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배준우의 옆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아주 여유롭게 지냈다.배준우가 하루에 여섯 끼씩 밥을 먹였기에 고은영은 산후조리를 하며 점점 더 피부가 하얘지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얼굴이 좋아졌다.그동안 량천옥은 사람을 보내 아기 물건과 고은영의 보약을 계속 가져왔다.하지만 고은영은 아무것도 몰랐다.이른 아침 고은영을 위해 주방에서는 몸보신할 수 있는 것들을 준비했다.고은영도 그런 것들에 대해 몰랐기에 그냥 주방에서 해주는 대로 맛있게 먹었고 얼마나 진귀한 음식들인지 몰랐다.한 달 동안 배준우는 란완리조트에서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오늘은 고은영의 산후조리가 끝나는 날이었기에 배준우는 그녀를 데리고 회사에 가고 싶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물었다.“아기를 데리고 가도 돼요?”배준우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굳어졌다.태어난 지 한 달 된 아기를 밖에 데리고 나가도 되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는 순간 잠자리를 두고 싸우던 날이 떠올랐다.고은영은 아기가 보고 싶어 밤에 배준우가 잘 때면 몰래 일어나서 아기를 안아 침대로 왔다.배준우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그럼 나도 안 갈래요.”배준우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이 계집애가 정말.’배준우는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사모님. 대표님하고 함께 병원에 다녀오세요. 지금 모유 수유도 안 하는데 굳이 아기를 데리고 갈 필요는 없어요.”고은영은 보름 동안 계속 아기에게 모유 수유를 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모유가 줄어들더니 결국 없어졌다.고은영은 배준우를 그렁그렁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말했다.“한 달 동안 준우 씨하고 있었으니까 아기하고 같이 있으면 안 돼요?”배준우와 옆에 있던 도우미들은 할 말을 잃었다.‘분명 대표님께서 집에서 사모님과 함께 있어 준 건데?’눈을 뜨고 거짓말을 하는 건 고은영을 이길 사람이 없었다.고은영은 중얼거리며 배준우를 바라보았고 그녀의 눈빛은 더욱 초롱초롱하게 빛났다.배준우는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그럼 데리고 가자.”이제부터 배준우에게는
배준우는 서류봉투를 직접 열어 안에 있는 서류를 꺼냈다.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한 서류들이었지만 량천옥이 배씨 가문에 들어오기 전에 일어난 모든 과거가 아주 명확하게 적혀 있었다.나태웅이 떠나기 전에 데려온 진청아는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진청아는 지난 수년 동안의 모든 과거를 아주 자세하게 조사했다.서류를 전부 읽은 뒤 배준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진청아를 바라보았다.“그러니까 량천옥하고 그 남편은 결혼하지 않은 거야?”진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당시 량일 여사님께서 상대가 가난한 화가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대하셨습니다.”반대한 이유까지 찾았다니 진청아는 정말 치밀한 사람이었다.“그 남자는?”진청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류에는 적히지 정확하게 적혀있지 않았지만 그 남자의 말이 나왔을 때 제3자의 관점에 있는 진청아는 뭔가 안타까운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량천옥 여사님께서 임신 5개월째에 량일 여사님이 데려가셨고 그 뒤로 량천옥과 그 남자분은 다시 만나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계속 량천옥 여사님을 찾으셨고 마침 찾은 그날 량천옥 여사님께서 배씨 가문에 시집을 오셨습니다. 그 남자분은.”여기까지 말한 진청아는 멈칫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배준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봤고 진청아는 고개를 숙이더니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남자분은 배씨 가문 저택 문 앞에서 돌아가셨습니다.”배준우는 진청아의 말을 듣고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그의 차가운 분위기가 잠시 깨졌다.진청아가 말을 이었다.“이 사실들을 량천옥 여사님은 모르고 계십니다. 하지만 량일이 아이를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계셔서 그동안 량일과 자주 트러블이 었었다고 합니다.”‘트러블이 있었다고?’배준우는 순간 머릿속에 당시 집에서 자주 싸우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 떠올랐다.모두 량천옥과 량일이 언쟁하는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애정이 깊은 모녀 사이로 비쳤지만 사실 집에서 어떤 사이인지 배준우는 그 누구보다
