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웅이 몇 통의 전화를 걸든 안지영은 받지 않았고,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나머지 당장에 사람을 불러 그녀가 어딘지 알아내라고 시켰다.그러나 그가 채 그녀의 행방을 알아 내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뉴스가 터져 강성 시내를 아주 홀라당 뒤집어 놓고 말았다!아직 잠들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뉴스를 확인하고는 놀라서 뒤집어졌다.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루머가 자자한 장 가의 넷째 도련님 장선명이, 새벽에 갑자기 결혼을 발표한 것이었다.바로 그 배 가의 큰 도련님보다도 조금 더 다가가기 힘든 존재라는 장 가의 넷째 아들 말이다!나태웅이 그 뉴스를 확인했을 때는 이미 댓글 창이 99만 개를 넘어갈 정도로 미어터지는 상태였다. 그것만 봐도 이 뉴스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대표님.”안지영의 행방을 찾아오라는 불호령에 새벽에 잠자리에서 끌려 나온 비서실장 왕여가 다가와 공손하게 손을 모아 섰다.나태웅이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으며 물었다. “애는 어딨어?”“방금 그랜드 마운틴에서 나와서 안 가 쪽으로 갔다고 합니다.”왕여가 대답했다.그랜드 마운틴? 장선명이 사는 곳 아닌가?지금 떠났다고? 이제서야? 이 미친 여자 같으니라고!안 씨네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에 나태웅은 당장 외투를 챙겨들고 날듯이 밖으로 곧 바로 뛰쳐나갔다.그 기세는 당장이라도 안지영을 목 졸라 죽일 듯했다.….한편, 이제서야 배준우와 뭔가 말이 통했다고 느낀 고은영은 조금 마음이 놓여 처음으로 푹 잠을 잤다.아침 식사 자리에서도 그녀는 그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조심스럽게 배준우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은 여전했다. 그전에 얼마나 호되게 놀랐는지 여실히 보이는 대목이었다.“뭘 그렇게 봐?”“준우 씨 기분이 어떤지 보고 있었어요!”그녀는 정말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배준우가 뱃속의 아이를 원하는 게 맞는다고 느껴진 지금에서야 간신히 무서운 게 조금은 없어졌고, 그는 그녀가 하는 짓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해서
”…”당연히 더 이상 어쩔 수 없게 되었다!장선명과 배준우, 이 둘이 아주 가까운 건 익히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런 장선명이 나선다면야, 배준우로서도 더 이상 안지영을 어쩌기는 힘들어지는 것이다.고은영이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봤다.“뭘 또 그렇게 쳐다봐?”“이거….. 혹시 지영이가 협박당한 건 아닌가요?”“그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지. 걘 확실히 너보단 똑똑한 거 같던데?”배준우가 낮게 웃었다.그러나 안지영이 똑똑하다고 하는 그 뒤를 이어 하고 싶던 말은 하지 않았다.안 씨 네 아가씨가 똑똑한 건 확실히 똑똑하긴 하지만 요 몇 년간 고은영에게 영향을 받은 것도 적지는 않기 때문이다.…..한편 고은영은 마냥 마음을 놓지는 않아서, 배준우가 위층으로 서류를 가지러 간 사이에 안지영에게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어젯밤에 하도 일이 많았다 보니 그때 그녀는 한창 잠에 빠져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혼몽한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은영아.”“너, 너 결혼해?”"약혼이라고 약혼…. 약혼 몰라?”고은영의 말을 듣자마자 안지영은 그녀가 뉴스를 봤다는 걸 알아 차렸다.전날 장선명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혹시라도 그가 나중 가서 다른 소리를 할까 봐 바로 기사를 내자고 한 것이었다.우선 약혼부터 하고, 3달 뒤에 결혼하자는 말에도 그가 군말 없이 다 알겠다고 해서 오히려 안지영이 약간은 황당해질 지경이었다. 이렇게 쉽게 말이 통하는 사람인 줄은 몰랐는데!이렇게 되면 확실히 배준우가 끼어들어 안 씨 집안에 뭔 수작질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이다.아무래도 이제는 그녀를 건드리는 게 곧 제 형제나 다름없는 장선명을 건드리는 일이니, 화풀이 한번 하자고 형제지간의 좋은 감정까지 깨기에는 배준우 입장에서도 별로 가치 있는 일이 아닐 테니까.이게 안지영이 열심히 배준우와 사이좋은 사람들만 찾아다니면서 선을 보던 이유이기도 했다.“약혼이어도…. 너, 혹시 장선명 씨 좋아해?”“그러는 넌. 너는 배 대표님이 좋니?”안지영은 어이
