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민준이 지금…… 혁이를 묻고 있는 건가?“소민준 씨, 너무 많은 것을 알려고 하지 마. 왜, 나는 내 동생과 함께 있어도 너에게 보고해야 해?”“동생? 너 언제 동생이 생겼어?”소민준이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여동생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내가 아는 동생, 안 돼?”그녀가 말했다.소민준은 임유진을 주시하면서 마치 그녀의 표정에서 이 말의 뜻을 살펴보려는 것 같았다.이때 도로 반대편에서 바닥을 쓸던 서미옥이 이쪽의 상황을 보고 달려왔다.“소민준 씨,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해요. 손대지 말고요.”서미옥은 소민준이 그날 진세령과 함께 환경위생과에 와서 사과하고 선물을 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환경위생과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임유진의 전 남자친구이기도 하다.“소민준 씨, 더 이상 손을 놓지 않고 있다가 다른 사람에게 찍힐 텐데, 당신의 진세령 씨에게 보이면 잘 설명해야 하지 않겠어?”임유진이 말했다.소민준의 안색이 변하더니 결국 손을 놓고 자리를 떠났다.서미옥은 걱정스럽게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 사람이 유진 씨를 찾아와서 뭐해?”“그가 뭘 하고 싶은지 누가 알겠어요, 상관없어요!”임유진이 말했다. 그녀는 소민준이 영문도 모른 채 달려와 어느 남자와 함께 있느냐고 묻는 것이 아직 그녀에 대한 마음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다만 이건 정말 매우 비정상적이라 소민준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아무도 몰랐다!“참, 유진 씨 이따가 점심 시간에 소장님을 찾아가서 사정해. 내가 듣기로는 방현주가 사무실에서 무슨 서명을 모집하는 것 같아. 소장님이 유진 씨를 해고하라고 말이야.”서미옥은 자신이 들은 소식을 말했다.임유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아하니 방현주는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 정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소장님이 정말 나를 해고하려 한다면 내가 소장님을 찾아가도 소용없어요. 만약 정말 안 된다면 다시 일자리를 알아봐야죠.”이 말은 조금 서글프게 느껴졌다. 이 일은 그녀가
“방현주 씨, 나는 소내에 이렇게 동료를 적대시하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지 않아요. 임유진은 감옥살이했어요. 그러나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그녀를 바라보고 살길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임유진과 함께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상 지금 이 일을 그만두는 게 좋겠어요.”그녀는…… 정직원인데 왜 이렇게 잘린 거지?! 방현주는 전혀 믿을 수 없었지만, 하필이면 이것은 사실이었다!“현주 씨, 말해봐요.”옆에서 누군가 재촉하고 있었다.방현주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임유진을 보았을 때 갑자기 원망이 밀려왔다. 그녀는 쏜살같이 앞으로 나가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너 때문이야, 모두 너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소장에게 해고당할 수 있겠어! 분명 가야 할 사람은 너인데 말이야!”사람들이 의아해했다. 해고된 사람이 뜻밖에도…… 방현주라니?!“현주 씨, 농담하는 거 아니죠!”“그럴 리가!”방현주는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임유진을 쳐다보며 손을 뻗어 그녀를 향해 달려들어 싸우려 했다.임유진이 피했지만, 방현주는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때, 한 사람이 앞으로 나가 방현주 앞을 막아 나섰다.“그만 해요, 소장이 당신을 해고하려고 하는데, 유진 씨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녀가 설마 소장의 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겠어요!”임유진이 눈을 들어 바라보니 곽동현이었다.그리고 일부 기사들은 상황을 보고 앞으로 나가 방현주를 붙잡았다.한바탕 해프닝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고마워요.”임유진은 곽동현을 향해 말했다.“아무것도 아녜요. 나 아니었으면 방현주한테 그렇게 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곽동현은 오히려 좀 쑥스러워했다.임유진이 몸을 돌려 떠나려 할 때 곽동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유진 씨 그 남동생, 정말 친동생 맞아요?”임유진은 의외라는 듯 상대방을 바라보았다.곽동현은 잠시 머뭇거리며 말했다.“저는 단지…… 두 사람이 친남매 같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에요.”그녀가 그 동생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항상 이 두 사람이
