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고은영이 이어서 말하기도 전에 안지영은 다급히 물었다.“뜬금없이 왜 그런 의심을 하는 거야?”왜 자꾸 이런일이.....!고은영은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뜬금없는 게 아니라, 조보은이 스스로 말실수 한 거야!”“홧김에 한 말 아니지?”안지영이 되물었다.조보은이 화가 나면 막말을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런 거 아니야!”조보은이 늘 화날 때 하는 말과는 달랐다. 분명히 홧김에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고은영의 말에 안지영은 서둘러 차를 길가에 세웠다.“그래서 어떻게 하려고?”고은영이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이미 계획이 있다는 얘기다.“조보은이 내일 나 만나재. 그래서 내일 머리카락 뽑아서 친자 확인해 보려고.”이게 그녀가 조보은의 만나자는 제안을 승낙한 이유다.의심이 가는 이상,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안지영도 그녀의 계획에 동의했다. 그동안 그녀가 조보은에게 당했던 걸 생각하니 그녀 역시 화가 났다.“그래, 그런건 확실하게 알아둬야지. 만약 네가 진짜 그 여자 딸이 아닌데, 너한테 이런 식으로 돈을 요구하면, 그건 정말 인간이 아니지.”만약 조보은이 그녀를 잘 보살펴 줬었다면, 돈을 요구해도 어느 정도 이해하겠는데오히려 방치하고 구박했으면서 그런 돈을 요구하니 어이가 없었다.예전엔 그렇게 무시하고 구박하더니, 이젠 돈이 좀 생기니까 그녀에게 들러붙으려고 수작을 부리니 말이다.세상에 쉽게 얻는 법은 없다.고은영은 이번에 모든 걸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고 다짐했다.“내일 나도 같이 가줄까?”“응, 그래 주면 고맙지.” 고은영이 말했다.조보은이 이럴 때는 반드시 숨은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조보은이 어떤 사람인데, 단순히 밥 한 끼를 먹기 위해 그녀를 불러낼 리 없다!그러니 그녀의 꾀에 걸려들면 안 된다.안지영도 고은영이 혼자 그들을 만나는 게 걱정됐다.그동안 조보은이 한 짓이 있으니, 그녀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잘 알고 있다.“그래, 그럼 내가 내일 휴가 내서 너랑
조보은이 어떤 사람인지, 고은영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예전에 금방 용산에 집을 샀을 때, 그녀의 그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지금은 집마저 팔았으니 많은 사람이 그녀를 비웃었을 것이다.그러니 그녀는 어떻게든 자기의 체면을 되찾아야 했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구나!”그제야 이해가 갔다.“그럼, 내일 같이 가야겠네.”“응.”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두 사람은 두루두루 다른 얘기도 나눴다. 고은영은 안지영의 말에서 그녀가 지금의 직장을 아주 만족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안 씨 집안에서도 만족하고 있는 듯했다.그렇지 않으면 안지영의 말투가 이렇게 경쾌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내일의 계획을 다 짜고 나니, 고은영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조보은을 상대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게다가 지금 그녀는 량천옥이랑 한편이니, 한 시도 그녀에 대한 경각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오후.고은영은 낮잠을 잤다.하지만, 자고 깨어났을 때, 온몸이 뭔가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느릿느릿 몸을 움직였는데, 그제서야 배준우가 휴게실에 들어와 있는걸 발견했다.배준우는 지금 그녀를 껴안고 있었다.그녀가 움직이자, 배준우도 얼떨결에 깨어났다. 그는 졸린 눈으로 몽롱한 채 품 안에 안긴 그녀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물었다. “깼어?”“대표님, 안 바빠요?”고은영은 깜짝 놀랐다.이 시간에 배준우가 휴게실에 들어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그러자 배준우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말하면서 그녀를 놓아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습관적으로 그녀에게 이불을 덮어줬다.그의 무의식적인 행동에 고은영의 마음은 따뜻해 났다.....!배준우는 겉옷을 걸치면서, 그를 따라 일어나려는 고은영을 보며 말했다.“넌 왜 일어나?”그녀는 지금 아주 한가한 자유의 몸이니 충분히 자고 일어나도 된다.배준우는 책에서 임산부는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는 내용을 본적이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많은 움직임이 필
