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걱정하지 말고 출근해. 지혜가 오늘 나와 함께 있어 준댔어. 그리고 아이한테 줄 선물을 가득 사놨대. 역시 내 친구라 스케일이 달라. 문주 씨 친구들은 언제쯤 삼촌 노릇을 제대로 할지 모르겠네.”육문주는 환하게 웃으며 조수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연후가 아직 지혜와 사귀지는 못했어. 연후가 지혜한테 약점을 잡혔거든.”조수아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육문주를 올려다보았다.“문주 씨 나한테 뭔가 숨기게 있지? 왜 두 사람 얘기만 나오면 다 알고 있는듯한 표정이야? 설마 연후 씨가 지혜 몰래 나쁜 일을 저지른 건 아니지?”
허연후는 곧바로 뒤따라가 큰 손으로 한지혜의 등을 쓰다듬었다.가늘게 뜬 눈으로 순간 밝은 빛이 반짝였다.“지혜 씨, 혹시 이번 달 생리가 안 왔나요?”한지혜는 순간 어리벙벙해졌다.여태까지 생리가 매우 규칙적으로 찾아왔었다.하지만 매달 월초에 오던 생리가 월말이 되도록 오지 않았다.최근에 촬영하느라 바빠서 한지혜는 이 일을 아예 잊고 있었다.좋지 않은 예감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지난번 한지혜가 술에 잔뜩 취하고 허연후와 미친 듯이 관계를 나눈 밤, 그리고 그 뒤로 욕실에서 허연후는 단 한 번도 콘돔을 끼지 않았다.혹
허연후는 생각도 하지 않고 한지혜의 뜻을 반대했다.“왜 임신한 몸으로 일하려 하는 거예요? 전 지혜 씨와 아이를 못 먹여 살릴 만큼 무능하지 않아요. 임신한 게 확인되면 일할 생각은 접어두고 모든 일정을 취소해요.”“싫어요. 제가 무명으로부터 이 자리까지 어떻게 올라왔는데요. 저 절대로 이렇게 쉽게 포기 못 해요. 제가 애초에 결혼을 안 하려고 얼마나 힘든 나날을 보냈는지 알아요? 수아가 저를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길거리에서 굶어 죽었을 거예요.”“결혼을 안 하려고 했다니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지혜 씨한테 약혼자가 있었
의사는 실험 보고서를 허연후에게 보여주며 호탕하게 웃었다.“연후야, 아무래도 네가 결혼하는 것을 보긴 힘들 것 같아. 더 노력해 봐. 여자분은 내분비 불균형에 위장이 좋지 않았을 뿐이야.”허연후는 실험 보고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모든 수치가 정상인 것을 보고 김빠진 공처럼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허연후는 한지혜가 임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한지혜와 뜨거운 밤을 보냈던 그날, 허연후는 열심히 허리를 흔들었고 한지혜는 눈물까지 보였다. 심지어 관계를 오래 가졌을 뿐만 아니라 한지혜의 배란일이었는데도 임신하지 않았다
허연후는 한지혜를 집에 데려온 뒤 바로 침대에 던져버렸다.그리고 넥타이랑 단추도 신경질적으로 풀었다.벨트도 풀려고 하려던 그때 한지혜가 그의 배를 발로 차면서 불같은 화를 냈다.“허연후 씨, 오늘 날 건드리면 바로 당신 앞에서 혀 깨물고 죽어버릴 거예요!”허연후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길고양이처럼 한껏 날이 선 한지혜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죽는 법도 여러 가지인데 저랑 하다가 죽는 거라면 괜찮을지도?”말을 마친 뒤 냉큼 한지혜에게 달려들었다.뜨겁고 강압적인 입맞춤이 단번에 그녀를 덮쳐
한지혜가 욕실에서 나와보니 허연후가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는 한껏 어두워진 얼굴에 눈빛은 왠지 슬퍼 보였다.한지혜는 냉큼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으며 퉁명스럽게 물었다.“남의 핸드폰은 왜 훔쳐봐요?”허연후는 담뱃불을 끄더니 냉큼 그녀를 품에 안았다.은은하게 풍기는 그의 담배 냄새와 한지혜의 비누 향이 어우러지면서 그녀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혹시 선봐요?”한지혜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지금 찍는 작품이 다음 주면 끝나거든요. 기회를 봐서 당신이랑 헤어지고 부모님의 소원대로 맞선보러 다
한지혜는 그를 한번 쏘아본 뒤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걱정하지 마요. 그에 대한 수고비는 제가 톡톡히 치러줄 테니까. 그리고 이 뒤로부터 저희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란 걸 명심해요.”허연후는 진지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화가 난 나머지 이를 악물었다.“그래요. 진짜 저랑 헤어질 수 있는지 두고 볼게요!”말을 마친 뒤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다른 한편.박서준은 약속대로 육문주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사무실에는 연성빈도 와 있었고 책상 위에는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살짝 찌푸렸는데 아무래도 일이 생
그의 물음에 박서준은 온몸이 굳어졌다.박주영이 임다윤 대신이 아니란 소리는 즉...“설마 그때 당신 아버지랑 연애했던 사람이 우리 어머니란 소린가요?”육문주는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지금까지 이 가설이 제일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랑 연애했던 사람이 주영 이모, 즉 진짜 임다윤이고 아버지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은 가짜에요. 강철은 육씨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해 임다윤과 닮은 여자를 찾아 성형수술을 해주고 모든 행동들을 똑같이 배우게 시켰겠죠. 그렇게 제 아버지 곁으로 보내서 육씨 가문을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