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은 전호영을 도와 고현의 마음을 빼앗으려고 애쓰고 있었다.고현은 겨우 스물여덟 살 꽃다운 나이인데 가족들은 자꾸 시집 보낼 생각만 하고 있었다....도씨 가문 별장 입구.차 몇 대가 별장 입구에 세워져 있었지만 별장 안의 도씨 사모님이 알게 될까 봐 감히 경적을 울리지 못했다.차 안의 도차연은 자신의 가방을 손에 들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차연 씨.”전태윤을 가장해 친밀한 사진을 찍게 된 김지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도차연의 허리를 감싸 안으면서 말했다. 김지혁은 얼핏 보면 전태윤과 정말 많이 닮았다.“차연 씨, 저와 함께 있어 줄래요?”김지혁은 도차연과 한동안 함께 지냈고 물론 도차연이 그를 대역으로만 여긴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 고급 차들, 경호팀 모두 그의 체면을 위해 빌려온 것이긴 했지만 그가 입고 있는 양복만은 도차연이 그에게 사 준 것이었다.김지혁이 입은 양복과 가죽 구두를 볼 때마다 도차연이 그를 보는 눈빛은 매우 뜨거웠다.하지만 김지혁은 도차연이 자신을 통해 다른 남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그 남자가 누구인지 그는 아직도 몰랐다.돈을 주고 도차연에게 접근하라고 청한 사람도 자신이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도기범의 목적은 도차연의 행동이 둘째 삼촌의 노여움을 사고 둘째 삼촌 부녀의 감정을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도기범은 도씨 그룹을 이어받아 도씨 가문의 가주로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도기범은 전태윤을 건드릴 생각은 하지 않았다.만약 김지혁이 자신의 몸매가 전태윤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 진짜 전태윤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나중에 전태윤으로 가장하여 사기를 칠까 봐 두려웠다.하여 도기범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도차연도 똑같은 생각으로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놔요. 선을 넘었어요!”도차연은 차가운 어조로 호통쳤다.“차연 씨, 제가 못생겼나요?”김지혁은 도차연의 뒤를 따라 고급 장소를 드나들면서 부자들의 삶을 체험해 보았고 또 이런 삶
“거기서 안 오고 뭐 해?”도 대표는 엄한 목소리로 호통쳤다.도차연은 어쩔 수 없이 웃음을 짜내면서 아빠 곁으로 다가가 입을 열었다.“아빠, 언제 돌아오셨어요? 미리 말도 안 하시고.”도 대표는 오늘 밤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전태윤의 연락을 받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몰래 딸의 뒤를 밟으며 딸이 전태윤을 닮은 남자와 다니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후에야 오늘 밤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도 대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차연은 도 대표 곁에 앉아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도차연 어머니 최애라는 남편의 눈치를 보다가도 딸에게 남편이 화가 무척 났다고 눈짓해 주었다.도차연은 조금 전 김지혁이 그녀를 데려다준 것이 생각났다.‘설마 들킨 건 아니겠지?’도차연은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올 때 부모님이 방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아빠가 왜 화를 내시지?’“아빠.”도차연은 부모님 앞으로 다가갔고 최애라는 옆으로 살짝 자리를 옮겨 도차연이 앉도록 피해주었다.“아빠, 왜 그래요? 안색이 안 좋으세요. 누가 아빠를 화나게 한 거에요?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제가 대신 혼낼게요.”도차연은 팔에 걸고 있었던 가방도 놓지 못한 채 아빠의 곁에 앉아 아빠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아빠께서 이번에 출장 가신지 너무 오래되셔서 엄마와 저도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어요.”“출장 다녀오느라 피곤하시죠?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해 드릴게요.”도 대표는 딸을 힐끗 쳐다보며 진지하게 물었다.“오늘 종일 어디 갔었어?”“회사 일 때문에 바빴어요. 아빠가 회사에 안 계셔서 제가 매일 소처럼 일했어요. 너무 힘들었어요.”콜록! 콜록! 최애라는 헛기침을 몇 번 하면서 딸에게 오늘이 주말이라고 일깨워주었다.오늘은 딸이 쉬는 날이었다.도 대표는 부인을 바라보았다.최애라는 방금 남편에게 따라준 미지근한 물잔을 얼른 들어 한 모금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감기 걸렸는지 기침이 좀 나네요.”“당신이 방금 내 물
