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이 이 정도로 사고를 쳤으니 아무도 그를 구해줄 수 없었다. 오늘 그를 죽이지는 못해도 전신전 전주께서 친히 그를 벌할 것이다!염구준… 넌 이미 죽은 목숨이야!“알았어.”염구준은 주먹을 거두고는 손가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걱정과 수심이 가득했다. 그는 다시 이제마를 보며 담담히 미소를 지었다.“선생님, 집사람이 많이 걱정하는 것 같아서 말인데, 제가 그렇게 실례를 범했나요? 전 선생님만 믿고 장인어른 다리를 치료하러 여기까지 왔단 말입니다.”가슴이 철렁한 이제마는 다급히 다가가서 손가을에게 말했다.“손가을 씨는 저와 초면도 아닌데 굳이 그렇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어요. 염 선생처럼 용건만 간단히 말하는 분을 저도 좋아한답니다!”그는 자세를 숙여 손태석의 발목을 잡아보고는 말을 이었다.“제가 최근에 개발한 처방전이 있는데 손상된 연골을 복구하고 근육통을 해소하는데 효과가 아주 좋답니다! 그런데 재료가 하도 귀해서 지금은 1인분밖에 없어요. 손 선생님이 앓는 고질병도 3일이면 완쾌가 될 것 같습니다. 맡겨만 주시지요.”이게 무슨?장무현, 손태산, 손호문, 그리고 이곳 의료관 담당자까지 당황함을 금치 못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놀란 건 손태석과 손가을도 마찬가지였다.저 거장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지?염구준을 벌하기는커녕, 새로 개발한 처방전을 손태석의 다리를 치료하는데 쓰겠다고?나이가 드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하시나?염구준이 조금전에 결례를 범했는데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이 선생님!”성질 급한 손태산이 더는 참지 못하고 이를 갈며 말했다.“저와 장무현 씨는 거액의 돈을 성의로 보여드렸는데 어찌 염구준 가족을 먼저 진료한단 말입니까? 그럼 저희는 뭐가 돼요?”장무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손상된 연골을 복구하고 근육통을 해소한다라… 온몸에 골절상을 입은 장혁에게 꼭 맞는 처방전이 아닌가? 시에 있는 골절 전문가들도 가망이 없다고 손을 턴 가운데, 저 처방전만이 장혁이 살길이었다.그런데 이제마가 그렇게 좋은
조금 전 그는 1인분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연골치료제를 손태석을 위해 쓰겠다고 했다. 그럼 손태산의 오른 다리와 오른 팔은? 그리고 장혁은?그들의 희망이 처참히 부서진 순간이었다.“내 말을 그렇게 이해하기 어려워? 다들 귀가 먹었어?”이제마는 싸늘한 시선으로 그들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난 지금 손 선생의 다리를 치료해야 하니까 방해하는 자들은 다 죽여버릴 거야!”손태산과 장무현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화가 나고 분했지만 그들은 결국 반박할 수 없었다.지금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건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다!“노여움 푸시지요.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결국 장무현은 억지 미소를 지으며 한걸음 물러섰다.“이미 처방전 제작에 성공했으니 나중에 또 기회가 되겠죠. 혹시 다음 번에라도 가능하다면….”이제마는 무슨 헛소리냐는 듯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당장 꺼져!”장무현은 입을 꾹 다문 채, 부하들을 데리고 도망치듯 의료관을 빠져나갔다.“저… 저도 가보겠습니다!”손태산은 미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염구준을 힘껏 노려보고는 이를 갈며 말했다.“염구준, 네가 저지른 업보는 결국 거대한 재앙이 되어 네 놈에게 되돌아갈 거야! 두고 봐!”말을 마친 그는 전동 휠체어의 버튼을 누르고 진동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사람들이 다 떠나자 드디어 어수선하던 의료관이 다시 조용해졌다.“손 선생님.”이제마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직접 손태석을 부축해 진료 의자에 앉혔다.“조금 전에 만지면서 느꼈는데 아주 오래 전에 당한 부상이고 연골이 잘못된 위치에 고정되어 있네요. 다시 경맥을 뚫고 위치를 맞추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래도 3일 정도면 완쾌될 겁니다.”손태석은 여전히 떨떠름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그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염구준이 무례를 범했는데도 이제마는 나무라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손님들을 다 쫓아내고 그를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구준 씨….”손가을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이제마는 다급히 고개를 흔들었다.이게 무슨 소리인가!전신전 전주의 장인어른을 상대로 어찌 감히 돈을 요구할까!게다가 그는 염구준의 지시를 받고 손태석의 다리를 치료하러 일부러 청해시에 방문한 것이었다. 연골 치료제도 염구준의 처방이었다.“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염 선생과 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친분을 쌓아온 사이입니다.”