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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정태우, 오랜만이야.”

...

고등학교 때 태우는 3년 내내 나의 짝꿍이었다. 태우가 문과를 선택했을 때가 아직도 기억이 났다. 담임 선생님은 태우의 높은 이과 점수에 의아해했다. 태우는 나를 쳐다보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침묵했다.

그 당시 나는 너무 열등감에 빠져서 어린 시절에 가장 흔한 꿈에 대해 말할 수조차 없었다. 나중에 태우가 내가 쓴 이야기 원고를 가져가서 공모전에 출품했다. 태우는 수상작을 펼쳐놓고 나의 이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괜찮아, 신은서. 봐, 넌 정말 잘하잖아.”

그 당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태우는 항상 나를 향해 엎드려 자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내가 대강을 쓸 때 태우는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네가 시나리오를 쓰고 내가 촬영을 할게, 우리 평생 떨어지지 말자.”

그 당시 너무 어린 나는 미래가 정말 기대되었다. 한동안 미래가 말대로 될 줄 알았다. 수능이 끝나던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시험장을 나서는데 태우가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유롭게 비를 맞으며 즐거워하는 수험생들을 보며 물었다.

“진태우, 우리도 미쳐보는 건 어때?”

태우는 손에 든 우산을 거의 완전히 내 쪽으로 기울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안 돼, 너 곧 생리야, 감기 걸리면 안 돼.”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오가는 학생들을ㄹ 바라보자 마음이 씁쓸했다.

“진태우, 졸업하면 매일 볼 수 없을 거야.”

태우는 비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졸업한 거지 헤어진 게 아니잖아.”

빗소리가 너무 커서 내가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

“뭐?”

“못 들었으면 됐어.”

태우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우리가 헤어질 때까지 태우는 말을 반복하지 않았다.

...

하준은 와인 한 잔을 따라 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옛 친구를 만났는데, 술 한 잔 해야지.”

이 말을 듣자 항상 차분하고 고상한 태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태우는 손을 뻗어 내술잔을 눌렀다.

“괜찮아요, 여자 아이잖아요. 술을 권하지 마세요.”

나는 씁쓸한 눈을 깜빡이며 잔을 들었다.

“괜찮아, 이제 마실 수 있어.”

태우는 멍해지더니 가볍게 웃으며 술잔을 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응, 다컸네.”

내 허리를 감싼 하준의 손에 힘이 더 세졌다. 하준은 눈을 내리깔고 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조롱과 혐오가 가득했다.

“정 사장님.”

하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허리를 숙여 나에게 키스를 했다.

“저와 은서는 아직 할 일이 많아서, 먼저 가볼게요.”

하준은 말을 애매하게 했다. 나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태우는 손을 뻗어 하준의 팔을 잡았다. 손등이 팽팽하고 핏대가 서는 것에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가 보였다. 하지만 돌아서 나를 바라볼 때 말투는 가벼워졌다.

“은서야, 이 사람과 같이 가고 싶어?”

하준은 미소를 지으며 선택권을 나에게 주었다.

“자기야, 묻잖아. 나랑 같이 갈 거야?”

순간 몸이 떨리며 손을 힘껏 움켜주었다. 태우가 다시 말을 꺼내고 나서야 나는 정신을 차렸다. 나는 태우를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고 목소리도 최대한 낮추었다.

“정태우, 우리 먼저 갈게.”

말이 끝나자마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하준의 팔짱을 끼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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