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체증이 지난 시간이라 도로 위에 차가 많지 않았고 신주리도 진짜로 함께 죽을 마음이 없는지 적어도 육경서의 시선을 막지 않았고 단순한 화풀이였다. 육경서는 한 손으로 신주리의 허리를 안아 우격다짐으로 자리에 앉혀놓고 다른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으니 컨트롤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다.그러더니 이내 장난기 가득한 모습으로 돌아와 빈정대며 말했다.“좋아. 그럼 우리 동반 자살하는 거야?”“내가 미쳤다고 너와 동반자살을 해? 꺼져.”역시 이 수법이 효과가 좋아 신주리는 그의 뒤통수를 확 밀치더니 귀찮은 듯 손을 내렸지만 입은 쉴 틈이 없었다. “다 네 탓이야. 기어코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해서 이 사단이 일어난 거잖아. 맨날 먹는 것밖에 몰라. 전부 찍혀버렸으니 이제 어떻게 할 거야?”“우리가 실제로 커플이긴 하잖아. 불륜도 아니고 뭐가 겁나?”“누가 너하고 커플이야?”“신주리 너... 지금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가 커플인 걸 다 알거든. 나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네가 발뺌한다고 될 수 있을 거 같아?”“...”신주리는 말문이 떡하니 막히면서 차 안을 휙 둘러보더니 만일 이대로 육경서를 목 졸라 죽인다면 사고가 날지 진지하게 생각했다. 육경서는 죽으면 그만이지만 길옆의 나무나 혹은 꽃을 깔아뭉갤까 봐 걱정되었다. 순간 주위가 고요해지자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그녀를 쳐다보았다.조수석에 기대어 앉아 고개를 떨군 신주리의 눈이 예쁜 속눈썹에 가려 표정을 읽을 수 없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입술을 깨물며 무슨 말을 하려던 순간 저도 모르게 백미러를 힐끗 쳐다보자 그 속에 있는 검은색 승용차를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해졌다. 오피스텔에서 나올 때부터 검은색 승용차가 뒤따르던 기억이 나면서 현재 달리고 있는 직진차로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뒤따라오던 승용차는 앞에 차가 갑자기 방향을 틀자 잠깐 멈추더니 주저 없이 바로 잇따라 방향을 틀자 육경서는 그들이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확
의외로 육경서가 도발하지 않고 진지하게 말했다.“미안해. 내가 생각이 짧았어.”신주리는 입을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러면 내가 또 할 말이 없잖아.’“어젯밤도 다 내 탓이야. 나 때문에 파파라치한테 걸려 무방비 상태에서 우리 관계가 들통나게 했어.”육경서의 말에 신주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렇지만도 않아. 내 집인데 내가 마땅히 경서 씨 사생활을 보호해줘야 했어.”“그건 그래.”육경서가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신주리의 말에 찬성했다.“갑자기 내 옷을 찢는 바람에 전 세계 사람들이 나의 완벽한 복근을 다 봐버렸잖아.”‘서로 예의를 차리는 순서가 아니야? 갑자기 이건 뭐지?’“커튼이 있었고 옆모습만 찍혔어. 복근은 카메라에 잡히지도 않았어.”신주리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그러자 육경서가 이내 말했다.“영상을 꼼꼼하게 봤네.”신주리는 입술을 깨물며 부인하지 않았다.“꼼꼼하게 봤으면 그때 일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겠지?”육경서는 낮은 목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운전대를 잡은 손을 저도 모르게 꽉 움켜쥐는 것으로 보아 그의 불안한 마음을 알 수 있었다.신주리의 표정이 어색해지더니 그의 미세한 행동을 발견하지 못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기억하면 어쩔 거야? 너도 방금 말했잖아. 우리는 커플이라고.”‘커플 사이에 복근을 만진 게 무슨 대수라고?’그러더니 신주리가 용기 내 한마디 덧붙였다.“가짜 커플도 커플이야. 봤어. 만졌어. 키스했어. 어쩔 거야?”육경서는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우리 주리가 다 기억하고 있었네.”신주리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더니 JL빌라 대문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고급 별장 구역이라 외래차량은 진입할 수 없어 뒤따르던 검은색 승용차가 대문 앞에 막혔다.그랬더니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유리창을 내리며 말했다.“육경서 친구예요. 앞에 들어간 차와 동행이에요.”경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일단 가로막고 육씨 가문에 전화했지
