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청아가 배준우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들어와!”그러자, 담담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들어가니 배준우 혼자 사무실에 있었다. 아마 고은영은 휴게실에 있는 듯했다.진청아는 고은영은 정말 행복한 아내라고 생각했다. 출퇴근할 때도 남편이 곁에 꼭 붙여두니 말이다.이런 두 사람 사이에 누가 감히 끼어들 수 있겠는가!그는 이 상황에 찾아온 전여친이 우습다고 느꼈다.“대표님, 이미월 씨 오셨습니다!”진청아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휴게실에 있는 고은영이 이 말을 듣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이미월이 왔다는 말에 배준우는 손을 멈칫하고 눈을 치켜들었다.“이미월?”“네!”“안 만나!”배준우는 차갑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진청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배준우의 단호함에 진청아는 더 말하지 않았다. 이미월을 위해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가 보온병을 가지고 왔다는 얘기도 하지 않았다.진청안는 1분도 채 안 되어서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왔다.그러고는 이미월에게 다가가 말했다.“대표님이 만나고 싶지 않으시다고 하십니다.”“뭐라고요?” 이미월은 더 이상 화를 억누를 수 없었다.그러자 진청아가 이어서 말했다.“대표님이 아주 바쁘셔서 시간이 없으세요.”“내가 국 끓여왔다는 얘기 안 했어요?”이미월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녀는 오늘 고은영과 싸운 배준우에게 감정적인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진청아가 말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그냥 들어갈게요!”이미월은 말하며 진청아의 옆을 지나 사무실로 들어가려 했다.그러자 진청아는 재빨리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단호한 태도로 경고했다.“이미월 씨, 배 대표님은 근무시간에 아무것도 안 드십니다!”배준우의 자기관리가 얼마나 철저한지는 모든 회사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그리고 말하면 말한 대로 행동하는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회사에서 음식 먹는 것을 금지한 그가 어떻게 사무실에
정유비는 진청아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미월이와 배 대표님 관계는 청아 씨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관계가 아니에요.”이미월이 아직도 배준우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걸 알려주려고 한 말이었다.하지만 진청아에겐 먹히지 않았다.“전 대표님의 지시만 따릅니다. 대표님이 안 만나신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든 못 들여보냅니다!”“.......”이미월과 정유비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단호한 정유비의 태도에 두 사람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특히 정유비는 동영그룹에 오래동안 있었으니 자기 말이 어느 정도는 먹힐 줄 알았다.하지만, 지금 온 지 얼마 안 된 신입 따위가 자기한테 개기는 걸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늘 높은 줄도 모르는 계집애!이미월은 정유비에게 이제 어떻게 해야 되냐라고 물어보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진청아가 생각보다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그러자 정유비가 소리 지르며 말했다.“아직도 안 비켜요?!”정유비는 이미월 앞에서 자기의 체면이 구겨졌다고 생각하자 더 화가 났지만, 진청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히 말했어요. 저는 대표님의 지시만 따릅니다. 정 비서님은 대표님보다 본인이 더 발언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뭐.....”정유비는 말문이 막혔다.동영그룹에서 누가 감히 자신이 배준우보다 발언권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배항준 회장도 그러지 못하는데.배항준 회장이 있다고 해도 회사 실세는 배준우다.배씨 가문에서 배준우를 간섭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정유비와 이미월은 할 말이 없자 진청아를 노려보며 보온병을 들고 막무가내로 안으로 들이닥치려고 했다.그러자 진청아는 그들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이미월 씨, 제발 그만하세요!”이때, 정유비가 진청아를 덥석 붙잡고는 소리쳤다.“미월아 너 먼저 들어가!”정유비는 어떻게든 이미월을 이용해 고은영과 배준우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가 꼴 보기 싫은지 오래다!예전엔 아닌 척, 순진한 척 하더니, 갑자기 배준우의 옆자리를 꿰차다니!