이제마는 감히 염구준의 신분을 발설할 수는 없었기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진료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단 한푼도 받을 생각이 없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염구준과 시선을 교환한 뒤, 손태석에게 말했다.“이제 수술도 끝났고 3일 정도 요양하시면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는 군부를 오래 비울 수 없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돈을 안 받겠다고?손가을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이제마를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손태산과 장무현이 3천억이라는 거금을 제시했을 때도 이 의학계의 거장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그런데 자신의 아버지의 다리를 고쳐주고 돈을 안 받겠다니?그녀는 저도 모르게 염구준에게 시선을 돌렸다.‘구준 씨…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인물이네. 이제마 선생님까지 이 정도로 편의를 봐주시다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숨기고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진짜 일반 전역한 병사 맞나?’“선생님, 지… 지금 가시려고요?”체육관 담당자가 당황한 표정으로 달려왔다.“이 선생님, 아직 청해시의 높으신 분들이 밖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다들 선생님의 진료를 받고 싶어서 찾아온 분들인데….”“허, 참!”이제마는 그 담당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곧장 체육관 바깥으로 향했다.“저희가 배웅해 드릴게요!”손가을은 다급히 손태석을 부축하고 염구준과 함께 이제마를 배웅했다.“이 선생님 나오신다!”체육관 밖은 아주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밖에서 기다리던 재벌, 각 가문의 가주들은 전부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고 흥분해서 소리쳤다.“이 선생님, 저는 조양 그룹에서 나왔습니다. 저택에 한번 방문해 주시면 사
손태산은 눈을 가늘게 뜨고 광기 어린 웃음을 지었다.“염구준의 가장 큰 조력자가 용준영이죠! 용준영만 처리하면 아무리 염구준이 날고 뛰는 재주가 있어도 혼자서 뭘 어쩌겠어요?”장무현도 고개를 끄덕이며 살기 어린 눈을 번뜩였다.용준영?오늘 밤이 지나면 그런 인물은 기필코 사라지게 될 것이다.오후 여섯 시, 용준영의 저택.“형님, 이것 좀 보세요!”뢰인이 손에 사진 한 장을 들고 거실로 달려들어왔다. “조금 전에 입수한 소식인데 황호가 사망했다고 합니다!”“뭐?”사진을 확인한 용준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사진 속에서는 완전하지 않은 시신이 끔찍한 형태로 누워 있었다. 사지가 잘려 있었고 바다에 얼마나 있었는지 시신 부패가 아주 심각했다. 가슴 쪽에도 자상 흔적이 있었는데 가슴팍의 문신을 정확히 양쪽으로 갈랐다.“가슴 문신이라… 이거 황호 맞네!”사진을 쥔 용준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최근 몇 년 사이, 황호의 세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몇백 명의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고 스무 곳이 넘는 업소와 도박장을 운영하고 있었다.용준영을 제외하면 청해시 지하 세력에서 황호는 손에 꼽히는 인물이었다.“청해시에는 황호를 죽일 수 있는 인물이 없습니다. 손태산이면 몰라도요.”용준영의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삐질 났다.손태산은 악명 높은 야심가였다. 그는 청해시를 자신의 손에 쥐고 흔들려고 했으며 많은 어둠의 세력을 끌어모았다. 황호를 제외하면 조폭 세계에서 손태산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그런데 황호가 죽었으니 이제 이 도시에서 아무도 손태산의 세력과 맞서지 못할 것이다.손태산의 다음 목표는 안 봐도 뻔했다. 용준영!“지금 바로 염 선생에게 알려야 해!”용준영은 겁에 질린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염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리고 이때.“용 대표님.”거실 문이 열리고 염구준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다가가서 용준영의 손에 든 사진을 힐끗 보고는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황호가 사망했네요? 역시!”“지금
