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누굴 도와요? 대체 무슨 낯짝으로 그런 말을 내뱉어요? 역겨워서 정말!”임유진이 말했다.한편 주변 사람들도 전부 변호사 전공이지 바보가 아닌지라 그녀의 말 속에 담긴 뜻을 금방 알아챘다. 저마다 의아한 눈길로 정한나를 쳐다봤는데 이것 하나만은 명확히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정한나가 전에 쌓아온 이미지가 지금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는 것이다.그녀는 원래 오늘 임유진에게 꼽줄 생각이었다. 지난번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을 때 임유진 앞에서 망신 당한 게 내내 마음에 걸려 오늘 제대로 분풀이할 참이었는데 결국 또다시 본인만 우스갯거리로 전락했다.정한나는 방금 마신 차 한 잔 들고 오더니 서슴없이 임유진에게 뿌렸다.임유진도 미리 경계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지만 얼굴 대신 상의에 정곡으로 맞았다.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다 보니 그녀는 위에 흰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왔는데 찻물이 튀어 셔츠가 흠뻑 젖었다.주변 동료들도 정한나가 이렇게 나올 줄 몰랐고 누군가는 비명을 질렀다.임유진이 본능적으로 가슴을 가리려고 할 때 얇은 정장 외투가 그녀 몸을 뒤덮었다.“입어요!”한 남자의 목소리가 그녀 귓가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목소리는... 고개 돌려 보니 잘생긴 얼굴에 차가운 표정을 지은 강현수가 뒤에 서 있었다!미간을 찌푸리고 분노가 어린 그의 두 눈을 본 순간 임유진은 살짝 의외였다. 그는 원래 주위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무관심한 태도인데 지금 그녀에게 외투를 걸쳐주며 초라한 모습을 커버해주고 있으니 말이다.강현수 옆에는 로펌 대표님과 두 변호사까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이전에 임유진이 로펌에 있을 때 그녀를 책임지고 가르쳤던 변호사였다.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상대의 눈빛에 복잡한 기운이 스쳤다.“어떻게 된 일이죠?”로펌 대표가 싸늘하게 물었다. 로펌을 찾아온 중요한 바이어 앞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다니, 참으로 불미스러운 일이었다.정한나는 좀 전까지 씩씩거리더니 금세 겁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는데 차오르는 분노를 애써 짓누르고 있는 모습이었다.강현수는 그녀에 관한 자료를 찾아봐서 그해 교통사고 때문에 진애령이 죽고 임유진이 감방에 들어간 사실을 알고 있다.하지만 상세한 내용은 더 깊게 파고들지 않았는데 오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 임유진이 재판에서 줄곧 죄를 인정하지 않고 본인은 억울하다 주장했다고 한다.정말 누명을 뒤집어쓴 걸까? 진애령의 죽음이 실은 그녀와 무관한 걸까?이 동료는 간단하게 상황만 설명할 뿐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았지만 로펌 대표는 그 속에 담긴 수상한 낌새를 바로 알아챘다. 로펌 대표는 더 싸늘해진 눈길로 정한나를 째려보고는 고개 돌려 임유진을 쳐다봤다.“유진 씨, 불미스러운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이렇게 하시죠. 유진 씨가 손해 본 거 있으면 로펌에서 배상할게요. 나중에 리스트로 작성해주세요.”대표의 말에 임유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괜찮습니다. 저는 이만 일이 밀려서 나가보겠습니다!”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옆에 있는 강현수에게 정장 외투도 돌려주었다.“고마워요.”흰 셔츠가 아직도 축축해서 반투명한 상태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오직 이곳을 떠날 생각밖에 없었다.“입고 가도 돼요. 나 돌려줄 필요 없어요.”강현수가 말했다.옆에 있던 로펌 대표는 의아한 눈길로 강현수를 쳐다봤다. 그와 알고 지낸 몇 년 동안 연예계 황태자로 불리는 강현수는 차갑기 그지없고 남을 도와주는 건 더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가 코앞에서 토막 살인을 당해도 꿈쩍하지 않을 사람인데 지금 임유진에게 이토록 신경 써주다니... 실로 경이로운 장면이었다.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들도 이런 대우는 못 받아봤을 텐데...“괜찮습니다.”임유진은 끝까지 고집을 피우며 외투를 돌려줬다. 셔츠가 반투명 상태라 남들이 보면 아주 뻘쭘하겠지만 수영복이라 생각하면 그만이다. 속살이 비치는 셔츠보다 강현수와 자꾸만 엮이는 게 그녀는 더 싫었다.“방금 고마웠어요.”임유진은 깍듯이 인사하고 외투를 그의 손에 건
