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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이별

작가: 라오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10-29 19:42:56
송재이는 다시 원래의 도시로 돌아왔다. 집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양은서의 연락임을 알게 되었다. 양은서는 그녀의 친구이자 의사였다.

그녀는 수락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 너머로 양은서의 온화한 목소리가 들렸다.

“재이 씨, 돌아왔어요? 전에 말씀드린 한약 완성이 되었는데 언제 가지러 올 거예요?”

송재이는 가슴 한편이 따듯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양은서는 줄곧 그녀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고 있었고 그녀의 건강과 체질을 위해 약까지 달여주었다.

그녀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유산했던 그때 양은서의 도움으로 그녀는 건강한 상태로 돌아올 수 있었고 심지어 또 임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또 유산해버렸지만 말이다. 게다가 의사가 그녀에게 말했었다. 더는 아이를 가질 수 없을 거라고.

이 소식은 송재이에게 아주 큰 충격이었다.

그녀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양은서의 말에 대답했다.

“은서 씨, 요즘엔 일이 바빠서 가지러 가지 못할 것 같아요.”

양은서는 한참 침묵하다가 말했다.

“괜찮아요. 그럼 택배로 보내주면 되죠. 재이 씨는 아직도 약을 먹어야 해요. 그래야 더 건강해질 수 있어요.”

송재이는 알고 있었다. 계속 사양하다간 양은서가 의심하리라는 것을.

양은서가 걱정하는 것이 싫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상태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답했다.

“네, 고마워요, 은서 씨.”

전화를 끊은 후 송재이는 더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소파에 앉아 공허한 집을 둘러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쓸쓸하고 외로웠다.

그녀는 아이를 잃었을 뿐 아니라 영원히 임신할 수 없게 되었고 설영준도 잃었다.

연속된 충격에 그녀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송재이는 결국 직접 양은서에게 찾아가 약을 가져오기로 했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만남을 줄여야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는 현재 친구의 위로가 필요한 상태였다.

양은서의 직장으로 찾아갔을 때 양은서는 바삐 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송재이를 보자마자 양은서는 반갑게 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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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은서와 대화를 나누고 나니 송재이는 마음이 다소 홀가분해진 기분이었다.송재이는 병원에서 나온 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무겁기 그지없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 것 같았다.이때 그녀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확인하니 박윤찬의 연락이었다.“재이 씨, 지금 어디예요?”박윤찬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다소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은서 씨 병원에 있어요. 방금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어요.” 송재이가 답했다.“아, 그랬군요. 마침 저 오늘 일찍 퇴근했는데,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같이 식사하는 건 어때요?”박윤찬이 물었다.송재이는 곰곰이 생각했다. 괜찮은 제안인 것 같았다. 그녀는 지금 친구가 필요했고 주의력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그래요.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네, 조금만 기다려줘요. 아마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박윤찬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송재이는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가 대충 휴식 구역에 자리 찾아 앉아 박윤찬을 기다렸다.반 시간 뒤, 박윤찬은 약속대로 병원 앞에 나타났다. 캐주얼한 옷차림이었던지라 아주 편안해 보였다.“재이 씨, 가요.”박윤찬은 웃으며 송재이에게 말했다.“네, 가요.”송재이도 일어나며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병원 밖으로 나갔다.복도의 끝이 보일 때 송재이는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실루엣의 주인공은 바로 설영준이었다. 설영준이 복도 다른 한쪽에서 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송재이는 순간 긴장해졌다. 이곳에서 설영준을 만나게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박윤찬도 설영준을 발견했다. 하지만 놀란 티를 내지 않았고 그저 조심스럽게 송재이의 손을 잡으며 괜찮다며 다독여 주었다.설영준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니 표정이 더 어두워졌다.그는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다소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질투하는 것 같기도 한 그런 복잡한 눈빛이었다.송재이는 숨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531화 재결합

