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의 추측에 박서준은 베란다에서 담배 한 모금 깊게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어머니와 임다윤이 워낙 닮아서 가능성이 없지는 않아요.”육문주는 진지하게 자신의 추측을 이어 나갔다.“두 분의 글씨체도 똑같아서 두 사람 중 한 명이 상대방을 따라 했을 수 있어요. 그렇게 따라 배워 아버지가 두 사람을 분간할 수 없게 한 것일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가 박 여사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거고. 아마 박 여사님은 어머니인 척하며 아버지한테 접근했을 거예요. 그러다가 박 여사님이 임신하니까 위기감을 느낀 어머니가 박
“아니요. 단순히 와서 저를 돕는 것뿐이에요. 하지만 서준 씨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이기도 하죠. 그래야 저도 수아와 함께할 시간이 많아지니까요.”“네. 내일 출근하는 대로 사무실에 들를게요.”“그나저나 아이는 좀 어때요?”아빠가 된 육문주는 아이의 생사를 걱정하는 연성빈과 동질감을 느꼈다.연성빈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제 세리가 검사를 받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의사가 바로 알아챌 수 있대요. 운이 좋으면 아이가 32주까지 버틸 수 있다네요.”태아는 보통 37주 차가 지난 뒤에야 세상에 나올 수 있다. 32주 차가 되기
혹시 아이한테 피해가 갈까 봐 연성빈은 키스하는 내내 감정을 억제했다.연성빈은 세리의 턱을 들고 그녀의 얼굴에 몇 번이고 입을 맞출 뿐이었다.다시 세리와 스킨십을 하니 순간 3년 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 올랐다.그때의 세리는 항상 미소를 띤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연성빈을 보면 잔뜩 신나서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쪼르르 달려갔다.세리는 연성빈의 품에 와락 안겨 환하게 웃어 보였다.“성빈 씨, 제가 수업 시간에 성빈 씨 생각한 걸 어떻게 알았어요?”연성빈은 피식 웃고는 세리의 코를 꼬집으며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유
해가 동쪽에서 뜨고 나서야 세리는 기진맥진해서 연성빈의 품에 안겨 잠을 청했다.두 사람은 그날 처음으로 서로의 입장에 관해 얘기를 나눴다.그 뒤로 두 사람은 동거를 시작했다.과거를 되돌아본 연성빈은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둘의 이야기는 아름답고도 가슴이 시렸다.세리에 대해 좀 더 알고 그녀가 얼마나 억울했을지 생각했더라면 연성빈은 이별 통보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랬다면 세리가 이토록 상처받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연성빈은 그들이 처음 입 맞췄을 때처럼 조심스럽게 입술을 세리한테 맞댔다.그러고는 입이 닿도록 사과
기대에 부풀어 있는 민우를 보고 세리는 차마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세리는 몸을 숙여 민우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엄마, 아빠가 같이 자줄게.”민우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짜예요? 민우도 드디어 아빠, 엄마랑 자는 거예요? 와, 저 너무 신나요.”민우는 세리의 볼에 뽀뽀하고는 빙그레 웃으며 연성빈을 바라보았다.“엄마가 같이 자는 것을 허락했는데 아빠는 안 기뻐요?”연성빈은 민우의 통통한 볼살을 꼬집으며 미소를 지었다.“나도 기뻐.”“기쁜데 왜 무뚝뚝해 있어요? 이렇게 철이 없으니
“응. 걱정하지 말고 출근해. 지혜가 오늘 나와 함께 있어 준댔어. 그리고 아이한테 줄 선물을 가득 사놨대. 역시 내 친구라 스케일이 달라. 문주 씨 친구들은 언제쯤 삼촌 노릇을 제대로 할지 모르겠네.”육문주는 환하게 웃으며 조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연후가 아직 지혜와 사귀지는 못했어. 연후가 지혜한테 약점을 잡혔거든.”조수아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육문주를 올려다보았다.“문주 씨 나한테 뭔가 숨기게 있지? 왜 두 사람 얘기만 나오면 다 알고 있는듯한 표정이야? 설마 연후 씨가 지혜 몰래 나쁜 일을 저지른 건 아니지?”
허연후는 곧바로 뒤따라가 큰 손으로 한지혜의 등을 쓰다듬었다.가늘게 뜬 눈으로 순간 밝은 빛이 반짝였다.“지혜 씨, 혹시 이번 달 생리가 안 왔나요?”한지혜는 순간 어리벙벙해졌다.여태까지 생리가 매우 규칙적으로 찾아왔었다.하지만 매달 월초에 오던 생리가 월말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최근에 촬영하느라 바빠서 한지혜는 이 일을 아예 잊고 있었다.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지난번 한지혜가 술에 잔뜩 취하고 허연후와 미친 듯이 관계를 나눈 밤, 그리고 그 뒤로 욕실에서 허연후는 단 한 번도 콘돔을 끼지 않았다.혹
허연후는 생각도 하지 않고 한지혜의 뜻을 반대했다.“왜 임신한 몸으로 일하려 하는 거예요? 전 지혜 씨와 아이를 못 먹여 살릴 만큼 무능하지 않아요. 임신한 게 확인되면 일할 생각은 접어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해요.”“싫어요. 제가 무명으로부터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요. 저 절대로 이렇게 쉽게 포기 못 해요. 제가 애초에 결혼을 안 하려고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는지 알아요? 수아가 저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거예요.”“결혼을 안 하려고 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혜 씨한테 약혼자가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