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거절해야 하는 걸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어쨌든 안지영이 먼저 찾아가서 부탁한 것이었기에 지금 거절하면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하지만 바로 수락하기에는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안지영의 마음속에서 그녀와 장선명의 관계는 오직 계약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그녀는 장선명을 위해 장씨 가문에서 오는 결혼 압박을 막아주었고 장선명은 그녀를 도와 배준우의 위협을 해결해 주었다.그런데 지금 갑자기 계약서를 없애고 진지하게 사귀자고 한다.미안하지만 그녀는 지금 너무 당황한 나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멍하니 있는 안지영의 모습을 보고 장선명은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나태웅이 너한테 어떤 마음인지 너도 알지?”‘아니 이런 상황에 왜 갑자기 그 재수 없는 놈 얘기를 꺼내는 거야?’안지영은 순간 우울해졌다.축 처진 안지영의 표정을 본 장선명은 웃으며 말했다.“나태웅이 확실히 인간은 아니지. 하지만 그 자식의 목적은 너무 뻔해.”“그 인간 얘기 안 하면 안 돼요?”안지영은 정말 불쾌했다. 그 미친 자식의 이름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얘기 안 할게. 근데 내가 너한테 말해주고 싶은 건 넌 똑똑한 사람이니까 누가 정말 너한테 잘해주는지 누가 정말 함께 살아갈 사람인지 알 거라고 생각해. 인생은 길어. 네가 어떤 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확실히 정해야 해.”장선명의 말은 다소 뜻이 깊었지만 안지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나태웅의 방식? 그는 조금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궁지로 몰아넣었다.확실히 안지영은 이미 나태웅이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공포스러운 일이었다.나태웅 같은 인간을 그녀는 백 번 죽여도 시원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차라리 자기 수명을 줄이는 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며칠 만에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를 일이다.하지만 장선명과 함께하는 동안 그는 그녀에게 최선을 다했다.솔
나태웅도 그렇게 좋은 남자가 아니었다.“할 말 더 있어? 없으면 나 먼저 간다.”나태웅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오직 안지영이 장선명과 단둘이 매하리에 갔다는 것만 생각해도 나태웅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나태현이 말했다.“경고하는데 안 가는 게 좋을 거야.”“형.”“내가 여자라도 장선명을 선택했을 거야.”나태웅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원래도 좋지 않았던 얼굴이 지금 나태현의 말을 듣고 더욱 어두워졌다.‘이 사람이 정말 내 형 맞아? 어떻게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어? 장선명이 어떤 인간인데? 설마 형은 모르는 거야?’나태현은 나태웅의 싸늘한 시선을 마주 보며 지금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나태현은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피그스 라벤더 장원에서 돌아온 뒤로 네가 저지른 일들을 돌아봐. 그리고 장선명은 또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 안지영이 제정신이라면 절대 널 선택하지 않을 거야.”이런 일들은 제삼자가 더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태웅은 인정하지 않았다.“내가 뭘 어떻게 했는데? 내가 안지영 아빠를 위해서 전문가팀을 구해줬는데도 안지영이 거부했어. 장선명이 지영이를 위해서 해준 일은 나도 해줄 수 있다고.”그럼 이게 지금 누구의 잘못일까?나태웅의 말을 들은 나태현은 두통이 느껴졌다.원래는 계속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의 태도를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너 가.”‘이 자식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래 직접 가서 장선명한테 정신이 번쩍 들 때까지 실컷 맞아 봐.’나태웅도 더할 말이 없었기에 바로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그런데 두 걸음도 채 걷기도 전에 나태현이 또 그를 불러 세웠다.“잠깐.”나태웅은 걸음을 멈췄다.“왜?”나태현이 말했다.“내가 너라면 난 바로 포기했을 거야.”나태현이 보기에 나태웅이 안지영에게 저지른 일들과 안지영의 현재 태도로 봤을 때 두 사람은 완전히 적이 되었다.나태웅이 억지로 안지영과 장선명의 관계를 망쳐 놓더라도 안지영이 나태웅과
