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진이한테 진실을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해?”강지혁이 무덤덤하게 물었지만 짙은 눈동자가 한없이 차가울 따름이었다.순간 고이준은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 자신이 방금 보스의 금기를 건드렸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그해의 소송과 임유진에 관한 일은 절대 대표님께 묻지 말아야 할 영역이다.그는 순순히 대표님의 분부만 따르면 된다.“지금 바로 해성시에 다녀오겠습니다.”말을 마친 고이준은 서재를 나섰다.다만 이제 막 서재를 나오는데 임유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유진 씨, 대표님 찾으러 오셨어요?”고이준이 공손하게 물었다. 예외가 아니면 눈앞의 그녀는 장차 강씨 저택의 안방마님으로 될 분이다.대표님이 처음엔 그녀에게 장난치는 듯한 감정일지 몰라도 이젠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심지어 대표님이 한 여자에게 이토록 진지한 적은 아예 본 적이 없다. 그해 안방마님이 될 뻔한 진애령 씨한테도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대하진 않았다.그걸 해낸 여자가 바로 임유진이다. S 시에서 강지혁을 이렇게 만들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네.”임유진이 대답했다.“한밤중에 여긴 웬일이에요? 회사에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겼어요?”“네, 뭐 그렇게까지 급한 일은 아니고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고이준이 대답했다.“네, 조심히 가세요.”말을 마친 임유진은 서재 문 앞에 도착해 가볍게 노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고이준은 서재 문이 다시 닫힌 후에야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내일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진실을 얻지 못한다. 모든 진실은 깊게 파묻힐 것이다. 대표님은 이 사건을 주도한 장본인은 아니지만... 결국 수수방관하고 계신다.대표님은 아마 그해의 일을 후회하고 있겠지.고이준은 계단을 내려와 서둘러 강씨 저택을 떠났다. 오늘 밤 할 일이 남았으니까.임유진이 서재에 들어서자 창가 쪽에 서 있던 강지혁은 그녀를 보며 활짝 웃었다.“여긴 어쩐 일이야?”“내일 우리 지영이랑 함께 해성시로 가는 거면 지영이가 운전해서 우릴 데리러 올 거야. 차 한 대
“그냥 이렇게 누나 잠시 안고 싶어서.”그는 나지막이 속삭이며 그녀 목에 머리를 파묻고 그녀의 체취를 맡았다.지금처럼 꼭 안고만 있어도 무한한 애착 감이 드는 것 같았다.임유진은 그런 강지혁이 아이처럼 느껴졌다. 어린아이가 소중한 장난감을 놓치기 싫어 꼭 끌어안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가 바로 그 장난감이었다.임유진은 팔을 벌려 그를 가볍게 안아주었다.그녀가 두 팔로 감싸 안는 순간 강지혁은 몸을 움찔거리더니 그녀 귓가에 속삭였다.“누나가 이렇게 안아주니 너무 좋아. 좀 더 안고 있을래?”애교 섞인 말투에 그녀는 좀처럼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임유진은 그를 꼭 끌어안고 흘러가는 시간에 둘만의 추억을 실었다......다음날 이른 아침, 한지영은 제때 강씨 저택 입구에 도착해 그들을 픽업했다. 백연신도 함께 왔고 운전도 그가 했다.그들은 한지영이 대충 끌고 다니는 차를 몰고 왔다.강씨 저택 대문 입구에서 백연신과 강지혁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고 한지영은 임유진을 이끌고 차 뒷좌석에 앉아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임유진이 평상시 너무 바쁘다 보니 둘은 한 달에 기껏해야 한 번 만난다.“이따가 연신 씨가 운전해?”임유진이 물었다. 방금 올 때도 백연신이 운전했으니 말이다.“응.”한지영이 어깨를 들썩였다.“어차피 운전 같은 건 남자가 하면 되니까.”백연신은 원래 자신의 수십억짜리 고급 차를 몰고 오려 했는데 한지영이 구치소에 가는데 그런 차를 몰면 너무 과시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 그냥 관뒀다.게다가 중도에 기사를 바꿔 그녀가 고급 차를 운전하다가 만에 하나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안 되니까.한편 그녀의 허름한 차는 운전하기도 편하고 진짜로 어딘가에 부딪힌다고 해도 수리비가 너무 많이 들진 않을 것이다!하여 기어코 제 차를 타고 오자고 고집했다.백연신도 더는 그녀와 이 문제로 갈등하지 않고 바로 그녀의 차를 끌고 왔다.“오늘 질문 유도할 중요한 질문들은 생각해놨어?”한지영이 물었다.“이거야말로 오늘의 가장 중요한 임무야.”임
