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지는 오늘 외출할 때 일기 예보를 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아침에 밖에 나왔을 때는 아직 해가 쨍쨍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고은지는 딸을 데리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원래는 의사 선생님만 뵙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백화점을 지나다가 고희주가 인형뽑기 기계 안에 들어 있는 토끼 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고은지는 고희주가 토끼 인형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결국 그녀는 공을 들여 토끼 인형을 뽑아주었다.고희주가 핑크색 토끼 인형을 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본 고은지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이 들었다.예전에 조씨 가문에 있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장난감은 말할 것도 없고 외식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독립해서 어렵게 나왔는데 오늘은 딸과 함께 제대로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었다.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와보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그저 비를 맞고 있을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희주의 작은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가 번졌다.고은지는 화가 나서 품에 안긴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흠뻑 젖었는데 아직도 웃고 있어?”고희주는 작은 손을 들어 엄마의 머리를 막아주며 말했다.“이렇게 하면 엄마가 안 젖겠지?”고은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엄마와 딸이 이렇게 지낸 지가 얼마 만일까?조영수와 이혼한 뒤로 고희주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다시는 고은지를 향해 웃지 않았다.이 순간 고희주의 따뜻한 행동에 고은지는 있는 힘껏 딸을 꽉 안아줬다.“엄마는 비 맞는 거 안 무서워.”“근데 난 엄마가 감기 걸릴까 봐 무서워.”감기라는 말에 고은지는 얼른 딸을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갔다.비가 내릴 때는 택시를 잡기 어려웠기에 고은지도 희망을 품지 않았다.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누군가 고은지의 발을 밟았고 그녀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이내 참으면서 다시 똑바로 섰다.고희주는 예민한 아이였기에 금방 고은지의
“그건 신경 쓰지 않았는데 조사해 볼까요?”나태현은 눈을 뜨고서는 앞에 놓인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모습에 이지훈의 마음도 복잡해졌다.순간 이지훈은 나태현이 마음속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나태웅과 안지영이 서로 물고 뜯고 싸워도 안지영은 무서워하지 않았다.장선명이 이미 모두 준비했다는 걸 안 뒤로 그녀는 더욱 나태웅을 코너로 몰고 싶었고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나태웅이 돈을 손해 본 것도 결국 그가 자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한편 동영그룹.배준우가 사무실에 돌아온 뒤로 고은영은 계속 그의 눈치를 살폈다.그녀의 티 나는 눈빛에 배준우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오전부터 오후까지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배준우는 마침내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이리 와봐.”비록 고은영은 지금 배준우를 무서워하진 않았지만 그가 자기를 부르자 무의식적으로 그에게 다가가서 순종적으로 품에 안겼다.그녀의 순종적인 태도에 배준우는 자기도 모르게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고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녀의 턱을 잡고 키스했다.‘이 앙큼한 계집애.’고은영은 신음을 내뱉으며 배준우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작은 손을 잡았다.“움직이지 마.”“안 돼요.”“왜 안 돼?”“여긴 사무실이잖아요.”배준우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내가 여기가 사무실이라는 걸 몰라?’ 고은영의 호흡이 다시 빨라지기 시작했고 배준우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왜 이렇게 겁을 먹어?”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고은영은 아직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고은영은 투덜거리며 말했다.“예전에 사무실에서 연애하면 안 된다면서요?”그럼 지금 이렇게 키스하면서 포옹하는 것도 안 되는 거 아닐까?배준우는 그녀의 말에 흠칫했다.그는 고개를 숙여 작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내가 그런 말을 했었어?”고은영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말