도 대표는 딸 때문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도 대표가 20년 넘게 심혈을 기울여 배양한 딸이 이토록 사람을 실망하게 시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도 대표는 딸을 도씨 가문의 후계자로 키워왔고 딸도 모든 방면에서 항상 잘해왔기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태윤을 만난 뒤로 이게 대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여보, 차연이가 대체 뭘 했어요? 다른 사람의 내연녀라니요.”최애라는 이 일을 모르는 눈치였다.최애라도 딸이 전태윤을 닮은 남자를 찾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도차연은 어머니마저도 속이고 있었다.도차연의 옆에 있는 남자는 대역일 뿐 그녀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람은 전태윤이기 때문이다.도차연은 하예정에게 그 사진들을 보낸 후에도 아무런 소식을 받지 못했다.도차연은 그 사진들이 자극적이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다음 기회에 더 친밀한 사진을 찍어 더 자극적으로 수정하여 하예정에게 다시 보내려고 했다.심지어 하예정이 여전히 전태윤을 믿고 가만히 있는다면 실수인 척 파파라치에게 사진을 흘려보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사진이 파파라치들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기필코 관성의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르게 될 것이다.“엄마, 저 아니에요. 전 그냥... 아빠, 어떻게 아셨어요?”도 대표는 딸의 옆에 있는 남자가 대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진들을 하예정에게 보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누군가가 아빠에게 일러바친 게 분명했다.도 대표는 외국으로 출장 갔고 설 전에 돌아올 계획이였지만 아직 10월도 채 안 되어 일찍 돌아왔다.도차연의 이 일로 인해 돌아온 가능성도 컸다.“오빠가 아빠께 말씀드린 거예요? 아빠, 오빠는 분명 우리 부녀 관계를 이간질해 아빠가 저를 도씨 그룹에서 쫓아내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이에요. 도씨 가주 자리를 이어받고 싶어 하는 거라고요. 절대 오빠를 믿어서는 안 돼요.”도차연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 일이 도기범이 일러바친 일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맞혔다.“그만해. 기범이는 내 앞에서 네 험담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너
도차연은 맞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도 대표를 쳐다보았다.아빠가 자신의 뺨을 때렸다!도차연은 부모의 유일한 아이로 어릴 적부터 그들의 부드러운 보살핌으로 예쁘게 자라왔다. 도 대표는 딸을 인재로 키우기 위해 매우 엄격하게 딸을 교육했지만 그녀를 때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아빠는 도차연이 한 남자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의 뺨을 때렸다.도차연은 너무 억울한 나머지 눈물을 쏟고 있었다.최애라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가슴 아픈 표정으로 일어나 얼굴을 가리고 있는 딸을 잡아당기면서 남편을 나무랐다.“말로 하면 안 돼요? 꼭 손을 대야 해요?”“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차연이 너 앞으로 다시는 우리 도씨 그룹으로 들어올 생각하지도 마! 나도 도씨 그룹을 망쳐놓을 사람에게 절대로 그룹을 맡길 순 없어. 내 유일한 자식이라도 안돼!”“도차연! 단념하는 게 좋을 거야! 전 대표는 널 거들떠보지도 않는데 네가 여전히 뻔뻔하게 그의 내연녀로 살겠다면 난 너와 부녀 관계를 끊고 살 거야. 이젠 나에게 너 같은 딸이 없는 거로 살 테니까 그렇게 알아!”“내 딸은 반드시 바르게, 올바른 가치관으로 살아야 해. 너처럼 진정한 사랑을 추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다른 사람의 가정을 깨뜨리는 것을 난 절대로 용납 못 해! 가치관에 문제 있는 딸은 내 자식이 아니야!”“우리 가문의 사업이 매우 큰데, 만약 딸이 믿음직스럽지 못한다면 내가 도씨 가문의 자손들에게 우리 회사를 물려줄 수도 있어.”“조카들도 외조카들도 수없이 많아. 도씨 그룹을 이어받을 사람도 수두룩하거든. 너만 이어받을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고!”“그 가짜 전태윤을 반드시 쫓아내야 해! 네가 여전히 그렇고 그런 사진을 찍어 전씨 사모님께 보낸다면 너의 은행 카드도 정지시키고 내일 당장 내가 회사로 돌아가 널 해고할 거야!도 대표는 차가운 어조로 호통쳤다.“난 말하면 말한 대로 하는 사람이야! 정 못 믿겠으면 계속 네 생각대로 행동해 봐. 널 반드시 도씨 그룹에서 쫓아내
최애라가 집안에서 따라 나왔다.도 대표는 차에 오르기 전 부인에게 말을 남겼다.“차연이 잘 설득해 봐. 여전히 다른 사람의 내연녀로 평생 더럽게 살 건지, 지금 상태를 보존할 건지 잘 생각해보고 나한테 연락하라고 해.”“생각도 잘 안 하고 결정도 잘 짓지 못할 거면 나한테 연락할 필요도 없다고 전해. 그런 딸이 없는 거로 생각할 테니까.”최애라는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도 대표는 운전 기사에게 운전하라고 지시했다.차는 곧 앞으로 나아갔다.최애라는 어쩔 수 없이 집 안으로 들어갔고 소파 위에 앉아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딸을 보며 최애라는 가슴 아팠다.하지만 딸에게 다가간 최애라는 딸의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욕했다.“도차연!