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지금 고은지가 하는 말들도 마치 독침처럼 량천옥의 가슴을 찔렀다.“너.”“그쪽이 은영이를 미워하는 건 알지만 은영이는 한 번도 그쪽을 속인 적 없어요. 은영이는 아무것도 몰랐다고요.”전에도 고은영에게 량천옥과 관련된 일을 알려준 사람은 없었지만 량천옥은 인정하든 말든 일방적으로 고은영에게 보상해 주려 했다.고은영은 그저 이유도 모른 채 그걸 받아들였을 뿐이었다.속였다는 단어가 나오니 량천옥은 순간적으로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닥쳐. 이 못된 계집애. 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넌 아무것도 몰라.”량천옥은 이 모든 것이 분명 배준우의 음모라고 생각했다.배준우가 량천옥에게 잃어버린 딸이 있다는 걸 알고 이 모든 것을 다 계획했을 것이다.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 량천옥을 보고 고은지가 말했다.“그쪽은 지금 비참한 웃음거리에 불과해요.”량천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숨을 헐떡였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량천옥은 순간 옆에 있던 물컵을 들어 고은지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한순간에 고은지는 온몸이 흠뻑 젖어 초라해졌다.밖에서 대기하던 혜나와 사라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급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이보세요. 보아하니 얘기가 유쾌하게 끝난 것 같지 않은데 그만 나가주세요.”혜나는 고은지의 지시는 신경 쓰지 않은 채 앞으로 가서 량천옥을 밖으로 밀쳐내기 시작했다.‘이런 미친 여자하고는 될 수 있는 대로 엮이지 않는 게 좋아.’사라는 마른 수건을 가져와 고은지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주었다.고은지는 문 앞에서 개처럼 끌려가는 량천옥을 바라보며 침착함을 유지했다.사라가 물었다.“괜찮으세요?”“고마워요. 난 괜찮아요.”“다음에는 량천옥 씨를 더 이상 만나지 마세요. 너무 상처가 되는 말만 하는 것 같아요.”사라가 말했다.아까 고은지는 량천옥에게 자신의 태도를 확실히 전달했다.어제는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해서 량천옥의 말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부정적인 감정에 휘말렸었다.하지만 오늘은 고은영의 한 말을 듣고 고은지도
배윤이 어떻게 그런 곳에 간 걸까?량천옥은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말했다.“근데 지금 무슨 일로 날 찾은 거죠?”“배윤이 우리한테서 40억 원을 빚졌습니다. 여사님께서 직접 오셔서 데려가셔야겠는데요? 아니면 저희가 배윤을 보내드릴까요?”여사님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량천옥의 신경을 자극했다.바로 이 순간 량천옥은 자기가 도대체 무엇을 잊었는지 완전히 깨달았다.그녀는 더 이상 무한한 권력을 누리던 배씨 가문의 사모님이 아니었다.량천옥은 배씨 가문을 떠나도 돈만 있으면 전과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사모님이 아니라 여사님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비꼬는 듯이 들릴 줄은 몰랐다.40억 원은 예전의 량천옥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지금은 꽤 큰 돈이었다.량천옥은 몇 번이나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다잡았다.“맞아요. 내가 량천옥이에요. 하지만 당신들 잊은 게 있는데. 윤이의 아버지는 배항준이고 형은 배준우예요.”“하지만 배윤은 지금 저희한테 량천옥 여사님만 찾으라고 하는데요. 지금 여사님께서는 이 돈을 갚아주시지 않겠다는 건가요?”‘배윤이 이 사람들에게 날 말했다고? 이 자식 정말 미쳤네. 지금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곳이 배씨 가문 뿐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거야?’량천옥도 배씨 가문을 떠날 때 배윤을 데리고 나오고 싶었지만 배윤이 먼저 그녀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당시 배윤은 함께 R국에 가자고 해도 싫다고 했었는데 왜 이제와서 량천옥을 찾는 것일까?량천옥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먼저 말하기 전에 핸드폰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만약 량천옥 여사님께서 아들을 데리러 오지 않으시겠다면 저희는 다른 방법으로 배윤을 여사님께 보내드릴 수밖에 없습니다.”“다른 방법이라뇨?”량천옥은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그 남자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그저 음산하게 웃었다.그 웃음소리에 량천옥은 마음이 불안해졌다.“윤이를 해치지 마세요.”그래도 배윤은 량천옥의 아들이었다.그동안 두 사람의 관계가 아무리 나빠도