하지만 나태웅은 오히려 천락 그룹에 돌아와서 도움이 되기는커녕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나태현은 그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나태웅의 뒤를 따라다니며 문제를 수습해 주느라 바빴다. 지금은 동성의 땅도 나태웅 때문에 하늘 그룹에 빼앗겼다.이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땅을 되찾을 수 있을지는 확정할 수 없었다.‘이제 보니 둘째 도련님은 동영 그룹에서 그동안 경영 관리는 물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 같네.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 천락 그룹에 돌아와서 사회의 쓴맛을 보려고 하는 건가?’매하리의 밤은 정말 추웠지만 그래도 낮에는 독특한 풍경이 있었다.안지영은 바람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통나무집 창가에 서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설산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장선명은 그녀와 함께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함께 밝은 곳으로 가겠다고 말했다.안지영은 그 말인즉 그가 어둠에서 벗어나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떳떳할 수 있는 사업을 하겠다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그래서 장선명은 매하리의 여행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띵동 하고 방의 초인종이 울렸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서는 몸을 돌려 방문을 열었다.장선명은 손에 아침 식사를 들고서는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단정한 옷차림을 보고 안지영은 깜짝 놀랐다.“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요?”“너도 일찍 일어났네?”장선명은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서는 방 안으로 들어와 아침 식사를 작은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그는 그릇을 놓으며 말했다.“여기 별로 먹을 게 없어서 우리 대충 먹어야 할 것 같아.”안지영은 따뜻한 물을 끓이려다가 장선명의 말을 듣고서는 주전자를 들려던 손을 멈칫했다. ‘강성의 장씨 가문 넷째 도련님이 지금 나한테 대충 때우라고 한 거야? 난 동영 그룹에 있을 때 그런대로 참는 것에 익숙해졌는데 장선명이 대충 때울 수 있을까?’안지영은 장선명이 가져온 아침 식사를 보고 입꼬리가 자기도 모르게 떨렸다.이건 정말 대충 때워야 할 상황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저
안지영은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아니에요. 난 그냥 라면 먹고 싶어요.”안지영은 전에 매하리에 와본 적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는 이곳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이곳의 국수는 그냥 안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라면은 영양가 없잖아. 그래도 국수를 끓여오라고 할게.”안지영은 아무것도 모르는 장선명을 보고서는 망설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그럼.”장선명은 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몸을 일으켜 민박 사장에게 국수를 부탁하고 왔다.민박 사장은 아주 열정적으로 곧바로 끓여주겠다고 말했다.그런데 곧바로 끓여주겠다던 국수는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도 나오지 않았다.장선명도 밀크티와 빵이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국수를 끓여달라고 부탁한 뒤로 더 먹지 않았지만 오래 기다려도 국수가 나오지 않자 그는 불만스럽게 말했다.“내가 가서 볼게. 무슨 돌을 끓이는 것도 아니고.”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곳의 음식은 돌을 끓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장선명은 아래층에 내려갔을 때 금방 완성된 국수를 발견했다.게다가 고압 가마에서 면을 건져내는 것을 보고 처음 보는 면을 끓이는 방식에 그는 깜짝 놀랐다.사장은 미소를 지으며 국수를 장선명에게 건넸다.“점심에 돌아와서 식사할 건가요?”“왜 그러세요?”장선명은 이해하지 못했다.‘아침도 아직 못 먹었는데 왜 벌써 점심을 묻는 거지?’사장은 이해하지 못한 장선명을 보고 설명해 줬다.“만약 점심에 돌아와서 식사하시면 제가 미리 준비해 두려고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기서 식사 준비를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서요.”장선명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손에 들린 면을 한 번 보고 다시 사장이 면을 끓은 고압 가마를 바라보더니 상황을 조금 이해한 눈치였다.이곳은 기후 때문에 제대로 된 음식을 먹는 것은 고사하고 제대로 익히는 것조차 어려웠다. 장선명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돌아와서 먹을 거예요.”“네. 그럼 뭐 드시고 싶으세요? 양고기? 아니면
