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은 고은영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오늘 어떻게든 이 일을 확실히 해야 해.”배씨 집안이 이렇게나 큰데, 어떻게 사람 하나 포용할 수 없는 것일까?어르신은 배씨 집안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고은영은 애가 타서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막았다. “난 그런 거 필요 없어요. 그냥 지금 돌아가요!”그녀는 배준우에게 그날 밤 남성에서의 그녀가 자기라는 걸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임신까지 했는데, 그 사실을 배준우가 다 알게 된다면 어떤 결과일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비록 이미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비참하게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졸업해서 지금까지, 그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강성 도시에서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이 배준우라는 것이다.그리고 이번 란완 리조트에서 그의 강대함을 한 번 더 확실히 느꼈다.그녀가 계속 이런 나약한 말만 해대자, 어르신은 화가나 숨도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너 좀 봐. 지금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네 할머니가 네가 이렇게 못난 줄 알면 당장이라도 관에서 나오려고 하시겠어!”할머니의 말이 나오자 고은영은 더욱 세게 눈물을 흘렸다.고은영이 우는 모습을 보니 어르신도 마음이 아파왔다.“우리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대체 뭐가 무서워서 이러는 거야?”“영감님은… 몰라요. 이건 다 내가 잘못한 거라고요!”고은영은 어르신의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재빨리 말했다.어르신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전에는 겁만 많은 줄 알았더니, 멍청하기까지 하다니!“그 놈이 네 배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네가 무슨 잘못이 있어!”“아니, 제가, 제가..... “고은영은 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네가 뭐?”“제가 그런 거예요. 대표님은 몰라요.”“뭐?”그녀의 이 충격적인 말에 어르신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고은영은 고개를 숙이고는 눈을 질끈 감고, 그날 밤 남성에서 벌어진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주었다.얘기가 점점 뒤로 갈수
잘못을 저지른 쪽이 배준우가 아니기 때문이다.어르신은 그 뒤에 발생한 일도 대충 다 들었다. 완전히 엉망진창인 상황이었다.그녀의 이런 실수는 산전수전 다 겪어본 어르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배가 불러오고 있는 고은영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네가 임신했으니까 그 자식이 널 책임져 줘야지.”“내가 먼저 실수로 그런 거라고요. 절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척 감사한 일인데, 저한테 책임을 지라니요!”고은영은 억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녀도 할머니의 말처럼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그녀 마음속에 행복이란 어떤 정의일까? 퇴근할 때 마중 나올 사람이 있고, 아플 때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는 것이다!그리고 임신 했을 때도 남편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어야 했다.그러나 지금 그녀는 행복하기는 커녕, 임신 사실을 배준우에게 들켜 회사에서도 잘리고, 집과 저축해둔 돈도 다 빼앗길까 봐 매일 가슴을 졸이며 살고 있다!생각만 해도 서럽고 억울했다.“이런 얘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제발 돌아가요!”지금 고은영은 어떻게든 어르신을 여기에서 소란을 피우게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이다.어르신도 비록 화가 났지만, 고은영의 불쌍한 모습에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마음의 울분을 가라앉힐 수 밖에 없었다.원래 그는 배준우에게 가서 결판을 낼 생각이였다.하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보니, 이 일이 배준우에게 알려져서 좋은 결과가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오늘은 먼저 돌아가마!”어르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어르신이 마침내 돌아가겠다고 하자, 고은영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네, 그럼 제가 바래다 드릴게요.”“아니, 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나 빨리 생각해 놔!”어르신은 여전히 도망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숨어서 살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제가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걱정 마시고 조심히 들어가세요!”고은영은 그저 빨리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었다.지
