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빈의 고백에 시후는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그냥 때 마침 쓰레기 같은 놈들을 만나서 손 좀 봐줬을 뿐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여빈은 진지하게 말했다. "진짜 고맙다니까요!” 그후 여빈은 그 여세를 몰아 시후 옆에 앉았고, 손을 뻗어 시후의 팔에 팔짱을 꼈다.시후는 놀라 팔을 빼며 "여빈 씨, 이러지 마요. 유나 씨가 보면..?"이라고 입을 열었다.여빈은 헤헤 웃었다. “그럼 유나가 보지 않을 때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 후훗!”"어.. 그런 뜻이 아닌데…." 시후는 당황하여 답했다.여빈은 조금 더 그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내가 당신을 꼭 안고 있을 때 내가 제일 원하는 건 그냥 이 모습을 유나가 보는 거예요! 그래서 유나와 당신이 이혼하게 만들고, 앞으로 당신이 나와 함께 하게 되는 거라고요~”그 말을 들은 시후는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당신은 유나 절친이잖아?!"여빈은 "유나와 당신이 정말 사랑해서 결혼하지 않은 걸 알고 있어요. 그게 다 할아버지의 고집 때문이라면서요?"라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사실 유나는 당신에게 시집갈 의향이 생긴 것이고.. 나도 알아요 두 사림이 아직 같은 침대에서 잔 적도 없다는 걸요! 결혼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왜 서로 매달리는 거예요? 그냥 빨리 이혼 하구 각자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는 것! 이게 더 좋은 선택 아닌가요? 그러니 두 사람 다 시간을 지체하지 말라고요!"하지만 시후는 "유나에 대한 내 감정을 여빈 씨는 몰라요!"라며 손사래를 쳤다.여빈은 대담하게 물었다. "그럼.. 당신에 대한 내 감정은 알아들었어요?"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만, 승낙할 수는 없어요. 미안해요." “왜요?” 여빈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당신은 왜 진전도 없는 결혼 생활을 계속 하고 싶다고 하는 거예요? 진정한 사랑을 추구하라고요!"라고 말했다.시후는 "저번에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우리 둘은 어울리지 않아요. 내가 이혼을 한다고
그런데 이런 일을 자신이 어떻게 승낙할 수 있겠는가?우선, 유나에 대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 해..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가라는 이야기를 듣고 유나는 불만족스러웠지만 결국 자신과의 결혼을 승낙했고, 온 가족이 자신을 비웃고 비아냥거려도 유나는 결코 자신을 무시한 적이 없었다.그리고 복지관 이모님이 병을 앓은 후, 그녀는 줄곧 장모 앞에서 아껴 먹고 아껴 쓰며, 자신에게 돈을 빌려주었고 아주머니의 병원비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기에 이 은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것이었다.그러니 이런 그가 어떻게 여빈을 애인으로 삼을 수 있겠는가?바로 그때, 깊은 잠에 빠졌던 유나의 몸이 갑자기 움직였다.시후는 깜짝 놀라서, 얼른 여빈의 품에서 팔을 빼냈다.여빈은 아직 잠이 덜 깬 유나를 보자마자 빠르게 시후의 입에 자신의 얼굴을 대고 가볍게 입을 맞추도록 했다.시후가 아직 정신을 못 차리는 찰나에 여빈은 이미 얼굴을 붉히며 헤엄쳐 갔다.시후는 유나가 빠르게 깨어났기에 더 이상 뭐라고 말할 수 없었다.유나는 이때 기지개를 키고는 눈을 뜨고 "아이쿠! 온천에 몸을 담그니까 그동안의 피로가 확 풀리는 것 같아~~"라고 말했다.말을 마치자, 그녀는 여빈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여빈아, 온천수가 그렇게 뜨겁지 않은데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개?"여빈은 수줍게 얼굴을 문지르고 그제야 "물이 별로 뜨겁지 않은데, 내 옆에 이렇게 예쁜 미녀가 누워있으니 너만 보면 온몸이 뜨거워져서 그렇지…? 후훗.."하며 웃었다.그리고 말을 하면서, 손을 뻗어 유나를 살짝 꼬집었다.유나가 급히 피하니, 여빈은 황급히 그녀에게 물을 뿌리고, 유나도 물을 손에 모아 반격하자 두 사람은 소란을 피워댔다.여빈의 몸매는 더욱 아름다워 시후의 눈이 멀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른 편에는 유나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였다.시후는 더위를 느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황급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두 여자를 보지 않았다.여빈은 이를