배준우가 나가자마자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를 보니 육명호의 번호였다.고은영은 무의식적으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그녀가 양심에 찔리는 일을 한 건 아니지만, 그냥 육명호라는 자체가 싫었다.고은영 마음속의 육명호는 더러운 속내를 가진 늑대다.지난번, 북성에서도 그렇고, 딱 봐도 별로 좋은 인간은 아니다.하지만 전화를 끊기 무섭게 또 다시 걸려 왔고, 고은영은 또 다시 끊어버렸다.두 사람은 이렇게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끊기를 반복했다. 결국 육명호는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나 지금 동영그룹 아래층에 있어. 내가 고 비서를 찾으러 올라갈까?”그의 메시지에 고은영은 깜짝 놀라 손이 덜덜 떨렸다.방금의 강경했던 태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재빨리 육명호에게 전화 걸었다.“은영 씨, 꼭 이렇게 해야만 전화를 받는거야?”수화기 너머에서 육명호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로 저를 찾는 거예요?”온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말투였다.육명호는 그녀에 대해 조사를 아주 많이 했다,그녀가 배씨 가문에서 어떤 존재인지. 그런데 지금 이런 고고한 말투를 들으니더 웃겼다.“은영 씨, 정말 너무하네. 내가 남이야? 이런 말투로 말할 필요는 없지..”“저랑 대표님이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닌것 같은데요?”그의 태도에 고은영은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었다. 육명호의 느끼함을 견딜 수 없었다. 별로 만난 적도 없으면서 친한척 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남이 아니라고...?그럼 도대체 무슨 사이라고....!“은영 씨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섭섭하지.”그는 슬프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육명호의 이런 말들이 고은영은 무척 불편했다. 그녀는 비록 연애를 해 본 적이 없지만연애할 때의 이런 입에 발린 말들은 돈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다.자기 스스로도 이런 가치관이 조금은 틀렸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실질적인 무언가를 가져야만 마음이 편안했다.아마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하게 자라 돈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껴서 그
지난번 북성에서도 배준우를 화나게 한 장본인이다.그런데 갑자기 또 찾아와서 수작을 부리려 하니 화가 났다.“미친놈!”고은영은 짜증을 내며 핸드폰을 이불 속에 던져버렸다.그의 이런 전화에 고은영은 자고 싶은 마음이 다 사라졌다.일어나서 옷을 입고는 물을 마시고 다시 베란다로 가서 목도리를 뜨기 시작했다.목도리를 뜨니 화를 진정할 수 있었다.하지만 손은 여전히 아팠다.처음엔 아픈 줄 몰랐는데 계속 뜨려니 손이 아파왔다.지금보다 더 적응해야, 뜨는 속도도 조금 더 빨라질 것이다.고은영이 골똘히 목도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누가 휴게실 문을 두드렸다.고은영은 물건을 내려놓고, 재빨리 문을 열었다.“초희 씨?”“은영 씨, 얼른 나와 보세요.”민초희는 고은영은 데리고 휴게실에서 나왔다.민초희의 초조한 표정을 보자 고은영은 어리둥절했다. 도대체 뭘 보라는 건지 이해가지 않았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자 짙은 장미 향기가 물씬 풍기더니, 고은영의 자리에 가득 쌓인 장미가 눈에 들어왔다.순간 고은영은 멍해졌다.“이건...?”“육 대표님이 보내신 것 같아요.”“.......”그가 말한 선물이 바로 이거야?이게 선물이라고? 이런 골치 아픈 선물이!아예 나를 보내버리려고 작정한 건가?고은영은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이 짧은 시간에, 고은영은 이미 마음속으로 육명호를 한바탕 욕했다.화가나 죽겠는 와중에 또다시 핸드폰이 울렸다.육명호의 전화였다.“육 대표님, 저랑 친하세요?”“선물이 마음에 안드나요?”그는 불쾌한 말투로 웃으며 말했다.고은영은 이미 화가 치밀어 참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회의실 문이 열리는 걸 보자숨이 막힐 것 같았다.“하나도 마음에 안 들어요!”큰일이다!배준우가 회의실에서 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빨리 나오는지!?멀리서도 그의 차가운 기운이 선명하게 느껴졌다.“그럼 뭘 좋아하는지 말해봐요. 다시 사다 줄게요.”“그럴 필요 없어요. 대표님이 주는 거라면 다 싫으니깐요.”“은영 씨가 이렇게 말하니