“꼭 계량해서 먹여요. 틀리지 말고.”량천옥은 걱정하며 당부했고 도우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명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량천옥은 몇 가지를 더 당부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고은영이 나타나서 도우미가 들고 있던 물건을 뺏어 들었다.그런 다음 물건을 다시 량천옥의 품에 던져줬다.원래는 평화롭고 조용하던 복도가 갑자기 폭발한 듯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뿜어냈다.고은영이 나타난 것을 보고 량천옥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도우미도 깜짝 놀랐다.“사모님.”그 당황한 말투가 고은영을 더욱 자극했고 결국 그녀는 이성을 잃고 말았다.고은영은 량천옥에게 분노했지만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할 수 없었다.량천옥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은영과 두 눈이 마주치는 찰나에 고은영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바로 느낄 수 있었다.원래도 가슴이 철렁했는데 그 눈빛을 마주하자 이제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없었다.“은영아.”“그건 뭐죠?”고은영은 차갑게 물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고은영은 직접 겪었고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은영은 량천옥이 뭔가를 도우미에게 전해주는 것을 보고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이 여자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고은영의 방어적인 질문을 들은 량천옥은 심장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예전에 그녀가 고은영의 목숨을 앗아가려고 했던 것만큼 지금은 뼈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량천옥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부여잡으며 말했다.“내가 널 해치려고 한다고 생각하니?”량천옥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이에 경계하고 있던 고은영은 어리둥절했다.‘아니 지금 이게 뭐야? 꼭 내가 량천옥을 괴롭히는 것 같잖아? 무슨 뜻이지? 지금은 또 수단을 바꾼 건가? 이건 너무 이상한데? 자지가 나쁜 사람이면서 날 나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오랫동안 참아온 량천옥은 고은영이 계속 자기를 두려워하는 태도에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이렇게 눈앞에서 보니 그
한편 안지영은 아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번 플라자 온천에서 휴식을 하고 돌아온 뒤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의심할 여지도 없이 바로 나태웅 때문이었다.안지영의 말에 따르면 나태웅은 인간다운 일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이때 안지영은 고은영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회의실에서 나오며 고은영에게서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고은영의 말을 들은 안지영은 순간 표정이 어두워졌다.“네 말은 량천옥이 널 또 해치려고 했는데 잡히니까 눈물을 흘렸다고? 네가 말한 사람이 량천옥이 맞긴 한 거야?”량천옥이 고은영을 해치려고 했다는 것은 안지영도 믿었다.하지만 안지영은 량천옥이 울었다는 고은영의 말은 믿을 수 없었다. 량천옥은 배씨 가문에서 쫓겨나면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미친 듯이 배항준에게 복수했던 사람이었다.그런 사림이 지금 고은영이 몇 마디 했다고 눈물을 흘린다고?그렇다면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우는 것일까? 배준우에게? 고은영을 정말 괴롭히려고 했다면 배준우가 정말 량천옥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 걸까? 이건 자신의 발등을 찍는 일이었다.고은영이 말했다.“량천옥이 맞아. 넌 내가 방금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 거야. 꼭 내가 량천옥을 괴롭힌 것 같았다니까?”이에 고은영은 정말 어이가 없었고 안지영도 마찬가지였다.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럼 너 조심해야 해. 그 여자 속셈을 알 수가 없잖아.”안지영은 너무 바빠서 완전히 잊고 있었다.당시 고은영이 강성을 떠나기 전에도 말했었지만 량천옥이 그린빌 문 앞까지 쫓아왔었다고 했다. 고은영은 량천옥이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줄 알았지만 량천옥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돌아갔다고 했었다.하지만 지금 안지영은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기에 고은영의 말을 듣고도 분석할 여력이 없었다.고은영은 핸드폰을 손에 든 채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도 조심할 거야.”량천옥을 경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얘기였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말하다가 안지영이 너무 바빠서 전화를
