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고은영은 데려다 주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안 돼요, 저 혼자 갈래요." 배준우가 데려다 주면? 조보은이 배준우를 보면 아마도 2천만 원, 심지어 3천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의 염려를 눈치챘다. "내가 밖에서 널 기다리면 돼." 말을 마친 배준우는 다시 거절하기도 전에 손에 물 잔을 내려놓고 현관으로 향해 갔다. 배준우는 아직 샤워도 하지 않았다. 입고 있는 옷은 여전히 낮의 홈웨어였다. 고은영은 배준우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더는 거절하지 않았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배준우는 고은영에게 ‘고맙다는 말 그만 못할래?’라는 눈빛을 던졌다. 고은영은 몸을 움츠렸다. 고은영의 이런 모습을 보고 배준우는 코웃음을 쳤다. "간이 이 만큼 밖에 안 되면서 감히 혼자 간다고 해?" "저는 그 여자와 말할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어요." 고은영이 배준우의 말에 당당하게 대꾸했다. 이건 진짜 맞는 말이었다. 이익 관계도 없으니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고은영이 배항준을 기를 채워 ICU에 들여보낸 것을 생각하면 배준우도 정말 기가 막히게 느껴졌다. 담력 부분에서 말하자면, 고은영은 신기한 존재였다! 두려워하는 점도 매우 신기했다.배준우가 운전해서 고은영을 데려다 주었기 때문에 바로 도착했다. 전에 낮에 갈 때는 지하철을 타야 해, 버스를 타야 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오늘은 대략 40분이 지나니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배준우는 고은영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고은영은 놀라서 본능적으로 뿌리치려 했다. 하지만 배준우의 음울한 눈을 보고 순간 쫄았다. "배 대표님!" 배준우는 손목에 찬 시계를 보고 나서 말했다. "30분만 줄게" 고은영이 말했다. "아니면 먼저 돌아가세요." 고은영은 배준우가 온종일 화상 미팅을 하느라 지쳤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준우가 말했다. "30분 안으로 안 나오면. 내가 나 실장을 보내서 널 잡아오
그러나 방금 고은지의 태도는, 분명히... 진여옥의 이런 태도에 신경을 많이 쓰였다. 고은지는 고은영의 반문에 얼굴색이 굳어졌다! 눈밑에는 씁쓸함이 차오르며 말했다. "신경 쓸 게 뭐가 있어, 난 괜찮아." 괜찮다고 하는데! 그러나 고은영은 고은지의 말투에서 지금 상황에 대해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가자, 들어가자!" 고은지는 이 화제를 계속 이어나나고 싶지 않았다. 고은영도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고은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조보은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고 텔레비전을 향해서 실없이 웃었다. 생각이 없는 모양으로 봐서 방금 진여옥이 밖에서 한 말을 조보은은 정말 듣지 못했을까? 아니면 이익 앞에서... 조보은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모르는 척하는 것일까? 고은지는 조보은의 생각 없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얼굴이 어두워졌고, 침착한 얼굴로 소리쳤다. "엄마" 그러나 조보은은 못 들은 듯 계속 텔레비전에서 헛웃음을 지으며 해바라기를 까먹었다. 고은지는 고은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조보은이 무슨 뜻인지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언니, 나 오늘 너무 피곤해. 더는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먼저 돌아갈게!" 고은영은 얼굴빛이 어두워지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조보은이 고은지를 무시한 것은 단지 고은영이 엄마라고 불러주기를 기다렸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가? 하지만 고은영은 불러주지 않았다.조보은이 게으름을 피우려 하자, 고은영은 되돌릴 시간조차 주지 않고 바로 떠나려 했다. 역시나 고은영이 돌아서는 순간 뒤에서 '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조보은은 손에 든 해바라기를 전부 접시에 내려치면서 소리를 쳤다. "당장 거기서 안 멈춰?!" 고은영은 잠시 걸음을 멈추면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뒷모습만 보여줬다. 조보은은 고은영 뒤로 몇 걸음 다가와 고은영의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너 많이 컸네? 정말 나를 어머니로