전에 백연신이 그녀에게 사건 경위를 말했을 때 그녀는 심지어 아주 잘했다고 그 자리에서 백연신을 칭찬했다. 다만 이 일로 백연신은 유난을 떨며 그녀랑 스킨쉽하려고 애썼다.물론 한지영도 그의 스킨쉽은 싫지 않았고 되레... 호감으로 다가왔다.그녀는 자신이 왜 이러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는데 결론은 백연신의 잘생긴 얼굴 때문이었다.그는 완전 한지영 스타일이라 외모에 반하니 더이상 헤어나올 수 없었다.인간은 원래 시각적 동물이니까.한편 차 밖에서 두 남자는 여전히 서로를 마주 봤고 공기 속에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차 안의 두 여자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강 대표님도 오늘 함께 가실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네요.”백연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유진이는 내 여자친구예요. 여자친구 일이니 당연히 따라가야죠.”강지혁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요? 그해 임유진 씨 때문에 죽은 분이 대표님 약혼녀 진애령 씨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대표님은 유진 씨가 유죄라고 생각해요, 무죄라고 생각해요?”강지혁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한없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백연신을 째려보며 말했다.“유진의 억울함은 내가 알아서 해결해요.”그해 임유진을 해치려던 사람을 강지혁이 이대로 놓아줄 리는 없었다.“그래요?”백연신은 가볍게 웃을 뿐 더 묻지 않았다. 임유진의 사건에서 그는 단지 외부인이니까.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강지혁은 지금 그녀와 함께하면서도 왜 그녀를 도와 사건을 뒤집으려 하지 않는지, 혹시 진씨 일가와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바로 이런 문제점들이다.애초에 진애령은 임유진이 낸 교통사고로 죽었고 이는 의심의 여지 없는 팩트이다. 게다가 강씨 일가와 진씨 일가는 줄곧 돈독한 사이를 유지했다.“나도 백연신 씨가 내 여자친구를 도와줄 줄은 몰랐어요. 고마워요.”강지혁이 입꼬리를 씩 올리자 좀전의 싸늘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봄 햇살처럼 따뜻한 미소가 어렸다.“탈까요? 더 지체했다가 도착 시간이 늦어지겠어요.”“그래요, 얼른 타요.”백
이어 두 남자도 차에 탔다. 임유진과 한지영이 이미 뒷좌석에 앉아있었기에 백연신은 운전석에, 그리고 강지혁은 조수석에 앉았다.한지영은 갑자기 자신의 차가 꽤 값이 나가는 차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작은 차에 GH 그룹의 대표와 백선그룹의 대표가 앉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깜짝 놀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가는 길, 앞 좌석의 두 남자는 아무 말도 없었고 뒷좌석에 앉은 여자 두 명만이 오디오를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물론 대부분은 한지영이 말을 하고 임유진은 듣고 있을 뿐이었지만."참, 요즘 그 드라마 엄청 핫 하잖아. ‘군주의 연인’이라고, 너 본 적 있어?"한지영이 묻자 임유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임유진은 낮에 일을 마치고 난 뒤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서는 뉴스만 간간이 확인하고 금방 잠이 들어버린다."너무 재밌어. 스토리가 정말 기가 막힌다니까. 내가 이따 드라마 포스터 사진 보내줄게. 참, 이 드라마 남자 주인공, 네가 예전에 좋아했던 고주원이야."한지영은 최근 해당 드라마 때문에 다시 한번 고주원에게 푹 빠져있다. 물론 임유진이 고주원에게 한창 빠져있었을 당시 한지영도 좋아했었지만, 곧 다른 드라마에 빠져 그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을 더 좋아했었다. 한지영은 절대 지조 있는 팬이 아니었다.임유진은 고주원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생각해보면 감방에 들어가기 전까지 꽤 고주원을 좋아했었다. 물론 엄청 열정적인 팬은 아니었고 고주원이 나오는 드라마를 꾸준히 챙겨보며 시청률에 일조하고 가끔 고주원이 모델로 있는 물건들을 사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또한, 임유진은 예전에 종종 한지영에게 먼저 고주원이 출연하는 드라마를 소개하곤 하며 얼굴도 준수하고 연기도 잘하는 것이 분명 기회만 잘 잡으면 대박 날 것이라고 했었다.한지영이 고주원 얘기를 꺼낸 덕에 임유진도 간만에 옛날 기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고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마음이 오늘은 많이 풀어진 것 같기도 했다. 분명히 중요한 일을 처리하러 가는 길인
