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 급할 때만 오빠고 불리하면 전화기 꺼놓고 잠수타고. 누가 이딴 식으로 인간관계를 처리하라고 했어?”릴리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워낙 철면피인 육경서는 전혀 변함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나도 사정이 있어. 주리가 널 만나기 싫다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거역해? 그리고 오늘 같은 상황에서는 총구를 밖으로 겨눠야지. 사적인 감정은 날 잡아서 풀도록...”“헛소리 그만하고 무슨 일이야?”입을 삐죽거리며 릴리가 물었다.“주리 오피스텔 앞에 기자와 팬들로 꽉 찼어. 우리가 나타나지 않으면 절대 안 갈 것 같은데 네가 다른 곳으로 좀 유인해 봐.”릴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이내 전화를 끊고 문을 열고 나가려고 보니 익숙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신하균이 노크하려던 참이었다.“왜요?”릴리가 묻자 신하균이 답했다.“주리 찾으러 가려고?”릴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하균이 말했다.“함께 가.”검은색 SUV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곧장 신주리의 오피스텔로 향했다.오피스텔 주차장 입구에 카메라를 든 기자들이 출구를 물샐틈없이 막고 있었다.차가 천천히 다가가면서 릴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격렬한 쟁론 소리를 들었다.“몇 신데 아직도 안 나와? 아직 자고 있을까? 오늘 밖에 안 나오는 거 아니야?”“아니야. 육경서가 이미 대응했는데 숨길 게 뭐가 있어?”“그렇겠지? 육경서의 성격대로라면 대범하게 승인했으면 인터뷰 따위를 겁내겠어?”“비록 첫 기사는 아니지만 인터뷰만 따낼 수 있다면 가치가 있어.”“양측 팬덤이 무너졌는데 탈덕이 거의 없는 것으로 봐서 아직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그런데 왜 아직도 안 나오지? 다른 곳으로 빠지지 않았을까?”“아니야. 신주리 차가 아직 주차장에 있어. 주차장에도 동료가 지키고 있어.”그 옆을 지나면서 릴리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확신에 차 있는 그 사람을 보았다.자그마한 키에 두 눈은 별처럼 빛났으면 아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젠장, 이렇게 잘 알고 있다고? 사생팬인가?
지하 주차장에서 망보고 있던 사람이 저쪽에서 전해 온 본인이 맞다는 확답을 듣고 이내 자기 차를 타고 쫓아갔다.오늘 반드시 두 사람을 붙잡고 철천지원수 컨셉으로 팬을 속인 기분이 어떤지 인터뷰하고 말리라고 결심했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확연하게 눈에 뜨이는 람보르기니 한 대가 담대하게 그들의 뒤를 따라 서서히 오피스텔에서 빠져나와 차량 행렬에 끼어드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검은색 SUV가 지하 주차장에서 빠져나오자마자 어떤 겁 없는 자가 차로 그들의 앞길을 막는 바람에 급정거하고 말았고 막는 자만 없다면 이대로 도망갈 예정이었다.그들은 두 사람의 허둥대는 모습으로 신주리, 육경서임을 더욱 확신했고 이내 차를 에워싸고 창문을 마구 두드리며 카메라를 들고 끝없이 입술을 팔락이었다.조수석에 앉았던 릴리는 이 광경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며 생각했다.‘연예인도 극한 직업이었어.’곁눈으로 람보르기니가 이내 뒤따라 나와 도로 위의 차량에 합류되어 서서히 종적을 감추는 것을 본 릴리는 허둥대는 시선을 거두고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곁에 앉은 신하균에게 말했다.“이 정도면 된 것 같아요.”그러자 신하균은 창문을 내리며 선글라스를 벗더니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제일 앞에 섰던 사람이 당장에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물었다.“누구세요? 육경서는요?”“무슨 육경서요? 어느 언론사 기자예요? 거주지역에 집거해 소란 피우고 사회 공공질서를 방해한 죄로 경찰에 신고할까요?”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있지 않지만 강력한 파워가 깃들어 있었다.제일 앞에 서 있던 기자의 얼굴빛이 변하면서 조수석과 뒷자리를 휙 쓸어보더니 대충 미안하다고 사과하고는 떠났다.그 사람이 떠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투덜대며 흩어졌다.“뭐 하는 짓이야?”“어떤 등신이 육경서라고 했어?”“여태까지 기다렸는데 도망간 거 아니야?”“조금 전에 차가 여러 대 빠져나갔어. 그중에 두 사람이 있는 게 분명해.”“짜증 나!”“...”실망에 빠진 한 무리 사람을 보며 릴리는
