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센터에 도착하니 병원 측 사람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어 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그녀는 간호사를 따라다니며 채혈,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았고 강지혁은 건강검진 센터 VIP 라운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여러 과실을 다니며 검사받을 때 입구에 환자들이 꽤 길게 줄 서 있는 걸 발견했다.간호사는 오늘 일부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조직해 사람이 많다고 했다.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그곳에도 문 앞에 줄 선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간호사는 그녀를 데리고 아무도 줄 서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유진 씨.”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고개 돌려 긴 줄에 서 있는 정한나를 발견했다.여기서 정한나를 보다니, 그녀도 마침 건강검진 받으러 온 걸까? 그렇다면 저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로펌의 낯익은 옛 동료들이 하나둘씩 보였다.전에 다녔던 로펌 직원들도 오늘 마침 이곳에서 건강검진을 받나 보다.정한나는 옆 사람에게 얘기한 후 그 줄에서 빠져나와 임유진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여기서 또 보네요. 배달 왔어요 유진 씨?”“아니요, 건강검진 받으러 왔어요.”임유진이 대답했다.“그래요...”정한나는 그녀를 쭉 훑어보았는데 오늘 옷차림은 지난 두 번 배달 때의 옷차림과 확연히 달랐다. 전보다 훨씬 예뻐졌달까?“하긴, 감방에서 나온 뒤로 제대로 검진 못 받았을 텐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죠.”정한나는 말하면서 일부러 그녀를 위하는 척 유감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오늘 줄 선 사람들이 꽤 많아요. 바로 내 뒤에 서면 기다리는 시간 훨씬 단축할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럼 뒤에 있는 사람들한테 불공평해서 유진 씨를 못 도와주겠어요.”임유진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미안하다면 굳이 이렇게 찾아와 말할 필요도 없을 텐데.“괜찮아요. 나도 새치기할 생각은 없었거든요.”임유진이 대답할 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유진 씨,
변호사였을 당시 임유진은 줄곧 그녀의 기세를 짓누르고 로펌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광 받았으니 정한나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인제 드디어 임유진을 제대로 ‘각광 받게’ 해줄 수 있다. 로펌 직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지. 여신 아우라를 내뿜던 변호사가 지금 어떤 꼴이 됐는지 말이다.다들 전에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없었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정한나는 꼭 이렇게 해야만 마음속에 쌓였던 불만이 가셔질 것 같았다.이때 마침 다른 간호사가 지나갔고 정한나와 얘기 나누던 그 동료는 곧장 간호사에게 물었다.“저 초음파 검사실은 아까 병원 측에서 건강검진 받는 환자는 접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좀 전에 간호사가 건강검진 받는 환자를 데리고 들어갔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아 네, 그분은 아마 우리 병원 VIP 건강검진 고객일 겁니다.”간호사가 대답했다.“VIP 건강검진 고객이요?”그 동료는 흠칫 놀라더니 곧장 캐물었다.“VIP 건강검진은 비용이 얼마나 되는데요?”“패키지에 따라 가격이 다 달라요. 제일 저렴한 패키지는 몇백만 원 좌우 할 테고 비싼 건 몇천만 원 짜리도 있어요.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여기 6층에 안내데스크가 있으니 거기로 가서 문의하시면 됩니다.”말을 마친 간호사는 자리를 떠났다.그 동료는 충격에 휩싸인 채 머리를 돌리고 똑같이 간호사의 말에 충격받은 정한나를 쳐다봤다.“한나 씨, 그 선배 진짜 배달 일만 하는 거 맞아요?”제일 저렴한 패키지도 몇백만 원 한다는데 일반인들이 퍽이나 감당할까?“말도 안 돼!”정한나가 비명을 지르며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걔가 어떻게 VIP 고객이야?”“하지만 이미 저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갔잖아요.”동료가 말했다.그 시각 줄 서 있던 로펌 동료들도 정한나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정한나는 그제야 감정조절이 안 된 걸 깨닫고 황급히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동료에게 말했다.“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다만 속으론 여전히 내켜하지 않