진정훈은 집에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고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했을 때 할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와 물었다.“유경이는 좀 어때? 집에 돌아올 수 있는 거야?”진정훈이 말했다.“네. 걸을 수 있으니까 금방 돌아올 거예요.”그 말을 끝으로 할머니가 더 묻기 전에 그는 곧바로 위층으로 달려갔다.한 달 전과 비교하면 현재 진성택의 얼굴과 에너지는 확실히 약해졌다.진정훈이 돌아온 것을 본 진성택은 돋보기를 벗으며 물었다.“유경이는 어때?”“붕대는 풀었는데 걸을 때면 통증이 조금 있대요.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요.”원래는 진유경을 집으로 데려와 재활 치료를 받게 할까 했지만 진정훈이 요즘 너무 바빠서 차라리 진유경을 병원에 계속 있게 하는 것이 마음이 놓였다.진성택은 고개를 끄덕인 뒤 더 묻지 않고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진정훈은 그의 한숨을 듣고 마음속으로 살짝 당황했다.“아버지 오늘 병원에 가셨어요?”진성택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널 오라고 한 건 그 아이의 일에 대해 묻고 싶어서야. 한 달이 지났는데 확인은 한 거니?”아버지였기에 자신의 아이를 그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특히 이제는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에 죽기 전에 아이를 더욱 보고 싶고 결과가 좋든 나쁘든 꼭 아이를 만나고 싶어 했다.그 아이가 진씨 가문에 돌아올 수만 있다면 그는 더 걱정할 것이 없었다.진성택이 그 아이에 관해 묻자 진정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아직 확인하지 못했어요.”“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확인하지 못했다는 말에 진성택의 목소리에는 실망이 가득했다.진성택의 실망스러운 목소리에 진정훈은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진정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문제가 좀 생겼는데 빨리 해결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진성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빨리 그래. 최대한 빨리 맞는지 아닌지 확인해야 해.”맞다면 당연히 최고의 결과겠지만 아니라면 그들도 더 이상 이 일에 시간을 쏟을 여유가 없었다.진정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정훈은 할머니의 욕이 안 들리는 척하며 곧바로 집을 떠났다. 차 안에서 그는 고민하고 또 하다가 결국 진윤에게 전화를 걸었고 진윤은 바로 받았다.“왜?”진정훈이 말했다.“배준우를 만나러 가야겠어.”“또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야?”진윤은 바로 말투가 차가워지며 짜증을 냈다.진정훈은 머릿속에 진성택의 창백한 모습이 떠오르자 호흡이 가빠졌다.아버지에 대해 진정훈은 진윤과 달랐다. 그는 항상 아버지를 존경했고 불쌍하게 생각했다.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수년 동안 아버지는 재혼도 하지 않고 계속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았다.아버지는 남은 삶 동안 잃어버린 딸을 찾는 일에 대부분의 노력을 기울였다.진정훈은 아버지가 잃어버린 딸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도록 내버려둘 수 없었다.“형이 왜 그렇게 아버지를 미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떠난 지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아버지는 늘 혼자 계셨어.”“혼자였다고?”진윤은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다. 그 비웃음에는 분명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다.진정훈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가 입을 열기 전에 진윤이 이어서 말했다.“인과응보라고 알아? 모르면 공부를 좀 해보지 그래?’“아니. 형 도대체 무슨 뜻이야?”진정훈은 화를 내며 말했다.‘뭐가 인과응보라는 거야?’매번 진윤과 아버지의 일에 대해 말할 때면 그는 항상 냉소적이거나 무관심했다.진정훈은 직감적으로 그사이에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도대체 무슨 일이지? 이렇게 형이 아버지를 미워하는 걸 보면 분명 큰일이겠지? 그렇다면 내가 하나도 모를 수 없을 텐데. 아무리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 정도로 아버지를 미워하는 게 말이 돼?’진정훈은 이미 진윤의 태도 때문에 미쳐버릴 것 같았지만 지금은 그것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이제 그는 고은영이 그들의 친여동생인지 빨리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맞다면 결과를 빨리 아버지가 안심하실 수 있도록 알려드리고 싶었고 만약 아니라면 그들은 얼른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그는 무슨 일이 있어
“말했죠. 내가 이미 배준우의 동선을 확인했다고.”‘이렇게 직설적으로 말했는데도 약속 때문에 나갔다고?’진정훈은 이를 악물며 말했지만 라 집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째려본 다음 말했다.“도련님 지금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시죠?”“뭐요?”“저희 대표님을 도련님께서 조사하셨다는 건가요? 사실 그대로 대표님께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진정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지금 이런 일로 시간을 끌 때야?’이 순간 진정훈은 너무 화가 나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이곳에 사람들은 전부 사람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지금 내 말을 알아듣긴 한 거야? 난 지금 당장 배준우를 만나야겠다고.’진정훈은 라 집사의 차가운 눈빛을 마주 보며 말했다.“그럼 배준우를 만나지 않아도 되니까 그쪽 사모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지난번 고은영이 오해했던 일이 떠올린 진정훈은 원래 바로 고은영을 찾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이 다급했기에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라 집사가 말했다.“사모님은 대표님과 함께 계십니다.”