조보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네 엄마야. 당연히 내가 나서서 상의해야지." 맞다. 보통 시집갈 때 봉채는 친정 부모님이 나서서 상의해야 한다. 그러나 고은영과 조보은의 관계는 일반적인 모녀의 애틋한 사이는 아니다. 조보은 말했다. "은영아, 화내지 마. 그때는 엄마가 잘 못 했어. 정말 화가 나서 살짝 미쳤던 것 같아! 내가 죽을죄를 지었어." 말을 하면서 조보은은 직접 자신의 얼굴에 뺨을 몇 대 때렸다. 조보은은 진심으로 후회한다. 만약 고은영이 이렇게 출세할 줄 알았더라면, 조보은은 그 당시에 그녀를 키웠을 것이다. 친 딸이 맞고 아니고가 어디 있어! 조보은은 애당초 서준호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재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직접 고은영을 키웠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다. 어쨌든 조보은이 직접 키웠더라면 지금 그녀의 덕을 보는 게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보은이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았지만,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계속 침착하게 말했다. "그럼 배 대표님을 찾아가서 봉채를 얼마나 달라고 할 건데요?" 조보은은 고은영이 반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손동작을 멈췄고, 눈가가 더 강하게 번쩍였다. 생각해 보더니 고은영에게 완곡하게 분석했다. "이 봉채라는 것은 남자의 가정형편, 그리고 남자의 마음속에 네가 차지하는 지위에 따라 계산해야 돼. ". "배 씨 가문의 집안 상황을 내가 알아봤는데. 괜찮아! 어찌 됐든 2억의 봉채는 줘야지." 2억? 용상의 봉채는 1000만 원대, 1200만 원대였다. 조보은의 말처럼 상대방의 가정형편이 좋다면 1600만 원대, 2000천만 원대도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시내 쪽의 사람들이고, 모든 여자아이가 그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조보은은 입을 열자마자 2억...! "배 대표님의 마음속에 있는 내 지위도 봐야 한다면서요?" "그래, 상의해야 하지. 이런 가정형편인 너와 결혼한다는데. 틀림없이 너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예단? 예단이 필요하다고?재벌이랑 결혼하면서 부모에게 예단까지 요구하다니!이 못난 것.조희주를 재우던 고은지는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에 놀라 다급히 안방에서 나왔다.“무슨 일이에요? 왜 싸워요?”고은지가 나오자 조보은은 씩씩거리며 고은영을 향해 손가락질하더니 다시 고은지를 바라봤다.“내가 얼마나 힘들지는 생각 안 해봤어?”“너희들을 키우느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뭔? 예단?”“엄마도 혼수 요구한 거 아니에요?”고은영은 콧방귀를 뀌었다.힘들었다고? 자기가 힘들면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딨겠어?힘들어도 자기가 힘든가? 키워준 할머니가 힘들지?고은영의 말에 조보은은 더욱 화가 났다.“난 네 엄마야,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혼수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고은영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조보은이 계속 말하려는 순간, 고은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은영아, 그만 좀 해.”고은지가 말리자 조보은은 더 흥분하며 말했다.“이 조보은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딴 물건을 낳았을까.”모두가 혼란 속에 빠졌고 그 말에 두 자매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자매의 떨떠름한 모습에 조보은은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쉴 새 없이 입을 놀렸다.“장 아주머니네 딸 설이 좀 봐봐. 자기 오빠 결혼한다고 새집에, 새 차에, 게다가 혼수로 쓰라고 이천만 원이나 줬대! 심지어 결혼식장 비용도 다 설이가 내줬다잖아. 그 여편네는 어쩜 그리 착한 딸을 낳았는지. 너희들은 왜 이따위야! 네 동생은 너희들 때문에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해! 내가 왜 너희들같이 쓸모없는 자식을 낳았는지. 아이고, 하나님, 부처님… 이런 자식인 줄 알았으면 낳자마자 버렸어야 했어.”조보은은 막돼먹은 말로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었다.하지만 고은영은 이런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입만 터지면 나오는 지겨운 말에 고은지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고은영이 할머니에게 간 뒤로, 조보은은 더는 그녀를 구박하고 때릴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고은지는 그녀와 함께 살았고, 조