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너한테 그렇게 가르쳤어? 어떻게 이런 일을 꾸밀 수 있었지?”“관성의 전 대표라... 그렇게 훌륭한 남자가 이미 부인까지 있는데도 쫓아다녀? 게다가 더러운 사진도 찍어서 전 대표 부인께 보내다니.”“다른 사람의 혼인 생활을 망치는 것뿐만 아니라 너도 상간녀라고 욕먹는 건 생각 안 해봤어?”“차연아, 너도 훌륭한 여자야. 이 바닥에서 너 정도 조건이면 너와 견줄 수 있는 사람도 몇 명 없을걸. 엄마도 네가 눈이 높다는 걸 알아. 일반적인 남자도 눈에 안 들어올 테고. 전 대표가 싱글이라면 우리도 찬성할 거야.”“하지만 전 대표는 이미 결혼했잖아. 자꾸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빨리 단념해. 엄마와 네 아빠도 평생 서로 사랑하고 있어. 우리도 내연녀가 가장 싫어. 엄마도 네가 내연녀로 사는 걸 원하지 않아.”“너도 입장 바꿔서 생각해 봐. 내연녀가 너의 남편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생각해? 너무 원망스럽지? 너도 네가 원망하는 사람처럼 살고 싶지 않잖아?”도차연은 울면서 대답했다.“엄마, 저는 전 대표가 너무 좋아요. 어떡해요? 저는 그 사람을 보자마자 반했는걸요.”“다시는 그 사람 생각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 거야. 엄마 아빠 말 좀 들어.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야지 그렇게 형편없는 인생을 살
“우리가 널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탓이야. 너에게 정확한 가치관을 가르치지 못하고 외딴길로 가게 한 것에 대해 엄마도 무척 자책하고 있어.”“엄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도차연은 멍청하지 않았다. 아빠가 그녀에게 재산과 사랑 사이에서 굳이 선택하라고 하면 도차연은 전태윤을 선택할 리가 없었다.도차연은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전태윤은 도차연의 인생에서 다만 지나가는 손님일 뿐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없는 손님에 불과했다.최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아빠 엄마는 네가 말로만 대답하는 걸 원하지 않아. 네가 행동으로 보여주길 바라거든. 차연아, 우리를 다시 실망하게 하지 말기를 바라. 엄마 이젠 올라갈게. 너 혼자 여기서 조용하게 잘 생각해 봐.”말을 마친 최애라는 위층으로 올라갔다.도차연은 홀로 소파에 앉아서 슬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울분을 터뜨리기도 했다.최애라는 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딸이 진정으로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기 바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좀 더 생각할 시간을 주어 만약 끝까지 전태윤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녀도 딸을 구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하예정은 도씨 가문에서 난리 난 이러한 일들을 모르고 있었다. 이 일을 전태윤에게 맡기기로 했고 남편이 만족스러운 답을 줄 거라고 믿었다.하예정은 서원 리조트에서 주말을 보냈다.월요일이 다가왔고 또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다.그들은 시내 안으로 돌아와 누군가는 출근하고 누군가는 유치원으로 향했다.하예진은 이모께서 하신 말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서원 리조트에서 돌아와 두 가게의 일을 잘 안배하고 난 뒤 우빈이를 여동생에게 맡기고 바로 이경혜와 함께 강성으로 향했다.전태윤 부부가 월말에 예지연 남매의 백일잔치에 참석하기 위해 예진 리조트에 가야 했기에 하예진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뿐이었다.어느새 일주일이 끝나갔고 하예진은 이경혜와 함께 강성에서 돌아왔다.하예진은 성씨 가문으로 따라가지 않고 여동생의 서점에 있
“아직이야.”“이따가 같이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쏠게.”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좋아요.”그때 심효진이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예진 언니,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우빈이가 매일 언니 보고 싶다고 난리였어요. 저랑 예정이는 우빈이의 ‘엄마 보고 싶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니까요.”우빈이 자연스럽게 말했다.“난 그냥 엄마가 보고 싶으니까 보고 싶다고 말했을 뿐이에요.”‘엄마가 보고 싶은데 걸 어떡해?’심효진이 웃으며 우빈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가게는 아직 바빴기 때문에 세 사람은 오래 이야기하지 못했다.잠시 후 학생들이 저녁 자율학습을 시작하자 학교 앞은 다시 조용해졌다.하예정은 언니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물었다.“큰이모는 집에 가셨어?”“응. 가는 길에 같이 가서 밥 먹자고 하셨는데, 우빈이가 보고 싶어서 안 갔어.”하예정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참지 못하고 하품했다.우빈이는 이모가 하품하는 것을 보고 엄마에게 말했다.“이모는 습관을 바꿔야 해요. 