“그렇다면 난 더욱 들어가 봐야겠어요.”같이 있다면 더 의심할 것도 없이 집에 있는 것이 확실했다.라 집사가 말했다.“도련님 마음대로 들어가시겠다는 건가요?”“내가 언제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빨리 가서 배준우한테 전하세요. 급한 일이 있으니까.”라 집사가 말했다.“만약 대표님을 꼭 만나셔야 한다면 다른 시간에 와주세요. 오늘은 안 됩니다.”“오늘은 왜 안 되는데요?”라 집사의 말에 진정훈은 배준우가 안에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했고 조급해졌다.‘지금 시간을 정하고 오라는 거야? 아니 퇴근했는데 왜 만나지 못한다는 거야?’이 순간 란완리조트 안에서 고은영과 배준우는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배준우는 정말 미친 것 같았다.결국 고은영은 지쳐서 쓰러졌고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게 내버려뒀다.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지만 고은영은 배준우의 품에 꼭 안겨
배준우의 옷깃은 반쯤 열려있었고 목 부분에는 붉은 자국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손톱에 긁힌 자국인 것 같았다.그 모습을 본 진정훈의 얼굴은 어두워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방금까지 뭘 한 거지?’진정훈은 순간 온몸이 자기도 모르게 굳어졌고 심지어 약간 뜨거워지기까지 했다.배준우는 긴 다리로 아래층에 내려왔다. 진정훈은 그를 지켜보며 몸을 똑바로 하고 지저분한 옷을 정리했다.만약 옆에 경호원들이 없고 그의 깔끔한 외모만 보면 아무도 그가 방금까지 얼마나 격렬하게 싸웠는지 모를 것이다.배준우가 그의 앞에 다가와 섰다.두 사람을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은 배준우가 진정훈을 때릴까 봐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하지만 배준우는 주먹을 휘두르지 않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정훈을 바라보았다.“힘자랑할 곳이 없나 봐? 여기까지 와서 내 사람들을 때려?”진정훈은 굳은 얼굴로 눈을 감더니 이를 악물며 말했다.“고은영을 만나야겠어.”퍽하는 소리와 함께 배준우가 정말 진정훈에게 주먹을 날렸다.모두 숨을 죽이고서는 가슴을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지금 사모님을 만나겠다고? 미친 거 아니야?’진정훈은 거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당신 미쳤어?”“진윤한테 전화해.”배준우가 날카롭게 말했다.라 집사는 고통을 참으며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이렇게 대답한 뒤 비틀 거리며 전화기 쪽으로 걸어갔다.진정훈은 또 진윤을 들먹이는 것을 보고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형을 왜 부르는 거야?”“지금 진씨 가문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그렇지 않으면 왜 아무도 널 통제하지 않는 거야?”“배준우. 지금 이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난 지금 반드시 고은영을 만나야겠다고.”퍽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번 배준우의 주먹이 진정훈의 얼굴에 꽂혔다.옆에 있는 사람들은 순간 숨을 멈췄고 다들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진정훈의 호흡이 더욱 조급해졌다.그는 강렬하게 배준우를 째려보며 그에게 주먹을 휘둘러 반격하려고 했지만 배준우의 눈빛에 의해
이제 고은영은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그녀가 다급하게 나가보려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숙여 내려다본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녀는 너무나 당황스러웠다.‘젠장. 왜 옷을 안 입혀 준 거야?’혜나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고은영의 목덜미부터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고은영의 모습에 혜나는 순간적으로 방금 배준우의 모습이 떠올랐다.‘사모님께서 너무 화가 나서 목덜미를 손톱으로 긁은 건가?’혜나는 정신을 차리고서는 얼른 고은영에게 옷을 건네주려고 했다.이 순간 고은영의 작은 얼굴은 사과처럼 빨개졌고 몸 전체가 화끈거렸다.“얼른 다 가릴 수 있는 옷으로 가져다줘.”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아무리 아래층에서 진정훈이 맞아 죽는다고 해도 그녀는 먼저 옷을 제대로 입어야 했다.혜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얼른 고은영에게 잠옷을 건네주었다. 고은영은 아주 확실하게 몸을 가리고 침실 문을 나섰다.계단에 도착했을 때 진정훈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은영을 만나게 해줘.”그 말에 고은영은 깜짝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이 남자가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날 만나서 뭘 하겠다는 거지? 우리가 그렇게 친해?’전에 친자 검사를 하겠다고 소란을 피웠던 진정훈이 떠올라 고은영은 순간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다급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진정훈은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꼼짝 못 하고 붙잡혀 있었고 배준우는 직접 물 주전자를 들어 진정훈에게로 걸어갔다.주전자 안에 차가운 물인지 뜨거운 물인지 알 수 없었다.그 모습은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긴장하게 했다.주전자에 물을 맞자 진정훈은 순간 조용해지더니 이내 배준우에게 욕을 퍼부었다.“배준우 너 미쳤어?”이렇게 화를 내는 진정훈의 모습은 경제 잡지 표지에서 보던 이미지와 전혀 달랐다.배준우가 말했다.“네 형이 오기 전에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네 입을 틀어막아 버릴 거니까.