정한나는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 확 들었다.바로 이때 정한나와 상극이던 한 동료가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누구는 꼴 좋네요. 이전 동료를 꼽주려다가 되레 본인만 개망신당했잖아요. 혹시 알아요. 내일이면 그 전 동료처럼 변호사도 못 하게 될지. 꽤 재미있는 사례가 되겠어요. 나중에 신입사원들에게 잘 설명해줘야겠어요!”정한나는 순간 사색이 되었다. 평상시 톡 쏘는 말주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 눈에 당혹감만 가득 차 있었다.정말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변호사계의 우스갯거리로 남을 테니까!...로비를 나선 임유진이 스쿠터 쪽으로 걸어갈 때 강현수가 쫓아와서 그녀의 팔을 덥석 잡았다.“왜 다 젖은 셔츠를 입고 길거리를 누빌망정 내 호의를 거절하는 거죠? 내가 싫어요? 그래서 내 물건도 건드리기 싫은 거냐고요?”임유진은 팔을 빼내려 했지만 그가 너무 꽉 잡은 탓에 도저히 빼낼 수 없었다.“나중에 양복 돌려주기가 귀찮아서 그랬어요. 어차피 지금 날씨도 좋아서 셔츠 금방 말라요.”임유진이 대답했다.“그래서 지금 내가 이렇게 떡하니 쳐다봐도 괜찮은 거예요?”그는 말하면서 시선이 아래로 흘러내려 갔다.임유진은 돌연 몸이 얼어붙었다.“성인군자라면 안 쳐다보겠죠.”말은 그렇게 해도 속으론 끝없이 되뇌었다.‘수영복이야, 그냥 비키니 입었다고 생각해!’“난 성인군자가 아니에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거든요.”강현수는 말하면서 강제로 그녀에게 외투를 걸쳐주었다.“이 꼴로 돌아다니면 딴사람들의 범죄율만 더 높아진다고요!”“현수 씨 진짜!”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이 외투도 나 돌려줄 필요 없으니까 그냥 입어요. 나중에 버리든지 다른 사람 주든지 마음대로 해요.”그는 단지 임유진이 사람들 앞에서 몸을 훤히 비친 모습이 싫었을 뿐이다.강현수도 실은 의아했다. 딴 여자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임유진이 찻물에 흠뻑 젖은 걸 본 순간 가슴이 움찔거리고 저도 모르게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품에 꼭 안아서라도 보호해주고
뜻밖에도 강현수는 그녀와 함께 가게 안으로 들어갔고 그녀가 새 옷을 고르기 시작하자 그제야 본인의 정장 외투를 거두어들였다.임유진은 가게에서 가장 저렴한 티셔츠 한 장 골라서 얼른 갈아입었다.그녀가 옷을 고르고 있을 때 GH 그룹 대표이사 사무실에서 강지혁은 한껏 어두운 표정으로 개인 비서 고이준의 보고를 들었다.“네, 전에 여러 언론사들과 미리 얘기해서 무릇 임유진 씨에 관련된 기사라면 일절 내보내지 못하게 조치해놨습니다. 이번에 세 언론사들도 감히 기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고이준이 말했다.세 언론사에서 동시에 익명의 메일을 받았는데 임유진과 강현수가 함께 있는 애틋한 사진이 첨부 파일로 들어있었다.“누구 짓인지 조사해냈어?”강지혁이 물었다.“지금 조사 중인데 상대가 들킬 걸 알고 미리 전문적인 수단으로 손을 본 것 같아요.”고이준이 대답했다.“가장 빠른 속도로 조사해내. 배후의 조력자가 누구인지 반드시 알아야겠어.”강지혁이 차갑게 쏘아붙였다.“네!”고이준은 곧바로 대답했다.“이만 나가봐.”고이준이 사무실을 나선 후에야 강지혁은 컴퓨터로 메일함을 열어보았는데 고이준이 보낸 파일이 있었다.그중 하나를 클릭하니 임유진과 강현수의 사진들이었다.달빛 아래에서 남자는 여자를 꼭 끌어안고 있었고 여자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기도 했으며 서로 마주 보는 사진도 있었다.마치... 한 쌍의 연인을 방불케 했다.강지혁의 눈빛이 점점 더 짙어졌고 마우스를 쥔 손등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임유진과 강현수가 왜 포옹하고 있는 걸까? 둘은 또 무슨 얘기를 나눈 걸까?강지혁은 그중 사진 한 장을 보더니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사진 속에서 강현수의 얼굴에 무언가가 역반사 되었고 임유진은 살짝 놀란 듯이 그를 마주 봤다.강현수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니!강지혁은 예전에 어느 날 밤 그녀가 ‘눈물’에 대해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게 생각났다.그때 이 화제를 꺼낸 이유가 혹시... 강현수 때문일까?강지혁은 문득 당혹감에 휩싸였다. 그녀와 강현수 사이에
