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 저택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은 사용인에게 따뜻하게 데워진 한약과 사탕 그리고 초콜릿을 가져오라고 했다.임유진은 한약을 희망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분명히 쓴데도 전혀 쓰게 느껴지지 않았다. 운이 좋으면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수 있으니까.강지혁은 초콜릿을 까더니 임유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당연하게 입을 벌려 그의 손에 든 초콜릿을 받아먹었다. 그러다 실수로 그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리고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미안해."임유진이 얼른 말했다,강지혁은 그녀에게 깨물린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로 가져가고는 물었다."많이 달아?"그의 목소리는 마치 여름밤의 산들바람처럼 그녀의 마음을 간지럽혔다.임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강지혁이 물어보는 게 초콜릿임을 알면서도 마치 그의 손가락이 다냐고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졌다.입안에 있는 초콜릿은 그녀의 구강 온도에 서서히 녹아들었지만, 그녀는 초콜릿을 음미할 겨를이 없었다."달아?"그의 계속되는 질문에 임유진은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며 그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보이지 않는 힘이 그녀를 끌어당기듯 시선을 돌리 수가 없었다.강지혁의 눈빛, 표정, 그리고 손짓 하나하나까지 마치 당연히 이끌릴 수밖에 없는 것처럼 그녀를 그렇게 끌어당겼다."달아."임유진이 간신히 두 글자를 내뱉자 강지혁은 예쁘게 웃더니 천천히 허리를 숙이고는 예쁜 얼굴을 그녀의 눈앞에 갖다 댔다."누나, 나 사랑해주면 안 돼?"강지혁은 이토록 누군가의 사랑은 바란 적은 임유진이 처음이고 그는 그녀가 자신을 사랑해야만 이 갈증이 해소될 것 같았다.사랑해 달라고? 임유진은 아직도 그의 얼굴에 취해 정신이 몽롱해서는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임유진이 강지혁을 좋아하는 건 확실하다. 하지만 사랑? 만약 사랑한다고 하면 그녀는 과연 그를 어느 정도로 깊이 사랑할 수 있을까?그녀가 막 입을 벌려 얘기를 하려고 할 때 강지혁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쳐왔고 임유진은 그제야 입안 가득 퍼진 초콜릿 향을 느낄 수 있었다.정말 달아.
강지혁은 마치 소중한 것을 다루듯 그녀의 얼굴을 매만졌고 천천히 입술을 열고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에게 속삭였다."나 좀 사랑해줘. 응?"마치 구걸하듯 그녀의 사랑을 바라는 그의 모습에 임유진은 저도 모르게 입술이 바짝 타는 것을 느끼며 혀로 입술을 살짝 핥았다. 그러고는 마치 그의 숨결에 잠식된 사람처럼 사고가 멈춰버린 채 몽롱한 얼굴을 했다.청초한 얼굴, 검은 눈동자, 앙증맞은 코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눈빛, 강지혁은 마치 덫에 걸린 사람처럼 평생 그녀에게 벗어날 수 없음을 느꼈다.한때 그는 여자의 사랑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그 생각은 임유진을 만나고 나서 싹 다 사라져버렸고 그녀를 갖고 싶고 그녀의 사랑을 갖고 싶다는 생각만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그녀와 마주할 때면 그는 자존심과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있었고 온전히 새로운 감정에 자신을 맡기고 싶었다.강지혁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을 포개왔고 그는 부드러운 키스로 그녀를 녹이기 시작했다.그때 임유진이 정신을 차리고는 빨개진 얼굴로 강지혁의 가슴팍을 밀어버렸다."나... 나..."버벅대며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에는 명백한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임유진은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 서린 두려움을 본 강지혁은 눈빛이 점차 맑아지더니 곧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임유진은 지금 겁을 먹었다. 아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가 혹은 아직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강지혁은 그녀를 하루빨리 갖고 싶다는 마음에 급하게 몰아붙여 미처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미안해..."강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임유진이 너무나도 갖고 싶지만 결코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는 그녀가 진심으로 원할 때, 그때 관계를 맺고 싶었다.강지혁은 서서히 몸을 일으킨 후 웃음을 자아내려고 노력하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누나가 싫으면 안 해.