매일 밤 내가 잘 때면 이모는 아직 깨어 있어요. 그리고 낮엔 지금처럼 자주 하품을 해요.”하예진은 걱정스럽게 말했다.“예정아, 몸을 좀 챙겨야 해. 건강이 가장 중요해.”“언니, 나도 알아. 요즘 잠을 잘 자지 못해서 그래. 낮에도 계속 졸려서 점심시간에도 잘 못 쉬어. 누우면 그냥 푹 자버리고 싶거든.”심효진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책방은 나한테 맡기고 신경 쓰지 말라고 내가 항상 말하잖아. 내가 힘들까 봐 걱정하는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약하지 않아. 집에서 정남 씨와 시댁 식구들이 보물처럼 여기면서 아무것도 못 하게 해서 오히려 답답하다니까. 여기 가게에 나와야 숨 좀 쉬는 기분이 들어. 게다가 정남 씨도 사람들을 붙여서 몰래 도와주고 있어.”“그래도 가끔 걱정돼서 오는 거야. 네가 임신한 상태라 걱정이 돼서 그래.”하예정은 자기가 받는 배려만큼 심효진을 챙겼다.하예진이 심효진의 배를 바라보며 웃었다.“이제 임신한 게 눈에 보이네.”심
하예정이 깨어났을 때는 다음 날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 침대에 누워 있는 자기 모습에 하예정은 잠시 혼란스러워했다.‘차로 오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얼마나 잔 거지?’고개를 돌리니 곁에 잠들어 있는 전태윤이 보였다. 하예정은 몸을 돌려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살며시 만졌다.‘이렇게 멋진 남자가 내 남편이라니!’이 생각에 하예정은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전태윤의 얼굴에 입을 맞추려고 다가가려는 순간, 전태윤이 눈을 떴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는지 눈치챈 듯, 전태윤이 다시 눈을 감았다.하예정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깨어났잖아요.”“아니! 안 깼어. 꿈꾸고 있는 거야. 꿈에서 내 아내가 나한테 키스하려고 했어. 키스를 마저 다 받고 깰게.”하예정은 피식 웃었다.“말까지 하면서 꿈꾸는 중이라고요?”“나는 꿈에서도 말해.”오랜 부부인 그들에게 키스는 일상이었다.하예정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몸을 돌려 전태윤 위로 올라탔고,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전태윤은 그녀의 머리를 눌러 키스를 더 깊게 하려고 했지만, 하예정은 그 순간 입술을 떼고 그의 얼굴에 가벼운 키스 몇 번을 더 했다.“이제 일어나도 되겠죠?”전태윤은 눈을 떴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그는 하예정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찌르며 말했다.“당신이 키스해 줄 거라는 걸 알았더라면, 더 오래 잘 걸 그랬어. 당신이 다 벗기고 나서 깼으면 좋았을 텐데.”하예정은 그 위에서 내려와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난 당신이 자고 있을 땐 옷을 벗기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자고 있을 때도...”전태윤은 하예정을 품에 안고 낮게 웃으며 말했다.“가끔만 그랬지.”“지금 몇 시예요? 얼마나 잔 거죠?”전태윤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한 후 말했다.“아직 일러. 7시도 안 됐어.”“밖이 환하잖아요.”“이맘때는 아침 6시 조금 넘으면 이미 밝아져. 몇 달만 있으면 밤이 길어지고 낮이 짧아질 거야. 요즘은 여기저기 뛰어다니
전태윤은 큰 손으로 그녀의 손등을 덮으며 말했다.“얼굴만 비추고 대략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바로 자리를 뜨자. 당신은 술 마시지 말고 그 여자들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좋은 건 내 옆에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는 거야.”“그럼 태윤 씨 말대로 30분만 머물러요. 하지만 당신 옆에 딱 붙어 있을 필요는 없어요. 내가 있는 곳엔 사람들이 알아서 몇 미터씩 떨어지니까요.”모두가 그녀가 전태윤이 애지중지하는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겨우 임신에 성공한 그녀의 아이는 매우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누구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 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그녀가 실수로 넘어지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들이 연루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하예정은 이 상황이 과도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관성 상류층 사람들은 그녀와 거리를 유지하며 아기를 낳고 나서야 모임에 나오라고 권했다.전태윤이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그 사람들이 현명한 거야. 거리를 유지하는 게 나아.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는데 간접흡연을 많이 하면 좋을 게 없잖아.”하예정이 임신한 후, 전태윤은 그녀를 사교 모임에 데려가지 않았다. 간접흡연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서였다.“그럼 그냥 안 갈게요. 아기를 낳고 나서 당신이랑 모임에 나가죠 뭐. 