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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작가: 유진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12-23 18:00:00
되새겨보니 그녀 옷장엔 출근할 때 정장 말곤 소민준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옷만 들어있고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옷은 몇 벌도 안 됐다.

지난 인생은 저 자신보다 남을 위해 헌신하며 산 듯싶다.

“누나를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강지혁이 문득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만약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두 사람은 지금보다 예쁜 만남을 가졌을 텐데, 그러면 그녀가 3년 동안 감방 생활을 할 리도 없고 강지혁도 지금처럼 그녀에게 지난 일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할 리도 없을 테니 말이다.

강지혁의 눈빛에 그녀가 알 수 없는 정서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가자, 이만.”

그는 말하면서 임유진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갔다.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는 날이라 그녀는 아침을 거르고 공복 상태로 병원에 가야 한다.

강지혁은 그녀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임유진은 어제 산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었는데 심플한 검은색 머리끈이 한결 정갈해 보였다. 어제처럼 머리끈 안의 하얀 고무줄이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강지혁은 그녀를 이토록 소중히 여기면서 왜 전에는 신경 쓰지 못했을까? 그는 어제 그녀의 머리끈에 흰 고무줄이 나온 걸 본 순간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예전에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이 기분을 오직 그녀만 줄 수 있다. 이건 마치 ‘무수한 재부를 지녀도 여전히 그녀에게 닳아빠진 머리끈만 해주는’ 극심한 대비를 이루는 것 같았다.

애초에 임유진이 감방에 안 갔더라면 모든 것이 달라졌을 텐데.

그녀가 지금처럼 초라해진 것은 전부 강지혁 때문이라곤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 책임은 있다.

“머리끈 쓸 만 해?”

강지혁이 무심코 물었다.

“꽤 좋은데.”

가격은 확실히 비싸지만 노점상에서 산 것보다 품질이 훨씬 좋았다.

“그럼 됐어. 나중에 사람 시켜서 다른 브랜드 것도 더 사 오라고 할게. 어느 브랜드가 좋은지 누나가 한번 비교해봐.”

강지혁이 말했다.

“아니야, 어제 산 것도 한동안은 쓸 수 있어.”

임유진은 재빨리 그를 말렸다.