업소녀가 요염한 허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하동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오빠, 성도에서 오신 손태산 회장님이 언제든 용준영을 칠 수 있게 준비하라고 하지 않았어? 출발하기 전에 나랑 이렇게 술 마시고 있어도 괜찮은 거야?”하동이 몸을 날려 여자의 몸 위에 올라타더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태산 형님이 자정에 출발하라고 했으니까 아직 시간은 충분해! 그러니까 우린….”쾅!그런데 이때, 갑자기 방 문이 외력에 인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뜯겨져 나가고 주변 기둥마저 흔들렸다!먼지가 흩날리는 곳에서 세 명의 인영이 나타났다.“여… 염구준?”하동은 맨앞에 서 있는 염구준을 보고 어깨를 움찔 떨었다.“너… 너 어떻게 들어왔어? 우리 애들은?”“쟤네를 말하는 거야?”염구준은 몸을 살짝 비틀어 복도를 가리키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80명이었나? 다 저기 누워 있네.”바깥 상황을 확인한 하동의 몸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는 눈앞이 어질어질했다.복도에 족히 80명이 넘은 건장한 사내들이 쓰러져 있었다. 전부 다 오늘밤 용준영의 집을 습격하기로 추려진 에이스들이었다!그런 에이스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해 있었다.“염구준, 네가 한 거야? 그래! 너밖에 없겠지!”하동은 떨리는 손으로 염구준을 손가락질했다.“감히 내 사람을 건드려? 나 이미 태산 형님이랑 손잡았어! 태산 형님이!”우지끈!염구준의 뒤에 있던 뢰인이 차가운 얼굴로 갑자기 치고 나오더니 하동의 손목을 뒤쪽으로 비틀어서 부러뜨렸다.“시끄럽게 말이 많아! 지금 누구 안전이라고 소리 질러?”“다시 그 더러운 손가락 놀리면 죽을 줄 알아!”“악!”허둥의 처절한 비명 소리가 커다란 업소를 뒤흔들었다. 부러진 손목뼈가 살을 뚫고 삐져나와 피가 솟구쳤다.소파에 반라 상태로 누워 있던 업소녀는 너무 무서워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었다.“염구준!”하동은 손목을 감싸고 시뻘겋게 부은 눈으로 염구준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내 등 뒤에 성도 지하세력의 손태산 형님이랑 진동하 형
그 시각, 청해시 외각에 있는 한산 별장.이곳은 최근에 개발한 별장 구역이었다. 환경이 아름답고 면적도 상당히 큰 별장들로 동네를 이룬 이곳은 아직 완공된지 얼마 되지 않아 입주민이 별로 없었다.“이제 다 되었습니다.”거실에서 담당의가 조심스럽게 손태산의 붕대를 갈아주고 있었다.“부상 정도가 심각해서 아마 3개월 정도는 격렬한 운동은 피하시는 게 좋아요. 연골이 다시 붙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손태산은 이를 갈았다.체육관에 있을 때, 이제마가 30분도 안 되는 사이에 손태석의 다리를 정상인처럼 걸을 수 있게 고쳐준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그였다.하지만 그는 오늘 장장 6시간이나 되는 긴 수술을 받아야 했다. 마취 기운 때문에 온몸이 떨리고 이렇게 고생했는데도 재활의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는 없었다.“염구준, 망할 염구준!”손태산은 부하를 시켜 의사를 배웅한 뒤, 거실에 남은 부하들에게 악에 받쳐 소리질렀다.“다들 준비 됐어? 기다릴 필요 없이 오늘 당장 출발하자!”“용준영부터 제거하고 바로 염구준을 죽이러 간다. 그리고 손태석 일가도 살려둬서는 안 돼!”옆에 있던 진동하가 다급히 그를 말렸다.“형님, 자정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시는 게….”그런데 이때,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거실에서 몇십 미터 떨어진 별장 대문이 일그러져서 뜯겨 나갔다. 상대는 몇백 킬로나 나가는 합금 재질의 대문을 나무판자 부수듯이 손쉽게 부셔버리고 곧장 거실로 진입했다.“용준영이랑 염구준이 왔습니다!”바깥 상황을 확인한 진동하가 바깥으로 달려나가며 소리쳤다. 그의 뒤로 스무 명이 넘은 조폭들이 눈을 부릅뜨고 안으로 쳐들어오는 3인방을 노려보았다.“우리가 찾아가기도 전에 제 발로 찾아왔네? 그렇게도 죽고 싶었어?”거실에 남은 손태산은 붕대를 감은 손으로 휠체어 전동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누르며 욕설을 내뱉었다.“다 비켜!”진동하와 부하들이 길을 비켰다.아무리 부상을 입고 휠체어 신세가 되었어도 그들에게 손태산은 산과도 같은 존재였다. 적이
스무 명이 넘는 조폭들과 진동하까지 더해서 기세등등하게 3인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무기 없이 맨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여느 조폭들보다 훨씬 강했고 호흡도 흐트러지지 않았다.지치지 않는 체력과 단단한 주먹이 그들의 자존심이자 무기였다.“놈을 죽여!”“스무 명이 염구준 잡고 남은 애들은 용준영이랑 뢰인 상대해!”“죽여 버려!”그들은 우렁찬 고함을 내지르며 주먹에 살기를 담아 염구준 3인방에게 달려들었다.염구준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들의 움직임을 보면 너무 느려서 웃음이 나왔다. 저런 것들을 엘리트라고 불러 모았나?전신전 전주 염구준에게 손태산의 엘리트부대는 쓰레기 취급밖에 되지 않았다.어디서 오합지졸을 또 불러 모았군!“손태산, 앞으로 사람 보는 안목을 좀 길러야겠군!”염구준은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몸을 날렸다.그리고 그림자처럼 빠른 속도로 스치듯이 놈들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그가 스치고 간 자리에 조폭들이 쓰러져서 나뒹굴었다.그들은 염구준이 언제 자기 앞에 도착했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순식간의 불주먹에 가슴을 맞고 쓰러졌다. 일부는 힘없이 튕겨나가 공중을 날다가 손태산이 있는 곳까지 날아와서 바닥에 추락했다!스물 다섯 명의 조폭들이 입에서 피를 뿜으며 고통을 읍소했다. “너… 네 이놈!”당황한 손태산은 휠체어에 앉은 채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강해도 너무 강한 상대였다.은빛 아파트에서도 염구준은 이 정도의 실력을 드러내지는 않았다.물론 지금도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동작에는 여유가 넘쳤고 호흡은 평온했다!“이제 너와 나의 실력 차이를 알겠어?”염구준은 가볍게 손을 털고는 손태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네 놈을 죽이는 건 나에게 일도 아니야! 벌레 한 마리 밟아 죽이는 것과 같다고.”“오늘은 그냥 경고만 하려고 온 거야! 당장 청해시를 떠나.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그리고 내 장인어른 일가는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모욕할 수 있는 분들이 아니야!”말을 마친 그는 용준우와