그 말에 릴리는 갑자기 신하균이 꼴 보기 싫어졌다. 릴리는 방금 신하균의 결혼하자는 말에 저도 모르게 순간 설레었다. 주변 동년배에서 결혼한 사람이 드물었고 현재 강유리 한 명뿐이지만 그녀의 결혼은 대다수 여자의 로망이라고 할 수 있다.지금의 강유리와 육시준은 부부라고 하기보다 사랑에 빠진 커플과 같았고 혼인신고를 마치고 연애하는 것도 꽤나 낭만적인 것 같았다..신하균의 결혼 얘기에 릴리는 순간 이성을 잃었고 그는 대답도 듣기 전에 연애 절차를 차곡차곡 밟아가자는 건의를 제기했다.그래서 말인데 연애란 것은 원래 달콤하고 즉흥적이어야하는데 신하균이 생각하는 연애는 절차를 밟아야 하는 체계적인 일이었다. 갑자기 릴리는 화딱지가 났다.“꼴 보기 싫으니까 차에서 내려요.”릴리는 자기가 한순간 가슴이 설렜다는 것이 멋쩍어서 화가 난 것도 있지만 너무나도 직설적인 신하균의 표현 방식에 더욱 화가 났다.릴리는 그제야 신주리가 왜 두 사람의 연애를 반대하는지 알 것 같았다.바로 이때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뀌었고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무슨 일인지 몰라 엑셀을 밟으며 억울한 듯 말했다. “차로에서 못 내려.”“갓길로 빠져서 차 멈추고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요.”릴리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신하균은 아직도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갑자기 무슨 변덕이지?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야.’의문을 잔뜩 안은 채 신하균은 검은색 SUV를 갓길에 세우고 운전석에 한참 앉아 있었다. 그러더니 안 되겠다싶어 대화를 시도하려고 고개를 돌려보니 릴리가 안전벨트를 풀고 자기 쪽으로 다가오자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그사이에 딸각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몸에 채워졌던 안전벨트가 풀렸고 릴리의 손이 그를 넘어 운전석의 문을 밀어서 열어젖히더니 그를 밖으로 힘껏 밀어버리고는 이내 운전석으로 넘어와 문을 닫고 쌩하니 가버렸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숙련된 모습을 봐서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신하균은 순간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그가 처음 버
교통체증이 지난 시간이라 도로 위에 차가 많지 않았고 신주리도 진짜로 함께 죽을 마음이 없는지 적어도 육경서의 시선을 막지 않았고 단순한 화풀이였다. 육경서는 한 손으로 신주리의 허리를 안아 우격다짐으로 자리에 앉혀놓고 다른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니 컨트롤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다.그러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와 빈정대며 말했다.“좋아. 그럼 우리 동반 자살하는 거야?”“내가 미쳤다고 너와 동반자살을 해? 꺼져.”역시 이 수법이 효과가 좋아 신주리는 그의 뒤통수를 확 밀치더니 귀찮은 듯 손을 내렸지만 입은 쉴 틈이 없었다. “다 네 탓이야. 기어코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해서 이 사단이 일어난 거잖아. 맨날 먹는 것밖에 몰라. 전부 찍혀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야?”“우리가 실제로 커플이긴 하잖아. 불륜도 아니고 뭐가 겁나?”“누가 너하고 커플이야?”“신주리 너...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커플인 걸 다 알거든. 나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네가 발뺌한다고 될 수 있을 거 같아?”“...”신주리는 말문이 떡하니 막히면서 차 안을 휙 둘러보더니 만일 이대로 육경서를 목 졸라 죽인다면 사고가 날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육경서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길옆의 나무나 혹은 꽃을 깔아뭉갤까 봐 걱정되었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지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조수석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떨군 신주리의 눈이 예쁜 속눈썹에 가려 표정을 읽을 수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자 그 속에 있는 검은색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해졌다. 오피스텔에서 나올 때부터 검은색 승용차가 뒤따르던 기억이 나면서 현재 달리고 있는 직진차로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뒤따라오던 승용차는 앞에 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자 잠깐 멈추더니 주저 없이 바로 잇따라 방향을 틀자 육경서는 그들이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