차가 별장 구역에 들어서자 그제야 육경서는 안심하며 속도를 점차 줄이더니 서서히 강유리 별장 앞에 멈추고는 지문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곳은 강유리 신혼집이라는 것을 신주리도 알고 있지만 처음에는 비밀 결혼이었고 그 뒤에는 남편이 육시준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식으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육경서가 숙련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주리의 표정이 미묘했다.“평소 이곳에 자주 와?”“처음에는 형과 함께 이곳에 살았어. 형이 결혼하고 나서 형수 명의로 된 다음에는 거의 안 왔어.”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사실은 육시준이 육경서가 걸리적거린다고 오지 못하게 했다. 신주리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물었다.“그래서 그전에는 네 형을 도와 내 친구를 속였던 거야?”육경서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묵묵부답이었다.‘묵은 장부를 들추면 재미가 없지.’자칫 잘못하다 자기한테 날벼락이 떨어지는 날이면 억울해서 죽고 싶을 심정일 것이다. “어떤 차 좋아해? 지하 주차장에 가서 골라 봐. 내 차가 거의 다 여기에 있어.”육경서는 억지로 화제를 바꿨지만 그래도 신주리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쌤통이야. 유리한테 밉보여서 그 뒤부터 이곳에 못 왔지? 맞지?”자기 친구가 얼마나 뒤끝이 있는 사람인 줄 신주리는 잘 알고 있었다.“아니야. 형이 형수한테 잘 보이기 위해 두 사람만 있고 싶다고 나를 내쫓았어.”육경서는 정색하며 말했다.쫓겨난 것은 확실하지만 강유리 때문에 쫓겨난 건 아니었고 특히 형수 절친 앞이라 말을 조심해야 한다.신주리는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말했다.“...그래?”“당연하지.”신주리와 함께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할 때 인터폰이 울리자 두 사람은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았다.집이 빈 지 오래되었는데 그들이 오자마자 누가 찾아왔을까?육경서가 재빠르게 달려가 버튼을 누르니 경비 복장을 한 사람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안녕하세요. 방금 어떤 분이 도련님 친구라면서 통행을 허락해달라고
“사생팬들이 문제 있어. 함부로 사진 찍어서 추측 기사를 쓰면 어떡해? 일단 경비 보고 내쫓으라고 해야겠어.”겨우 안심했던 육경서는 다시 긴장해졌다. 지금 급히 갈 곳도 없고 해 신주리는 갑자기 흥미가 생겼는지 거실 소파에 기대어 여유작작한 모습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우리가 커플이라는 것을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알기 바라는 거 아니었어?육경서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신주리가 그날 밤 일을 기억하고 있다고 백 퍼센트 확신했다.그리고 그날 밤 육경서의 농담 반 진담 반인 고백과 진짜로 사귀자고 했던 말도 기억하고 있었다.사실 육경서는 오전 내내 신주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고 있었고 추측 근거가 바로 어젯밤 일을 그녀가 제대로 기억하는지였다. 만일 기억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기억하면서도 회피한다면 그것 또한 골치 아픈 일이었다. 어젯밤 모든 일을 부인하고 사귀자고 승낙한 것을 후회하는 걸까?육경서는 답답해 당장이라도 물어보고 싶지만 맑은 정신에 신주리가 거절할까 봐 더욱 두려웠다. 지금 신주리가 주동적으로 화제를 꺼냈고 더욱이 반문하는 말투인지라 육경서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네 생각에는 내가 야비한 수법으로 널...”잠깐 멈추고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하더니 다시 물었다.“협박했다고 생각해?”그러자 신주리는 눈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아니었어? 전에 사진으로 날 협박하려고 했잖아.”그 말에 육경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육경서가 처음에 신주리한테 친근하게 대했을 때 그녀는 위협하냐고 물었었고 만일 위협하려 한다면 사진이라도 찍어 증거를 남겨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농담이야.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구별이 안 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 사건을 폭로한 파파라치도 내가 고용했다고 하지 그래?”육경서가 화를 버럭 내자 신주리는 문득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혹시 정말... 정말 네가...”“허튼소리 하지 마. 내가 널 목 졸라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낮은 소리로 쌀쌀맞게 말했다. 신주리는