지금의 안지영으로서는 당연히 나태웅이 그 전날 야밤에 냅다 안 씨네 집으로 가서 밤새 떠나지도 않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물론 그 방문 덕에 안진섭 역시 밤새 한숨도 못 잔 것은 당연지사였다.때문에 그의 목소리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내 차마 사람 불러서 널 끌고 오게 하고 싶지는 않으니 당장 집으로 와라!”“아… 알았어요!”그의 엄한 말투를 들으니 사실 안지영도 겁 없이 큰일을 쳐놓은 것치고는 꽤나 겁이 났다.아빠가 엄하게 굴 때는 반드시 일이 커지고 난 다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예전에 공부를 시킬 때도 그랬고, 아무튼 그가 엄해질 때는 감히 반박할 엄두도 안 나기도 했고, 말을 안 들어서도 안된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안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본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홉시가 조금 넘어가던 시각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뭔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느꼈다.역시나, 나태웅이 거기 있었다!그는 한창 제 아빠인 안진섭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안진섭의 얼굴은 단단하게 굳어 있기는 했지만 공손하기 그지없어서 그녀는 그만 약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나태웅 제가 뭐라고? 저 까짓 게 뭐라고 감히 아빠를 저렇게 긴장하게 만들 일이 있단 말인가?안지영이 돌아온 것을 본 안진섭의 얼굴이 더 굳었다.“왜 이제서야 오는 거지?”“아빠 전화 끊자마자 바로 온 거예요."안지영이 우물우물 대답했다."어젯밤부터 전화도 안 받고, 너, 너 어린 여자애가 무슨 야밤에….”거기까지 말한 그의 입이 꾹 다물고 말았다. 외동딸 하나에다가 아내와도 일찍 사별한 탓에 더욱더 애지중지하면서도 엄하게 길러온 딸이었다. 그런 딸이 야밤에 남자를 찾으러 갔다는 둥의 그런 말을 안진섭은 차마 제 입으로는 꺼낼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어쨌든 이제 배 대표님이 저희를 곤란하게 할 일은 더 이상 없을 거예요. 아빠도 마음 놓으세요.”“너…..”배준우가 행
나태웅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안지영도 그녀대로 그의 온몸에서 풍기는 분노가 대체 뭣 때문인지 알 수가 없어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이디어는 본인이 줘 놓고, 내가 하란 대로 잘 해서 해결을 해 냈는데 기뻐하기는커녕 화만 내다니.“그리고, 약혼식은 일주일 뒤에 하니까 와 주세요. 샴페인도 있고…."약혼식에 뭔 놈의 얼어 죽을 샴페인이야!나태웅은 그 순간만큼은 아주 그녀를 잡아먹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옛말에 사람 사귈 때 가려 사귀어야 한다더니 역시 조상님들 말에는 틀린 구석이 하나 없다. 고은영 패거리와 어울려 다니더니 머리까지 완전 고은영처럼 되어 버린 듯했다.그대로 차에 타고 떠나버리는 나태웅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어 턱을 만지작거렸다.“정말이지 남자 마음은 알 길이 없네!”한마디 투덜거림을 마치 듣기라도 한 듯 귀신같이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당장 출근이나 해!]전화도 아니고 문자로 날아온 텍스트 한 줄로도 그의 분노가 느껴졌다.오늘 출근하면 뭔가 나태웅이 사심 가득한 야근을 시킬 것 같다는 아주 불안하고도 그럴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정말이지 남자라는 녀석들은 무시무시했다! 고은영과 배준우의 관계를 옆에서 보면서도 했던 생각이지만, 역시 다시는 남자들을 건드리지 않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였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눈에 안진섭이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들어왔다.요 몇 년간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흡연이었다.그의 앞에 놓여있는 재떨이에 어젯밤부터 피워 냈을 수많은 담배꽁초들이 가득해서 그녀는 조금 마음이 먹먹해졌다. “아빠!”“나 대표님이랑은 이야기 잘 했어?”안지영은 그가 무슨 이야기를 ‘잘’ 했느냐고 묻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그냥 고개를 끄덕이자 안진섭이 “후”하고는 큰 한숨을 내쉬었다.“그 일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 장 씨네 넷째 도련님은 꽤 괜찮은 분이세요.”"네가 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봤길래 보자마자 좋은지 나쁜지를 안다는 것이냐!”장선명이 좋은 사람인지 아