현재 하늘 그룹은 예전 장부뿐만 아니라 현재의 장부도 모두 심사 단계에 들어갔다.심사 단계에서 나태웅이 이기게 되면 안지영은 정말 비참해졌다. 그녀는 거액을 배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나태웅과 더 깊게 얽히게 될 수도 있었다.여기까지 생각한 안지영은 호흡이 불규칙해졌다.나태웅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응 나도 알고 있어. 네가 지금 하늘 그룹의 대표니까 당연히 너겠지.”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를 악물며 그를 째려봤다.그녀는 너무 화가 나서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그녀는 동영그룹에서 유일하게 법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다 배웠다.하지만 나태웅은 지금 그녀와 법으로 싸우고 있었다.안지영은 이번에 장선명의 장난이 이렇게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길 바랐다.나태웅은 말이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내가 고소를 취하해주길 원해?”안지영이 물었다.“그렇게 해줄 거예요?”안지영은 나태웅이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나태웅은 응이라고 대답하고서는 말을 이었다.“불가능하진 않아.”이 말을 들은 안지영은 순간 두 눈이 빛났지만 이어지는 그의 말에 한숨을 쉬었다.안지영은 나태웅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전체적으로 봤을 때 나태웅은 정말 떨어지지 않는 껌 같은 존재였다.나태웅은 안지영이 가슴 아파하는 표정을 바라보며 싱긋 웃었다.“장선명하고 파혼해. 그럼 널 놔줄게.”그 말에 안지영은 바로 차가운 한숨을 쉬었다.그녀는 나태웅이 이렇게 착할 리가 없다는 것을 이미 예상했다.이 말은 완전히 그녀를 화로에서 다른 화로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과 같았다.그녀가 파혼하자고 해도 장선명이 그녀를 놓아줄까?누구를 자극하면 안 되는지 안지영은 마음속으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지금 이 순간 나태웅이 말하지 않아도 이런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기에 너무나 그가 미웠다.그녀와 장선명의 사이는 비록 지금 장선명이 그녀에게 잘해주고 있었지만 그녀는 장선명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
플라자 온천에서 돌아온 뒤 나태웅은 그녀를 고소했고 더는 그녀를 만나러 오지 않았다.안지영은 이번에는 나태웅이 법을 사용해서 관계를 정리하려는 줄 알았다.그런데 오늘 나태웅이 찾아와서 만난 뒤에 안지영은 마음속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태연하게 물었다.“나태웅이 뭐라고 했어?”안지영이 화를 내는 것에 비해 장선명은 나태웅의 온갖 수단에 항상 태연했다.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뭐라고 하겠어요? 날 고소한다고 하죠.”“이미 고소한 거 아니야? 너한테 알려주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안지영의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그러니까 말이다.고소장을 받은 뒤 그녀가 아직 나태웅을 찾아가지도 않았는데 나태웅이 먼저 그녀를 찾아왔다.비록 고소장을 받은 그녀는 장선명의 앞에서 그를 탓하진 않았지만 장선명은 은연중에 안지영이 뭘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장선명은 가냘픈 그녀의 손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응?”“이건 걱정하는 게 아니라 화가 나서 그래요.”그녀는 정말 화가 났다. 어떻게 나태웅을 만나서 지금까지 매듭이 풀리지 않는 걸까?지난번에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태웅은 안지영이 그를 무시하면 할수록 더욱 그녀에게 빠져들 줄 알았을까? 도대체 이건 어떻게 된 일일까?안지영은 나태웅 때문에 너무 머리가 아팠고 쉽게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장선명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정말 걱정 안 해?”“안열 씨가 말했어요. 선명 씨는 이미 이런 상황까지 다 예상하고 처리했을 거라고.”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이 정도로 날 믿는 거야?”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에게는 지금 장선명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비록 장선명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며 그녀를 달랬지만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났다.피그스에서 있었던 일도 그녀는 아직 나태웅에게 복수하지 않았다. 그녀는 피그스에거 돌아온 뒤로 하늘그룹의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나태웅