“내가 누나 챙겨주고 싶어서 그래. 남자친구가 여자친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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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센터에 도착하니 병원 측 사람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어 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들어가기만 하면 됐다.그녀는 간호사를 따라다니며 채혈, 엑스레이, 초음파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았고 강지혁은 건강검진 센터 VIP 라운지에서 그녀를 기다렸다.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여러 과실을 다니며 검사받을 때 입구에 환자들이 꽤 길게 줄 서 있는 걸 발견했다.간호사는 오늘 일부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조직해 사람이 많다고 했다.임유진은 간호사를 따라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왔는데 그곳에도 문 앞에 줄 선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간호사는 그녀를 데리고 아무도 줄 서지 않은 방으로 들어갔다.“유진 씨.”이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임유진은 고개 돌려 긴 줄에 서 있는 정한나를 발견했다.여기서 정한나를 보다니, 그녀도 마침 건강검진 받으러 온 걸까? 그렇다면 저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아니나 다를까 로펌의 낯익은 옛 동료들이 하나둘씩 보였다.전에 다녔던 로펌 직원들도 오늘 마침 이곳에서 건강검진을 받나 보다.정한나는 옆 사람에게 얘기한 후 그 줄에서 빠져나와 임유진 앞으로 쪼르르 달려왔다.“여기서 또 보네요. 배달 왔어요 유진 씨?”“아니요, 건강검진 받으러 왔어요.”임유진이 대답했다.“그래요...”정한나는 그녀를 쭉 훑어보았는데 오늘 옷차림은 지난 두 번 배달 때의 옷차림과 확연히 달랐다. 전보다 훨씬 예뻐졌달까?“하긴, 감방에서 나온 뒤로 제대로 검진 못 받았을 텐데 한번 해보는 것도 좋죠.”정한나는 말하면서 일부러 그녀를 위하는 척 유감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오늘 줄 선 사람들이 꽤 많아요. 바로 내 뒤에 서면 기다리는 시간 훨씬 단축할 텐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럼 뒤에 있는 사람들한테 불공평해서 유진 씨를 못 도와주겠어요.”임유진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렸다. 정말 미안하다면 굳이 이렇게 찾아와 말할 필요도 없을 텐데.“괜찮아요. 나도 새치기할 생각은 없었거든요.”임유진이 대답할 때 옆에 있던 간호사가 입을 열었다.“유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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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였을 당시 임유진은 줄곧 그녀의 기세를 짓누르고 로펌에서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각광 받았으니 정한나는 거의 투명인간 취급을 당했다.인제 드디어 임유진을 제대로 ‘각광 받게’ 해줄 수 있다. 로펌 직원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지. 여신 아우라를 내뿜던 변호사가 지금 어떤 꼴이 됐는지 말이다.다들 전에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없었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싶었다!정한나는 꼭 이렇게 해야만 마음속에 쌓였던 불만이 가셔질 것 같았다.이때 마침 다른 간호사가 지나갔고 정한나와 얘기 나누던 그 동료는 곧장 간호사에게 물었다.“저 초음파 검사실은 아까 병원 측에서 건강검진 받는 환자는 접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왜 좀 전에 간호사가 건강검진 받는 환자를 데리고 들어갔죠?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아 네, 그분은 아마 우리 병원 VIP 건강검진 고객일 겁니다.”간호사가 대답했다.“VIP 건강검진 고객이요?”그 동료는 흠칫 놀라더니 곧장 캐물었다.“VIP 건강검진은 비용이 얼마나 되는데요?”“패키지에 따라 가격이 다 달라요. 제일 저렴한 패키지는 몇백만 원 좌우 할 테고 비싼 건 몇천만 원 짜리도 있어요. 상세하게 알고 싶다면 여기 6층에 안내데스크가 있으니 거기로 가서 문의하시면 됩니다.”말을 마친 간호사는 자리를 떠났다.그 동료는 충격에 휩싸인 채 머리를 돌리고 똑같이 간호사의 말에 충격받은 정한나를 쳐다봤다.“한나 씨, 그 선배 진짜 배달 일만 하는 거 맞아요?”제일 저렴한 패키지도 몇백만 원 한다는데 일반인들이 퍽이나 감당할까?“말도 안 돼!”정한나가 비명을 지르며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걔가 어떻게 VIP 고객이야?”“하지만 이미 저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갔잖아요.”동료가 말했다.그 시각 줄 서 있던 로펌 동료들도 정한나 쪽으로 시선이 쏠렸다.정한나는 그제야 감정조절이 안 된 걸 깨닫고 황급히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동료에게 말했다.“아무래도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다만 속으론 여전히 내켜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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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기가 그녀에겐 가장 침울한 시기이다. 살아갈 의욕을 잃었고 한지영이 자주 찾아오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의사가 한숨을 내쉬었다.“이따가 검사보고 나오면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한번 보이세요. 뭔가 보완책을 구할 수도 있잖아요.”“보완책이요?”임유진이 놀란 듯이 물었다.“진짜 또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유진 씨는 아직 젊어서 아예 기회가 없다고 단정 짓기는 일러요. 게다가 의학적으로 절대적인 일은 원래 존재하지 않아요.”임유진은 저도 몰래 마음속에서 또다시 일말의 희망이 생겨났다. 매우 아득할지라도 없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만약... 진짜 보완책이 있다면... 그녀는 자신만의 아이를 가질 수도 있을 텐데!여기까지 생각한 임유진은 불쑥 강지혁의 얼굴이 떠올랐다.만약 진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애 아빠는...“다 됐어요, 일어나시면 됩니다.”의사의 말에 그녀는 사색에서 빠져나왔다.임유진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 옷매무새를 정리하면서 요동치는 심장 박동을 느꼈다. 방금 그 순간의 생각 때문에 심장이 마구 쿵쾅댔다.그녀는 강지혁과 아이를 낳고 싶은 걸까?임유진은 간호사와 함께 초음파 검사실에서 나왔다. 그녀는 검진보고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따가 모든 결과서가 나오면 담당 의사가 받아가고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각 과실 전문의에게 진찰받으면 되니까.그녀가 초음파 검사실에서 나오자 아직도 줄 서 있던 정한나가 또다시 쪼르르 달려오며 큰소리로 외쳤다.“VIP 건강검진 패키지 샀어요, 혹시? 유진 씨 고작 배달 일 하면서 무슨 돈으로 그 비싼 패키지를 다 사요?”임유진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정한나는 마치 판사를 방불케 했다. 묻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이다.“그건 내 사생활 같은데 굳이 한나 씨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요?”임유진이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정한나도 그제야 자신의 말투가 조금 거칠었다는 걸 알아채고 얼른 자세를 낮추는 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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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마친 임유진도 더는 정한나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 않아 옆에 있는 간호사를 부르며 다음 검사를 받으러 갔다.정한나는 제자리에 서서 두 눈을 부릅뜨고 그녀의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몸을 돌리니 로펌의 뭇사람들이 한창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녀는 멋쩍게 웃으며 축 처진 채로 다시 대오에 돌아갔다.그러니까 한바탕 애를 쓴 후에도 결국 임유진이 무슨 돈으로 VIP 패키지를 샀는지 알아내지 못한 것이다.모든 검사를 마친 임유진은 강지혁의 곁으로 돌아갔다.“다 했어?”강지혁이 물었다.“응, 어떤 결과서는 빨라도 오후에 나온대.”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럼 일단 가서 아침부터 먹자. 누나 아침밥 못 먹었잖아.”“그래.”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병원을 나섰다.“뭐 먹고 싶어?”강지혁이 물었다.“이 근처에서 아무거나 먹자.”이제 겨우 9시다 보니 근처에 토스트 가게가 아직도 장사하고 있었다.“그래.”강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선뜻 그녀의 손을 잡고 병원 근처의 토스트 가게로 향했다.임유진은 메뉴판의 종류 다양한 토스트를 보더니 군침이 돌았다.“그냥 여기서 먹자. 나 아침 안 먹었더니 배고프네.”강지혁은 머리를 끄덕였다.임유진은 주문을 마치고 또다시 강지혁에게 물었다.“넌 뭐 먹을래?”“누나랑 같은 거로.”그는 임유진의 입맛이 궁금했다.야채 토스트와 키위 주스 한 잔까지, 아침 식사로 아주 푸짐한 한 상이었다. 다만 요 몇 년 사이에 물가가 폭등해 이 한 세트에 1만5천 원이다. 바로 이 때문에 임유진은 금방 출소하고 토스트 가게를 지날 때마다 사 먹지 않았다.그 당시 그녀에게 1만5천 원을 주고 아침을 사 먹는 건 사치였으니까. 편의점에서 대충 5천 원 이내로 아침밥을 해결하기가 일쑤였다.“아 참, 오늘 건강검진 마치고 나랑 함께 월세방 가줄 수 있어?”임유진이 불쑥 물었다.“거긴 왜?”강지혁이 되물었다.“거기 있는 물건들 좀 정리하고 집주인이랑 상의해서 방 빼려고.”그 집을 계속 그대로 놔두는 것도 해결책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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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도 그러면 될 것 같아 머리를 끄덕였다.“그래.”그녀는 계속 토스트를 맛있게 먹었고 강지혁은 흐뭇한 얼굴로 그녀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토스트를 크게 한 입 먹고 주스를 한 모금 마시는 모습이 귀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긴 생머리는 포니테일로 묶고 이마를 훤히 드러냈으며 수려한 미모에 영롱한 두 눈, 오뚝한 코와 핑크빛 입술까지 그의 눈엔 모든 게 예뻐 보였다.그 언젠가 한 여자를 이토록 사랑할 거라고 생각이나 해봤을까? 하지만 정작 또 사랑에 빠지고 보니 이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임유진은 맛있게 먹다가 우연히 고개 들어 강지혁의 그윽한 눈빛과 마주쳤다. 순간 그녀는 짙은 그의 눈동자에 머리가 백지장이 돼버렸다.“왜... 그렇게 봐?”임유진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그냥, 누나가 진짜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서.”강지혁이 대답했다.임유진은 몹시 난감했다. 그가 본 미인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요 몇 년 동안 그녀는 관리도 제대로 못 받아 대충 봐줄 만한 정도이지 ‘엄청 예쁘다’라는 건 뻔한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하필 강지혁의 눈빛과 표정 모두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사랑의 콩깍지가 제대로 씌였나 보다. 임유진이 재빨리 말했다.“너도... 얼른 먹어. 식으면 맛없어.”강지혁은 가볍게 웃으며 알겠다고 대답한 후 토스트를 먹기 시작했다.그는 조촐하게 토스트로 아침을 해결할 뿐인데 주스를 마시는 제스처나 토스트를 먹는 모습까지 전부 우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건 마치 광고를 보는 듯한 기분이랄까.진정 예쁜 사람은 바로 강지혁이었다.그는 S 시를 쥐락펴락하는 사람인데 지금 이런 구멍가게에서 토스트나 먹고 있다니,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임유진이 그와 연애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이지만 이 또한 현재진행형으로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만약 이후에 그녀와 강지혁 사이에 정말 아이가 생긴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임유진은 강지혁을 향한 마음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점점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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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기 그릇이랑 이불까지 이따가 중고품 상가로 가져가서 다 팔아버릴래. 이 옷들이랑 신발은 더 입을 수 있으니까 집에 가져갈 거야.”강지혁은 그녀가 가져가겠다는 옷과 신발을 살펴보았는데 조금 바랜 옷들이었다. 비록 퀄리티는 좋아도 올드하고 색이 바랬다.아마도 그녀가 감방에 들어가기 전에 산 옷인 듯싶다.강지혁은 바로 알아챘지만 뭐라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돈도 쓰고 싶고 이 낡은 물건들을 전부 좋은 거로, 새것으로 바꿔주고 싶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하니까.너무 성급하게 몰아붙였다가 괜히 그녀를 놀래게 할까봐 걱정이었다. 이제 겨우 강지혁에 대한 경계를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으니 말이다.“여기서 나 잠깐만 기다려줄래? 금방 갔다 올게.”임유진이 막 다 싼 짐보따리를 들고 중고품 상가에 다녀오려는데 강지혁이 선뜻 물건을 챙겼다.“내가 할게. 문 열어줘 누나.”“응.”그녀는 서둘러 문을 열어주었다.강지혁은 한 손에 식기 그릇을, 다른 손엔 이불과 담요를 들고 문밖을 나섰다.임유진도 문을 꼭 닫고 그를 따라갔다.“나 하나 줘. 내가 들게.”그가 무거운 짐을 가득 들고 있으니 임유진은 살짝 미안해졌다.“아니야. 누난 앞에서 길만 잘 안내해주면 돼.”강지혁이 대답했다.그가 단호하게 말하자 임유진은 어쩔 수 없이 앞에서 걸으며 은근슬쩍 뒤돌아보기도 했다.지금 강지혁의 모습은 마치 설 연휴에 부모님 뵈러 본가로 돌아오는 아들처럼 짐보따리를 가득 이고 있는데 하필 양복을 입고 잘생긴 얼굴을 내비치고 있으니 이 상황과 너무 안 어울렸다.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아예 없는 듯싶다.드디어 중고품 상가에 도착했고 임유진은 가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더니 재빨리 달려갔다.“사장님, 식기 그릇이랑 이불 담요 가져왔는데 가게에서 받나요?”“당연하죠.”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하지만 멋있게 차려입은 강지혁이 ‘중고품들’을 들고 오는 모습에 적잖게 놀란 눈치였다.사장님은 물건들을 하나둘씩 확인하며 뭐라 중얼거리더니 임유진을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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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부터 강지혁은 그녀가 억울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진씨 가문과 얽혀있는 각종 이해관계 때문에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고 그녀가 감옥에 들어가는 것을, 그녀가 억울하게 당하는 것을 지켜만 봤다.임유진은 온몸에 한기가 돌고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왔다.1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1층까지는 고작 5초도 안 돼 내려갈 수 있는 거리인데 임유진은 마치 눈앞에 있는 이 길이 멀고 아득하게만 느껴졌다.아무리 걸어도 도통 1층에는 도착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네가 정말 진심으로 유진이를 위하고 있다면 진세령을 경찰서에 넘겨. 그리고 진씨 가문은 물론이고 너도 상응한 대가를 치러!”강현수가 분노에 차서 외쳤다.그는 임유진이 억울하게 옥살이한 게 진세령과 강지혁 때문이라는 것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고 가슴이 찌릿하며 아파 났다.만약 그가 조금만 더 빨리 그녀를 찾았더라면, 조금만 더 빨리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더라면 절대 그런 험한 꼴은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강지혁은 눈으로 살기를 내뿜더니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그대로 강현수의 멱살을 확 잡아챘다.“네가 뭘 알아!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만약 내가 조금 더 일찍 유진이를 알게 됐으면, 조금 더 일찍 유진이를 사랑했으면 유진이가 그런 일을 겪게 내버려 두지 않았어!”그 말에 강현수가 냉랭하게 웃었다.“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넌 그때 유진이와 아무런 접점도 없었고 유진에게 일말의 호감도 없었어. 그래서 너와 진씨 가문의 더러운 작당에 유진이가 휘말린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너한테 유진이는 인간도 아니었어! 내 말이 틀려?”“나한테 이딴 말 하는 이유가 뭐야? 왜, 유진이한테 모든 걸 다 얘기해버리게? 내가 그때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사실은 진세령이 바로 진범이었다고 얘기라도 하게? 강현수, 만약 네가 유진이한테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면 그때는 내 손으로 직접 널 죽여버릴 거야!”강지혁의 말에는 아주 조금의 농담도 들어가 있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60화