    양은서는 노크 소리를 듣고 대답했다.“네, 들어오세요.”문이 천천히 열리며 설영준이 들어왔다.그의 안색은 유난히도 창백해 보였고 다소 초췌하기도 했다.양은서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에겐 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있었던지라 바로 설영준의 상태를 눈치챘다.게다가 방금 송재이와 박윤찬이 떠나갔으니 그의 상태가 안 좋은 이유도 눈치챘다.“설영준, 어디 아파서 찾아온 거야?”양은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직설적으로 묻지 않고 그저 그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며 물었다.설영준은 의자에 앉았다. 양은서는 바로 그의 맥을 짚어보지 않고 조심스럽게 물었다.“너... 재이 씨랑... 헤어졌어?”설영준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는 양은서가 바로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침묵하던 그는 한참 뒤 고개를 저었다.“아니야.”양은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설영준을 보는 눈빛에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송재이와 설영준 사이의 감정이 엄청 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가슴이 아팠다.설영준은 병원에서 나왔다. 가슴 속에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숨 쉬는 것이 힘들었다.그는 혼자 차에 올라탄 뒤 문을 굳게 닫아버리며 세상과 잠시나마 단절해보려고 했다.공허한 눈빛으로 앞만 멍하니 보았다. 하지만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나 사람은 없었다.머릿속에 송재이와 박윤찬이 손을 잡고 걸어가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어 떠올랐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던 모습은 그의 마음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그는 이내 차갑게 자조적으로 픽 웃었다.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무력감을 느꼈다. 마치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더는 송재이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았다.핸들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 보았다.이내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달칵, 라이터에서 불이 나왔고 담배에 붙였다.짙은 담배 연기로 가득해진 차 안에서 설영준은 한숨을 내쉬었다.니코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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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이는 놀라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그녀는 설영준 앞에서 이별을 고하고, 심지어 그의 앞에서 대놓고 다른 남자와 다정한 모습을 보였는데도 자존심을 내려놓고 재결합을 원하는 문자를 보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그녀가 알고 있는 설영준은 항상 자부심이 높고 자신만만한 사람이었다. 남에게 먼저 꼬리를 내리는 법이 없었기에 이런 남녀 관계에서도 이런 적은 없었다.송재이는 눈물을 흘렸다. 너무도 고통스럽고 괴로웠다.설영준의 문자에서 그의 그녀를 향한 미련과 감정, 그리고 그녀를 위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을 느껴냈다.자존심도 다 내려놓고 보낸 그의 문자는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박윤찬은 눈물을 흘리는 송재이를 보며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그는 송재이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지를 이해하고 있었다. 설영준의 괴로움도 이해가 되었다.그래서 조심스럽게 말했다.“재이 씨,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해요? 아니면 제가 재밌는 이야기라도 해드릴까요?”송재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소 목이 멘 목소리로 답했다.“윤찬 씨, 고마워요. 하지만 전 지금 너무 심란해서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박윤찬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이해했다.“그럼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줄게요. 재이 씨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 다 존중하고 응원해줄 거예요.”그의 목소리엔 걱정과 따듯함이 묻어나 있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송재이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송재이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와 설영준 모두에게 공평한 결정을.두 눈을 꼬옥 감으며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설영준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즐거웠던 추억과 그렇지 못했던 추억들이 전부 하나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차 안에서는 여전히 음악이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음률에 따라 송재이는 천천히 숨을 고르면서 진정을 되찾았다.그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전부 용기와 진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한순간의 충동으로 결정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그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533화 상처

    박윤찬은 고통스러워하는 송재이를 보며 가슴 아파했다.그는 입을 벙긋거렸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어떤 말이던 지금 그녀에겐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송재이에게 지금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응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다시 시동을 걸었다. 차 안에 흐르던 침묵고 깨며 나직하게 물었다.“재이 씨, 가고 싶은 곳 있어요? 제가 같이 가 줄게요.”송재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두 눈엔 여전히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목소리는 결의에 차 있었다.“저희 아빠 집으로 가줘요. 진상을 알아야겠어요. 제가 직접 물어볼 거예요.”박윤찬은 더 묻지 않았다. 현재 송재이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묵묵히 시동을 걸어 도경욱의 집으로 출발했다.차 안은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저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공기 중에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퍼질 뿐이다.송재이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 어두운 밤 가로수들이 휙휙 지나갔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너무도 복잡해 정리하기도 어려웠다.그녀는 한때 도경욱을 엄청 신경 썼다. 그런데 자신의 엄마한테 그런 짓을 했을 거라곤 전혀 몰랐다. 이 사실은 그녀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받아들일 수도 없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도경욱이 대체 왜 그랬는지.설명이 필요했다. 그녀가 납득될만한 그의 이유가.송재이가 도경욱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 아무도 없었다. 도경욱도 말이다.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지금 바로 도경욱을 만났더라면 그녀는 아마 더없이 긴장하고 초조해했을 거니까.다른 한 편으로는 얼른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도경욱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시간을 보내기 위해, 아빠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 송재이는 마트로 와서 장을 본 뒤 만두를 직접 빚어주기로 했다.그녀는 이 만두로 이따가 그와 대화하면서 느끼게 될 긴장감을 풀어보려고 했다.마트로 온 송재이는 정성껏 식자재를 골랐다.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걱정스럽기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534화 보고 싶어