“손태산이 염구준한테 숙청당했다고?”청해호텔 스위트룸에서 장무현은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고 미간을 찌푸렸다.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다.잔인무도하기로 악명이 자자한 손태산이었다. 성도에서 그를 모르는 자가 없고 그의 슬하에는 24명의 엘리트로 구성된 척살조가 있었다. 게다가 진동하라는 강력한 자가 2인자로 있으니 성도에서 그들이 지나갈 때면 모두가 길을 비켜줄 정도였다.그런 손태산이 청해시에서 변을 당했다니!“염구준, 용준영… 정말 만만치 않은 놈들이네.”장무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맞은편에 앉은 광호와 광용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랑 손태산의 척살조 중에 누가 더 셀까?”광호와 광용도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습니다. 누가 강하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예요.”장무현은 고개를 끄덕인 뒤, 생각에 잠겼다.인맥으로 따지면 장원그룹도 재계에서 마당발을 자랑하는 가문이었다. 광호와 광용을 능가하는 엘리트를 포섭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하지만….“지금의 손씨 그룹이 예전의 용운그룹이라고 들었어. 그리고 지금 회장이 손태석 그 다리 병신이란 말이지. 아, 이제 병신은 아니구나.”장무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그렇다면 섣불리 몸 부딪혀서 싸우는 것보다 회사 쪽으로 손을 쓰는 게 낫겠어. 염구준, 재밌는 놈이로군!”말을 마친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밖으로 향했다.“가자! 이제 내 옛친구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야!”“내일 아침, 손씨 그룹은 파산하게 될 거야!”대략 20분 뒤.청해시 도심가의 한 술집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박 장관님.”이 시각 광용 광호의 손에는 각자 큼지막한 나무박스가 들려 있었고 그 안에는 포르투 와인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장무현은 몸매가 푸짐한 한 중년 남자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원님께서 와인을 소장하는 취미가 있으시다길래 준비해 봤습니다. 지금 꺼내서 맛 좀 볼까요?”박 장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와인의 고향 포르투 와인농가에서 생산한
“저 자식 데리고 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염구준은 꼴도 보기 싫어서 손을 내저었다.이쪽 일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네카일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청해에 돌아가고 싶었다.양청화와 네카일이 떠난 뒤, 염구준은 볼라르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들고 듣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했다.“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퍽!그는 상대방에게 경고하고 손에 힘을 주어 휴대폰을 단번에 아작냈다.일개 백작이 왕후를 공격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휴대폰 너머로 영상으로 그 장면을 본 누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염병! 저 자식이 진짜 나섰어. 이런 빌어먹을 연놈들!”염구준의 실력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해서 정면으로 맞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시체를 분리해서 각자 집으로 보내. 저들이 나를 습격해서 내가 살해했다고 설명하면 돼.”염구준은 성 내의 군사들에게 지시했다.어차피 잡것들이 달려들어도 자신을 죽이지 못하니, 혼자 감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그러면 밖에서 그가 아직도 오스크국의 고위층 2 명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염 선생님.”남은 군사들은 대부분 벨의 측근이라 이유를 묻지 않고 지시에 따라 처리했다.염구준은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서 쉬려고 했다.그런데 다급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염 선생님, 범인을 심문하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벨 왕자께서 그쪽으로 오시랍니다.”정말 쉴 틈을 주지 않고 사람을 굴려 먹는 그들 때문에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무슨 상황인지 가서 보죠.”그래도 속으로 유용한 단서가 나오길 바랬다.오스크 황실 감옥.이 감옥은 평소 귀족이나 황실의 죄인을 가두는 곳이라 항상 조용했었다.하지만 오늘따라 군사들이 북적거렸다.벨 왕자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친왕의 시종과 작위가 낮은 귀족들을 체포해, 감옥 내에 온갖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렸다