시후가 아내, 여빈과 함께 온천에 있을 때, 이마에 글자가 새겨진 류진과 성형녀 여자친구는 허름한 차에 탄 채 덜커덕거리며 서울로 돌아가고 있었다.차에 타고 있던 류진은 운전사가 볼까 봐 피가 흥건히 흐르는 이마를 가리고 있었다.그는 샹젤리 호텔을 떠나면서 이 운전사에게 돈을 좀 쥐어주며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그는 지금 당장 집에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그런데 그 운전사는 백미러로 류진의 이마에 피가 배어 있는 것을 보았다.한참을 지켜보던 그는 "총각, 혹시 어디 다쳤습니까?"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하지만 류진은 기분 나쁘게 말했다. "당신이랑 상관없어, 운전이나 잘 하시고, 헛소리 그만하세요~!?""관심이 좀 생겨서 그렇지! 게다가 이마에 피가 배어 있으니 내 차 시트를 더럽히지 마요!"류진은 이 말을 듣자마자 폭발해 버렸고, "이 쓰레기 같은 차를 내가 더럽힐까 봐? 이 거지 같은 새끼가?"라며 소리를 질렀다.거지라는 단어는 진작부터 류진의 입버릇이 되었다. 비록 이마에 ‘거러지’라는 글자가 새겨졌지만 그는 자신의 단점을 고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인 것이다.그러자 기사는 "이놈 이거 버릇없는 놈을 보소? 어떻게 그렇게 더러운 말을 내뱉을 수 있어?"라고 물었다.류진은 화가 나 죽을 것 같은 마음에 그를 보며 "너 이 거지 새끼가 미쳤나? 다시 나에게 재잘재잘 지껄여, 내가 전화를 걸어서 너를 죽여 버릴 거야? 너 같은 가난뱅이는 내가 바로 죽여도 아무도 상관할 수 없어!"운전사는 숨이 막힐 지경이었는데, 마침 시내의 교차로를 지나다가 경찰차 한 대가 길모퉁이 모퉁이에 기대어 근무를 서는 것을 보고, 바로 경찰 앞으로 차를 몰고 가서 멈추었다."경찰관님! 내 차에 있던 손님이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 했는데, 분명 저 놈이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의심합니다.. 이미 저 놈이 저의 신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이를 듣던 경찰 몇 명
그러자 경찰은 "좋아. 그래 한 번 전화해봐!? 법무 집행 방해로 쳐 넣어 줄게!!” 그리고는 곧바로 호신용 봉을 꺼내 류진의 얼굴을 한 번 쳤다.류진은 순간 얼굴이 너무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무의식 적으로 얼굴을 비비댔다. 그러자 이마의 큰 글자가 순식간에 드러났다."아오 씨…." 경찰 중 한 명이 "이 새끼 이마에 쓰인 글자 좀 봐!"라며 감탄했다."이거 무슨 타투야? 장난 아니네?!""하하하하, 어쩐지 이 새끼가 아까부터 가난한 놈이라고 욕을 해대니, 이마에 그 글자가 새겨져 있네!"류진은 이 말을 듣고 황급히 이마를 막으려 했으나, 너무 아파 막을 수가 없었다.곧이어 류진은 차에서 끌려 나와 바닥에 짓눌렸다.경찰은 즉시 두 손을 뒤로 젖히고 수갑을 거꾸로 채웠다. 이제 이마에 쓰인 큼지막한 글자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했다.이어 경찰은 그와 성형녀를 도로변에 깔아뭉갠 다음, 대대에 전화를 걸어 조사하라고 시켰다.이곳은 도심으로,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다.이곳을 지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눈이 벌겋게 부어오른 청년이 길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는데, 더 무서운 것은 이마에 커다란 세 글자로 ‘거러지’라고 쓰인 글자였다.적지 않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사진을 찍자, 류진은 부끄러워 분개하여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 몸을 돌렸고, 엉덩이를 행인에게 보였다.그러자 경찰은 "움직이지 마라!"라고 말했다.류진은 정말 죽고 싶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왜 그 승합차 운전사에게 시비를 걸었을까.바로 그때, 낡은 BMW가 길가에 멈추어 섰고, 차 안에서 한 청년이 내려와 달려왔다."아..아니.. 류진아! 왜 이래??? 아이고, 이마가 이게 뭐야?! 누가 너에게 이런 글자를 새겼어?"라고 물었다.죽을 힘을 다해 고개를 숙이고 있던 류진은 문득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는 더욱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필이면 날 알아보다니...이 순간, 그는 화가 나서 그를 죽여 버리고 싶었
김혜준은 걱정해주는 자신을 류진이 홀대하자 울화가 치밀었다.‘아.. 씨.. 이게 무슨 상황이지? 경찰이 길가에 수갑을 찬 류진을 보고 때리려 들어 인사나 하려는 김에 잠깐 안부를 물었더니, 욕지거리를 해대고 얼굴에 가래까지 뱉다니, 무슨 이런 거지 같은 일이 있어?!’그는 화가 나서 "류진아, 너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그냥 친분 있는 사이에 관심을 가진 것뿐인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라고 따졌다.류진은 "하! 참? 지랄하고 자빠졌네? 날 걱정한다고? 너 같은 거지가 나랑 말을 섞을 자격이 있어? 어디서 내 부유함에 올라타려고 해? 너랑 나는 급이 달라 급이!”"뭐...? 나는 그냥.." 김혜준은 이 상황이 너무나 억울했고 화도 났다. 하지만 그는 감히 류진과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 파산 직전의 WS 그룹보다 류진은 훨씬 더 잘 나가는 집안의 아들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옷소매로 얼굴의 가래를 닦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야 류진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미안하다!!” 라며 얼른 차를 돌려서 가버렸다.‘저 새끼.. 진짜 뭐야? 빡치네 진짜?!’