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이건 또 무슨 상황인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한지혜가 바로 그의 약혼녀였다니, 어떻게 그동안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어이가 없기도 했다.허연후는 반쯤 넋이 나가서 허순철을 바라보았다.“할아버지, 지혜 씨가 전에 매일 참새처럼 재잘대던 그 아이예요?”허순철은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지혜가 그 아이가 맞든 아니든 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이윽고 허순철은 한지혜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물었다.“지혜야, 나는 순철 할아버지야. 나를 기억하겠어?”한지혜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조병윤의 목소리를 들은 한용건은 크고 따뜻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참 잘됐네, 잘 됐어. 수아도 이제 드디어 마음 놓을 수 있겠네. 2년 전 우리 모두 너보다도 수아가 버티지 못할까 봐 걱정했었는데 이 역경도 결국에는 잘 이겨내서 다행이야.”그들은 서로 간단히 안부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강미자와 한건우는 일찍부터 호텔에 연락해 방을 파티 분위기로 바꿔 달라고 했다.방에 들어서자마자 천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와, 완전 이뻐요! 너무 화려해서 이모가 결혼식을 연 줄 알았어요.”한지혜는 싱긋 웃으며
줄곧 가벼운 이미지였던 연후가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그는 길게 찢어진 눈을 부릅뜨며 한지혜를 빤히 바라봤다.반면 한지혜는 허연후의 솔직한 고백에도 조금도 마음 흔들리는 기색 하나 없었다.뒤통수를 세게 맞고서야 비굴하게 용서를 비는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심지어 한지혜는 강소연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기에 전혀 고백을 받을 기분이 아니었다.허연후가 일부러 강소연을 자극하지만 않았어도 그녀가 이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강소연에게 되지도 않는 희망을 준 건 허연후였다.그가 무정하게 그
허연후는 한지혜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얼굴을 문질렀다.한지혜가 마침 실크 슬립을 입은 탓에 허연후가 얼굴을 조금만 비벼대도 그의 턱은 그녀의 말랑말랑한 부위와 닿았다.너무도 갑작스러운 스킨쉽에 한지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한지혜는 그를 밀쳐내고는 욕을 마구 퍼부었다.“연후 씨, 발정한 거면 여기서 귀찮게 굴지 말고 가서 술집 여자나 찾아요.”그러자 허연후는 고개를 들고 눈이 벌겋게 부어서 한지혜를 빤히 쳐다보았다.“저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몸이 달아오르지 않아요. 오직 지혜 씨를 볼 때 본
허연후가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한지혜는 어이가 없었다.한지혜는 눈을 부릅뜨고 허연후를 노려보며 비수를 꽂았다.“미안하지만, 저는 연후 씨의 아내가 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저 대신에 누구와 결혼하던 저는 상관없으니까 마음대로 해요. 이제 그만 시끄럽게 굴고 떠나요. 저는 이만 좀 자야겠어요.”“지혜 씨가 자는 걸 보고 갈게요.”“연후 씨가 곁에 있으면 제가 잠을 제대로 잘 것 같아요?”그러자 허연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제가 갑자기 지혜 씨한테 덮칠까 봐 그래요
한지혜는 전화를 끊기 바쁘게 SNS에 접속해 보았다.그녀와 허연후의 기사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자 한지혜는 순간 뒤통수가 뻐근해 났다.2년간 열심히 일해서 겨우 여우주연상을 탔더니 고작 허연후와의 열애설에 덮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화가 잔뜩 난 한지혜는 조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수아야, 혹시 아는 기자라도 있어? 지금 나와 연후 씨의 열애설을 덮어버리고 싶어.”마침 사무실에서 강소연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던 조수아는 한지혜의 말을 듣고 잠깐 고민에 빠졌다.“연후 씨 신분이 쉽게 노출될 수 있는 건가?”조수아의 예리
허연후의 뻔뻔한 태도에 한지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연후 씨, 혹시 제 말이 이해되지 않아요? 우리는 절대 잘 될 리가 없으니까 앞서나가지 말아요. 그리고 연후 씨가 한 말에 책임을 져요. 애초에 연후 씨가 결혼을 무른 거예요. 그런데 이제 와서 태도를 180도로 바꾸면 연후 씨가 더 가벼워 보일 뿐이에요. 그리고 연후 씨의 눈에는 우리 가족이 그렇게 우스워 보여요?”한지혜가 화를 내는 모습에 이미 습관이 된 허연후는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지혜 씨 가족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제가 지혜 씨 없이는 안돼서 그래요.”“
강소연은 앞으로 감옥에서 썩어갈 나날을 생각하며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나왔다.조수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소연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소연 씨, 당신이 아무리 숨기려 해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어요. 감히 법률의 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말아요. 소연 씨가 마음대로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법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아요.”조수아는 강소연에게 냉정한 현실을 깨우쳐주고는 자리를 떠났다.감사실에 혼자 남은 강소연은 목 놓아 울었다.강소연은 강씨 집안의 외동이라 어릴 적부터 애지중지 키워졌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