“나의 친애하는 왕후여, 평소에 청렴하고 고상하던 분이 뒤에서 이런 남사스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요.”앞장선 남자의 이름은 볼라르, 작위가 낮은 백작이었다.오스크국에서 귀족들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 작위로 나뉘어 있었다.볼라르처럼 낮은 신분을 가진 귀족은 평소 왕후와 말을 건넬 자격도 없었다.“무례합니다. 본인의 신분을 알고 예를 갖추세요. 아니면 바로 벌을 내릴 것입니다.”양청화는 순식간에 기품이 흐르는 왕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염구준은 볼라르 뒤에 따라온 일행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들도 장기말일 뿐, 정작 배후는 나타나지 않았다.“왕후, 창녀처럼 천박하게 굴었으면서 나를 벌한다고요? 웃기지 마세요.”볼라르 백작은 오만하게 말하면서 한 켠으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왕후를 완전히 보내려는 수작이었다.그와 함께 온 일행은 양청화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아는 사이었군요. 두 사람이 결탁하여 에드로 친왕을 죽인 게 확실합니다.”“애당초에 저도 그런 말을 했어요. 왕후는 우리 종족이 아니니 배척해야 한다고 했는데 국왕이 아예 듣지 않았어요.”“이건 재앙입니다. 외적은 피하기 쉬워도 집안 도둑은 막기 어려운 법이죠.”볼라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왕후 앞에서 대놓고 거침없이 말했다.오스크국에서는 양청화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족’이라 불렀다.심지어 그녀가 왕후 자리에 오른 후에도 일부 보수파들은 계속 불만을 품고 항상 끌어내릴 기회를 노렸다.“여군단!”스스슥!양청화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그림자 무리가 그녀의 주변에 나타났다.만약 그녀에게 아무런 수단과 세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볼라르 백작, 휴대폰을 남기고 가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양청화가 마지막 통보를 보냈다.“왜요, 바람피운 것이 들통나니 죽여서 소문을 막으려고요?”볼라르 백작은 그녀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단정하고 휴대폰을 흔들거리며 조롱했다.“이미 영상을 보냈습니다. 휴대폰을
염구준은 여러 갈래의 검기를 발사하여 네카일을 쓰러트렸지만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하하하, 쓸모없는 녀석. 이것도 막지 못해?”“내가 졌어. 그냥 죽여!”네카일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노을에 붉게 물든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어엿한 반보천인 고수가 이 정도로 슬퍼하다니 충격이 꽤 큰 모양이었다.하지만 왜 우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이제 말할 수 있어?”한참 뒤, 염구준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흥, 그녀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너였어. 그런데 넌 오히려 쌀쌀맞게 대하면서 상처를 주었지. 내가 대신 복수할 거야!”네카일은 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그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염구준은 쓴웃음을 지었다.“나와 양청화의 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그렇다고 네가 상관할 일도 아니지. 이만 돌아가.”상대방이 이런 일로 찾아왔다면 더는 난감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네카일의 말을 들어 보면 양청화 때문에 오스크국에 남은 것 같았다.그에게 치정적인 면이 있었다니 참 의외였다.“염구준, 너 당장 이혼하고 그녀 곁으로 가. 아니면 내가 용하에 가서 네 아내를 죽여버릴 거야!”네카일은 바닥에 누워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그 말은 염구준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 자신을 협박하는 것은 괜찮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가족을 언급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황천길로 보내 줄게.”염구준은 살기를 뿜으며 검으로 네카일을 베려고 했다.그 순간, 한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두 팔을 벌여 네카일을 보호했다.“구준 오빠, 안 돼.”그 사람은 양청화였다.“청… 왕후, 이건 내 일이니 참견하지 마세요!”당황한 네카일은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말렸다.그는 양청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오스크국에 남았지만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양청화가 그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는 부귀영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때문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녀