진여옥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조보은의 얼굴이 굳어져 버렸다.“그게.... 사돈, 오해에요. 이 계집애가!”“어떤 속셈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용수는 그 여편네 딸처럼 멍청하지 않아요. 그리고 아무리 친형제여도 계산은 똑바로 해야죠. 고은지는 내 며느리니 이젠 우리 가문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런 허황한 꿈은 깨세요!”진여옥은 조보은에게 확실하게 경고하였다.조보은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가 다시 창백해졌다.비록 진여옥의 말에 일리가 있지만, 고은지는 만감이 교차했다.조보은은 겨우 화를 참으며 말했다.“사돈, 그 말은 옳지 않아요. 우리 은지가 조씨 가문에 시집가면 우리는 한 가족과도 마찬가지에요. 가족끼리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겠어요? 아닌가요?”“누가 가족이에요?”진여옥이 갑자기 불같이 화를 냈다!그나마 남았던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다.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물었다. “고은지가 우리 가문에 들어와서 이바지한 게 뭐 있어요? 오히려 우리 가문에서 서정우 학비까지 다 내줬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그쪽 며느리까지 신경 써야겠어요?”“학비는 은지가 결혼 전에 모은 돈이지 조씨 가문의 돈이 아니잖아요.”조보은도 슬슬 화를 내기 시작했다.결혼 전에 고은지의 월급이 높았다는 사실은 그녀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여 그녀는 조씨 가문에서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끊임없이 고은지에게 돈을 요구하며 선수쳤다.진여옥은 가식조차 떨지 않는 조보은을 보고 버럭 화를 내며 그녀의 어깨를 밀쳤다.“그래서 앞으로도 쭉 돈 뜯어낼 생각이세요?!”“내 딸한테 돈 달라는데 문제 있어요?”조보은의 인내심도 바닥을 쳤다.고은지가 조씨 가문에 시집간 뒤로 조보은은 조씨 가문의 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갖 수모를 다 겪었다.그런데 진여옥이 완전히 패를 까버리고 말하자 조보은도 더는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참지 않았다.뻔뻔한 말을 이렇게 뻔뻔하게 내뱉는 조보은의 모습에 진여옥은 말 문이 막혔다.잠시 침묵이 흘렀다.조보은은 자기가 진여옥의 기세를 꺾었다고
고은지는 멍한 표정으로 조보은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이제 만족하세요?”“아니, 은지야......”“이혼, 내일이면 이혼하시라네요. 만족하시냐고요?”고은지는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그녀는 수년간 조보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고, 진여옥은 그게 지겨워 그녀에게 이혼을 요구했다.수년간의 인내가 순식간에 무너졌다!조보은은 뭐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고은지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소리를 질러 뭐라 할 수 없었다. “만족하세요? 만족해요?”“언니.”고은영이 고은지를 끌어당겼다.그녀는 무슨 말을 해서라도 고은지를 달래고 싶었다.하지만 조보은이 한 짓을 생각하니 어떻게 달래야 할지 알 수 없었다.조보은이 말했다.“내가 뭐 이혼시키라고 했어? 네 시어머니 왜 저러니!”고은지의 울부짖음에 조보은은 바로 잘못을 진여옥에게 떠밀었다.하지만 진여옥이 저렇게 화를 낸 것은 단연 조보은 때문이다.모든게 조보은의 잘못이다!고은지는 바닥에 주저앉아 말했다.“은영아, 너 먼저 돌아가.”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순간 고은지는 이런 엄마가 있는 한, 자신의 가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진여옥이 오늘 이혼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불씨가 피어올랐을 것이다.고은지가 고은영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니 조보은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가긴 어딜 가. 혼수는 어쩌고!”“당신한테 엄마 자격이 있기나 해요? 무슨 자격으로 은영이한테 혼수를 내놓으라고 하세요?!”고은지는 또 한 번 격분했고, 그녀의 목소리는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고은지의 말에 조보은은 그나마 남아있던 미안한 마음도 한순간에 사라졌다.“고은지! 너 말 똑바로 해. 내가 왜 자격이 없지? 넌 내가 낳았고, 내가 키웠어.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엄마가 날 낳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에요!”고은지는 한 글자 한 글자 날카롭게 내뱉었다. 이 말은 전에 고은영도 한 적 있었다!고은지의 말투에는 피맺힌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런 고통