    도경욱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서지원과 함께 보낸 영화 같던 나날이 떠올랐다.서지원은 송재이의 엄마였고, 그가 젊었을 때 아주 사랑했던 사람이기도 했다.그때의 두 사람은 아주 행복한 사랑을 했다. 그런데 현실 속에 부딪힌 여러 문제 때문에 그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말았다.과거의 일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도경욱의 가슴에 하나둘씩 박혔다.그는 알고 있었다. 서지원에게 입힌 상처는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그의 일생에서 가장 후회가 되는 일이기도 했으며 영원히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매일 밤이 찾아오면 그때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그를 괴롭게 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고통스러워하는 송재이를 보니 도경욱은 더욱 죄책감이 들고 후회되었다.그는 고자의 자신이 서지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을 뿐 아니라 송재이에게도 상처를 만들어줬음을 알게 되었다.뭐라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든 다 핑계로 들릴 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재이야, 아빠가 미안하구나.”도경욱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다소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네 엄마한테도, 너한테도 미안하구나. 나도 알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다 핑계로 느껴질 거라는 것을. 그리고 내가 엄청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도 말이다.”송재이는 소리 없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파 숨쉬기도 힘들었다.그녀는 점차 절망에 침식되었다. 그렇게나 믿고 따르고 존경했던 아빠인데 그런 짓을 했다니.“왜 그러셨어요, 아빠.”송재이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면서 고통스러운 눈길로 그를 보았다.“대체 왜 엄마한테 그러신 건데요? 엄마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했는데, 얼마나 믿었는데요!”도경욱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손을 뻗어 송재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결국 힘없이 툭 내렸다.송재이의 용서를 받을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기에 바라지도 않고 있었다.송재이는 절망을 느끼며 떠나버렸다. 다소 비틀대기도 했다. 마치 온몸의 힘이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도경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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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이는 단호하면서도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영준 씨,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말할게. 우린 이미 끝난 사이야. 난 더는 영준 씨를 사랑하지 않아. 그러니까 앞으로도 이런 연락 자제해줘.”단호하게 말하긴 했지만, 주위에서 들리는 빗소리가 점차 사라져 자신의 쿵쾅대는 심장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게다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전화기 너머로도 설영준은 그녀의 단호함을 느낄 수 있어 그저 침묵했다.송재이는 더는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피곤함이 밀려왔다.빗속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마치 갑작스러운 가을비에 온몸이 쫄딱 젖어버린 것처럼.그녀는 벽에 기대에 눈을 감았다. 빗물이 자신의 몸을 적시고 있어도 가만히 있었다.전화를 끊고 나니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눈물이 빗물과 섞여 그녀의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가슴이 너무도 괴로웠다. 하지만 반드시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혼자 이 상황을 끌어안으려면 말이다. 그래도 지금 그녀에겐 기댈 수 있는 사람과 따듯한 포옹이 필요했다.숨을 깊게 들이쉰 그녀는 진정하려고 애를 썼다.계속 이렇게 슬픔과 고통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시 마음을 다잡으려 했다.얼굴 가득 묻은 빗물 섞인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들어 먹구름 가득한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그녀가 가는 길이 가시밭길일지라도 용감히 헤쳐나가겠다고 말이다.비는 어느새 그쳤다. 송재이는 지붕 아래서 나왔다. 발걸음이 무겁긴 했지만, 아까처럼 비틀대지는 않았다.송재이는 예전에 이원희와 함께 지내던 아파트로 돌아왔다. 그녀의 뒷모습은 유난히도 쓸쓸하고 고독해 보였다.이원희는 송재이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저도 모르게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그녀는 얼른 다가가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재이 씨,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송재이는 입술을 달싹였다. 무언가 말하려고 했지만 결국 고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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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이는 금방 박윤찬에게 짐을 옮겨갔다. 그녀의 방은 2층에 있었다.박윤찬은 바로 아래층에 살았다. 그녀는 퇴근하는 길에 장을 봐서 저녁 식사를 차리고는 했다. 가끔 그녀가 바쁠 때는 박윤찬이 식사를 차렸다.평화로운 일상에 그녀는 마음이 놓였다. 새로운 일상에 점점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막연한 기분을 품고 살기도 했다. 다행히 박윤찬이 세심하게 챙겨준 덕분에 불안감은 크지 않았다.그래도 가끔 설영준이 생각날 때가 있었다. 지난번 통화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연락은 없었다. 어쩐지 생각할 시간을 주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를 좋아하는지 결정 내리도록 말이다.송재이도 알았다. 침묵은 그의 마지막 배려였다. 그는 그녀를 압박하지도, 감정적으로 힘들게 하지도 않았다.시간의 흐름에 따라 송재이와 박윤찬은 점점 가까워졌다. 그들은 서로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함께 영화 보고, 함께 산책하고, 일 얘기도 숨김없이 나눴다.박윤찬은 언제나 그녀의 편에 서줬다. 편안한 느낌에 그녀도 그에 대한 감정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정 이상으로 말이다.그러나 설영준의 존재감도 여전히 확실했다. 혼자 남은 밤이 되면 언제나 설영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녀가 설영준에 대한 마음은 실재했다. 동시에 두 사람 사이의 장애물도 선명하게 떠올랐다.결혼 날짜는 점점 가까워졌다. 송재이는 일단 설영준에게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설영준은 결국 알게 되었다. 문예슬이 알려준 것이다.문예슬은 문성호에게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주 놀라웠다. 그녀는 송재이의 친구다. 그리고 설영준과 박윤찬 사이에는 복잡한 관계가 있었다.그녀는 송재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어쨌든 문성호가 상기된 채 전해줬을 때 그녀도 아주 기뻤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이런 반전이 일어났으니 말이다.송재이가 박윤찬과 결혼한다면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지는 셈이다. 그녀는 줄곧 설영준을 좋아했다. 송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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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가 종료된 후 설영준은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그는 다시 한번 송재이 병실로 가 침대 끝에 앉았다. 그리곤 창백한 얼굴로 고요히 잠든 송재이의 얼굴을 보았다.설영준은 마치 송재이에게 자신이 한 말이 들리는 것처럼 나직하게 말했다.“재이야, 내 말 들려? 나 여기 있어. 네 옆에 있어.”그는 조심스럽게 송재이의 손을 잡으며 미약해진 체온을 느꼈다.“어쩌면 지금 내 말이 안 들릴 수도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이야.”설영준은 이내 심호흡을 하면서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우리 아직 함께 해보진 못한 일들이 많아. 혹시 기억해? 우리 그때 그랬었잖아. 함께 세계 곳곳에 있는 나라로 여행 가서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문화를 체험해 보고 그곳의 음식을 먹어보자고. 네가 지금 눈만 떠준다면 난 지금 당장 너랑 함께 그 떠날 거야.”이때 누군가 노크하더니 도정원이 들어왔다. 그는 아주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영준 씨, 경찰들이 지금 출동했다고 하네요. 곧 도진욱의 거처로 들이닥칠 거예요.”설영준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가득한 눈길로 송재이를 보았다.“정원 씨,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요?”“말씀하세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면 도와드릴게요.”“저 대신 재이 좀 잘 챙겨주세요. 전 누구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 사람이 아마 이 사건에 아주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걱정하지 말고 가봐요. 여긴 제가 꼭 붙어 있을 테니까 아무도 재이를 건들지 못할 거예요.”설영준은 고마운 눈빛으로 도정원을 힐끗 보곤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떠나기 전 설영준은 나직하게 송재이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재이야, 나 얼른 돌아올게. 그러니까 나 꼭 기다려줘야 해.”송재이의 병실에선 도정원만이 묵묵히 곁을 지키며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설영준은 이미 진상을 찾으러 떠났다.그는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그 친구는 의학 부문에서 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9화 새로운 증거