강지혁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지금 누나 행동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아...?"그는 간단한 한마디를 힘겹게 한 글자 한 글자씩 내뱉었고 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천천히 답했다."응... 알아."이 순간, 그녀는 단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에게 전해주고 싶을 뿐이다."혁아, 나 너 사랑하는 것 같아."임유진은 더 이상 강지혁이 그녀에게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도 못 한 채 그의 눈빛이 서서히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그저 지켜만 보고 싶지 않았다. 매번 그녀가 침묵할 때면 그의 눈은 항상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깊게 가라앉았고 그는 줄곧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이런 진실한 감정을 그에게 전부 보여주고 싶었다."너를 얼마만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어. 지금, 이 감정이 얼마나 깊은지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 나도 잘 몰라. 하지만 널 사랑하는 이 마음이 진짜라는 건 확신할 수 있어."임유진은 이 감정을 숨기고 싶지 않다. 그가 오해하며 혼자 마음 아파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강지혁은 잔뜩 굳어버린 몸을 천천히 돌려 눈앞의 그녀를 응시하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정말이야? 날 정말 사랑해?"그는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대답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믿기지 않는 건지, 아니면 실감이 나지 않는 건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답을 요구했다."응."임유진이 말했다"널 사랑해. 혁아, 난 널 원해."말을 마친 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며 행동으로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서로 마음이 통한다는 게 이런 걸까. 임유진은 강지혁을 사랑하기에 그가 더는 참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이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그에게 주고 싶었다.맞닿았던 입술이 천천히 떨어지고 강지혁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고는 낮게 속삭였다."후회 안 해
어젯밤 일이 떠오른 임유진은 서서히 부끄러워 났다. 그녀는 진작에 깼지만, 눈을 뜨면 바로 강지혁의 얼굴이 보일까 봐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얼굴을 마주하게 되면 대체 무슨 얘기를 해야 하지?임유진은 이따 있을 어색함을 떨치기 위해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했고 아직 생각 정리가 채 되지 않았는데 옆에서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깼어? 깼으면 눈 좀 떠봐. 아니면... 내 얼굴을 보게 되는 게 겁나?"임유진은 그 말에 흠칫하더니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신이 조각한 듯한 강지혁의 얼굴이었다.그는 한 손으로 침대를 짚고는 허리를 숙이고 있었고 얼굴은 그녀의 얼굴과 매우 가까워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여자들도 질투할 만한 길고 검은 속눈썹은 그의 예쁜 눈동자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임유진은 그와 눈이 마주치고는 자기도 모르게 어젯밤 그녀를 홀릴 듯 바라봤던 그의 눈동자가 떠올랐다."무슨 생각해?"그때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임유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는 얼른 대답했다."아니야, 아무것도..."부랴부랴 옷을 입은 후 임유진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강지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잠깐만."그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더니 정성스럽게 양말을 신겨주었다. 그러고는 슬리퍼까지 신겨준 후 그녀를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뭐, 뭐 하는 거야?"임유진이 당황한 듯 물었다."씻으려는 거 아니야?"강지혁이 되물었고 임유진은 ‘아...’ 하는 소리와 함께 그에게 몸을 맡겼다.욕실로 들어간 후 강지혁은 그녀를 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작게 속삭였다."서 있기 힘들면 나 잡아.""응."임유진은 짧게 대답한 후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봤다. 거울에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었고 강지혁은 고개를 숙인 채 그녀를 위해 칫솔에 치약을 짜주고 있었다.그녀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강지혁을 보며 이게 바로 사랑받는 느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여기."강지혁은 그녀에게 칫솔을 건