그 시기가 그녀에겐 가장 침울한 시기이다. 살아갈 의욕을 잃었고 한지영이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이따가 검사보고 나오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한번 보이세요. 뭔가 보완책을 구할 수도 있잖아요.”“보완책이요?”임유진이 놀란 듯이 물었다.“진짜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유진 씨는 아직 젊어서 아예 기회가 없다고 단정 짓기는 일러요. 게다가 의학적으로 절대적인 일은 원래 존재하지 않아요.”임유진은 저도 몰래 마음속에서 또다시 일말의 희망이 생겨났다. 매우 아득할지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만약... 진짜 보완책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만의 아이를 가질 수도 있을 텐데!여기까지 생각한 임유진은 불쑥 강지혁의 얼굴이 떠올랐다.만약 진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애 아빠는...“다 됐어요, 일어나시면 됩니다.”의사의 말에 그녀는 사색에서 빠져나왔다.임유진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방금 그 순간의 생각 때문에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그녀는 강지혁과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임유진은 간호사와 함께 초음파 검사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검진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따가 모든 결과서가 나오면 담당 의사가 받아가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각 과실 전문의에게 진찰받으면 되니까.그녀가 초음파 검사실에서 나오자 아직도 줄 서 있던 정한나가 또다시 쪼르르 달려오며 큰소리로 외쳤다.“VIP 건강검진 패키지 샀어요, 혹시? 유진 씨 고작 배달 일 하면서 무슨 돈으로 그 비싼 패키지를 다 사요?”임유진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한나는 마치 판사를 방불케 했다. 묻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그건 내 사생활 같은데 굳이 한나 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임유진이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정한나도 그제야 자신의 말투가 조금 거칠었다는 걸 알아채고 얼른 자세를 낮추는 척했다.
말을 마친 임유진도 더는 정한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옆에 있는 간호사를 부르며 다음 검사를 받으러 갔다.정한나는 제자리에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돌리니 로펌의 뭇사람들이 한창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축 처진 채로 다시 대오에 돌아갔다.그러니까 한바탕 애를 쓴 후에도 결국 임유진이 무슨 돈으로 VIP 패키지를 샀는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모든 검사를 마친 임유진은 강지혁의 곁으로 돌아갔다.“다 했어?”강지혁이 물었다.“응, 어떤 결과서는 빨라도 오후에 나온대.”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럼 일단 가서 아침부터 먹자. 누나 아침밥 못 먹었잖아.”“그래.”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뭐 먹고 싶어?”강지혁이 물었다.“이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자.”이제 겨우 9시다 보니 근처에 토스트 가게가 아직도 장사하고 있었다.“그래.”강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선뜻 그녀의 손을 잡고 병원 근처의 토스트 가게로 향했다.임유진은 메뉴판의 종류 다양한 토스트를 보더니 군침이 돌았다.“그냥 여기서 먹자. 나 아침 안 먹었더니 배고프네.”강지혁은 머리를 끄덕였다.임유진은 주문을 마치고 또다시 강지혁에게 물었다.“넌 뭐 먹을래?”“누나랑 같은 거로.”그는 임유진의 입맛이 궁금했다.야채 토스트와 키위 주스 한 잔까지, 아침 식사로 아주 푸짐한 한 상이었다. 다만 요 몇 년 사이에 물가가 폭등해 이 한 세트에 1만5천 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임유진은 금방 출소하고 토스트 가게를 지날 때마다 사 먹지 않았다.그 당시 그녀에게 1만5천 원을 주고 아침을 사 먹는 건 사치였으니까. 편의점에서 대충 5천 원 이내로 아침밥을 해결하기가 일쑤였다.“아 참, 오늘 건강검진 마치고 나랑 함께 월세방 가줄 수 있어?”임유진이 불쑥 물었다.“거긴 왜?”강지혁이 되물었다.“거기 있는 물건들 좀 정리하고 집주인이랑 상의해서 방 빼려고.”그 집을 계속 그대로 놔두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니까.