    임유진이 방에서 나와 계단 쪽으로 향했을 때 마침 아래층에 있는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곁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모습도 보였다.‘강현수? 강현수가 왜 여기 있지?’임유진이 계단 아래로 내려오려고 발을 옮기려던 그때 강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설마 유진이 사건에 네가 관련돼 있었을 줄은 몰랐어.”순간 임유진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뭐? 강현수가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내 사건에 혁이가 관련되어 있다고? 그때 그 사건은 진범이 밝혀지면서 끝이 났잖아? 혁이가 나를 위해서 판결을 뒤집어 줬잖아? 그런데 왜...’“할 말은 그게 끝이야?”강지혁의 아무런 감정도 없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허재명이라는 사람은 그저 네가 심어 놓은 장기 말에 불과했어. 너는 유진이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게 된 진범이 누군지 알면서 줄곧 모른 척 외면했어. 왜 그랬니? 진씨 가문과 얽혀 있는 이익 때문에? 그래서 유진이 인생을 아주 손쉽게 박살 낸 거야?”강지혁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노인네가 가는 길에 폭탄을 심어두고 갔네. 할아버지가 얘기해주든?”“익명으로 나한테 메일이 한 통 왔어. 거기에는 유진이 사건의 진실과 그 사건 뒤로 너희 집안과 진씨 가문 사이에 오간 모든 이익 관계 자료들이 다 첨부되어 있었어. 당시 너희 집안과 진씨 가문은 공동으로 진가원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어. 만약 당시 진애령 사건의 진상이 밖으로 드러나면 진씨 가문은 희대의 스캔들로 큰 타격을 입었을 거고 너희 집안 역시 어마어마한 손실을 보게 됐겠지.”강현수의 말은 계속되었다.“공동으로 추진한 프로젝트인 만큼 각자 50%가 되는 지분을 가지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 유진이가 감옥에 들어가게 된 후 진씨 가문은 그중 20%를 GH 그룹에 양도했어. 왜 그랬을까?”전부 다 조사하고 온 것 같은 강현수의 확신 어린 말투에 여유로웠던 강지혁의 표정도 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대신 흉흉한 눈빛만이 남아있었다.“그걸 나한테 얘기해주는 목적이 뭐야?”“한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9화