그녀는 고은지의 정서가 이렇게 격앙될 줄 생각도 못 했다. 고은지는 고은영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걸고 조보은에게 맞섰다.그녀의 과격한 행동에 조보은도 깜짝 놀랐다.“너, 너 뭐 하는 짓이야! 그 칼 당장 내려놔!”“언니, 칼 내려놔!”고은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키며 고은지를 바라봤다.혹시라도 고은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정말 두려웠다.“은영이 착하지. 너 먼저 가.”“언니가 이러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고은영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네가 가야 내가 편해져. 그러니까 내 말 들어..... 자, 이젠 그만 가.”지금 고은지는 고은영을 부른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그리고 일찍 이렇게 강하게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긴 세월 동안 내가 왜 날 괴롭히게 놔뒀을까.’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고은영은 또 어떻게 그녀를 놔두고 떠난단 말인가?고은영은 애써 목소리를 누르고 고은지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언니, 우선 칼 내려놓자!”“너 제발, 그냥 가!”고은영이 가까이 다가오자 고은지의 정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격앙됐다.칼을 든 그녀의 손에는 점점 더 힘이 들어갔고, 하얀 목덜미에서 새빨간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고은영은 가슴이 철렁하며 소리를 질렀다.“언니!”“가!”고은지가 울부짖었다.손에는 점점 힘이 들어갔고 상처는 점점 더 깊어졌다.고은영은 놀라서 더는 앞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당장 갈 테니까 언니 흥분하지 마!”혹시라도 고은지가 더 흥분할까 봐 고은영은 더는 다가갈 수 없었다.고은영 마음속의 고은지는 온화하고 침착한 사람이다.하지만 오늘 갑자기 찾아온 조보은과, 완전히 관계가 틀어진 진여옥 때문에 그녀는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고은영은 그런 고은지 때문에 더 마음이 아팠다.하지만 고은지는 그저 고은영이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길 바랐다.“가라고!”그녀의 정서는 완전히 무너졌다.고은영은 두 다리를 벌벌 떨며 말했다.“응, 갈게, 언니. 흥분하지 말고, 다치지 말고.”
골목에서 뛰쳐나온 고은영은 저 멀리 가로등 아래에 세워진 배준우의 차를 발견했다.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녀는 그의 얼굴을 알아 볼 수 있었다.방금 격렬했던 상황과 지금 배준우가 그녀를 기다리는 장면은 극과 극의 상황을 만들어 냈다.하나는 그녀를 숨 막히게 했고, 하나는 그녀의 마음을 달래주었다.고은영이 비틀거리며 차에 올랐다.문을 닫는 순간, 배준우도 전화를 끊고 그녀를 향해 물었다.“왜 그래? 얼굴이 왜 이렇게 창백한 거야?”배준우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보더니 그녀가 열이 나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한시름 놓았다.고은영은 두 눈을 붉히며 배준우를 바라봤다.순간 배준우는 깜짝 놀라 황급히 물었다.“왜 그래?”고은영이 말했다.“계속 여기서 기다렸어요?”배준우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계를 확인했다. 그녀를 기다린지도 거의 1시간이나 되었다.그는 차에 시동을 걸고 떠나려고 하자 고은영이 불러세웠다.“잠깐만요.”“왜?”배준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시간이 늦었으니 배준우는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불안해서 그래요. 조금만 있다 가요.”격앙된 고은지의 정서에 고은영은 도무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그녀는 고은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두려웠다.배준우가 물었다.“무슨 일인데?”배준우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감지했다.고은영은 고개를 숙였고, 이내 그녀의 구슬 같은 눈물이 손등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비록 조보은 앞에서는 강한척 했지만 사실 그녀도 제 발이 저렸다.그리고 진여옥의 말에 그녀는 왠지 모를 안도감이 생겼다!‘준우씨와의 결혼이 가짜라서 다행이야. 만약 진짜였다면...... 그렇다면 내 인생은 뒤죽박죽이 되었겠지.’배준우는 어깨를 들썩이는 그녀를 보더니 나지막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울어?”고은영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어깨는 점점 더 떨려왔다.배준우는 한숨을 내쉬며 휴지를 건네주었다.고은영은 휴지를 받아 들고 인사를 전했다.“고마워요.”그녀는 흐르는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
