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혁은 그제야 팔에 힘을 풀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안고 있었다.“누나, 헤어지자는 말 영원히 하지 마. 그래 줄 수 있어?”그는 고개 숙여 짙은 눈동자로 임유진을 쳐다봤다. 그 눈빛 속엔 그녀가 전혀 본 적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차 있었다.마치 그녀가 이별을 고하면 어쩔 바를 몰라서 당혹감에 빠질 것만 같았다.강지혁에게 그녀는 정말 이토록 중요한 존재일까? 만약에라도 헤어지잔 말을 못 할 정도로?!임유진은 가슴이 꽉 막힐 것처럼 괴로웠다. 그녀는 저도 몰래 천천히 손을 들어 강지혁을 가볍게 안아주었다.“그래, 혁아. 영원히 헤어지잔 말 안 할게.”‘영원’이라는 다짐은 이렇게 그녀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그녀는 심지어 이 다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지금은 단지 그의 이런 표정을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왜냐하면... 그녀도 마음이 괴로우니까....오후에 임유진은 강지혁과 함께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건강검진 보고서가 나왔는데 중요한 문제점은 예전에 남은 상처들이었다. 비록 지금 다 나았지만 날씨가 흐리고 습해지면 관절이 시큰거렸다.의사 말로는 장기적으로 치료하면 다 나을 거라고 한다.제일 큰 골칫거리는 역시 그때 자궁을 다친 일이었다.병원 산부인과 전문의들의 건의는 일단 몸조리를 하다가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수술해서 자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 다시 임신을 고려해도 아예 가망이 없는 건 아니다.“나 진짜 아이 가질 수 있어요?”임유진은 흥분에 겨웠다. 줄곧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던 사치스러운 염원이었으니까.그런데 지금 이 염원이 현실로 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그건 조리 후의 상황을 봐야 해요. 현재로선 확률이 30퍼센트입니다.”전문의가 말했다.30퍼센트란 다른 사람들에겐 아주 낮은 확률일지 몰라도 임유진에겐 엄청난 숫자였다.“그럼 우선 몸조리부터 할게요.”결국 강지혁이 단호하게 결정을 내렸다.병원에서 약 처방을 받은 후 임유진과 강지혁은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흠칫 놀라더니 얼굴이 빨개졌다.“난... 그건...”임유진은 문득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맞다’라고 하든 ‘아니다’라고 하든 다 잘못된 것 같았다!“아니라고 말하지 마!”강지혁은 터프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만약 내게 아이가 생긴다 해도 그건 오직 누나랑 내 아이일 거야. 그러니까... 누나도 엄마가 되고 싶다면 오직 내 아이의 엄마여야 해.”임유진의 얼굴이 더 빨개졌다.“여기 병원이야.”게다가 그들이 있는 곳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이렇게 감싸 안고 있으니 저절로 이목을 집중시켰다.“그게 뭐?”강지혁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뜨거운 입김이 그녀의 귀와 목을 간지럽혔다.“누나, 아까 내가 한 말 이해했지?”그녀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의 목소리와 숨결은 마치 보이지 않는 유혹처럼 저도 모르게 머리를 끄덕이게 했다.차에 탄 후에도 임유진은 여전히 두 볼이 빨갰다.강지혁이 운전했고 그녀는 조수석에 앉아서 몰래 그를 힐긋 쳐다봤다.옆모습을 보니 날카로운 턱선과 짙은 눈동자, 높고 또렷한 콧대까지 그는 일반 동양인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었다. 이목구비와 턱선, 목선까지 어느 하나 흠잡을 데가 없었다.만약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생각이 순간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내가 그렇게 좋아? 왜 이렇게 빤히 쳐다보는데?”강지혁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임유진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넋 놓은 표정을 거두어들였다.그녀가 어쩔 바를 몰라서 속수무책 해하고 있을 때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임유진은 얼른 휴대폰을 꺼내 보았는데 절친 한지영의 전화였다.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기 너머로 한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지금 통화 가능해?”“응, 말해.”임유진은 난감한 분위기에서 자신을 구출한 한지영에게 고마워 마지않았다.“너 언제 시간 돼? 우리 같이 해성시로 다녀오자. 최대한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거야. 그해 증인이 지금 경찰서에 잡혀 있거든. 연신