계단이 꽤 좁아서 안지영이 앞에서 가고 장선명이 그 뒤를 따랐다.마침 두 번째 계단을 밟는 순간 눈 알갱이를 밟아 안지영은 그대로 앞으로 쭉 미끄러졌다.온몸이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안지영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장선명이 빠르게 그녀를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을 것이다.안정된 안지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난간을 잡고 일어났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개를 숙여보니 장선명의 넓은 손바닥이 그녀의 가슴을 잡고 있었다.그 순간 안지영은 할 말을 잃고서는 작은 얼굴이 새빨개졌다.‘이 상황에서 비명을 질러야 하는 거야?’장선명은 그녀가 당황해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녀의 몸을 바로 세워주며 말했다.“조심해.”안지영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상태였다.그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장선명은 바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너무 놀라 얼어붙은 작은 손은 그 순간 장선명의 따뜻한 손바닥에 감싸여 온기를 되찾았고 그녀도 가슴 속에서 이상한 감정이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정말 깜짝 놀랐어요.”방금 자기가 정말로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했다는 생각에 안지영은 아찔했다. 비록 2층 계단 높이였지만 굴러떨어졌다면 분명 아팠을 것이다.장선명이 말했다.“내가 잡아줄게.”이번에는 안지영도 거절하지 않았다. ‘계단이 이렇게 미끄러운데 이 남자는 방금 국수를 들고 어떻게 위로 올라온 거야?’집을 나설 때 장선명은 사장이 벌써 소고기를 고압가마에 넣고 끓이는 것을 발견하고서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곳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힘들어 방금 식사를 마쳤는데 바로 다음 끼니를 준비해야 했다.안지영은 장선명이 계획한 여행 일정이 이곳의 높은 산이 아니라 한 도시를 포함한 것인 줄 알았는데 그녀가 장씨 가문 사람들의 야망을 과소평가한 것이었다.장선명이 계획한 것은 전체 매하리의 관광 노선이었다.등산이라고 말했지만 두 사람은 오전 내내 차를 타고 움직였다.그런 다음 한 루트에서 다른 루트로 이동하자 그 들은 한 가지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췄다.“이렇게 빨리?’요즘 나태웅이 저지른 엉망진창인 일들을 볼 때 배준우도 이 일이 가장 믿을 만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진청아는 확실히 능력이 좋았다.5년 전의 일인데도 조사를 하니 정말로 파헤쳤다.진청아는 배준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진재한과 기성훈이 다 나서서 어렵게 CCTV 영상을 복구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옆모습과 뒷모습뿐이지만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의 모습이 꽤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진청아의 말을 듣고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최대한 빨리 확인해.”“알겠습니다.”이제 확인만 하면 끝이기에 진청아에게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며칠 내로 확인이 가능할 것이다.이지훈은 나태현의 뒤를 따라가다 자신의 대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꼈다.‘또 무슨 일이야?’“대표님 핸드폰이 계속 울리고 있습니다.”핸드폰이 울리는 것을 보고 이지훈은 나태현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없었다.나태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전화를 꺼내보니 안열에게서 온 전화였다.그는 바로 이지훈에게 전화를 던졌다.“네가 받아.”이지훈은 재빨리 전화를 잡았다. 안열에게서 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얼른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나태현은 아버지의 병실로 향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계속해서 고은지 방에 있던 남자를 떠올렸다.‘고은지가 그 남자를 찾고 있는 거야? 그 남자를 찾고 있는 이유가 뭐지? 그 남자가 딸인 고희주의 아버지라서?’고은지와 관련된 정보가 그의 신경을 얼마나 자극했는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이 순간 나태현의 눈은 차가운 분위기로 가득했다.요 며칠 고은영은 시간이 날 때마다 고희주에게 달려갔다.고은지의 정신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었기에 이제는 항암 치료 단계에 접어들었다.심각할 때는 머리가 빠지고 구토를 했다.배준우는 고은지의 주치의를 만난 뒤 고은영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고희주 아빠에 관한 소식이 있다고 전했다.진청아가 이미 CCTV