사무실로 들어온 뒤, 배준우는 그녀를 안고 소파에 앉아 그녀의 턱을 꼬집으며 말했다.“그렇게나 나랑 이혼하고 싶은거야?”“아니, 그게, 장항 프로젝트를 이미 넘겨받으셨잖아요!”전에 그렇게 합의했었다. 배준우가 해외 프로젝트를 손에 넣기만 하면, 두 사람은 이혼할 수 있다고 말이다.해외 프로젝트만 손에 넣으면 더 연기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다!그때, 배준우가 말했다.“천의만 손에 넣으면 바로 이혼해!”명확하지 않은, 뭔가 얼버무리는 말투였다.“언제 가질 수 있는데요?”글쎄. 본가의 태도를 봐야지. 빠르면 한두 달이고.”만약 느리면? 애를 낳을 때가 되지 않겠는가?공느영은 크게 숨 한번 들이마시고는 배준우를 멀뚱멀뚱 쳐다보았다.“이혼하지 않으면 손에 넣을 수 없어요?”“그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야.”배준우가 담담히 말하자 고은영의 마음은 더욱 혼란스러졌다.느린 시간을 말할 것도 없이, 빠르면 한두 달이라 해도 거의 그녀의 출산 날짜와 가까운데, 어떻게 그렇게!“저 그럼 거절해도 되나요?”“그러든가!”배준우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 모습에 고은영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바로 배준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럼 네 집과 저축해둔 돈들 다 나 줘.”“.....”돈 얘기를 꺼내자 마음속에 있던 약간의 기쁨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나 버리고 말았다.이건 정말 너무해, 이렇게 큰 보스가 그 깟 집과 돈이 부족할까?그녀는 마음속의 분노를 참으며 배준우를 쳐다보았다.그녀의 이런 모습이 배준우는 오히려 재미있었다.정말 놀리지 못하겠다니까!“왜요?”“우린 파트너인데, 네가 중간에 나가면 내가 분명히 손해를 볼 거 아니야?”“그 정도의 손실은 대표님한테 아무것도 아니잖아요!”“난 사업가야. 절대 손해 보는 일은 안 해.”고은영은 말문이 막혔다.배준우가 강성에서 어떤 존재인지 뻔히 다 알고 있는데.....!영감의 말처럼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하필 배준우를 건드려서.지금 이렇게......!고은영이 아무 말도 안 하
고은영이 진지한 얼굴로 그런 얘기를 하자 배준우 눈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너는 배씨 본가의 사람들이 다 바보로 보여?”“......”“너처럼 골칫덩어리 같은 존재를 분명히 수시로 지켜보고 있을 거라고!”그래서 이혼하면 안되는 거야?고은영은 마음이 너무 불안했다.특히 아무리 빨라도 한두 달이 걸린다는 배준우의 말 때문에 말이다. 게다가 량천옥의 까다로운 정도를 생각하면,전에 그녀에게 장항 프로젝트를 내놓으라고 했을 때도 그렇게 오랫동안 물고 버텼는데..! 천의는 그녀의 목숨이나 다름이 없는데, 당연히 이번에도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그걸 지키려고 할 게 뻔했다.정말 골치가 아팠다.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기에 순간적으로, 배준우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큰 비밀을 혼자 안고 있을 생각을 하니 정말 끔찍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씨 가문, 그리고 자기 집과 저축해둔 돈과 관련되지 않았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속이지도 않았을 것이다.배준우는 오후에 회의가 잡혀 있었다.그는 고은영이 잠이 들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휴게실에서 나왔다.휴게실의 문이 닫히자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고은영이 침대에서 일어났다.그녀는 조심스럽게 휴게실 문을 열고 배준우가 사무실에 없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살금살금 들어왔다.그녀가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자 마침 안지영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지영아!”고은영이 울먹이는 말투로 말했다.그녀는 사실 이렇게나 마음이 여린 사람이다. 그래서 안지영이 계속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있다. 사실, 예전에 학교에 있을 때도 안지영이 항상 그녀를 감싸 주었다.고은영의 이런 말투를 들으니, 안지영은 머리가 아파왔다.“또 왜 그러는데?”“대표님이 이혼을 안 해줘!”"뭐? 장항 프로젝트는 이미 다 끝나지 않았어? 근데 왜 아직도 이혼을 안 해주는건데?”안지영이 흥분하며 말했다.그동안 그녀도 장항 프로젝트가 끝나기만 기다렸다.그녀