강지혁은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오직 그녀 목소리만이 그에게 안정감을 줄 듯싶다!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됐는데 전화기 너머에서 강지혁이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혁이야?”그건... 강현수의 목소리였다.강지혁은 심장이 움찔거려 딱딱하게 물었다.“응, 나야. 네가 왜 유진의 전화를 받아?”“지금 옷 갈아입는 중이야. 전화랑 가방 모두 밖에 놓고 있어서... 이따가 다시 전화하라고 할게.”강현수가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럴 필요 없어.”강지혁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통화를 마친 후 강현수는 물끄러미 수중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방금 휴대폰 액정에 뜬 ‘혁이’라는 이름을 본 순간 그는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전화를 받아버렸다.평소라면 절대 다른 사람 전화를 받지 않을 텐데 아까는 왜... 전화 온 사람이 강지혁이라서 그런 걸까?그 어떤 여자도 좋아할 것 같지 않던 강지혁이 하필이면 그가 호감 가는 여자를 사랑하게 될 줄이야.하지만 결국 강현수가 손을 놓아줘야 한다. 그는 감히 강지혁과 경쟁할 엄두가 안 난다.게다가 그가 진정 원하는 사람은 임유진이 아니다.말은 그렇게 해도 매번 임유진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린다.그녀의 목소리와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머릿속을 감돌고 심지어 팔찌를 볼 때마다 그녀 얼굴이 떠오른다.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강현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한 손으로 이마를 어루만졌다. 임유진이 강지혁의 여자란 걸 뻔히 알면서 대체 왜 자꾸만 다가가고 싶은 걸까?이때 탈의실 문이 열리고 임유진이 안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잔꽃 무늬 롱 원피스로 갈아입었는데 그 모습을 본 강현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방금 그녀가 이 치마를 들고 있을 때까지 그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입고 나온 순간 그해 그 소녀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저절로 넋이 나갔다.그해 그 소녀는 바로 이처럼 작은 체구에 잔꽃 무늬 원피스를 입고 그를 업은 채 힘겹게 하산했다.굴곡진 길을 따라
온 집안에 꽉 찬 치마를 보며 그는 그 소녀가 이 치마들을 입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본다.하지만 그 무엇도 지금 이 순간의 놀라움을 이길 수 없다. 눈앞의 그녀는 지극히 평범한, 심지어 아주 저렴한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서 제 모습을 비추고 있는데 강현수는 문득 눈시울이 빨개졌다.임유진은 거울로 치마 입은 제 모습을 한참 들여다봤다. 방금 이 치마를 보자마자 골랐는데 잔꽃 무늬가 어릴 때 외할머니가 사준 치마와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아쉽게도 그 잔꽃 무늬 치마는 나중에 너덜너덜해져서 버렸다.그해 이 일로 임유진은 한바탕 울기도 했다!이 치마는 꽤 길었기에 스쿠터를 타도 노출 걱정을 할 필요가 없고 가격도 5만6천 원이라 아주 적당했다. 조금만 더 흥정하면 가격을 더 낮출수 있을지도 모른다.“어때요 손님? 마음에 드세요?”가게 점원이 가까이 다가오며 물었다.“괜찮긴 한데 좀 더 싸게 할 수 있어요?”임유진이 물었다.“저희 가게는 이미 가격을 최대한 낮춘 거라...”점원은 마치 테이프가 감긴 것처럼 말끝을 흐리고 멍하니 임유진의 뒤쪽을 바라봤다.그녀도 어리둥절해 하며 미처 반응하지도 못했는데 강현수가 갑자기 뒤에서 팔을 벌려 그녀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의 차가운 숨결이 그녀의 목과 얼굴에 와닿았다.“너야?”강현수의 잠긴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임유진은 갑작스러운 포옹에 놀라서 얼른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하지만 강현수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그녀 목에 얼굴을 파묻고는 나지막이 되뇌었다.“진짜 너야? 너 맞지? 바로 너였어...”“강현수 씨, 이거 놔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임유진은 왠지 그가 그날 밤 술에 취한 모습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다만 그는 지금 술에 취하기는커녕 아주 멀쩡한 상태였다!“너... 맞잖아. 아니야? 아닌데 왜 이렇게 닮았어? 대체 왜 너만 이런 느낌 주는 거냐고...”강현수는 마치 수년간 찾아 헤매던 그 소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만 같았다.“지금 무슨 말 하는지 하
