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뛰어서 차에 타자 태우가 다가와 안전벨트를 매주었다.“오늘 일찍 일어났는데, 아직 아침 안 먹었지?”나는 몸을 기울리고 고개를 들어 태우의 얼굴에 뽀뽀했다. 태우는 깜짝 놀라 머리를 부딪힐 뻔했고 귀끝이 빨개졌다.“은서야, 너.”나는 웃었다.“7년 전부터 이걸 하고 싶었어.”태우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갔다.“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왜 갑자기 귀국했어?”“네가 보고 싶어서.”비가 펑펑 내려 태우의 눈은 유난히 촉촉했다.“그동안 넌 힘든 시간을 보냈고, 행복하지도 않았어. 내가 필요할 것 같았어.”태우는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필요하면 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그 순간 마치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밝은 소녀는 많은 사람들이 몰래 가슴에 품고 있는 달이다. 하지만 오직 나만 비춰주었다. 태우는 여전히 점심 시간 후 책상위에 엎드려 평생 헤어지지 말자던 소년이다.컴컴 커진 비는 나뭇가지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내 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앉아있다. 이 순간,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강렬했다. 내가 손을 뻔어 태우의 손을 만지자 손바닥은 뜨겁고 건조했다. 태우는 깍지를 끼며 나를 품에 껴안았다. 너무 꽉 껴안아 숨결이 섞일 정도였다.“정태우, 평생 헤어지지 말자.”태우는 내 머리를 문지르며 울컥하며 말했다.“약속해.”...하준을 다시 만났을 때 태우와 나는 쇼핑을 막 끝낸 뒤였다. 주차장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하준은 나를 불렀다. 하준의 얼굴은 창백해고 손끝에 들고 있던 담배꽁초가 떨어졌다. 손등이 데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하준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하준은 손을 뻗어 날 끌고 가려고 했지만 태우가 막았다. 하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의아했다.“정태우 씨, 그래도 그룹 사장인데, 나랑 자던 사람을 주워가는 거 정말 역겹지 않아요? 사람들이 알면 창피하지도 않아요?”태우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다.“신은서는 나한테 큰 영광이에요. 사람
바람소리가 한기를 담고 우리의 손끝을 스쳐지나갔다. 문득 예전에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상처받은 사람은, 그 무거운 상처를 결코 드러낼 자격이 없다. 칭찬받아야 할 것은 역경에 맞서 계속나아가는 용기이다.한때 내 앞에 있던 산이 태우가 돌아오는 순간 이미 그 산을 넘어섰다.“그만해, 성하준. 소란 피우지 마. 우리 잘 지내자. 더 이상 얽히지 말자.”하준의 눈물이 쏟아졌다. 입술을 부들부들 떨며 반박하지도 못했다.“은서야, 날 떠나지 마.”하준은 울부짖으며 애원했다. 나는 태우의 팔짱을 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돌아가는 길에 나는 일부러 태우에게 산책하자고 했다. 강에는 주변의 불빛이 반사하여 빛이 반짝였다. 걷는 동안 태우는 눈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바라보았다.“그때 이곳에서 너에게 고백하려고 했어.”하지만 그때 태우는 나를 만나지 못했다. 순간 가슴이 아파났다. 격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지며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나는 다정하게 말했다.“이제 복수하려는 거야?”태우는 나와 눈을 바주치자 눈에 나의 그림자가 보였다. 태우는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신은서, 아직 고백할 게 있는 것 같아.”태우는 걸음을 멈추고 날 품으로 끌어안았다. 한참 후 태우는 고개를 숙여 나의 이마에 키스했다. 온몸이 찌릿했다.신선한 나무 향기가 코를 가득 채우며 온몸의 모든 감각을 간지럽혔다. 목소리에 시간이 담겨있는 것 같았고 무하난 사랑이 가득했다. “사랑해, 신은서.”사들바람이 불며 태우의 눈에는 날빛이 반짝였다. 나는 태우의 품에서 몸부림을 치며 천천히 태우를 안았다.“정태우, 난 널 단 한 번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어.”...7년 전 태우가 출국하던 날, 나는 몰래 공항에 가서 배웅했다. 두 시간 동안 나느 기대와 절망 사이를 오가며 지켜보았다. 가슴은 손에 꽉 잡힌 듯 아파서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려가서 태우를 안고 싶은 순간, 하준이 나타났다.하준은 나에게 다가와 웃으