비록 임유진이 아침에 동생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다시 한번 가서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차가 한 농촌주택의 주택단지 앞에 도착하자 소민준은 차에서 내려 주택단지에 들어가 그 동의 좁은 문 앞에 멈췄다.이것은 전형적인 농촌 임대주택이다.임유진이 여기에 살고 있는 걸까?소민준이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데 갑자기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무의식적으로 그는 한쪽 그늘진 곳에 숨어 있다가 발걸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하지만 그때 긴 그림자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그 그림자가 가까워질수록 소민준의 눈은 더욱 커졌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마침내 현실이 되었다.‘강……강지혁이다! 진짜 강지혁이다!’아무리 닮았다해도 절대 이 정도로 닮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강지혁의 옷차림은 그가 어제 본 것과 같다. 왜……강지혁이 이곳에 있는 걸까?순간 한기가 불어와 소민준은 점점 추워지는 것 같았다.드디어 강지혁이 소민준이 서 있던 그 좁은 문 앞에 서서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잠시 후 누군가 문을 열었다.“왔어?”청순한 얼굴이 소민준의 눈에 들어왔다.소민준은 목이 메어 아주 괴로웠다.문을 연 사람은 임유진이었다.‘진짜 임유진이 강지혁과 만나는 것일까?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리고 강지혁은 왜 이런 옷차림인 걸까?’너무 많은 의혹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그는 강지혁의 목소리를 들었다.“응, 나 왔어.”소민준은 강지혁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가 기억하는 소리와 같다.소민준은 마침내 이 남자가 강지혁이라는 걸 확신했다.강지혁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갑자기 발걸음이 멈추더니 소민준이 숨어있는 그 어두운 구석을 바라보았다.순식간에 소민준은 온몸의 피가 굳는 것 같았고 심지어 호흡마저 멈출 것 같았다.“혁아, 뭘 보는 거야?”임유진의 목소리가 전해왔다.“아무것도 아니야.”강지혁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방 안으로 들어갔다.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소민준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고
그리고 강지혁이 임유진을 대하는 태도는……소민준은 부드럽다라는 한마디로 형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그토록 대단한 강 대표가 언제 여자를 이렇게 부드럽게 대한 적이 있는가. 심지어 그 당시의 진애령마저 이런 대우를 받은 적 없다.문득 소민준의 머릿속에는 이전에 광고가 철거된 일이 스쳐 지나갔다. 이전에 그들은 임유진 때문에 소 씨 가문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청혼하는 게 못마땅하여 강지혁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 보니 확실히 임유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소민준은 너무 혼란스러울 뿐이었다.임대주택에서 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밥을 먹고 있다. 임유진은 오늘 환경위생과에서 발생한 일을 강지혁에게 말했다.“무슨 이유인지 소장은 방현주를 해고했어. 난 내가 해고 당할 줄 알았는데.”“더 잘된 거 아니야?”강지혁이 말했다.하지만 임유진은 여전히 고민이 된다.“해고 당하지 않았으면 당연히 좋은 거지만 방현주가 보복을 할지 모르겠네.”오늘 방현주는 그녀를 보는 눈빛에 원한이 가득했기 때문이다.“그녀는 아무 짓도 못 할 거야.”강지혁이 말했다. 그는 방현주를 대비하여 미리 손을 쓸 것이다.하지만 그가 더 걱정하는 것은 집 밖에 숨어있던 그 사람이다. 비록 자세한 얼굴은 못 봤지만 그의 짐작이 틀리지 않았다면 소민준일 것이다.어젯밤 사거리에서 소민준이 자신이 임유진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오늘 확정 지으러 왔을 것이다.“누나는 나랑 같이 사는 게 좋아?”강지혁이 갑자기 물었다.“좋아.”임유진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그럼 앞으로 내가 신분을 바뀌더라도 나랑 같이 살 거야?”그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녀는 이해가 안 가 눈을 깜빡거렸다. 신분을 바뀌다……그의 노숙자 이외의 신분을 가리키는 것일까? 지영은 항상 그녀가 강지혁에 대해 너무 몰라 손해를 볼까 겁난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그의 구체적인 신분을 물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혁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고 그 외에