그리고, 이미월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준우야...”조금 전까지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지금 연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배준우앞에 서있다.“이거 놔!”배준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준우야, 이제 그만 화 풀어, 응? 내가 졌어, 내가 잘못했어!”그녀는 아직도 배준우가 이렇게 차갑게 구는 게 다 자기한테 화가 나서 그렇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삼촌네 집에서 쫓겨난 후에야, 자신이 배준우 없이는 정말 안 된다는 걸 느꼈다.요즘 그녀는 말 못 할 정도로 형편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이미월의 간절한 애원에 배준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그는 이미월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배준우는 그녀에 대한 혐오감을 감출 수 없었다.“놔!”조금의 따뜻함도 없는 차가운 말이었다.그의 차가운 태도에 이미월은 당황했다.이렇게 자세를 낮추면서 애원했는데도 배준우가 흔들리지 않을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대체 무슨 마음인 거야?어떻게 이럴 수 있지?“이미 잘못도 인정했고, 사과도 했는데, 뭘 더 어떻게 하라는 거야?”이미월은 끝내 눈물을 흘렸다.지금 그녀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 그 누구라도 안쓰러운 느낌이 들 것이다.하지만 배준우는 그녀의 눈물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방금 들어온 진청아도 이 광경을 목격했다.“대표님!”“진 비서 업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배준우가 방금 들어온 진청아를 보며 말했다.그러자 진청아는 몇걸음 앞으로 나서, 이미월을 쳐다보며 말했다.“이미월 씨가, 억지로 쳐들어온 겁니다.”진청아의 말에그녀를 쳐다보는 배준우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진청아는 그녀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그리고 정 비서님이 이미월 씨를 도우셨고요. 아니면 이렇게 쳐들어오지도 못했을 거예요.”“정유비?”“네, 정 비서님이 저를 붙잡고, 이미월 씨를 들여보냈어요!”진청아는 있는 그대로 다 말해버렸다.이 두 여자가 무슨 짓을 했는지 바로 낱낱이 폭로해 버렸다.“준우야,
이미월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마치 당장이라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 같은 눈으로 쳐다봤다.그러고는 눈물을 흘리며 배준우에게 말했다.“너 정말 나한테 이럴 거야..?”배준우는 차가운 기운만 풍길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더 이상 이미월과 쓸데없는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이미월이 그대로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진청아가 또다시 말했다.“이미월 씨, 경비에게 끌려 나가시는 것보다 직접 나가시는 게 나을거예요.”“........”순간, 정적이 흘렀다.배준우는 고개를 들어, 진청아를 쳐다봤다. 그녀의 이런 카리스마 있는 모습에 나름 마음에 들었다.나태웅의 안목은 역시 믿을 만하다.이미월은 온몸이 굳은 채로 멍하니 배준우만 쳐다보고 있었다.자기한테 이런 말을 하는 진청아를 보면서도 가만히 있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조금의 감정도 남아있지 않는 건가?“이미월 씨, 정말 그렇게까지 하길 원하세요?”진청아는 더욱 날카롭게 말했다.이미월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를 보니, 만약 진짜로 경비를 불러도 그가 상관쓰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그녀가 결국엔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할 때, 휴게실 문이 열리고 고은영이 들어왔다.“여보, 나 잠깐 나갔다 올게요. 지영이가 같이 저녁 먹자고 해서요.”“......’진청아와 이미월은 처음 보는 광경에 깜짝 놀랐다.특히 이미월은 고은영의 여보라는 부름에 머리가 하얘져 버리고 말았다.배준우를 여보라고 부르다니, 뻔뻔한 계집애, 감히 무슨 자격으로!고은영은 배준우의 사무실에 이미월과 진청아가 있는지 몰랐다. 이게 무슨......!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그러자 배준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가봐. 저녁 먹고 다시 회사와서 같이 집에 가자.”“네? 먼저 집에 안 들어가요?”진청아와 이미월도 있으니, 고은영은 뭔가 불편하다는 듯 물었다.“좀 이따 온라인 회의가 있어서.”배준우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집에 가서 회의를