고은지의 주치의는 잠시 외출했다가 병원으로 돌아오면서 통화하고 있는 량천옥과 부딪혔다.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지자 화면은 바로 산산조각 났다.원래부터 이미 멘붕이었던 량천옥은 이 상황에 더욱 분노에 휩싸여 소리를 질렀다.“아.”진짜로 멘탈이 무너져 봤던 사람이라면 그 순간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알 것이다.비명을 질러도 마음속의 분노는 풀어지지 않을 것이다.주치의 서민혁은 량천옥의 미친 듯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서민혁은 멈칫하고서는 허리를 숙여 량천옥의 핸드폰을 주워주려고 했지만 바로 그 순간 량천옥은 그를 가로막았다.“건드리지 마.”서민혁은 충격받은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지금 이게.”서민혁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량천옥은 서민혁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날카로운 량천옥의 손톱은 마치 서민혁의 살 속을 파고들 것 같았다.“10억 줄게. 고은지를 죽여.”량천옥은 이를 악물고서는 한 글자 한 글자 분노를 담아 말했다.배윤과 관련된 전화가 량천옥에게 마지막 결정타를 날린 것이었다.량천옥은 마음속으로 모든 걸 고은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이제 량천옥은 고은영이 고통받길 원했고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미쳐 있었다.서민혁은 량천옥의 독기 어린 말을 듣고 얼굴이 어두워졌다.“여사님 제발 손 놓으세요.”서민혁은 살면서 이런 악독한 여자를 본 건 처음이었다.만약 량천옥이 배씨 가문에서 본인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친자식을 해치려고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제 량천옥은 배씨 가문의 사모님도 아니었다.최근 배항준에게 새로운 애인이 있다는 것이 밝혀져 다들 알고 있었다.배씨 가문에서 량천옥은 이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량천옥은 더 이상 배씨 가문에 돌아갈 수도 없었고 량천옥에게도 배씨 가문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20억 20억 줄게.”량천옥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순간 병원 입구에서 오가던 사람들은 량천옥을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이미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었다.서민혁은 여기서
이런 진성택을 보고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싶었다.하지만 진씨 가문의 사람을 대면하는 건 언젠가 꼭 겪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고은영은 운전기사에게 먼저 고희주를 데리고 올라가 진청아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그리고 고은영은 진성택과 함께 회사 건물 아래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뭐 드실래요?”고은영은 커피 한 잔을 주문한 뒤 진성택에게 물었다.진성택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난 괜찮아. 너 마셔.”진성택은 지금 병 때문에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고은영도 더 이상 개의치 않고 메뉴판을 웨이터에게 건네주며 말했다.“그냥 커피로 주세요. 감사합니다.”“네 잠시만요.”웨이터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진성택은 고은영을 바라보며 자기 아내와 닮은 모습에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이 모든 것이 마치 꿈만 꾸는 것 같았다.고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슨 일로 절 보자고 하셨죠?”진성택이 계속 말이 없자 고은영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고은영은 오늘 진성택이 찾아온 것은 그녀를 집으로 데려가려는 목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성택은 한숨을 쉬며 무언가 말하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전혀 몰랐다.고은영은 이 상황이 짜증 나기 시작해 눈살을 찌푸렸다.요즘 고은영은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아 정신이 없었고 또 이미 진씨 가문 사람들의 태도를 봤기에 그녀도 뭔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사실 고은영은 그동안 가족에 대한 기대조차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지금 진성택의 태도는 고은영의 아픔을 조금도 달래주지 못했다.잠시 후 고은영이 커피 한 잔을 거의 다 마셔갈 때쯤 진성택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내가 정말 미안하다. 이제야 널 찾아왔구나. 그동안 우리 가문에서 일어난 많은 일을 너도 들었을 거라 생각한다.”고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대꾸할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그런 고은영의 모습에 진성택은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은영이 계속해서 대꾸가 없자 진성택