집에 돌아왔을 때 2층 침실에서 가끔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코트를 벗어 팔에 걸치고 잠시 멈춰있었다. 결국 무거운 걸음으로 침실로 향했다. 정교한 조각된 문을 밀자 성하준이 한눈에 들어왔다.갈색 셔츠는 반쯤 열려 있었고 넥타이는 이미 사라졌다. 품에 안긴 소녀가 마침 포도를 먹여주고 있었다. 하준은 비록 포도를 밀쳐냈지만 표정은 만족스러운 듯했다. 발걸음 소리를 듣자 소녀는 웃으며 돌아보았다.“해준 오빠, 아줌마가 해장국을 가져왔나?”소녀의 미처 다 하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서 맴돌았고, 손에 든 포도는 카펫에 떨어졌다. 나를 본 소녀는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나지막하게 불렀다.“아, 아가씨.”나의 시선은 소녀의 어깨에 멈추었다. 일련의 붉은 자국이 눈부시게 보였다.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성하준, 뭐 하는 거야?”하준은 눈을 치켜들고 나를 보더니 짜증을 내며 혀를 찼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품에 안긴 소녀의 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알면서 왜 그래? 이미 봤잖아.”하준은 소녀를 안고 나를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하지만 은서야, 넌 어린 소녀에게서 배워야 해. 하루 종일 우울한 표정일 짓기는커녕, 행동도 딱딱해. 정말 재수없고 재미없어.”...나와 하준은 18년 동안 알고 지냈고, 하준는 18년 동안 나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다. 일곱 살 때 나의 어머니가 하준의 가족에 끼어들었다. 2년 후 하준의 아버지 성영국의 돈까지 모두 가져가고 나만 남겨두고 떠났다.고아원에 가겠다고 제안했지만 하준에게 거절당했다. 하준은 시뻘건 눈을 뜨며 두 손으로 나의 팔을 아플 정도로 꽉 움켜쥐었다.“신은서, 꿈도 꾸지 마. 넌 평생 내 곁에서 속죄해야 해.”나는 머리를 끄덕였다. 하준이 원하는 건 그저 만족할 때까지 곁에서 부려먹는 것일 줄 알았다. 하지만 졸업 후 나를 데리고 혼인신고를 하러 갈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우리가 결혼한 날, 성영국은 화를 냈다. 진정된 후 성영국은 다시 나를 끌고 펑펑 울었다.“은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진 후 탄탄하고 매끈한 근육이 드러났다. 마지막 단추를 풀려고 할 때 하준이 내 손을 꽉 잡았다. 아무런 표정도 없었지만 선 넘은 나의 행위를 거칠게 말렸다.“신은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하준을 바라보았다.“아저씨는 우리가 잘 살기 원해. 아이도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어.”하준은 내 손을 떼어낸 후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 밑에는 서리가 얼어붙어 있었다.“정말 네 엄마만큼이나 싸구려네. 그렇긴 해, 부패한 사람이 무슨 좋은 자식을 낳을 수 있겠어?”하준은 나를 떼어낸 후 테이블 위에 있던 컵을 나에게 내리쳤다. 유리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나는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자 뒤에 있는 테이블에 부딪혔다. 하준은 발을 들어 내 손가락를 짓밝으며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아이를 낳는 거로 속죄하고 날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신은서, 이번 생에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넌 개처럼 내 곁에서 부려먹게 해야 해.”하준의 셔츠는 헐렁했고 단추가 거의 다 찢어져 있었다. 그러자 운동을 열심히 하여 만들어진 에쁜 근육 라인이 드러났다. 나는 흘끗보고 담담하게 눈을 피했다. 신혼 밤의 불쾌함 이후로 하준은 날 만난 적이 없다.하준은 나를 건드리지 않았고, 곁에 있는 여자도 끊임없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성영국이 바라던 아이을 낳을 기회가 없었다.“신은서.”하준은 나지막하게 불렀다. 어쩌다 부드러운 말투였다. 나는 눈을 치켜들자 하준도 비아냥 거리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았다.“새로운 사람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젊고 활기찬 사람은 달라.”나는 웃으며 문 밖으로 나가려했다. 날 난감하게 만드려고 한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자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하준은 미쳐버릴 수도 있다.“오늘 저녁 연회가 있어, 예쁘게 입고 와.”...나는 의아했다. 하준은 그 어떤 연회에도 나를 데려간 적이 없다. 결혼 후 외부인 앞에서 나와 아무런 접촉도 하고 싶지 않아했다. 하지만 이