JL빌리지 단지가 매우 크고 대문에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검은색 승용차는 미행에 실패했고 단지 내에서 두서없이 돌아다니다 어느 별장 마당에 주차된 람보르기니를 발견하고 다가가 보니 육경서가 방금 운전했던 그 차량이었다.그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의자 밑에 숨겨두고는 별장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JL빌리지 메인 건물이었어? 신주리가 역시 재벌 부인 절친답게 이렇게 비싼 별장에 자유자재로 드나드는구먼.”남자는 마치 자기 영광인 듯 의기양양했지만 말이 끝나기 바쁘게 웃음이 싹 걷히더니 이내 부정해 버렸다. “아니야. 저건 신주리 차가 아니고 육경서 차야.”사생팬은 자기 나름의 연예인 뒷조사하는 루트가 있었다.오전에 신주리와 육경서의 열애설이 터졌을 때 그는 육경서의 모든 자료를 조사했고 저 람보르기니는 육경서의 팬이 전에 찍어 올린 적이 있었다. 육경서가 오래전에 타고 다녔던 차량이다. 만일 지금의 육경서라면 람보르기니를 탈 재력이 되지만 무명 시절부터 이런 고급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어 모든 인맥을 동원해 육경서가 흑역사가 있는지 캐보려 했다. 일단 캐내기만 하면 연예인 생활을 끝내게 해주려 했지만 알아본 결과 확실히 육경서 명의였고 더욱이 저건 한정판이라 부자라고 해서 구입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여 기자들이 신하균을 쫓아갈 때 그만 차량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에 이 차량을 미행하기로 했고 신주리와 육경서가 반드시 이 차에 타고 있다고 확신했다. 두 사람은 역시 함께 있었고 그를 따돌리기 위해 JL빌리지로 들어갔다. 조금 전에 별장 경비원이 그의 차량을 쉽게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경비가 허술하다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육경서의 이름을 대자 아무 생각 없이 그를 통행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 자주 드나드는 사람은 주리가 아니라 육경서란 말인가?’‘육경서가 무슨 재주로 이런 고급 별장에 드나들 수 있단 말인가?’‘육경서는 육시준과 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강유리와 관계가 있는
상당히 저기압인 육경서의 표정에 강덕훈은 감히 다가가지 못하고 쉬는 틈을 타 절친 단체방에 물음을 던졌다.[연예계 두 탑의 열애 기사가 터졌어. 그런데 두 사람이 싸웠는지 어떤 사람이 엄청 화가 나 있어. 대체 무슨 영문이야? @신주리]강유리: [누가 화 났어? 뭐 때문에? 상세하게 말해 봐.]조보희: [너 휴가 아니야? 요즘 단체방에 자꾸 나타나던데 육 대표가 뭐라 안 해?]강유리: [해외에 있어도 손에서 일을 놓을 수 없어. @강덕훈, 빨리 말해. 시간이 없어!]강덕훈: [육경서가 화 났는데 이유를 모르겠어.]강유리: [빨리 알아보고 수시로 보고해.]강덕훈: [넵. 사모님.]소안영: [적발할 게 있어. 두 사람 반칙 아니야? 영상 봤는데 와... 장난아니었어. 나는 내가 심한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전혀 거리낌 없이 옷도 막 찢었어.]도희: [늦게 와서 미안해. 요즘 바빠서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는데 누가 설명 좀 해줄래?]릴리: [주리 언니하고 경서 오빠의 비밀 연애가 들통났어. 상세한 건 아래 내용 참고.]릴리: [영상 링크.]도희: [난 촌놈이라 그런지 이런 게 완전 좋아. 후속은 없어?]릴리: [그건 유료야.]도희: [...사랑이 식었어.]평소에는 쥐 죽은 듯한 단체방이 이렇게 큰 파문이 생길 때만 시끌법석했다. 주요하게는 오전 내내 누구도 신주리 본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추측기사만 난무했고 누가 먼저 입을 여니 다들 뒤따라 머리를 내밀었다.당사자만 제외하고는...하여 강 감독은 더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땅거미가 지고 육경서의 휴가가 끝나려 할 때 유강 엔터 관계자가 도착했다고 조수가 알려줬다. 그러자 강덕훈은 프로 정신이고 뭐가 다 집어치우고 머릿속에 절친인 신주리의 행복밖에 없어 그 자리서 선포했다.“야식 먹으면서 30분 휴식 연장.]강 감독의 돌발 행동에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서로 둘러보았지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육경서는 강덕훈을 싸늘하게 노려보면서 불쾌한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나머지 몇