류진의 마음 역시 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도 한숨을 쉬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지금 사거리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들고 그를 계속 둘러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여기 저기서 카톡으로 이 소식을 퍼 날랐고, 유튜브로 라이브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류진의 행적이 순식간에 온라인상에서 전국으로 퍼지고 있었다.......샹젤리 온천의 첫날 밤은 시후에게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다. 원래 그는 머릿속으로 아내 유나와 즐거운 밤을 보내는 장면을 그려왔는데 지금 와서 보니 유나는 여빈과 함께 한 침대에서 잔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시후는 여빈이 고의로 이렇게 정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베프끼리의 시간'이라며 유나를 끌고 가 버렸기에 시후는 혼자
그러자 유나는 "근데.. 너는 일 안 해도 돼?"라고 물었다.여빈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아.. 내가 맡은 일은 원래 출장이 많기도 하고.. 엠그란드 그룹에 들어와서 회장을 본 적도 없어! 그러니까 아마 회장님도 나를 나 몰라라 하실 테니까 사실 아무도 날 신경 안 쓸 거야. 그래서 아마..? 가끔은 출근을 안 해도 괜찮을 걸? 히히히.."그러자 여빈은 "하지만 너가 일이 있으니 내가 두 사람을 태워 줄게.”주차장에 도착한 시후는 뜻밖에도 이화룡이 여빈의 차 옆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어제 긁힌 차 뒷부분도 이미 수리해 놓은 것 같았다.이화룡은 시후가 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맞이하여 공손히 물었다. "선생님, 즐거운 시간 보내셨습니까?""아~ 네 뭐 그럭저럭이요.” 시후는 차 뒷부분을 몇 번 훑어보았는데, 수선한 것을 보니 마치 새것 같았다. "와.. 엄청 신경 많이 쓰셨네요?”"아.. 은 선생님, 바로 가까운 곳에 자동차 정비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에게 공구를 빌려 달라고 해서 수리를 좀 하게 했지요. 이제 집에 돌아가시려는 겁니까? 모셔다 드릴까요?"시후는 손사래를 치며 "아~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그럼, 전 돌아가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저를 찾아주십시오~"라며 이화룡은 부하를 데리고 떠났다.이를 본 유나는 절로 고개를 저으며 시후에게 물었다. "여보.. 그런데 무슨 마가 끼었길래 당신을 저렇게 공경하는 거예요?"시후는 "나도 이제 능력이 있는 거겠죠?! 하하하!”라며 웃었다.유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힐끗 쳐다보며 "또 그 풍수랑 관련된 일 때문에 그렇죠?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믿을수록, 앞으로 당신에게 속았다는 걸 알게 되면 보복은 더 심해질 텐데.. 시후 씨, 이제 좀 조심하는 것이 어때요?”시후는 웃기만 할 뿐 따로 반박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세 사람은 차에 올라 시내로 향했다.가는 길에 여빈은 차를 몰면서 "유나야, 두 사람은 바
유나와 여빈은 곧 청년재 별장에서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 두 사람은 모두 즐거워하는데 유독 시후만 걱정이 되었다.유나는 정말 단순했다. 여빈이 자신의 남편에 대해 무슨 생각을 갖고 있는 지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그녀를 별장으로 초대하고 같이 살려고 하다니.. 바보.. 이건 늑대를 집에 들여보내는 거라고!!그러나 시후도 이 일을 확실히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그렇기에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어도 일단 속으로 감출 수밖에 없는 그였다.가장 기뻐한 사람은 바로 여빈이었다.왜냐하면 시후와 하루 종일 함께 지낼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신과 시후는 더 가까워질 수 있게 될 것이므로..여빈의 차는 유나의 집 아래에 도착했고, 시후와 유나는 여빈과 인사를 한 후 차에서 내려 위층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그러자 한 노인이 두 사람이 내리는 것을 보고 황급히 발걸음을 내디뎠다.시후가 돌아보니 그는 바로 최 선생이었다.유나는 최 선생을 보자, 갑자기 몹시 흥분하여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어머!! 최 선생님, 어떻게 오셨어요?!!! 지난 번에 저희 아버지를 구해주셨는데, 제가 제대로 감사할 겨를이 없었어요!! 죄송합니다!!!"최 선생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휴.. 사모님은 이렇게 인사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난 번 일은 감히 제 공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이번에 온 것은 은 선생님을 찾으러 온 것입니다..""그럼 위층으로 올라가실까요? 아버지께서 맛있는 차를 가지고 계세요.. 선생님께서 오셨으니 꼭 꺼내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유나가 최 선생에게 말했다.최 선생은 웃으며 "저는 그냥 은 선생님께 몇 마디 말씀드리려고 온 것일 뿐인데, 이렇게 사모님과 장인 어른에게 폐를 끼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라며 완곡하게 거절했다.시후는 두 사람이 격식을 차리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는 것을 보고 황급히 끼어들었다. "유나 씨 먼저 올라가요, 최 선생님과 이야기