하지만 지금 여자친구가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그의 머릿속에는 어젯밤 광경이 수없이 떠올랐다. 바로 강지혁과 임유진의 얼굴이다.그는 지금까지도 어젯밤에 본 모든 것이 꿈만 같다.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임유진과 강지혁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자신의 약혼자가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는 모습을 보자 진세령은 불쾌하여 눈살을 찌푸렸다.“너 왜 그래? 어제도 정신을 딴 데 팔더니. 오늘도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어? 나랑 약혼하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해.”소민준은 흠칫 놀라더니 얼른 미소를 지었다.“그럴 리가. 내가 어떻게 너와 약혼하고 싶지 않을 수 있어. 알잖아. 내 마음에는 너밖에 없어.”“확실해?”진세령이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럼 임유진에 대해 진짜 아무런 감정이 없어?”소민준은 순간 표정이 굳더니 어색하게 말했다.“왜 또 그녀를 언급하는 거야. 이미 헤어진 지 3년이 되었는데 어떻게 아직도 감정이 있을 수 있겠어.”“그럼 왜 그녀에게 일자리를 소개해 주고 싶었어?”그녀가 추궁했다.“그냥 불쌍해 보였을 뿐이야.”소민준이 말했다.“뭐가 불쌍해, 우리 언니가 더 불쌍해, 우리 언니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잃었어.”진세령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다시 그녀를 불쌍히 여기면 강지혁이 너에게 손 쓸 때 우리는 돕지 않을 거야.”소민준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만약 전이었다면 그는 자연히 여자친구의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임유진의 존재가 있기에 그렇지 않을 것이다.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떠보듯 물었다.“세령아, 혹시 최근 강지혁에게 새로운 여자가 생겼어?”“그럴 리가.”진세령이 즉시 부인했다.“강지혁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아. 3년 동안 여자가 없었어.”그래서 외부에서는 모두 강지혁이 진애령을 아주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진 씨 가문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그러나 진 씨 가문도 굳이 이런 오해를 폭로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오히려 다른 사람이 더욱 깊이 오해하기
고이준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강 대표님을 만나면 알게 될 거예요.”소민준은 갈수록 두근거린다.차가 강 씨 저택 입구에 세워지자 소민준이 고이준을 따라 집에 들어가자 강지혁이 소파에 앉아 손에 청첩장 하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소민준이 다가가보자 그 청첩장은 자신과 진세령의 약혼식 청첩장이었다.“또 만났네요.”강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소민준은 흠칫 놀랐다. 그 시각 강지혁은 핸드메이드 정장을 입고 있었고 앞머리를 뒤로 넘겨 넓은 이마를 드러내고 날렵한 코, 복숭아 같은 눈동자, 그리고 섹시한 얇은 입술까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를 품기고 있다.어쩐지 많은 여자가 그를 집착했다. 심지어 상류층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목숨을 걸고 강지혁의 주의를 끌려고 한다. 강지혁의 신분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용모 때문이었다.하지만……복숭아 같은 눈동자가 소민준을 노려볼 때 소민준은 마치 맹수에게 주목받는 느낌이 들었고 피가 순식간에 굳는 느낌이 들었으며 호흡마저 가빠졌다.마치……어젯밤 상대가 쳐다봤을 때의 느낌이었다.다만 어제 그는 어두운 곳에 있었고 강지혁은 밝은 곳에 있었다.당시 그는 강지혁을 똑똑히 볼 수 있었지만 아마 강지혁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강지혁의 시선 아래에 있다.그때 소민준이 멋쩍게 웃었다.“맞아요.”마음속으로 강지혁이 말한 것이 어젯밤을 의미하는지 추측하고 있다.“어젯밤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말했나요?”강지혁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하지만 소민준은 간담이 서늘하다!아니나 다를까……어젯밤 일이다! 비록 소민준은 그런 예감이 들었지만 강지혁이 직접 물으니 그 추측들이 맞다고 생각했다.그러니 강지혁은 진짜 임유진과 사귀고 있었다!“아니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어요,”소민준이 말했다.“잘하셨어요.”강지혁이 말했다.“다른 사람이 이 일을 아는 걸 바라지 않거든요.”소민준은 대답을 하면서 상대가 자신을 훑어보는 것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는
