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의 일이에요.”진정훈은 지난 이틀 동안 있었던 상황을 진성택에게 서둘러 설명했다. 그는 조급한 나머지 지금 진성택이 자극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잊은 듯했다.진성택은 원래도 진윤이 윤설과 결혼한다는 말에 큰 자극을 받았는데 지금 진정훈에게서 또 샘플에 관한 얘기를 들으니 너무 분노하여 심장이 심하게 쿵쾅거렸다.“샘플? 누가 조작했다고?”“네. 제가 돌아와서 할머니와 유경이한테 말했는데 제가 샘플을 보낸 뒤에 할머니 옆에 있는 장 아줌마가 뒤를 따라가고 또 비밀리에 유경이의 기사도 따라갔어요.”진성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 조작한 사람이 둘 중의 한 명이라고 생각해요”진정훈은 다급하게 말했다.그는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진씨 가문 내부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단순히 이 한 가지 일만으로도 진정훈이 수년간 가졌던 가족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부숴버릴 수 있었다.진성택은 진정훈을 바라보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식에 진성택은 듣는 것만으로도 진윤의 일보다 백 배는 더 충격을 받았다.진성택은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고 심장이 쉼없이 요동치니 동공이 끊임없이 수축하였다.하지만 진정훈은 아직 진성택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진윤과 진유경 그리고 할머니 등 사람들의 잘못을 말했다.그가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털썩하는 소리가 들렸다.그 뒤로 진성택은 이미 눈을 감은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계속 말하던 진정훈의 목소리도 순간적으로 멈췄다.곧 이어 진정훈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누구 없어? 빨라 와.”이미 평온함이 깨졌던 진씨 가문은 이 밤에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한편 완도에서 진윤은 윤설을 안은 채 씻기고 돌아와 그녀에게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바로 이때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무슨 일이야?”진윤이 입을 열자 얼음 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밖에 있던 도우미는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서서 말했다.“대표님. 둘째 도련님 전화인데 아버님께서 지금 병원에 입원하셨으니 빨리 오
고은영은 처음에는 진정훈을 알아보지 못했다.이곳은 병원이었기에 구급차가 오가며 환자를 실어 오는 일은 아주 정상적인 일이라 누구인지 자세히 보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진정훈을 보고 고은영은 깜짝 놀랐다.“그쪽은.”배준우도 진정훈을 발견하고서는 시선을 내려 차가운 눈빛으로 진정훈이 잡은 고은영의 손을 바라보았다.진정훈이 말했다.“고은영 씨 지금 나하고 같이 가요.”‘뭐 같이 가자고? 이 남자가 미쳤나? 우리가 무슨 관계라고 지금 같이 가자는 거야?’고은영의 시선은 이미 환자용 침대에 누워 병원으로 밀려들어 가는 사람에게 향했다.‘설마 아픈 가족을 안심하게 하려고 이러는 거야? 제 정신인가? 설마 전에 나한테 진정훈이 질척거린 것도 진유경 때문이 아니라 자기 가족을 위해서 그런 거야?’고은영이 진정훈에게 미쳤냐고 말하기도 전에 배준우가 먼저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그 손 놔.”“배준우 우리 아버지가 지금...”“내가 말했지. 그 손 놓으라고.”배준우는 싸늘한 시선으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이 마치 날카로운 칼날처럼 위험해 보였다. 그러나 진정훈은 손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고은영의 손목을 더 세게 잡았다. 고은영은 잡힌 손목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이 상황이 너무 당황스러웠다.‘이 남자 정말 제정신이 아니구나.’동시에 고은영은 배준우에 대한 믿음도 별로 없었다. 비록 그가 한두 번은 믿지 않았지만 계속 진정훈이 이렇게 집착하면 결국 배준우도 의심할 것 같았다.여기까지 생각한 고은영의 마음은 더욱 불편했다.“그쪽 정말 미쳤어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진정훈의 손을 힘주어 뿌리쳤다. ‘뭐 아버지? 자기 아버지가 죽는데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고은영.”진정훈은 낮은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이 상황을 지켜본 배준우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이라도 진정훈을 때려눕히고 싶었다.당황한 고은영은 손을 뻗어 배준우의 팔짱을 꼈다.“여보 우리 빨리 가요.”그녀의 목소리는 불안에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진정훈을 무슨 전염병에
고은영을 배준우가 모를 리가 없었다.“내가 진정훈의 말을 뭘 믿는다는 거야?”“준우 씨가 안 믿으면 됐어요.”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지금 그녀는 고은지의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불편한데 진정훈까지 또다시 끼어드니 정말 살고 싶지 않았다.진씨 가문의 혼란에 비해 더욱 마음이 복잡한 사람이 바로 나태웅이었다.그는 고집스럽게 하늘 그룹에서 안지영을 하루 종일 기다렸지만 그 결과 안지영은 정말 하루 종일 돌아오지 않았다.게다가 조금 전 왕여가 나태웅에게 말하길 안지영이 오후 2시에 비행기를 타고 장선명과 함께 매하리로 떠났다는 것이다.‘안지영이 장선명과 함께 매하리로 갔다고? 지난번 플라자 온천에 갔다 온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매하리까지 간다고?”왕여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리고 그 땅은 안지영 씨가 우리에게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안지영이 동영 그룹과 계약을 체결해서 땅을 넘겨받은 뒤 아무리 그들이 연락해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전화도 통하지 않았고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이것만으로도 이미 태도가 너무 명확하게 보였다.게다가 왕여가 보기에는 이 모든 것은 안열을 탓해야 할 것 같았다. 안지영이 지금까지 한일중 모든 것은 안열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나태웅은 위험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눈을 감았다.“바로 매하리로 가는 티켓 예매해.”“네? 직접 매하리로 가시려고요? 그건 안 될 것 같은데...”안열은 긴장한 목소리로 걱정스럽게 물었다.매하리가 어떤 곳인가? 비록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그곳은 너무 대자연이 광활한 곳이었다.관광 명소가 너무 많은데 지금 안지영과 장선명이 매하리로 갔다는 것 외에는 매하리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안지영과 장선명이 비행기에서 내린 뒤 도대체 어디로 갈지 조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매하리는 원시적인 곳이었기에 사람을 찾는 것이 쉬운 곳은 아니었다.“지금 당장 예매해.”나태웅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 빌어먹을 여자가 정말. 설마 장선명하고 진지