다음 날 아침 일찍. 최 선생은 시후를 데리고 박람회로 향했다. 박람회는 삼성동의 코엑스에서 열리고 있었다.박람회장을 다시 찾게 되자, 지난 번 모빌리티 박람회에 갔을 때 건방지게 굴었던 장진환이 생각났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 장수원과 함께 벼락을 맞고 재가 되어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컨벤션 센터에 들어서자 시후는 홀 벽면에 장진환과 장수원의 사진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진환의 집에서는 이미 현상금을 더 늘렸지만, 여전히 부자의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그들의 노력은 헛수고일 뿐일 것이다.시후가 최 선생과 함께 전시장으로 들어왔을 때, 진원호가 딸 설아와 함께 두 사람을 맞이했다.진 씨네 집안 자체가 약재 장사를 하기에 이런 한의학 박람회는, 그들도 판매처로 참가하는 것이므로 일찌감치 이곳에 와 준비를 하고 있었다.시후를 보자 진원호는 감격에 겨워 고개를 숙이고 깍듯이 "은 선생님 오셨네요?!"라고 인사를 건넸다.옆에 있던 설아는 걱정거리가 있는 듯 얼굴이 초췌해 보였다. 그러나, 설아는 시후를 보자 수줍게 걸어와서 "은 선생님 안녕하세요?"라며 인사했다.시후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으나, 설아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가 속에 뭔가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 차렸지만 묻기 싫어서 "설아 씨, 안색이 안 좋은데.. 좀 쉬어요."라고 말했다.진설아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두 뺨이 붉어졌다. 시후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다니.. 그녀는 행복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옆에 있던 진원호는 "은 선생님, 이번에 300년 된 일품 산삼을 보기 위해서 이렇게 오신 겁니까?”라고 물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네.. 맞습니다. 혹시 구체적인 소식은 없나요?"라고 물었다.진원호는 "이 300년 된 산삼은 ‘천종산삼’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지리산 쪽에 사는 한 심마니가 캤다고 하더라고요? 듣기로는 이번 경매 시작 가격이 8억이라고 하던데.. 가격만 보면 낮지 않고 게다가 이번에 찾은 건 한 뿌리가 아니라 무더기로
시후의 말은 제이크 한을 한순간 혼란에 빠뜨렸다. 그는 자신이 조금 전까지 가지고 있던 두 가지 가설이, 지금 이 순간 서로 모순된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만약 지금 이 모든 것이 현실이라면, 총에 맞아 벌집이 됐던 자신의 몸이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는지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만약 지금 이 모든 게 단지 의식 속에 있던 환상이라면, 또 하나의 의문이 남게 된다.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뇌가 어떻게 뇌사 판정을 받지 않고 살아남았는가...?인간의 몸은 일정 시간 동안 혈액 공급을 받지 않았을 때, 대뇌는 최대 5분 밖에 버티지 못하는데, 그 당시 상황으로 판단하기에 자신이 의식을 보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것은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시후는 제이크 한이 계속 고민에 빠진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말해주지, 당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는 이렇게 말한 뒤 잠시 멈추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 당신이 총을 맞았을 때, 나는 내 방식으로 당신이 뇌사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막아 두었어. 그래서 이곳까지 무사히 옮겨 냉동할 수 있었지.”제이크 한은 참지 못하고 물었다. “당신 방식? 무슨 방식을 쓴 거야?”시후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건 당신이 굳이 알 필요는 없고.”제이크 한은 다시 물었다. “그럼 내가 입은 부상들은? 설령 네가 내 뇌를 살렸다고 쳐도, 내 몸은 어떻게 된 거야?”시후는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건 중소단 덕분이지. 이 약의 약효는 매우 간단해. 당신의 신체가 어떠한 손상을 입었든 간에, 완전히 재구성, 즉 회복하게 해준다는 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당신이 직접 확인해 봐. 몸에 상처 자국이 하나라도 남아 있는지.”