복숭아 같은 눈동자가 순간 차가운 눈빛으로 변하자 소민준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묻지 말아야 할 것은 묻지 말아야죠. 소 대표님은 이런 것도 모르나요?”옆에 있던 고이준이 말문을 열었다.소민준은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어색해하며 자리를 떴다.한편 강지혁은 소파에 기대어 싸구려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에는 번호 하나만 저장돼 있었다.그가 유일하게 저장된 번호를 누르자 잠시 후 핸드폰 반대편에서 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누나,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내가 포장해 갈게.”그는 방금 전 차가운 느낌은 온데간데 없고 부드러웠다.……저녁에 임유진은 티슈를 들고 어머니의 액자를 닦았다. 그녀는 특별히 작은 상을 사 평소에 어머니 사진을 그 상에 올려놓았고 며칠마다 사진에 쌓인 먼지를 닦았다.어머니의 유물들은 모두 임 씨 가문에 있으니 그녀가 어머니와 관련된 물건 중 갖고 있는 건 사진밖에 없다.그리고 그녀가 사진을 닦을 때 강지혁은 한쪽에 앉아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참, 혁아. 곧 설이 다가오는데. 혹시……차표 샀어?”최근 며칠 환경위생과의 회사 동료들이 구정에 집에 갈 기차표를 사고 있어 임유진이 물었다.강지혁은 순간 그녀가 묻고 싶은 걸 알아차렸다.“난 차표 살 필요 없어.”“집에 안 가도 돼?”그녀가 의아해했다.“난 누나 여기 말고는 집이 없어.”그는 강 씨 자택에 여러 해 동안 살았지만 여태껏 집이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그녀는 그가 가족이 없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하지만……친척 정도는 있기 마련이다. 보통 설에는 친척 집을 다니는 게 정상이다.그녀가 질문을 하려고 할 때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친척이 있지만 굳이 갈 필요는 없어.”비록 할아버지도 가족이기는 하지만 강 씨 가문은 가족애라는 것이 없고 할아버지가 필요한 것도 단지 강 씨 가문의 상속자일 뿐이다.그가 충분히 우수하고 강하면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이고 그가 강하지 않다면 설령 할아버지의 친손자라 할지라도 매몰차게 쫓겨날 것이다.하물며 그의
임유진은 자신이 그를 처음 만난 그 자리가 그의 아버지가 사망한 곳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미안해.”그녀가 말했다.“아버지가 돌아간 것은 자업자득이니 누나가 사과할 필요는 없어.”강지혁이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자업자득?”그녀는 의아해했다. 그가 아버지의 죽음을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자업자득이 아니면 뭐야? 사랑하지 말아야 할 사람을 사랑해 상대가 이용할 가치가 없으니 곧바로 아버지를 버렸어. 아무리 무릎을 꿇고 애원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어. 그러다 결국에는 그 자리에서 얼어 죽은 거야.”그의 표정은 아주 평범한 일을 말하는 것처럼 담담했고 심지어 목소리도 평소와 같았다.그러나 그의 몸은 마치 쓸쓸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것 같다.마치 임유진이 그를 처음 봤을 때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다.“혁아.”그녀가 그를 불렀다.그가 머리를 들어 칠흑 같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누나가 보기에는 자초한 것이 아니야?”그녀는 목이 메어 한참이 지나서야 말을 뗐다.“그 여자, 혹시 네 엄마야?”그는 아무 표정도 없이 침묵하고 있었지만 그 두 눈동자는 고통을 스쳐 지나갔다.그 순간 그녀는 답을 알았다.그녀는 그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마치 지금, 어떤 말도 무의미한 것 같았다. 어떤 일은 겪어본 사람만이 고통을 안다.그녀는 일어서서 의자에 앉아 있는 그를 껴안았다.그는 그녀의 몸에 기대어 숨결을 느꼈으며 볼 옆으로 그녀의 온기가 전해왔다.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가 옷을 사이에 두고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그는 이렇게 계속……듣고 싶었다.……“엄마, 가지 마…….”어리고 야원 몸이 무릎을 꿇고 짐을 싸서 떠나는 여자에게 떠나지 말라고 빌고 있다.그러나 소용없다. 여자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호하게 떠나려 한다.상대가 떠나려 하자 남자아이는 손을 뻗어 어머니를 잡으려 했다.그러나 그 순간 그는 매몰차게 밀려나더니 곧이어 가슴을 파고드는 통증이 전해왔다…….아프다……너무 아프다!누가 이런 고통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
“진세령이 탈옥한 걸 몰랐다?”강지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김재호를 빤히 바라보았다.“네, 몰랐습니다.”김재호가 단호하게 답했다.“그래, 그렇다고 쳐. 그럼 내가 올 때까지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만약 임유진 씨가 모든 진실을 알고도 대표님과 헤어지지 않으면 대표님과 내기를 하나 하시겠다고요.”“내기?”“네. 대표님께서 아버님처럼 정말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강지혁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이지?”강문철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대체 뭘 지켜보고 무슨 내기를 하겠다는지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김재호는 강지혁의 의혹 가득한 눈빛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잔뜩 얻어터진 얼굴로 그렇게 웃으니 괜히 섬뜩하게 느껴졌다.