의외로 육경서가 도발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신주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러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잖아.’“어젯밤도 다 내 탓이야. 나 때문에 파파라치한테 걸려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 관계가 들통나게 했어.”육경서의 말에 신주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렇지만도 않아. 내 집인데 내가 마땅히 경서 씨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했어.”“그건 그래.”육경서가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신주리의 말에 찬성했다.“갑자기 내 옷을 찢는 바람에 전 세계 사람들이 나의 완벽한 복근을 다 봐버렸잖아.”‘서로 예의를 차리는 순서가 아니야? 갑자기 이건 뭐지?’“커튼이 있었고 옆모습만 찍혔어. 복근은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어.”신주리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그러자 육경서가 이내 말했다.“영상을 꼼꼼하게 봤네.”신주리는 입술을 깨물며 부인하지 않았다.“꼼꼼하게 봤으면 그때 일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지?”육경서는 낮은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는 것으로 보아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신주리의 표정이 어색해지더니 그의 미세한 행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기억하면 어쩔 거야? 너도 방금 말했잖아. 우리는 커플이라고.”‘커플 사이에 복근을 만진 게 무슨 대수라고?’그러더니 신주리가 용기 내 한마디 덧붙였다.“가짜 커플도 커플이야. 봤어. 만졌어. 키스했어. 어쩔 거야?”육경서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우리 주리가 다 기억하고 있었네.”신주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JL빌라 대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고급 별장 구역이라 외래차량은 진입할 수 없어 뒤따르던 검은색 승용차가 대문 앞에 막혔다.그랬더니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유리창을 내리며 말했다.“육경서 친구예요. 앞에 들어간 차와 동행이에요.”경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가로막고 육씨 가문에 전화했지
차가 별장 구역에 들어서자 그제야 육경서는 안심하며 속도를 점차 줄이더니 서서히 강유리 별장 앞에 멈추고는 지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은 강유리 신혼집이라는 것을 신주리도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비밀 결혼이었고 그 뒤에는 남편이 육시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식으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육경서가 숙련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주리의 표정이 미묘했다.“평소 이곳에 자주 와?”“처음에는 형과 함께 이곳에 살았어. 형이 결혼하고 나서 형수 명의로 된 다음에는 거의 안 왔어.”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사실은 육시준이 육경서가 걸리적거린다고 오지 못하게 했다. 신주리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물었다.“그래서 그전에는 네 형을 도와 내 친구를 속였던 거야?”육경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묵묵부답이었다.‘묵은 장부를 들추면 재미가 없지.’자칫 잘못하다 자기한테 날벼락이 떨어지는 날이면 억울해서 죽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어떤 차 좋아해? 지하 주차장에 가서 골라 봐. 내 차가 거의 다 여기에 있어.”육경서는 억지로 화제를 바꿨지만 그래도 신주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쌤통이야. 유리한테 밉보여서 그 뒤부터 이곳에 못 왔지? 맞지?”자기 친구가 얼마나 뒤끝이 있는 사람인 줄 신주리는 잘 알고 있었다.“아니야. 형이 형수한테 잘 보이기 위해 두 사람만 있고 싶다고 나를 내쫓았어.”육경서는 정색하며 말했다.쫓겨난 것은 확실하지만 강유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었고 특히 형수 절친 앞이라 말을 조심해야 한다.신주리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말했다.“...그래?”“당연하지.”신주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할 때 인터폰이 울리자 두 사람은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집이 빈 지 오래되었는데 그들이 오자마자 누가 찾아왔을까?육경서가 재빠르게 달려가 버튼을 누르니 경비 복장을 한 사람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안녕하세요. 방금 어떤 분이 도련님 친구라면서 통행을 허락해달라고