“그래.”임유진이 대답했다.통화를 마치자 강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한지영 씨 전화야?”“응.”“왜? 지영 씨가 연신 씨한테 누나 그해 사건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대?”그가 되물었다.“다는 아니고.”임유진이 말을 이었다.“그냥 연신 씨한테 해성시에 있는 증인 한 명 조사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증인이 지금 구치소에 갇혀있대. 그해 사건에 관한 일을 한번 캐볼 수 있을까 해서 내일 함께 해성시로 다녀오기로 했어.”어떤 방법으로 캐물을지 자세한 건 한지영도 말하지 않았지만 임유진은 전에 변호사 경력이 있어 일부 방법을 터득하고 있다.구치소에 갇혀있는 사람에게 지난 사건을 캐묻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한지영의 능력으론 아마 해낼 수 없을 것 같으니 백연신이 손을 쓴 게 틀림없다.다만 이건 분명 임유진에 관한 일인데 한지영은 또 한 번 백연신에게 신세를 지게 됐다.한지영은 대체 그녀를 위해 얼마나 더 헌신해야 하는가? 임유진은 이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을까? 그녀는 문득 마음이 착잡해졌지만 강지혁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럼 내일 나랑 같이 가.”강지혁이 입을 열었다.“괜찮아, 너까지 번거롭게 굴 필요 없어. 지영이가 함께 가주기로 했어.”임유진이 말했다.“누난 내 여자친구야. 내가 함께 가주는 게 뭐가 번거로워? 그냥 내 말대로 해. 내일 나랑 같이 가.”강지혁은 단호하게 밀어붙이며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주었다. 그는 이미 속으로 계략을 짜고 있었다....그날 밤 한지영이 전화상으로 임유진과 약속시간을 잡았다.“저기 지영아, 실은 혁이도... 강지혁도 함께 가겠대.”“뭐?”한지영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함께 간다고?”“응. 그래도 될까?”임유진이 물었다.“안 될 건 없지. 사람 한 명 더 늘어날 뿐이잖아. 그럼... 차 한 대로만 움직이자. 두 대면 서로 얘기 나누기 불편하잖아. 게다가 한 대로 가면 힘들 때 운전 교체해줄 수도 있고.”“좋아. 그럼 내가 강지혁한테 말할게.”임유진은
“내가 유진이한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강지혁이 무덤덤하게 물었지만 짙은 눈동자가 한없이 차가울 따름이었다.순간 고이준은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방금 보스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그해의 소송과 임유진에 관한 일은 절대 대표님께 묻지 말아야 할 영역이다.그는 순순히 대표님의 분부만 따르면 된다.“지금 바로 해성시에 다녀오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이준은 서재를 나섰다.다만 이제 막 서재를 나오는데 임유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유진 씨, 대표님 찾으러 오셨어요?”고이준이 공손하게 물었다. 예외가 아니면 눈앞의 그녀는 장차 강씨 저택의 안방마님으로 될 분이다.대표님이 처음엔 그녀에게 장난치는 듯한 감정일지 몰라도 이젠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심지어 대표님이 한 여자에게 이토록 진지한 적은 아예 본 적이 없다. 그해 안방마님이 될 뻔한 진애령 씨한테도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대하진 않았다.그걸 해낸 여자가 바로 임유진이다. S 시에서 강지혁을 이렇게 만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네.”임유진이 대답했다.“한밤중에 여긴 웬일이에요? 회사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네, 뭐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니고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고이준이 대답했다.“네, 조심히 가세요.”말을 마친 임유진은 서재 문 앞에 도착해 가볍게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고이준은 서재 문이 다시 닫힌 후에야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내일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얻지 못한다. 모든 진실은 깊게 파묻힐 것이다. 대표님은 이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은 아니지만... 결국 수수방관하고 계신다.대표님은 아마 그해의 일을 후회하고 있겠지.고이준은 계단을 내려와 서둘러 강씨 저택을 떠났다. 오늘 밤 할 일이 남았으니까.임유진이 서재에 들어서자 창가 쪽에 서 있던 강지혁은 그녀를 보며 활짝 웃었다.“여긴 어쩐 일이야?”“내일 우리 지영이랑 함께 해성시로 가는 거면 지영이가 운전해서 우릴 데리러 올 거야. 차 한 대