“말해!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강지혁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눈빛도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졌다.“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는 단지 대표님께 자명한 사실을 하나 일깨워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여자를 위해 사느니 마느니 하는 건 결국 대표님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그간 노인네 뒤를 따라다녔더니 스스로가 뭐라도 된 것 같아?”강지혁이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가 김재호의 멱살을 잡았다.“네가 지금부터 입을 열고 해야 하는 얘기는 이거 하나야. 노인네가 너한테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털어놓지 않으면 그때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야.”이건 누가 들어도 협박이었다.하지만 김재호는 그의 협박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답했다.“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을 때부터 회장님 뒤를 따랐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시고 저를 지금껏 살게 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십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 저한테 맡기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
...강지혁은 방에서 나온 뒤에야 옆에 늘어진 손을 꽉 말아쥐었다.아까 임유진이 그의 팔을 잡고 먼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얼굴이 가까이했을 때 그는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기대감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맛본 건 또 한 번의 실망감뿐이었다.믿음을 주려고 노력은 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몸은 속일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는 건 그녀가 그를 진정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하지만 뭐가 됐든 임유진은 그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해줬고 용서하겠다는 말도 해줬다. 닿는 걸 거부하면서도 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열심히 닿으려고 했다.그러니 그거로 된 거다.어차피 두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은 많으니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아이까지 무사히 출산한 후 다시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 나아가면 된다.강지혁은 밖에 있는 이모님과 경호원에게 다가와 임유진의 상황에 관해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그런데 그때 고이준이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대표님!”강지혁은 그의 다급한 태도에 사람들을 다 물린 후 고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드디어 김재호를 찾았습니다.”고이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흠칫했다.“어디서 찾았지?”“회장님 산소에 있더라고요. 저희 애들을 발견하고 바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잘 잡아뒀습니다. 현재 묘원 옆의 오두막에 있는데 지금 바로 만나러 가시겠습니까?”“그래. 노인네가 대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한번 들어봐야지.”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사실 김재호를 잡은 건 좋지만 이제껏 꼭꼭 숨어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영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진세령의 탈옥 사건도 신경이 쓰이고 말이다.강지혁은 진세령의 탈옥에 김재호가 크게 엮여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지.”강지혁이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이준도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임유진의 몸은 마치 로봇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있었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뻣뻣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뒤꿈치까지 들고 강지혁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고 그 덕에 길게 뻗은 그의 속눈썹과 그의 검은색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서 보였다.