“우리 헤어지자. 넌 더 이상 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어.”23살 생일날, 케이크 앞에서 올해 천강이랑 결혼하게 해주세요라는 소원을 빌고난 지 5분도 지나지 않은 강유리가 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이다.휴대폰을 바라보던 강유리가 미간을 찌푸렸다.‘얘가 갑자기 왜 이러지? 3년 동안 롱디라서 많이 섭섭했나? 그게 미안해서 금전적으로 어떻게든 뒷바라지 해줬던 건데. 그리고 그 동안 한 번도 이런 말 한 적 없었잖아.’일방적인 이별 통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오랜 롱디에 지친 남자친구의 귀여운 투정 정도라고 생각했기에 가장 빠른 항공편으로 귀국했다.당일 밤 11시.‘내가 자길 위해서 특별히 귀국했다는 걸 알면 아마 깜짝 놀라겠지?’서프라이즈를 제대로 해주기 위해 강유리는 기나긴 채팅기록을 뒤져 언젠가 그가 알려주었던 도어락 비밀번호를 알아냈다.“삑삑, 삐리릭.”문이 열리고...트렁크를 살며시 내려둔 채 살금살금 2층으로 올라가던 강유리는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남자는 첫사랑 절대 못 잊는다던데. 이렇게 쉽게 헤어지는 거야?”“뭐래. 내 첫사랑은 너야. 강유리 걔는... 어디까지나 돈 때문에 좋아하는 척 하는 거였다고. 우리가 애도 아니고. 플라토닉 연애라니. 하여간 더럽게 비싸게 굴어요.”“뭐야. 그럼 스킨십하려고 나랑 만난다는 거야?”“자기도 즐겨놓고 왜 이래. 응?”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점점 야릇하게 변하고...밖에서 이 모든 걸 듣고 있던 강유리는 주먹을 꽉 쥔 채 천천히 방으로 다가갔다.역시나 살짝 열린 문틈으로 서로 뒤엉킨 남녀의 모습이 보이고... 강유리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냈다.“찰칵.”휴대폰 카메라의 셔터소리에 방금 전까지 서로에게만 빠져있던 임천강, 성신영이 화들짝 놀란다.방 앞에 서 있는 강유리를 발견한 임천강이 일단 급한대로 이불로 비루한 몸뚱어리를 가려본다.“강유리? 네... 네가 어떻게 여길...”떨리는 목소리에서 당황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났다.“그냥... 네가 원하는 게
화풀이를 끝낸 강유리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둘 다 뭘 잘했다고 이렇게 뻔뻔해? 무릎 꿇고 애원하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지금 나만 이 상황 이해 안 가는 거야?”“너...!”“임천강, 나 늙어죽는 한이 있어도 너 같은 애랑 결혼 안 해. 네가 누굴 좋아하든 상관없는데 그럼 적어도 나랑 끝내고 만났어야지. 추잡하게 이게 뭐 하는 거야? 어쨌든... 오늘 이 치욕... 절대 이대로 못 넘어가. 어떻게든 복수할 거니까 두고 봐.”말을 마친 강유리가 자리를 뜨고 분노에 찬 임천강의 절규가 오피스텔을 가득 채웠다.“강유리, 너야말로 두고 봐! 내가 멍청이처럼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한편, 오피스텔을 나서며 분노로 인해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던 강유리가 우뚝 멈춰 섰다.‘아니지. 여긴 내 집이잖아. 왜 내가 나가야 해?’휴대폰을 꺼낸 강유리는 바로 아파트 관리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아, 502호 주인인데요. 3년 동안 집을 비웠더니 모르는 사람들이 무단침입해서 살고 있네요. 경찰에 신고를 하든 뭘 하든 어서 처리해 주세요.”늦은 밤, 강유리의 전화에 벌떡 일어난 관리인은 바로 경비원들과 함께 502호로 달려가기 시작한다...마지막 미션까지 마친 강유리는 트렁크를 끌며 새벽의 거리를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다.연인의 배신, 슬프다기 보다 짜증이 밀려왔다.그녀와 임천강은 어렸을 때부터 아는 사이였고 수많은 남자들 중 임천강은 누구보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한때 열렬하게 그녀를 사랑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가 목격했던 추잡한 장면은 지난 3년이란 시간을 그저 웃음거리로 만들었다.‘애초에 날 좋아한 적도 없었잖아. 그냥 내 돈 보고 접근한 거였어?’“나쁜 자식들!”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짜증이 밀려들어 발에 닿는 조약돌을 퍽 차는 강유리다.하지만 다음 순간, 묘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조약돌이 길가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히며 캉 하고 맑은 소리를 낸다.“헉!”가까이 가보니 롤스로이스 한정판.방금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