지 말자.”성소현이 들었으면 기가 차서 뒷목을 잡을 게 뻔하다.‘나 성소현이 못 겪어본 게 뭔데? 난 생각보다 엄청 용감하단 말이야!’다만 아쉽게도 사촌 여동생이 한사코 그녀를 이 구경거리에서 배제했다.“열댓 명이면 충분할 거야.”하예정은 절친의 사촌들까지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았다.“신속하게 움직여야 해. 너무 느리면 오늘 밤사이로 모든 걸 허물 수 없어. 예정아,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 너 아직도 나랑 틀을 차려? 지금 바로 사촌 오빠한테 전화할게. 그 오빠가 공사 현장 일을 도맡아 하고 있어 밑에 있는 일꾼들이 꽤 프로패셔널할 거야.”하예정도 나름 일리 있어 보여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그녀들의 대화를 들은 하예진은 감개무량할 따름이었다.그녀는 남편을 잘못 만나 제때 이 관계를 마무리하고 쓰레기 같은 그 집안에서 나왔지만 주변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었다.이 또한 행운스러운 일이었다.“효진아, 고마워.”하예진이 감사의 뜻을 표했다.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예진 언니, 언니의 일은 제 일이나 다름없어요. 저랑 예정이는 쓰레기 같은 그 집안 사람들을 오랫동안 참아왔어요.”전에는 하예진이 주형인과 계속 살아가려 했기에 하예정도 꾹 참았지만 이젠 이혼이 코앞이니 더이상 참을 필요가 없었다.“밥 먹자, 다들 일단 밥부터 먹어. 태윤이가 음식도 보
하예진은 동생이 왜 웃는지 바로 알아챘다.“잘 지내거나 말거나, 이혼하면 난 주형인과 남남이야.”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갔다.“그 집안 아마 바람 잘 날 없을걸.”“그럼 완전 퍼펙트지. 벌을 받아도 싸!”하예정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못됐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주형인이 재혼한 후 온 가족이 괴롭게 살길 바랐다.서현주가 분발해서 주씨 일가를 발칵 뒤집어놓고 주서인을 찍소리도 못하게 다스리길 바랐다.하예진이 전화를 안 받자 주서인은 문자를 보냈다. 하예진은 그들 온 가족의 카톡을 차단하고 주형인 것만 남겨두었다. 그와는 아직 이혼 상의가 남아있었으니까.이혼 절차만 마무리하면 주형인의 카톡도 전부 차단할 예정이었다.하예진은 주서인의 문자를 받더니 읽지도 않은 채 바로 삭제했다.그리고 주서인의 전화번호까지 차단했다. 그녀는 두 번 다시 형님한테서 전화나 문자를 받고 싶지 않았다.주서인은 이제 곧 하예진과 남남이 될 테니까.이때 하예정의 휴대폰도 울렸다. 그녀는 인간쓰레기 같은 주서인이 언니한테 까여 타깃을 본인으로 갈아탄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정작 태윤 씨였다.하예정은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여보.”하예정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아침에 깨어났을 때도 여보라고 부른 것 같았는데 그땐 온 신경이 꽃다발에 꽂혀있어 별다른 반응을 못 했다.다만 지금은 맑은 정신으로 남편에게 여보 소리를 들으니 재빨리 언니부터 쳐다봤다. 언니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는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아마 다른 부부들도 여보, 자기라고 부르겠지?’“예정아?”사실 전태윤도 여보라는 호칭이 썩 적응되지 않았다. 다만 한번 부르고 나니 두 번째는 한결 자연스러워졌다.그는 아내가 이런 닭살스러운 호칭이 싫어서 아무 반응이 없는 줄 알고 곧장 원래대로 이름을 불렀다.“듣고 있어?”“운전 중이에요. 말해요, 듣고 있어요.”“사람들 열댓 명 불렀어. 광명 아파트 입구에서 대기하고 있으라고 했으니 이따가 바로 가면 돼.”“알았어요. 효진이도 사촌 오빠한테 얘기