사실 그 여자가 누군지 저랑은 아무 관계도 없잖아요. 낯익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만난 적이 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거겠죠.”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직도 서로 모르는 걸 보면 전에도 잘 안 맞았을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친구가 되었겠지.”하예정은 많은 귀부인들과 잘 맞지 않았고 그들과는 가볍게 인사만 나누는 정도였다. 그녀는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예 관심도 없었고 그들이 누구인지조차 몰랐다.사실 전태윤도 아내가 사교 모임에 가지 않는 것을 더 바랐다. 만약 그녀가 참석하면 그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시간을 보낼 동안 옆에서 지켜야 했다. 그러
“그놈이 후회할 날이 올 거야! 분명 내가 친누나인데 이복누나인 여운초를 믿다니!”여운별은 속으로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한편, 하예정은 방금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젊은 주부가 정교한 인피 가면을 쓴 여운별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사실 하예정은 여운별과 개인적으로 잘 알지도 못했다. 변장한 여운별의 체형이 어딘가 낯익다는 느낌은 받았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끝내 떠올리지 못했다. 하예정의 친한 지인 범위에는 여운별이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익숙하고도 차분한 발소리가 들리자 하예정은 서점 밖으로 나갔다.“태윤 씨!”하예정은 환한 미소를 띠며 남편을 향해 걸어갔다. 전태윤은 눈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여보, 보고 싶었어.”그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나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하예정이 작게 말했다.“다들 보고 있잖아요. 매일 보는데 뭐가 그렇게 보고 싶다고 그래요.”전태윤과 함께 온 경호원 한 명이 봉투 두 개를 들고 서 있었다. 봉투 안에는 포장된 음식이 들어 있었고 그는 그것을 서점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건넸다.전태윤이 직접 아내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직원들은 자연스럽게 서점에 남아 가게를 봐주기로 했고 음식을 준비한 것도 직원들이 서점에서 식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전태윤은 아내의 손을 잡고 차로 향하며 물었다.“피곤하지 않아?”“안 피곤해요. 저 그렇게 약하고 여리지 않아요.”하예정은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답게 단호히 말했다.전태윤은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웃었다.“그럼, 우리 아내가 얼마나 강하고 대단한데.”“말만 번지르르하네요.”전태윤은 그녀를 차에 태웠다. 하예정이 올라타자 그도 따라 탔고 문을 닫은 뒤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그는 아내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장난스레 말했다.“그럼 벌로 뽀뽀 한 번 해줘야겠네.”하예정이 그를 살짝 밀어내며 작게 말했다.“사람들이 웃어요.”“아참. 방금 당신 오기 10분 전
용태호는 여운별에게 약속했다.만약 예씨 가문 사모님의 양자가 자신들이 찾고 있는 사람임이 확인되어 그 아이를 데려오게 되면 여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여운별에게 넘기겠다고 했다.뿐만 아니라 전씨 가문의 큰 며느리도 여운별에게 맡기겠으니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그러나 용태호는 자신이 뱉은 약속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일이 끝난 후 여운별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지만 그녀는 용태호가 자신을 위해 전씨 가문과 소씨 가문을 적으로 돌릴 것이라고 허황한 꿈을 꾸고 있었다.경호원들 또한 용태호의 진짜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여운별을 감시하고 돕는 역할만 맡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지 않고 그녀가 꿈을 꿀 수 있도록 놔두는 것이 그들한테는 최선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여운별은 용 사장을 위해 일할 동기를 잃을 게 뻔했다.여운별은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알겠어요. 하지만 왜 저한테 이렇게 냉정하고 무정하게 대하는 거죠? 사람들 앞에서는 저를 ‘사모님’이라고 불러야 할 거 아니에요.”경호원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그녀에게 공손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마치 관리인처럼 그녀를 철저히 통제했다. 그들은 싸움에도 능했고 여운별은 그들과의 대결에서 한 번도 이긴 적이 없었다.한 번은 그녀가 용태호에게 그들에 대해 고자질했지만 용태호는 그녀에게 경호원들을 화나게 하지 말라고만 조언했다.“그들은 무식하고 자비를 모르는 자들이야. 손에 피를 묻혀본 경험도 많지.”이 말에 겁이 난 여운별은 다시는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경호원 중 한 명이 냉정하게 말했다.“오늘 당신은 새로운 얼굴로 하예정 씨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운별의 신분으로 돌아가 언니를 다시 한번 도발하세요. 그들이 여운별의 소식을 놓치면 곧바로 사장님의 부인 신분을 의심할 겁니다.”여운별이 실종된 상태에서 낯선 용씨 가문의 사모님이 갑작스레 나타난다면 두 사람을 연결 지으려는 의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었다.여운별은 경호원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