한편 배씨 가문에서 배준우의 부름하에 장선명이 찾아왔다.배준우가 회의하러 간 걸로 알고 있던 고은영은 집 앞 슈퍼에서 밀크티와 간식을 사들고는 조용히 들어오는 길이었는데 뜻밖에도 집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본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회… 회의 참석하러 가신거 아니었어요?"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말을 더듬었고, 엉겁결에 손을 뒤로 숨겨버렸다.배준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뭘 산거야?"고은영이 대답했다. "아, 배고파서 먹을 것 좀 사왔어요."비록 아침 일찍 란완 리조트에서 많이 먹긴 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배진우는 계속해서 캐물었다. "그래서 뭘 샀다고?""밀크티랑 감자튀김이요!"사실 이 시간대에 맛있는걸 사기가 너무 어렵긴 했지만, 하도 배고팠던 그녀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배진우가 그녀를 불렀다."이리 와!"그의 말투는 여전히 단호했다.갑자기 싸늘한 분위기에 장선명도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며느리가 뭐 좀 먹겠다는데 그것까지 간섭하는거야? 고은영은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배진우에게 다가갔다."왜, 왜 그러세요?""가져와!""네?"배진우가 무서운 눈빛으로 그녀에게 무언의 압박을 주자 눈치 빠른 고은영은 재빨리 밀크티와 감자튀김을 그의 앞에 놓았다.혼자 몰래 먹으려고 산 간식이 눈 앞에서 뺏기니 그녀는 좀 속상한 마음이 들었다.그때 배진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넌 임산부라서 이런 거 먹으면 안돼.""네?"아니, 진짜 못 먹는다고?사실 고은영은 임신에 대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여태 먹고 싶은건 맘대로 먹었었다.그런데 갑자기 배진우가 단호하게 굴자 그녀는 어이가 없었다."전 그럼 뭘 먹을 수 있는데요?""들어가서 쉬기나 해. 진청아가 널 데려다줄거야.""제가 산 밀크티인데...!""뭐라고?"고은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배진우가 말을 끊었고, 그녀는 하는 수 없이 꾹 참고 고개를 끄덕였다."알, 알겠어요!"애절한 눈빛으로 자신이 사온 밀크티와 감자튀김을 바
성격상 사무실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배진우는 여태 직원들이 자기 몰래 이렇게 먹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밀크티를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장선명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랑 파혼을 해야 될 것 같아."아무 생각 없이 담배를 피우던 장선명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영문도 모른 채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전에 안지영과 있었던 일에 대한 해명도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파혼이라니!그러자 배진우가 입을 열었다. "그 여자 지금 천락 그룹에서 일하고 있어.""그거랑 뭔 상관이야? 내가 설득해서 걔만 원한다면 우리 회사에 와도 되잖아."배진우의 말에도 장선명은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여자가 굳이 일자리 걱정을 왜 한단 말이냐. 남자가 알아서 먹여 살리면 되지. 배진우는 영문을 알 리 없는 장선명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나태웅이 강제로 그 여자를 자기 회사로 데려왔다고!"장선명은 그만 말을 잇지 못했다.나태웅이 안지영을 협박했다고?!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나태웅이 무슨 이유로 안지영을 천락 그룹으로 데려간거지?"그 사람은 충분히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사람 하나 제대로 파는 놈이야.” 나태웅이 사람을 파내는 거에 대해선 전에 들은 적이 있었다. 진청아도 그가 파낸 사람이었다.근데 전에는 왜 몰랐을까... 나태웅이 사람을 파는 수단에는 이렇게 협박의 방식도 있다는것을. 설마 그동안 이런 식으로 해왔던거야?그럼 정말 무서운 사람이네. 협박을 당해온 사람들은 모두 그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거나 마찬가지잖아.그의 말에 배진우는 멍해졌다. 그가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이때 장선명이 말했다."이렇게 가만 놔둬서는 안돼. 어찌 됐든 안지경은 배씨 집안 사람인데 이렇게 그냥 지켜보기만 할거야?”배진우는 골치가 아파났다.곧이어 그 또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근데 그 놈이 단지 사람만을 파고 있다고 생각해?""그럼 뭔데?""그만큼 안지영한테 관심이 있다는 거야."