    강현수는 강지혁에게는 시선 한번 주지 않고 임유진만 바라보았다.“만약 그 어느 날 강지혁이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강지혁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내 곁으로 와줄래? 내가 널 돌 볼 수 있게 해줄래?”강현수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려 있었다.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기까지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고 또 용기를 낸 듯했다.어쩌면 지금이 그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강현수는 말을 마친 후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래로 내린 두 손도 덜덜 떨고 있었다.그의 얼굴에 어린 긴장감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임유진은 그 얼굴에 잠깐 넋을 잃었다가 이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강지혁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또 불안해하는 건가?임유진은 강지혁의 손을 꽉 맞잡고 강현수에게 말했다.“아니요.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지금이든 앞으로든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혁이일 테니까요.”그녀의 단호한 말에 강현수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어쩌면 흔들릴지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이 아주 손쉽게 저 먼 곳으로 내던져졌다.대체 뭘 기대한 걸까?강현수가 쓰게 웃었다.“혁아, 이만 가자.”이번에는 임유진이 강지혁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그리고 곁에 있던 경호원들도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강현수는 제자리에 가만히 선 채 미동도 없었다. 임유진을 태운 차량이 서서히 멀어져 가는데도 그는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한편 임유진은 강지혁과 차에 올라탄 다음 곧바로 그의 볼을 매만졌다.“혁아, 너 얼굴이 왜 그래?”강지혁은 그녀의 손길에 움찔하더니 이제야 정신을 차린 듯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내 얼굴이 왜?”“안색이 안 좋아 보여. 꼭 무슨 일 있는 것처럼. 혹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 때문에 회사에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야?”조금 얼이 빠진 듯하고 아까보다 확 어두워진 얼굴을 한 강지혁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임유진은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다.“아무것도 아니야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8화