고은영은 배준우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있으니, 심장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저, 저 꽃들은 저랑 상관없는 꽃들이에요. 믿어주실 수 있으신가요?”고은영의 말에 배준우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그의 표정 변화에 고은영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배준우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 뒤에 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말했다.“들어와!”말하고는 몸을 돌려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고은영은 입을 삐죽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사무실 문을 닫히고, 배준우의 차가운 눈을 마주하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그녀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저랑 정말 상관 없어요...”배준우가 믿어주지 않을까 봐 두려워서 다시 한 번 설명했다.‘육명호..... 이런 일로 나를 괴롭히다니, 기억해 두겠어!’“그동안엔 몰랐는데 너 인기 많다?”배준우가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그의 이런 태도가 고은영의 가슴을 더욱 떨리게 했다.“아니에요, 저 별로 인기 없어요. 육 대표님이 눈이 어떻게 된 거죠.”“그 인간이 보낸 거야?”“저는 분명히 안 받는다고 말했어요!”고은영은 서둘러 해명했다.이 일로 배준우의 신경을 건드릴까 봐 무서웠다. 그러면 돈도......배준우는 조용히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정적이 그녀를 더 숨 막히게 했다.고은영이 그의 눈을 피해도,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숨을 크게 들이쉬며 또 한 번 말했다.“정말 저랑 상관없는 일이에요.”“그럼 왜 너한테 꽃을 보냈지?”“골탕 먹이려고 그러는것 같아요.”고은영은 급한 마음에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골탕? 왜? 무슨 이유로?”“대표님도 아시다시피 계속 동영그룹이랑 협력하고 싶어 했잖아요. 게다가 전에 저를 매수하는 것도 실패했고요. 저희가 위장 결혼이라는 소문을 듣고 저한테 복수하는 거죠!”생각이 복잡해지면서, 그녀의 말도 점점 산으로 가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배준우는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나름 똑똑한 여자라는
그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지만, 고은영은 여전히 두려워하며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아니, 아니요!”더는 그의 신경을 건드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그,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고은영은 고민하는 듯 물었다.“네 생각은 어떤데?”이 어려운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자 고은영은 차마 어떻게 대답할지 몰랐다.배준우의 압박 아래, 고은영은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하지만 감히 그러지 못했다!그녀는 결국 크게 한숨 쉬며 말했다.“그럼... 여보라고 부를까요?”“.........”순간 정적이 흘렀다.배준우의 얼굴은 굳어졌고, 고은영도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괜히 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럼, 뭐라고 해요?”“그냥 그렇게 불러!”배준우가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이번에는 고은영이 멍해졌다.그렇게 부르라고? 싫지 않은가?하지만 배준우의 날카로운 눈을 마주치니, 싫다는 말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다.“그럼, 진짜 그렇게 불러요?”“응!”배준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는 고은영을 놓아주며 말했다.“나 일해야 하니 너도 가서 볼일 봐.”“네, 알겠어요.”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재빨리 일어서서 휴게실 쪽으로 도망가듯 달려갔다.휴게실에 별로 할 일이 없지만, 지금 그녀가 할 일은 휴게실을 정리하는 것밖에 없으니 휴게실로 다시 들어갔다.조금 정리한 뒤, 배준우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이처럼 자유롭고 편안한 일이 없다.........한편, 사무실 밖.모든 비서실 직원들이 고은영의 책상을 둘러싸고 꽃을 보고 있었다.하지만 감히 뭐라고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정유비는 흥분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 배준우가 굳은 얼굴로 고은영을 사무실로 불러들인 걸 생각하니 통쾌했기 때문이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비상계단으로 가서 이미월에게 전화를 걸었다.“네가 못 봐서 그래, 아까 배준우 표정이 어땠는지. 기회 잘 잡아.”“육명호가 고은영한테 꽃을 보냈다고?”“그럼, 내가 거짓말 하겠어? 배씨 가문에서 저런 여우 같은 계집애를 받아들이지