“정태우, 오랜만이야.”...고등학교 때 태우는 3년 내내 나의 짝꿍이었다. 태우가 문과를 선택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났다. 담임 선생님은 태우의 높은 이과 점수에 의아해했다. 태우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침묵했다.그 당시 나는 너무 열등감에 빠져서 어린 시절에 가장 흔한 꿈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다. 나중에 태우가 내가 쓴 이야기 원고를 가져가서 공모전에 출품했다. 태우는 수상작을 펼쳐놓고 나의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괜찮아, 신은서. 봐, 넌 정말 잘하잖아.”그 당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태우는 항상 나를 향해 엎드려 자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내가 대강을 쓸 때 태우는 웃으며 말했다.“앞으로 네가 시나리오를 쓰고 내가 촬영을 할게, 우리 평생 떨어지지 말자.”그 당시 너무 어린 나는 미래가 정말 기대되었다. 한동안 미래가 말대로 될 줄 알았다. 수능이 끝나던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시험장을 나서는데 태우가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유롭게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는 수험생들을 보며 물었다.“진태우, 우리도 미쳐보는 건 어때?”태우는 손에 든 우산을 거의 완전히 내 쪽으로 기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안 돼, 너 곧 생리야, 감기 걸리면 안 돼.”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가는 학생들을ㄹ 바라보자 마음이 씁쓸했다.“진태우, 졸업하면 매일 볼 수 없을 거야.”태우는 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졸업한 거지 헤어진 게 아니잖아.”빗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뭐?”“못 들었으면 됐어.”태우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우리가 헤어질 때까지 태우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하준은 와인 한 잔을 따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옛 친구를 만났는데, 술 한 잔 해야지.”이 말을 듣자 항상 차분하고 고상한 태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우는 손을 뻗어 내술잔을 눌렀다.“괜찮아요, 여자 아이잖아요. 술을 권하지 마세요.”나는 씁
하준은 화를 내며 나를 차에 던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손목은 하준에게 꽉 잡혔다. 순간 두 손이 잡혀 뒷좌석으로 눌렀다.“왜 도망가?”하준은 이를 악물고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왜, 옛 애인을 만나더니 마음이 들떠서 그래?”하준의 광란의 모습을 바라보며 발버둥을 쳤다.“성하준, 진정해. 이러지 마.”“왜 가식을 떨어? 같이 잔 적도 없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순진한 척을 해? 정태우에게 보여주는 거야?”하준은 내 턱을 꼬집고 강제로 바라보게 했다. 너무 세게 잡자 아파서 자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신은서, 내가 기억하게 해줄까? 네가 얼마나 더러운지.”머릿속이 윙윙거렸다. 마치 7년 전 그 끔찍한 밤으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열여덟 살 생일날, 태우는 오래 전에 나와 약속을 잡았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태우는 귀끝을 붉히며 서프라이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하지만 인생은 저속한 영화와 같았다. 줄거리가 언제 갑자기 변할지 모른다. 그날 나는 가장 소중한 드레스를 꺼내 입고 립스틱도 발랐다. 하지만 문 밖을 나서자 마치 고생을 한 하준을 만났다.하준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끌어당겼다. 그리고 미친 듯이 나의 옷을 찢어버렸다. 그 당시의 장면을 생각할 용기조차 없다. 그저 침대에 웅크리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이 난다. 하준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내 머리카락을 잡고 억지로 나의 추한 모습을 보게 했다.“정태우를 좋아해? 정태우와 함께 있고 싶어? 내 허락 없이 감히 누구를 좋아한다는 거야? 어떻게 감히! 말해, 신은서. 무슨 용기로 그러는 거야?”나는 멍하니 하준을 바라보았다. 사람은 극심한 고통을 겪을 때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하준은 나를 놓아주었고, 웃음기를 거두고 음침하게 쳐다보았다.“우리 착한 동생, 날 떠날 생각도 하지 마.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마. 넌 내 곁에서 속죄해야 해. 이 사진들을 정태우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지? 보면 널 엄청