장선명은 당시 안지영이 직접 자신을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망설이지도 않고 그녀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금 그를 찾아왔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배진우가 말했다. "이 사실을 알면 나태웅이 가만 있지 않을 거야."여태 안지영을 몰아붙이면서 그녀를 압박해온 나태웅이었기에 어젯밤에 그녀가 이렇게 소란을 피운걸 알게 되면 아마 잔뜩 화가 날게 뻔했다.하지만 장선명은 단호했다. "그 자식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없어. 안지영은 이미 나의 약혼녀야."장선명은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여자를 만나기 귀찮기도 했다.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자신이 좋다고 나타난 여자가 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때 배진우가 말했다."됐어, 그럼 가!""뭐라고?""오늘 일은 없던걸로 해.""너... 아무리 나태웅이 오래동안 너의 오른팔로 지냈다고 해도 고작 그 자식때문에 친구인 나를 버리겠다는거야?”장선명은 어이가 없었다.이런 사소한 일 따위에는 흔들리지도 않던 배진우가 웬 일이야? 그러자 배진우가 말했다. "난 이번 일에 끼어들고 싶지가 않아!""그래, 끼어들기 싫으면 끼어들지 마. 그럼 난 먼저 갈게. 그리고 나태웅한테 제대로 전달해. 안지영은 내 약혼녀니까 더 이상 선 넘지 말라고."장선명은 말을 마치고는 자리를 떠났다.하지만 배진우는 이 얘기를 나태웅에게 전할 생각도 없었고, 오늘 장선명이랑 만난 사실도 말하고 싶지가 않았다. 장선명의 굳건한 태도에 대해서는 더더욱 말하고 싶지가 않았고.한편 진청아는 임산부에게 좋은 과일을 사들고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바로 그때, 마침 집을 떠나는 장선명을 만났다.진청아가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임에도 불구하고 장선명은 아무 말 않고 도도하게 그녀의 곁을 지나갔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많이 해본 덕에 진청아는 딱히 신경 쓰지도 않았다."배 대표님, 요구하신 거 사왔습니다.""갖다 줘.""네."진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내심 고은영이 부러웠다. 강성시에
고은영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제가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아니요, 괜찮아요. 모두 대표님께서 계산한겁니다.""대표님이 사라고 했다고요?" 고은영은 그제야 알았다.사실 진청아는 과일을 들고 들어올 때부터 배진우의 지시라고 알렸었다는 것을. 전에는 항상 자신이 대신해서 사온 물건들은 다시 사비로 메꾸어야 한다고 했었기에 고은영은 내심 기분이 좋아졌다. 곧이어 진청아가 방에서 나간 후, 고은영은 베란다에 앉아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그녀는 딱히 편식하는 편이 아니라 엄청 배가 고픈 상황에는 뭘 먹어도 괜찮았다. 하지만 빼았긴 음식들중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코 밀크티였기에 사비로 4천원이나 주고 산 밀크티를 끝내 뺏겨서 먹지 못했다는 생각에 그녀는 다시 속상해졌다. 한편 배진우는 서류를 처리하고 있었다.이때 진청아가 그에게 보고했다. "대표님, 사모님께 제대로 전달해드렸습니다. 엄청 좋아하세요.""그래, 잘했어. 앞으로는 그녀가 뭘 좋아하는지 꼭 다 기억해.""네, 알겠습니다!" 진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배진우가 고은영에 대한 감정이 꽤나 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을 할때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대표가 별 능력 없는 비서를 계속 곁에 두는 것은 감정이 있다는 것 빼고는 설명이 되지가 않았다.바로 이떼, 진청아는 배진우 앞에 놓인 밀크티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그녀 또한 고은영이 방금 사온 밀크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역시 그 어떤 남자도 아내가 생기면 사람이 아예 변하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시각, 천락 그룹으로 돌아온 안지영은 상황이 그렇게 좋지가 않았다.정오가 다 된 시점, 장선명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점심에 나랑 같이 내 친구 만나러 가자.""네?""잊은건 아니지? 넌 내 약혼녀야. 어디를 가든지 같이 가야하지 않겠어?"비록 약혼 소식만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현재 강성시 전체는 안지영이 장선명의 약혼녀라는 소식으로 들썩이고 있었다.오전 내내 바빠 머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