안지영과의 대화를 끝낸 후 고은영은 마침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더 이상 불안하게 이리저리 쫓기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안지영은 여전히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고은영을 달래고 나서도 심장이 가라앉을 틈도 없이 나태웅의 전화가 집 전화로 걸려왔다. 그녀는 번호를 볼 수 없어서 그냥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틀 남았어.” 그 한 마디에 안지영의 화가 폭발했다. “뭐라는 거야?” “주원이에게 사과해!” 안지영은 입을 다물었다. ‘이 미친놈! 끝까지 이러는 거야?’ 만약 예전 같았으면 안지영은 그에게 말도 안 되는 반격을 했겠지만 지금은 화가 나서 전화를 바로 끊어버렸다. 안열이 들어왔을 때 안지영은 얼굴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배씨 부인 쪽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안열은 안지영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불안한 이유가 결국 고은영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감정은 조금 달랐다. 안지영은 고은영으로 인해 말문만 막힐 정도였고 다른 사람 때문이라면 분명 엄청 화를 낼 것이다. “아니에요!” 사실 고은영에게 생긴 일도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녀의 세상은 너무나 복잡했고 고은영이 또 울기 시작할지도 몰랐다. 안열은 안지영의 목소리에서 누그러지지 않는 화를 느끼며 궁금해했다. 고은영이 아니라면 또 누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죠?” “나태웅이 나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고 했어요. 이틀밖에 안 남았다면서요.” ‘이 사람이...!’ 나태웅에게 욕을 할 만큼 다 했는데도 그를 물리칠 수 없었다. 지금 안지영은 연달아 욕할 힘조차 없었다. 그의 존재를 설명할 만한 적절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미친놈? 병신?’ 안열은 놀라며 물었다. “뭐라고요? 사과요?” ‘정말 이 사람 끝까지 그러는 거야?’ 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왜 사과를 해야 하죠?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얼마 전 나태웅의 집착과 하주원
안지영은 잠시 침묵했다. 이렇게 큰일이면 분석하는 데 얼마나 큰 두뇌 용량이 필요할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고은영이 울려고 할 정도로 급해진 게 이해가 갔다. 자신이라도 정말 울고 싶을 정도였다. ‘이게 도대체 뭐야, 진짜?’ “그럼 나태현은 량천옥이 너희 언니의 친엄마라는 걸 알아?” “그건 나도 몰라.” 상황이 이미 너무 복잡해서 이젠 고은영조차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너무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나태현과 고은지가 거래를 했다는 것만 봐도 그의 동기는 좀 의심스럽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이제 지신혜와 결혼을 약속했고 고은지를 천락 그룹에 다시 데려가려 했다. 그동안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전력도 있으니 나태현의 속셈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게 분명했다. 안지영은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난 네가 차라리 네 언니에게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지금 말해?” “그럼, 무조건 말해야지! 량천옥이 아무리 미워도 네 언니의 친엄마잖아.” 진실을 알게 된 후 고은지가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녀의 자유다. 하지만 지금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계속 숨기면 만약 나중에 후회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라는 사실은?” “그건, 생각 좀 해볼게!” ‘이건 말을 해야 할까 아니면 말하지 말아야 할까?’ 안지영은 바로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일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태현은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역시 나씨 가문 사람이야. 어쩜 다들 이렇게 나쁜 자식이지?’ 전에는 나태현이 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와 보니 하나같이 나쁜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얘기하는 게 좋겠어!” 이렇게 큰일을 말 안 하면 나중에 얼마나 큰일로 번질지 알 수 없었다. 안지영은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이었다. 그래서 고은영더러 고은지에게 모든 일들을 잘 설명해 주라고 말했다. 어차피 고은지는 지금 모든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고 아무런 일도 모르는 전제