“그래도 돼?”“......”사실 당연히 안 된다!만약 안지영의 아버지가 알게 된다되면, 그녀는 그날로 바로 쫓겨날 것임이 분명했이다.“나한테 어떻게 너 같은은 친구가 있을까!”안지영이 말했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나 정말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고은영이 억울한 듯한 말투로 말했다.“알아, 너 같은 쫄보가 일부러 어떻게 그래. 대표님이 이러는 건 무슨 뜻일까?“천의!”“......”이건 정말 반박할 수 없는 이유다!이전에 그녀들은 왜 배준우가 장항을 손에 넣은 뒤, 그 기세를 몰아 천의 까지 삼키려 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그녀들은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그래서 지금 어떡해?”안지영은 다시 치명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치명적인 질문이 고은영을 더 울고 싶게 만들었다.“나도 정말 모르겠어!”“......”그렇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엔 아무런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정말 머리 아픈 일이였다. 이다.“내가 생각 좀 해볼게.” 사실 안지영은 배준우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다 알면서 고은영을 놀리려고 일부러 그러는건 아닌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며칠 기다리면서, 그가 천의에 손을 쓰는 상황을 보면, 그가 도대체 장난으로 이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천의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잠시 후, 두 사람은 전화를 끊었고, 다.고은영은 아직도 뭔가 뒤숭숭한 느낌이었다.이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강성의 번호였다. 그녀는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누구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지 알고 있었다. 조보은 외에 다른 사람은 없다!그녀는 조보운이 이렇게 끈질길 줄은 몰랐다.하지만 전에 서정우가 그녀에게 돈을 요구할 때도 이렇게 끈질겼던 것 같았다.정말 그 어미에 그 아들이다!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조보은은 계속 전화를 해대니 더 짜증이 났다.끊자마자 또 다시 걸려 왔다!고은영은 다시 끊어버렸다. 그리고 바로 그 전
조보은은 정말 화가 났다.고은영과 고은지가 잇달아 전화를 받지 않자, 결국 그녀는 그 화살을 서정우에게 돌렸다.“넌 병원에서 뭐 하고 있었어?”“아니면 엄마.....”“널 대학까지 보내줬는데, 왜 아직도 돈을 못 벌어 오는게냐!”“......”전에는 마음 편히 공부만 하고 돈은 안 벌어와도 된다더니 지금은 또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서정우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조보운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네 이 숙모네 강자 봐, 작년에 이 숙모에게 2000만 원을 갖다줬다고 하더라, 강자는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어. 넌 뭔데 도대체?”“엄마 전에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잖아요!”“내가 왜 너 같은 쓸모없는 걸 낳았을까!”조보은은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쓸모 있는 자식은 의지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신이 정성껏 키운 자식은 또 쓸모가 없어졌다!그러자 서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돈 벌러 간다 해도 이미 늦었어요!”그래서 결국엔 역시 고은영과 고은지를 찾아야 한다.조보은은 서정우를 매섭게 쳐다봤다. 그녀는 지금 난생 처음으로 서정우를 이렇게 키운 것을 후회했다. ........고은지는 오늘도 밤 8시까지 야근을 해야 한다.그녀는 어렵게 얻은 직장이기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노력해야 했다.천락 그룹이 신입 사원은 3개월 후에야 정규직으로 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까지 정규직이 되지 못했으니, 그녀는 항상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이때 진여옥이 전화와서 조희주가 열이 난다고 말했다.“열이요? 병원에 갔어요?” 조희주가 열이 난다는 말에 고은지는 순간 당황했다.그녀는 전화를 하면서 동시에 손에 들고 있는 작업 서류를 서둘러 정리했다.진여옥은 이미 조희주를 데리고 병원에 왔으니 바로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네, 알겠어요. 바로 갈게요!” 고은지가 전화에 대고 말했다.전화를 끊고 마지막 서류를 서랍에 넣고 곧장 사무실에서 나갔다.지금 사무실 건물 전체가 이미 불