제이크 한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저온 보호복을 찢고, 고개를 숙여 가슴을 들여다봤다. 그런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자신의 가슴에는 상처는커녕 흉터 하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말을 마친 뒤, 시후가 대답하기도 전에, 제이크 한은 화를 내며 말했다. “그거야 당연히 내가 억울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 나는 그 때 내 딸이 임신했다는 걸 막 알게 되었다고! 이제 가족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가족들을 보러 가려던 참이었어! 그런데 그곳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고! 네가 나라면, 억울하지 않겠어?”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당신의 몸이 벌집처럼 총알에 뚫렸지만, 다행히도 머리는 맞지 않았다는 거야. 만약 그때 당신의 정수리에 총알이 한 발이라도 박혀서 뇌가 터졌다면, 당신은 진짜 완전히 사망했을 테니까.”제이크 한은 의아한 얼굴로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시후는 옆에 서 있는 거대한 냉동 캡슐들을 가리키며 평온하게 말했다. “당신 옆에 있는 이 스테인리스 캡슐들 잘 봐. 이건 전부 인체 냉동 보관을 위한 특수 장비들이야. 특히 저기 있는 ‘7번 캡슐’을 잘 보도록 해. 당신이 깨어나기 전까지 당신은 계속 저 탱크의 안에 냉동되어 있었던 거든.”제이크 한은 눈앞에 늘어선 스테인리스 캡슐들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냉동? 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야?”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우선 당신은 정말 운이 좋았어. 습격을 당할 때, 그렇게 많은 무장 대원들 중 아무도 당신의 머리를 총으로 겨누지 않았거든. 그래서 당신의 뇌는 살아남았지.” 그는 자기 뒤에 있는 페이셔스 그룹의 배유현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배유현 회장에게 감사해야 할 거야. 그녀가 당신을 페이셔스 그룹의 냉동 센터로 옮겨 냉동시키지 않았다면, 당신의 시체는 이미 썩어 문드러졌을 거거든.”제이크 한은 그제서야 시후의 뒤에 몇 명의 사람들이 서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 중의 한 명은 바로 페이셔스 그룹의 배유현 회장이었다!“허억......” 제이크 한은 갑자기 숨을 들이켰고, 입을 떡 벌린 채 시
“뭐라고?! 네가 안예선의 아들이라고?! 그게... 그게 어떻게 가능한 일이야?!” 시후의 자기소개를 들은 제이크 한은 즉시 극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얼마 전 나누었던 안충주와의 대화를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Samson 그룹의 회장 안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안충주는 자신의 누이인 안예선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생사불명 상태인 그의 외조카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는 Samson 그룹 전체가 그 외조카를 찾기 위해 거의 전 세계를 뒤졌다고 했으며 어떤 방법을 써도 그의 행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그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단지 시신을 못 찾았을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Samson 그룹 사람들은 여전히 외조카가 분명히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었고, 단지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제이크 한은 자신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된 인물이, 안예선의 아들이라고 자처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경찰 출신인 제이크 한은 첫 번째로 이 사실에 대해 의심부터 들었다. 그래서 그는 차분히 진정한 후에 이 일에 대해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분명히 이미 죽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당시 엘리베이터 문이 막 열렸고, 한 무리의 검은 옷을 입고 무장한 조직들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에게 총을 쐈어... 그 놈들의 화력은 엄청났고, 거의 망설임 없이 나를 향해 총을 쏴댔지. 내가 의식을 잃기 전에, 최소 20~30발 이상은 맞은 걸로 기억하는데... 그렇다면 난 이미 완전히 죽은 거야... 아무리 대단한 신이라고 해도 날 살릴 순 없을 거야...!” 그래서 제이크 한은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이런 젠장, 이거 혹시 사후 세계인 건가?!” 그는 생각하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원래 사람이 죽으면 이런 상태가 되는 거야... 계속 꿈을 꾸고, 온갖 이상한 곳을 떠도는 거지... 그 다음