진청아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월을 관찰하며 그녀에게 다가갔다.그녀의 손에 들린 보온병을 보고 예의 있게 웃으며 물었다.“이미월 씨, 여긴 어쩐 일로?”지금은 그녀가 배준우의 비서다. 그러니 배준우에 관한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한다.지금 정유비의 가장 큰 불만이기도 하다.이전엔 고은영만 몰아내면 될 줄 알았는데.그러면 배준우 가까이에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하지만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뺏길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녀는 그래도 괜찮다고,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자신을 위로했다.예를 들면, 배준우를 갖는 것이다!정유비는 이미월이 아무 생각 없이 진짜 찾아온 걸 보고 속으로 통쾌해했다.이미월은 진청아를 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그쪽은 누구시죠?”“안녕하세요, 이미월 씨. 저는 새로 온 배 대표님의 비서예요. 배 대표님에 관한 모든 업무를 책임지고 있어요.”그녀의 말에 이미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유비를 쳐다봤다. 뭔가 의외였다.정유비는 전에 이미월에게 비서실의 제 일 비서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나태웅이 곧 떠난다더니, 진청아가 그의 자리를 물려받은 건가?그럼, 정유비는? 그냥 그 자리라고?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들었지만, 이미월은 마음속으로 모든 감정을 가다듬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진 비서님, 안녕하세요. 전 배 대표님을 만나러 왔어요.”요 몇 년 동안 그녀가 정원희에게서 받은 가르침이다. 감정을 얼굴에 티 내지 않는것!그래서 그녀도 감정을 컨트롤 하는데 아주 능숙해졌다.진청아는 이미월이 무엇을 하러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인사치레도 그냥 공식적인 것이었다.“네, 먼저 응접실로 따라오세요. 지금 대표님 사무실에 손님이 와 계세요.”진청아의 말은 정유비가 이미월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이미월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근데 제가 준우를 위해서 국 좀 끓여왔는데, 식으면 맛 없는데.”이미월의 말에 진청아는 멈칫했다. 어이가 없었다.아내가 있는 남
진청아가 배준우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그러자,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가니 배준우 혼자 사무실에 있었다. 아마 고은영은 휴게실에 있는 듯했다.진청아는 고은영은 정말 행복한 아내라고 생각했다. 출퇴근할 때도 남편이 곁에 꼭 붙여두니 말이다.이런 두 사람 사이에 누가 감히 끼어들 수 있겠는가!그는 이 상황에 찾아온 전여친이 우습다고 느꼈다.“대표님, 이미월 씨 오셨습니다!”진청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휴게실에 있는 고은영이 이 말을 듣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미월이 왔다는 말에 배준우는 손을 멈칫하고 눈을 치켜들었다.“이미월?”“네!”“안 만나!”배준우는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진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배준우의 단호함에 진청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월을 위해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보온병을 가지고 왔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진청안는 1분도 채 안 되어서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왔다.그러고는 이미월에게 다가가 말했다.“대표님이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십니다.”“뭐라고요?” 이미월은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진청아가 이어서 말했다.“대표님이 아주 바쁘셔서 시간이 없으세요.”“내가 국 끓여왔다는 얘기 안 했어요?”이미월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녀는 오늘 고은영과 싸운 배준우에게 감정적인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진청아가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그냥 들어갈게요!”이미월은 말하며 진청아의 옆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진청아는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단호한 태도로 경고했다.“이미월 씨, 배 대표님은 근무시간에 아무것도 안 드십니다!”배준우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는 모든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그리고 말하면 말한 대로 행동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회사에서 음식 먹는 것을 금지한 그가 어떻게 사무실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