“고은영은 사실 집으로 네가 돌아오고 싶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된단다. 유경이는 네 걸림돌이 아니야. 너희 둘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어.”진성택은 다급하게 말했다.그는 자기 뜻을 고은영의 앞에서 완전히 드러냈다.하지만 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을 듣고서는 속으로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다.고은영은 진성택의 뜻을 이해하고서는 진정훈이 전체 진씨 그룹을 장악했다는 걸 깨달았다. 진정훈이 진유경을 진씨 가문에서 쫓아내려 한다면 그건 시간문제였다.하지만 진성택은 진유경이 떠나는 걸 원하지 않았다.결국 진정훈이 이 모든 일을 저지르는 건 고은영 때문이기에 진성택은 지금 고은영에게 진유경을 위해 진정훈에게 잘 말해달라는 것이었다.고은영에게 이걸 부탁하기 위해 긴 얘기를 빙빙 돌려 말했다는 것이 정말 웃겼다.“진씨 가문의 모든 건 네 것이야. 유경이는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아. 하지만 제발 유경이를 진씨 가무에서 내쫓지 말아줘. 우리도 유경이를 이렇게 오랫동안 키웠고 너에 대한 사랑을 유경이한테 쏟았단다. 우리도 유경이에게 정이 들었어. 너도 이해할 수 있지?”고은영은 당연히 이해했다.이해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지금 진유경을 위해 이렇게 급급해하는 진성택의 모습을 보면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이 도대체 뭐죠?”고은영은 일부러 못 알아들은 척하며 물었다.진성택은 그 말을 듣고 약간 부끄러워졌다.진성택은 더욱 미안한 눈빛으로 고은영을 바라보았다.그도 이렇게 고은영을 찾아 와 진유경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진성택은 아주 명확하게 뜻을 전달했기에 고은영이 알아듣고 진정훈에게 먼저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고은영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성택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정훈이가 널 많이 아끼고 있으니 네가 하는 말은 뭐든지 다 들어줄 거야.”고은영이 말했다.“전 진정훈 씨하고 그렇게 친하지 않은데요.”“하지만 정훈
고은영은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꽉 쥐었다.최근 기사로 나온 것만 봐도 진씨 가문이 얼마나 파렴치한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다.하지만 고은영이 그들의 밑바닥을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현실 속에서 그들은 상상 이상의 비열함을 보여주고 있었다.고은영은 다시 소파에 앉아 눈앞에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진성택을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순간 고은영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그 웃음 속에는 짙은 조롱의 뜻이 깃들어 있었다.“저보고 진정훈 씨에게 부탁하라고요?”이런 요구를 진성택은 어떻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걸까?진성택은 지금 자기가 누구에게 이런 무례한 요구를 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걸까?그는 도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진성택은 고개를 숙이고서는 손을 맞잡았다.분명 그도 자신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진성택은 고통스럽게 눈을 감으며 말했다.“네가 말하면 정훈이는 뭐든지 들어줄 거야. 지금은 네 말만 들을 거야.”아니, 진정훈은 진윤의 말도 들을 것이다.하지만 진윤과 진성택 사이는 진정훈보다 더 안 좋았다.이렇게 다른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진성택은 절대로 고은영을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진성택도 지금 자기가 얼마나 비열한 요구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러나 지금 그는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허허.”고은영은 다시 한번 비웃음을 날렸다. 그녀는 조롱의 뜻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진성택은 그 조롱 섞인 웃음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더 아팠다.그는 다시 한번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유경이는 절대 진씨 가문에서의 네 몫을 건드리지 않을 거야. 유경이는 단지 진씨 가문에서 살고 싶을 뿐이야.”결국 진씨 가문에서 사는 것과 쫓겨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었다.진유경도 분명 진씨 가문에서 쫓겨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든 진씨 가문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고은영이 말했다.“정말 놀랍네요.”고은영은 조롱 섞인 목소리로