이제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입술이 맞닿게 된다.서로의 입술이 맞닿으면 강지혁도 그녀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강지혁은 아마 모르겠지만 임유진은 생각보다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고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자신을 향한 강지혁의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애정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물론 과거의 진실로 마음에 고통이 일고 아주 조금은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고통받은 거로 따지면 강지혁도 그녀 못지않다는 걸 임유진은 알고 있다.다시 함께 한 뒤로 강지혁은 거의 틈만 나면 그녀에게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달라는 말을 했으니까.아마 강지혁은 그때부터 늘 불안해 왔는지도 모른다.그래서 임유진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그걸 증명할 방법이 신체적인 접촉밖에 없다고 해도 그녀는 기꺼이 그를 위해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임유진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며 서서히 얼굴을 강지혁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2cm, 강지혁의 숨결이 전달되어 오며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보였다.임유진은 눈을 질끈 감고 그저 입만 맞추면 된다고, 그러면 괜한 오해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심장이 쿵쿵 뛰고 드디어 강지혁의 입술과 맞닿은 순간, 그녀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뭘 느낄 새도 없이 강지혁의 몸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다.임유진은 뒤로 빠르게 한걸음 물러선 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화장실로 뛰쳐 갔다.그러고는 변기를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웩... 웩!”얼마나 세게 토를 한 건지 그녀는 아침에 먹었던 것을 전부 다 토해버렸다.그렇게 얼마나 토를
“그럼 다른 경호원들을 물려줘. 전처럼 채린 씨만 곁에 있게 해줘. 솔직히 매번 내 뒤에 여러 명이 따라다니는 거, 나 불편해.”임유진은 그 상황이 꼭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안 돼.”강지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왜? 왜 안 되는데?”“뭐가 됐든 안 돼. 넌 지금 경호가 필요한 몸이야. 그러니까 사람 물리는 건 안 돼.”강지혁은 김재호 일도 그렇고 진세령이 탈옥한 일도 그렇고 아직 임유진에게는 그 어떤 것도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불안의 근원 중 어떤 것은 단지 그의 의심과 추측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출산 예정일까지는 그녀가 불안해할 만한 그 어떤 빌미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 마음이 임유진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이러는 게 결국에는 자신을 향한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우리 사이에 믿음이 고작 그거밖에 안 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겠다는 내 말을 믿어줄래?”그녀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강지혁은 마치 임유진의 내면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나한테 키스해 봐.”“뭐?”갑작스러운 요구에 임유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나한테 키스하라고. 네가 먼저 나한테 입을 맞추면 그때는 네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거 믿어줄게.”강지혁은 단지 살과 살이 맞닿는 느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마음의 안정감을 원했다. 그녀를 믿어도 된다는, 그녀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확신할만한 안정감을 원했다.그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부풀어지기만 하는데 임유진은 꼭 아닌 것 같아서, 임유진은 언제든지 그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실제로 임유진이 결혼을 승낙한 것도 이미 생겨버린 아이들과 병원에 누워있는 한지영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임유진은 어쩔 수 없게 그의 곁에 있게 된 것이었다.그래서 강지혁은 마음속으로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