“그냥 이렇게 누나 잠시 안고 싶어서.”그는 나지막이 속삭이며 그녀 목에 머리를 파묻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지금처럼 꼭 안고만 있어도 무한한 애착 감이 드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그런 강지혁이 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가 소중한 장난감을 놓치기 싫어 꼭 끌어안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가 바로 그 장난감이었다.임유진은 팔을 벌려 그를 가볍게 안아주었다.그녀가 두 팔로 감싸 안는 순간 강지혁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그녀 귓가에 속삭였다.“누나가 이렇게 안아주니 너무 좋아. 좀 더 안고 있을래?”애교 섞인 말투에 그녀는 좀처럼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임유진은 그를 꼭 끌어안고 흘러가는 시간에 둘만의 추억을 실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한지영은 제때 강씨 저택 입구에 도착해 그들을 픽업했다. 백연신도 함께 왔고 운전도 그가 했다.그들은 한지영이 대충 끌고 다니는 차를 몰고 왔다.강씨 저택 대문 입구에서 백연신과 강지혁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고 한지영은 임유진을 이끌고 차 뒷좌석에 앉아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임유진이 평상시 너무 바쁘다 보니 둘은 한 달에 기껏해야 한 번 만난다.“이따가 연신 씨가 운전해?”임유진이 물었다. 방금 올 때도 백연신이 운전했으니 말이다.“응.”한지영이 어깨를 들썩였다.“어차피 운전 같은 건 남자가 하면 되니까.”백연신은 원래 자신의 수십억짜리 고급 차를 몰고 오려 했는데 한지영이 구치소에 가는데 그런 차를 몰면 너무 과시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 그냥 관뒀다.게다가 중도에 기사를 바꿔 그녀가 고급 차를 운전하다가 만에 하나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한편 그녀의 허름한 차는 운전하기도 편하고 진짜로 어딘가에 부딪힌다고 해도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진 않을 것이다!하여 기어코 제 차를 타고 오자고 고집했다.백연신도 더는 그녀와 이 문제로 갈등하지 않고 바로 그녀의 차를 끌고 왔다.“오늘 질문 유도할 중요한 질문들은 생각해놨어?”한지영이 물었다.“이거야말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임무야.”임
전에 백연신이 그녀에게 사건 경위를 말했을 때 그녀는 심지어 아주 잘했다고 그 자리에서 백연신을 칭찬했다. 다만 이 일로 백연신은 유난을 떨며 그녀랑 스킨쉽하려고 애썼다.물론 한지영도 그의 스킨쉽은 싫지 않았고 되레... 호감으로 다가왔다.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는데 결론은 백연신의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그는 완전 한지영 스타일이라 외모에 반하니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었다.인간은 원래 시각적 동물이니까.한편 차 밖에서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를 마주 봤고 공기 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차 안의 두 여자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강 대표님도 오늘 함께 가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네요.”백연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이는 내 여자친구예요. 여자친구 일이니 당연히 따라가야죠.”강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그해 임유진 씨 때문에 죽은 분이 대표님 약혼녀 진애령 씨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표님은 유진 씨가 유죄라고 생각해요, 무죄라고 생각해요?”강지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한없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백연신을 째려보며 말했다.“유진의 억울함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요.”그해 임유진을 해치려던 사람을 강지혁이 이대로 놓아줄 리는 없었다.“그래요?”백연신은 가볍게 웃을 뿐 더 묻지 않았다. 임유진의 사건에서 그는 단지 외부인이니까.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강지혁은 지금 그녀와 함께하면서도 왜 그녀를 도와 사건을 뒤집으려 하지 않는지, 혹시 진씨 일가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이다.애초에 진애령은 임유진이 낸 교통사고로 죽었고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팩트이다. 게다가 강씨 일가와 진씨 일가는 줄곧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나도 백연신 씨가 내 여자친구를 도와줄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요.”강지혁이 입꼬리를 씩 올리자 좀전의 싸늘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봄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탈까요? 더 지체했다가 도착 시간이 늦어지겠어요.”“그래요, 얼른 타요.”백