    소민영은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외쳤다.“고작 그때 손톱 좀 뜯기고 3년밖에 안 되는 감옥 생활한 거 가지고 우리 집안이 무너져야 해? 네가 뭔데? 네가 뭔데!”그녀는 줄곧 임유진을 무시했었다. 임유진이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된 지금도 역시 그녀는 임유진을 당시 함부로 자신의 집안 며느리 자리를 탐냈던 주제넘은 여자로 보고 있다.소민영의 말에 임유진이 뭐라 하려는데 둔탁한 마찰음 소리와 함께 소민영의 머리가 힘껏 옆으로 돌아갔다.“임유진이 뭐냐고 했지. 임유진은 감히 너희 같은 인간들이 함부로 쳐다볼 수 없는 내 아내야.”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강지혁은 모든 걸 다 얼려버릴 것 같은 눈으로 소씨 가문의 두 남매를 쳐다보았다.소민영은 그 눈빛에 손바닥으로 볼을 감싼 채로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자신이 꼭 한낱 개미 같은 존재가 된 듯했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게 될 것만 같았다.소민영은 강지혁이라는 남자를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다. 아무리 사람을 홀릴 정도의 잘생긴 남자라고 해도 그녀에게는 그런 것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그래서 그녀는 입을 꾹 닫은 채 곧바로 소민준의 뒤로 숨었다.그리고 소민준은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말은 해보려고 강지혁을 바라보았다.“강지혁 씨, 우리 집안은 늘 GH 그룹과 강씨 가문에 우호적이었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러니까 이번 한 번만 제발 봐주세요.”강지혁은 그런 그를 그저 담담하게 쳐다볼 뿐이었다.“진씨 가문과 소씨 가문 모두 그때 내 아내를 벼랑 끝까지 몰고 가며 놓아주지 않았는데 나는 왜 당신들을 용서해야 하지?”그 말에 소민준의 얼굴이 당황으로 빨갛게 달아올랐다.“그... 그건 진씨 가문의 뜻이었어요. 저, 저희 집안은 그 일에 그 어떤 의견도 내지 않았어요.”“의견을 냈든 안 냈든 결과적으로 진씨 가문을 도와준 덕에 재미 좀 봤을 텐데?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은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다?”강지혁의 빈정거림에 소민준은 이를 꽉 깨물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7화