    그러자 보안 요원이 말했다.“여긴 병원 CCTV를 관리하는 곳입니다. 외부인에게 함부로 영상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설영준은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전 송재이 씨 약혼자입니다. 전 반드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보안 요원은 다소 망설이더니 결국 그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영상 속에서 설영준은 세세한 부분까지 발견했다. 송재이가 쓰러지기 전 도진욱은 물잔을 송재이에게 건넸다. 그 순간 설영준은 의심을 하게 되었다.같은 시각 도정원은 병실에서 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쪽지엔 갈겨 쓴 글씨가 있었다. 약물의 이름과 사용량이 적힌 쪽지였다. 그는 발견하자마자 바로 설영준에게도 알렸다.두 사람은 각자 발견한 것을 공유하곤 분석하기 시작했다. 설영준은 도진욱이 송재이에게 건넨 물잔과 쪽지 위에 쓴 약물의 명칭을 보았다. 그는 순간 무언가 깨닫게 되었다.송재이가 검사실로 들어간 뒤 설영준과 도정원은 각자 단서를 찾으러 움직였기에 설영준은 다시 돌아와 송재이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러나 도정원은 쪽지에 적힌 약물 이름을 보면서 조사하기 시작했다.설영준은 초조한 얼굴로 검사실 밖에서 송재이를 기다렸다.“재이야, 꼭 버텨야 해.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시간이 1분 1초 흘러갔다. 설영준은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졌다. 머릿속에 송재이의 미소와 웃음소리, 그리고 함께 보냈던 즐거운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기도했다. 송재이가 무사히 나오길 바라며 말이다.설영준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재이야,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해? 네가 그때 엄청 찬란한 미소를 지었었어. 네 찬란한 웃음이 온통 어둠뿐이던 내 세상을 환하게 빛내주었지. 그때 널 지켜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지금은...”바로 이때 문이 스르륵 열리고 의사가 나왔다. 설영준은 바로 다가가 물었다.“선생님, 재이는 어때요?”“저희가 최선을 다해 독이 퍼지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희귀한 독에 중독된 거라 독 분석하고 해독제를 만드는 데 시간이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8화 단서