전태윤은 어릴 때부터 자립하며 커왔지만 청소부가 돼본 적은 없다.아내의 지시를 받은 전태윤은 화내지 않을뿐더러 흔쾌히 동의했다.“그래, 퇴근하고 바로 갈게. 그때 가서 처형네 집 주소 보내줘. 내 밥도 차려놓고.”“네.”“고마워요, 제부.”하예진이 제부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여동생네 부부가 늘 뒤에서 응원해주지 않았더라면 하예진도 가장 짧은 시간 내에 주형인과 합의 이혼을 달성하지 못했을 것이다.“언니, 우리 다 한 가족이야. 새삼스럽게 왜 그래?”하예진은 여전히 감격에 겨워 있었다.통화를 마친 후 그녀는 늘 그랬듯이 했던 말을 또 반복했다.“예정아, 태윤 씨는 참 좋은 남자야. 너 꼭 잘해야 한다.”“언니, 귀에 굳은살이 박이겠어. 제발 나 좀 놔줘.”하예정은 매번 똑같은 말을 들어야 했다.하예진은 가볍게 미소 지었다.그녀도 습관처럼 말이 튀어나왔을 뿐이었다.십여 분 후 주형인이 은행 입구에 도착했다.그의 부모님들도 함께했고 주서인은 휴가를 내지 못한 탓인지 자리에 없었다.하예진을 보자 김은희는 새아가를 반기듯 눈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다가왔다. 하예진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김은희는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예진아, 이혼 안 하면 안 될까? 전에는 나랑 네 새언니가 잘못했어. 항상 너한테만 지적을 했잖니. 맹세할게, 앞으론 우리 집에서 네가 여왕이야. 형인이가 감히 또 너한테 상처 주면 내가 저 녀석 다리를 분지를 거야! 예진아, 너랑 형인이 안 지도 어언간 12년이야. 긴 시간 동안 서로 부부로 지내오면서 맞춰주고 보살펴줬잖아. 형인이가 너한테 어떻게 해줬는지 누구보다 네가 잘 알 거야. 꼭 심사숙고하고 결정해야 해. 저 녀석은 지금 단지 여우 같은 서현주에게 홀려서 그래. 내가 두 사람 그만 만나라고 훈계했으니 화 풀어. 또 어떻게 해야 마음이 풀리겠어? 나한테 얘기해. 이 어미가 대신 나서줄 테니까 어서 화 풀렴. 우빈이를 봐서라도 형인이 한 번만 용서해줘. 이혼하지 말자, 응?”하예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이제 곧 전
김은희가 하예진에게 주는 2억 원을 아끼려고 그녀의 할아버지에게 과연 돈을 얼마나 주며 설득하라고 했을까?육백만 원 내지 천만 원을 주지 않는 한 하예진의 할아버지는 쉽게 허락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이 집안 사람들은 벌을 받아 마땅하다.하예정은 오히려 김은희가 할아버지를 찾아가 돈을 돌려받길 바랐다.‘그래, 난 사악해. 점점 더 나쁘게 변해가. 그래서 태윤 씨는 이런 내가 싫어?’‘아니, 전혀. 바로 이런 네 모습이 좋아!’“엄마.”주형인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김은희를 잡아당기면서 고개 돌려 주경진에게 말했다.“아빠, 엄마 잘 보고 있어.”김은희는 아들의 손을 뿌리치더니 도리어 손목을 꼬집으며 욕설을 퍼부었다.“야 이 못 난 녀석아, 멀쩡한 가정을 이 지경으로 풍비박산을 만들어?”이어서 그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땅을 치며 대성통곡했다.주형인은 그런 엄마가 너무 창피했다.그는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더니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했다.주경진이 앞으로 걸어와 아내를 부축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타일렀다.“여보, 그만해. 이번 일은 되돌릴 여지가 없어.”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는 하예진에게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예진아, 우리가 많이 미안해... 너희 둘 어서 들어가서 이혼 절차 마무리해.”하예진은 아무 말도 없었다.그녀는 이젠 이 집안 사람들의 얘기를 전혀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다.눈앞에 다가온 팩트는 단 하나, 주형인과 곧 이혼하고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들어가자.”하예진이 담담하게 말하고 먼저 은행으로 들어갔다.주형인은 아빠에게 몇 마디 당부한 후 곧바로 뒤따라가며 그녀에게 물었다.“그 증거자료들 원본 파일과 복사본 모두 갖고 왔어?”“걱정 마, 난 약속 지켜. 너만 깔끔하게 처사하면 나도 질질 끌지 않아.”주형인은 그제야 조금 안심됐다.부부는 나란히 은행으로 들어갔고 주경진과 김은희도 곧바로 따라갔다.돈은 주형인의 돈이지만 은행카드 명의가 주경진으로 되어있어 그가 서명해야 한다.김은희는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