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한지혜는 어이가 없었다.한지혜는 눈을 부릅뜨고 허연후를 노려보며 비수를 꽂았다.“미안하지만, 저는 연후 씨의 아내가 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저 대신에 누구와 결혼하던 저는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이제 그만 시끄럽게 굴고 떠나요. 저는 이만 좀 자야겠어요.”“지혜 씨가 자는 걸 보고 갈게요.”“연후 씨가 곁에 있으면 제가 잠을 제대로 잘 것 같아요?”그러자 허연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제가 갑자기 지혜 씨한테 덮칠까 봐 그래요
한지혜는 전화를 끊기 바쁘게 SNS에 접속해 보았다.그녀와 허연후의 기사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자 한지혜는 순간 뒤통수가 뻐근해 났다.2년간 열심히 일해서 겨우 여우주연상을 탔더니 고작 허연후와의 열애설에 덮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화가 잔뜩 난 한지혜는 조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수아야, 혹시 아는 기자라도 있어? 지금 나와 연후 씨의 열애설을 덮어버리고 싶어.”마침 사무실에서 강소연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던 조수아는 한지혜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연후 씨 신분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건가?”조수아의 예리
허연후의 뻔뻔한 태도에 한지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후 씨, 혹시 제 말이 이해되지 않아요? 우리는 절대 잘 될 리가 없으니까 앞서나가지 말아요. 그리고 연후 씨가 한 말에 책임을 져요. 애초에 연후 씨가 결혼을 무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태도를 180도로 바꾸면 연후 씨가 더 가벼워 보일 뿐이에요. 그리고 연후 씨의 눈에는 우리 가족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요?”한지혜가 화를 내는 모습에 이미 습관이 된 허연후는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지혜 씨 가족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제가 지혜 씨 없이는 안돼서 그래요.”“
강소연은 앞으로 감옥에서 썩어갈 나날을 생각하며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조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소연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연 씨, 당신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어요. 감히 법률의 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말아요. 소연 씨가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법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조수아는 강소연에게 냉정한 현실을 깨우쳐주고는 자리를 떠났다.감사실에 혼자 남은 강소연은 목 놓아 울었다.강소연은 강씨 집안의 외동이라 어릴 적부터 애지중지 키워졌다. 그
전화를 끊은 박경준은 즉시 비서에게 명령했다.“어르신 쪽의 사람들을 잘 감시해. 절대 주지훈이 어르신의 정체를 알게 해서는 안 돼.”비서는 냉큼 대답했다.“걱정하지 마세요. 누구도 어르신께서 그런 곳에 계실 거라고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모셨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박근태에게 장례식을 치러주고 내가 순리롭게 자리를 물려받아 다음 후계자가 되는 거지. 너는 박근태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퍼뜨려.”“박근태가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박주영과 박서준이 올 게 뻔한데 두 사람이 집권을 물려받는 데 영향을 주지 않을까요?”그러
박경준은 입꼬리를 쓱 올리더니 대답했다.“내가 주영이를 얼마나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어떻게 정신하나 온전치 못하다고 싫어할 수 있겠어. 주영이를 평생 옆에서 지키는 게 나의 소원이야.”“삼촌이 이렇게 말하시는데 저도 더 반대할 이유가 없네요. 제가 어머니를 옆에서 돌보려면 확실히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비돼요. 두 분 결혼하는 거 저는 찬성이에요.”박서준의 허락을 받자 박경준은 바로 얼굴이 환하게 번졌다.“고마워, 서준아.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어릴 적부터 삼촌을 보면서 자랐는데 어떻게 믿지 않을 수 있겠어요.”“그래.
박주영이 갑자기 그의 이름을 똑똑히 부르자 박경준은 깜짝 놀라서 눈길을 그녀에게로 돌렸다.박경준은 박주영의 차가운 얼굴을 보며 물었다.“주영아, 너 방금 뭐라고 했어?”박주영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박경준, 우리 부모님이 너를 입양하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키워준 걸 감사해도 모자랄 망정에, 지금 갖은 방법을 다 써가며 두 사람을 죽이려던 것도 모자라 운송 그룹의 대표 자리까지 차지하려고 해? 바라는 게 너무 많은 거 아니야?”전의 말은 실수였다고 쳐도 지금 이 말은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했다기엔 조리 정연하
육문주는 몸매를 따라 깔끔하게 떨어지는 검은색 양복을 입고 냉정한 표정으로 박경준을 바라봤다.“아쉽게도 제가 삼촌을 실망하게 했네요. 제가 삼촌이 설치해 놓은 모든 폭탄을 제거했거든요. 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육문주가 뜬금없이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자 박경준은 순간 모든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박경준은 피식 웃더니 입을 뗐다.“너 진작에 박주영이 네 친엄마인 것을 알고 있었네. 그래서 박서준과 둘이 짜고 서로 육엔 그룹을 두고 경쟁하는 것처럼 연기를 하고 너는 2년 동안 숨어서 몰래 계획을 짠 거야?”육문주는 한쪽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