나씨 가문은 지금 완전히 난장판이 되었다.나태현에게 돌아오라고 연락했지만 나태현은 거절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나태범은 량천옥이 무슨 심정으로 나태현을 죽이려고 드는 것인지 잘 알기에 나태현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순조롭게 귀국하는 것은 이제 어려울 것이다.“하...”나태범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나태범의 속에서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집사가 다가가 얘기했다.“어르신, 일단 진정하세요. 이미 사람을 보냈으니까요.”나태범은 또 한숨을 쉬었다.“하...”아무리 사람을 보냈다고 해도 나태현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그해의 일을 떠올린 나태범의 눈에는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겼다.이건 끝나지 않은 복수다.“그 아이는 어떻게 되었지?”나태범이 한숨을 쉬면서 물었다.그들은 고희주가 죽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었다.그들이 아는 바에 따르면 나태현은 많은 의료진을 고용해서 고희주를 보살폈다.그런데 고희주가 죽다니.“량천옥 씨의 행동을 보면 아마도 정말 죽은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나태범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아팠다.고희주를 법적인 손녀로는 인정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아이이니...그래서 나태범은 더더욱 고희주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배준우가 나태현을 지켜준다면 좋겠는데...”나태범이 한숨을 쉬고 얘기했다.량천옥이 얼마나 독한지 잘 아는 나태범은 나태현이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그해의 일도 겨우 잠재운 것이다.량천옥이 아무리 요즘 잠잠해졌다고 하지만 량천옥은 그 원한을 잊지 않을 것이다.“...”집사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배준우 님한테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집사가 얘기했다.나태범이 배준우에게 전화한다고 했을 때부터 집사는 나태범을 말렸다.아무리 배준우가 나씨 가문 형제들과 친한 사이라고 해도 지금은 고은영의 남편이니까 말이다.그러니 사랑 앞에서 우정을 선택할 것 같지 않았다.“난 그래도 그 아이가 아직 살아있다
“계약 파기 때문에요?”고은영이 눈썹을 까딱거리면서 물었다.고은영은 나씨 가문에 대한 호감이 하나도 없었다.아무리 나씨 가문이 강성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하지만 수많은 계약 파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배준우와 진윤까지 계약을 파기했으니, 배씨 가문이나 진씨 가문과 연관 있는 가문들도 연달아 나씨 가문과의 계약을 파기할 것이다.사람은 이성을 잃으면 판단을 급하게 내리려고 하니까 말이다.아마 천락 그룹은 지금 수많은 압박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만약 배준우가 지금 계약 파기를 취소한다면, 천락 그룹에게 희망이 주어질 것이다.고은영은 그래서 나씨 가문이 배준우에게 연락한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배준우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그러면 왜...”“나태범 어르신은 나태현이 무사히 귀국하기를 원하고 있어.”“나태현 씨가 귀국하는 것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어요? 우리가 방해한 것도 아니고...”배준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고은영을 쳐다보았다.그제야 고은영은 배준우의 뜻을 알아차렸다.나태범은 정말 교활한 사람이었다.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어 힘을 얻으려는 것이었다.배준우와 량천옥의 사이는 아주 어색했다. 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와 사이가 좋고 고은지는 량천옥의 친딸이다.배준우가 고은영을 설득한다면 고은영이 고은지를 설득하고 이어서 고은지가 량천옥을 설득해 나태현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미친 거 아니에요?”고은영이 화를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아마 나태범은 고은지를 며느리로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다.그러면서 고은지를 이용해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하다니. 차라리 고은지를 직접 찾아가는 성의라도 보였으면 모른다.배준우는 고은영의 모습을 보면서 물었다.“어떻게 생각해?”고은영은 바로 대답했다.“절대 안 돼요. 우리 언니는 나태현을 용서해줄 리가 없어요.”배준우에게까지 도움을 청할 정도라면 해외의 상황은 확실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량천옥이 얼마나 미쳐있는지를 생각하면 나태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