고은영이 말했다.“난 지금 준우 씨를 걱정하는 거예요.”배준우를 걱정한다고?란완리조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모님이 이 정도로 대표님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서는 감동했다.그러나 진정훈은 폭발 직전이었다.맞은 사람은 그인데 고은영이 지금 틀린 사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닌가?진정훈은 친자 검사를 해서 혈연관계가 밝혀지면 이 빌어먹을 계집애가 후회하길 바랐다.그는 마음속으로 정말 고은영이 후회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잔인한 생각이 들었다.배준우는 그녀의 빨개진 작은 손을 보며 웃었다.“웃어?”그의 목소리에 유쾌함이 담겨 있는 것을 보니 고은영이 방금 그를 걱정한다고 했던 말이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남자든지 여자든지 상대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배준우도 마찬가지로 고은영의 관심이 필요했다.고은영이 말했다.“아파요 엄청.”그렇게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그녀의 손바닥은 지금 불에 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배준우가 말했다.“아프면서 왜 직접 때렸어?”고은영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어떻게 안 때릴 수 있었겠어? 방금 진정훈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모두 날 모욕하는 말인데.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했으니 이제 나하고 진정훈 사이에 정말 뭐가 있는지 의심할 거야. 사실 나하고 진정훈은 아무 사이도 아닌데.’“난 진정훈 씨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뭐가 나하고 아무 사이도 아니야? 아직 확인도 못 했어. 이 빌어먹을 계집애야.”진정훈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저 빌어먹을 계집애가 날 무슨 늑대로 생각하는 거야? 친자 검사를 해보겠다는데 이렇게 겁먹을 필요까지 있어? 전에 아이와 내가 친자 검사를 한다는 걸로 오해한 것 같았는데.’여기까지 생각한 진정훈은 더욱 화가 났다. 그는 차라리 고은영의 머리를 직접 열어보고 싶었다.머릿속에 도대체 뭐가 들어 있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었다.진정훈이 설명하려고 했지만 마침 진윤이 도착했다.“형.”진정훈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진이훈은 자기 뺨을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찾아가 머릿속을 열어보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저 여자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너무 화내지 마십쇼. 안지영 씨는 나 대표님을 만나지 않을 겁니다.”“장선명 때문에?”“...”진이훈은 할 말을 잃었다.정확하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나씨 가문은 장 씨 가문에게서 사과를 받아내야했디.하지만 나태웅의 충동적인 결정 때문에 그것마저도 거품으로 돌아갔다.진이훈은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나태웅은 화가 나면 그 감정에 휩쓸려 모든 것을 잊는 사람이었다.그 시각.안지영도 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장선명은 저녁 열한 시에 들어왔다. 여덟 시에 나갔으니 총 세 시간 동안 밖에 있은 셈이었다.집에 돌아온 장선명은 화가 난 안지영을 보면서 물었다.“왜 화내고 있는 거야?”“나태웅 때문에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대답했다.안지영의 화를 이만큼이나 돋울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나태웅이 유일할 것이다.이제야 회사 일 때문에 나태웅에게 제대로 복수도 하지 못했는데, 나태웅은 거의 매일 시비를 걸었다.게다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나태웅 때문에 안지영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태웅은 사과 한마디 없었다는 것이다.안지영은 그런 나태웅을 무시하려고 했지만 나태웅이 매일 시비를 걸고 또 자기 아버지까지 끌어들였으니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신나나 씨는 어때요?”안지영은 나태웅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서 바로 화제를 돌렸다.나태웅 얘기를 듣던 장선명은 표정이 어두워졌다.신나나의 얘기를 꺼내자 장선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눈가를 3cm 정도 봉합했어. 지금은 병원에 있어.”“그렇게 심각한 일이었어요?”안지영은 아주 놀랐다.클럽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다.하지만 신나나는 매직 썬의 에이스로서 인기도 많고 돈벌이도 쏠쏠했다.기씨 가문은 요즘 들어 강성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는 가문이었지만 장씨 가문과