이도 닦고 세수까지 마친 임유진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다 못해 곧 터질 듯했다.그녀가 빗을 들고 머리를 빗으려고 하자 강지혁이 그녀의 손에서 빗을 뺏어 들었다."내가 해줄게."이에 임유진이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하지만...""걱정 마. 예쁘게 빗겨줄 테니까."강지혁은 씩 웃더니 빗을 들고 마치 아기 다루듯 부드러운 손길로 천천히 그녀의 머리를 빗겨주기 시작했다.강지혁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사람이 임유진 말고 또 있을까?그녀는 거울에 비친 자신과 강지혁을 바라봤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흐르고 있었고 강지혁은 입가에 수많은 여자의 마음을 훔칠 듯한 웃음을 머금은 채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는 빗을 내려놓은 후 그녀의 머리를 천천히 한곳으로 모으고는 이내 머리끈으로 묶었다."앞으로도 종종 나한테 누나 머리를 빗게 해줘."강지혁은 만족한 듯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임유진은 그가 말한 앞으로라는 단어가 가슴에 확 와 닿았고 그녀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어떻게 된 거예요? 대체 누가 우리 가문을 대상으로 공매도를 하고 있냐고요?"윤수경의 말에 진기태는 얼굴이 어두워져서 대답했다."강지혁이야.""네?"윤수경은 깜짝 놀랐다."강지혁이요? 아니, 우리하고 대체 무슨 원수를 졌다고 공매도를 한대요?"원수를 지지 않았다고? 진기태의 생각은 달랐다. 일전 임유진의 일로 그를 찾아가긴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강지혁은 아직 끝낼 생각이 없는 것이다.윤수경도 머리를 굴리다 진기태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설마... 강지혁이 임유진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안에 복수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윤수경은 본인이 말하고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임유진을 벌레만도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으니까.그런데 강지혁 같은 남자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짓을 벌여가며 진씨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것도 불사한다고?"감방까지 살고 온 여자잖아요!"윤수경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소리쳤다."그래. 감
"뭘 어떻게 도와주는데?"진기태가 물었다."소씨 집안 보고 강지혁과 적이 되어 달라고 얘기할 셈이야? 아니면 우리 회사에 몇천억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주가를 올려달라고 부탁할 거야?"윤수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비즈니스에 관해서는 잘 몰랐지만 진기태의 반응으로부터 소씨 가문에게 도움을 구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인 듯 보였다. 거금을 지원해 달라는 것보다는 강지혁과 적이 되어달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부탁이니까."그... 그럼 어떡해요?"윤수경이 다급해서 소리쳤다."강지혁은 어떻게 된 게 임유진 같은 여자한테 홀딱 빠져서는! 그 여자가 무슨 약이라도 먹인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민준이가 한번 버렸던 여잔데 강지혁은 그래도 좋대요?"진기태는 짜증을 내며 말했다."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당신, 그런 말 이제는 내 앞에서만 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꺼내지도 마. 괜히 불필요한 트러블을 또 일으킬 필요는 없잖아."윤수경은 불만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내가 강지혁을 만나보고 올게. 뭘 어떻게 하려는 건지 들어봐야겠어."진기태도 임유진이라는 여자 하나 때문에 진씨 일가가 위기에 놓이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그렇게 진기태는 강지혁을 만났고 곧 그에게서 이상한 제안을 듣게 된다."열흘 안에 유진이를 내쫓았던 백화점을 평지로 만들어 버리면 저도 그만하죠."강지혁이 담담하게 내뱉은 말에 진기태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백화점을 평지로 만들어 버리라고?"지금 백화점을 허물어 버리라는 건가? 얼마만큼의 거금을 투자해 세웠는지를 막론하고 거기는 도심이라 이윤도 괜찮기에 주주 쪽에서 멋대로 철거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지혁아, 혹시 임유진 씨를 위해 이러는 거면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진기태는 어떻게든 손실을 막아야 했다."유진이를 위해 이러는 거 맞아요. 그리고 다른 방법을 얘기하기 전에 당신 아내 팔을 잘라버리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죠. 이 정도면 충분히 봐준 것 같은데."강지혁의 섬뜩