임유진은 이제 숨 막힐 지경이었다.“나 아니에요, 아니라고요...”그녀는 겨우 말을 이었다.이제 곧 질식해 쓰러질 것만 같던 그 순간, 또 한 번 거센 힘에 의해 드디어 강현수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녀의 귓가에 퍽 하는 주먹 소리와 무거운 물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의자와 선반이 부딪치는 소리까지 요란스럽게 들려왔다.임유진은 숨을 헐떡이며 고개를 들었는데 강지혁의 얼굴이 두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혁이가 방금 그녀를 강현수의 품에서 벗어나게 해줬다! 임유진은 그가 왜 여기에 나타난 건지 의아할 따름이었다.그 시각 강지혁은 음침한 얼굴로 바닥에 드러누운 강현수에게 마구 주먹질을 해댔다.강현수는 초라한 몰골로 선반에 깔려 있었다. 방금 바닥에 쓰러지면서 선반까지 넘어지며 아수라장이 돼버렸다.그의 입가에 한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강지혁이 제법 거칠게 주먹질을 한 모양이다.“너 방금 뭐라고 했는지 알아?”강지혁은 굳은 얼굴로 싸늘하게 말을 내뱉었다. 차가운 그의 목소리가 칼바람처럼 살을 엘 것 같았다.보통 사람이라면 목소리만 들어도 몸에 소름이 끼칠 지경이겠지만 강현수는 달랐다. 강지혁의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는 되레 입꼬리를 씩 올렸다.“알지.”“그래? 알면서 이러는 거야? 강현수, 너 진짜 우리 두 집안 등지게 할 셈이야?”강지혁이 거만하게 쏘아붙였다.강현수는 입가에 묻은 피를 쓱 닦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지혁아, 내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걸 너도 알잖아. 유진 씨가 아무래도 그 사람인 것 같아.”강지혁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고 온몸이 돌처럼 굳었다.“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강현수는 그에게 대답한 게 아니라 임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정말 기억 안 나요? 유진 씨 전에도 비슷한 잔꽃 무늬 원피스를 입고 한 남자아이를 구해줬잖아요. 분명 그냥 내버려 둬도 되는데 기어코 업고 하산해서 그 아이 목숨을 살려줬어요! 믿으라면서요, 유진 씨가 무조건 업고 하산한다면서 그 아이더러 믿으라면서요.”임유진은 어리둥절한 눈길
강지혁은 순간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 돌려 의아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한없이 짙은 두 눈엔 그녀가 헤아릴 수 없는 복잡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혁아, 내가 직접 얘기하게 해줘.”그녀는 강지혁의 손을 꼭 잡으며 마치 그의 마음을 다독이는 것만 같았다.강지혁은 얇은 입술을 앙다물고 꼼짝없이 그녀만 쳐다봤다.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쩔 바를 몰라서 망설이고 있었다.임유진은 그의 뒤에서 한 걸음 걸어 나왔고 강지혁도 가로막지 않았다.그녀는 몇 걸음 떨어져 있는 강현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난 강현수 씨가 찾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방금 말한 그 일들 난 아무 인상이 없어요. 그러니까 현수 씨가 사람 잘못 찾은 거예요.”그녀의 말을 들은 순간 강지혁의 두 눈이 살짝 반짝였고 강현수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아니야, 말도 안 돼. 다 잊었어? 시간이 너무 길었지. 잊을 만도 해.”“나 기억력이 좋아요.”임유진이 말했다.“방금 현수 씨가 말한 것들 진짜 처음 듣는 얘기에요.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어요. 아 그리고 내가 현수 씨 기억 속의 그 소녀를 닮은 거, 오늘 이 치마를 고른 거 굳이 설명하자면 모든 건 우연의 일치에요.”강현수는 싸늘한 표정에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쳐다봤다.임유진도 그런 그의 시선을 전혀 피하지 않았다. 그녀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니까.강현수는 한참 후에야 시선을 거두어들였다.“유진 씨가 맞든 아니든 난 무조건 찾아낼 겁니다!”말을 마친 강현수는 곧게 옷 가게를 나섰다.줄곧 그녀가 아니라고 여겨왔는데 오늘 이 잔꽃 무늬 치마를 고른 순간, 그 치마를 입고 나온 순간, 임유진이 틀림없다고 확신했다.그녀가 아닌데 왜 이토록 강렬한 느낌이 들겠는가?! 왜... 대체 왜 이렇게 닮은 거냐고?!‘애초에 유진 씨부터 낱낱이 조사해야 했어!’강지혁은 문득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혁아!”임유진이 고개 들어 그를 쳐다봤는데 정색한 얼굴이 살짝 소름 끼칠 지경이었다.“너 왜 그래?”그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