    송재이의 말은 청천벽력이었다. 도정원과 도진욱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수사관이 빠르게 다가와 상태를 살폈다. 그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되어 얼른 입을 열었다.“저희가 바로 의사를 불러오겠습니다.”도정원은 빠르게 긴급 호출 벨을 누르면서 송재이를 부축한 채 옆에 있던 의자에 조심스럽게 앉혔다.의자에 앉히자마자 도정원은 초조한 마음으로 송재이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재이야, 조금만 버텨줘. 의사가 금방 도착할 거야.”도진욱은 다소 복잡한 감정이 담긴 얼굴로 송재이를 보았다. 속으로 뭔가 갈등하고 있는 듯했다.그러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독에 중독됐다고? 그럴 리가... 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예리한 수사관은 그런 도진욱의 상태를 눈치채고 바로 심문했다.“도진욱 씨, 이 상황에 관해 설명하세요. 송재이 씨가 왜 갑자기 중독된 거죠?”도진욱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전... 전 정말로 모릅니다. 제가 왜 제 조카를 죽이겠습니까?”바로 이때,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오며 송재이를 살펴보았다.의사가 엄숙하게 말했다.“아무래도 정밀 검사를 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송재이는 급하게 검사받으러 갔다. 도정원과 도진욱이 그 뒤를 따라갔다. 수사관은 묵묵히 이 상황을 지켜보았다. 머릿속에 이미 사건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다.도정원이 밖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송재이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진욱은 홀로 구석으로 간 뒤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안에 있는 핸드폰만 불안한 마음으로 만지작거렸다.그러더니 낮은 목소리로 누군가와 통화했다.“나야. 일이 복잡하게 됐어. 송재이가 갑자기 독에 중독되어서 경찰이 개입하게 되었어. 나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하지만 우린 지금 반드시 움직여야 해.”전화기 너머로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우리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군요. 일단 절대 증거를 찾게 해서는 안 돼요. 안 그러면 우리 모두 끝장나게 되니까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7화 중독