    임유진은 갑작스러운 소민준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오늘 장례식 참석 목록에 소씨 가문은 없었다. 그런데도 소민준이 이렇게 들어와 있다는 건 이곳 직원을 매수했던가 참석 인원에게 간절히 부탁한 게 틀림없다.소민준의 뒤로 소민영도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왔다.“그런데 솔직히 우리 오빠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알죠? 오빠가 헤어져 주지 않았으면 강지혁 씨랑 결혼하지도 못했을 거 아니에요. 안 그래...”“소민영!”소민준은 소민영이 쓸데없는 소리로 임유진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크게 호통쳤다.“빨리 유진이한테 사과해!”그러고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유진아, 미안해. 민영이가 철이 없는 거 너도 알잖아. 그리고 다시 한번 사과할게. 정말 미안해. 나나 우리 집안이나 너한테는 미안한 마음뿐이야. 한 번만 봐주라... 제발...”임유진은 그 말에 문득 일전 강지혁이 진씨 가문을 상대하려 했던 것이 떠올랐다.소민준이 장례식까지 찾아와 이렇게 비는 걸 보면 아마 진씨 가문을 건드리는 동시에 소씨 가문도 건드린 것 같다.“사실 나도 그때 너 그렇게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았어. 특히 네가 억울했다는 게 밝혀진 뒤로는 더더욱. 만약 내가 그때 널 위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했으면 네가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됐을 거야. 정말... 너를 볼 면목이 없어.”소민준의 얼굴에는 후회의 감정이 잔뜩 서려 있었다. 게다가 눈시울까지 붉어진 것이 아마 다른 여성들이 봤으면 그가 잘못한 게 무엇이든 바로 용서해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임유진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열연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그녀는 당시 진세령의 옆에 딱 붙어 서서 그녀의 손톱이 하나하나 뽑히는 걸 그저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피가 흥건한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던 소민준의 모습이 여전히 눈앞에 선했다.심지어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보며 제일 후회되는 일이 바로 그녀와 함께했었던 일이라고까지 했다.그렇게도 차갑고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남자인데 임유진이 지금 그의 아련한 얼굴을 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6화