바로 이렇게 무한히 늘어난 타임라인 때문에, 제이크 한 경감은 지금 이 순간 눈은 떠 있지만, 여전히 끝없는 꿈속에 있는 듯한 혼미한 경지에 다다랐다. 그러던 중, 제이크 한에게 갑자기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이크 한 경감, 지금 나를 볼 수 있겠습니까?”이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제이크 한의 마음속은 요동쳤다. 참으로 이상했다. 지금까지 그렇게 오랜 꿈속에 있으면서,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끔 아내와 딸을 보기도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기도 했지만, 그 장면들은 마치 초창기 무성 영화와 같이 소리 없이 흘러가는 영상 같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처음으로, 실제처럼 생생한 소리를 들은 것이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제이크 한에게 매우 낯설었다. 더 이상한 것은, 분명히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낯섦 속에 묘한 익숙함이 섞여 있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어딘가에서... 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다만... 시간이 너무 오래 지나서... 지금 당장은 떠오르지 않아...’바로 그때, 그의 시각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제이크 한은 눈앞이 새하얗게 밝지만은 않았다. 이제 그의 시야로 주변에 우뚝 솟아 있는 스테인리스 강철 탱크들이 들어왔다. 이 풍경은 음산하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 후로 시야는 점점 더 선명해졌고, 마치 김이 서린 욕실 유리창에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이 불어 시야가 맑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문득 자신이 욕조보다 약간 큰 물탱크에 누워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리고 물탱크 옆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그 사람을 바라보다가, 너무 두려워 그 자리에서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기억은 마치 빛의 속도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가장 먼저 떠오른 기억은 바로 경기장을 나와 아내와 딸을 만나러 가려던 그 순간이었다. 그 때 자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무장 괴한들에게 공격을 당했
중소단이 제이크 한의 입안에 들어간 순간, 시후는 그의 몸이 짙은 영기로 감싸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이어 이 영기는 제이크 한의 몸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제이크 한은 특수 냉동복을 입고 있어서 외부에서는 그의 신체 변화가 보이지 않았지만, 시후는 그의 만신창이가 된 몸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재구성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일단 가장 먼저 회복된 장기는 심장이었는데, 거의 산산조각 난 그 심장은 이미 완전히 건강한 상태로 복원되었으며, 바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혈관에는 이미 혈액이 없었고 대신 극저온 보호액이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중소단의 효과로 그의 조혈 기관들은 하나씩 단계적으로 회복되었고, 곧 대량의 신선한 혈액이 끊임없이 생성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원래 그의 혈관을 채우고 있던 보호액들은 새로운 혈액의 압력으로 인해 자연히 체외로 밀려났다.이후 그의 체온은 점차 본래의 온도로 돌아왔고, 전신의 외부 상처들 또한 가장 빠른 속도로 치유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제이크 한의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고 그저 그의 피부색이 창백함에서 약간 혈색을 띄기 시작했다는 정도만 인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후는 제이크 한의 모든 변화를 똑똑히 보고 있었고,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중소단은 역시 재구성하는 약효가 뛰어나다는 말이 맞군... 마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산산조각 난 유리컵을, 단순히 조각들을 다시 붙이는 게 아니라, 흠집 하나 없이 완벽히 복원하는 것과 같아... 부서진 부분은 고쳐주고, 잃어버린 부분은 새로 자라나게 하니, 이 약은 정말 무지막지한 효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이때 제이크 한의 신체 장기, 사지, 심지어 혈액까지... 그의 몸은 이미 완전히 건강했던 시절의 상태로 회복되었고, 혈액이 충분히 보충되며 그의 심장 박동도 점점 강해졌다. 동시에 그는 점차 자발적인 호흡 기능도 되찾기 시작했다. 이제 다른 사람들도 눈으로 그의 가슴이 들썩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배유현은