이 순간 고은영은 늘 그래왔던 태생부터 나약할 것 같은 분위기는 사라지고 온몸으로 배씨 가문 사모님의 품격과 우아함을 뿜어내고 있었다.진성택은 그런 딸의 모습을 보니 더욱 마음이 쓰라렸다.이것이 바로 요즘 진성택이 고은영을 찾아올 용기가 없었던 이유였다.알게 모르게 진성택은 이미 고은영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진성택이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은영은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뒤로 제가 아이를 낳았을 때 진유경이 직접 저한테 찾아와서 도발했어요. 준우 씨가 저와 이혼할 거라면서 자신이 미래의 배씨 가문 사모님이 될 거라고 하던데요.”원래 진유경의 말과는 똑같지 않았지만 의미는 거의 같았다.진성택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뭐라고?”“모르셨나 봐요?”“난...”진성택은 가슴이 싸늘하게 식었다.고은영의 차갑고 어두운 시선을 마주하자 진성택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진유경이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진성택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은영이 말했다.“진씨 가문에서는 진유경을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지만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셨나 봐요. 그런데 절 보고 진유경과 평화롭게 지내라고요? 죄송하지만 전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역시 고은영은 진씨 가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항상 밖에서 오만하고 무례하게 굴던 진유경을 고은영은 정말 좋게 볼 수 없었다.이른바 당당함이라면 그 당당함에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진유경이 고은영에게 한 짓은 많지 않았지만 그중에 어느 하나도 도덕적 한계를 넘지 않은 것이 없었다.원래 고은영은 진성택과 이렇게 많은 얘기를 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가 먼저 찾아왔으니 어쩔 수 없이 그를 단념시킬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고은영이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이렇게 많은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성택은 전혀 단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고은영이 일어나려 할 때 진성택은 마침내 입을 열었다.“미안하다. 이건 다 내 잘못이야.”고은영은 발걸음을 멈추고서는 눈썹을 치켜세운 채 진성택을 바라보
고은영은 더 이상 진성택과 말하고 싶지 않아 고개도 돌리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다.그러나 고은영의 마지막 말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진성택의 가슴을 강하게 내리쳤다.‘방금 은영이가 자기 힘을 빌리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뜻이지? 내가 은영이를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건가?’여기까지 생각한 진성택의 마음은 더욱 깊이 가라앉았다.고은영은 진성택의 잃어버렸던 딸인데 어떻게 진성택이 그녀를 이용할 수 있을까?진성택은 그저 죽기 전에 가족들이 잘 지내길 바랐을 뿐인데 왜 이렇게 간단한 소원도 이룰 수 없는 걸까?고은영이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배준우도 이미 회의를 끝낸 상태였다.운전기사는 배준우의 사무실에서 나왔다.배준우는 어두운 얼굴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손짓했다.“이리 와.”배준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권위적이었다.고은영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면서 배준우에게 다가갔지만 그녀의 얼굴도 배준우처럼 어두웠다.고은영이 배준우가 앉아 있는 의자에서 1미터쯤 가까워졌을 때 배준우는 팔을 뻗어 고은영을 품에 끌어당겼다.고은영은 잠시 몸부림치다 말했다.“희주는 올라왔어요?”“응, 비서팀이 데려가서 놀고 있어.”고은영이 말했다.“그럼 이거 놔요.”고은영은 지금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그러나 배준우는 고은영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기에 오히려 그녀를 더 단단하게 안았다.“진성택이 널 찾아왔다며?”“네.”고은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배준우는 이어서 물었다.“무슨 얘기 했어?”고은영이 대답했다.“진유경에 관해 얘기했어요.”몇 분이 지나도 고은영은 여전히 진성택이 그녀를 찾아온 목적이 웃긴다는 생각이 들었다.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배준우는 진유경이 진씨 가문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진성택이 진유경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길 줄은 몰랐다.“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데?”배준우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낮아졌고 고은영의 안색도 더욱 어두워졌다.‘무슨 말을 했냐고?’고은영은 깊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