    화가 난 도정원은 이를 빠득 갈았다.“그게 무슨 의미죠? 설마 아버지 병이 당신과 연관이 있다는 건가요?”정체 모를 남자는 웃음을 터뜨렸다.“곧 알게 될 거야. 참, 도진욱. 가문의 이익을 위해 네 동생 행복을 희생했었지? 이젠 네가 희생할 차례야.”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송재이와 도정원은 고개를 돌려 도진욱을 보며 설명을 바랐다.그러자 도진욱이 말했다.“난... 난 정말 몰랐어. 그때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그때 내가 그런 선택을 한 건 인정해. 하지만 전부 가문을 위해서였어. 난 너희들을 해칠 생각한 적 없다고.”송재이는 무력감이 들었다. 거짓과 배신으로 가득한 이 가족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절망에 빠진 송재이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 대체 누굴 믿어야 하는 거예요?”도정원도 다소 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쥐며 감정을 갈무리하려고 애를 썼다.“가문의 이익을 위해서 그러셨다고요. 우리 도씨 가문이 언제부터 이익에만 눈멀어 가족을 버리는 가문이 된 거죠?”도진욱의 얼굴엔 죄책감이 가득했다. 그는 힘이 없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원아, 그땐 내 잘못이 맞아. 나도 인정해. 난 내 선택으로 우리 가문이 더 힘이 있는 가문이 될 줄 알았고 가족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 난... 난 정말 미안하구나.”옆에서 듣고 있던 송재이는 막막하면서도 불안했다.“두 사람은 전부 제 가족이에요. 전 대체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송재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그 순간 문밖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서 이 숨 막히는 침묵을 깨버렸다.세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다. 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엄숙한 얼굴로 들어왔다.“안녕하세요. 저희는 경찰서 수사과에서 나왔습니다. 몇 가지 당신들이 조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도정원과 도진욱은 서로 마주 보았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이것이 진상을 알아내는 데 중요한 조사라는 것을“네, 협조하겠습니다.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6화 충격적인 사실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짙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도진욱이 입을 열었다.“그래, 알았다. 너희들한테... 해줄 얘기가 있단다. 네 아버지의 과거와 어머니에 관한 얘기란다.”도정원과 송재이는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의아하면서도 초조했다.“큰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뭔가 알고 계신 거예요?”도진욱은 미간을 찌푸렸다.“곧 도착하니 얼굴을 보면서 얘기하자꾸나. 이 일은 내가 너희들 얼굴을 보면서 직접 말해줘야 할 것 같구나.”전화를 끊은 후 도정원과 송재이는 생각에 잠겼다. 두 사람은 도진욱이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몰랐고 도진욱이 그들에게 해줄 얘기가 그들 가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도진욱이 병원에 도착했다. 그의 얼굴엔 초조함과 죄책감이 담겨 있었다.그는 송재이와 도정원의 얼굴을 보더니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마음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고 있단다. 하지만 더는 너희에게 숨길 수 없을 것 같구나. 너희들이 모르는 사실은 더 많단다.”송재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머리가 어질거렸다.“큰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가 아직도 모르는 비밀이 있는 건가요?”“그래, 그때 당시 나와 네 엄마는 확실히 그런 사이였었지. 하지만 그건 다 지나간 일이란다. 나중에 난 그 삼각관계에 빠지기로 했고 네 엄마랑 네 아빠를 이어주기로 했었지. 그때의 난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단다. 지금까지도 말이야.”송재이와 도정원은 충격받은 얼굴로 도진욱을 보았다. 그가 꺼낸 얘기는 도경욱이 꺼낸 얘기보다 더 충격적이었다.“큰아버지, 정말로... 정말로 그러셨어요?”“나도 알고 있단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과거의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난 아직 살아 있을 때 너희들에게 진실을 말해주고 싶구나.”바로 이때 병실 안에서는 긴급 호출 벨이 울렸다.의사와 간호사들이 급하게 병실로 달려왔고 송재이와 도정원도 얼른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의사는 그들을 보더니 고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5화 마지막 오늘