“그것까지도 연기해야 해요?”고은영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였다! 지금 합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는데, 배준우가 연기까지 하라고 하니 정말 골치 아팠다.“나 월급 많이 받아!’“얼만데요?”조금 전까지 끝낼 생각을 하다가 월급이 높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배준우는 돈이라면 눈이 반짝이는 고은영의 모습에 더욱 짙은 웃음을 지었다.“1억!”“.....”정말 높았다!자신의 월급까지 계산하면 모두 1억 2000만 원이었다!그녀는 배준우가 자신이 돈을 좋아하는 걸 알고 일부러 돈으로 자신을 유혹한다고 생각했다.“왜?”“그럼,생각해 볼게요!” 유혹적인 조건이긴 하였지만, 고은영도 자기만의 생각이 있었다. 돈보다 자기 목숨부터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특히 지금 배는 날마다 더 불러오는데 아직 배준우와 이혼도 하지 않았으니.배준우가 그녀의 임신한 배를 보면 어떤 반응일지 정말 상상도 가지 않는다.그런 상황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배준우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잘 생각해 봐! 이런 일은 밤을 새우지 말아야 해.”“그럼 그렇게 해요!”고은영이 말했다.어차피 당장은 그녀도 배아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먼저......그렇게 하기로 생각했다!배준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고은영은 이미 다 안배됐다고 그녀에게 알려줬다.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쪽에서 보낸 차가 도착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이 벌어질리 라고는....!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그녀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나, 나 대표님...?”그녀를 데리러 온 사람은 다름아닌 처락그룹의 나태현이였다.그의 맑고 금욕적인 얼굴, 분노 없는 위엄 있는 차가운 아우라는 순간적으로 억압적인 느낌을 주었다.그는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빨리 타요!”“저.....”순간 고은지는 고은영에게 전화 건 것을 후회했다.왜 잊어버렸지? 비록 위장 결혼이지만, 그녀의 가짜 남편은 배준우라는 것을!그리
곧 병원에 도착했다.고은지는 급하게 차에서 내렸는데, 차에서 내린 후에야 자신의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을 알아 차렸다.“젠장.....!”그녀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하지만 지금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일단 서둘러 병원 소아과로 달려갔다.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조희주와 마주쳤는데, 아이 옆에 있는 건 진여옥이 아니라 조영수였다.조영수는 그녀를 보고도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이 담담한 표정이었다.“희주 어때?”고은지가 다가가서 물었다.“방금 해열 주사를 맞았어. 지금 온도도 서서히 내려가고 있어. 그런데 입원해야 해.”아이가 입원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고은지는 순간 가슴을 졸였다.“먼저 가서 병원비 내!”“응, 알겠어!”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궁색한 얼굴로 조영수를 바라보았다.사실, 그녀에게는 돈이 없다!비록 지금 천락 그룹에 입사했지만, 첫 달의 월급은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조영수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래?”“저기, 먼저 대신 좀 내줄 수 있을까? 월급 받으면 바로 갚을게!”비록 조희주가 조영수의 딸이기도 했지만, 고은지는 여전히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만약 그녀가 아니었다면 조영수는 아마 본 지방의 여자를 찾아 행복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그녀에겐 이런 친정이 있기때문에....!그런 것들을 생각하니, 구람은 곧 마음이 찡해졌다.그녀가 돈이 없다는 말에 조영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래도 고개를 끄덕이며 잠이 든 조희주를 그녀의 품에 넘겨주었다.고은지는 서둘러 아이를 안았다.조희주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뜨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엄마.” “응, 엄마야. 자!”딸의 나긋나긋한 녹소리를 들으니, 고은지는 마음이 살짝 떨렸다.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이 딸과 헤어져사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천락 그룹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아이를 자신의 곁으로 데려올 수 있으니, 그때까지 기다리자고 생각했다.여자들은