안지영은 화가 나서 이마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였다.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은 계속해서 이어 얘기했다.“안지영, 장선명은 수많은 여자들을 만나본 남자야. 네가 그런 남자의 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아니면, 장선명이 정말 너랑 약혼할 거라고 생각해? 매하리에서 한번 은혜를 입었다고 정말 너를 데리고 일생을 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지금도 봐, 장선명은 다른 여자를 위해 너를 버렸잖아!”안지영은 나태웅의 말투가 안지영의 불행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에게 버려진 안지영을 보면서 축하 파티라도 열 사람 같았다.나태웅의 인성을 잘 아는 안지영은 나태웅의 생각도 쉽게 알 수 있었다.‘전에 동영 그룹에 있을 때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하, 그렇게 말하면 본인이 장선명 씨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좋은 사람이라면 왜 나더러 하주원한테 가서 사과하라고 하는 거예요? 시비를 가리는 눈이 없나 봐요?”“그건 다른 일이잖아!”“뭐가 다른데요! 내로남불 같은 놈.”안지영이 중얼거리면서 말했다.지금의 안지영은 그저 나태웅을 욕할 기회만 있으면 서슴지 않고 욕설을 쏟아냈다.안지영은 전 세계의 욕설을 모아서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은 심정도 들었다.나태웅은 그럴만한 사람이니까 말이다.“안지영, 좋은 말로 할 때 입에서 걸레 빼.”“너나 입에서 걸레 빼세요. 개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내가 아무리 힘든 상황이어도 당신만큼은 죽어도 찾아가지 않을 테니까. 왜 계속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는 거예요! 관종이에요?”“...”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확신했다.‘안지영,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선심을 써서 얘기해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욕설뿐이었다.하지만 안지영은 쉬지 않고 이어서 얘기했다.“그리고, 선명 씨가 신나나 씨 때문에 매직 썬에 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굳이 와서 귀띔해 줄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알려줬다고? 이건...’“나태웅 씨, 당신은 장선명이랑 비교하
‘지금 벌인 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정말 미친 거 아니야?’안지영은 심호흡을 하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식히려고 노력했다.“안지영, 제발 생각이라는 걸 좀 하고 살아.”나태웅은 화가 나서 이를 꽉 깨물고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안지영도 더는 참지 못하고 같이 화를 냈다.“내가 생각을 안 하는 사람처럼 보여요? 나태웅, 당신은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나태웅에게 괴롭힘당하는 요즘을 생각하면 안지영은 나태웅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다.강성의 사람들은 나태웅이 안지영 때문에 미치광이가 된 줄 안다.하지만 안지영은 나태웅의 정신병이 대대로 유전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다.나태웅은 안지영을 강성에서 가장 잔인한 여자로 만들어 버렸다.그리고 이제는 안지영을 괴롭히는 데 그치지 않고 장선명까지 괴롭히려고 한다.나태웅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숨이 턱턱 막혔다.“내가 뭐 하는 거냐고? 뭐 같아 보이는데?”“내가 당신 같은 사람의 속셈을 어떻게 알겠어요! 궁금하지도 않아요!”안지영은 짜증이 확 몰려왔다.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채 무슨 말을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안지영, 장선명이 오늘 밤 왜 나갔는지 정말 모르겠어?”“당신이 일을 벌이니까 나간 거잖아요!”안지영이 이를 꽉 깨물고 말했다.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죽이고 싶었다.“신나나 때문에 킹덤 타운을 떠난 거야.”“...”두 사람 사이에 적막이 흘렀다. 분노로 과열되었던 분위기가 조금 진정되었다.안지영은 숨이 점점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화가 난 나머지 제 자리에 서서 몇 바퀴나 돌았다.나태웅에게 뭐라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화가 나서 아무 말도 나가지 않았다.아무 대답도 못 하는 안지영을 보면서 나태웅은 말투를 약간 누그러뜨렸다.“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장선명은 신나나를 구하러 매직 썬에 간 거야.”나태웅은 일부러 신나나의 이름을 강하게 읽으며 얘기했다.마치 안지영에게, 장선명은 이미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 같았다.