하지만 장선명이 검은 셔츠 하나만 입고 있는 모습을 보자 안지영은 망설였다.“안 추워요?”“남자는 체온이 높아서 괜찮아. 가자.”춥지 않다는 그의 말은 거짓말이었다.매하리는 설산이 있는 곳이었기에 아침저녁의 기온 차가 매우 컸고 밤에는 영하로 온도가 떨어졌다.안지영은 빠른 발걸음으로 장선명을 따라갔다.차에 타자마자 그녀는 얼어붙은 손을 비비며 중얼거렸다.“왜 별일도 없는데 여기까지 온 거예요?”장선명은 그녀를 바라보더니 빨갛게 얼어붙은 작은 코를 사랑스럽게 꼬집으며 말했다.“한 번 맞혀 봐.””내가 어떻게 맞혀요?”안지영은 장선명 같은 사람이 굳이 왜 이런 광활한 대자연에 온 것인지 이유를 예측할 수 없었다.하지만 여행 시즌이라 그런지 매하리에 온 사람이 꽤 많았다.방금 두 사람이 탄 비행기도 만석이었다.‘근데 장선명은 이렇게 조용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잖아? 밤마다 시끄러운 클럽 같은 곳에 있는 사람인데.’장선명은 그녀의 얼어붙은 작은 손을 손바닥으로 따뜻하게 감싸며 녹여주었다. 그 행동에 그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순간 장선명이 말했다.“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나와 널 흑과 백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잖아?”“네?”‘무슨 뜻이지? 흑과 백?’하지만 뒤에 이어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에 안지영은 그 뜻을 이해했다.강성에서는 모두 장씨 그룹의 사업이 깨끗하지 않다고들 말했다.아무도 그들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일단 그들을 건드리면 그들은 아주 처참한 복수를 해왔기에 다들 그 결과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안지영의 안씨 가문은 사업 규모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깨끗한 사업을 이어왔다.그래서 장선명과 안지영을 두고 흑과 백이라고 말했다.그런데 지금.“그럼 선명 씨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요?”안지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장선명을 바라보았다.장선명은 그녀의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그의 타고난 매력은 숨길 수 없었다.
‘바로 거절해야 하는 걸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어쨌든 안지영이 먼저 찾아가서 부탁한 것이었기에 지금 거절하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바로 수락하기에는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의 마음속에서 그녀와 장선명의 관계는 오직 계약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녀는 장선명을 위해 장씨 가문에서 오는 결혼 압박을 막아주었고 장선명은 그녀를 도와 배준우의 위협을 해결해 주었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계약서를 없애고 진지하게 사귀자고 한다.미안하지만 그녀는 지금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멍하니 있는 안지영의 모습을 보고 장선명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나태웅이 너한테 어떤 마음인지 너도 알지?”‘아니 이런 상황에 왜 갑자기 그 재수 없는 놈 얘기를 꺼내는 거야?’안지영은 순간 우울해졌다.축 처진 안지영의 표정을 본 장선명은 웃으며 말했다.“나태웅이 확실히 인간은 아니지. 하지만 그 자식의 목적은 너무 뻔해.”“그 인간 얘기 안 하면 안 돼요?”안지영은 정말 불쾌했다. 그 미친 자식의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얘기 안 할게. 근데 내가 너한테 말해주고 싶은 건 넌 똑똑한 사람이니까 누가 정말 너한테 잘해주는지 누가 정말 함께 살아갈 사람인지 알 거라고 생각해. 인생은 길어. 네가 어떤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확실히 정해야 해.”장선명의 말은 다소 뜻이 깊었지만 안지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나태웅의 방식? 그는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확실히 안지영은 이미 나태웅이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었다.나태웅 같은 인간을 그녀는 백 번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차라리 자기 수명을 줄이는 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며칠 만에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하지만 장선명과 함께하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솔
나태웅도 그렇게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할 말 더 있어? 없으면 나 먼저 간다.”나태웅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오직 안지영이 장선명과 단둘이 매하리에 갔다는 것만 생각해도 나태웅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태현이 말했다.“경고하는데 안 가는 게 좋을 거야.”“형.”“내가 여자라도 장선명을 선택했을 거야.”나태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얼굴이 지금 나태현의 말을 듣고 더욱 어두워졌다.‘이 사람이 정말 내 형 맞아? 어떻게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장선명이 어떤 인간인데? 설마 형은 모르는 거야?’나태현은 나태웅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 보며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피그스 라벤더 장원에서 돌아온 뒤로 네가 저지른 일들을 돌아봐. 그리고 장선명은 또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 안지영이 제정신이라면 절대 널 선택하지 않을 거야.”이런 일들은 제삼자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태웅은 인정하지 않았다.“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내가 안지영 아빠를 위해서 전문가팀을 구해줬는데도 안지영이 거부했어. 