이들 작업자 중 그 누구도 지금 자신들이 이렇게 단순하고 거친 방식으로 제이크 한을 해동시켜야 할 것임을 예상하지 못했다.제이크 한은 섭씨 영하 200도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나 마찬가지였기에, 온수에 들어간 그 순간 수조 안의 물 온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작업자들은 다급히 순환 펌프를 가동시켜 가열 장치를 통해 물을 계속 데우며 수조 안의 온도를 섭씨 40도로 유지하려 애썼다.하지만 이처럼 무리한 해동 방식은 곧바로 큰 문제점이 드러나고 말았다. 제이크 한의 피부가 해동되기 시작하자마자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는데, 마치 갓 해동된 소고기 덩어리와 마찬가지로 세포 내 액체가 파열로 인해 흘러나오며 혈액과 체액, 세포액이 섞인 핏물이 밖으로 배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책임자는 얼굴을 감싸며 놀라 외쳤다. “회장님... 이건... 이건 사실상 되돌릴 수 없는 손상입니다...”배유현 역시 그 끔찍한 광경에 놀라긴 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말했다. “됐어요,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할 일이 아닙니다. 다들 물러가 주세요.”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결국 책임자가 앞장서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회장님, 그럼 저희는 먼저 나가 있겠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십시오.”배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나둘씩 현장을 떠나는 작업자들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곧 시후를 부르러 가려 했지만, 뜻밖에도 시후는 이미 휴게실에서 나와 있었다. 배유현은 피 섞인 물속에 담긴 제이크 한을 바라보며 긴장한 듯 말했다. “은 선생님... 제이크 한 경감의 상태가 좀 안 좋아 보입니다...”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신경 쓰지 마요. 뇌만 멀쩡하면 되거든요.” 시후가 이렇게 무리한 방식으로 따뜻한 물에 바로 담가 제이크 한을 해동하라고 한 이유는 바로 중대한 비밀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비밀은 바로 중소단의 무차별적인 회복 능력이었다. 중소단에 있어서 인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 중에서 회복할 수 없는 것은 뇌와 뇌에 저장된 기억들 뿐이었다. 그러나 제이크
시후는 제이크 한의 성격과 업무 스타일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제이크 한이 만약 다시 깨어나고, 예전의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반드시 자신이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전후 사정을 끝까지 파헤치려 들 것이 분명하다. 예컨대, 도대체 누가 페이셔스 그룹의 악질 사이코 배호영을 죽였는지, 또 누가 Samson 그룹 일가를 몰살시키려 했는지, 이 모든 진상을 기어이 밝혀내려 할 것이다.그래서 시후는 오히려 이 기회를 이용해, 제이크 한과 진심으로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눌 생각을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또한 배호영을 죽인 사람은 바로 자신이며, 그는 물론 Samson 그룹 전체를 구한 사람도 자신임을 정확히 알릴 계획이었다. 그리고 만약 제이크 한이 이 은혜를 알고 처신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앞으로 시후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이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물고 늘어지기만 한다면 제이크 한의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그를 기절시켜 뉴욕 길바닥 어딘가에 버려버리면 그만일 것이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그의 목숨은 살려준 셈이기 때문이다.이렇게 결정한 시후는 배유현에게 지시했다. “배유현 씨, 7번 냉동 캡슐에서 액체질소를 모두 빼고, 제이크 한을 따뜻한 물에 담가서 해동시키도록 하십시오.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죠.”“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배유현은 시후가 어떤 방법으로 그를 살리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와 존경이 있었기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은 선생님, 보안을 위해, 먼저 함께 온 분들과 옆방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해동 작업이 끝나는 대로 다시 모시러 가겠습니다.”시후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자신이 제이크 한을 되살린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후의 동행인들은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지만, 작업에 투입되는 일반 직원들은 아무래도 보안상 신뢰성을 보장하기