임유진도 그러면 될 것 같아 머리를 끄덕였다.“그래.”그녀는 계속 토스트를 맛있게 먹었고 강지혁은 흐뭇한 얼굴로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먹고 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긴 생머리는 포니테일로 묶고 이마를 훤히 드러냈으며 수려한 미모에 영롱한 두 눈, 오뚝한 코와 핑크빛 입술까지 그의 눈엔 모든 게 예뻐 보였다.그 언젠가 한 여자를 이토록 사랑할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하지만 정작 또 사랑에 빠지고 보니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임유진은 맛있게 먹다가 우연히 고개 들어 강지혁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짙은 그의 눈동자에 머리가 백지장이 돼버렸다.“왜... 그렇게 봐?”임유진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그냥, 누나가 진짜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강지혁이 대답했다.임유진은 몹시 난감했다. 그가 본 미인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관리도 제대로 못 받아 대충 봐줄 만한 정도이지 ‘엄청 예쁘다’라는 건 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필 강지혁의 눈빛과 표정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사랑의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나 보다. 임유진이 재빨리 말했다.“너도... 얼른 먹어. 식으면 맛없어.”강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한 후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그는 조촐하게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할 뿐인데 주스를 마시는 제스처나 토스트를 먹는 모습까지 전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건 마치 광고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진정 예쁜 사람은 바로 강지혁이었다.그는 S 시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런 구멍가게에서 토스트나 먹고 있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임유진이 그와 연애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이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만약 이후에 그녀와 강지혁 사이에 정말 아이가 생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임유진은 강지혁을 향한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깊어졌다...
“식기 그릇이랑 이불까지 이따가 중고품 상가로 가져가서 다 팔아버릴래. 이 옷들이랑 신발은 더 입을 수 있으니까 집에 가져갈 거야.”강지혁은 그녀가 가져가겠다는 옷과 신발을 살펴보았는데 조금 바랜 옷들이었다. 비록 퀄리티는 좋아도 올드하고 색이 바랬다.아마도 그녀가 감방에 들어가기 전에 산 옷인 듯싶다.강지혁은 바로 알아챘지만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돈도 쓰고 싶고 이 낡은 물건들을 전부 좋은 거로, 새것으로 바꿔주고 싶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니까.너무 성급하게 몰아붙였다가 괜히 그녀를 놀래게 할까봐 걱정이었다. 이제 겨우 강지혁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여기서 나 잠깐만 기다려줄래? 금방 갔다 올게.”임유진이 막 다 싼 짐보따리를 들고 중고품 상가에 다녀오려는데 강지혁이 선뜻 물건을 챙겼다.“내가 할게. 문 열어줘 누나.”“응.”그녀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강지혁은 한 손에 식기 그릇을, 다른 손엔 이불과 담요를 들고 문밖을 나섰다.임유진도 문을 꼭 닫고 그를 따라갔다.“나 하나 줘. 내가 들게.”그가 무거운 짐을 가득 들고 있으니 임유진은 살짝 미안해졌다.“아니야. 누난 앞에서 길만 잘 안내해주면 돼.”강지혁이 대답했다.그가 단호하게 말하자 임유진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걸으며 은근슬쩍 뒤돌아보기도 했다.지금 강지혁의 모습은 마치 설 연휴에 부모님 뵈러 본가로 돌아오는 아들처럼 짐보따리를 가득 이고 있는데 하필 양복을 입고 잘생긴 얼굴을 내비치고 있으니 이 상황과 너무 안 어울렸다.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아예 없는 듯싶다.드디어 중고품 상가에 도착했고 임유진은 가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더니 재빨리 달려갔다.“사장님, 식기 그릇이랑 이불 담요 가져왔는데 가게에서 받나요?”“당연하죠.”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하지만 멋있게 차려입은 강지혁이 ‘중고품들’을 들고 오는 모습에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사장님은 물건들을 하나둘씩 확인하며 뭐라 중얼거리더니 임유진을 끌
