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영준은 순간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고 질투가 났다.이 문자는 비록 짧았지만 송재이와 박윤찬의 사이에 그가 모르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그는 박윤찬이 송재이의 친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박윤찬이 이런 문자까지 보내며 알려주는 것일까?침대에 앉은 그는 송재이의 핸드폰을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설영준은 쉽게 질투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송재이는 그가 아주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는 송재이와 박윤찬의 다정한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으로 떠올랐다. 둘에겐 그에게 숨겨야만 하는 비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송재이의 마음 한편에 그도 모르는 사이에 박윤찬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그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감정을 갈무리하려 애를 썼다.이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송재이를 의심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감정을 조절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불안한 마음이 들고 화가 났다.지금 당장 송재이에게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녀와의 관계가 파탄 나게 될까 봐 두려웠다.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갔다. 바깥에 켜진 불빛들이 소당을 더 아름다운 도시로 만들었지만, 그는 마음이 너무도 혼란스러웠다.송재이가 뭔가 그에게 감추는 것이 있다면 그는 그녀에게 설명할 기회를 주어야 했다, 이렇게 묵묵히 의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그는 가슴에 무거운 돌이 내려앉은 듯 답답하고 조금 숨 막혔다.송재이는 욕실에서 나왔다. 수건으로 젖은 머리칼을 닦으며 말이다. 그녀는 심각한 설영준의 표정을 눈치채지 못했다.고개를 돌려 드디어 그에게 시선을 옮겼을 때 그녀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자신의 핸드폰을 발견했다. 게다가 누군가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순간 초조하고 당황한 그녀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설영준이 전부 보고 있었다.“영준 씨, 지금 뭐 보고 있는 거야?”송재이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설영준이 들고 있는
송재이는 아주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 속에서 진지함이 느껴졌다.설영준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어떤 이야기?”송재이는 긴 한숨을 내쉬더니 용기를 내었다.“영준 씨,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이 문자 하나 때문에 생긴 게 아니야.”그녀는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난... 더 이상 영준 씨를 사랑하지 않아.”설영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송재이가 이렇듯 직설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얼얼해지고 괴로움에 숨이 턱턱 막혀왔다.“재이야, 지... 지금 그게 무슨 말이야?”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믿을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을.송재이도 다소 괴로운 듯한 눈빛을 했지만 이내 빠르게 감정을 지우고 단호하게 말했다.“영준 씨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우리의 감정은 이미 변했어. 더는 이렇게 함께 살 수 없어.”설영준은 더는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다가가 멱살을 잡은 뒤 고통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왜? 재이야,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그는 거의 울부짖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화가 치밀었다.송재이도 눈물을 흘렸다. 설영준의 손을 천천히 떼어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영준 씨,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난 더는 영준 씨 속이고 싶지 않아. 우리는 이미 많이 변했어. 나 더는 연기하고 싶지 않아.”설영준은 괴로웠고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송재이는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영준 씨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고 있어. 하지만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지금 끝내는 게 낫다고 생각해. 계속 이렇게 시간을 끌면 우리 두 사람한테 전부 불리할 거야.”설영준은 절망스러웠다. 이 잔혹한 현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송재이를 붙잡은 손을 놓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다음 날 아침, 송재이는 일찍 일어나 자신의 짐을 정리
송재이는 다시 원래의 도시로 돌아왔다. 집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양은서의 연락임을 알게 되었다. 양은서는 그녀의 친구이자 의사였다.그녀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너머로 양은서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재이 씨, 돌아왔어요? 전에 말씀드린 한약 완성이 되었는데 언제 가지러 올 거예요?”송재이는 가슴 한편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양은서는 줄곧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녀의 건강과 체질을 위해 약까지 달여주었다.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유산했던 그때 양은서의 도움으로 그녀는 건강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고 심지어 또 임신할 수 있었다.그러나 지금은 또 유산해버렸지만 말이다. 게다가 의사가 그녀에게 말했었다.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이 소식은 송재이에게 아주 큰 충격이었다.그녀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양은서의 말에 대답했다.“은서 씨, 요즘엔 일이 바빠서 가지러 가지 못할 것 같아요.”양은서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괜찮아요. 그럼 택배로 보내주면 되죠. 재이 씨는 아직도 약을 먹어야 해요. 그래야 더 건강해질 수 있어요.”송재이는 알고 있었다. 계속 사양하다간 양은서가 의심하리라는 것을.양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싫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상태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대답했다.“네, 고마워요, 은서 씨.”전화를 끊은 후 송재이는 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소파에 앉아 공허한 집을 둘러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고 외로웠다.그녀는 아이를 잃었을 뿐 아니라 영원히 임신할 수 없게 되었고 설영준도 잃었다.연속된 충격에 그녀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송재이는 결국 직접 양은서에게 찾아가 약을 가져오기로 했다.물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줄여야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현재 친구의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다.양은서의 직장으로 찾아갔을 때 양은서는 바삐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송재이를 보자마자 양은서는 반갑게 맞이