‘이제 와서 쓸모없는 아들 대신 아내를 다시 데려가려고 그러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장선명은 화가 나 머리가 지끈거렸다.상대방은 이내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할아버지, 지영이가 나태범한테 끌려갔어요. 저 좀 도와주세요.”“못난 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전화기 너머 장성현의 말투가 변하며 바로 장선명을 질책했다.“나씨 가문이 먼저 부끄러운 짓을 한 거예요. 저는 바로 나씨 가문으로 갈 테니 할아버지로 빨리 오세요.”장선명을 더 이상 장성현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싶지 않았다.“내가 안 가면?”장성현은 어린아이들 일로 인해 자신까지 나서는 건 체면이 상한다고 여겼다.‘나태범이 정말 손자며느리를 데려갔단 말인가? 정말 부끄러운 것도 정도껏 해야지.’“그럼 어른한테 손댈 수밖에 없겠죠.”“너... 너 잠깐 기다려라.”장성현은 그 말을 듣고 급히 답했다.장씨 가문이 비록 어두운 쪽 일을 한다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있었다.특히 가풍이 엄격한 편이었는데 장성현은 아이들에게 더욱 엄격한 기준으로 최소한의 선은 지킬 수 있게 했다.그런데 장선명이 어른을 때리겠다고 하니 장성현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목적을 달성한 장선명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더 빨리 가.”“네.”구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 속도를 더욱 높였다.구이준은 도심에서 차선을 변경해 가며 시속 100킬로까지 높였다.속도를 줄이지 않고 지나가면서 그는 많은 운전자들에게 욕설을 듣기도 했다.그 사이 안지영은 이미 나태범의 사람들과 나씨 가문 본가에 도착해 있었다.대나무 숲과 조용히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 법도 했지만 지금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안지영은 나태범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나태범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냉담하게 말했다.“너랑 장선명은 어울리지 않으니 결혼식은 취소해.”안지영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비웃는 듯한 눈길로 나태범을 바라보았다.직접 듣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을 것이다.
안지영이 캘리포니아반도를 막 벗어나자마자 그녀의 차는 갑작스럽게 멈춰야 했다.앞좌석 운전기사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얼굴이 굳어졌다.“아가씨.”“무슨 일이에요?”안지영은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물었다.갑작스러운 급브레이크로 인해 그녀는 앞좌석 등받이에 부딪힐 뻔했다.당연히 그녀의 목소리와 표정 모두 좋을 리 없었다.운전기사가 답하기도 전에 앞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얼굴을 확인한 운전기사는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나씨 가문 사람들입니다.”“뭐라고요?”‘나씨 가문 사람들? 나태웅은 장선명과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안지영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나씨 가문 사람들이 안지영의 차에 다가왔다.그 사람들이 안지영이 있는 쪽 문을 열기 전에 운전기사는 재빨리 문을 잠갔다.그는 후진하여 벗어나려 했지만 그제야 차가 완전히 포위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아가씨, 얼른 선명 도련님한테 연락하세요. 이 사람들 전부 나태범 산하 사람들이에요.”나태범의 사람이라는 말에 안지영은 아연실색했다.나태범이 직접 보낸 사람이라면 이는 일부러 안지영을 겨냥한 행동임이 분명했다.‘결국 나태웅과의 일이 어른들에게까지 번지고 말았구나.’“아가씨, 저희 회장님께서 뵙자고 하십니다. 직접 따라나서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방법을 써야 할 까요?”밖에 있던 사람은 차 문이 열리지 않아도 당황하지 않고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하지만 그 평온함 속에서도 확고하고 단호한 태도가 묻어났다.안지영의 안색이 창백해졌다.‘젠장! 왜 다들 나를 협박하는 거야?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절대 만만한 사람이 되지 않을 거야!’운전기사는 그녀가 움직이지 않자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러나 전화가 연결되기도 전에 안지영은 화가 난 얼굴로 차 문을 열고 당당히 차에서 내렸다.“아... 아가씨!”운전사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큰일 났네. 성격이 또 올라왔네.’운전기사는 장선명의 사람이었다.안지영이 장선명과 함께한 이후로 그녀의