강지혁은 대뜸 걸음을 멈추고 짙은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임유진은 의아한 듯 물었다.“왜?”“속인다면?”그가 물었다.임유진은 흠칫 머뭇거리더니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술을 앙다물고 그를 진지하게 바라봤다.“혁아, 난 거짓말하는 사람 싫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래도록 잘 지내려면 반드시 진솔해야 해. 거짓말을 안 하는 건 가장 기본이야.”강지혁은 침묵한 채 그녀를 뚫어지라 쳐다봤다.“너 나 속일 거야?”그녀는 물으면서도 가슴이 불안해졌다. 강지혁이 진짜 그럴 거라고 대답할까 봐, 두 사람은 서로 안 맞다고 결론이 날까 봐 너무 불안했다.이 점에서도 서로 의견이 안 맞으면 둘은 과연 계속 함께할 수 있을까?강지혁은 옆에 내린 손을 슬쩍 거두어들이고 천천히 대답했다.“안 속여.”임유진은 가슴을 짓눌렀던 큰 돌덩어리를 내려놓은 것처럼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강지혁은 그녀를 속이지 않겠다고 한다.“왜? 내 대답이 누나를 실망시킬까 봐?”그는 마치 그녀의 표정에서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 듯이 물었다.“조금.”임유진은 뻘줌한 듯 코를 쓰다듬었다.“아무튼 난 너 속이는 일 없어. 그러니까 너도 나 속이지 마.”“알았어.”강지혁은 나지막이 대답했다.“근데 만약 내가 아까 속이겠다고 대답하면 누난 어쩔 생각이었어?”강지혁은 끝내 참지 못하고 그녀의 해답을 듣고 싶었다. 이 해답이 자신을 더 두렵게 만들지라도.임유진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술을 꼭 깨물고 힘겹게 말했다.“아마... 헤어지겠지.”만약 기본이 되어야 할 마인드가 안 맞으면 오래가기 힘들다. 지금은 간신히 버텨낼 수 있겠지만 앞으로 분명 트러블이 생길 텐데 애초에 감정이 더 깊어지기 전에 바로 끝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듯싶다.그녀는 이미 누군가에게 속은 적이 있어 두 번은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소민준도 전에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꼭 지켜줄 거라고 맹세했고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제일 유명한 변호사를 찾아주겠다고 했다.그
강지혁은 그제야 팔에 힘을 풀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안고 있었다.“누나, 헤어지자는 말 영원히 하지 마. 그래 줄 수 있어?”그는 고개 숙여 짙은 눈동자로 임유진을 쳐다봤다. 그 눈빛 속엔 그녀가 전혀 본 적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차 있었다.마치 그녀가 이별을 고하면 어쩔 바를 몰라서 당혹감에 빠질 것만 같았다.강지혁에게 그녀는 정말 이토록 중요한 존재일까? 만약에라도 헤어지잔 말을 못 할 정도로?!임유진은 가슴이 꽉 막힐 것처럼 괴로웠다. 그녀는 저도 몰래 천천히 손을 들어 강지혁을 가볍게 안아주었다.“그래, 혁아. 영원히 헤어지잔 말 안 할게.”‘영원’이라는 다짐은 이렇게 그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그녀는 심지어 이 다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은 단지 그의 이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왜냐하면... 그녀도 마음이 괴로우니까....오후에 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건강검진 보고서가 나왔는데 중요한 문제점은 예전에 남은 상처들이었다. 비록 지금 다 나았지만 날씨가 흐리고 습해지면 관절이 시큰거렸다.의사 말로는 장기적으로 치료하면 다 나을 거라고 한다.제일 큰 골칫거리는 역시 그때 자궁을 다친 일이었다.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건의는 일단 몸조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수술해서 자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다시 임신을 고려해도 아예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다.“나 진짜 아이 가질 수 있어요?”임유진은 흥분에 겨웠다. 줄곧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사치스러운 염원이었으니까.그런데 지금 이 염원이 현실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그건 조리 후의 상황을 봐야 해요. 현재로선 확률이 30퍼센트입니다.”전문의가 말했다.30퍼센트란 다른 사람들에겐 아주 낮은 확률일지 몰라도 임유진에겐 엄청난 숫자였다.“그럼 우선 몸조리부터 할게요.”결국 강지혁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은 후 임유진과 강지혁은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