정유비의 얼굴은 보니 이미월은 참았던 눈물을 또 다시 터뜨리고 말았다.“......”이미월이 통곡하는 모습에 정유비는 어리둥절했다.설마 고은영이 왔나? 배준우랑 고은영, 둘 싸운 거 아니었어? 그래서 이미월이 위로해 주러 배준우한테 간건데...왜 이런 상황인거지?“유비야, 나 먼저 갈게!”이미월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그리고 정유비가 대답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진청아는 차가운 눈으로 정유비를 보며 말했다.“배 대표님이 정 비서님께 말 하나 전하라고 하시네요!”“무슨 말?”정유비는 상황 파악도 못 한 채, 여전히 오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청아는 그런 그녀에 대한 혐오감이 극에 달했다.“정 비서님더러 인사팀에 가서 월급 정산하라고 하셨어요.”“뭐, 뭐라고?.. 너 지금 뭐라고 했어?!”정유비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진청아를 쳐다봤다.그녀의 아버지 정해도 강성의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녀가 동영그룹에 온건 비즈니스 관리를 배우기 위해서야.당시 그녀의 아버지가 나태웅에게 그녀를 소개해 주며 했던 말이다.실질적인 업무를 보는 것보다는 공부하는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그런데 지금 배준우가 그녀를 해고한다고?그녀가 누군인지 알면서도? 아니면, 나태웅이 아직까지 안 알려준건가?배씨 가문, 정씨 가문!두 가문이 협력관계인 걸 알면서도 이런단 말인가?분노에 가득 찬 정유비의 모습을 보고 진청아가 한마디 덧붙였다.“정 비서님, 우리는 그냥 다 배 대표님 비서예요. 정 비서님은 가끔 그 사실을 잊으시나 봐요.” 진청아는 그녀가 배준우의 지시를 거역하고 이미월을 들여보냈으니, 이건 당연히 치러야 하는 대가라고 생각했다.그녀는 점점 더 굳어져 가는 정유비의 얼굴을 보며 이어서 말했다.“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정 비서님은 이미월 씨가 몰래 심어둔 ‘스파이’인 줄 알겠어요!”‘스파이’라는 말에 정유비는 끝내 이성을 잃고 소리쳤다.“누구더러 스파이라는 거야! 너야말
그녀는 시골에서 올라온 천박한 계집애가 이런 재주가 있는 줄 몰랐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나태웅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 했다.그러자 정유비가 그를 덥석 붙잡으며 말했다.“방금, 미월이가 왔다 갔어요!”“그래서 들여보냈어?”정유비는 침묵했다.“내가 저번에 한 얘기는 다 잊은 거야?”“저......”“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그녀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단념할 수 있겠는가! 동영그룹에 온 이유가 배준우 때문인데.그녀는 나태웅이 떠나면 자기가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방금 진청아의 대처능력을 보고, 그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녀는 배준우의 비서 자리가 아닌, 그의 아내 자리를 쟁취하는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토록 고은영을 쫓아내고 싶어 하는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그럼, 이제 떠나!”나태웅은 더 이상 정유비와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그의 태도에 정유비의 얼굴은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뭐, 뭐라고요?”그녀더러 떠나라고?나태웅의 냉담한 태도에 정유비는 마음이 불안해졌다.“제가 동영그룹에 왜 왔는지 잊으신 건 아니죠..?”“그럼 유비 씨는 기억해?”나태웅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 순간 정유비는 말문이 막혔다.그녀 마음속 깊이 숨기고 있는 욕망이 무엇인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그녀 자신은 아주 잘 알고 있다.그녀는 일을 배우러.... 아니, 배준우곁에 있으려고 온 것이였다.“어차피 초심을 잃은 이상, 더 이상 여기에 계속 있을 필요 없어.”“아니요, 저 이렇게는 못 떠나요!”“대표님이 이미 뱉은 말은 번복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는 있겠지?”다들 배준우를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동영그룹 운영을 맡은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고당했는지 모른다.그러나 나태웅은 잘 알고 있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선만 건드리지 않으면 그도 그렇게 모질게 하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지금 정유비에 대한 그의 인
지금 고은영은 안지영과 함께 있다.고은영이 배준우와 함께 퇴근해야 하기 때문에 회사 근처에 있는 전에도 늘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안지영은 닭고기 한 조각을 고은영에게 집어 주었다.“너무 맛있어, 한 번 먹어봐.”“응, 너도 빨리 먹어!”그녀는 이런 고기요리들을 즐겨 먹긴 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셨던 그런 맛은 나지 않았다.첫 입은 연하고 맛있었지만, 그래도 암탉이 더 맛있는 것 같았다.안지영은 먹으면서 고은영에게 물었다.“네가 이런 의심을 품고 있는게 말이 안 되는건 아니야. 친딸을 그렇게 대하는 사람이 대체 어딨어?”저번에 고은영이 통화하면서 했던 말을 생각하며 말했다.사실 안지영은 고은영이 조보은의 딸이 아니라는 걸 진작부터 의심했다.조보은이 고은영을 대하는 걸 보면 엄마가 자기 딸을 대하는 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고은영이 할머니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자기 친 딸이었으면 그렇게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네 말대로라면 우리 언니도 친 딸이 아니란걸 의심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도 다르지, 언니한테 못되게 굴어도 항상 데리고는 살았잖아.”하긴, 맞는 말이다!상황이 어떻든, 어딜 가든, 항상 고은지를 데리고 다녔다.하지만 고은영은 고은지가 조보은 옆에 있으면서 고생한 걸 생각하며 말했다.“그냥 부려 먹을 사람이 필요했던 아닐까?”안지영은 고은영의 말이 왠지 웃겼다.설마, 그 정도로 나쁜 인간일까!하지만,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다. 조보은은 정말 나쁜 인간이다. 고은영이 말한 말도 일리가 있었다.“그래, 너네 언니한테도 못되게 굴긴 했지. 학비도 그 여자가 낸 거 아니지?”고은지는 다른 사람에게 지원받아 학교에 다녔다.만약 조보은더러 학비를 내라고 했으면 아마 고은영과 함께 할머니 집에 방치해뒀을 것이다.안지영이 이렇게 말하니, 고은영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생각할수록 의심스러웠다.“그럼, 이참에 언니쪽 친자확인도 하는건 어때?”안지영이