    송재이는 얼른 도경욱의 손을 꼭 잡았다. 눈물이 그녀의 눈 앞을 가렸다.옆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던 도정원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병실 안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저 일정한 의료 기기 소리만 들려오며 시간이 흘렀다.도경욱은 송재이를 빤히 보았다. 그의 두 눈엔 아쉬움과 죄책감만 남아 있었다.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기 전 꼭 해야 할 말이 있었다.미약한 목소리지만 그는 확고한 어투로 말했다.“재이야, 내 딸. 너에게 꼭 해줄 말이 있단다. 네 출생의 비밀과 네 엄마에 관한 얘기야.”송재이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 그렁그렁 맺힌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아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 엄마가 왜요?”도경욱은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마치 온몸의 힘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이 숨겨둔 진실을 정확하게 말해주기 위해서 말이다.“그때 네 엄마, 그러니까 서지원의 약혼 상대는 내 형이었단다. 네 큰아버지지. 하지만 운명이 장난을 쳤지. 서지원이... 네 엄마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람은 나였단다.”송재이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너무도 충격적인 진실이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출생에 이런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던 거죠?”도정원도 놀란 표정인 것을 보아 처음 알게 된 사실인 것 같았다.도경욱은 다소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네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전부 사실이란다. 난 지원이를 단 한 번도 강요한 적 없었어. 우리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했어. 하지만 그때는 이런 추문을 받아들이지 않던 시절이었지.”송재이는 마음이 복잡했다. 이렇게까지 혼란스러운 감정은 처음이었다.그녀는 이렇게나 갑작스러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아빠, 그럼 대체 왜 일찍 말씀해 주지 않으신 거예요? 왜 그동안 숨기고 계셨던 거예요?”도경욱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송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4화 마지막 만남

    박정후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소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듯한 눈빛으로 박윤찬을 보았다.“그때 내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어. 아주 똑똑하고 예쁘고 착한 사람이었지. 나한테 아주 특별한 사람이기도 했어. 하지만 어머니가... 어머니가 우리 사이를 반대하셨어.”박윤찬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어머니가 왜 반대하셨는데? 어머니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러실 분이 아니잖아.”박정후가 대답했다.“처음엔 나도 이해하지 못했어. 그때의 난 분명 어머니가 그 여자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 또 어쩌면 내가 사랑놀이에 푹 빠져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까 봐 걱정하시는 건 줄 알았어.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전혀 아니었어.”박윤찬은 초조하게 한숨을 내쉬었다.“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어머니가 아무 이유도 없이 반대하실 분은 아니야.”박정후의 낮게 깔린 목소리에선 슬픔이 느껴졌다.“그 여자는 성이 임 씨였어. 임씨 가문은 우리 성씨 가문과 오래전부터 원한이 있었지. 이 원한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거라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어. 두 가문의 후대에도 아주 큰 영향을 주고 있어.”박윤찬은 놀란 모습이었다.“난 임씨 가문에 대해 들어본 적 단 한 번도 없었어. 어머니도 나한테 한 번도 말씀하신 적 없었다고.”박정후가 말했다.“어머니는 이 원한이 시간이 지나면서 잊히길 바라셨던 거야. 하지만 사실상 잊히지 않았지. 임씨 가문과 성씨 가문은 지난 세대에서도 심각한 충돌이 있었어. 두 가문은 사업 경쟁을 벌이다가 더 틀어지게 되었지.”박윤찬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사업 경쟁이라니? 그게 언제 일인데 아직도 신경 쓰고 있다는 거야?”“그래, 하지만 지난번 경쟁에서 임씨 가문은 파산당하게 되었지. 그 가문 어르신도 결국 그때 세상을 뜨게 되신 거야. 임씨 가문에서는 우리 성씨 가문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을 벌여 그런 비극을 만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박윤찬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러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3화 떠난 이유