“괜찮아, 은서야, 나 왔어.”익숙한 냄새가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켰다.“진 사장님이 오셨군요.”하준은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천천히 일어났다. 그러자 바지를 털며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정태우 씨, 설마 아직도 신은서를 잊지 못한 거예요? 당신 눈 앞에 있는 여자가 얼마나 더러운지 알아요? 신은서 엄마가 우리 가족을 파괴하고 우리 집 돈까지 훔치고 도망쳤어요. 그리고 신은서는 신혼 밤에 내 침대에 올라와서 아기를 낳고 싶어 해요.”태우는 하준을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손으로 내 손목의 붉은 자국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아파?”“신은서, 아파?”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본 태우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내 눈을 바라보며 가볍게 말했다.“괜찮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알았지?”“알았어.”나는 태우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하준의 안색이 어두워지며 비아냥거렸다.“설마, 이런 쓰레기도 원해요?”태우는 천천히 돌아서서 피식 웃었다.“성하준 씨, 그해 은서는 겨우 일곱 살짜리 아이였어요. 부모님의 관계가 이미 깨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잖아요. 당신 부모님은 서로 바람을 폈어요. 정말 몰랐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극도의 분노로 인해 태우의 몸에서 카리스마와 압박감이 순간 드러났다.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하준은 저도 모르게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눈동자를 굴리더니 시선이 나에게 떨어졌다. 마치 화풀이할 상대를 찾은 것 같았다. 하준은 악의적으로 말했다.“알면 어때요? 신은서가 우리 가족을 파괴한 건 사실이에요. 신은서가 일부러 내 침대에 올라온 것도 사실이에요.”하준은 뭔가 생각난 듯 갑자기 웃었다.“하지만, 신은서가 침대에 있는 모습이 꽤 괜찮았어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태우는 주먹으로 하준의 배를 쳤다. 두 손으로 하준의 멱살을 잡으며 차갑게 경고했다.“말을 깨끗하게 해. 더러운 건 너 같은 쓰
“정태우.”나는 태우의 말을 끊었다.“안아줘.”태우는 믿을 수 없어 멈칫했다.“안아줘.”나는 다시 말했다. 따뜻한 포옹이 나를 점점 더 단단하게 끌어당겼다. 날 안고 있는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7년 전, 태우는 장미 꽃다발을 품에 안고 기쁨에 가득 찬 채 해안도로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를 기다렸지만 만나지 못했다. 태우를 거절하던 날, 눈시울을 붉히며 나에게 물었다.“정말 날 전혀 좋아하지 않아?”난 고개를 흔들었다. 태우가 아무리 애원해도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안개가 너무 짙어 태우의 눈을 쳐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내 귓가에 뜨거운 호흡이 닿으니 안개가 걷힌 것 같았다....늦은 밤, 나는 태우를 호텔 카펫에 앉혀 술을 마셨다. 한참 마시자 취한 태우의 얼굴이 붉어지며 눈이 혼란스러워졌다. 나는 일어나서 TV로 음악을 틀었다. 다시 앉자 태우는 묵묵히 나에게 기대었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손가락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되었다.두 사람의 팔이 닿을락 말락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정태우, 내일 돌아가야 해.”와인잔을 든 태우의 손이 잠시 망설이더니 가볍게 말했다.“신은서, 그때 나를 거절했을 때와 똑같아.”음악이 마치 우리의 세계의 장벽이 된 것 같았다. 태우의 말이 똑똑히 들렸다. 태우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기울렸다. 목소리를 엄청 쉬었다.“또 날 떠나는 거야?”그 순간 힘들게 쌓아올린 방어벽이 무너졌다. 태우는 절망적인 나의 인생에서 유일한 햇빛이었다. 그리고 절망의 심연에 빠졌을 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금까지도 태우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아팠다.태우가 잘되기를 바랐다. 나 때문에 허점이 생기는 건 원치 않았다. 하지만 태우는 전혀 좋아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부린 고집이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나는 태우를 향해 다가가 두 손으로 태우의 얼굴을 감쌌다.“이제부터는 더 이상 헤어지지 않을 거야.”...내가 깨어났을 때 태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