이어 두 남자도 차에 탔다. 임유진과 한지영이 이미 뒷좌석에 앉아있었기에 백연신은 운전석에, 그리고 강지혁은 조수석에 앉았다.한지영은 갑자기 자신의 차가 꽤 값이 나가는 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작은 차에 GH 그룹의 대표와 백선그룹의 대표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가는 길, 앞 좌석의 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뒷좌석에 앉은 여자 두 명만이 오디오를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물론 대부분은 한지영이 말을 하고 임유진은 듣고 있을 뿐이었지만."참, 요즘 그 드라마 엄청 핫 하잖아. ‘군주의 연인’이라고, 너 본 적 있어?"한지영이 묻자 임유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임유진은 낮에 일을 마치고 난 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뉴스만 간간이 확인하고 금방 잠이 들어버린다."너무 재밌어. 스토리가 정말 기가 막힌다니까. 내가 이따 드라마 포스터 사진 보내줄게. 참, 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 네가 예전에 좋아했던 고주원이야."한지영은 최근 해당 드라마 때문에 다시 한번 고주원에게 푹 빠져있다. 물론 임유진이 고주원에게 한창 빠져있었을 당시 한지영도 좋아했었지만, 곧 다른 드라마에 빠져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을 더 좋아했었다. 한지영은 절대 지조 있는 팬이 아니었다.임유진은 고주원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생각해보면 감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꽤 고주원을 좋아했었다. 물론 엄청 열정적인 팬은 아니었고 고주원이 나오는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며 시청률에 일조하고 가끔 고주원이 모델로 있는 물건들을 사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또한, 임유진은 예전에 종종 한지영에게 먼저 고주원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소개하곤 하며 얼굴도 준수하고 연기도 잘하는 것이 분명 기회만 잘 잡으면 대박 날 것이라고 했었다.한지영이 고주원 얘기를 꺼낸 덕에 임유진도 간만에 옛날 기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마음이 오늘은 많이 풀어진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 길인
화가 난건 한지영의 관심이 온통 고주원에게 쏠려 있어서이고, 어이가 없는 건 자신이 한지영이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백연신이 고압적인 수단을 취하면 한지영은 바로 꼬리를 내렸고 잘해주면 바로 의기양양해졌다.다만 아까 임유진도 전에 고주원의 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백연신은 갑자기 전처럼 화가 그렇게 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거에 위로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가는 길, 강지혁과 백연신은 적당한 타이밍에 나눠서 운전했고 네 사람이 해성시의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9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백연신이 미리 안배해둔 덕에 네 사람은 직원의 안내 아래 접견실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놓여 있었는데 제일 중앙에 있는 모니터에는 접견실 화면이 띄워져 있었고 대화 소리도 들렸다.얼마 안 가 중재인도 해당 방에 도착했고 임유진은 미리 생각해뒀던 의문점들을 중재인에게 보여주며 서로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역시 이쪽 전문가여서 그런지 중재인은 임유진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예리한 질문들을 바로 적어냈다.임유진은 백연신이 유능한 사람을 찾아준 덕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중재인은 임유진과 나눈 얘기들을 다 정리해 넣은 후 옆에 있는 접견실로 들어가 대기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경찰이 갈씨 성을 가진 증인 갈민수를 데리고 접견실로 들어왔다.증인의 얼굴이 보이자 임유진은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는 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법정에서 그녀가 술을 먹었다고 증언한 사람이 바로 갈민수였고 임유진이 억울하다고 다시 한번 잘 기억해보라고 했을 때도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기억이 틀림없다고 말하며 생동감 넘치게 사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었다.똑같은 증언을 한 사람은 갈민수를 제외하고도 여럿 있었고 그들의 증언과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이 모두 완벽하게 그녀를 지목했기에 당시 임유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