양은서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송재이는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송재이는 병원에서 나온 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무겁기 그지없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 같았다.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확인하니 박윤찬의 연락이었다.“재이 씨, 지금 어디예요?”박윤찬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다소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은서 씨 병원에 있어요. 방금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송재이가 답했다.“아, 그랬군요. 마침 저 오늘 일찍 퇴근했는데,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요?”박윤찬이 물었다.송재이는 곰곰이 생각했다. 괜찮은 제안인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친구가 필요했고 주의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그래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네, 조금만 기다려줘요. 아마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박윤찬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송재이는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 대충 휴식 구역에 자리 찾아 앉아 박윤찬을 기다렸다.반 시간 뒤, 박윤찬은 약속대로 병원 앞에 나타났다. 캐주얼한 옷차림이었던지라 아주 편안해 보였다.“재이 씨, 가요.”박윤찬은 웃으며 송재이에게 말했다.“네, 가요.”송재이도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병원 밖으로 나갔다.복도의 끝이 보일 때 송재이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실루엣의 주인공은 바로 설영준이었다. 설영준이 복도 다른 한쪽에서 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송재이는 순간 긴장해졌다. 이곳에서 설영준을 만나게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박윤찬도 설영준을 발견했다. 하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았고 그저 조심스럽게 송재이의 손을 잡으며 괜찮다며 다독여 주었다.설영준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그는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다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복잡한 눈빛이었다.송재이는 숨을
양은서는 노크 소리를 듣고 대답했다.“네, 들어오세요.”문이 천천히 열리며 설영준이 들어왔다.그의 안색은 유난히도 창백해 보였고 다소 초췌하기도 했다.양은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에겐 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있었던지라 바로 설영준의 상태를 눈치챘다.게다가 방금 송재이와 박윤찬이 떠나갔으니 그의 상태가 안 좋은 이유도 눈치챘다.“설영준, 어디 아파서 찾아온 거야?”양은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직설적으로 묻지 않고 그저 그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물었다.설영준은 의자에 앉았다. 양은서는 바로 그의 맥을 짚어보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재이 씨랑... 헤어졌어?”설영준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양은서가 바로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침묵하던 그는 한참 뒤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양은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설영준을 보는 눈빛에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송재이와 설영준 사이의 감정이 엄청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팠다.설영준은 병원에서 나왔다. 가슴 속에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그는 혼자 차에 올라탄 뒤 문을 굳게 닫아버리며 세상과 잠시나마 단절해보려고 했다.공허한 눈빛으로 앞만 멍하니 보았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나 사람은 없었다.머릿속에 송재이와 박윤찬이 손을 잡고 걸어가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떠올랐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던 모습은 그의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그는 이내 차갑게 자조적으로 픽 웃었다.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꼈다. 마치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더는 송재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 보았다.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달칵, 라이터에서 불이 나왔고 담배에 붙였다.짙은 담배 연기로 가득해진 차 안에서 설영준은 한숨을 내쉬었다.니코틴
송재이는 놀라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그녀는 설영준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심지어 그의 앞에서 대놓고 다른 남자와 다정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재결합을 원하는 문자를 보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그녀가 알고 있는 설영준은 항상 자부심이 높고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남에게 먼저 꼬리를 내리는 법이 없었기에 이런 남녀 관계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송재이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다.설영준의 문자에서 그의 그녀를 향한 미련과 감정, 그리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느껴냈다.자존심도 다 내려놓고 보낸 그의 문자는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박윤찬은 눈물을 흘리는 송재이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그는 송재이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설영준의 괴로움도 이해가 되었다.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재이 씨,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요? 