시후는 배유현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 1층으로 내려온 뒤, 1층의 센터를 지나 특수 엘리베이터로 갈아타고 지하 5층의 냉동센터로 향했다.이 냉동센터는 본래 배원중이 자신의 시신을 보존하기 위해 마련한 장소로, 사용 연한은 무려 300년으로 설계되었으며, 그 보안 수준은 마치 대통령이 세계 종말 대비 계획에 포함된 방어 시설에 버금갈 정도였다. 비록 지하 5층이라 하지만, 실제 깊이는 거의 지하 100미터에 달했고, 전략적 물자도 완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설령 미국 본토가 핵공격을 받더라도 무사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이 냉동센터는 설계상 최대 100구의 시신을 보관할 수 있었지만, 현재 이곳에 진짜로 냉동된 인물은 실험용 시신들을 제외하면 단 한 명, 바로 제이크 한 뿐이었다.시후는 냉동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마치 SF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광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이 공간 전체는 곳곳에 각종 장비들이 자리 잡고 있었고, 공기·산소·액체질소 등을 전달하는 굵은 배관들이 거미줄처럼 가득히 얽혀 있었다.그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시각적 충격은, 질서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수십 개의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들이라고 할 것이다. 이 탱크는 하나하나가 최소 4~5미터는 되어 보였고,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인간이 한없이 왜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 거대한 탱크들은 바로 인간을 냉동 보존하기 위한 냉동 캡슐이었다.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배유현은 이미 이곳의 모든 연구원과 직원들을 철수시킨 상태였기에, 지금 이 공간에는 시후와 시후의 동행자들 외엔 아무도 없었다. 지극히 한적한 분위기와 더불어, 이곳이 본래 초저온 시체 보관소이기에 더욱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이때, 배유현은 시후의 곁에서 설명했다. “은 선생님, 현재 인체 냉동 기술 기준으로는 사람이 사망한 뒤 약 50시간에 걸쳐 서서히 온도를 낮추며 냉각을 진행하고, 그 후에 냉동 캡슐에 넣어야 세포가 급속 냉각 중 얼음 결정이 생겨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시후의 말을 들은 스미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미국 FDA의 수장이며, 미국 사회에서도 명실상부한 상류층이자 최고 수준의 엘리트 집단에 속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시후는 너무나도 가볍게 현재 직책을 버리고 어렵게 이룬 모든 것들을 내려놓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건 스미스에게 있어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그가 한동안 멍하니 넋을 놓고 있자, 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냥 내 개인적인 조언일 뿐입니다.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저는 볼일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뒤 그는 곁에 있던 배유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유현 씨, 갑시다.”배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하게 손짓했다. “은 선생님, 그럼 이쪽으로 가시죠.”스미스는 눈앞에서 시후와 배유현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문이 천천히 닫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곁에 있던 동료가 다가와 스미스를 부축하려 했지만, 그는 손을 저으며 거절했다. 그러고는 무언가 결심한 듯, 휴대폰을 꺼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 즉 자신의 직속 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미국 행정부 구조상, FDA는 보건복지부의 산하 기관이며 FDA의 인사권은 보건복지부가 갖고 있었다.전화를 받자 보건복지부 장관이 말했다. “어이, 스미스? 무슨 일인가?”그러자 스미스는 진지하게 말했다. “장관님, 제가 정중하게 사직 의사를 전하려 연락 드렸습니다. 앞으로 저는 FDA의 어떤 업무도 맡지 않겠습니다.”장관은 매우 놀라며 되물었다. “스미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내 기억이 맞다면, 대학 시절부터 자네는 FDA를 이끄는 게 꿈이라고 했잖아. 그런데 이제 막 2년 정도 일했는데 벌써 그만두겠다고?”스미스는 단호히 말했다. “그렇습니다. 이미 결심했습니다. FDA 직책을 내려놓고, 지미를 데리고 한국으로 갈 겁니다.”“한국으로?” 장관이 급히 물었다. “혹시 지미를 데리고 구현제약을 찾아가려는 건가?”스미스는 잠시 망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