고은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고은영은 그런 고은지를 보고 마음이 조금 쓰려왔다.“은영아 나 한 가지만 더 도와줄래?”고은지는 마침내 침묵을 깨고 말했다.고은영이 말했다.“말해 봐.”고은지의 부탁이라면 고은영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줄 것이다.고은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희주 나 때문에 지금 정상적으로 학교에 들어갈 수 없잖아.”여기까지 말했을 때 고은지의 목소리는 점점 더 울컥하는 것 같았다.그동안 고희주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일만 생각하면 고은지가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조영수와 함께 산 세월 동안 비록 조씨 가문의 경제 상황이 부유하진 않았지만 고은지와 고희주는 정말 가난하게 살았다.그래도 고은지는 자신이 훌륭한 아내이자 엄마 그리고 며느리인 줄 알았다.그녀는 집안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희주도 아주 잘 키웠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착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고은지는 자기 자신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연달아 큰 사건들을 겪었고 심지어 마지막에는 고희주까지 연루되게 했다.고은영은 고은지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듣고 물었다.“언니 준우 씨한테 좋은 학교 찾아 달라고 그러는 거지? 계속 희주가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사실 고은영은 이 의견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았다.비록 아이가 지금 학교에 다닐 나이이긴 했지만 희주 마음의 병은 이제 막 회복 단계였기 때문에 고은영은 걱정이 많았다.고은지도 고희주를 학교에 보내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눈빛은 전례 없는 고통이 드러났다.원래 고은지는 고희주를 데리고 강성을 떠나려고 했다.그러나 갑작스러운 병으로 인해 고은지가 원래 세웠던 계획이 틀어졌다.이 순간 고은영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겠냐는 말에 고은지의 마음도 함께 떨렸다.“아니. 학교에 보내겠다는 건 아니야.”고은지는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아이들이 많은 환경은 항상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었다.고희주는 심리적으로 이미 심각한 문제가 생겼는데 고은지는
고은영은 량일과 량천옥이 어디서 고은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용산을 조사할 때 그녀들은 당연히 고은지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고은영을 챙겨줬는지 알게 되었다.고은지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량천옥은 고은영이 분명 걱정할 것을 알기에 초조해하고 있었다.그러나 고은영이 자신을 그렇게 미워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차마 고은영을 만날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량일이 고은영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이 순간 량일이 고은지의 골수 이식 얘기를 꺼내니 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했다.고은영은 몸이 머리보다 먼저 반응하며 량일의 손을 꽉 잡았다.“그쪽이 우리 언니와 일치하는 골수를 찾아줄 수 있어요?”고은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량일을 바라보았다.심지어 고은영은 이 순간 머릿속에 량천옥과 량일의 공포스러운 모습이 떠올랐지만 량일이 언니와 일치한 골수를 얘기하니 마음속으로 기뻤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두렵기도 했다.전에는 배준우가 고은영의 옆에 있었기에 량천옥의 계획에 많은 방해가 되었을 텐데 이번에는 량일이 그녀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량일은 고은영의 간절한 시선을 마주하고서는 한숨을 쉬었다.“얘기 좀 나누겠니?”“그러죠. 원하는 게 뭐죠? 조건을 얘기하세요.”고은영은 다급하게 물었다. 마치 이 순간 량일이 어떤 요구를 하더라도 무조건 들어줄 것만 같았다.심지어 량천옥과 량일이 그녀에게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해도 그녀는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자기와 무관한 일이고 잘못한 일이 아니더라도 고은영은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지금 그녀의 자존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은영은 고은지가 살아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고 싶었다.량일은 고은영이 자기가 말을 바꿀까 봐 두려워하는 눈빛을 보며 심장을 칼이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고은지가 너한테 정말 중요한 사람인가 보구나.”이 말을 하며 량일은 힘없이 한숨을 쉬었다.심지어 량일은 량천옥이 고은영의 마음속에서 10분의 1이라도 자리 잡고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