화가 난건 한지영의 관심이 온통 고주원에게 쏠려 있어서이고, 어이가 없는 건 자신이 한지영이라는 여자를 좋아하는 이상 앞으로도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백연신이 고압적인 수단을 취하면 한지영은 바로 꼬리를 내렸고 잘해주면 바로 의기양양해졌다.다만 아까 임유진도 전에 고주원의 팬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백연신은 갑자기 전처럼 화가 그렇게 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거에 위로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가는 길, 강지혁과 백연신은 적당한 타이밍에 나눠서 운전했고 네 사람이 해성시의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9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백연신이 미리 안배해둔 덕에 네 사람은 직원의 안내 아래 접견실 옆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방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놓여 있었는데 제일 중앙에 있는 모니터에는 접견실 화면이 띄워져 있었고 대화 소리도 들렸다.얼마 안 가 중재인도 해당 방에 도착했고 임유진은 미리 생각해뒀던 의문점들을 중재인에게 보여주며 서로 어떻게 질문할 것인지 얘기를 나눴다. 역시 이쪽 전문가여서 그런지 중재인은 임유진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고 예리한 질문들을 바로 적어냈다.임유진은 백연신이 유능한 사람을 찾아준 덕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중재인은 임유진과 나눈 얘기들을 다 정리해 넣은 후 옆에 있는 접견실로 들어가 대기했다. 그러자 얼마 안 가 경찰이 갈씨 성을 가진 증인 갈민수를 데리고 접견실로 들어왔다.증인의 얼굴이 보이자 임유진은 모니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녀는 이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당시 법정에서 그녀가 술을 먹었다고 증언한 사람이 바로 갈민수였고 임유진이 억울하다고 다시 한번 잘 기억해보라고 했을 때도 그는 단호한 표정으로 자신의 기억이 틀림없다고 말하며 생동감 넘치게 사고 당시 상황을 묘사했었다.똑같은 증언을 한 사람은 갈민수를 제외하고도 여럿 있었고 그들의 증언과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이 모두 완벽하게 그녀를 지목했기에 당시 임유진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왜..
그 말에 갈민수는 동공이 잠시 흔들렸다가 다시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합법 맞죠, 그럼. 난 지금까지 뒤 구린 일 같은 건 해본 적 없어요.""참, 어제 민수 씨 부모님을 찾아가서 얘기를 좀 나눠봤는데 부모님께서 S 시 쪽 억양이 강하시더라고요. 두 분 고향이 혹시 S 시인가요?"중재인이 다시 화제를 돌렸다."네, 두 분 모두 S 시에서 태어나셨어요.""그럼 민수 씨도 S 시에서 사신 적 있겠네요. 그런데 어떻게 하다 해성시에 정착할 생각을 하셨어요? S 시가 해성시보다 훨씬 크고 좋잖아요."중재인은 가벼운 대화로 갈민수의 경계를 풀었다."아무래도 큰 도시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고요. 여기는 작긴 해도 마음은 편해요.""그렇긴 하죠."중재인은 피식 웃으며 다시 화제를 돌렸다."아참, 민수 씨를 신고한 사람 말인데요. 얼마 전 저한테 당장 2억을 배상하지 않으면 진씨 가문 아가씨 일을 자기가 다 까발리겠다면서 민수 씨에게 전해주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그러자 갈민수의 얼굴이 삽시에 하얗게 질려서는 애써 당황한 얼굴을 감추려고 했다."글쎄요... 뭘 까발리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제가 한 사건의 증인으로 섰던 적이 있었어요. 그 사건에서 죽은 사람이 S 시에서 유명한 부잣집 아가씨였는데 성이 진 씨였어요.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안타깝게 됐죠. 당시 어떤 여자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끔찍한 사고도 벌어지지 않았겠지만요."갈민수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문득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런데 그날 저와 다퉜던 사람이 왜 진씨 가문 아가씨 사건을 그 쪽에게 얘기한 거죠?""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민수 씨가 여기서 나가게 되면 그때 상대방과 직접 만나 물어보는 게 어때요?"중재인은 천연덕스러운 얼굴을 하며 답했다.그렇게 얼마간 더 얘기를 나눠봤지만 이렇다 할 수확은 없었고 결국 중재인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옆 방으로 넘어와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미안합니