    강현수의 시선이 너무 지독하게 한곳에 꽂혀있던 탓인지 조문객들이 하나둘 이쪽을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다.“강현수, 뭐 할 말 있어?”그때 강지혁이 임유진의 손을 잡으며 강현수를 노려보았다. 꼭 이 여자는 내 것이니 이만 꺼지라는 것 같았다.강현수는 잘 포개져 있는 두 사람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결국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을 떼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한은정은 그 광경에 그제야 안도한 듯 표정이 풀어졌다.물론 안도한 건 한은정뿐만이 아니었다. 임유진 역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없을 거야.”강지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낮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임유진이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강지혁이 그녀의 두 눈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오늘은 할아버지 장례식이라 강현수도 뭔 짓을 하지는 않을 거야. 여기서 일을 벌이면 그건 집안 간의 대립으로 이어질 테니까.”강지혁은 잠깐 머뭇거리더니 이내 임유진의 손을 더 꽉 잡았다.“강현수도 알 거야. 자기한테는 이제 그 어떤 기회도 없다는 걸.”그 뒤로 장례식은 순탄하게 진행됐다.임유진은 큰 배를 손으로 지탱하며 계속해서 강지혁의 곁을 지키다 조문객들이 조금 빠지고 나서야 밖에 있는 휴식 구역으로 가 휴식을 취했다.배 속의 아이들도 오늘은 분위기가 무거운 날인 걸 아는지 작은 태동만 있을 뿐 크게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지는 않았다.임유진은 의자에 앉아 습관적으로 자신의 배를 어루만지며 아이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었다.그때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던 경호원 몇몇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임유진이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강현수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경호원은 그가 임유진의 곁으로 다가오지 못하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를 제지했다.“나한테 뭐 할 말 있어요?”임유진이 먼저 물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의 얼굴을 보며 방금 그녀가 배 속의 아이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던 장면을 떠올렸다.무척이나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5화

    게다가 이제는 강문철도 없으니 임유진이 강씨 가문이 안주인이라는 건 그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또한 임유진은 임신까지 했으니 아이들이 무사히 태어나면 그때는 그 누구도 그 자리를 감히 탐낼 수 없게 된다.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에 강지혁을 대하는 것처럼 그녀를 대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아내로서 줄곧 강지혁의 곁에 있었다.강씨 가문은 S 시에서 가장 뿌리가 깊고 또 유명한 가문이라 장례식장도 컸고 조문객들도 훨씬 많았다.강지혁은 임유진이 무리라도 할까 봐 몇 번이나 그녀에게 이만 쉬라고 했지만 임유진은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그의 곁을 지켰다.“나 아직 괜찮아. 진짜 힘들면 너한테 얘기할게. 나도 내 몸 귀한 줄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임유진도 자신이 아이셋을 가진 임산부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다.그때 조문객들이 입구를 바라보며 강현수의 이름을 불렀다.이에 임유진은 살짝 움찔하더니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익숙한 남자의 실루엣이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강현수와 마지막으로 본 것도 이제는 몇 달 전이었다.한때는 생사를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결국에는 썩 유쾌하지 않은 방식으로 헤어지게 되었다.강현수는 오늘 부모님과 함께 장례식에 참석했다.임유진이 그를 바라봤을 때 그의 시선 역시 임유진에게 닿아있었다.강현수는 임유진을 보자마자 옆으로 늘어트린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그토록 오래 찾아 헤맸던 사람을, 오랜 기간 마치 습관처럼 떠올렸던 사람을 그는 번번이 놓쳐버렸다.임유진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시작할 수도 있었는데 그는 그 가능성마저도 자기 손으로 부숴버렸다.그 결과 그녀는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으며 지금 그 남자의 곁에 서 있게 되었다.강현수는 이제 영원히 그녀 곁에는 있을 수 없게 되었다.강현수네 가족이 강지혁과 임유진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강현수는 위로의 말을 건네는 부모님과 달리 아무 말도 하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4화