염구준은 검을 뽑아들고 빠르게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네카일이 이 난동을 부리는 것인지 제대로 묻기 위해서였다. 한편, 고성 밖에서는 벨이 배치한 경비병들이 황급히 네카일을 막아서서 그를 말리고 있었다.“총사령관님, 제발 돌아가 주십시오! 염 선생님께서는 지금 벨 왕자님의 귀빈이십니다. 건드리면 큰 일 나요!”“두 분 사이 좋으셨잖아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총사령관님, 벨 왕자님께서 얼른 돌아가시랍니다.”그들 역시 자신이 상대방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벨의 충복으로서 명령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꺼져!”그러나 네카일은 그 누구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고 포효하며 진기만으로 그들을 밀어냈다.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오래전 염구준이 섬멸한 조직에서 남긴 신병으로, 겉으로 보면 오래된 평범한 도에 불과했는데,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쓰지 않는 것이었다.슈욱.이때, 염구준이 나와 네카일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그저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날린 것이라 이 검기에는 많은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쾅!네카일은 쌍도를 교차시켜 제자리에 우뚝 서서 그 검기를 막아냈다. 다만 그의 눈에는 분노가 어려있었다.“왜, 전의 조직의 복수라도 하려는 거야? 갑자기 미쳤어?”염구준은 상대방이 이러는 의도를 몰라 떠물었다.“그 녀석들은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니 죽어도 싸.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오스타국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너와 한 번 붙기 위해서다.”“어디 한 번 붙어볼래?”네카일은 현재 매우 분노한 상태라 그가 내뿜는 기운도 이상하리만치 광포했다. 도의 손잡이를 잡은 그의 두 팔의 핏줄은 이미 불거졌다.지금 그의 눈에 염구준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와도 같았다.“난 이유 모르는 싸움은 안 해. 그러니까 이유 좀 알려주지 그래?”염구준은 이 모든 게 너무 당황스러워 상대방이 이러는 이유를 알고자 질문했다.“싸움의 이유를 알고 싶다면, 나를 이겨라!”네카일은 말을 마치고는 한 도로 방어를 하면
왕궁은 음모와 배신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양청화가 명을 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시종 중 한 명이 벌써 이미 증거를 가지고 고발하려고 안드리를 찾아갔다.“안드리 친왕님, 왕후 폐하께서 조금전에 염구준을 만나셨습니다. 이건 제가 몰래카메라로 찍은 화면입니다.”시녀는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내밀며 미소를 지었다.이건 엄청난 공적이니까 말이다. 이번 일로 대량의 상금은 물론 어쩌면 귀족의 자리도 얻을 수 있었다.안드리 친왕은 스마트폰을 받은 뒤, 영상을 클릭했다.그러나 영상을 보면 볼 수록 그의 안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이 암캐년이 염구준과 이미 알고 있던 사이였어? 비밀 만남이라니, 왕실의 체면을 정말 깎아내리는군.”“그렇게까지 매달렸는데도 거절을 당하다니, 안타깝기도 하지. 정말 우스운 년이라니까.”시녀는 안드리 친왕의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말했다.“친왕께서 중요한 일이 있으시니 저는 이만 물러가 계속 왕후 폐하를 감시하겠습니다.”“잠깐.”“이 영상이거나 이 일을 혹시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줬니?”안드리 친왕은 시녀를 멈춰세우고는 자상하게 물었다. 갑자기 변한 상대방의 태도에 시녀는 망연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증거를 확보하자마자 친왕님께 가져왔습니다.”“그렇다면 가서 죽으렴.”안드리 친왕은 눈빛이 갑자기 싸늘해지더니 장풍을 날려 시녀를 죽여버렸다. 이런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 수록 좋기 때문이었다. 특히, 그의 손에 왕후의 약점이 있다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나 불쌍한 시녀는 죽을 때까지도 충성을 바쳤던 주군이 왜 자신을 죽였는지 알지 못했다. 안드리 친왕은 그녀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가식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내 위대한 사업을 위해 희생했으니 널 기억하마.”이런 헛소리는 그가 자신이 잔인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한 변명에 불과했고, 심리적 위로에 불과했다. 그는 동영상을 한 부 더 복제한 뒤, 밖을 향해 분부했다.