전태윤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자 여운별은 급히 좌석에 몸을 낮추어 바깥에서 그녀를 볼 수 없도록 했다.사실 전태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가능성이 컸지만 여운별은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상대방이 자신을 알아볼까,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들통날까 걱정했다.하예정이 그녀를 감옥에 보낸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방심해 하예정의 무술 실력을 몰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하예정 뒤에 전태윤이라는 강력한 후원자가 있었기 때문이다.지금은 여운별 역시 용 사장을 등에 업었지만 전태윤의 전용 차량을 보기만 하면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끼고 숨고 싶어 했다.전태윤의 차량이 지나가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의자에 몸을 움츠리고 있는 여운별을 발견했다. 바깥에서 보면 마치 뒷좌석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지금 뭐 하는 겁니까?”경호원이 불만 가득한 어조로 물었다.여운별은 고개를 들어 차창 밖을 몰래 살폈다. 전태윤의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안도하며 자세를 바로 세우고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급히 몸을 숨기느라 옷이 약간 구겨졌는데 모두 명품 옷이라 그녀는 저절로 조심스럽게 다뤘다.“방금 지나간 차들, 누구 차인지 아세요? 그 롤스로이스는 전태윤이 자주 사용하는 차량이에요. 뒤따라온 차량들은 그의 경호팀 차량이고요. 그의 경호팀은 항상 그를 따라다녀요.”여운별은 긴장한 얼굴로 설명했다.전태윤이 경호팀을 대동하는 이유는 과거 그의 열렬한 팬들이 과도하게 따라붙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결혼 후에도 그는 경호팀을 유지했는데 이는 젊은 여성들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와 아내의 오해를 사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특히 과거 도차연 사건은 전태윤과 하예정에게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전태윤과 도 대표가 사업을 논의하면서 도차연에게 접근할 기회를 줬고 하예정의 자리를 넘보고 있던 도차연은 전태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를 찾아 애정 행각이 담긴 사진을 찍어 하예정에게 보냈다.경호원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아가씨, 자신의 얼굴을 만져
“사장님께서는 아가씨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자신의 능력을 키우라고 하셨습니다. 성격도 고치고 온화하며 품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하며 귀부인의 태도를 갖추라고 하셨죠. 예전처럼 오만하고 거칠게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류층 귀부인들 사이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경호원의 말에 여운별은 입을 삐죽이며 불만을 드러냈다.“당신들은 그 귀부인들이 오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사실 그 여자들도 꽤 오만한 점이 있어요. 당신들이 직접 만나보지 못했을 뿐이죠.”“우리 여씨 가문도 명문가라고요. 나는 단지 나이가 어리고 성격이 좀 강해서 그렇지 품위가 없는 건 아니에요. 나도 품위를 지킬 줄 알아요. 예전 내 사교계에도 다 명문가의 딸들과 부잣집 아가씨들뿐이었죠.”비록 여운별의 어머니가 형부와 재혼하며 사교계에서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가문의 둘째 딸로서 그녀가 관성의 상류층에서 차지한 지위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여운별은 자신이 성소현 같은 이들과는 비교될 수 없더라도, 많은 부잣집 딸들보다 훨씬 낫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그녀는 여전히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기품과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고, 지금은 스무 살로 한창 꽃다운 시기였다. 조금 오만하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큰 문제냐는 태도를 유지했다.“아가씨, 지금은 관성에 있으니 더 이상 여씨 가문의 부잣집 아가씨 행실을 하면 안 됩니다. 이를 꼭 명심하세요. 만약 사장님께서 지시하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정체가 드러난다면 매우 끔찍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사장님은 성격이 별로 좋지 않으시거든요.”경호원의 경고는 이어졌다.“게다가 사모님의 수완도 뛰어나십니다. 사장님이 직접 나서지 않고 사모님께 아가씨를 넘기시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생길 겁니다. 사모님은 당신이 어느 명문의 딸인지 개의치 않으십니다. 당신의 목숨은 사모님의 한마디에 달려 있죠.”이 말을 들은 여운별의 얼굴이 굳