장선명이 지영이를 위해서 해준 일은 나도 해줄 수 있다고.”그럼 이게 지금 누구의 잘못일까?나태웅의 말을 들은 나태현은 두통이 느껴졌다.원래는 계속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의 태도를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너 가.”‘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래 직접 가서 장선명한테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실컷 맞아 봐.’나태웅도 더할 말이 없었기에 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두 걸음도 채 걷기도 전에 나태현이 또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나태웅은 걸음을 멈췄다.“왜?”나태현이 말했다.“내가 너라면 난 바로 포기했을 거야.”나태현이 보기에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저지른 일들과 안지영의 현재 태도로 봤을 때 두 사람은 완전히 적이 되었다.나태웅이 억지로 안지영과 장선명의 관계를 망쳐 놓더라도 안지영이 나태웅과
하지만 나태웅은 오히려 천락 그룹에 돌아와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나태현은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나태웅의 뒤를 따라다니며 문제를 수습해 주느라 바빴다. 지금은 동성의 땅도 나태웅 때문에 하늘 그룹에 빼앗겼다.이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땅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이제 보니 둘째 도련님은 동영 그룹에서 그동안 경영 관리는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네.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 천락 그룹에 돌아와서 사회의 쓴맛을 보려고 하는 건가?’매하리의 밤은 정말 추웠지만 그래도 낮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안지영은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통나무집 창가에 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설산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장선명은 그녀와 함께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함께 밝은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안지영은 그 말인즉 그가 어둠에서 벗어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떳떳할 수 있는 사업을 하겠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장선명은 매하리의 여행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띵동 하고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장선명은 손에 아침 식사를 들고서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안지영은 깜짝 놀랐다.“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너도 일찍 일어났네?”장선명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와 아침 식사를 작은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그는 그릇을 놓으며 말했다.“여기 별로 먹을 게 없어서 우리 대충 먹어야 할 것 같아.”안지영은 따뜻한 물을 끓이려다가 장선명의 말을 듣고서는 주전자를 들려던 손을 멈칫했다. ‘강성의 장씨 가문 넷째 도련님이 지금 나한테 대충 때우라고 한 거야? 난 동영 그룹에 있을 때 그런대로 참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장선명이 대충 때울 수 있을까?’안지영은 장선명이 가져온 아침 식사를 보고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떨렸다.이건 정말 대충 때워야 할 상황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저
안지영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아니에요. 난 그냥 라면 먹고 싶어요.”안지영은 전에 매하리에 와본 적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곳의 국수는 그냥 안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라면은 영양가 없잖아. 그래도 국수를 끓여오라고 할게.”안지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장선명을 보고서는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장선명은 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 민박 사장에게 국수를 부탁하고 왔다.민박 사장은 아주 열정적으로 곧바로 끓여주겠다고 말했다.그런데 곧바로 끓여주겠다던 국수는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나오지 않았다.장선명도 밀크티와 빵이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국수를 끓여달라고 부탁한 뒤로 더 먹지 않았지만 오래 기다려도 국수가 나오지 않자 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내가 가서 볼게. 무슨 돌을 끓이는 것도 아니고.”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곳의 음식은 돌을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장선명은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금방 완성된 국수를 발견했다.게다가 고압 가마에서 면을 건져내는 것을 보고 처음 보는 면을 끓이는 방식에 그는 깜짝 놀랐다.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국수를 장선명에게 건넸다.“점심에 돌아와서 식사할 건가요?”“왜 그러세요?”장선명은 이해하지 못했다.‘아침도 아직 못 먹었는데 왜 벌써 점심을 묻는 거지?’사장은 이해하지 못한 장선명을 보고 설명해 줬다.“만약 점심에 돌아와서 식사하시면 제가 미리 준비해 두려고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장선명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린 면을 한 번 보고 다시 사장이 면을 끓은 고압 가마를 바라보더니 상황을 조금 이해한 눈치였다.이곳은 기후 때문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익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장선명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와서 먹을 거예요.”“네. 그럼 뭐 드시고 싶으세요? 양고기? 아니면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