‘여자를 갖고 논다고? 도련님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밤에 발생했던 일들도 도련님 모르게 벌어졌던 일인데... 일을 조사해 범인을 밝혀냈을 때 그 범인은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했지.’“구이준.”“네.”구이준이 앞으로 나섰다.“웨딩드레스는 킹덤 타운으로 보냈어?”“네. 다 수선해서 보냈습니다.”그 말을 듣고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태웅을 향해 어깨를 으쓱했다.“지영이가 직접 입어보고 고른 웨딩드레스야.”이 말은 나태웅의 위협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나태웅은 온몸이 얼어붙은 듯 차갑게 굳었고 장선명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더욱 음울해졌다.“그럼 거절하겠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지?”“너도 예상하던 답 아니야?”장선명이 싸늘하게 웃으며 답했다.언제 장성명이 위협을 받아들였던가.나태웅은 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 수는 없었다.이전에 안지영을 찾아가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위해 그녀와 헤어질 것으로 믿는다면 나태웅은 장씨 가문을 너무 만만히 본 것이다.장씨 가문 사람들은 이런 위협을 받아들일 사람들이 아니었다.“결혼식이 얼마 남지 않았어. 네가 지영이를 빼앗아 간다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우릴 헤어지게 하려는 거라면 나뿐만 아니라 강성 전체가 너희 나씨 가문을 경멸할 거야.”말을 마친 장선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더 이상 나태웅과 할 이야기가 없었다.태연하고 무서울 것 없는 장선명의 모습은 나태웅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장선명은 두 발짝 걸어 나가다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섰다.“참, 하늘그룹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하늘그룹이 없어져도 나는 안지영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도록 할 방법은 많아. 하지만 너는? 지영이는 널 지금보다 더 원망할 거야.”‘안지영이 자신을 미워하더라고 나도 같이 미워하게 만들겠다고? 도대체 무슨 논리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자기 판단이 흐린 것처럼 지영이도 반쯤 정신을 놓았다고 생각하는 건가?’장선명은 자
3분 후, 나태웅과 장선명이 마주 앉았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였지만 현장의 공기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두 사람은 각자 담배 두 개비씩 피울 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진이훈과 구이준은 몸이 굳으며 긴장감을 놓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세 번째 담배를 꺼내려는 순간 나태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그래서 조건이 뭔데?”나태웅과 시간을 소모하려던 장선명은 그 말을 듣고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조건?”또렷한 말투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는 나태웅은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지금까지 병원에서 아픈 척한 것도 모두 안지영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바보같이 순진한 안지영만이 진지하게 나태웅이 정말 미친 건지 아닌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그 여자가 널 미워하게 만들지 마.”나태웅은 이를 악물고 하나하나 힘줘 말했다.장선명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물었다.“왜 나를 미워해야 하지?”장선명이 흥미롭게 물었다.안진섭과 얼마간 관계가 있을 뿐, 장선명은 다른 방면에서 안지영에게 잘못한 건 없었다.“하늘그룹이 너 때문에 없어진다면 널 미워할 거야. 날 미워하듯 널 미워하게 되는게 네가 진정 원하는 거야?”나태웅이 날카롭게 물었다.하지만 애매한 부분이 있어 장선명은 나태웅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하늘 그룹이 나 때문에 없어진다고? 나태웅 말고 그런 짓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다고.’장선명은 담배를 담뱃갑에 도로 넣었다.“그렇다면 지영이는 널 미워하겠지?”“난 상관없어. 어차피 이미 미워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나태웅은 잠시 말을 멈췄다.고개를 들어 장선명을 바라본 순간 그의 시선에는 어느 때보다도 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나태웅은 싸늘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영이와 계속 함께하려 한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하늘그룹을 부숴버릴 거야. 그렇게 돼도 지영이가 너랑 무사히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아?”진이훈과 구이준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나태웅이 말을 마친 순간 현장