“우리 가게에는 유아용 교재가 없어서요. 다른 문구 방에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정의 서점은 중학교 앞에 위치해 주 고객층이 중학생이었고 유치원용 책은 들여놓지 않았다.“아, 그렇군요. 그럼 잠시 후 다른 문구 방에 가봐야겠어요.”젊은 여자는 책값을 지불하고 책을 들고 나가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하예정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아마도 전태윤과 함께 행사에 참석했을 때 스치듯 본 적이 있을지 몰랐지만 깊이 알지는 못해 기억나지 않는 것이라 여겼다.‘잠시 후 태윤 씨한테 물어봐야겠다. 어떤 가문일까? 장남은 결혼했고 작은아들은 중학생이고 막내딸은 유치원이라니...’젊은 여자는 스물한두 살쯤으로 보였고 남편도 젊을 가능성이 컸다. 하예정은 임신 전 상류층 모임에 자주 참석했지만 어느 집안 자제가 그렇게 일찍 결혼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아는 젊은 여자들은 대체로 그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방금 본 여자가 속한 가문은 아직 명문으로 자리 잡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여자의 차는 근처에 주차된 흰색 BMW7 시리즈였다. 차 앞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두 명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가 가까이 다가가자 두 남자는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그녀의 경호원과 운전기사인 듯했다.“출발하죠.”여자는 차에 올라 운전사에게 지시했다. 차가 멀리 떠난 후, 그녀는 가게 쪽을 돌아보았다. 하예정이 더 이상 자신을 보지 못할 거리라고 판단한 순간, 여자는 얼굴을 만지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 젊은 여자는 바로 여씨 가문의 둘째 딸, 여운별이었다. 그녀는 현재 용태호의 스폰녀로 지내고 있었지만 사교계에서는 용씨 가문 사모님을 사칭하며 활동 중이었다. 이는 용태호가 모든 의심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조치였다.여운별은 용태호가 준 인피가면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녀의 임무는 하예정에게 접근해 친구가 된 후 용정이라는
“저도 마음이 놓이네요. 엄마, 윤하가 아직 소 대표의 고백을 받아주지 않은 거 맞죠? 제가 대신 받아주고 싶네요. 소씨네 식구들 성격이 다들 시원시원해서 우리 윤하한테 잘 맞는 거 같아요. 윤하도 덜렁덜렁 거리는게 저 집안과 바이브가 맞아요.”윤하 어머니는 혁진에게 말했다. “네 동생 일생의 큰 일이야. 우리가 잘 체크해주고 나머지는 윤하한테 맡겨야지. 지훈한테 시집가는 사람도 윤하도 한평생 같이 살 사람도 윤하 자신이니까 걔가 좋아야 되지. 그리고 윤하 다음은 너랑 혁주야. 너희 둘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엄마, 저 쌀 씻으러 갈게요.” 윤하 어머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결혼 잔소리를 했고 혁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들어갔다.그런 혁진을 보고 어머니는 몇 마디 나무랐다.연성의 겨울은 눈 내린 광경을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관성은 아직도 최고 기온이 25도나 되는 여름이어서 길거리에는 반팔티를 입고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하예정은 서점에서 남편이 데리러 오기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관성 호텔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그녀는 이제 더 이상 공예품을 만들지 않았다. 온라인 쇼핑몰도 전에 그녀를 도왔던 아기엄마한테 양도했다.지금은 서점에서 일하고 있고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조금 바빠질 뿐, 다른 시간에는 아주 한가해서 옆 가게 탐방도 자주 하곤 했다. 비록 경호원들이 뒤따르지는 않지만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길까 항상 주시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소설을 좋아해서 그녀가 서점을 지키고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앉아 소설을 읽곤 했다.하예정은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고전 작품 한 권을 골라 읽었지만 자꾸만 하품이 나와 결국 읽기를 포기했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를 지나 책장 앞에 다가가 먼지털이로 책우의 먼지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먼지가 별로 없었지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할 일을 찾아야 했다.그때, 밖으로부터 또깍또깍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처음 보는 젊은 부인이 서점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에르메스 백을 들고 있었고