안지영의 자신만만한 모습에도 고은영은 여전히 걱정됐다.“농사일을 하는 사람이랑 네가 괜찮을까?”농사일 한 사람이라면 힘을 더 말할것도 없다.안지영은 비록 성격이 불 같아서 말로는 이길테지만, 체력적으로는 조보은에게 밀릴것이다.“너 잊었어? 나 태권도 검은띠 7급이야!”맞다!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그렇다면, 조보은 한 명이 아니라, 심지어는 열 명이 와도 안지영한테는 상대가 안 될것이다.이 중요한 사실을 잊다니!그제서야 고은영은 안심이 됐다.“그래, 그럼 내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너 대표님한테는 말씀 드렸어?”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그럼, 대표님한테는 말하지 마.”안지영이 말했다.별로 영광스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게다가 현재 배준우와 고은영의 사이가 좀 어색하니 말하지 않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부부긴 하지만, 가짜 부부기 때문이다.그러나 또 아이가 있는 애매한 상황이다.고은영이 아이를 지키겠다고 결정한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픈데,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것이 좋다고 생각했다.고은영은 안지영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배준우가 회사에서 기다리고 있어, 고은영과 안지영은 서둘러 식사를 마쳤다. 고은영은 7시가 조금 넘어 회사로 돌아갔다.겸사겸사 배준우에게 줄 간식도 사갖고 돌아왔다.마침 배준우도 온라인 회의를 마쳤다.“끝났어요?”배준우는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표정에 고은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안 배고파요? 요기거리 라도 드실래요?”“뭐가 있는데?” 배준우가 그녀를 쳐다보며 물었다.“제가 좀 사갖고 왔어요.”고은영은 말하며 포장해온 음식을 가져왔다.배준우가 몇시까지 회의 할지 몰라서 조금 포장해왔다.집에서는 보통 2시간 정도 회의하니, 오늘 회의 때문에 그의 저녁식사 시간이 너무 늦어질까 봐 걱정됐다.배준우는 그녀가 자신을 위해 음식을 포장해온 걸 보자, 그제야 조금 풀렸다.고은영의 기대에 찬 눈빛에 배준우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
하늘 그룹 앞에서 나태웅이 일을 벌인다면 그건 하늘 그룹의 이미지에 좋지 않았다.안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밖으로 나갔다.안지영은 짜증이 나서 머리를 확 쥐어뜯었다.응접실에 온 안열은 문을 열자마자 거대한 남자의 그림자를 발견했다.그 일주일 동안 나태웅은 1년의 시간을 보낸 듯했다.그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그래서 나태웅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안열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안열은 빠르게 표정을 숨기고 담담하게 얘기했다.“들어가세요.”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열을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안열의 곁을 지날 때 시선을 내려 안열을 쳐다보았다.결국 나태웅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갔다.하지만 안열은 나태웅의 주변에서 흐르는 무거운 분위기에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나태웅이 사라진 후에야 안열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나태웅이 들어올 때 안지영은 마침 장선명과 통화하고 있었다.통화 내용은 결혼식에 관한 내용이었다.“네, 하얀 장미만 아니면 돼요. 그리고...”거기까지 말한 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보면서 의도적인 눈빛으로 얘기했다.“하얀 국화는 절대 안 돼요.”“국화에 트라우마 남은 거야?”전화기 너머의 장선명이 가볍게 웃었다.나태웅도 흘러나온 그 소리를 듣고 장선명이 얼마나 안지영을 아끼는지 알 수 있었다.표정이 굳은 나태웅은 더욱 차가워진 눈빛으로 안지영을 쳐다보았다.“결혼식이니까 당연히 국화는 안 되죠. 시력이 안 좋은 사람이 또 나한테 국화를 보낼까 봐 겁나네요.”“그래, 알았어. 감히 우리의 결혼식을 망치려는 사람이 생기면 난 그 사람을 바로 죽여버릴 거야.”“...”안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니, 그저 조심하라는 말이었는데 죽인다는 건... 좀 과하지 않아요?”“그래? 네가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을게.”“그래요.”안지영은 들어온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나누었다.나태웅의 표정이 점점 구겨지는 것을 보면서 안지영은 전화기에 대고 얘기했다.“점심때 먹고 싶은 게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