    어쩌면 강지혁은 줄곧 할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돌아온 그에게 유일한 버팀목이라고는 강문철밖에 없었으니까.“나는 솔직히 네 할아버지가 고마워. 혁이 너를 이렇게 멋있게 키워줬잖아. 그리고 나랑 만나게 해줬고.”임유진은 계속해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갔다.“혁아, 네가 원하는 가족 간의 사랑은 앞으로 내가 줄게. 그리고 우리 아이들도 줄 거야.”그 말에 강지혁의 눈동자가 흔들렸다.임유진은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이미 다 알고 있었다.“아까 네가 그랬지?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게 다 다르다고. 그럼 너는? 네가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뭔데?”강지혁이 임유진의 체향을 들이마시며 물었다.그녀의 냄새를 맡고 있으면 늘 이렇게 마음이 진정되고 몸이 편안해졌다.“나?”임유진은 그 말에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내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혁이 너랑 우리 아이들이야.”“유진아, 나는 욕심이 많아. 나는 너를 그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아. 그게 우리 아이들이라고 해도 나는 싫어. 나는 내가 네 마음속 1순위였으면 좋겠고 너한테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이 눈을 깜빡였다.설마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을 질투하는 건가?“혁아, 너는 내 마음속 1순위야. 물론 아이들도 너무 중요하고 소중하지만 너랑은 결이 조금 달라. 혁이 너는 나한테 유일무이한 존재잖아.”임유진은 두 손을 둘러 가볍게 강지혁을 끌어안았다.이미 배가 불러올 대로 불러와 완전히 꼭 끌어안지는 못했지만 싸늘한 방 공기를 녹이기에는 충분했다.“내가 너한테 유일무이한 존재라고?”“응. 널 대신할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어. 물론 아이들을 낳고 진정한 엄마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아이들에게 더 신경을 쓰고 더 관심을 쏟을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네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이건 장담해. 그리고 네가 원하면 네가 원하는 방식대로 더 많이 널 사랑해줄게. 혁아,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53화

    별채로 가는 길에는 늘 조명이 켜져 있기에 어두운 저녁이라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임유진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강지혁이 방 한가운데 멀뚱히 서 있는 것이 보였다.강지혁은 불빛을 받으며 시선을 내린 채 바로 앞에 있는 냉동관을 그저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었다.“혁아.”임유진은 그를 부르며 천천히 옆으로 다가갔다.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강지혁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돌렸다.“오지 말라니까. 여기는 나 혼자 있으면 돼.”“너랑 같이 있고 싶어서 왔어.”임유진은 강지혁의 바로 앞에 서서 그의 볼을 매만졌다.지금은 1월이라 날씨가 무척이나 추웠다. 게다가 지금은 밤이고 별채 쪽에는 보일러도 없었기에 바깥과 거의 비슷할 정도로 추웠다.“오늘 밤도 여기 있을 거야?”임유진이 물었다.“응. 그래도 날 키워주셨으니 할 도리는 다해야지.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에 사람들 많이 올 거야. 너는 몸이 불편하니까 가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출산할 시기가 임박한 것도 아닌데 뭐. 내일 할아버지 장례식에 나도 참석할 거야. 만약 몸이 불편하거나 하면 바로 너한테 얘기할게.”강지혁은 그 말에 임유진의 손을 살짝 잡았다.“너한테는 좋은 기억 하나 없는 사람이잖아. 그런데 왜...”“네 할아버지잖아. 네 유일한 가족이잖아. 그러니까 아무리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아 했어도, 아무리 끝까지 나를 손주며느리로 받아들이지 않았어도 나는 할아버지 가시는 길을 너와 같이 보내드려야 할 의무가 있어.”다른 건 없었다.그저 강지혁의 어린 시절을 곁에서 지켜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임유진은 충분히 감사했다.강지혁은 그 말에 그녀의 손을 조금 세게 쥐었다.“할아버지가 마지막에 한 말은 신경 쓰지 마. 그 말은 그냥...”“알아. 네 할아버지는 그저 누군가를 깊게 사랑하는 것으로 행복한 결과를 낳을 거라는 걸 믿지 못하시는 분이었던 거지. 네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머니 일도 있고 네 아버지 일도 있어서 많이 무서우셨을 거야. 너도 나중에 불행하게 될까 봐.”임유진이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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