한편, 임유진은 윤이를 보러 병원에 왔다.전과 달리 윤이는 이번에 깨어있었고 한창 탁유미와 듣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탁유미가 주위 물건들을 가리키며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려주면 윤이는 동그란 눈을 하고는 열심히 듣고 있다. 그러다 윤이가 다시금 물건을 가리키면 그녀는 또 한 번 물건들의 이름을 똑같이 말해주었다."윤이야."임유진의 부름에 윤이는 바로 고개를 돌려 그녀 쪽을 쳐다봤다. 이제 윤이는 정말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못 했던 일에 임유진은 진심으로 기뻐했다.들을 수 있다는 건 곧 말도 배울 수 있다는 뜻이고 인공와우를 착용하고만 있으면 보통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3살이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의사의 말에 따르면 윤이는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단계이기에 너무 늦은 것도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임유진은 윤이에게 다가가서 그의 머리를 만져주었다."우리 윤이,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말도 할 수 있겠네."윤이는 임유진의 목소리에 흥분한 듯 손가락으로 이곳저곳을 가리키더니 웅얼웅얼 대며 무언가 말하려고 했다. 임유진은 윤이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열심히 호응해주었다."유진 씨, 얼마 전에도 왔었으면서 오늘 또 왔어요?"탁유미가 내심 기쁜 듯 물었다."저번에 왔을 때는 윤이랑 얘기도 못 했잖아요. 오늘은 운이 좋네요. 윤이도 깨어있고."임유진은 탁유미를 보며 말을 이었다."의사는 뭐래요? 윤이 이제 괜찮은 거 맞대요?""네, 이제 괜찮아요. 이틀 후면 퇴원도 가능해요. 1년 동안 특수강의를 들어야 하지만 의사 말로는 1년 후면 언어능력이 정상으로 돌아와서 그때면 유치원도 갈 수 있대요."그 말에 임유진이 환하게 웃었다."정말 잘됐네요.""그러니까요."탁유미 역시 활짝 웃고는 자신의 엄마에게 윤이를 맡긴 후 임유진에게 물을 한잔 따라주었다."오늘 강지혁 씨는 같이 안 왔네요?""네, 출근했어요. 나는 어차피 언니가
"그래도 강지혁 씨가 잘해주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게 바로 유진 씨를 가리키는 말 같아요."그럴지도 모른다. 지금 강지혁과 임유진의 사이는 점점 더 돈독해지고 있고 그녀는 가끔가다 셋방에서 살았던 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도 느끼고 있다.하지만 다른 점도 있었는데 그때의 임유진은 그를 그저 동생으로, 가족으로만 생각했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강지혁을 자신의 연인으로, 미래에도 같이 옆에 있고 싶은 동반자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언니도요. 윤이가 머지않아 말도 할 수 있게 되면 다른 아이들처럼 공부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뭐든 다 할 수 있게 되니까요."임유진이 말했다."그렇죠. 나는 윤이가 행복할 수만 있다면 고생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탁유미는 임유진을 향해 예쁘게 웃어 보였다."아마 유진 씨도 엄마가 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자신의 아이를 위해서라면 엄마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엄마라... 임유진은 자신의 평평한 복부를 쓸어내리며 옅은 미소를 띠었다....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임유진은 문득 강지혁과 보냈던 그 날 밤 아무런 피임도 하지 않았다는 걸 떠올렸다. 그러다 임신할까 봐 걱정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이내 피식 웃었다.그녀의 지금 몸으로는 임신이 될 리가 없었고 피임을 하든 안 하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만약 정말 임신하게 된다면 그건 바라던 바다.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진정한 엄마가 될 기회이니까.강씨 저택.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강지혁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임유진은 뉴스나 볼 겸 핸드폰을 켰고 그때 한지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임유진이 전화를 받자 전화기 너머에서 한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너... 음, 혹시 지금 경찰서로 와서 나 좀 꺼내줄 수 있어?"임유진은 하마터면 침에 사레들릴 뻔했다. 그러고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일이야. 경찰서는 또 뭐고?""음, 그게... 말하자면 길어. 우리 엄마 아빠가 아시면 기절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