“...”요리 실력이 없다고 해도...“아무리 그래도 처음부터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얘기했다.“하지만 이건 재능이 필요한 영역이에요!”안지영은 무슨 일을 하든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요리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똑같은 식재료와 똑같은 양념으로도 다른 맛이 나는 것은 재능의 문제가 아니겠는가.구이준은 그들에게로 다가오다가 안지영과 장선명이 요리 재능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굳어버렸다.‘대표님이 언제부터 요리를 좋아하게 된 거지? 아니면 안지영 씨 때문에 그렇게 된 건가?’구이준을 본 장선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여기는 무슨 일로.”구이준이 앞으로 다가가서 얘기했다.“도련님, 매직 썬에 일이 생겨서 다녀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매직 썬.그 말을 들은 안지영은 저도 모르게 장선명을 쳐다보았다.안지영은 매직 썬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거기의 언니들이 예쁘다는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돈 많은 유부녀들이 자주 가는 곳인데, 그곳의 남자들이 잘생겨서였다.매직 썬에 일이 생겼다는 것을 들은 장선명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안지영에게 보여줬던 부드러움과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차가운 기운만이 남아있었다.장선명이 중저음으로 물었다.“무슨 일이지?”“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 꼭 나나 님을 데려가겠다고 하셔서요.”나나는 매직 썬에서 예쁘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안지영도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니까 말이다.그리고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면... 양아치가 틀림없었다.대충 알 것 같았다.나나는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여자였다. 그런 나나에게 기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은 양아치나 다름없는 사람일 것이다.그러니까 거기서 모순이 생긴 것이다.그 말을 들은 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다녀올게.”안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가요.”장선명은 몸을 일으킨 후 핸드폰을 챙겼다. 안지영 앞에 남은 피자 반 판을 보던 장선명이 말을 덧붙였다.“적당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살
“먼저 돌아가.”“그럼 안지영이 날 때린 건...”거기까지 말한 하주원은 말을 멈추고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그리고 입을 열었다가 다시 숨을 고르며 눈물을 쏟았다.하주원은 본인을 가녀린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하주원이 안지영과의 사건을 꺼내자 나태웅의 표정이 또다시 어두워졌다.“네가 먼저 찾아가서 안지영을 때린 거잖아. 아니야?”“아니야. 난 그저 오빠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대화 좀 나누다가 안지영이 갑자기 나를 때린 거야!”하주원이 울면서 얘기했다.눈물을 흘리면서 하는 말은 거짓말 같지 않았다. 하주원의 모습을 본다면 모두가 그걸 진짜라고 믿을 것이다.나태웅이 미간을 찌푸렸다.“안지영이 먼저 때린 거야?”하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안지영이 먼저 나를 때린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도 반격하지 않았을 거야.”나태웅은 속에 화가 부글부글 끓었다.안지영이 먼저 손을 올린 것이라면...안지영의 성질을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안지영은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면 성질을 부리니까 말이다.전형적인 강약약강이 아닌가.전에는 배준우가 복수할까 봐 두려워하더니, 하주원한테는 함부로 대하다니. 나태웅에게 있어서 안지영은 충분히 그럴 사람이었다.참지 않는 것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도 다 안지영이다.“먼저 돌아가.”“이모가 있을 때는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어. 이모가 보고 싶어. 엉엉...”하주원은 또 나태웅의 어머니를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나태웅은 머리가 아파서 한숨을 푹 쉬고 이마를 매만졌다.“먼저 돌아가. 안지영이 곧 사과할 거야.”“정말? 정말이야?”하주원이 울면서 물었다.“그래.”다 성인이니 본인이 한 짓에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특히 안지영은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앞으로도 더 막 나갈 것이다.나태웅의 대답을 들은 하주원은 만족했다.하주원은 아까 나태범과 나태웅의 대화를 다 엿들었다.하지만 그래도 하주원