어떤 실수는 한 번 저지르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전에 량천옥은 악행을 저지르며 두려움 없이 살아왔고 아무런 후회도 없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아무런 방법을 쓰지 못했으며 그녀는 자신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그때는 아무도 그녀에게 손을 쓸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런 강력한 여자가 자발적으로 모든 심판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나태현이 구희주가 자신의 딸인 걸 알았다고 했지?” 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량천옥은 눈을 떴고 그녀의 눈빛은 이제 완전히 맑아졌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강한 분노와 증오가 서려 있었다. 구희주가 자신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약속하고 자신과 고은지를 거래로 고은지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하다니. 도대체 그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이 모든 상황은 나태현의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는 걸 확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량천옥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알았다. 이 일은 내가 처리할게.” 그녀는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자신의 딸, 고은지는 여전히 그녀를 증오하고 있으며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슬픔은 과거 그녀의 손에 고통받았던 고은영조차도 압도할 정도였다. 결국, 두 사람은 어떻게 헤어졌는지 모르겠다. 고은영은 원래 배준우를 만나러 가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안지영을 찾게 되었다. 안지영은 본래 회의를 가려고 했지만 고은영이 찾아오자 30분을 미뤘다. “왜 이렇게 걱정이 많아 보여? 배준우가 너 괴롭혔어?” 고은영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지영아, 내 뇌가 부족한 것 같아.” 안지영은 웃으며 말했다. “너 뇌가 부족한 건 항상 있는 일 아니었어?” 그녀는 장난스럽게 고은영을 놀리며 말했다. 하루 이틀 있는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죽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은영이 이 말을 듣고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이 순간, 고은지는 예전과는 다른 집요함을 보였다. 나태현이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그것이 그녀를 이렇게 단단히 만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량천옥은 계속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고은영이 차에 올라타자마자 량천옥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됐어? 은지가 왜 일을 하겠다고 했지? 돈은 줬어?” 량천옥은 상황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은지가 돈 때문에 일을 하러 간다고 믿고 있었다. 돈만 주면 고은지가 편안하게 몸을 회복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고은영은 그녀를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언니가 천락 그룹에서 일하겠다고 했어요.” “뭐?” 고은지가 천락 그룹에서 일한다는 말을 들은 순간 량천옥은 숨이 막힐 정도로 놀랐다. 고은지가 예전에 천락 그룹에서 일했던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나태현이 고희주의 아버지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량천옥은 고은영을 바라보았다. “안 가면 안 돼?” “나태현이 언니와 거래를 한 것 같아요!” “무슨 거래?” 거래라는 말에 량천옥은 갑자기 경계심을 드러냈다. 남자와 여자가 거래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몇 년 동안 배씨 가문에서 여러 가지 남자의 모습을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 숨겨진 더러운 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태현이 지씨 가문과의 결혼 소식이 보도되었음을 알았다. ‘약혼도 한 마당에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오게 한다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결혼도 하기 전에 외도를 하겠다는 건가?’ 량천옥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고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결국엔 말을 꺼냈다. “나태현이 구희주의 아빠예요.” “뭐?” 량천옥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구희주의 아빠라니, 그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구희주가 우울증에 걸린 이유는 자신이 조영수의 딸이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학교의 아이들은 그녀를 그 문제로 계속해서 괴롭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태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