이지훈은 습하고 소리를 낸 뒤 말을 이었다.“나태웅 대표님을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태웅이가 또 무슨 사고 쳤어?”나태현의 말투는 바로 차가워졌고 순간 머리가 아파졌다.나태웅은 정말 동영그룹에서 돌아온 뒤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예전의 진중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찾아볼 수 없었고 지금 나태웅이 하는 일들은 점점 더 이해하기 어려웠다.정확히 말하면 나태현은 나태웅이 뒤늦게 반항하는 것 같다고 느꼈다.16살 때도 하지 않던 반항을 지금 하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이 나이에 반항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이지훈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오늘 오전에 하늘그룹에 다녀오셨는데 이번에는 안지영 아가씨께서 나태웅 대표님을 고소했습니다.”“태웅이를 고소했다고? 설마 성폭행이야?”나태현은 무의식적으로 목소리가 높아졌다.이 순간 그는 정말 나태웅을 때려버리고 싶었다.플라자 온천에서 돌아온 뒤로 나태웅은 안지영을 만나지 않았다. 이에 나태현은 드디어 나태웅이 마음을 접은 줄 알았다.그런데 결국 나태웅은 오전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하늘그룹에 다녀온 것이었다.제발 짐승보다 더 나쁜 짓을 저지르진 않았길 바랐다. 만약 그렇다면 나태현도 더 이상 나태웅을 관리할 수 없었다.지금도 통제할 수 없는 놈을 겨우 통제하고 있었다.성폭행이라는 단어에 이지훈은 깜짝 놀랐다.나태현은 몸을 일으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태웅이 어디 있어?”“안 계십니다.”이지훈이 나태현의 뒤를 따르며 이어서 말했다.“오전에 하늘그룹에 가셨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이런 사고를 쳐놓고 숨어?’나태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머리가 아팠고 이미 마음속으로 어떻게 나태웅을 찾아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다.다른 한편 응접실에서는 왕여가 경찰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는 나태웅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다.이에 나태웅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왕여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왕여는 나태현이 온 것을 보고 마치 구세주를 본 것 같은
고은지는 오늘 외출할 때 일기 예보를 보지 않고 집을 나섰다.아침에 밖에 나왔을 때는 아직 해가 쨍쨍하게 빛나고 있었기에 고은지는 딸을 데리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원래는 의사 선생님만 뵙고 돌아가려고 했지만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백화점을 지나다가 고희주가 인형뽑기 기계 안에 들어 있는 토끼 인형을 갖고 싶어 했다.고은지는 고희주가 토끼 인형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결국 그녀는 공을 들여 토끼 인형을 뽑아주었다.고희주가 핑크색 토끼 인형을 안고 좋아하는 모습을 본 고은지는 마음속으로 죄책감이 들었다.예전에 조씨 가문에 있을 때는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장난감은 말할 것도 없고 외식도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그녀가 독립해서 어렵게 나왔는데 오늘은 딸과 함께 제대로 맛있는 한 끼를 먹고 싶었다.그런데 밥을 다 먹고 나와보니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두 사람 다 그저 비를 맞고 있을 뿐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희주의 작은 얼굴에 보기 드문 미소가 번졌다.고은지는 화가 나서 품에 안긴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이렇게 흠뻑 젖었는데 아직도 웃고 있어?”고희주는 작은 손을 들어 엄마의 머리를 막아주며 말했다.“이렇게 하면 엄마가 안 젖겠지?”고은지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엄마와 딸이 이렇게 지낸 지가 얼마 만일까?조영수와 이혼한 뒤로 고희주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고 다시는 고은지를 향해 웃지 않았다.이 순간 고희주의 따뜻한 행동에 고은지는 있는 힘껏 딸을 꽉 안아줬다.“엄마는 비 맞는 거 안 무서워.”“근데 난 엄마가 감기 걸릴까 봐 무서워.”감기라는 말에 고은지는 얼른 딸을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뛰어갔다.비가 내릴 때는 택시를 잡기 어려웠기에 고은지도 희망을 품지 않았다.버스 정류장에는 사람이 가득했다. 누군가 고은지의 발을 밟았고 그녀는 발끝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이내 참으면서 다시 똑바로 섰다.고희주는 예민한 아이였기에 금방 고은지의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