밖에서 금방 돌아온 진이훈은 나태웅이 온 힘을 다해 핸드폰을 탁상 위로 던지는 것을 보았다. 핸드폰 액정은 마치 거미줄처럼 금이 가 있었다.진이훈은 속으로 핸드폰 수리점에 연락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주원 씨가 오셨습니다. 만나보실 겁니까?”진이훈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들은 나태웅은 그저 머리가 아팠다.미간을 누른 나태웅이 얘기했다.“들어오라고 해.”“네.”진이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손잡이를 돌리려던 순간, 진이훈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물었다.“아까 어르신께서 꽃을 주문하라고 하셨습니다.”“무슨 꽃?”“장미꽃이요. 내일 대표님 이름으로 안지영 씨한테 보낼 예정입니다.“...”그 말을 들은 나태웅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그년한테 꽃을 보낸다고? 이게 무슨 수단이지?’안지영이 다른 여자와 다르다는 것을 떠올린 나태웅은 숨을 깊이 들이쉬더니 얘기했다.“다른 방법을 알아보라고 해. 그년은 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진이훈은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억누르려고 애썼다.‘이런 상황에서도 그년이라고 부르시니...’“네.”진이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원수 같은 두 사람을 보면서, 진이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지금은 나태범까지 끼어들었으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진이훈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하주원이 눈물을 닦으면서 들어왔다.표정이 좋지 않은 나태웅을 본 하주원이 억울한 듯 속삭였다.“태웅 오빠.”나태웅은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을 쳐다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눈빛을 마주한 하주원은 저도 모르게 겁을 먹었다.하지만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과 헤어지면 안 돼? 안지영은 오빠한테 부족한 여자야.”“그럼 누가 나한테 어울리는데. 네가?”“태웅 오빠...”그 말을 들은 하주원은 얼굴을 붉혔다.그리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주원에게 있어서는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 대답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이모님이 얘기했었잖아
장선명은 바로 전화를 받아서 스피커폰으로 돌려놓았다.“나태웅, 설마 나한테 사과하라고 할 건 아니지?”장선명은 ‘사과’라는 두 글자에 힘을 주어 얘기했다.안지영은 그 두 글자를 듣고 표정이 굳어버렸다.나씨 가문은 사과를 받아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지 않나.나태웅이 요즘 안지영더러 계속해서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한 걸 떠올리니 안지영은 화가 치밀었다.전에는 나태웅이 이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인 줄 몰랐지만 이제야 알게 되었다.정말 솔로인 것이 당연한 사람이다.“오늘 나씨 가문에서 일어난 일에 관해서 설명을 해줬으면 하는데.”안지영은 장선명 옆에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하마터면 욕할 뻔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품에 안고 따뜻한 손으로 안지영의 입을 막은 후 고개 숙여 웃으며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쳐다보면서도 나태웅을 향한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장선명은 가볍게 웃었다.“나태웅 씨가 원하는 게 어떤 걸까? 내 약혼녀랑 같이 너네 가문 경호원한테 가서 사과라도 해야하나?”“...”“...”장선명이 오늘 나씨 가문에서 사람을 때렸으니 사과를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지금 장선명의 태도에서는 사과하려는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장선명이 약혼녀를 데리고 나씨 가문의 경호원한테 사과하러 간다니.“장선명,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아니면 경호원은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건가?”“하.”장선명이 크게 웃었다.“반응은 빠르네. 여태까지 네가 바보인 줄 알았는데.”‘바보’라는 단어에 전화기 너머의 나태웅이 턱에 힘을 꽉 주었다.숨소리마저 기분 나빠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장선명, 선 넘지 마.”나태웅이 이를 꽉 깨물고 장선명을 찢어 죽일 것처럼 말했다.