그의 말을 들은 뒤, 양청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가가 붉어진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날 찾으러 다녔었어?”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었고,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원망해왔다.하지만 오늘에서야, 그녀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염구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에효. 그때 널 찾다가 주운 은팔찌는 네 부모님을 돌려드렸어. 그분들도 널 무척이나 그리워하셔.”그때의 일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그녀를 찾지 못한 것이 염구준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날 상처받고 도망친 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내 잘못, 내 잘못이야! 왜 그때, 멋대로 캠프를 떠나서는..”그녀는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지금은 한 나라의 왕후로서 군림하고 있지만, 그동안 그녀가 겪은 고통과 외로움은 아무도 몰랐다.“후, 다 지나간 일이야. 내가 그때 너무 단호하게 거절했던 잘못도 있어.”염구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난감한 얼굴로 휴지 한 장을 건넸다.이런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양청화는 눈물을 닦으면서 옛 기억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그때 어두운 보라색의 오피스룩을 입고 오빠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오빠가 계속 말하던 아내분이지?”“미인이시더라.”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는데, 목소리에는 전과는 달리 감정이 담겨 있었다.“맞아. 손가을이라고 해. 사이가 무척 좋지.”“축하해.”“솔직히 질투가 나긴 해. 내가 먼저 오빠를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양청화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지만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웃어보였다.불교에서 말하는 팔고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바로 구지부득이었다.“그건 모르는 일이지. 낯선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은 보기 드무니까 말이야.”그는 불길 속에 있던 아내
이때, 시녀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왕후 폐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후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이에 양청화는 목욕을 마치고 서둘러 일어나며 조금 조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금방 나갈 테니.”물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물에서 갓 나온 연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한편, 후원의 석탁 옆.염구준은 차를 홀짝이며 평온하게 정원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때의 일은 단순한 사고였다.마땅히 해야 할 일은 다 했으니 그는 후회하지 않았지만 조금 안타까울 뿐이었다.하지만 이제 양청화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조차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다.이때, 양청화가 후원에 들어오며 위엄있게 모든 시종들을 내쫓았다.“모두 나가. 내 명령 없이는 절대 들어오지 마.”왕후가 낯선 남자와 단둘이 만난다는 소문이 퍼지면 좋을 게 없었다.즉, 염구준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위험하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왔네.’염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기도 전에 풍기는 옅은 향기에 그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나한테 이런 수작을 부릴 심산인가?”또각또각.리듬감 있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황실 예복을 입은 양청화가 염구준의 시야에 들어왔다.다른 건 일단 신경 쓰지 않고 말하자면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니, 단순히 이쁜 것 뿐만 아니라 고귀한 아우라도 느껴졌다.“안 본지가 몇 년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무공을 연마한 사람들은 노화를 늦출 수 있었는데, 특히 염구준처럼 강한 무인들은 그 효과가 더욱 강했다.그러니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염구준은 예의있는 미소를 지으며 한층 직설적인 태도로 말했다. “너도 관리 잘했네. 오늘 날 불러낸 이유가 단순히 옛정을 나누기 위해서야, 아니면, 그날의 진실을 듣고 싶어서야?”이에 양청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석탁에 앉았다.