“사생팬들이 문제 있어. 함부로 사진 찍어서 추측 기사를 쓰면 어떡해? 일단 경비 보고 내쫓으라고 해야겠어.”겨우 안심했던 육경서는 다시 긴장해졌다. 지금 급히 갈 곳도 없고 해 신주리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는지 거실 소파에 기대어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커플이라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기 바라는 거 아니었어?육경서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신주리가 그날 밤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백 퍼센트 확신했다.그리고 그날 밤 육경서의 농담 반 진담 반인 고백과 진짜로 사귀자고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사실 육경서는 오전 내내 신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고 있었고 추측 근거가 바로 어젯밤 일을 그녀가 제대로 기억하는지였다. 만일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기억하면서도 회피한다면 그것 또한 골치 아픈 일이었다. 어젯밤 모든 일을 부인하고 사귀자고 승낙한 것을 후회하는 걸까?육경서는 답답해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지만 맑은 정신에 신주리가 거절할까 봐 더욱 두려웠다. 지금 신주리가 주동적으로 화제를 꺼냈고 더욱이 반문하는 말투인지라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네 생각에는 내가 야비한 수법으로 널...”잠깐 멈추고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더니 다시 물었다.“협박했다고 생각해?”그러자 신주리는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아니었어? 전에 사진으로 날 협박하려고 했잖아.”그 말에 육경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육경서가 처음에 신주리한테 친근하게 대했을 때 그녀는 위협하냐고 물었었고 만일 위협하려 한다면 사진이라도 찍어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농담이야.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별이 안 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사건을 폭로한 파파라치도 내가 고용했다고 하지 그래?”육경서가 화를 버럭 내자 신주리는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혹시 정말... 정말 네가...”“허튼소리 하지 마. 내가 널 목 졸라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낮은 소리로 쌀쌀맞게 말했다. 신주리는
JL빌리지 단지가 매우 크고 대문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검은색 승용차는 미행에 실패했고 단지 내에서 두서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별장 마당에 주차된 람보르기니를 발견하고 다가가 보니 육경서가 방금 운전했던 그 차량이었다.그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의자 밑에 숨겨두고는 별장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JL빌리지 메인 건물이었어? 신주리가 역시 재벌 부인 절친답게 이렇게 비싼 별장에 자유자재로 드나드는구먼.”남자는 마치 자기 영광인 듯 의기양양했지만 말이 끝나기 바쁘게 웃음이 싹 걷히더니 이내 부정해 버렸다. “아니야. 저건 신주리 차가 아니고 육경서 차야.”사생팬은 자기 나름의 연예인 뒷조사하는 루트가 있었다.오전에 신주리와 육경서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그는 육경서의 모든 자료를 조사했고 저 람보르기니는 육경서의 팬이 전에 찍어 올린 적이 있었다. 육경서가 오래전에 타고 다녔던 차량이다. 만일 지금의 육경서라면 람보르기니를 탈 재력이 되지만 무명 시절부터 이런 고급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어 모든 인맥을 동원해 육경서가 흑역사가 있는지 캐보려 했다. 일단 캐내기만 하면 연예인 생활을 끝내게 해주려 했지만 알아본 결과 확실히 육경서 명의였고 더욱이 저건 한정판이라 부자라고 해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여 기자들이 신하균을 쫓아갈 때 그만 차량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이 차량을 미행하기로 했고 신주리와 육경서가 반드시 이 차에 타고 있다고 확신했다. 두 사람은 역시 함께 있었고 그를 따돌리기 위해 JL빌리지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별장 경비원이 그의 차량을 쉽게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경비가 허술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육경서의 이름을 대자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통행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주리가 아니라 육경서란 말인가?’‘육경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고급 별장에 드나들 수 있단 말인가?’‘육경서는 육시준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강유리와 관계가 있는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