“내가 대신 가서 혼내줄게. 너는 여자니까 이미지 신경 써야지. 착하지?”“싫어요! 이미지 따위는 필요 없어요.”장선명이 바로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그녀 앞에 내밀었다.안지영은 핸드폰 속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와 마치 미친 여자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고는 순간 얼어붙었다.그녀가 조용해지자 현장의 분위기도 순식간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그 남자 때문에 이런 모습 하려고?”안지영은 말문이 막혔다.‘젠장, 언제 이런 모습이 된 거지?’특히나 더 참을 수 없는 건, 나태웅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사실이었다.‘그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거지?’“집에 가자. 착하지?”장선명은 부드럽게 안지영을 달랬다.옆에 있던 구이준은 자기 눈을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어떤 사람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유명했다.그가 소유한 유흥 장소는 셀 수 없이 많았고 그 안에는 온갖 종류의 미녀들이 넘쳐났다.여린 타입, 매혹적인 타입, 요염한 타입. 남자들이 환장하는 스타일은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또한 유흥가에 들어오는 여자 중 장선명을 유혹하여 인생을 바꾸고 싶어 하는 여자들도 많았다.당시 구이준과 안열은 장선명 주위를 얼씬거리는 여자들을 수없이 많이 처리했지만 장선명이 여자들에게 시선을 두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그래서 구이준과 안열은 당시 장선명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지 의심하기도 했었다.예쁜 여자들이 들끓는 곳에서 어떠한 유혹에도 움직이지 않으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가 좋아하는 타입을 아직 찾지 못했을 뿐이었다.구이준은 안지영을 유심히 보며 생각했다.‘다른 여자들이랑 비교해도 특별한 건 없어 보이는데... 도련님께서 왜 이 여자를 좋아하시는 거지? 화끈한 성격? 아니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호쾌한 모습?’머리를 정리하던 안지영은 헝클어진 머리로 인해 손가락이 끼여버렸고 그 때문에 더욱 고통스러웠다.그로 인해 나태웅에 대한 그녀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
고은영은 분노에 휩싸인 채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게를 나왔다.배준우가 간 줄 알았던 그녀는 가게에서 나와 배준우의 차가 원래 자리에 있음을 확인하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통화를 하고 있던 배준우는 그녀를 보자마자 통화를 마무리했다.“그래. 그렇게 처리하고 끊어.”그는 곧바로 고은영의 부풀어 오른 볼을 살짝 꼬집으며 물었다.“화났어?”고은영이 말하지 않아도 배준우는 알 수 있었다.진성택이 분명히 또 진유경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녀를 화나게 한 것이다.“계속 곧 죽을 거라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어요.”“도덕적 협박이구나?”배준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성택이 진유경을 편애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도 양녀를 선택하고 친딸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했다.평소 세심하지 않은 배준우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고은영에 대한 연민이 짙어졌다.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매번 만나면 진유경 이야기뿐이었기 때문이다.배준우가 한숨을 내쉬며 위로했다.“화내지 마. 어차피 너한테 중요한 사람도 아니잖아.”“그래도 엄마가 너무 불쌍해요.”그녀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네 명이 자식이나 낳았으면서 엄마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엄마가 나한테 남긴 마지막 사랑마저도 첫사랑의 딸에게 나누려고 하다니...’“저녁에 네 큰오빠네에 가서 밥 먹을까?”“오빠한테 전화 왔었어요?”말 돌리는 데 성공한 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응. 아까 너 봤다면서 저녁에 밥 먹자고 하더라고.”“좋아요!”고은영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정훈과 진윤과 가까워진 후, 고은영은 두 오빠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진성택은 정말 무정했다.아니, 애정은 있었지만 그 대상이 아내와 자식이 아닌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언제 태현 오빠한테 물어볼 거예요?”“조금 있다 시간 내서 만나러 가려고.”“좋아요!”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고은지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