오는 길에 이미 현장 사진과 여러 정보를 검토한 덕분에 염구준은 속으로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현장에 아무런 저항의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에드로는 한 방에 깔끔하게 처리된 걸 거야.”“전신 위의 실력을 가진 그가 그렇게 당했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야. 하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신했거나, 다른 하나는 더 강한 반보천인을 만났거나.”“반보천인의 수법은 다양하니, 우선 에드로의 주변 인물부터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염구준의 분석에 따라 현장에서 가장 의심되는 인물은 그와 벨, 두 명뿐이었다.그러나 이 사건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용의자였다.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머릿속이 확 트이는군요! 조사 방향을 명확하게 알 것 같아요.”벨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과하게 아부했다. 그는 염구준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조사를 맡긴 이상, 그는 염구준을 무조건 믿을 생각이었다.“됐어, 단서가 많지 않으니 내부 인물부터 조사해 보자.”염구준은 손을 휘저으며 벨의 아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아첨 같은 게 통하지 않았다. 또 다른 단서는 메이슨 집사였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면 그는 그냥 연막일 가능성이 높았다.“알겠습니다. 바로 명령을 내리겠습니다.”벨은 공손하게 대답한 뒤, 옆에서 몸을 떨고 있는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네카일에게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세 개 부대를 이끌고 오라고 전해.”세 개의 부대에는 총 3만 명이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쓴 걸 보아 이번 조사가 단순히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닌 전면적인 색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는 아버지인 에드로와는 달리 네카일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다.1단계 계획을 실행하고 잠시동안은 할 일이 없었다. 다음 계획은 조사가 끝나고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명탐정이 아니었다. 다만 철저한 논리적 사고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타겟을 좁혀가는 것 뿐이었다.“염 선생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밀고나갈 필요도 없겠지. 다들 물러나라.”만약 이 상황에서 계속 공격하려고 든다면, 벨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그는 결국 병사들에게 물러나도록 지시했다.하지만 안드리 친왕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어 계속 시비를 걸었다.“염구준, 우리 오스타국의 중요 인물 두 명이 죽은 게 모두 너와 연관이 있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거냐?”이름까지 부르면서 따지고 묻는 상대방의 태도에도 염구준은 겁 먹지 않고 오히려 비웃으며 대답했다. “니체르는 강제로 사람을 감금하고 연구성과를 빼앗았다. 죽어 마땅하지. 하지만 에드로 친왕의 죽음은 나와 무관해.”“이 대답에 만족해?”“참고로, 나는 지금 너희를 도와주고 있는 거니까 죄인을 심문하듯이 굴지마.”더없이 무례하게 느껴지는 그의 태도에 귀족들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너...!”안드리 친왕이 다시 말을 하려는 순간, 양청화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렸다. “그만. 니체르가 저지른 만행은 다들 알 거라고 믿습니다. 죽어 마땅하죠. 그리고 에드로 친왕의 죽음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으니 우선 제대로 조사하고 결정을 내리죠.”“오스타국 왕실을 대표하여, 염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그녀가 말을 마치자 대전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녀가 공식적으로 염구준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아래에 있는 귀족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지만 왕후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는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오스타국의 정치는 조금 특이했는데, 전의 국왕이 늙어서 수명을 다한 탓에 합법적인 후계자인 어린 국왕이 자리를 물려받기는 했으나, 아직 나이가 어려서 왕세자에 불과했다. 즉, 그의 어머니인 양청화가 실권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이곳에 남기로 한 이상, 저를 모함한 범인을 반드시 잡아내고 말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과거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그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강한 태도