아니면 제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드릴까요?”송재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소 목이 멘 목소리로 답했다.“윤찬 씨, 고마워요. 하지만 전 지금 너무 심란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박윤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이해했다.“그럼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줄게요. 재이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 다 존중하고 응원해줄 거예요.”그의 목소리엔 걱정과 따듯함이 묻어나 있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송재이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송재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설영준 모두에게 공평한 결정을.두 눈을 꼬옥 감으며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설영준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즐거웠던 추억과 그렇지 못했던 추억들이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차 안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음률에 따라 송재이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진정을 되찾았다.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부 용기와 진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한순간의 충동으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
박윤찬은 고통스러워하는 송재이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그는 입을 벙긋거렸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어떤 말이던 지금 그녀에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송재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응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시 시동을 걸었다. 차 안에 흐르던 침묵고 깨며 나직하게 물었다.“재이 씨,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제가 같이 가 줄게요.”송재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저희 아빠 집으로 가줘요. 진상을 알아야겠어요. 제가 직접 물어볼 거예요.”박윤찬은 더 묻지 않았다. 현재 송재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묵묵히 시동을 걸어 도경욱의 집으로 출발했다.차 안은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저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공기 중에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퍼질 뿐이다.송재이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두운 밤 가로수들이 휙휙 지나갔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해 정리하기도 어려웠다.그녀는 한때 도경욱을 엄청 신경 썼다. 그런데 자신의 엄마한테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곤 전혀 몰랐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도경욱이 대체 왜 그랬는지.설명이 필요했다. 그녀가 납득될만한 그의 이유가.송재이가 도경욱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다. 도경욱도 말이다.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지금 바로 도경욱을 만났더라면 그녀는 아마 더없이 긴장하고 초조해했을 거니까.다른 한 편으로는 얼른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도경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빠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송재이는 마트로 와서 장을 본 뒤 만두를 직접 빚어주기로 했다.그녀는 이 만두로 이따가 그와 대화하면서 느끼게 될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했다.마트로 온 송재이는 정성껏 식자재를 골랐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걱정스럽기도
도경욱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서지원과 함께 보낸 영화 같던 나날이 떠올랐다.서지원은 송재이의 엄마였고, 그가 젊었을 때 아주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그때의 두 사람은 아주 행복한 사랑을 했다. 그런데 현실 속에 부딪힌 여러 문제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과거의 일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도경욱의 가슴에 하나둘씩 박혔다.그는 알고 있었다. 서지원에게 입힌 상처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그의 일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기도 했으며 영원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매일 밤이 찾아오면 그때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그를 괴롭게 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고통스러워하는 송재이를 보니 도경욱은 더욱 죄책감이 들고 후회되었다.그는 고자의 자신이 서지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뿐 아니라 송재이에게도 상처를 만들어줬음을 알게 되었다.뭐라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든 다 핑계로 들릴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재이야, 아빠가 미안하구나.”도경욱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소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네 엄마한테도, 너한테도 미안하구나.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다 핑계로 느껴질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도 말이다.”송재이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 숨쉬기도 힘들었다.그녀는 점차 절망에 침식되었다. 그렇게나 믿고 따르고 존경했던 아빠인데 그런 짓을 했다니.“왜 그러셨어요, 아빠.”송재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통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대체 왜 엄마한테 그러신 건데요?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얼마나 믿었는데요!”도경욱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손을 뻗어 송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결국 힘없이 툭 내렸다.송재이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바라지도 않고 있었다.송재이는 절망을 느끼며 떠나버렸다. 다소 비틀대기도 했다. 마치 온몸의 힘이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도경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