    박정후는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보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더니 생각에 잠겨 버렸다.그는 나직하게 말했다.“제가 멀리 떠나기로 결정한 건 저와 윤찬이 사이에... 오해가 있기 때문이에요. 저랑 윤찬이 사이에 갈등이 있었는데 전 제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윤찬이 곁을 떠났죠. 하지만 혈연관계는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거잖아요.”묵묵히 박정후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있던 송재이는 박정후의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고스란히 느꼈다.송재이가 말했다.“가족 사이에 확실히 갈등이 생길 수도 있죠.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서로 항상 응원하고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죠.”설영준은 진지한 얼굴로 박정후를 보았다.“정후 씨는 정의를 위해, 동생을 위해 이미 많은 것을 했으니 윤찬 씨도 이해해줄 거예요.”장주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맞아요. 정후 씨가 한 모든 것을 박윤찬 씨가 알게 된다면 분명 아주 자랑스러워할 거예요.”박정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돌려 확고함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그랬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돌아온 것도 윤찬이에게 뭐라도 도움이 되어주고 싶어서였어요. 그리고 윤찬이와 화해할 기회도 있었으면 좋겠네요.”그들을 도와준 정체 모를 인물은 바로 박정후였다.그는 마음이 너무도 복잡했다.이번 일로 동생과 무너진 관계를 회복하고 다시 화목하게 지내고 싶었다.박정후가 말했다.“관계를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전 기다릴 수 있어요. 윤찬이가 저한테 기회만 준다면 형으로서 책임을 다할 거예요.”그는 확고한 눈빛으로 말했다. 박윤찬과의 거리감을 하루아침에 줄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다시 창밖을 보았다. 꼭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다.“전 반드시 윤찬이한테 찾아가야 해요.”박정후는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윤찬이가 저를 만나고 싶어 하든 말든 상관없이 알려주고 싶어요. 전 단 한순간도 윤찬이를 포기한 적 없다고 말이에요.”송재이는 박정후의 손을 잡아

  • 그와의 결혼이 헛된 망상이었을까   제652화 그의 정체

    설영준과 송재이는 서도재의 비웃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방 안의 상황을 살펴본 뒤 도망칠 길이나 반격할 기회가 없는지 파악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조용히 숨어서 행동을 개시하려고 했다.설영준은 차갑게 피식 웃었다.“서도재, 이러면 네가 정말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네가 저지른 범죄는 이미 전부 드러났어. 밖엔 경찰들이 깔려 있다고.”서도재의 웃음이 사라지고 표정이 굳어졌지만 빠르게 다시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경찰이 깔려 있다고? 넌 내가 아무 준비도 하지 않은 거로 보이나 봐? 이 아지트는 아주 단단하게 만들었거든. 너희들은 도망칠 수 없어.”송재이는 설영준이 방 한구석에 있는 창문에 힐끗 본 것을 발견하곤 바로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그녀는 일부러 서도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그럼 우린 여기서 그쪽과 시간을 끌 수밖에 없겠네요. 그쪽 아지트가 먼저 무너질지 아니면 밖에 경찰들이 먼저 쓰러지게 될지 한 번 지켜보자고요.”서도재는 손을 들어 올리며 부하들에게 준비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하지만 이때 방 안의 불빛이 꺼지더니 어둠이 내려앉았다.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은 확성기로 말했다.“꼼짝 마!”설영준과 송재이는 어둠 속에서 빠르게 창문이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설영준은 있는 힘껏 발로 창문을 깨버렸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바깥엔 이미 에어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서도재는 갑자기 어두워진 주위에 당황스러워하면서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불빛이 다시 켜졌을 땐 설영준과 송재이는 이미 사라졌다.그는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쫓아가! 반드시 두 사람 내 앞에 잡아 와!”그러나 서도재의 부하들이 아지트에서 나가자마자 이미 밖을 포위하고 있는 경찰들을 발견하게 되었다.알고 보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이 미리 익명으로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경찰은 확성기로 말했다.“안에 있는 사람 모두 들으세요. 당신들은 포위되었습니다. 당장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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