혁진은 거실에서 지훈이 부모님이랑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훈이 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호탕한 분이셨다. 혁진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만 두 사람은 말이 잘 통했다.지훈이 마침 아침밥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의형제를 맺을 기세였다.지훈이 어머니는 그런 남편을 몇 번이나 눈치를 주었다.이 양반이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 까먹은 거 아니야?여기는 윤하네 집, 예비 사돈댁이라고. 혁진은 예비 며느리 친오빠고, 두 사람이 형제를 맺으면 나중에 아들더러 어떻게 처신하라는 거야.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네.“아버지, 어머니, 윤하 씨 어머님께서 아침을 준비해 주셨어요. 따뜻할 때 드세요. 저희는 이미 먹었어요.”지훈은 부모님을 주방으로 불렀다. “점심은 여기서 먹어요. 조금 있다가 윤하 씨랑 제가 장 봐 올게요.”지훈이 어머님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좋아, 나도 나가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싶어. 지훈이 아버지, 당신도 같이 가요. 짐도 들어줄 겸.”남편의 의견을 물어보는 듯했지만 사실상 답정너였다. 집에 두고 갔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장 보고 돌아올 땐 이미 혁진이랑 형제를 맺었을지도 모른다.“그래요.”지훈이 아버지는 흔쾌히 대답했다.윤하 어머니는 주방에서 나오며 민망한 듯 말했다. “두 분께서 오시는 줄을 몰라서 제대로 준비 못 했어요. 점심에는 뭘 드시고 싶으세요? 말만 하세요, 제가 다 할 수 있어요. 가족이라 생각하고 편히 말씀하세요. 내외할 것 없어요.”지훈이 어머니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 저희 안 그래요. 이제는 가족이나 마찬가진데요. 저희는 뭐든 잘 먹어요. 아무거나 다 돼요.”“사돈, 윤하는 정말 훌륭한 아가씨예요. 저희 지훈이랑은 비교가 안 돼요. 지훈이 때문에 저희 두 사람 속 많이 태웠어요.”지훈이 어머니는 실수도 사돈이라고 불렀지만 윤하 어머니는 개의치 않았다. “과찬이세요. 저희 윤하도 속 썩일 때가 많았어요. 지훈이야말로 성숙하고 성격도 온화하고 너그럽고 유망한 청년이죠. 저희 윤하보다 훨씬 나은 걸
원래부터 지훈을 마음에 들어 하던 윤하 어머니는 지훈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나서 더욱 자신의 사윗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윤하와 결혼을 하게 되면 지훈은 그녀를 더욱 소중히 아낄 것이 분명했기에 윤하 어머니는 딸이 멀리 관성에 시집가서 마음고생할 거라는 걱정이 사라졌다.윤하와 어머니는 주방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지훈이 부모님을 대접할 아침을 준비했다.지훈도 주방으로 들어와 일손을 도왔다.“지훈 씨, 안 도와줘도 돼요. 가서 부모님이랑 얘기 나눠요.”윤하는 지훈을 밀어냈다.“부모님이 저더러 도와주라고 해서 들어왔는데 저를 또 저쪽으로 보내시면 어떻해요? 누구 장단에 맞춰야 해요? 아차! 아버님이랑 큰형님이 안 보이시는데 아직 주무시나요? 아니면 도장에 일찍 나가셨어요?”지훈은 그 두 사람이 보이지 않자 물어보았다. 아까는 그럴 겨를조차 없었다.“두 사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공항에 갔어. 이쯤 되면 아마 비행기에 올랐을 거야.”윤하 어머니가 대답했다.지훈은 별생각 없었다. 고백도 했고 부모님도 인사하러 오셨고 지금은 그저 윤하의 답변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사실 지훈도 내심 많이 긴장됐다.그도 윤하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옷도 사주고 고백 후에 도망치지도 않았기에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하지만 윤하가 명확히 대답하기 전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거절할 수도 있기에 두려웠다.윤하가 설령 거절한다고 해도 지훈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다.질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가 선택한 사람이라면 평생 그 한 사람한테만 마음을 줄 그런 사람이었다. “어머님, 준비 많이 하시지 마세요. 두 분 간단히 요기하면 돼요. 제가 이따가 두 분 호텔로 모셔다드릴 거예요. 거기서 식사하시면 돼요.”“귀한 손님들이 멀리서 오셨는데 점심은 내가 대접해야지. 외식할까 아니면 집에서 먹을까?”윤하 어머니는 물었다.“집에서 먹으면 윤하랑 혁진이는 오늘 도장 나가지 말고 장 좀 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