천하의 강지혁이 도와준다는데 못 뒤집는 사건이 있을까? 게다가 임유진은 원래부터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으니 일은 더 쉬울 것이고 뒤에서 이 판을 설계한 사람이 누구든 얼마 안 가 꼭 밝혀질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한지영은 아까까지만 해도 우울했던 게 싹 가시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점심시간도 다 돼가는데 우리 이제 식사하러 가요."한지영의 제안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그렇게 네 사람은 구치소에서 나와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앉아 맛집 몇 개를 알아본 한지영은 임유진에게 최종선택을 맡겼고 두 남자는 그녀들이 가자는 데로 따를 뿐이었다.운전은 백연신이 했고 네 사람은 해성시 유명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한지영이 룸으로 예약한 덕에 직원은 네 사람을 곧장 룸으로 안내했고 주문은 맛집 블로거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들로 주문했다. 이것저것 다 주문하고 나니 음식이 족히 20가지는 넘었고 한지영은 그제야 머쓱한 듯 물었다."너무 많나...?""먹고 싶은 거 다 시켜도 돼. 이것저것 많이 먹어보고 좋지 뭐."백연신의 말에 한지영은 안심한 듯 웃었다.주문을 마치고 음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 한지영은 핸드폰을 꺼내 임유진에게 아까 추천했던 드라마의 포스터와 스틸컷들을 보여주었다."어때? 이 사진 고주원 진짜 너무 섹시하지 않아?"백연신은 남자친구인 자신이 옆에 있는 것도 잊고 잔뜩 흥분해서 얘기하는 한지영을 보며 못마땅한지 얼굴을 찌푸렸다. 한지영은 평소에도 그를 자주 화나게 했는데 그녀는 백연신과 마주 보고 있을 때는 그한테 홀딱 빠져버린 듯한 눈을 하다가 고개만 돌리면 바로 아이돌이나 배우들에게 침을 흘린다는 것이다.임유진은 아직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한지영의 핸드폰은 어느새 강지혁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는 드라마 포스터와 스틸컷들을 한 장 한 장 열심히 보고는 임유진을 향해 물었다."이런 남자가 취향이야?"그러자 임유진이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게... 예전에... 예전에 좋아했던 배우였어. 연기를 아주 잘했거든.""그래? 그
주문한 음식이 다 올라온 후 네 사람은 식사하기 시작했다. 강지혁은 자연스럽게 새우 껍질을 까서 임유진에게 건네주었고 임유진은 그의 행동에 꽤 민망해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지영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임유진을 툭툭 건드렸고 임유진은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멋쩍게 웃어넘겼다.그에 반해 강지혁은 다른 사람 눈길 따위는 신경도 안 쓰인다는 듯 계속 그녀를 챙겼고 식사를 마치고 나서도 임유진을 살뜰히 챙겼다."20분 뒤에 약 먹는 거 잊지 마.""응, 알겠어."그러자 옆에 있던 한지영이 놀란 얼굴을 하며 물었다."너 어디 아파?""아니. 관절염 치료하려고 먹는 약이야."그 말에 한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임유진이 감방에 있던 3년 동안 관절이 많이 안 좋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만날 때마다 병원에 가서 제대로 치료받기를 권했지만, 매번 임유진은 적당한 핑계를 대며 병원 가기를 거부했었다. 치료에는 돈이 많이 들었고 임유진이 걱정하는 게 돈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한지영이 자신이 치료비를 내겠다고도 했지만, 그 역시 임유진에게 거절당했다.그런데 지금 임유진이 착실히 치료받고 있는 걸 보면 강지혁이 그녀를 설득한 게 틀림없었다. 한지영은 강지혁을 점점 더 좋게 보기 시작했다. 자신의 친구가 감방에서 고생한 게 강지혁과 관련이 있는 건 맞지만 그때는 어찌 됐든 두 사람이 서로를 몰랐던 상황이고 지금은 옆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지혁은 임유진에게 지극정성이다.그러니 만약 강지혁이 자신의 친구에게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준다면 이것도 나름 좋은 결말이라고 한지영은 그렇게 생각했다.20분 후, 강지혁은 적당히 따뜻한 물을 가져오더니 손수 약 봉투를 뜯어주고는 약을 임유진의 손에 올려주었다. 한지영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상함이 묻어나오는 강지혁의 행동을 보고는 그가 정말 임유진을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남자가 여자를 얼마나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느냐는 여자에게 돈을 얼마나 잘 쓰는것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