“왜, 이 뜻이 아니었나?”틀린 건 아니었다.하지만 나태웅이 장선명더러 경호원을 찾아와 사과하라고 할 수도 없는 짓이었다.나태웅은 원래 장선명이 이렇게 하도록 할 생각이 없었지만 장선명이 그렇게 얘기하자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약간 난감해했다.“정말 못 맡은 거예요?”“맡았어.”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하지만 장선명은 그게 썩은 냄새인 줄 몰랐다. 그저 날계란의 냄새인 줄로만 알았다. “...”안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도대체 요리할 줄 아는 거 맞아요?”“너무 잘하는 건 아닌데, 너한테 만들어주고 싶었으니까.”장선명이 당당하게 얘기했다.안지영은 자기 귀를 의심할 뻔했다.‘요리를 해주고 싶은 게 아니라 죽이고 싶은 게 아니었을까?’“앞으로 요리하지 말아요.”안지영이 얼른 말했다.‘난 아직 오래 살고 싶어. 아니, 저번에도 요리하지 않았던가? 그때는 이 정도 실력이 아니었는데, 왜 이번에는 계란이 썩은 것도 몰랐지?’하지만 안지영은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아까 먹은 계란말이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길 지경이었다. 앞으로는 절대 장선명의 요리를 먹지 않을 것이다.“알겠어. 안 할게.”“앞으로는 고용인들께 부탁드려요.”안지영은 얼른 장선명을 끌고 주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집사에게 눈치를 줬다.고용인들은 얼른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안지영은 주방 쪽을 향해 외쳤다.“주방용품 여러 번 씻어주세요. 아니면 그냥 버려주세요.”고용인들은 안지영을 쳐다보면서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사모님.”“...”‘이런 오해를...’표정이 좋지 않던 장선명은 고용인의 말을 듣고 금세 미소를 지었다.안지영이 반박하려는데, 장선명이 안지영을 품에 그러안고 집사를 보며 얘기했다.“저 사람은 월급을 올려줘.”“네.”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그 고용인은 약간 멈칫했다가 장선명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감사합니다!”기뻐하는 장선명의 표정을 본 안지영은 장선명의 허리를 확 꼬집었다.장선명은 아파서 ‘습’하고 숨을 들이켰다.“이 여자 봐라? 남편을 죽이려고?”“우리 아직...”“어차피 곧 결혼할 거잖아. 웨딩드레스도 이미 정했는데.”장선명이 얘기했다.“...”웨딩드레스를 떠올린 안지영은 아무 말
장선명은 계속 토하는 안지영을 보고 다시 계란말이를 쳐다보더니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렇게 맛없는 거야? 토할 만큼?’흐뭇한 분위기는 얼마 가지 못했다.집사와 고용인들은 서로 난감해하면서 시선을 피했다.장선명은 안지영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안지영은 입을 헹구었지만 여전히 입에서 그 맛이 나는 것만 같았다.“우웩.”“...”‘또 토한다고? 그렇게나 맛이 없었어?’장선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계란말이를 입에 넣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이 없기에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계란말이를 씹는 그 순간, 장선명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이건 맛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장선명도 쓰레기통 옆에서 연신 구역질을 했다.“우웩.”주방 밖에 서 있던 집사와 고용인들은 그 모습을 보고 서로 눈치를 보았다.자기가 만든 것을 먹고 토하는 경우라니... 얼마나 맛이 없길래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5분 정도 지난 후, 안지영은 입가를 닦으면서 몸을 일으켰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장선명은 여전히 입을 헹구고 있었다. 입에 여전히 그 맛이 남아있는 것만 같았다.장선명은 안지영을 보면서 얘기했다.“미안해.”“그건 대체 뭐였어요?”안지영이 물었다. 이윽고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뭘 넣은 거예요?”“소금만 넣었을 뿐이야.”“그럴 리가요.”안지영이 바로 대답했다.소금을 많이 넣었으면 그저 짤 것이다. 하지만 계란말이에서는 아주 더러운 냄새가 났다.“...”장선명은 정말 소금만 넣었기에 억울했다.“그럼 계란이 썩은 건가?”장선명이 의아해하면서 중얼거렸다.“당연하죠. 계란이 썩은 건지도 몰라요?”아까 먹은 계란말이가 썩은 계란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메스꺼웠다. 장선명은 아까 계란말이를 할 때부터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게 정상인 줄 알고 그대로 진행해 버렸다.그런데... 냉장고에 썩은 계란이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안 집사.”“네, 도련님.”안 집사가 바로 앞으로 나와서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